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금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situplay>1596967074>990 그러면 1학년 가을까지는 연락도 자주 하고 몇 번 보기도 했지만 그 사건으로 겨울부터 2학년 봄까지 연락두절되었다가 2학년동안은 안부인사만 가끔씩, 3학년 때는 세은이 먼저 연락하지 않는 한 혜우가 먼저 연락하는 일은 없었던 걸로. 하면 괜찮을까?
>>949 성격은 요네즈켄시의 SINIGAMI 곡에서 따왔지! 찾다보니까 이게 라쿠고(우리나라로 치면, 조선 전기수와 비슷한 것)에서 따온 거더라고?
엄청난 빚을 진 남자가 사신에게서 사신들을 내쫓는 비방을 듣게 돼. 해당 비방으로 명망 높은 의사가 되었는데 이 돈을 향락으로 모두 날리다못해 또 다른 빚을 지게 되었어.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남자는 사신에게 살려달라 해. 그리고 사신은 초에 불을 붙이라고 알려주지. 그것은 길고 튼튼한 초에 불을 붙이는 것. 남자는 그 초에 불을 붙이는 데 성공하지만,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었어. 그 길로 불이 꺼져버렸고 남자는 죽어버려.
노래는 이 부분에서 가장 많이 착안했어! 사신이 주인공 남자에게 하는 답변? 같은 느낌의 부분.
그리고....... Achilles come down은 아킬레우스가 연인을 잃고 실의에 빠져,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할 때 그의 친우 파트로클로스가 막아세우던 일화의 이야기야. 결국, 파트로클로스는 죽게 되지만, 아킬레우스는 전쟁에서 승리해. 이 곡에서 재미있는 점은 선을 담당하는 파트로클로스와 대척점에서 계속 꼬드기는 아킬레우스 내면의 악마의 꼬드김.
Achilles, Achilles, Achilles, jump now You are absent of cause or excuse So self-indulgent and self-referential No audience could ever want you You crave the applause yet hate the attention Then miss it, your act is a ruse It is empty, Achilles, so end it all now It's a pointless resistance for you
이 가사 부분에서 같이 착안되었어. 그리고 성격의 나머지 한 부분은... 보드게임 중에 [타뷸라의 늑대]가 있는데, 거기에 시민 진영임에도 늑대인간(=마피아)의 편에 있는 직업이 하나 있어. 홀린 인간이라는 이름인데, 이들과 늑대인간은 서로의 존재를 몰라. 대신 늑대인간일 것 같은 자가 불리해지면 은근슬쩍 도와주거나, 그가 달릴 것 같을 때 달리지 않게 방해하는 역할을 하지. 이 자의 승리 조건은 늑대인간과 동일하거든.
situplay>1596967074>995 앗 생각해보니 그렇네. 그럼 혜우가 아지랑 좀 어울렸던 것도 설명이 좀 될듯? 처음엔 전학생 도와주는 거였지만 점점 머리색 눈색 변하고 완전히 인첨공인(?) 되어가는거 보면서 '너도 여기 밖에 없게 되었구나' 하고 묘한 동질감? 느꼈을 듯.
>>22 라기보다는 그땐 세은이가 안녕! 하고 인사를 먼저 걸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고..(옆눈) 소개는 안 시켰지만 아무튼 이름 정도는 말해줬을 것 같은 오빠라는 작자는 레벨5에 퍼스트클래스고... 그런데 얘는 얘대로 중학생때 일로 독기 바짝 올라서 레벨4가 되어있고...
>>24 파국마 멈쳐... 아니 하면 맛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지금은 스탑-맨! 사실 나도 선관 짜고나서 얘가 누굴 옆에 둘 여지가 어디있나 싶었는데 아지주 레스 보고 와 딱 이거네 했음 :3 혜우 죽어도 저 말 아지한테 안 할 거야. 아지 보면서 자기가 그런 생각 하고 거기에 동질감 느낀게 너무너무 미안하거든.
