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 우마무스메의 신체 역학과 스포츠 이론에 관해 알아보고자 웹소설 플랫폼에 '우마무스메' 키워드를 넣어 검색한 날. 사미다레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인기 작가 '미즈농'의 작품을 구매하고 말았다. 그날로부터 이 가련한 우마무스메는 어둠의 백합충의 길로 빠져들게 된 것이었다……. 사미다레는 그 후 미즈농의 소설에 그치지 않고 불온서적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이 업계의 전설이 된 작품에까지 관심 갖기에 이른다. 하지만 업계의 '전설'이라는 그 작품은 이미 절판되어 위명에 걸맞는 희귀성을 빛내는 상황. 읽고 싶다는 욕망은 있지만, 이 정도로 구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단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역 중고품 거래 사이트에 그 서적의 이름을 쳐 넣으면서도 별다른 기대는 없었는데…….
이, 이, 이이이, 이, 이게 왜 진짜로 있어? 침대에 누워있던 몸 놀라서 벌떡 튀어오른다. 믿기지 않아서 눈을 비볐다 다시 보고, 인증 사진까지 세 번 정도 봤는데, 진짜다! 심지어 몇십 분 전에 올라온 따끈따끈한 최신 게시물! 고민은 10여 초도 되지 않았다. 사미다레는 재빨리 판매자에게 메시지를 보내었다.
[안녕하세요. 책 아직 안 팔렸나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거래 당일. 사미다레는 약속했던 장소에 15분 정도 일찍 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했으나 기다리느라 초조한 건 아니다. 단지 주변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있을까 확인하고 싶어서 그런다. 그, 특별히 문제가 될 물건을 거래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도 왠지 들키고 싶지 않달까……. 그래서 오늘은 모자를 눌러쓰고 나오기까지 했다! 이 밍맹무스메, 모자를 써 봤자 눈에 띄는 체격이 가려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아는지 모르겠다.
아니 왜 안읽씹??? 너 (임시)담당이 보낸 우마톡 이렇게 씹어도 되냐???? 마지막으로 화가 잔뜩 난 고양이 이모티콘을 보내는 것으로 화풀이를 대신하고-사실 다 안 풀려서 씩씩거리는 상태로 옷을 갈아입는다. 젖어도 되는 옷이라.... 적당히 체육복 입고 가면 되는 거 아냐? 더러워지든 뭐가 됐든 여벌도 있고. 그렇게 체육복을 입고 도착한 곳은 예상?과 다르게 트랙이었다. 아니 사바캔 대비 트레이닝이라 생각하면 트랙도 예상이 가긴 했는데...
"흐음~ 과연. 구린내나는 아저씨에 이상한 소문만 잔뜩 있는 사회성제로 애벌레인줄 알았는데, 그래도 이럴 땐 트레이너답네."
물 뿌린 트랙, 물총, 확성기... 거기에 내 레이스 분석까지. 진짜 트레이너 같네. 아 맞다 트레이너였지 이 사람(?) 안읽씹의 대가로 뭘 치르게 해줄까 하던 생각도 날아갈 정도로 꽤 괜찮은 트레이닝 같다.
"근데 그럼 몬다이가 나보다 앞서서 달리면서 물총을 쏴야하는거 아냐? 킥백*은 앞에서 오니까." "그거 감당할 수 있— 아앙? 뭐라고 했어 지금?"
쫄?이라는 도발에 제대로 불이 붙었다. 덧붙여 3만엔도. 이거라면 통째로 삭제된 내 용돈을 메꿀 수 있을거야...!
"그래 해보자고. 져서 허접지갑 다 털릴 준비나 하시지, 이 허-접❤️" *선행 주자가 찬 모래를 후행 주자가 맞으면서 달리는거
지난 주말 본가에 돌아갔더니, 간만에 마마의 얼굴을 보고 있었던 일이다. 마마는 책전집이 든 상자 하나를 툭하고 테이블에 꺼내더니 사정을 설명했다.
"엄마가 고등학교때 유행하던 로자리오에 엮어 타이를 이라는 책인데, 전집을 모아놨었거든-. 이제는 슬슬 다른 사람 손에 보내주는게 좋지 않겠나 싶어서 지역 중고 거래 사이트에 올렸는데 말이지이. 거래원하는 지역을 들어보니 너 학교 근처던데?" "뭔가 불온서적의 냄새가 나는데요." "얘는 참! 그냥 건전한 연애소설이란다. 어차피 오늘 밤에 돌아갈테니 내일 대신좀 전해주겠니. 이름이 아마 사미다레 스와브 라고했던가? 그런 귀여운 이름이던걸." "사미다레씨. 어디서 들어본 이름. 아."
