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금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situplay>1596988070>816에 쓴 오늘자 훈련레스를 보셨으면 아시다시피 성운이는 인첨공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로 아버지를 보고 싶다고 어머니 몰래 인첨공으로 들어왔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가족을 자기 손으로 나락에 밀어넣었어요 자신의 삶이 망가진 건 물론, 부모님의 삶까지 균형이 깨지고 어그러졌으니까
그렇게 많은 것을 잃어버렸고, 중학교 때부터 성장이 중단될 정도의 커리큘럼에까지 시달렸는데 정작 성운이의 능력계수는 0이죠. 잃기만 하고 얻은 것은 없어요. 잃어버린 만큼 보상이 있어야지 않겠냐는 보상심리. 보상을 쟁취하겠다는 욕심... 그것이 저지먼트 활동에 열심히 임하는 모습으로 구현된 거에요. 뭐라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뭐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어디에라도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무언가 잃은 만큼, 얻을 게 있을지도 몰라. 시킨 일을 열심히 하고,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분명 뭔가가 이루어질지도, 뭔가가 변할지도... 어찌 보면 놀부 심보죠. 누가 내놓으라고 강요하지도 않은 것을 자기 의지로 덥석 내팽개쳐놓고는, 그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착한 아이처럼 보일 수는 있겠지만, 절대 마냥 착한 아이는 아니에요. 오히려 이상한 방향으로 철이 없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나 어제 저녁에 겔포스 먹었는데 이런 무자비한 식단 준비하는 거 무엇임 아파요 선생님 위벽이 다 까졌다고요 으아악
아 근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성운이 은근 리라랑 닮은 데가 있네 얘네 둘 만나는 거 기대된다 리라도 레벨 올리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 중 하나가 보상심리여서... 물론 이쪽은 도피가 가장 크지만 모든 걸 놓고 온 만큼 여기서도 올라가야 한다는 강박+보상심리의 결합이랄까... 같은 백발 패밀리 아니랄까 봐 이런 게 닮았네 안되겠다 후천적 남매 하자
서성운: 163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 “······.” (성운은 잠시 시선을 먼 곳에 두었습니다. 어느 날, 나쁜 아이들을 막아세워 주었던, 짧은 까만머리 아래에 품이 커다란 재킷의 등판이 아직도 망막에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지먼트의 모든 분들이요.”
123 머리가 어느정도 길어지면 어떻게 하나요?(ex 묶기,자르기) “이렇게요!” (성운은 뒤통수 높이 묶인 새하얀 포니테일의 끝을 손으로 받치고 쫑쫑 들어보입니다.)
207 피를 잘 보나요? “아무래도 많이 봐요. 저지먼트 업무를 할 때 몸으로 때우다 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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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원하는 이상적인 가족은?" 서성운: “······.” (소년은 왈칵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옛날의 가족이요, 라는 말을 입에 올리기에도, 너무 죄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내 탓입니다. 모두 내가 잘못했습니다.)
"너는 어디까지 비열해질 수 있어?" 서성운: “잘 모르겠어요” “비열해지는 것도 비열한 수단을 택할 형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럴 형편도 못 되나 봐요”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어떻게 할래?" 서성운: “물론 기뻐요! 뭐건, 일단 해둘 수 있을 때 해두면 좋으니까, 성적도 높게 따두면 분명······.”
그리고... 진단하다가 >>16에서 미처 못다 적은 게 생각났는데 성운이의 보상심리는 결국 죄책감과 부채의식에 기인하고 있다는 게 또 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자존감이 낮은 것도 그 보상심리가 죄책감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고요. 자신이 멍청한 짓을 해서 가족을 망쳐놓았으니, 가족을 다시 꿰멜 수 있도록, 다시 행복한 가정으로 뭉칠 수 있도록 자신이 그만한 활약을 하는 것으로 계기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이 부분이 가장 핵심이에요.
>>22 8ㅁ8 으아아아앙 그래도 랑주는 푹 주무신 것 같아 다행이에요
>>23 청윤주도 좋은 아침이에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24 네,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어... 그 명대사가 인상에 깊이 남아서 인용했어요. 캡틴 아메리카와는 달리 죄책감에 내몰려서 하는 말이라는 게 문제지만...
성운은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혜성이 때마침 입가의 상처에 반창고를 붙이는 바람에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결국 말할 타이밍을 놓친 성운은 잠깐 입을 다물었고, 다시 입을 열 때는 원래 하려던 말 대신 격투기에 관련된 다른 질문을 먼저 꺼내게 되었다. 답은 생각보다 금방 나왔다.
“···부부장님이군요”
‘무술에 일가견 있는 사람’과 ‘부장 혹은 부부장’이 겹쳤다. 두 가지 목표가 한 가지 대상에 겹쳤으니 보통은 일거양득이라 할 수 있겠으나, 왠지 지금 이렇게 엉망진창인 꼴로 격투기를 가르쳐달라고 찾아가면 진짜로 ‘너는 저지먼트를 하기엔 너무 약하다’ 같은 꾸중을 들을 것만 같아서(한양이 그런 말을 할 것 같지 않다는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성운은 일단 병원 치료가 끝나고 상처가 다 나으면 한양을 찾아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실제로 병원에 가서 제대로 된 처치를 받게 되면 의사 선생님이 성운을 야단치며 며칠 정도는 입원해 있으라고 할 미래가 예정되어 있으니 그 편이 나을 것이다.
“그렇네요, 역시. 다들 그러고 있었구나.”
성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운이 격투기나 체력 단련을 지도받을 사람을 물어본 것만큼이나 당연한 말이다. 오히려 성운이 이제서야 단련 관련해 관심을 갖게 된 게 늦어도 한참 늦었다고 보는 게 맞다. 성운은 고개를 숙이고는, 얌전히 혜성의 치료를 받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이 선배님 이름도 모르고 있네······. 여쭈어보는 게 맞을까?
혜성주께 드리는 추신.. >>52의 답레 끝맺음이 뭔가 반응하기도 애매하고 아리까리하게 됐는데 혜성주랑 이야기하다가 혜성이가 통성명하는 걸 꺼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기에.. 성운이 입장에서 더 이상 화제도 없어서 저렇게 애매하게 끝맺었어요. 이대로 치료를 끝내고 성운이를 보내주셔도 좋고, 다른 화제가 있다면 꺼내주세요!
>>60 제가 리라에게 선관이 뭐뭐가 있는지 몰라서 막 말씀드리기 좀 그렇지만.. 1학년 1학기때 리라 옆자리가 성운이였다던가 해서 인첨공에 중학생 때부터 있어서 인첨공에 대해 잘 아는 성운이가 리라가 인첨공에 적응하도록 시설 위치라던가 생활 팁이라던가 공유해주며 도와줬다던가 하면서 서로 안면이 있다! 하는 소소한 선관이에요 (이 경우 성운이가 작년 가을 갑자기 사라졌다가 얼마 전부터 다시 학급으로 복귀한 것을 알게 됩니다) 다른 선관과 겹쳐서 못하는 부분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하지만 이 선관을 맺거나 말거나와는 상관없이 리라가 냅다 껴안아앉히면 얼굴빨개짐+동공지진 나는 성운이를 볼 수 있습니다
>>63 아 좋아좋아좋아좋아좋아 너무 좋아 사랑해 아기뱁새강아지야 복복복 행복하다 좋아 나도 이따 이거 정리해야지 헤헤
근데 이 선관이면 리라가 1학년 때도 무릎앉혀 안 했을거란 보장이 없네.... 성운주 이거 괜찮니 리라 상습범 될 거 같다(?) 그리고 아마 1학년 때 리라는 짝인 성운이 제외하면 애들이랑 다 잘 어울리는 거 같아도 은근 벽치고 그런게 보였을거 같아!(지금도 그렇긴 함)언제나 사람이 주변에 와글거리지만 먼저 친한 척은 성운이한테만 주로 하는... 그런 관계였을지도
>>105 으악크아악 리스폰이라니......!!!!!!!!!!! (일단 기댜림) 오히려 갸꾸로 말하면 효과가 증폭될지도!?!?!?!!!!!!! 그런 클리셰 많잖아요!!!!!!!!!! (아님)
>>107 원래 이름은 '괴이 현상 관리부' 인첨공에서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알 수 없는 곳으로 빨려들어가고, 그곳은 원래 인첨공에 존재했었지만 어쩌다 사라진 장소. 그 장소와 장소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전부 괴이라고 칭합니다. 알 수 없는 장소기 때문에 못나오면 그대로 실종.... 때문에 괴이부에서는 사람들이 빨려들어가더라도 탈출할 수 있게 탈출 지침서를 만들고, 수색 작업을 실시해서 실종된 사람들을 구하는 일을 하지요!!!! 말이 실종이지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깥에선 실종된거라고밖에 생각을 못하니까여.
>>137 으 아 악 모래씹는 식감이라니...!!!!!!!!!! 얼른 집이든 어디든 들어가서 푹 쉬셔야해요...!!!!!!!!!!!!!! 덮밥 맛있었지요!!!!!!!!!! 문제는 다같이 라멘집갔는데 같이 간 사람들이 아무도 라멘을 안시켜서 쪼끔 눈치가 보였다는....!!!!!!! (옆눈)
>>138 엌ㅋㅋㅋㅋㅋㅋㅋㅋ그럼 괴이 들어가면 소예 못움직이는거 아냐!?!?!??!!! 괜찮습니다 우리에게는 베-테랑 동월이가 있으니까여!!!!!!!!!!! 여담이지만 다들 괴이 이야기 좋아해주셔서 너무 좋네요!!!!!!!!!!! 사실 동월주 이거 짤때만 해도 '이거 설정오류 씨게 먹고들어가는거 아닌가...?' 라고 생각했어서...!!!!!!!!!!!
>>139 토템이 기대된다니 응애린주는 사실 인파이터!?!?!!?!?!! (이상한 대화)
그러고보니 어제 투표받은 독백도 슬슬 쓰기 시작해봐야겠군요...!!!!!!!!!!!! 일과 병행하면서 쓰는거라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어차피 곰손이라 기대 안하셔도 되지만??????!!!!!!!!!!!!!
목화고의 어느 부실. 한 손에 가검을 든, 하얀 눈이 인상적인 소년이 만신창이가 된 채로 문을 열고 들어온다.
" 나 왔다. " " 복귀 축하해. 별일 없었지? " " 어차피 통신장비로 다 봤으면서. 실종당할뻔 하긴 했는데, 죽을뻔하진 않았어. " " 너 거기서 실종당하면 사실상 죽는거인건 알지? " " 나 죽게 내버려두려했냐? " " 고민 좀 했어요. " " 지혁아, 뒤지고싶니? " " 어허, 화내지 마세요. 예쁘고 귀여운 말 골라씁시다. " " 지혁아. 한번만 더 내 앞에서 그 앵두같은 입술 달싹였다간 꽃밭에서 구미베어들이랑 뛰어놀게 해주마. " " ..... "
한숨을 푹 내뱉으며 가검을 근처에 내팽겨치고 소파로 다이빙한 소년은 피곤하다는 듯이 눈을 감았다.
" 아, 우리 신입 온건 알지? " " 오 신입!! 드디어 나도 선배가 되는건가!?! 나도 이제 수색 나갈 수 있는건가!?!?! " " 너랑 동갑이다. 그리고, 신입이 나랑 같이 나갈거야. " " 아니 그런게 어딨어요!!!! 내가 선!배! 인데!!!! " " 너 저번에 스튜디오 기억 안나냐? " " 에? 캣박스 스튜디오요? 거긴 왜? " " 왜긴, 니가 그때 한 뻘짓만 생각하면 아직도 뒤로 넘어갈거같다. " " 지혁이한테 너무 뭐라그러지 마. 걔도 잘 해보려고 그런거잖아. " " 잘 해보려고 그런놈이 괴이로 착각하고 나한테 칼을 들이대!?! " " .....;; " " 부장 내편 아니었어요...? "
오렌지색 머리의 소녀는 곤란한 눈빛으로 시선을 피하고, 자기 할일을 이어나갔다.
" .....다음은 어디로 갈거야? " " ......더 블루. " " 어라, 부장? 나 왜 무시당해...? " " 내가 거긴 아직 이르다고 몇 번이나 말해? " " 그럼 어쩌냐. 나 말고 갈사람 있어? "
하얀 눈의 소년은 주머니 속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들었다.
" ....가망 없을거라고 했잖아. " " 그렇다고 이거 무시하고 있을거야? " " 하아.... 대신 무조건 2인 1조야. 신입이랑 갈거지? " " 아니, 지혁이랑 갈건데헼!!!!! "
요즘 세상엔 유니콘 프라페도 파는데 유니콘 덮밥쯤이야... (덕끄) 근데 말고기는 비싸니까 유니콘고기는 더 비싸겠지!!!! 에엥, 그치만 점례 오피셜로다가 쓰담아지는 것도 꿀밤도 좋아하는데여? :0c 잌ㅋㅋㅋㅋㅋㅋ 보기 전부터 질투의 대상이 된 점례시!!! 막 봑실하게 쓰담고 싶엉... 후, 점례야... 가서 잘해라... (월이 복복이)
마저, 아지주 보면 막 일상광공같애. 대충 무슨무슨 아이디어들 생각나서 엄청 말하는! 소재가 끝없이 나와오!