>>27 와 맛있다 맛있다 왠지 자신을 곁에 둬준다는 걸 알지만 이유는 모르고 그냥 전학생에게 잘해주는, 차가워보이지만 알고보면 따스한 아이~ 라고 그냥 생각하고 있는 아지와 아지를 보면서 아지가 어떻게 생각할 것이든 마음대로 동질감 느껴버린게 그 이유였던 혜우... 언젠가 서로 알게될 날이 올지 겉돌지 모르겠지만
>>25 캡틴 그걸 눈치채다니... 이래서 눈치 빠른 캡틴은... (철컥) 근데 기만으로 느꼈다기보다 그 좀 딥하고 다크한... 자존감 하락하는 계기 중 하나는 되었을 듯. 혜우가 지금처럼 된게 중학생 시절 동창들이 하나 둘 레벨업하는거 보고 스스로에게도 기대했다가 끝내 졸업때까지 0레벨도 벗어나지 못 한게 결정적이라서. 세은이는 그 간접적 영향을 줘버린... 크흠흠.
하다 봄 ^_____^ 계속 구경하다보면 개꿀잼 태진이 후회쇼 (이러기) 볼 수 있는거죠? 기대하고 있을게요
>>959 엇 안 닮아서 어어어하다가 이름만 따왔다는 걸 알아버림... ㅎㅎ 이름을 따온 계기가 있을까요??
>>966 축복받은 재능이다.... 원하는 캐와 개쩌는 설정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뭔가 둘이 외향은 다르겠지만 성격은 결이 비슷할 것 같은 느낌?!
>>968 모리?! 갑자기 자리에 앉더니 실눈으로 추리를 할 것 같은 이름이네여 물론 귀엽지만 전 아지가 더 좋네용
>>975 오오오..... 지금 보니 외향이나 분위기가 닮은 느낌이 있네요?! 대충 세은이는 츤데레. 라고 생각하면 되는거죠? 개꿀~ 일상때 열심히 친한척해서 정 들게 만들거니까 각오하세요 꺗호 가족이 있으니까 밝게 살아간다니.... 넘 좋네여 전 원래 가족. 키워드 나오면 환장하거든요. 둘이 남매 모먼트 기대하고 있을게요 ㅎ
>>976 앗 독백~~~이라는게 라노벨에서 어이어이어이~? 이대로 괜찮은거냐? 이런 느낌으로 혼자 속으로 생각하는 걸 말했어요 ㅋㅋ 제 웃음 포인트임
>>977 멋진......... 이름이다.... 이거는 네타적으로 이레주가 짠걸까요 아니면 부모님도 이레(7일)이라는 뜻으로 지어준걸까요?
>>979 우웃...... 그녀의 서사... 너무나도 궁금하다.... 나중에 차차 풀릴테니 주시하고 있겠습니다 당신; 개인적으로 전 우울한 캐를 좋아하는 편이라 시트 묘사 취저였어요.
혜승이 모티브... 캐는 명확히 없지만 배경 분위기는 킬라킬 정도로 생각했어요. 생각해보면 키류인 사츠키가 모티브였던 것 같기도? 사츠키의 진지한 분위기보다는 개그 느낌이 더 강하네요. 나사 빠진 걸로 개그를 치고 싶어서 낸 캐라...
아아... 쓰고보니 이렇게나 길어졌다.... 그래도 요캇다.... 멋진 이야기를 들었어...
>>955 열심히 서치하고 옴~ 어쩐지 태진이는 뭔가 정통 주인공 느낌이 없잖아 있다고 생각했어용 갠적으로 태진이같은 무대포 캐릭터 한 명 있으면 분위기 풀어주고 개꿀잼 일상도 가능하다 봄 ^_____^ 계속 구경하다보면 개꿀잼 태진이 후회쇼 (이러기) 볼 수 있는거죠? 기대하고 있을게요
>>29 개인 이벤트가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떻습니까! 중요한 것은 정하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이라는 것!
