순간 표정이 깨진채로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 바보는 역시나 이럴때만 반응이 빨랐다. 당황하는 현실의 자신을 보지 못한듯, 이미 알렌은 거울 속 한심하게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힌 얼굴로 인형을 껴앉고 있는 어린시절의 자신을 상당히 바보 같은 얼굴로 보고 있었다. 하, 속으로 명확하게 형용하기 힘든 감정을 담은 실소를 뱉으며 가득 죽은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어머나?" 그러다가 마치 흥미로운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처럼 손을 들어 입가를 가리고 눈 웃음을 지었다.
손으로 가린 뒤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는 시체같이 창백했다. 시린 눈으로 어쩔줄 몰라하는 어린 아이를 바라보며 어르듯이, 속삭이듯이 말을 이어간다.
"옆에 있는 바보의 더 바보같은 시절은 타이르려 하지 마렴. 어차피 너로서는 그럴만한 능력도 언변도 없을 뿐더러 지금의 나는 제법 보는 재미가 있으니 말이야." 힐끗 고개를 돌려 꽤나 거친 자기소개를 마치고 현타가 온듯 그리고 당황한듯 소년과 아이를 보고 있는 알렌을 보았다. 피식 웃다가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보고 혼잣말을 하듯 말을 건넨다. 아이는 놀라 울음을 멈추고 미래의 자신을 바라본다.
"하지만 옳지 않은 행동에 나서지 않는것은 나쁜 짓이에요. 아버지가 그렇게 말해주셨어요." "이거 깨버릴까요."
"물론 과거의 활발한 당신을 보는 건 꽤 재밌지만 이 아이는 좀 거슬려서요." 혹시나 이름을 말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6
아이는 눈치를 보다가 쪼르륵 넘어진 소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저기, 괜찮아요?" 도르륵 눈을 굴리면서 여전히 겁먹은 눈빛이지만 굳은 결의가 보이는 눈으로 마치 일으켜 세우려는 것처럼 물어본다. 그 어이없는 일련의 과정을, 그리고 이제는 대놓고 질색하는 동행인을 보다 이어지는 상대의 혼잣말에 린은 행동하던 것을 멈춘 채로 거울을 깨지 말란 말에도 잠자코 서있었다. 그리고 살짝 눈을 감고 항상 하듯이 미소를 그렸다. 입꼬리를 살짝올리고 손은 입가로, 그렇게
"어머나, 귀여우셔라..." 차갑게 웃는 눈이 매섭게 손을 내쳐졌지만 여전히 어쩔줄 몰라하며 주변을 빙빙 도는 어린 아이, 어린 알렌 마지막으로 이제는 꽤나 자기 표현을 하는 현재의 알렌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명백하게 조소에 가까운 거짓 웃음을 보이다가 한 걸음 한 걸음 내팽겨진 채로도 금방 일어서 마구 항의를 하고 있는 소년에게 다가갔다.
"내가 널 납치해서 어떤 이득이 있다고." 진실을 모른다지만, 이미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무시하고 과거의 미련을 놓지 못하는 멍청이를 동료라는 허울뿐인 이름아래 신경써서 무엇을 한다고.
"정말로 납치당했더라면, 나라면 얌전하게 굴었을거야. 고분고분 순종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겁먹은 아이처럼 굴었겠지." 오히려 마구 분풀이를 하는 것은 상대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고 자신의 감정적, 무력적 무력감을 그대로 드러내는 짓이다. 그렇게 행동해서는 아마 자신은 애저녁에 삼촌이라는 사람에게 죽었을테다.
"그리고 방심하는 순간에 그 목에 칼날을 박아 이렇게 말했을거야." 순식간에 지근거리까지 다가간 린은 삿대질을 하는 손을 잡아 가볍게 눌렀다.
"어머, 정말 바보같으셔요." "이런 거, 누가 안 가르켜줬나봐?" 계속해서 휘둘리기만 하는 자신과 주변의 모든 것이 짜증난다. 명백하게 분노를 삭히는 듯한 어조로 말을 하다 아래에서 미약하게 잡아당기는 것 같은 느낌에 눈을 아래로 둔다. 불안해 보이는 표정의 어린 소녀가 그만두라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만해요." 갑작스럽게 폭발한 알렌의 반응에 무심함을 가장하던 가면에 금이 갔다. 순간 놀라 움츠러든 나시네와 같은 표정을 한, 그러나 묘하게 희미한 안타 까움이 창백한 얼굴을 스쳤다.