>>193 으 앗 보고계셨다니 감사합니다 청윤주!!!!!!!!!!!! 어서와요!!!!!!!!!!!!!!!
>>194 그치만 저 배 부분의 초강력접착제는 대체...!?!?!??!?!!!! (그것도 꿈과 희망인가) (꿈과 희망을 슈퍼 접착제로 붙여버리겠단 얘긴가) 게트롤이라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꿀밤 말고 복복이도 있잖아요!!!!!!!!! (복복복복) 근데 지혁이는 동월이 입장에선 금쪽이같은 애라...!!!!!!!!!!!! 하루 죙일도 꿀밤 때릴 수 있어!!!!!!!!!
초등학교 고학년 쯤 되었을까. 모처럼의 자율활동 시간을 맞아 교실에서 과자 파티가 열린 날이었다. 책상 위에 올라앉아 교실 중앙에 모여 과자를 먹는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던 중 당시 짝꿍이었던 아이가 그렇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 애는 그 애 나름의 배려를 한다고 질문한 것이었겠지만, 사실 무슨 말을 해도 아이들을 이해시키기 어려울 것 같아 그저 웃어넘기려고 하면.
"야, 왜겠냐? 쟨 급식도 안 먹고 집에서 싸온 것만 드시잖아. 공주님처럼 귀한 몸이신데 이런 걸 먹겠어?"
어딘가에서 날카로운 한마디가 화살처럼 파고드는 것이다. 동그랗게 눈을 뜨고 목소리의 근원을 찾아헤매던 리라는 모두가 그의 시선을 피하는 걸 느끼고 이내 눈을 내리깔았다. 됐어. 상관 없다. 어차피 이제 조퇴할 시간인데.
"반장, 오늘도 출석부에 조퇴증 끼워뒀어. 선생님께 말씀드려줘."
그렇게 말하며 가방을 챙기고 걸어나가 뒷문을 닫으면 예민한 귀에는 내부의 수군거림이 잔잔하게 전해져 온다.
—리라는 매일 일찍 하교하네. 부럽다~ —넌 저게 부러워? 쟨 간식도 안 먹고 학교 끝나고 놀지도 않고 현장체험학습도 수련회도 안 가잖아. 내가 쟤였으면 진짜 매일매일이 재미없을 것 같은데. —근데 이번에 채널 OOC에서 새로 나온 어린이 캠프 프로그램 있잖아, 거기 리라도 나오더라. 수련회 가서 할 만한 건 다 하던데? 그리고 말이야, 우린 가도 다같이 모여서 바닥에서 잤었잖아. 그치? 근데 쟨 예쁜 방에 있는 침대에서 자더라. —뭐야, 누가 공주님 아니랄까 봐. —솔직히 재수 없어. 이거 몇 개 먹는다고 세상이 무너져? 아까도 봐, 유빈이가 왜 안 먹냐고 했을 때 표정. 내가 그런 걸 어떻게 먹냐~ 하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니까? —그만해. 너희도 리라 부모님 엄한 거 알잖아. 걔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거겠어? —아, 몰라. 쟨 저럴 거면 왜 학교 오는지 모르겠어. 그, 그 뭐지. 검은고시? 같은 것도 있다고 하던데. —검은고시가 아니라 검.정.고.시 야. —아, 아무튼 그거!
됐다. 들을 만큼 들었다. 리라는 가방끈을 조이고 복도를 가로지른다. 수업 중인 다른 반에서 토론하는 소리, 소란스레 떠드는 아이들을 향해 치미는 화를 겨우겨우 억누르고 있는 선생님의 인내심 가득한 목소리나 교육용 영상물에서 나오는 소리, 이따금 발표 소리 같은 것들이 들려오고 있었지만 반대로 리라가 걷고 있는 이 복도는 지나치게 조용했다. 그게 너무 싫어서 걸음을 재촉하다가 교문 앞에 차를 세워두고 기다리는 어머니의 초조한 얼굴을 발견하면 겁을 먹어 조금 더 빨리. 그러다가, 튀어나와 있는 벽돌에 발끝을 걸린다.
"리라!"
무릎이 아프다. 리라는 쓸려서 따끔거리는 손바닥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유독 얼얼한 오른쪽 무릎을 내려다본다. 조금 긁혀서 피가 났지만 심하진 않네. 다행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거친 손길이 리라의 양 어깨를 붙잡았다.
"뭐 하는 거야! 조심성 없게! 엄마가 넘어진다고 뛰지 말랬지!"
어디 봐, 하고 한쪽 무릎을 꿇어 상처를 살피는 모습에는 그래도 약간의 사랑이 느껴지는 것 같아 리라는 조금 웃었다.
"뭘 잘했다고 웃어? 그래도 상처가 작아서 어떻게든 가릴 수는 있겠다. 니삭스나 스타킹 같은 걸..."
다음 말에 곧바로 식어버렸지만.
"가자. 준비 시간 맞추려면 아슬아슬해." "네, 엄마."
적정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차량 내부는 깔끔했다. 리라는 뒷좌석에 앉아 미리 준비되어 있던 점심 도시락 가방을 열었다. 닭가슴살과 아스파라거스 그리고 당근을 버무려 구운 요리와 식초를 뿌린 샐러드 채소 조금, 아몬드와 방울토마토 각 3알씩. 플라스틱 포크로 음식을 찍어 입으로 가져가고 있으면 운전석에 앉은 어머니가 차를 출발시킨다. 그리고 몇 초 후, 교문 앞 과속방지턱에서 차체가 덜컹거리는 바람에 포크에 꽂혀 있던 음식이 바닥을 굴렀다.
"아!" "또 왜? 하아... 주워서 쓰레기 봉투 안에 넣어두렴."
아까워. 리라는 가장 큼지막했던 고기 조각을 한참이나 미련 넘치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결국 쓰레기 봉투 안에 던져넣는다.
"엄마. 있잖아요, 오늘 학교에서 자율활동 시간에 과자 파티 했는데요." "먹었어?" "네? 아니요." "잘했어. 그런데 그건 왜?" "안 먹었는데... 애들이, 왜 안 먹냐고. 재수 없다고." "그래? 어린 것들이 벌써부터 무슨. 그냥 무시해. 어울리지도 말고. 물든다."
물 드는 게 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게 아니란 말이야.
"얼른 먹어. 이따 배고프다고 하지 말고." "저도 그냥 친구들이랑 같은 거 먹으면 안 돼요?"
끼익. 마침 빨간불이라 정지한 참이었지만 타이밍이 나쁘다. 리라는 자연스레 그의 어머니가 화가 났다고 느낀다.
"...아니에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신호가 녹색으로 바뀐다. 타이어가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전진한다.
그 다음날은 조금 이르게 학교에 도착했다. 오늘은 아침조례 직후 조퇴증을 제출하고 출발해야 하는 날이라 조금이라도 학교에 더 있고 싶어 새벽에 나가는 아버지를 졸라 함께 나왔다. 하지만 막상 아무도 없는 교실에 들어와 있자니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무념무상으로 벽에 걸려있는 알록달록한 시간표만 노려본다.
—드륵.
그 때, 뒷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가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약간 동그란 얼굴에 갈색 단발머리를 단정히 자른 여자애. 옆자리 짝꿍인 한유빈이다.
"어? 리라야, 안녕! 오늘 일찍 왔네?" "으응. 어쩌다 보니까. 유빈이는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아... 사실 있잖아."
복숭아처럼 발그레해진 통통한 뺨을 보며 리라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비록 짝꿍이지만 그의 잦은 조퇴와 결석으로 말을 섞을 기회는 거의 없다시피 했었다. 하지만 이 애가 자신의 험담에 좀처럼 끼지 않고 때로는 대신 변명까지 해 주는 착한 심성을 가진 아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리라 어제 과자 못 먹었잖아. 그래서 서운했을까 봐." "아니야. 내가 안 먹은 건데." "있잖아, 지금 학교에 아무도 없다? 선생님도 아직 안 왔어."
그래서 뭐? 하는 말이 튀어나오기도 전에 뭔가 노란 것이 면전에 들이밀어진다. 해맑은 얼굴로 공을 차고 있는 바나나 모양 캐릭터가 그려진 과자 봉지.
"네 사물함에 몰래 넣어두려고 가져왔어. 근데 마침 만났으니까, 잘 됐다. 우리 이거 나눠먹자." "나 먹으면 안 돼." "아, 제발~ 리라야~ 어차피 지금 아무도 없잖아! 빨리 먹고 양치하면 아무도 모를걸? 응? 같이 먹자. 이거 되게 맛있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야."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던 리라는 그대로 시선을 돌려 복도 창문 너머를 바라본다. 확실히 인기척은 없다. 본격적인 등교 시간도 아직 많이 남았다. 최적의 환경, 완전범죄를 위한 최적의 조건. 어린아이의 인내심은 딱 거기까지였다.
"좋아." "아싸!"
나란히 앉아서 과자 봉지를 뜯자 달콤한 향기가 아직 차가운 새벽공기를 누그러뜨린다. 입 안에 침이 고였다.
"......맛있는 냄새." "그치? 자, 얼른 하나 먹어봐."
입술 앞까지 내밀어진 과자를 베어물자 단 맛이 뇌를 강타한다. 리라의 눈이 커졌다.
"맛있다!" "그치 그치! 더 먹어, 우리 둘이서 이거 다 먹어야 해. 우리끼리 먹은 거 들키면 안 되니까."
머뭇거리던 손길은 몇 번의 바삭바삭 소리가 지나간 다음부턴 꽤 대범해진다. 막 여섯번째 과자를 집을 즈음, 리라의 귀 안에 무언가가 쏙 들어왔다. 이어폰이다.
"이게 뭐야?" "자랑하고 싶어서. 봐라? 미X마우X 모양 MP3. 여기에 내가 좋아하는 노래 담아서 가지고 다닐 수 있어. 들어봐~"
동글동글한 모양의 기계를 몇번 매만지자 이어폰 속에서 신나는 멜로디가 전해져 오기 시작한다.
—힘을 내라고 말해줄래. 그 눈을 반짝여 날 일으켜줄래. 사람들은 모두 원하지, 더 빨리 더 많이, Oh 난 평범한 소녀인걸...
"노래 좋다!" "그치? 이거 요즘 내가 제일 많이 듣는 노래야. 가사가 엄~청 좋거든! 문제집 풀다가 힘들 때 들으면 완전 힘난다?"
리라랑 같이 듣고 싶었어. 그렇게 말하는 짝꿍의 눈을 리라는 가만히 응시한다. 이제야 제대로 보인다. 평균보다 약간 옅은 것 같은 검은색 눈동자가, 이 애의 눈이 흑진주를 닮았다는 걸.
"나중에 리라도 이 언니들처럼 노래하고 춤추고 할 거야?" "글쎄... 내가 이런 걸 할 수 있을까?" "못할 건 또 뭐야. 리라 노래 잘 하잖아. 음악 가창 시험 때 다 들었거든. 춤은 못 봤지만 그건 배우면 다 된대."
뭐야 그게~ 하고 웃으면 유빈은 리라의 손을 가만히 감싸쥔다.
"나중에 커서 너 텔레비전 나오면 내가 첫번째로 팬 하고 선물로 과자도 잔뜩 사 갈게. 그리고 가끔 오늘처럼 나랑 아침에 일찍 와서 과자 나눠먹자. 봤지? 이러면 아무한테도 안 들킨다니까!"
발랄한 목소리에 어쩐지 코끝이 찡해졌다.
"좋아, 그러자." "약속이야?" "응, 약속!"
작은 새끼손가락 두 개가 얽힌다. 약속 도장 사인 복사 코팅 다짐. 맹세! 하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달콤한 공기와 다정한 가사가 마음을 간지럽힌다. 평생을 가더라도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유빈이 성장한거 보여줘!!! 미리 싸인받은 유빈이가 쟤도 참 거물이 다됐네 하고서 미소짓다가 사실 유빈이도 인첨공사람이라 우연히 편의점에서 마주치고 에이 착각이겠지하고 서로 신경안쓰는 가슴아픔장면 넣어줘!! 그 다음 편의점에서 바나나킥 사는 리라를 보고 편돌이 유빈이가 "혹시... 리라씨 아니세요?"라고 묻는거 넣어줘!!!!!(적폐해석한가득)
>>225 그리움 없는 거 꽤 단호박인걸 이제 리라가 새끼고양이 그려서 동월이한테 올려주면 되는거지??? 다음 일상에서 한다 가보자고 그리고 사랑에 대한 태도 노래 가사 이게??? 무슨??? 동월이 뭐랄까... 어차피 나 없이 넌 더 행복할 수 있어⬅️언제나 이 느낌이 짙은거 같음 이렇게 확고한 데 무슨 이유가 있으려나
>>229 오 그런거구나 그럼 뽀요뽀요도 좋아!!!! 말랑볼따구 해줘!!!!헤헤헤
훈련으로 독백 쓰기 시작한 거 누구야 아주 훌륭해 하루에 최소 1독백 볼 수 있다 복지 ㄹㅈㄷ
오늘은 수색을 하루 쉬었다. 아무래도 너무 자주 나가면 몸이 상하니까. 하루 정도는 날잡고 쉬운게 좋은데...