>>31 근데 그 부분은 아마 세은이도 언급을 하거나 건들면 조금 싸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혜우에게 크게 차갑게 말하는 것은 아닐 것 같고.. 자신도 그냥 이런저런 사정이 있는데 말은 할 수 없다. (사실임) 정도로만 이야기를 하겠지만요. 하지만 다른 이가 뜬금없이 와. 너는 레벨4나 되네? 네가 우리 심정 알기나 해? 라는 말을 하는 순간, 아마 세은이는 심하게는 상대의 싸대기를 강하게 칠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지뢰네요. 이 부분은. (옆눈) 물론 혜우나 수경에게 그럴 일은 없으니 안심합시다.
>>10 아아 양질의 고급 정보다.... 얼른 서치하고 왔어 요네즈 켄시 노래는 언제나 좋지 결국 여로는 악마의 꼬드김을 대표하는 느낌ㅇ리까요? 요래저래 선역보다는 악역 느낌이 강하다는 점에서 매우 맛있다! 가 총평입니다. 확실히 시트에서 >>적이었으면 싫었겠다~<< 뉘앙스로 평가된 이유가 있네요?
>>41 뭔가 계기가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혜우도 지금은 다시 만난 세은이에게 그런 거 묻고 그러진 않을거야. 오히려 혜우 쪽에서 언급을 피하고 그냥 친구 시절처럼 지내려고 할 거고. 혹시나 말이 나올 거 같으면 건강이슈로 자리 탈주하거나 그럴 거라서. 혜우도 책임의 화살을 안으로 돌리는 편이니까.
목표는 월 천! 아니, 월 오천! 아니 월 1억이다! 배금주의가 만연한 시대에 피해자가 한 명, 이 곳에 있다. 어렸을 적 가지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련이 오히려 노력의 원동력이 된 케이스로, 혜승은 최근들어 ㅡ아마 은우가 월 2000을 번다고 들은 이후였을거다ㅡ 부쩍 열정이 넘친다. 금속제 팔찌를 하나 손에 쥐고 입꼬리 끌어올리는 모습이 아무리 잘 쳐줘도 간신배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기다려라, 펜트하우스청담..."
라고 말하고 있지만 인첨공에 들어온 이상 청담이 아무리 기다려준다해도 찾아갈 수는 없을거다... 돈을 많이 모아서 집은 살(buy) 수는 있겠지만 살(live) 수는 없다고 해야할까. 어찌되었건, 혜승에게는 좋은 자극제가 되는 것 같으니 굳이 현실을 일깨워줄 필요는 없겠다.
들고 있는 팔찌도 금속인지라 간단하게 변형을 가할 수는 있다. 지렁이처럼 꾸물꾸물 움직이는 게 전부 혜승의 능력 덕분이라 할 수 있겠다. 어쩌면 나, 천재 아닐까. 하며 염병을 떨어보는 혜승이었다.
>>48 .....노력해보겠습니다. 태진이 혜승이가 주시하고 있을 것 같죠. 선배만 아니었어도.... 부들부들 무려 잔머리가 37개, 위에서 세번째 단추를 안 잠갔어....! 할 것 같다고 해야할까요. 이정도 기준이면 모두를 주시하는게 아닐까....
>>50 꺅 너무 좋아여 생각나는 일상 시작 있으실까요??
>>53 앗.......... 일상중에 풀 생각이었는데 아마 투덜거리긴 할겁니다. 엄청 불만있다! 이런건 아니고 요즘 너무 풀어진 거 아니냐. 선배로서 잡아달라. 라떼는 안 이랬다 꿍얼꿍얼 중얼중얼 소심하게 간언(?)하는 정도... 사실 오너가 그냥 혼자 잔소리하는 캐가 내고 싶어서 낸거라 너무 신경쓰지 않으셔도 좋습니당
아, 그건가. 내가 선배라는걸 모르고 이제야 알아서 이렇게 쫄아버린건가. 뭐 선배고 뭐고 굳이 이렇게까지 대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아니면 그건가? 자기보다 윗사람한테만 예의바른 그런 스타일. 아, 그런 스타일은 마음에 안드는데. 차라리 대놓고 맞먹는게 낫지. 이쪽도 그런 타입이니까.
"옥상까지 이미 다 내가 확인했으니까, 굳이 더 볼 필요는 없어."
그리고 여전히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계단을 내려가려던 차에, 문득 뭔가 생각난 듯 멈춰서 뒤를 돌아보며 말한다.