"당신까지 다치고 있어. 정신차려." 다시 돌아보기 싫은 무지한 어린 자신도, 그저 구해준 이를 어머니처럼, 구원자처럼 알에서 갓 깬 새가 따라다니듯 행동한 그도. 어쩌면 그 자체는 죄가 아닐텐데. 아름답고도 잔혹한 세계는 죄가 아닌 당연한 감정을 죄악으로 만들어 상처를 남겼다.
"차라리 저한테 얘기해요 말해줘요. 무슨 일이 있었죠? 당신이 무모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충동적이고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어." "아니면 이대로 나를, 내 최소한의 믿음까지 실망시킬 셈인가요. 제가 원하는 건 이런 광경이 아닌거 알고 있잖아요." 비틀거리며 쓰러지려하는 알렌을 잡아 부축하며 쓰러진 소년 쪽을 바라본다. 그래도 숨을 쉬고 있으니 고비는 넘겼다 싶어 눈을 돌리고 다시 똑바로 지금의 알렌을 마주본다.
생각했던것 보다 훨씬 짧은 얘기였다. 당연히 이 바닥 사정이 거기서 거기이니 어렴풋이 짐작이야 하고 있었지만, 저도 모르게 어느새 어린 자신의 손을 잡은채로 린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인가요. 이미 죽은 사람 뒤를 따라 갈 셈이라도 되는 건가요?" 잠시 침묵하다 짧게 한숨을 쉰다. 나는 대체 어쩌자고 질문을 던진거지. 예상을 벗어나는 행동에 당황해서 지나치게 솔직하게 굴어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폭력이나 충동적인 행동이 절대 낯설 삶을 살지는 않았는데 시윤의 얘기를 들은 탓인가.
"그렇게 된다면 그 분이 정말 좋아하시겠네요. 그렇게 애써 살린 사람이 보람도 없이 저승까지 쫓아왔으니 말이에요." 저는 살고 싶어요. 살게 해주세요. 이 몸과 마음과 혼을 바쳐서라도 살게 해주십시오. 제 복수심을 제외한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악마라도 좋아 제발, 작은 손을 쥔 제 손에 힘이 더해진다. 아이가 옆에서 움찔거린다.
'그런데 왜 죽었다고 말하나요? 당신 옆에 살아서, 살아있는 척하며 움직이고 있지 않나요?' 마지막 한 마디를 꾹 눌러 참으며 말을 이어간다.
"그 유지를 이어갈 생각도 없이 자책에만 빠져있을 건가요. 어머, 한심해라. 그럴 용기도 없이 제게 가면을 쓰지 말 것을 요구했나요?" 내 삶이 어떤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책임하네요." 옆에서 어린 아이가 어렵다는 표정을 짓다가 걱정스럽게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본다. 동시에 저기 멀리서 끙끙 앓는 소리가 들린다.
"어머, 충격요법이 답인가. 역시 답이 없네요." 그렇게 사생결단을 낼 것 처럼 달려들었으면서, 어이없다는 심정을 숨길 생각도 않하고 그대로 드러낸다.
"제가 왜 거울 속의 인물을 죽이죠? 그래서 제가 얻는 것이 있나요?" 어쩜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네요. 역시 바보같다고 중얼거리면서 방금 전에 어린 그에게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던진다. 그리고 그렇게도 저를 못 믿으면서 잘도 이런 얘기를 그리고 그 전의 말들을 털어놓는다 싶다.
"그리도 신뢰가 없다면 당신은 왜 저와 친분을 유지하는 거죠? 혹시나 한 눈 팔면 배신할까 두려워서?" 하기사 이 쪽도 사실 자신의 가식을 알고 대놓고 질겁하는 것이 싫고 신경쓰여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붙어다녔지만, 상대가 대체 무슨 생각인지 린은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잘만 솔직함을 요구했으면서 지금은 옆에서 이제는 노곤한지 졸고 있는 어린 아이를 보고서도 제게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역시나 알 수 없다. 그렇다면 그저 배신당하지 않을 만큼의 진실을 요구한 건가.
"또 한심한 얘기를 하네요." "..." 잠시 침묵한다. 그렇게 어색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침묵이 이어진 끝에 다시 입을 연다.
"꼭 유지를 이어야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요. 이 세상은 망자가 아닌 산자의 것이니까요."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