" 이것도 갈아끼워야 하는거였어? "
괴이부실 안에 있는 지침서를 투덜거리며 확인하고 있었다. 아까 낮에 해둘걸.... 일단 오염된 곳이 없는지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뭐, 오염됐을 리가 없지. 부실 안에 있는 지침서는 거의 오염되는 일이 없다고 한다. 목화고가 안전구역이라서 그렇다나.
아무튼 오염되진 않았지만 혹시 모르니 아침에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지침서를 빼놓고, 새 지침서를 파일철에 끼워넣는다. 원래 지침서에 쓰여있던 낙서들이 눈에 띈다. 지침서든 일지든, 부원들은 거기에 낙서하는걸 좋아한다. 지혁이가 동월에게도 권하는 바람에 동월마저 맛을 들여버렸다지...
" ...... "
무의식적으로 시계를 봤는데 웬걸, 시계가 12시 59분이다. 지침서의 내용으로 인해 1시부터는 꼼짝없이 1시간은 여기 박혀있어야 하는데. 그런 지루한 일을 할 리 없는 동월은 재빨리 일어나서 문고리를 잡았다. 그와 동시에...
저벅,
하는 발자국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온다. 동월은 문고리를 붙잡은 손 그대로 얼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아직 1시 전인데? 시계가 잘못된거면 어떡하지? 아날로그든 디지털이든 1분정도의 오차는 있을 수 있잖아. 여기서 문을 열었다가 아무 준비 없이 빨려들어가면? 장담 못한다. 실종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233 그야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동월이 고양이든 강아지든 좋아해서 한번 올려주면 행복한 미소를 지을것임...!!!!!!!!!!!! 음, 그건, 음!!!!!!!!!!! 딱히 비설은 아닌데!!!!!!!!!! 쉽게 알려주긴 좀 재미 없을것 같고!!!!!!!!!! 흐으으음!!!!!!!!!!! (고민) 사실 내용도 재미없는거라!!!!!!!!!! 안알리는 편이 더 재밌지 않나 싶고!!!!!!!!!!!
>>235 동월이는 신경 안쓰겠지만 월월이 위에 있는 고양이는 잘 피해서 올려주셔야 합니다!!!!!!!!!!!!!!!!!!!! (다급) 그리움은 없지만!!!!!!!!!!!!! 태도는 가질 수 있지요!!!!!!!!!!!! 핫하하!!!!!!!!!!!! (??) 궁금하면 현질하십셔!!!!!!!!!!!!!!!!!!! (????)
>>244 으악 으 아 악 살려주세요!!!!!!!!! (도망) 그치만 진짜 들으면 '에이 뭐야 별거 아니네' 이런 느낌이고!?!?!?!!!!!! 알아도 뭐 상관 없는 내용이고?!?!!!?!!?! 근데 또 그리움에 대한 얘기는 못해드림!!!!!!!!!!!!! (땅파고 숨기)
>>246 복귀 축하드립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괴이 들어가는거 좋긴 한데?!!?!?!! 그때쯤이면 레벨4인 사람도 많이 나올 것 같은데 괴이들 그냥 썰고다니는거 아닐까 싶고...?!?!?!?!?!?!? 사람 많으니까 냅다 5레벨 괴이로 진입했다가 동월주가 버틸 수 있을까 싶고!?!?!?!!!!! 아무튼 지금은 생각이 좀 많은 편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이 한 존재를 기억속에서 지워버렸음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면 그 존재의 가치는 도대체 무엇이었는가.
"하트 에이스."
내게 단 하나 소원이 있다면 잊히고 싶지 않다.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부려도 용서 받을 수 있다면, 어느 사람의 근본을 이루는 중요한 기억으로 남고 싶다. 나를 잊어버린다면 흔들려버리도록. 이기적이고 추악하 소망이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다. 고개를 들고 앞을 보자 흥분한 낯의 사람들이 보였다.
"..."
축하한다는 목소리, 힘냈구나 하는 격려, 그것들을 기억 속 아주 깊숙이 집어넣었다. 삐걱거리는 듯한 입꼬리를 끌어올려서 웃었다. 어제의 악몽이-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꿈이. 나라는 존재가 사그라졌음에도 변화 없는 만인에 대한 흉몽이 아직도 내 발목을 잡고 깨물고 잘근잘근 씹어먹는 듯 하지만, 그럼에도 웃었다.
알고 있다. 이러지 않으면 모두가 나를 잊고 싶어 할 거야 모두가 그랬잖아. 어두침침하고표정없고무슨생각을하는지도모를음울한무채색멍투성이머저리를기억하고싶어하는사람따위 "고마워요!"
세상에 귀여워. 어디서 이런 천사가 온거지? 역시 새로 동생을 입양할 때가 된건가...으앗 아니야 정신차려! 감정의 변화가 동글동글한 얼굴에 빤히 보이는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것은 멘탈이 좋지 않을때 꽤나 심신의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익히면서 아영은 이번에는 저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누르니라 애써야했다.
"희야라고 하는군요. 제 이름은 담아영이라고 해요." 말투까지 완전 애기잖아. 집의 동생들은 이제 고학년이라 이런 모습을 이제는 볼 수가 없으니 세월의 흐름에 바래진 기억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어쩜 좋아. 이렇게 애기가 어쩌다가 여기까지...는, 이름이 안희야라고 했었나.
"글쎄요. 저는 좋은 감정은 다 같이 나눌수록 커진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다른 친구들과 얘기하여 희야가 기쁘다면 저는 더 좋을 것 같아요." 어린 아이의 손을 부드럽게 잡는다. 차다. 미약하게 남은 체온의 온기와 그보다 더 강한 한기가 잡은 손을 타고 흘러들어온다. 물장난이라도 한 것인지 얼었다가 살짝 녹은 것 같은 아이의 손에서 아영은 위화감을 느꼈다. 안희야라는 이름과 찬 물이 없는 곳에서 금방이라도 찬 것을 만진듯 얼어붙은 손, 모든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 인공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그래, 방금 전까지 쫓은 샹그릴라 복용자의 능력으로 인한 방향감각 상실처럼.
아, 그러고보니 나도 이상하게 진실만을 얘기하게 되었었지. 그렇다면 뜬금없이 어린아이가 되는 것도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 희야 천사님은 왜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이 수상쩍고 귀여운 어린친구(가 되어버린 선배)와 함께 간단한 상황문답이나 하며 천천히 부실로 돌아가볼까 싶었다. 이미 다 커버린 이들이 저어할 얘기에서 오히려 어린아이들이 날카롭게 집어내는 경우도 많으니 말이다.
삼단봉도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아이한테 누구 기절시킬 정도로 세게 휘두를 실력이 있을리가 없다. 이전에 상대했던 검정옷의 머리를 삼단봉으로 후려갈기는 상상을 해보지만, 이내 손으로 뒤통수를 부여잡고 섬뜩한 얼굴로 뒤돌아보는 검정옷이 예상되어 손사래를 치며 부정한다.
그렇지만 몰래 하는 작전이 성공한다면야 여로의 말대로 추켜세워질 수도 있다. 어떻게 해서 여로와 힘을 합쳐서 샹들리에(...) 주요 거래 현장을 적발해서 블랙크로우까지 일망타진을 하고, 부장, 부부장 그리고 다른 저지먼트 부원들까지 환호하며 우쭐함이 천장을 뚫을 듯한 상상까지. 들뜬 마음에 삼단봉을 꺼내 한손으로 휘리리릭 돌리며 하늘을 향해 올린다.
"크흡. 맞습니다. 대신 수틀리면 둘다 도망치기입니다!"
누구 기절도 제대로 못시키는 사람이 뭘 같이하겠다고 자신감이 생기는지는 몰라도 아주 신이 난 상태다. 그러는 사이에 순찰 코스는 점점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이경이 레벨2 축하해요! 뒤늦게 갱신해봅니다아아아아
>>0 담당 연구원인 '그'를 만나 돌아오는 날에 아영은 길목의 궁상맞게 놓인 벤치에 걸터앉아 붙박힌듯 움직이지 않는 천구를 바라보는 새로운 생활 루틴을 가지게 되었다. 분명 사면이 바다로 둘러있지 않는 엄연한 대륙지역의 영토 이건만 사람이 두른 인공적인 벽으로 섬 아닌 섬이 되어버린 인첨공의 하늘도 밖의 하늘과는 크게 다르지 않아 여전히 검푸르고 깊었으며 때때로 한없이 작은 별빛으로 반짝였다.
하늘은 깊고 검어 무궁한 비밀로 가득찬 그 속을 내보이지 않았다. 서늘한 초봄의 바람이 시리게 뺨을 휩슬고 지나간다. 푸르른 반사광으로 물들어 더욱 더 낯선 빛으로 물든 하얗게 빠진 백금발이 가닥가닥 휘날린다. 하늘을 마주보는 자신의 눈도 바뀐 호박빛이 아닌 검푸른 빛과 섞여 옛날의 갈색과 닮아있을거라 짐작해보며 아영은 다리를 쭉 펴고 벤치의 등받이에 기대었다. 레벨 0의 절망과 새로 생긴 희망과 그리고 샹그리아. 갑작스럽게 삶에 등장한 많은 것들을 헤아려 보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명료하지 않아 멍하게 흐린 구름이 끼인 들처럼 멀었다.
아, "나는 언젠가는 답을 발견할 수 있을까." 나는 부조리가 싫어. 누군가를 함부러 짓밟는 난폭하고 조야한 힘의 논리도 좋아하지 않아. 하지만 지금 당장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래
"여전히 똑같네. 그치?" 눈까지 접으면서 생긋 누군가를 돌아보듯 웃어본다.
'그래도 여전히 닿을 수 있는 곳까지는 걸어가볼거야. 일단 먹고 살아야 하니까. 나는 네 말대로 구차하기 짝이 없어서, 생존이 먼저이고 아무래도 좋을 정의는 그 다음인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너도 잘 지냈으면 좋겠네." 희미하게 흐린 빛무리가 모여 둥그런 원을 그리고 빙글빙글 작은 천구에 박힌 별이 되어 돌아가다 흩어진다.
Q. 그거 왜 그랬어요? A. 뭐. Q. 그 있잖아요 그거. 사랑에 대한 태도 노래 가사. A. 나 참. 그게 왜 궁금해?
.....별 거 없는데. 진짜로. 그야, 그렇잖아? 난 저지먼트 말고도 괴이 수색을 하고있어. 저지먼트가 안전한 활동을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난 두 배로 목숨을 걸고 있는 셈이지. 항상 실종당하면 구조된다는 식으로 말하곤 있는데,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높을 것 같아?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물론 구조하러 가는 사람도. 내가 지금까지 3번이나 구조당한건 기적이었어. 마지막에 자력으로 탈출한 그것도. 어떻게 자력으로 탈출했냐고? .........죽고싶지 않았으니까. 다른 부원들이 내 구조를 포기한건 알고있었어. 그래도 살고 싶었으니까. 아무튼. 그런거야. 난 내 목숨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수색이란건 항상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사랑을 하라고? 하, 그게 말이야? 그래서 그런거야. 그 사람이 누가 되건간에, 그 사람은 내가 없는편이 더 행복해. 사랑하는 사람이 매일을 목숨걸고 살아가고 있다면, 넌 기분이 어떨 것 같아? .......그러니까......... 필요 없다고............
그러니까 뭐, 오너입으로 얘기 해드리자면 동월이한테 사랑이란건 덕질 같은겁니다!!!!!!!!! 그 노래의 가사를 택한것도 비슷한 이유!!!!!!!!!!!! 사랑을 하면 열정적으로 사랑을 보여줄 순 있지만,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넌 나 없이 더 행복할 수 있다' 라고 하는거구요!!!!!!!!!!!
레벨 3가 되었지만 훈련을 게을리 할 순 없었다. 한번 잘못 맞추면 맞은 사람은 그대로 죽을 수도 있는 능력이 되었으니 책임감이 무거워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쨌든 훈련이나 하려고 하던 찰나, 길거리에서 누군가 나눠주는 전단지를 봤다.
'사격장 오픈! 오픈 기념 할인 이벤트!'
청윤은 이 전단지를 보고 머리나 식힐 겸 사격장에 가보기로 했다. 일단 사격장에서 정확히 어떤 사격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슬슬 중장거리 저격을 위한 연습도 해야했고 솔직히 그동한 해온 연습의 성과가 손가락이 아닌 다른 것으로 사격해도 먹힐지도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사격장은 AR 사격장이었다. 앞에 있는 적외선 총을 받아서 쏘면 홀로그램으로 총알이 나가 표적을 맞추는 시스템이었다. 15발을 쏴서 3점, 5점, 10점 타깃을 맞춰 합계 100점을 따면 인형을 선물로 받을 수 있는 규칙이었다. 청윤은 전단지를 보고 왔다며 할인된 가격으로 계산한 뒤 사격장에 들어가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어디서 본 듯한 곱슬머리를 보고 청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저 얼굴은 분명.. 아영이었지? 같이 2조였는데 나랑 동갑이라 기억에 좀 남네.'
안면식은 있는 사이라 다가가 간단히 인사했다.
"안녕? 아영..맞지? 전에 같은 조였잖아. 그 조종당하던 월광고 저지먼트도 같이 막았고.."
한양은 자기자신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다른 이들도 신뢰할 수 없고, 반대로 신뢰 받지도 못한다고 생각하였다. 이 말을 하고 싶었지만 침울하거나 정말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은 아닌 걸로 보이기에 말을 아꼈다.