"그, 이름 뭐였지? 미안. 요번 신입생은 내가 모르거든. 아무튼, 괜찮다면 너 잠깐 나좀 보자. 따라와."
그렇게 태진은 밝은 초록색 머리의 후배가 지금 무슨 사유로 벌벌 떨고 있는지 알지도 모르는 채, 그녀를 부른다. 아무래도 자신에 대한 악명을 그다지 들어본 적이 없는 듯 하다.
>>80 하 둘 다 넘 재밌어보이네......... 근데 저지먼트에서 복장단속까지 하나....?싶어지긴 하니까 1번 할게용. 복장단속은 선도부의 일인 것 같아서~ 그래서 혜승이도 저지먼트 아니면 굳이 남의 복장갖고 왈가왈부 하진 않습니다... 속으로 엄청 신경쓰긴함 oO(넥타이가 3도 각도로 비틀어졌다.........!!!)
선레는 다이스로 정할까요??
>>83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경 척 올리면서 "흥, 그 사소한 것마저 놓치지 않는 저입니다만?" 으쓱 자랑할 것 같기도 해요... 농담이고 싸움좀 그만하라고 뭐라할 것 같아요 "밖에서 뭐라하는지 알아요? 목화고 저지먼트들은 죄다 깡패에 마음에 안들면 꼭 피를 봐야만 직성에 풀리는 소시오패스 집단이라 한다고요!" (그런 말 아무도 안햇음)
"그래? 나는 중3때... 아, 한창 치고받고 다닐 때였구만. 그때까지도 정말 오는 싸움 절대 안 막고 살았었지..."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그냥 허세 섞인 농담이었겠지만, 본인은 정말로 그랬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그게 그렇게까지 위협적일거라는걸 자각을 못하고 있다. 혹은, 일부러 별 해가 안된다는 어필을 위해 대수롭지 않게 굴거나.
"참, 내 소개를 안 했네. 장태진이다. 3학년. 저지먼트는... 여기 신입생 때 들어왔고. 난 2학기때부터 시작했어."
그러더니 "이야, 그 전까지만 해도 내가 저지먼트가 될거라 생각은 하나도 못 했는데. 사람 인생 참 어떻게 갈지 모르는거야~" 하고 덧붙인다.
둘은 나란히 어딘가로 걸어가더니, 곧이어 도착한 곳은 으슥한 학교의 그늘진... ...곳이 아니라, 매점이었다.
"아직 있네!"
마치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외치며 바라본 그것은, 한정판 쇠파이프나 위험한 뭐시기나 그런게 아니라... 딱 두개만 남은, 일일 한정품 튀김 고로케였다. 아마 이쯤에서 정하는 굉장히 당황하고 있겠지만, 이건 눈치가 없는건지,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 하고 있는건지. 태진의 눈에는 지금 고로케만 들어와 있다.
그중 두명의 소문이 진실로 밝혀졌어... 세상에... 업무로써도 대선배지만 압이!!! 압이 엄청나!!!
옆에서 걷는것만으로도 땀을 주체할수가 없어! 땀? 그래 일단 땀을 말리고 생각하자. 몸을 식히면 머리가 돌거야...후우....
그 순간, 등뒤로 소름이 돋는다. 뭐야. 식은땀이였어?! 내가 식은땀을 흘렸어?! 이게 몇년만이래 진짜!? 방과후 시간대 답게, 점점 해는 그늘져지고, 얼마나 걸었을까. 으슥한 학교의 구석.....을 지나 매점으로 왔다.
뭐야. 왜 학교의 구석을 지난거지?! 나 지금이라도 고백하는게 좋을까?!
'아직있네!'
뭐야 도망갈줄 알았던거야?! 사실 다 떠봤던거고?! 아니야 그럴리가... 아니 그럴수도 있어! 상대는 베테랑 저지먼트! 이미 나에대한건 다 알고있는거야! 아예 범법은 없었지만... 스스로 털어놓으면 봐준다는건가?! 그래 그런거겠지?!