블레이즈 소속이었던 것으로 안다. 그렇게 접점은 없지만 나보다 이와시캔에서 앞선 사람중 한명이었으니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지.
"이 기회에 대화를 조금 나눠보는 것도 좋을 것같네요. 승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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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야기가 있어 약속 장소에 평소대로의 흰 블라우스에 검은 스커트의 평상복으로 나왔다. 상자가 조금 무게감이 있지만 우마무스메라면 괜찮겠지.
모자를 꾹 눌러쓴게 뭔가 숨기려는 모양이지만, 경기때의 그 신장을 생각하니 너무나도 바로 알아보고 말았다.
그렇게 말하지만, 딱히 궁금해하는 듯한 태도는 아니다. 당연하지만 무언가 계기가 있었겠지. 그냥 어느 날부터 갑자기 중앙이 가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을리는 없고.
"그래, 그런 꿈까지 생겼다면야." "방심할 수가 없겠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어쩐지, 목표를 가지게 된 메이사를 응원하고 싶어지는 마음이다. 지방 우마무스메에게 중앙은 큰 벽이지만, 사례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언그레이와 사미다레에게 설렁설렁 뛰라고 할 생각은 없다. 그녀들이 최선을 다하듯, 메이사도 최선을 다하겠지.
>>84 ".......정말이지 시라기 씨도 사람을 부끄럽게 하시는 능력이 있으신 건가요...... "
어떻게 말하든 이야기가 '아무튼 청혼을 한 건 맞다' 로 돌아가고 있는지라, 미즈호는 양 손으로 얼굴을 꼬옥 가린 것을 풀고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볶음면을 더 담아주는 것을 얌전히 받아들다, 어딘가 정곡을 찔린 듯 아주 잠깐, 낯빛이 창백해지려 하였다.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까?
"......그렇지요? 언젠가는 아이들에게 다 사실대로 말해야 겠지요....... "
분명, 사실대로 말하면 실망할 것이 분명한데도. 그렇게 생각하며 멋쩍게 뺨을 긁으며 마저 볶음면을 오물거리다, 이런 말을 툭 내던진다.
사실 모자에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쓰고 싶다는 충동이 지금도 마구 치솟는다. 마음 같아선 잔뜩 암거래를 하는 사람 같은 복장으로 숨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지난날의 경험―데이트 훼방 편―으로 깨달은 바, 사람이 너무 싸매면 오히려 수상해 보인다는 걸 알게 되어서 말이다. 캡 모자에 단색 티셔츠, 반바지의 비교적 평범한 차림을 했다는 점에서 사미다레가 지금 평범해 보이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자꾸만 불안스럽게 서성거리고 있으니 눈에 띈다. 은신 실력은 영 글렀나 보다.
"……흐앗!"
아니나다를까 척 보고 간파당했지 않은가! 뒤에서 말이 걸려오자 사미다레가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홱 돌렸다. 거기에는 묵직한 상자를 든 갈색 머리 우마무스메가.
"……아. 네에, 캐럿……이신가요?"
용건이 무엇일지는 척 보아도 예상이 가기에 그렇게 물었다. 어라. 그런데 이 사람, 왠지 낯이 익은 것 같다. 왜인지 익숙한 느낌이고, 어디에서 본 듯한 기분이 드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상대를 응시하고 있으려니, 문득 어느 순간의 기억이 스친다. 봄의 이와시캔. 레이스의 시작과 동시 누구보다도 빠르게 앞서 달렸던 우마무스메의 뒷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 것이다.
"저…… 혹시, 스트라토 씨……인가요?"
같은 레이스에 출주했던 우마무스메의 이름 정도는 그 당시에 외워 두었다. 경기에 임하기 전 출주하는 상대들의 정보는 필수이기도 하고, 달리는 동안에도 가장 앞서 달리는 우마무스메의 이름은 내내 호명되기 마련이니까. 도주로 달렸던 스트라토의 이름만큼은 시간이 지났다 해도 기억에 꽤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