"그래야 우리들도 편하죠-"
하지만 이걸 조금 비뚤어진 시선으로 본다면, 아무 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슬프게도 이런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아니고.
"최근 3학구의 저지먼트들의 단속이 늘어났으니깐요. 정말로 소강상태이거나, 더 은밀한 방법으로 바뀌었겠죠."
정말 어떤 이유로 거래가 보이지 않는지는 모른다. 전자라면 좋은 일이고, 후자라면 우리들의 순찰이 녀석들의 수법을 더 발전시켰다..라고 보면 될까. 하지만 이게 우리 탓이라는 건 아니다. 어차피 해야 될 단속이다. 녀석들의 행동이 더 치밀해진다는 것이 단속을 막을 이유는 안 된다. 더 치밀해지면 우리도 더 치밀해지면 되니깐.
와아. 귀여운 여자애라면 마땅히 놓쳐서는 안될 이벤트일 것이다. 무려 애착인형을 공!짜!로! 얻을 이벤트~ 당연히 참가해야지. 작게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도착한 아영은 요리조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생김새는 아쉽게도 바깥의 저격장과 비슷한 게 진짜로 그냥 저격장인 모양이다. 그래도 국내 초능력자가 가장 많은 곳이니 뭔가 특별한 장치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앗! 안녕.안녕!" 정신없이 둘러보던 와중에 자신의 이름이 들려오져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본다. 이내 익숙한 얼굴을 확인하자 놀람은 반가움으로 순식간에 바뀐다.
>>0 오늘도 분명 그냥 평범한 날이어야 했을탠데.. 그냥 인적 드문 벤치에 앉아 있었더니만 주변에 갑자기 불량배들이, 정확힌 스킬아웃들이 5명 정도 청윤을 둘러싸며 모여들었다.
"..무슨일이시죠?"
"볼일이 좀 있어서 말야. 그 백색광귀냐 뭐냐 그런 악명이 있는 애를 쓰러트리면 그것만한 명성이 없지 않겠어? 근데 생각보다 쉽겠네. 이렇게 귀여운 애가.."
이놈의 별명이 또 말썽을 부린 모양이다. 불량배는 청윤의 볼에 손가락을 가져다대려고 했다. 그러자 청윤은 손가락을 잡으며 막았다.
"이 자식이 귀엽게 봐줬더니만!"
불량배는 손가락을 빼곤 다짜고짜 주먹을 날렸다. 청윤은 아래로 피하곤 자신에게 주먹을 날린 불량배에게 등을 기댄 뒤 반대편 불량배의 어깨에 능력을 맞췄다.
"으악!"
어깨에 맞은 불량배는 뒤로 나가떨어졌다. 청윤은 직후 팔꿈치로 불량배의 명치를 친 후 자신의 우측에 있던 불량배 3명을 향해 탄알을 발사했다. 다리를 맞은 3명도 넘어졌고 마지막으로 처음으로 자신에게 주먹을 날렸던 불량배에게 손가락을 겨누었다.
"자..잠깐만.. 좋게 좋게 으악!"
청윤은 불량배를 가만히 응시하더니 그 불량배의 발에 능력을 썼다. 불량배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 자리는 처참했다. 불량배들은 다리나 어깨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으며 고통에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청윤은 잠시 이 광경을 바라보더니 호흡이 가빠지곤 벤치에 주저 앉았다. 그러곤 애써 시선을 피하며 저들을 향해 손가락을 겨누곤 저지먼트 부실에 전화를 걸었다.
이용 가치를 다해 버려진 것은 그것대로의 매력이 있다. 개발 문제로 입주를 앞두고 계획이 중단된 오피스텔 단지는 외벽에 각종 그래피티로 새로운 옷을 입고 헐어버린 내부 속에서 위험한 것을 안전히 품어주었으며, 유행이 지나 고철이 된 안드로이드는 서로 존재하지 않는 온기를 찾듯 서로의 몸이 이리 얽히고설켜 늘어져 새로운 작품이 되었다. 신소재로 이루어져야 할 바닥은 이리저리 갈라지고 먼지만이 쌓였지만 그마저도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됐고, 근처에 놓인 건축 자재는 훌륭한 모닥불용 땔감이 되어 제 몸을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타인의 눈에는 애물단지로 비치겠지만 그들의 눈에는 달랐다. 바닥 그림자에서만 기어다니는 자들만이 알 수 있는 동질감이 있었고, 이따금 두려울 적이면 이용 가치 없는 것 또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는 동기가 됐다. 그들은 제각기 타인에게 새로운 삶을 부여할 수 있었음에 충만한 기쁨을 누렸다. 하나씩 수가 사라지고 새로운 얼굴로 채워진들 그건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얼굴을 가려 누가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늘 다른 그들은 항상 폐허 더미에서 같은 꿈을 꾸었다.
감히 누가 그랬는가, 잠자리를 함께 할 수 있어도 꿈은 같이 꿀 수 없다고. 그들은 달랐다. 잠자리가 달라도 꿈은 같았고, 같아도 다를 바 없었다. 미약한 전력 실린 여름의 눅눅한 바람이 불었다. 전류에 센서가 반응해 안드로이드 한 대에 약 3초간의 삶이 부여되어 엉킨 몸 사이에서 몸부림치다 늘어지는 것을 구경하던 무리의 중심이 고개를 들었다.
"북서쪽으로."
안드로이드가 꿈을 꾸는 바람이 부는 곳으로. 얼굴을 가린 일원 하나가 다가와 종이 가방을 쥐고 고개를 숙였다. 손을 얹고 눈을 감으면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따스한 손길이 함께 하기를." "함께 하기를." "눈길에 닿을 만큼 가치 있기를." "가치 있기를." "그들의 손에 고통받지 않기를." "설령 받더라도 고통은 단 한 번이기를."
손을 떼고 눈을 마주쳤다. 우리는 모두 같은 꿈을 꾸니, 보라. 저 너머의 안드로이드는 꿈을 꿀 수 없다. 우리는 저 미욱한 생명의 발버둥처럼 살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니 우리는……. 코에서 흐르는 피를 대충 훔쳐내며 마지막 문장을 읊었다.
큰 방에 밖으로 나가는 문이 하나 있었고, 작은 책장 여러 개와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탁자 여러 개, 마찬가지로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매트리스 여러 개. 이불과 배게는 낡긴 했지만 못 쓸 정도는 아니었다. 평소에는 하는 것 없이 자유롭게 있었다. 새 것은 아니었지만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방 밖에 마련된 작은 놀이터에서 모래로 두꺼비집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가만히 누워 있기도 하고, 낡은 책들을 읽기도 하고, 가끔 틀어주는 TV를 보기도 하고.
"전화한 게 너니 꼬마야?" "네, 이 누나가 여기에 전화하라고 해서..."
처음 그곳에 갔을 땐,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있진 않았다. 거의 다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것 같다, 그 곳에서 나는 어린 축이었다.
"흐음... 언제부터 이랬어?" "10분 정도 됐어요, 누나 괜찮은 거에요?" "숨은 쉬고 있네, 보니까 피도 멎었고, ...기절한 녀석 손아귀가 뭐 이리 단단해, 상처를 못 보겠네."
가끔 언니들과 오빠들에게 들어올려지기도 했다. 대부분은 내가 부탁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아이들이 늘었다, 내가 직접 데려온 아이도 있었다. 언니 오빠들은 하나 둘씩 떠났고, 그만큼 그 자리는 내가 채우게 됐다. 여전히 남아 있는 언니 오빠도 있었지만, 이미 아이들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읏차, 그나저나 넌 어쩐다... 갈 데는 있어?" "...모르겠어요." "어쩐담, 내가 시설 하나 알려줄 테니까 거기로 갈래?"
"아! 왜 이래 이 자식, 기절한 녀석이 왜 손목을 붙잡고 난리야." "...에이 씨, 꼬마야, 일단 따라와."
생각해 보면, 어른들은 거의 자리에 없었다, 가끔씩 찾아와 음식과 옷가지를 주고 언니 오빠를 데려갔다. 그리곤 한참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았다.
"문열어! 빨리!" "아 뭠까, 그렇게 소리 안 쳐도 다 들림...어?" "뭘 쳐다보고 있냐, 빨리 안 받을래?"
한 번은 다른 곳에 있던 아이들과 시비가 붙어서, 우리 쪽 아이들이 다쳐 돌아왔다. 그 날 저녁에, 나는 조용히 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사과를 받았다. 그 아이들은 우리보다 좁고 나쁜 곳에서 지냈다, 그래서 같이 살기로 했다.
"아니, 이 피는 뭐야...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에요." "이 꼬맹이는 누굼까?" "몰라, 이 애가 연락해서 찾아간 거야, 저기 앉혀놓고 뭐 좀 먹여."
겨울이 됐다. 오랫동안 어른들이 찾아오지 않아서, 방이 추워졌다. 옷가지나 낡은 담요로 몸을 감싸고 바짝 붙어 있었다. 몇 번인가, 바깥에서 그 어른들을 본 적이 있던 나는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얼어죽기 직전에 어른을 만났다. 어른은 그럴 줄 몰랐다며 나를 데리고 돌아가 아이들을 돌봐 줬다, 들어 보니 전기도 끊기고, 가스도 나오지 않게 되었으니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이거 전기 엄청 잡아먹는단 말야, 발전기 고장나지만 않으면 다행이겠네."
결정은 내 몫이어서, 나는 가겠다고 했다. 어른이 또 다시 찾아오지 않을지 몰라서, 아이들도, 나도 더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어서. 언니 오빠들이 갔던 곳으로 가는 걸까. 나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에서, 우리는 새 옷을 받았다, 특이한 무늬가 가슴팍에 작게 새겨진 옷. 나는 처음엔 그게 신기한 나무 무늬라고만 생각했는데, 나무가 아니라고 했다, 나무와 함께 자라지만, 나무는 아닌.
"야, 일어나!" "안 들리냐? 그만 일어나 임마." "......"
귓가를 때리는 목소리에 눈을 느릿하게 뜨면, 매트리스 위다. 몸을 일으켜 보면 옆구리가 답답하고, 무심코 만져 본 귓볼은 멀쩡하다. 감각은 좀 없어진 거 같지만. 시선을 돌려 보면 신체재건용 의료기기가 보인다. 전기를 너무 많이 잡아먹고, 결과물은 영 시원찮은 결함품.
어느새 땅거미가 내려앉은 바깥이 캄캄하고, 전력을 낭비했기 때문인지 실내도 침침하다.
"...그 애는." "눈 뜨자마자 그게 중요하냐? 저기서 잔다."
가리키는 대로 눈을 돌려 보면 소파에 스카잔을 덮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꼬마. 그러고 보니 스카잔이 없다.
셔츠를 벗고 드러낸 배를 쳐다보니, 찢겼던 자국이 확실히 남아, 손으로 쓸어 보면 도돌거리는 느낌이 있다. 등 쪽으로 살짝 만져 봐도 마찬가지, 애초 관통상에 가까우니 당연한가.
"...고마워, 늦었으면 눈 못 떴겠지." "이게... 에휴, 내가 뭐라고 하겠냐, 나 나간다. 먹을거 아무거나 찾아먹어."
별다른 대답 없이, 상처를 매만지고 있는 랑을 뒤로 하고 가죽자켓을 입은 여성이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자, 순간적으로 다시 뇌리를 스치는 무언가. 컨테이너 건물 하나인가, 컨테이너 바깥에 쓰인 번호는...
"9번에 있는 녀석들, 돌아오라고 해." "응? 왜, 거기 요즘 상황 좋은데, 덕분에 바깥이랑 연결할 길도 만들었고..."
물수건으로 흉터 부근을 닦아내며 말을 잇는다.
"됐으니까, 돌아오라고 해, 위험하니까." "...너, 뭐 있구나. 하아... 알겠어, 대신에 아무 일 없으면 알아서 해라, 이유도 모르고 이렇게 하면 나 힘들어져."
대답은 하지 않는다. 쯧, 하는 소리와 함께 여성이 문 너머로 사라진다. "9번 철수해, 이유는 묻지 말고, 하아... 알아 아는데..."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를 뒤로 하고, 문이 무게에 밀려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상처를 전부 닦아낸 뒤에야, 캐비닛에서 와이셔츠 대신 라운드 티 하나를 꺼내 입는다. 연꽃 무늬의 스카잔은 이미 아이가 덮고 있었기에, 잠시 아이를 쳐다보던 랑은 늑대가 새겨진 스카잔을 꺼내들었다. 코뿔소 완장 역시 연꽃무늬 스카잔 안에 있어서, 그 대신 올가미가 그려진 완장을 꺼내들고.