아무생각 없이 고로케를 향해 손을 뻗는 태진의 오른손을 부여잡으려 하며, 폭포수 쏟아내듯 고해성사를 한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근데 그 스킬아웃애들은 진짜 그렇게 나쁜애들은 아니에요! 맨날 밥먹듯이 안티스킬 경찰서로 가서 훈방조치를 받고 오지만! 폭력적이지도 않고 교화도 될만한 애들이에요! 저도 물론 스킬아웃이 아니구요! 생각해보세요 레벨 4짜리 스킬아웃이 어디있어요!! 죄송합니다 미리 말씀 못드린점! 근데 제발 목숨만큼은...목숨만큼은 살려주세요오!!!"
거의 울먹이듯 하고싶은말을 모두 쏟아냈다...이제...이제 모르겠어... 썩 괜찮은 고등학교 생활이였다... 한달정도였나? 좋은 인연 많이 만났어...그래...
곤란해하는 아지를 구원해줄 한 소녀가 있으니. 바로 아지와 같은 저지먼트의 일원이자 검도부의 일원이기도 한 최혜승이 그 소녀라 할 수 있겠다. 비록 돈 앞에서는 소인배처럼 굴고, 규칙과 규율을 과하게 강조에 여럿의 빈축을 사기도 하지만 최혜승도 나름의 정의가 있는 법이다.
"거기 너! 너무 과하게 붙잡지마! 곤란해하는 거 안 보여?"
혜승이 들릴듯 말듯 작게 중얼거렸다. "가오 떨어지잖아." .........정의가 없나? 어째 곤란해하는 아지보다는 바닥에 떨어진 가오의 도리를 더 신경쓰고 있는 것 같지만 아마도 기분탓일거다. 푸른빛 도는 혜승의 눈이 검도부원을 훑고 지나간다. 고집있게 앙 다문 입이며, 한껏 찌푸려진 미간, 서슬퍼런 눈빛이 한 얼굴에 어우러져 퍽 위엄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만하고 이만 와ㅅ, 엇, 너는..."
검도부원에게서 시선을 뗀 혜승이 뒤늦게 아지를 눈에 담았다. "...." 얼음장 같은 침묵이 분위기를 옻칠한 듯 딱딱하게 만들고 있었다. 검도부원을 꾸짖던 그 눈이 그대로 아지를 향했기 때문인데, 아지의 몸을 가늠하는 게 역력한 눈치였다.
"저지먼트면 무소(=꼬풀소)같은 체력과 무예가 필요하겠지? 받아라. 우리 동아리 홍보지다."
...아까의 헤프닝의 연속이다. 부담스러운 검도부원 옆에 혜승이 팔짱을 끼고 든든한 뒷배가 되어 섰다.
어느 야심한 밤. 한양은 자취방에서 공부를 하다가 갑갑한 기분이 들어서 츄리닝을 입고 잠시 밖에서 러닝을 하기로 했다.
30분 정도의 러닝이 끝났다. 한양은 땀에 젖은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가는데.. 한 골목길에서 한양보다 체격이 월등히 큰 남자가 다가온다. 험상궂은 인상에 190은 가까이 되어보이는 키. 그에 맞게 엄청난 근육질.
"목화고등학교. 저지먼트 부부장. 서한양."
"어어..저는 맞는데요..? 혹시 무슨 일로.."
'아, 여기서는 아니라고 우겨야 되는데..'
"작년에 너네가 해산시킨 우리 조직.. 복수하러 왔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근처의 주차금지 오뚜기를 염동력으로 몰래 움직여서 녀석의 뒷통수를 치려고 했지만..오뚜기가 녀석의 근처로 가자마자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
이어서 날아오는 녀석의 주먹. 한양은 녀석의 어깨를 염동력으로 붙잡아서 주먹을 멈추려고 하지만 능력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대로 주먹을 맞고 휘청거리지만 쓰러지지 않는 한양.
당황한 틈에 한방을 허용했지만 맞는 순간에 주먹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턱을 돌려서 데미지를 흘려낸 것이다. 그런데도 휘청거리는 것은 녀석과 한양의 체급차가 만만치 않다는 의미.