희야주 다녀와 희야 분위기 어떡함... 나 사실 떡밥 잡는 능력 좀 부족해서 희야거는 천천히 해석중인데 일단 사이비종교랑 연관된 건 거의 맞는 거 같고... 다만 데 마레에 기거하고 있는데 아직도 교주...?? 인 이유는 모르겠다 이거 내가 중간에 놓친듯 희야위키털러감
랑이거... 일단 랑주에게 감사합니다 우리애 살았다 백만년감수 흉터 어떡할거야 역시 나무? 놈들 담가버려야 시점 헷갈려서 다시 읽었는데 대사는 현시점이고 중간중간 묘사는 과거인가보구나... 두번 읽고 랑이의 기억이라고 결론내리긴 했는데 흐음 헷갈린다 마지막에 스카잔이랑 완장 바뀌는 거 느낌 기묘하네 랑주가 전에 저지먼트 랑이/스킬아웃 랑이 구분되게 하고? 싶다 한 거 봤었는데 새삼 그게 여기서 잘 느껴지고
속 여전히 안좋지만 개쩌는 독백들이 올라왔는데 어떻게 반응 안함? 글연성의 축복이 끝이 없네 다들 안녕 어서오고 하루 고생 많았어
북서쪽과 크툴루를 검색해보니 광기의 산맥이 나오네요. 거기서 북서 지역 탐사반이 올드 원을 발굴하고 해부했다가 올드 원에게 죽어나가고 올드 원은 번식중인 쇼거스들에게 죽어나가는 스토리라는데.. 쇼거스는 올드 원의 노예였다가 소설 시점에선 자의식을 가지고 반란을 일으킨 종족이라 하고..
희야주나 랑주나 동월주나 뭔가 전설적인? 이야기들을 소재로 완전 새로운 설정을 창작해서 풀어나가는 거 너무 흥미롭고 찾아보면서 추리하는 재미도 있어서 좋네... 물론 다른 레더들의 비설도 너무 좋아 떡밥을 서치해서 찾을 수 있는 이야기만의 재미가 있다면 온전히 독창적인 이야기는 신작을 그때그때 까보는 두근두근 재미가 있다
분홍빛 벗나무에 분홍색 꽃이 가득 피며, 아름다움을 뽐내는 시기가 찾아오나 그 시기가 끝나면 화려했던 꽃잎은 하늘하늘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제 아무리 아름다움 풍경도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나, 그 사라져버리는 모습 또한 어찌나 아름다운지 모를 일이었다. 학교 근처에 있는 작은 공원에 서 있는 세은은 제앞의 벗나무를 가만히 바라봤다. 예쁘다. 예쁘네. 조용히 중얼거리면서 그녀는 그 풍경을 조용히 눈에 담았다. 하얀빛에 가까운 연한 분홍빛이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떨어지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그럼에도 상당히 예쁘게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인첨공에 있는 수많은 청소로봇들이 올해도 고생 좀 하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세은은 가만히 고개를 올려 나무를 바라봤다.
"......"
특별히 무슨 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혼자 있을 때 굳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편은 아니었다. 다른 이와 함께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으나 이렇게 혼자 조용히 보는 것 또한 나쁘지 않았다. 제 머리카락에 살며시 묻어나오는 분홍색 꽃잎을 천천히 털어내면서 그녀는 손을 뻗어 꽃잎을 살며시 잡았다. 이렇게 잡기 쉬운데, 왜 어릴 때는 그렇게 잡을 수 없었는지.
"응?"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조용히 꽃잎을 지나가며 그녀의 귓가에 울렸다. 누가 오는 것일까. 딱히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녀는 살며시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야 누가 있는지 궁금했으니까. 제가 아는 이인지, 아니면 모르는 이인지.
수강: 쀼장님!!!! 부장님이 위험해요!!! 아, 아니! 큰일이에요! 완전 큰일난 것 같아요!!
한양: 진정하고 결론부터 먼저 말해봐
수강: 부장님이 「괜찮아.」라면서 퍼스트 클래스를 인천공 앞바다에 빠뜨렸어요!
한양: 미안, 중간 과정부터 다시 말해줘.
리라 : 조금 뜬금없는데, 개 품종 이름을 외치면 필살기 이름 같지 않아? "아프간하운드!" 같은 거.
애린: 웨스트 아일랜드 화이트 테리어 같은 검까?
낙조 : 시바!!!!!(*시바견)
리라: (동공지진)
한양: 축제 끝나고 뒷풀이할 음식들 살 겸 피자집에 갔을 때 "가방 놓고 가도 괜찮을까?" 라고 물었더니...
희야: 그건 뭐, 인간들을 믿어봐요.
혜우: 그래그래, 인간들을 믿자
라고 말하곤 주문하러 자리에서 일어나 갔는데, 신의 시종들이라도 되는 줄 알았다
여로: 만원 전철에서 소예가 '죄송합니다 저희 내릴게요~'라고 해도 주변이 꼼짝도 안해서 못 나가고 뒤에 있던 부부장 선배도 '죄송한데 저희 내린다구요'했지만 누구도 움직이지 않길래 내가 '죄송합니다, 토합니다' 라고 했더니 홍해의 기적이 일어났다. 듣고 있었구만.
류화: 낙조. Say가 뭐지?
낙조: 말하다.
류화: Good은?
낙조: 좋은.
류화: Bye는?
낙조: 가라.
류화: 그럼 Say good bye는?
낙조: 좋은 말 할때 가라.
류화: ...?
낙조: 시속 100km로 달리는 기차에서 롹킹댄스를 추면 어떻게 될까!
아영: 혼나.
랑: 아까부터 왜 그렇게 웃어?
철현: 널 보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서...
랑: 내가 우스워?
철현: 에
은우: 지난번에 부원들 대화를 얼핏 들었는데,
혜승: 가는 말이 고우면 얕보더라.
이레: 맞아요. 티끌은 모아봤자 티끌이구요.
청윤: 감사의 표시는 돈으로 하는 게 최고고.
내가 부장으로써 모범을 잘못 보인 걸까..
아지: 부실에서 물 마시다가 혜우 선배와 희야 선배가~
혜우: 우리 몸은 70%가 수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이는 90% 이상이 물이라잖아? 그러니까 우린 말하자면 그냥 탈수 증세가 있는 오이들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야.
희야: 섭취한 소금과 알코올의 양을 감안하면 탈수증세가 있는 피클에 더 가깝지 않을까요?
라고 대화하는 걸 들은 다음부터 모든 사람들이 모두 오이로 보이기 시작했어~ 어떡하면 좋지~?
~모카고 코뿔소 3학년 각자의 발화법~
은우: 좀 조용히 해 주시겠어요?
한양: 소리를 조금만 낮춰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혜성: 소리를 조금만 낮춰 주시면 안 될까요?
태진: 좀 조용히 해줄래?! 허리를 뒤로 접어버리기 전에.
태진: 노트북 비밀번호를 잊어먹어서 힌트를 봤더니 ‘비밀번호를 까먹다니 바보 아니야?’ 라고 써져있길래 ‘죽여버린다’라고 입력했더니 정답이었다.
한양: 문을 열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도록 고양이 소리가 나게 해놨어
혜성: 그거 범인 한양이야!? 문에서 소리가 날 때마다 "고양이가 왔나?!゜+.(・∀・≡・∀・)゜+.゜" 하고 기대했단 말이야!!
은우: 여로에게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깨워줘." 라고 부탁하고 부실에서 잠깐 자면 꼭 깨워주긴 하는데..
"부장님! 전치 2주 이상 부상을 입혔다고 경위서가 왔어요~" "부장님, 지금 제 앞에서 무방비하게 자는 건가요? 최면 하나 걸었는데, 뭔지 궁금해요?" "어? 월광고다." "죽지만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 "혜우 선배- 저기 2주 넘는 부상 입은 거 같은 사람이 있어요~"
라는 거짓말인지 사실인지 알 수 없는 일인극으로 깨워서 무서웠어.
여로: 이거 마셔.
정하: 이게 뭔데?
여로: ? 콜라잖아.
정하: 너라면 콜라인 척 하고 커피 줄 것 같아서.
여로: 아니야, 마셔봐.
정하: 이자식이이거한약이잖아 야
동 월: 아무도 믿어주진 않겠지만, 얼마 전에 골목에서 경진이 고양이들에게 포위당한 적이 있어...
후배의 상처를 살피고 반창고를 붙히는 내내, 혜성은 별다른 말을 덧붙히거나 얹지 않고 있었다. 이 무모해보이지만 충분히 용감해보이는 후배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함부로 말을 꺼내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혜성의 성격의 나쁜 점이었다. 그럴 의도 없이, 정말 무의식적으로 선을 그어두는 버릇.
"내가 얼굴이랑 이름을 알고 있는 애들 중에서는 그래. 아마..몇명 더 있는 것도 같은데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혹시 다른 사람이 필요하면 다른 애들한테 물어봐."
의자를 밀어두고 정확하게 붕대를 감기 위해 무릎을 꿇고 앉으며 혜성은 아주 잠깐 곤란한 듯 고개를 기우뚱하며 후배의 말에 대답했다. 정말로 찾아갈지 어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진짜로 찾아가려나? 이거 부부장한테 이야기도 안했는데 괜찮으려나.
"그-렇지. 다리는 좀 어때? 한번 움직여볼래? 불편하다면 붕대 감아줄테니까 바로 병원으로 가보자."
후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혜성은 먼저 후배의 발목에 붙혀놨던 아이스팩을 떼어내며 물었다. 발목을 움직이면 잠시 그걸 보고 있던 혜성의 표정이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아! 하는 표정이 되었다.
"치료하느냐고 신경 못썼는데 후배님. 아까 무슨 말 하려다가 못하지 않았어? 중요한 말이었다면 지금 해도 돼."
/늦게 봐서 죄송합니다 아예 스레를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고..쳐낼 건 쳐내고 적당히 답레줘!
꽃 피는 계절이 온다 한들 모두에게 봄이 오지는 않았다. 올해로 열 두 번째 맞는 봄은 지난해, 지지난해와 다를게 없었다. 하늘에서 눈송이 대신 꽃잎이 흩날려도 세상은 그대로였다. 늘 지독한 추위와 한기 뿐이었다.
기계와 로봇 밖에 없을 것 같은 인첨공이지만 들여다보면 의외로 거리 미화가 잘 된 도시였다. 누군가는 복지라고 하지만, 그만큼 관리를 해야 그들의 연구 혹은 목적에 부합할 테니 잘 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공원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크기는 작지만 적당히 초목을 배치해 시기 적절한 풍경을 만들어내게끔 꾸민 곳이었다. 그곳에서 세은이 홀로 벚꽃 감상을 하고 있을 때, '그것'이 찾아왔다.
컁!
바닥에 깔린 분홍 꽃잎 위를 호도도 달려온 그것은 강아지였다. 아직 한 살도 되지 않은 듯 작고 까만 단모종의 강아지. 들개는 아닌 것으로 보이는게, 강아지는 조그만 몸에 예쁜 셔츠 같은 옷을 입고 목에도 금색 팬던트가 달린 목줄을 하고 있었다. 쪼그만 몸으로 세은의 옆에 당당히 서 있던 강아지는 이내 뽀짝하게 짖어댔다.
컁1 컁컁!
세은을 경계해서 보다 괜히 알짱대는 느낌이 강했다. 그렇다고 달려들지는 않으니 교육을 잘 시킨 것 같기도 했다. 강아지가 쪼그만 몸으로 위협적인 척 바닥의 꽃잎을 긁어대기 시작했을 때, 강아지가 왔던 방향에서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아메- 아메야!"
아마도 강아지 이름인 듯한 단어를 부르며 뛰어온 누군가는 세은을 보고 멈칫했다. 단정한 교복 위에 후드 집업을 걸치고, 손에는 작은 가방 같은 걸 든 그 사람은, 작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 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누군가가 세은에게 말했다.
"안...녕. 이런데서 보네. ...세은아."
3년, 아니 2년이었을까. 너무나 오랜만에 입에 담아보는 이름이었다. 세은에게 짖어대던 강아지, 아메가 내 발치로 와서 방방 뛰어댔지만, 안아올릴 생각도 못 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자신을 향해서 짖는 그 이름 모를 까만 강아지를 바라보며 세은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강아지는 어디서 온거지? 가만히 바라보니 딱히 자신을 공격하려는 느낌은 아니었기에 세은은 일단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그 강아지를 바라봤다. 절대로 들개는 아니었다. 옷을 입고 있고 목줄을 하고 있었으니까. 아마 산책을 온 누군가가 실수로 놓아버린 것이겠지. 그렇다면 주인이 올때까진 이 강아지 근처에 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세은은 가만히 미소를 지으면서 이야기했다.
"미안해. 먹을 것을 주고 싶지만, 개가 먹기에는 너무 달콤한 것밖에 없어. 너는 초콜릿이나 사탕을 먹으면 죽잖아? 그러니까 안돼."
제 주머니에 있는 먹을 것을 노리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세은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는 와중, 아메라고 외치는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뛰어오는 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렸다. 아마도 이 강아지의 이름은 아메이고 이 강아지를 찾으러 주인이 오는 모양이었다. 강아지를 안아서 데려가야할까. 생각을 하나 함부로 남의 개를 만지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세은은 그 자리에 서서 주인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
그리고 보이는 존재. 교복 위에 후드 집업을 걸치고 있는 존재의 모습이 보였다 .혜우의 모습이었다. 자신을 보고 멈칫하는 모습에 세은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강아지가 그녀에게 가서 방방 뛰는 것을 보면 저 애의 강아지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기에 세은은 미소를 지었다.
"안녕. 강아지 귀여운데? 네 강아지야? 그러니까 이름이 아메? 후훗. 다음에는 줄을 꼬옥 잡고 놓치지 마. 혹시나 차에 치이거나 하면 큰일나니 말이야. 그리고... 벚꽃이 피는 계쩔이니까. ...말해두는데 딱히 볼 사람이 없어서 혼자 보고 그런 거 아니야! 오해하지 마!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
순간 스스로 말하고도 움찔했는지 세은은 작게 투덜거렸다. 그리고 다시 입을 다물더니 혜우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그래서... 왜 그렇게 날 보고 움찔하는거려나? ...내 뒷담이라도 한 걸까. 아니면... 나랑 이렇게 보기가 싫은걸까? 혜우 넌? 저지먼트에서 인사조차 하지 않고 말이야."
뺨에 난 상처에선 피가 흐른다. 팔은 욱신거리고 다리는 무겁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별의 별 통증이 나를 짓누른다. 이미 몇 대인가 맞아버린 결과인가. 내 몸은 거의 만신창이라고 표현해도 할 말은 없었다. 그렇지만 아마 방금 녀석으로 마지막이었겠지. 나머지는 이 음침한 문을 지나는 것 뿐이다. 그것만을 위안으로 삼아 나아간다. 젠장. 각오는 했지만, 혼자서 움직인다는 건 역시 힘들어... 그렇지만 멈출 수는 없다. 내게는 해야 할 일이 있다... 그 사실만을 상기시키며 신경질적으로 문을 발로 걷어찼다. 그러자 거칠게 문은 부숴지며 열어 젖혀졌다.
"이익...!! 뭐, 뭐야! 이... 우산?! 우산녀는 뭐야?! 입구 똑바로 안 지켜?! 대체 뭘 하고 있었길래... 당초 이년은 대체 어디서 숨어있다 들어온거냐-!!" "야... 그 말투는 실례잖아. 편하게 숨어들어 왔는데 이렇게 힘들어 하고 있을 이유가 뭐가 있겠냐."
다섯. 가파른 숨을 몰아쉬는 내 등 뒤로 쓰러져서 신음하는 몸뚱이들의 총 숫자다. 그것을 지금 알아챈 녀석의 동공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너, 설마..." "아아- 그래! 구멍가게로 위장하고 있을 뿐인 이런 별 볼일 없는 장소, '정면부터 입장'인게 당연하잖냐!!"
그거 말고 달리 작전 따위 있을 리가 없잖아? 모른척 하는 태도에 열이 받아서, 더 이상 인정사정 보지 않기로 한 나는 주먹을 틀어쥐고 달려들 준비를 한다. 그리고―
"자, 잠깐! 우린 잘못 따윈없어!! 그냥 평범한 가게일 뿐이라고!" "...잘못이 없다고?"
마지막에 와서까지 정녕 그게 할 소리인가. 그것도 아니면 아직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는 건가? 반사적인 짜증이 뻗쳐와 송곳니를 빠득 소리나도록 깨물었다.
"―이거, 너희 거 아니냐?"
그쪽이 그렇다면 나는 이것을 보여줄 뿐이다. 뭐 잘 됐잖아, 그렇잖아도 이 녀석들에게 보여주려고 일부러 여기까지 들고 온 거니까...! 주머니를 뒤적거려 통 째로 들어있을 그것을 던진다. 빙글대며 날아가더니 테이블에 부딪힌 충격으로 인해 해학스럽게도 통의 뚜껑이 열려버린다. 그 탓에 내용물이 멋대로 흐른다. 그것은 열등감이 만들어 낸 인첨공 최고의 히트작. 분명 누군가에겐 다신 없을 지고의 과실.
"...이, 이건..."
―샹그릴라라고 부른다.
"이걸 대체 어디서..."
놈이 아연실색한 얼굴로 중얼댄다. 당연히 이건 나의 것이 아니다. 이 조악한 물건은, 얼마 전 류화에게서 회수한 것을 그대로 들고 온 것이다. 이 샹그릴라를 '쓸 수 있겠다'라고 생각한 시점에서 바로 계획을 세워 움직인 것이다. ...아니, 당연히 나중에 제대로 폐기한다. 그렇지만 그건- 이 모든게 끝난 뒤다. 그런 뒷 사정 따위를 이런 녀석에게 말 할 필요는 없겠지.
"네녀석이 알 필요 있을까. 아니면, 억지로라도 알 필요 없게 만들어 주는 걸 원하는 거냐...!"
나는 손에 쥐인 우산을 조금 들어보여 이 추궁에 박차를 가한다. 그러자 놈은 팔을 들어 막는 시늉을 하며 허둥댄다.
"기, 기다려! ...그, 그래. 확실히... 그건 전에 우리가 받아서 다른 조직에게 건넨 물건이야. 하, 하지만 그게 다라고? 우린 그거 유통한 적도 없고 직접 판매한 적도 없어! 그거 말곤 정말 평범한 가게라고!" "무기 따위가 보란듯 걸려 있었는데 '평범한 가게'?! 뚫린 입이라고 아무렇게나 나불거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아니, 정말이라고!! 그렇게 의심된다면 이 골목을 봐! 능력도 쓰지 못하는 스킬아웃이 의지해야 하는 게 그런 약 빼면 뭐가 있는데! 우린 어차피 낙오자들이야! 우리가 자기 한 몸 지킬 수단은 이런 거 밖에 없다고!"
필사적으로 쏟아내는 반론에 금방 말문이 막혀서는 혀 차는 소리밖에 낼 수 없게 됐다. 거짓말이 아니다. 내가 본 놈의 눈은... 겁으로 가득 차있지만 흔들리고있지는 않았다. 단순한 핑계같은게 아닌 것이다. 그것은 그 눈으로 나름대로 봐온 이 골목의 현실이자,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쉽게 물러 날 수는 없지.
"이걸 봐."
나는,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생각한다. 그래, 샹그릴라는 단지 나를 여기까지 이끈 이정표일 뿐이잖아. 당연하잖아. 흥분할 필요는 없어. 감정을 추스리고 주머니에서 손을 꺼낸 나의 손에 들려있는 건, 목화고에, 인첨공에 들어오기 전부터 계속 간직하고 있던... 어떤 '사진'이었다.
"...본 적 있어? 알고있는 건 다 말해 봐. 아니면, 그저 관계 있는 사람이라도 좋아. 그 녀석을 나와 주선해준다면... 그래, 전치 2주 이상은 봐주지."
그것을 놈의 면전에 들이밀며 묻는다. 무려 샹그릴라까지 가져오면서 다다른 곳이다. 이제는 무언가 보일 때가 됐다. 놈의 얼굴이 점점 굳어진다. 그래, 그거다. 곧 내게 쓸 수 있는 정보를 불 것이다. 이 가게에서 뭔가 나오지 않았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그렇잖아? 실마리를 찾아 계속해서 나아간다. 단지 그것 뿐이라고. 그리고 놈은 이제 입을 천천히 열었다. 분명, 그래야 할 터이지만...
"모, 모르겠어. 전혀... 애초에 갑자기 뭘 묻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게다가 그거... '사진'이잖아? 오래 전 일을 왜 여기서 묻는 거야... 여긴 인첨공이라고? 사진같은 걸 누가 그렇게 '실물'로 들고 다니겠어? 너 설마... 바깥 사람이냐?"
애석하게도 하나하나. 모든 것이 정반대의 결과다. 바라지 않는 답변에 가장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결말을 실제로 마주해 버린다.
'그렇다면 여기도 또 헛탕인거야...?'
처음부터 헛걸음을 계속 하게 될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에는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류화에게서 회수한 샹그릴라라는 카드도 있었던데다가, 개인적으로 여기엔 기대를 걸었던 부분도 있어서 드디어 다 잡았다고 생각해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론 아니었다. 그렇기에 평소와는 격이 다른, 장난 아닌 허탈감이 덮쳐왔다. 게임이란 언제나 리스크와 보상이다. 그러나 이 경우, 내쪽이 리스크밖에는 떠안을 뿐인 게임이었던 거다. 그런 쿠소게를, 나는 좋다고 플레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미리 알았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었을테다. 나는 분명 언제든지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나라는 건 그런 미련한 녀석이었다.
'젠장, 이게 최선의 카드였는데...!'
내가 지금 낼 수 있는 최고의 카드였는데. 그렇지만 여기서 더 캐물어 봤자 나오는 건 없을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속으로 확정지으며, 쓰게 삼키기로 했다. 어쩌면 이 녀석이 거짓을 말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칼이라도 목에 들이대고서 몰아붙이면 억지로라도 무언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걸 소재로 쫓으면 또 무언가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나는 전문전투원이나 심문기술자같은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지금의 나는 그저, 인첨공 어디에나 있을뿐인 학생인 것이었다. 안타까운 기색을 전혀 숨기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으며 사진을 도로 집어넣는다.
"그럼 내가 번지수를 잘 못 찾아온 건가... 너희들도 결국 이 시스템의 노예 중 하나일 뿐이었어. 그걸 먼저 상정하고 움직였어야 했는데..." "! 그, 그래! 바로 그거야! 하하...! 드디어 말이 통하네. 네 말이 맞아! 우린 피해자다...! 나쁜 건 이 세상이라고? 나라고 딱히 나쁜 짓은 하지 않았... ――어, 자, 자잠깐!!"
들리지 않는 것처럼 우산을 치켜들어 손잡이 부분으로 목을 강하게 내려친다. 그제서야 놈의 몸에 힘이 풀리면서 그 입에 걸쳐져있던 비겁한 미소도 천천히 스러졌다. 나는 그걸 눈으로 보고나서 우산을 거둔다.
"헤, 뭘 착각하고 자빠진 거냐. 그렇다고 해서 아무도 그냥 보내준다곤 안 했다고... 그 뒤는 그대로 스킬아웃에게 말하시지. 이 빌어먹을 녀석들아."
너희들 때문이다. 너희가 그렇게 쉽게 자포자기하고 일어서지 않으니까 우리쪽 동료가 그대로 구렁텅이에 처박힐 뻔― ...아니, 지금은 그런 건 생각하지 말자. 녀석들의 말대로, 이놈들은 그 설계의 일부일 뿐이니까. 게다가 내게 대리인이 되어 이 녀석을 복수하고 심판 할 자격같은 건 없을테다. 그건 스킬아웃의 일이다. 뭘 착각하고 있는 건지 나는... 처음부터 '동료를 돕는다'는 순수한 의도로 여기에 온 게 아니잖아.
완벽한 헛수고였다. 스킬아웃에게 연락하고 돌아가자. ... 잠깐. 소리가 난다.
"―거기 누구냐?!"
세나는 먼저 선수를 치고 소리친다. 그러자 홀에서부터 드리운 그림자의 발소리는 잠깐 멎더니, 이내 다시 신경도 쓰지 않는 것처럼 다시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기색으로 성큼 걸어왔다. 숨기기는 커녕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 같다. 그림자가 점점 이쪽으로 향한다. 그리고 이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진정하고 무기를 내려라."
조금 전 랩에서 나와 산책이라도 나오기라도 한 듯이 흰 가운을 위에 걸친, 잿빛 머리의 중년. 그런 남자가 중후한 분위기를 두르고 생뚱맞게 나타난다.
"나는 너의 적이 아니다. 무기는 들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 이상 다가올 경우, 나도 너의 신변의 안전을 보장 할 순 없다."
그리고 하는 말은 배려인지 경고인지 결코 모를 말이다. 그것이 꽤 효과가 있다.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생각이라도 했던 것인지 세나의 몸이 움찔거리며 흔들린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세나는 중년을 매섭게 노려보며 묻는다.
"그럼, 뭔데...!" "목화고 소속 저지먼트, 2학년 한세나. 맞나? 그리고 능력 계수는..." "잠, 어디서 그런 걸...! 아니, 그 전에 내가 먼저 물었잖아!" "질문에 대답해라."
세나는 거스를 수 없었다. 무기질적이리만치 이성적인 눈초리. 가운의 주머니 안에 들어가 빠지지 않은 손. 재판대 위에 선 것 같은 이 알 수 없는, 중압감. 그것이 몸을 경직시키고 순식간에 옥죄어오고 있어서, 세나는 괜한 반항따윈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수긍해버린다.
"...아아, 맞다만-" "과연, 본인인 건가. 생각보다 쉽게 들어온 정보였기에 함정이라고 생각했지만, 다행히 그런 오차는 없었던 모양이군."
이 양반, 뭐가 말하고 싶은 거야...? 세나는 생각한다. 아는 사람인가? 혹은 학교에 있는 선생? 아니, 역시 처음 보는 얼굴이다. 하지만, 게다가 '정보'라고 했다. 내 뒤를 캐고 있었다는 건가? 아니, 그전에... 누가 그런 정보를 갖고 있던 거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정적이 흐르는 동안 온갖 잡상이 머리안에서 꼬리를 물고 불어난다. 그것을 차단한 것은 역시 손에 들린 파일을 잠자코 대조하고 있던 중년의 남성이었다. 남자는 여전히 차분히 가라앉은 눈을 한 채 세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잠시 눈을 감고 쉬는 사이, 어쩐지 옛 생각이 났다. 내가 왜 의학을 배우기로 했는지에 대해서였다.
그 때는 단지 그게 제일 유용해보였다. 내가 아무리 쓸모가 없어도 부모님의 자식이니까 열심히 하면 천재까지는 아니어도 수재는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평생을 함께 해야 하는 의학이라면 결국 나를 돌아봐주지 않을까 했다. 하지만 모진 절연과 함께 다신 인첨공을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내 안의 무언가는 한 번 꺾였었다. 정말로 뚝, 끊기는 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했다.