"능력자놈들에게 당하지 않으려고.. 어렵게 구한 수트다. 레벨 3까지는 막을 수 있지."
'하..그냥 가죽자켓인 줄 알았는데..그런 아이템은 어디서 구한 거냐..'
"젠장..한방 먹었네요...목검도 안 가지고 왔는데..그렇다면..."
"저도 주먹으로 존X 패도 된다는 거죠?"
한양은 안경을 벗으면서 말했다.
'말로는 허세를 부렸지만.. 쉽지가 않다. 리치 차이.. 체급 차이.. 전부 열세다. 기술로 압도하라고?'
스킬아웃 녀석의 밸런스 잡힌 자세에 쉽사리 덤비지 못하는 한양이다. 스킬아웃은 가드를 안정적으로 잡은 자세를 취하며 우월한 리치에 날카로운 잽을 연발하여 한양을 압박한다.
'딱 봐도 고수다. 막 덤비는 녀석이 아니야.'
한양은 녀석의 잽을 거리를 벌려가면서 피한다. 녀석은 이어서 잽에 이은 스트레이트를 날리려고 한다.
'어깨의 움직임.. 앞으로 살짝 나오려는 어깨..그리고 일직선의 방향..스트레이트다. 내가 저 틈에 거리를 좁혀서 카운터를..'
탄력적인 스텝으로 순식간에 녀석에게 접근하는 한양. 하지만 녀석은 라이트 스트레이트가 아닌 레프트 훅을 한양에게 날린 것이다. 스트레이트를 하려는 어깨 움직임은 페이크 모션. 진짜 공격은 한양이 거리를 좁혔을 때 강타하는 레프트 훅이었다. 하지만..상체를 숙여서 레프트 훅을 피한 한양이었다..?
'당연히 페이크지! 어깨는 돌아가도 체중을 싣는 오른쪽 발목이 안 돌아갔잖아! 내가 거리를 무모하게 좁히는 걸 유도했겠지.'
레프트훅을 피한 한양에게 기회가 생겼다.
상체를 숙인 채로 거리가 좁혀진 한양은 그대로 왼발을 비틀어 체중을 실어서 녀석의 오른쪽 갈비뼈에 레프트 어퍼컷 그리고 체중을 실은 반동을 이용해서 오른쪽으로 체중을 실어서 녀석의 왼쪽 턱에 라이트 훅을 제대로 적중시킨다.
"너 좀 하는구나."
녀석은 충격이 좀 있긴 하지만 버텨내며 양손으로 한양의 뒷목을 잡는다.
'미친..빰클린치..!'
악력으로 한양의 고개를 숙이게 만든 뒤에 그대로 갈비뼈에 니킥을 꽂으려는 스킬아웃. 하지만 한양은 차분하게 오른쪽 어깨를 틀어서 한양의 머리와 목을 잠그고 있는 팔쪽의 공간을 만든다. 그 공간에 오른팔을 넣어서 중심을 오른쪽으로 흔든다. 그렇게 녀석의 왼팔과 한양의 얼굴 사이에서도 꽤 넓은 공간이 생기고.. 그대로 왼팔을 집어넣어서 왼손으로 녀석의 어깨를 세게밀며 클린치를 풀어낸다.
다행스럽게도 녀석에게 갈비뼈를 니킥으로 강타당하는 상황은 피하게 된 한양. 바로 클린치를 풀자마자 갑자기 무모하게 태클을 거려는 한양이다. 스킬아웃은 예상되는 태클에 대비하듯이 하체를 뒤로 내밀어서 무게중심을 뒤로 옮기고 자세를 낮추지만..
'페이크다, 이 자식아.'
분명 태클이라고 보일 정도로 낮은 자세의 한양이었다. 스킬아웃의 다리를 잡아걸어서 넘어뜨리려는 자세의 태클. 앞으로 내민 양손만 봐도 태클의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갑자기 그 자리에서 도약을 한다. 왼발을 도움닫기로 도약을 한 것이다. 그렇게 나온 것은.. 플라잉니킥었다. 오른쪽 무릎으로 태클을 방어하기 위해 자세를 낮춘 스킬아웃의 안면을 제대로 강타한 것이다.