사실상 야매에 가까운 시술을 겪고도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래도 숨길 수 없는 호흡이 있었으니 적지 않게 힘들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도 휴식이 필요했다. 어차피 후속 처치는 아플 일 없는 것들 뿐이었다. 웅크려서 눈을 감고 쉬는데 그가 말을 걸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생각났다. 병원에서 휘날리던 붉은 머리카락이 한 명 있었다. 한 번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들고 그를 보았다.
"기억력이 좋으신가 보네요. 나 같은 걸 기억하니."
늘 뒤쪽이나 구석에 조용히 있었으니 아는 사람 말곤 눈여겨보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되려 그게 눈에 띄었던 걸까. 아니면 무리에 속해있으면 당연한 일인 걸까. 고개를 든 김에 상체도 일으켰다. 답답한 마스크를 끌어내리자 보건실 특유의 소독내 나는 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천혜우라고 합니다. 1학년이고 올해 처음 들어온 신입이에요."
나를 보았다고 하니 예의상 자기소개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 간단히 말했다. 반응을 기대한 건 아니니 그 말만 하고 느릿느릿 손을 움직였다. 미리 거즈를 붙이기 좋게 잘라두기 위해서였다.
>>692 일단 세나 렙2 축하해!!!!!!!!!!(빵빠레) 그니까 나 그 부분이 되게 의외랄까.... 놀랐어 목적이 있어서 들어왔다니 세나 비설이 뭔가 했는데... 찾는 사람이 있는걸까? 중간에 갑자기 전학 왔다는 설정에 이유가 있었군 그냥 주인공이라(?)그런 줄 알았는데(??)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정말 짧은 시간 동안만 피었다가 지는 꽃, 하지만 한번 피었을 때는 온 세상을 가득 채울 듯한, 그런 꽃. 원래는 보러 나올 생각이 없었지만, 교실 창문으로 날아드는 벚꽃잎을 보고 있자니 가만히 있는 게 손해인 듯한 느낌이었다.
칙칙하고 깜깜한 자신이 근처에 서면 굉장히 시선이 많이 쏠리겠지 싶긴 했으나. 애초에 그런 부분을 신경 쓰는 타입도 아니었고, 그냥 바람이 불면 떨어지는 벚꽃잎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가라앉고 편안해질까 싶어 바깥으로 나왔다.
본격적으로 벚꽃을 즐기려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너무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해서 마음에 드는 장소 하나를 찾았다. 길에서 떨어져 있는 벚꽃나무들 중 한 그루, 길 옆에 늘어선 젊은 나무들에 비하면 충분히 나이가 들어 크긴 했지만... 저 멀리 보이는 정말 큰 벚꽃나무에 비하면 한없이 어린 벚꽃나무 아래의 그늘에 서면, 시커먼 자신이라도 두드러지지 않고 벚꽃을 볼 수 있다.
가만히, 한참 동안을 벚꽃에 가려져 내리는 햇빛을 보듯 서 있었다. 자신 말고도 벚꽃을 보러 오는 사람이 사진을 찍거나 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다, 사진을 찍는다는 생각이 있었다면 자신부터 이미 찍고 있었겠지.
성실하게 대답한 성운은, 처치가 끝나자 손을 들어 자기 얼굴을 조심스레 매만져보았다. 확실히 아까보다 상태가 나아진 것 같아서, 내심 혜성의 담백한 상냥함이 더 고마웠다. 한양을 찾아가건 은우를 찾아가건, 아마 혜성이 말해준 대로 제대로 상담 요청을 하고 만나러 갈 테니 괜찮지 않을까. 혜성의 말에, 성운은 “네.” 하고는 다리를 움직여보았다. 다른 한 쪽은 이상이 없는데, 아까 아이스팩을 붙인 쪽 발목은 빨갛게 퉁퉁 부어있다. 누가 봐도 제대로 삐었다. 과연, 부은 발목으로 땅을 디디려 하자 즉시 날카로운 통증이 몰려와 성운은 저도 모르게 이마를 구기며 발을 뗐다.
“아얏······.”
성운은 그제서야 발목을 내려다보았고, 그렇잖아도 가느다란 발목이 부어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붕대로 조이면 더 아플 것 같은데, 제가 택시 타고 병원에 갈게요.”
택시비가 얼마나 들지 셈해보던 성운은, 혜성의 이어지는 질문에 뭔가 잊어버린 걸 깨달은 듯 아! 하는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자기소개를 해왔다.
이청윤의 오늘 풀 해시는 자캐가_어린자캐를_만난다면_할말은 청윤: ..앞으로 힘든 일이 많을거야. 꿈과 생각부터 육체적 고통까지.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말해주자면....(비설?) 사람들이_많은_길에서_넘어진다면_자캐는 아야..하고 얼굴이 빨개진채로 걸어갈겁니다! 자캐의_보폭 조금 넓게 걷는 편! 순찰이든 트레이닝이든 뛰어다닐 일이 많으니까요!
보호장구를 쓰고 죽도를 들고 있는 철현, 자신의 훈련을 위해 레벨 1이나 2인 능력자들에게 능력을 사용하여 덤벼달라 부탁한다. 그 때문에 항상 매일 같이 패배하고 땅을 굴렀다. 오히려 그를 상대하는 사람들이 때리다 못해 안쓰러워 능력을 조절하기도 하지만 철현은 그들에게 정말 자신을 위해서라면 능력을 최대한 써달라고 부탁한다.
그날도 열심히 죽도로 두들겨 맞고 바닥에 누워버린 날이었다.
"하..."
연이은 대련의 목적은 레벨 0인 자신이 자신보다 고레벨을 만나 싸울 때를 대비한 것과 상대의 능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능력 단력의 목적이 있다. 사실상 패배에서 얻는 것이 더 많은 기괴한 훈련, 이기면 몸과 기술이 진보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패배하면 그만큼 능력이 강해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생각해도 패배한다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
패배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1류가 된다고 하는 데 역시 자신은 1류가 되기엔 멀었다고 생각한다. 제발 이곳에 저지먼트 부원들이나 친구들이 없기를 바라며 상대에게 감사인사를 한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기숙사에서는 못 기르는구나. 당연히 네 강아지라고 생각했는데. ...하, 학교 규칙을 아직 잘 몰랐던 것 뿐이야! 1, 1학년이니까..."
뭔가 틀린 것이 민망했는지 세은은 괜히 툴툴거리는 목소리를 냈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려버리면서 그녀는 괜히 땅에 발을 콕콕 찔러댔다. 마치 리듬을 타듯, 그렇게 발을 움직이다가 그녀는 자신의 머리 위로 천천히 떨어지는 벚꽃잎을 털어냈다. 머리카락이 길면 이게 불편했다. 묘하게 벚꽃잎이 달라붙어서, 은근히 불편할 때가 있었으니까.
이어 들려오는 말. 세은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혜우를 바라봤다. 연락이 없었고, 자신도 말이 없었다. 그 모습에 세은은 무슨 말을 해야할지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서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말을 걸지 못한 것은... 뭔가 기회가 없었으니까. 변명은 안할게. 솔직히 내가 기억하는 것과 너무 달라져서 어떻게 말을 걸어야할지도 알 수 없었어. 물론 이것도 변명인 것은 맞긴 한데... 어쩔 수 없잖아. 내가 아는 그 모습이 아니라서 어떻게 대해야할지 전혀 알 수 없었는걸. ...그리고 그건 내쪽도 마찬가지지만."
눈을 감으면서 그녀는 거기서 말을 끊어냈다. 연락이 없었던 이유.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기에, 그때는 정말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다 싫었기에... 하지만 그럼에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제 몸을 해치는 것도 불가능했기에. 너무나 우울하고 힘들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기에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고, 아무에게도 의지할 수 없었기에 혼자 이를 꽉 악물었다. 그러는 동안... 꽤 여러 시간이 흘렀다. 자신이 다시 앞을 바라보게 되기까지...
그 모든 사정을 지금 이 순간에서도 말을 할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바로 앞의 이를 못 믿는 것이 아니었다. 믿기에.. 할 수 없었다.
"...연락은 어쩔 수 없었어. 자세하게 말을 할 순 없지만, 그때는 누구와 연락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어. 집 학교 집 학교 집 학교의 반복이었고 솔직히 학교에서도 그냥 기본적인 것만 했어. 중학교 2학년이 되고 나서 조금 더 시간이 흐르기 전까지는. 변명은 안해. 하지만 이 이상은 나도 못 말해줘."
할 줄 아는 거 별로 없는 사람이지만, 이름을 불러주는 것 정도는 잔뜩 할 수 있다. 최소한 오늘 이후로 '한아지' 이름 세글자는 잊어버리지 않을 성싶었다. 겨우 몇 십분 전까지만 해도 생판 모르던 남이 아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 그녀는 그런 소소한 인간관계가 늘 좋았다.
"아마 코바늘이었을 거야. 훨씬 두껍게 생긴 거. 음... 그, 있잖아. 혹시 그 텀블러 옷 나중에 보여줄 수 있어...? 아, 싫으면. 싫으면 안 보여줘도 돼. 그냥 궁금해서..."
텀블러 옷이라는 귀여운 표현에 이레는 작게 웃었다. 그와 동시에 호기심이 일었다. 같은 물건이라도 누구의 손에서 탄생했느냐에 따라 생김새가 천차만별인지라. 또 구경하면서 영감을 얻을 수 있기도 하였다.
"아, 어쩐지... 그랬구나... 근데 그 칩이라는 거 신경 쓰이거나 아프진 않아?"
칩이라는 말에 이레는 납득했다. 하지만 납득과 놀라운 건 별개의 문제이다. 인첨공으로 온 지도 어느덧 3년 남짓 되어가는 그녀이건만, 고도로 발달된 과학의 문물은 아직도 신기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으응. 이 노래 좋은 것 같아. 이거 들을래."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퍽 마음에 든다. 잠시 노래를 감상하던 이레는 곧 다시 제 할일로 돌아간다. 천을 사이에 두고 바늘이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거리며 점차 찢어진 자국을 봉합해간다.
봄을 상징하는 것, 아지랑이와 벚꽃이 아닐까. 벚꽃이 예쁘게 피자 완전히 봄의 기분이 된 한아지는 수업 중간부터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것이다.
"오늘같은 날은 하루 쉬어야 해애~"
친구들에게 투덜거려 보지만 목화고가 그런 것을 들어줄 리 없고 결국 방과후에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한아지답게 같이 놀러갈 친구들을 찾았는데 어쩐지 다들 일정이 있거나 바빴다. 그래도 오늘은 들뜬 기분을 어떻게든 풀어야 했고 봄을 즐기고 싶었다. 혼자서 도시락을 싸고 돗자리를 챙겨서 만발한 벚꽃을 보러 나왔다.
혼자라는 건 아쉬웠지만 그래도 나와보니 기분은 좋아서 금방 화색이 돈다. 벚꽃 그림자 아래 서서 위를 올려다본다. 분홍빛과 하늘색이 기가 막히게 어우러져 아름다운 올해 봄의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와아~"
한참 위쪽을 보며 헤실헤실 다니던 아지는 어떤 사람과 부딪칠 뻔했을 때 비로소 앞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 반 벚꽃 반인 풍경도 사람을 좋아하는 아지에게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인 것은 기념할만한 사진을 예쁘게 찍거나 돗자리를 펴기엔 어렵다는 점이었다.
"사람이 적은 곳 없으려나~"
다행히 큰 대로변을 벗어나니 작은 벚나무가 서있는 곳도 보였다. 도시락과 접은 돗자리를 옆에 내려놓고 그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오늘은 혼자이기 때문에 머릿속 칩과 연동된 손가락만한 작은 카메라 기기를 가지고 나왔다.
"에헤헤... 어떻게 나왔을까~"
노래를 흥얼거리며 사진을 확인해 보는데 심령사진 같은 것이 찍혀있다. 벚나무 아래에 길쭉한 누군가 서 있는 것이다. 몸을 움찔 떨고서 뒤를 천천히 돌아보니 나 랑이 거기에 있었다. 양입을 막고서 조금 눈치를 살피긴 했지만 그럭저럭 사람이라는 걸 확신한 것 같다. 카메라 기기를 주머니에 넣고 도시락이랑 돗자리를 안고서 그쪽으로 도도도 달려갔다.
저지먼트 부실에서 키보드를 두들기다가 기지개를 핀다. 부원들의 레벨이 오름에 따라 근무표의 레벨 밸런스를 손 봤고, 전에 학교에서 발생한 블랙크로우 일당과의 교전을 경험삼아서 목화고의 보안강화 (말이 거창해서 보안강화지, 신원미상의 인원이 학교에 함부로 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시스템 건의서를 작성했다.
저격수와 블랙크로우 3인방이 어떻게 학교로 들어온 것인지 CCTV를 통해 확인하고, 학교의 취약점을 보완하자는 건의서였다. 당연히 우리는 학생이기에 권한이 없고, 이것도 부장의 검토를 거쳐서 학교에 건의를 할지, 안 할지 결정되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일개 학생이 무슨 오지랖이냐 혹은 너무 큰 걸 건드리지 않겠냐고 하지만..
'녀석들이 또 침입하면 우리 학생이 어떻게 당할지 모르잖아..'
한양은 건의서를 프린트해서 파일철에 끼워넣고 컴퓨터를 끈다.