'주먹으로는 안 되니깐 무릎 좀 썼다.'
기절해버린 스킬아웃. 그런데.. 녀석의 자켓 가슴 주머니에 무언가 빛나는 것이 있다. 그것을 꺼내보는 한양.
"이게 핵심장치일려나..."
그대로 세게 쥐어서 박살낸다.
염동력으로 기절한 스킬아웃의 볼을 꼬집으려고 하니깐..꼬집힌다..이것이 핵심장치였어.
능력으로 볼을 꼬집자, 깨어나는 스킬아웃. 스킬아웃은 눈을 부릅뜨며 다시 덤비려고 하지만..
"아야야야야!!!!"
염동력으로 녀석의 구렛나루를 잡아당기는 한양이었다.
"다 끝났어요, 이 사람아."
구렛나루를 놔주고 주변의 돌이란 돌들은 염동력으로 전부 공중에 띄워놓고 말했다.
"다시 붙을래요?"
"......"
"이번 일은 여기서 끝내자고요. 조직도 해산됐다면서요. 이제부터는.. 착하게 살아봐요. 아니면 저지먼트라도 들어오실래요?"
스킬아웃은 창피한 것인지 얼굴이 붉어진 채로 한양의 말을 무시하고 터벅터벅 자리를 떠났다.
정말정말 정신이 없어질 때 즈음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구원자다!! 아지는 한층 밝아진 얼굴로 목소리가 들려오는 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검도부원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까지를 들었는지 살짝 주눅 든 표정으로 주춤거린다. 그것도 잠시, 억울하다는 듯이 말대꾸한다.
"아니, 난 그냥 평.범.하게 입부 권유 한 거라고??"
평범이 누구 기준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평범했단다. 그제서야 검도부원의 앞에 서 있는 아지와 혜승의 눈이 제대로 맞물린다. 근육 하나 없어 보이는 다리와 비실비실해 보이는 몸뚱아리, 거기다 흐물흐물해보이는 저 웃는 표정까지 이 동물은 약체다!! 약체가 분명하다!!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겠지.
...구원자인 줄 알았는데 권유자가 하나 더 늘어났다.
" ? ? ? ? "
보통이라면 기막혀할 이 타이밍에 아지는 배신당했다는 얼굴로 혜승을 향하고 있다. 믿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어...? 거기다 그 검도부원, 호랑이를 등에 업은 격으로 아까보다 더 기세등등한 표정이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다!!
"어... 어떡하지이..."
아지는 곤란하다는 듯 눈썹을 내리고 애써 웃음지으려 하며 빠져나갈 방법을 고른다.
"저어~ 저지먼트 활동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바쁠 것 같아서요오~" "다른 동아리들도 다 거절하고 있는데에..."
그 중 하나가 자기라는 자각은 딱히 없다. 슬슬 2년 조금 되게 활동했으면 자길 지칭하는걸 알 만도 한데... 아마 그런데 대한 의식이 전혀 없었나보다.
그렇게 우리는 매점으로 왔고, 나는 이 매일 먹어도 모자란 기분인 고로케를 사려고 손을 뻗어 취하려는 순간... 후배가 내 손을 턱 잡았다. 지금 시비를 거는건가? 아니면 이 고로케를 자기가 먹겠다는 도전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0.01초만에 끝내버리려던 차에 튀어나온 폭포수같은 말에 자신도 모르게 정지했다.
"...그러냐."
갑작스레 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대뜸 고로케를 사려 손을 뻗는 것을 붙잡고 무슨 말을 하는건지. 뭐... 사실 무슨 말을 하는건지는 대충 알아듣겠다. 하지만 왜 갑자기 이런 타이밍에 이런... 고해성사를?
"그래, 그거는 뭐 나중에 천천히 말하도록 하고..."
내 손을 부여잡은 정하의 손을, 주머니 속에 있던 왼손으로 톡톡 친다. 얘가 대체 얼마나 급하면 이런 짓 까지 하나 싶기도 했다.