"오늘 업무는 이걸로 끝~"
가방을 챙기고 부실의 불을 끄고 나가려고 한다. 오늘은 몸 좀 풀자는 기분으로 교내 체육관에 가서 혼자 농구를 연습하려고 했다. 그래서 가긴 갔는데..
이레는 대답없이 제 눈높이까지 쌓인 종이더미를 바라본다. 맨 위에 놓은 종이를 들어올리자 '신경세포의 기능과 구조'라는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오는 문구 뒤로 부제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이만큼 잔뜩 쌓인 논문을 오늘 내로 독파한다는 게 가당키나 할까. 살포시 논문을 내려놓자 연구원이 도로 이레의 손에 종이를 쥐어준다. 저 웃는 낯 보아하니 구태여 더 말하지 않아도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단 말이 들려오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아니, 사실 착각이 아닐 거다.
"화창한 봄날의 햇살이 코를 간질이는 나날입니다. 일전에 차를 보내드리긴 했으나 그와 함께 어울릴 다과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군요. 저의 불찰,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길. 하여 오늘은 차에 맞는 적당한 다과와 혹시라도 단것을 좋아하실 경우에 별도로 즐기시라고 쿠키를 동봉해드립니다. 비록 수제이긴 하나 맛은 보증되어있을 뿐더러 내용물은 앙금 외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으니 안심하시길..."
다과와 쿠키
3.글레이즈드 도넛 -> 여로
"오늘도 동글동글 굴러온 나는야 글레이즈드 도넛.
오늘 수업은 어땠어? 나는 사실 집중 하나도 안 하고 창가에서 운동장 보며 멍만 때렸어. 타원형인 운동장을 보며 오늘도 떠올려버린 글레이즈드 도넛.
수업은 재미 없어. 시험은 어려워. 조금이라도 뒤쳐지면 동그랗지 못한 삶을 산대.
원이 찌그러져도 훌륭한 글레이즈드 도넛이 될 수 있는데 다들 너무 앞만 보고 달려. 그러니 너도 글레이즈드 도넛. 적당히 타원형으로 찌그러져도 맛있는 설탕 코팅이 있으면 돼.
그러니 우리는 글레이즈드 도넛. 적당히 찌그러져도 행복한 도넛.
그러니까 적당히 모나고, 납작한 타원이지만 결과는 훌륭한 예시를 보내.
오늘은 길게 썼다. 이젠 내일의 도넛이 짧게 쓸 거라고도 기대하지 않아..."
약켓팅을 해야만 구할 수 있다는 파지 약과와 개성주악 세트
4.화중군자 -> 동월
"활동량이 많으면 휴식도 잘 취해야 하는 법이죠! 잠은 잘 주무시나요! 아니라면 이것들과 함께 꿀잠하세요! 안녕!
"이제부터 당신의 마니또를 맡게 된 코드네임 제로원입니다. 양아치 저지먼트, 아무리 수수한 너라도 운명에 대해선 들어본 적 있겠지. 선택지의 앞에 서게 되면 설령 신자가 아니더라도 찾게 되는 것이 운명이란 녀석의 존재다. 이번에 전달 할 것은 그런 순간에서 몇 번이고 나를 끌어올려준 물건이다. 이건 이젠 내게 필요 없으니... 이번엔 네가 직접 운명을 시험해보도록."
사용감이 묻어나는 20면 수정 주사위
14.코드네임 -> 세나
"아직 내가 누군지 모르는건가? 힌트를 주고싶지만, 슬프게도 이 약육강식 서바이벌은 그걸 허락하지 않지. 대신 이거라도 풀어보게나."
멘사 추리퍼즐 문제집
15.들쥐두마리 -> 혜우
"맞게 샀는지 모르겠네요. 클래식엔 문외한이라 대중적인 걸로 골랐습니다."
고급 오르골. 들리는 곡은 베토벤 소나타 26번. (은우:자기 돈으로 하겠다고 했지만 내 돈으로 처리했어. 그러니까 안심해.)
16.사일런트 -> 전원
"이렇게 갑자기 난입하면 누구인지 대충 알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보다보니까 재밌어보이더라. 그리고 이렇게 모두에게 주면 공평한 것과 동시에 누군가게는 특별한 것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무슨 소리냐고? 글쎄... 그냥 나 혼자 지껄이는 그런 이야기."
부실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는 예약제 케이크. 커다란 케이크 위에 코뿔소 모양의 장식, 그리고 모두를 형상화한 사탕 장식들이 박혀있다. 생크림 케이크이다.
신입이라고 밝히니 기억을 못 했다는 말로 보아, 정말로 몇 번 봤을 뿐이었다는 걸 알았다. 첫 소집 때부터 빠지지 않고 참여했으니 누구의 눈에든 띌 법 했다. 눈에 보이는 것과 기억하는 건 별개였다.
그는 회복 능력이 필요하던 참이라고 했다. 아까의 상황과 저 몸을 보아하니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묵묵히 거즈를 만지며 말했다.
"필요하다면 필요한 만큼 써주세요. 단톡방에 프로필과 번호 열어두었으니 방과 후라면 대부분 가능합니다. 기숙사 통금을 넘으면 곤란하지만요."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곧 능력이 성장할 테니 그 때는 지금보다 더 나은 처치를 해줄 수 있을 것이었다. 자주 신세를 지게 될 것 같다는 말엔 그저 이론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나를 몇 번 쓰든 편하실 대로 쓰면 되지만, 내 능력은 재생이 아닌 세포분열의 촉진 뿐임을 알아두세요. 그리고 오늘 같은 요행을 두 번 이상 바랐다간 목숨이 몇 개라도 남아나지 않을 겁니다."
인간의 육체는 성장에 마지노선이 존재했다. 그만큼 세포의 분열 횟수도 정해져 있었다. 내 능력은 그걸 가속화 하는 것이니 의지해서 좋을 것은 없었다. 그 점을 확실하게 고지한 후, 테이블을 끌어 침대 가까이 붙였다. 옆에 서서 잘라놓은 거즈와 약 등을 들고 그를 보며 말했다.
"붕대를 감아야 하니 잠시 상체를 일으켜주세요. 가급적 배에 힘은 주지 마시고요."
어렵겠지만 봉합이 바로 터지는 걸 원치 않는다면 그렇게 해줘야 했다. 필요하다면 손을 빌려줄 셈으로 잠자코 지켜보았다.
더미 인형을 없앤 자리에 대신 앉은 리라는 선물로 받은 아이돌 앨범을 집어들었다. 이런 걸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유씨? 아니, 김씨던가... 아니다. 한씨다. 한...
"유빈."
잘 지내고 있을까. 돌이켜 보니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숨기지 않은 나를 본 친구는 지금으로선 그가 유일하다. 리라는 의자를 돌려 책상의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수많은 편지지와 편지 봉투들이 들어있었다. 개중에는 이미 쓰여져 포장된 게 절반이다. 보내지지 않은 편지들. 보낼 수 없는 것들. 이 편지들의 행선지는 정해져 있었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곳에 안부를 여쭈려 한다. 리라는 펜을 들고 가장 고운 편지지를 꺼내 책상 앞에 앉았다.
—유빈에게.
첫 글자를 떼고 나자 놀랍도록 머리가 새하얘져서 웃음이 나왔다. 스스로가 멍청하게 느껴져서 애꿎은 종이 위에 점을 찍어대다가 얼굴을 박는다.
"내가 글재주가 이렇게 없는 줄은 몰랐네. 선물이라도 부쳐 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안 되겠지."
애초에 어디 사는지도 모르고. 스스로의 무대책함에 헛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황당한 마음이 도를 넘으면 한순간 가뿐한 기분까지 들어버리고 만다. 리라는 다시 펜을 집는다.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이나, 이레에겐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다. 숨 쉬는 게 당연한 행위인 것처럼 그녀에겐 두 단어의 차이점을 구태여 생각해볼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다리란 말에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더니 곧 허공에 영상이 나타난다. 오. 이 또한 여전히 신기한 발전된 과학의 산물이리라. 하지만 지금은 호기심보단 감탄이 압도했다.
"와. 와. 귀여워...! 진짜 텀블러가 옷을 입고 있어! 아지네 어머니 정말 손재주 좋으시구나."
앞선 아지의 말을 그저 비유라고 생각했기에 실제 옷처럼 생긴 이레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저도 모르게 홀로그램을 향해 손을 뻗었다. 물론 실제로 만져지는 건 허공일 뿐이었지만. 그러다 괜히 자신감 하락해 소매 꿰매놓은 자국 만지작거린다.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고 홀로 다짐했다.
"아. 그건 좀 부럽다... 상상만 해봤던 건데 진짜 가능했구나."
칩에 대한 말에 편할 것 같단 말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유용할 것 같기도, 재밌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신체 내부에 이식한다는 건 역시 무서워서 호기심으로만 두기로 한다.
흘러나오는 노래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온 신경은 바느질에 집중되어 있다. 강박적으로 찌르면 안된다고 속으로 되뇌인다. 천을 사이에 두고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거리는 반복적인 움직임이 이어지더니 곧 찢어진 자국의 끝에 도달한다. 하지만 완전히 끝나기 전까진 방심할 수 없는 법! 양손으로 각각 바늘과 실을 잡고는 바늘에 실을 몇 번 감는다. 그대로 실이 팽팽해질 때까지 바늘을 위로 뺀다. 그대로 누른 채 잡아당기자 작은 매듭이 생긴다. 이제 정말 실만 자르면 된다.
"저기, 실 잘라줄 수 있어? 안에 가위 있어."
말하며 이레는 반짇고리를 바라본다. 그냥 손으로 끊을 수도 있겠지만, 실을 잘못 당기면 여태껏 한 게 허사가 될 수도 있으니 안전한 길을 택하는 거다.
어느 공사장에 도착해서 진입하기 바로 직전. 괴이부쪽과 통신을 하려는데 아무래도 기계가 고장이 난건지, 통신이 제대로 되질 않았다. 계속해서 들리는 노이즈로 인해 혀를 쯧, 차고는 마지막 통신이 들리길 바라며 말을 해본다.
" 여기는 동월이라고 알리고, 통신상태 오류로 바디캠으로만 진행하겠다고 알림. "
전원을 내리자 치직거리는 소리가 사라지고, 동월은 공사장 근처에 무게만 늘릴 뿐인 고장난 무전기를 숨겨두었다. 어쩔 수 없다. 조금 위험부담은 생길지 몰라도 수색을 그대로 접을 순 없으니까. 그리고 EX 타워로 수색을 나온게 그나마 행운이었다. 현재 동월은 2레벨에 오르면서 EX타워 수색이 그나마 원활해졌으니.
" 그럼.... "
동월은 근처에 걸려있는 안전모를 하나 뒤집어쓰고 공사하는 인부들이 휴식을 취하는 곳으로 가 털썩 주저앉았다. 그대로 눈을 감고는 조용해진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을 뜨면.......
[EX타워 진입 방침] - 먼저, 아무 공사장으로 들어가 비치되어있는 안전모를 착용한다. 인부들은 안전모를 두고 다니므로, 주변을 둘러보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착용을 완료하고 인부들이 휴식을 취하는 곳 근처에서 기다리면 낮은 확률로 EX타워에 진입할 수 있다.
//원래 진입방식은 좀 더 복잡하게 해두려 했는데, 마침 적당히 2래벨 괴이에 가라고 다이스가 정해주기도 했고, 이제 EX타워는 주 스토리라인에서 빠지는 느낌이라... 간편하게 해놨습니다!!!!!!!!! 세나주는 안전모를 썼다고 해도 좋고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휘말리는건데 뭐 상관 없지!!!!!!!!!!
감사합니다- 라는 후배의 말에 그 방향으로 눈을 돌린 혜성은 후배가 얼굴을 매만지는 행동을 보자마자, 장난스레 씁, 소리를 내며 엄한 표정을 지었지만 표정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작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혜성의 그 표정은 자신의 말에 발을 딛다가 표정이 구겨지는 모습에 조금 심각하게 변했을 것이다.
"그럼 택시 기다리는 동안 통증이라도 좀 줄이자. 아이스팩이 얼마나 도움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붙혀둘까? 진통제도 좀 먹어둬."
택시를 불러주겠노라, 이야기 하려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디까지 도움을 주는 게 좋을지 여전히 감 잡기 힘들어서 혜성은 늘 애를 먹고 있었다. 곤란한 일에 손 내밀어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걸 타인이 바라는지 알 수 없으니까. 생각하는 것을 드러내지 않고 혜성은 예의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새 아이스팩과 진통제 두개를 뜯어서 후배에게 건네주려한다. 그걸 받았다면 양호실 정수기에 물을 가지러 갔을 것이고.
"아, 2학년이야? 1학년인줄 알았어. 이름 기억해둘게."
물을 가지고 되돌아오던 혜성이 자기소개를 하는 후배의 목소리에 잠깐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통성명을 안했나? 이 후배랑? 상황을 이해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혜성의 표정에 저질렀다는 당혹스러움이 스쳐지나갔다.
"미안, 내가 이름을 말 안했구나. 나, 이혜성이라고 해. 소개가 늦어서 미안해. 후배님."
/적당히 막레 주셔도 좋고 여기서 헤어졌다는 식으로 마무리 지으셔도 돼요~~ 조금 더 이으셔도 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