"누가봐도 곤란해 보이는 얼굴을, 흠, 아니다. 지금 보니 정말로 기뻐보이는군. 너는 입부 권유에 재능이 있다. 마저 해라."
성큼 다가온 혜승이 아지의 손목을 붙잡았다. 상대를 소동물정도로 인식했음에도 손속을 봐주지 않는 손길이다. 바쁜 매일을 보내면서도 유산소와 근력 운동을 병행하는 맑은 눈의 광인 앞에 아지는 속수무책으로 끌려올 수 밖에 없었다...
"뭐지, 이 가는 팔은? 골격근도 체지방도 현저히 적잖아."
그제야 혜승의 눈에 걱정이 서리기 시작한다. 이런 몸으로는 스킬 아웃을 잡기는 커녕 일상 생활조차 버겁다! 필연적으로 능력에 의존하며 저지먼트 활동을 하게 될텐데, 혜승이 보기에 그건 바람직하지 못했다. 사람이 능력을 써야하는데 능력이 사람을 쓸 수는 없다는 게 혜승의 논리였다. 무언가의 다짐을 한 듯 한 층 굳건해진 눈으로 혜승이 아지를 보며 웃어보인다. 믿음직스러운 얼굴이었으나... 아지에게는 좋은 소식이 아니었을 거다.
이 사람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처럼 열정맨인줄 안다. 요컨대, 여가시간에 놀지 않고 자기관리에 힘쓰는 게 당연하다 여기는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이다. 예전에야 스마트폰도 없고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으니 이런 정신머리를 가진 사람이 흔했을지 몰라도, 요즘 같은 시대에 이렇게 살면 그냥 미친 사람이다. 생각해봐라. 너튜브 쇼츠와 인별 릴스만을 끊임없이 내리며 도파민만을 좇는 모습이 흔한 요즘 시대에, 운동과 독서로 제 도파민을 충족하는 사람이 제정신일리가 없지 않는가. 텁, 아지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린 혜승이 아까 그 '믿음직스러운 미소'를 유지하고 있다.
모든 말을 쏟아내고, 엄마 아빠에게 마지막으로 남길 말을 생각할때쯤, 너무나 무심히 내뱉어진 한마디에 정신이 다시 든다. ...응?...생각보다 반응이... 미지근...한데... 꽉 잡은 오른손을 왼손으로 툭툭 쳐서 떼네어지고. 나중에 이야기 하는 대신 고로케 하나를 집으라고 한다.
고로케? 오! 용케 남아있네? 이거 맨날 점심시간에 다팔리는데.
"남은거 전부 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양손에 고로케를 들고 팔목을 흔들자, 자연스럽게 결제가 완료된다.
그 상태로 일단 양손에 있는 고로케를 능력을 사용해 자연스레 데워서, 앞에 있는 태진선배께 하나를 내밀고 다시 사고를 이어간다.
이 반응...모르는것같지? 생각해보니, 위협적으로 보인다는것도 다 핑계고. 아직 있네? 라고 했던것도 결국 이 고로케 이야기라면...
난 뭘한거지?
...죽고싶어졌어.
얼굴이 붉어지는건 어쩔 수 없다. 고로케라도 먹어야지.
고개를 푹 숙인채 고로케를 한입 베어문다. 응. 맛있어. 맛은 안정적이야.
......부끄러워!!!도망치고싶어!! 나혼자 무슨 착각에 빠진거야!!!! 맛있어!!!
아. 목막힌다.
"아주머니, 여기 음료수도 두개 주세요. 네 제로콜라로."
아주머니가 콜라를 두개 꺼내주자, 능력으로 자연스레 열고 입으로 콜라를 쑤셔넣는다.
...응. 좀 진정됐다.
"...어디까지 말했었죠 선배님?"
뭔가 엄청 나혼자만의 세계에 빠진것같지만. 착각일거야. 아니 착각이여야만해? 그쵸 태진선배? 갑자기 먹다가 서러워져 눈물이 글썽거린다. 겨우 능력으로 눈물을 바로 날리고, 태진선배님을 올려다본다.
격변한 혜승의 태도에도 마냥 좋아라만 하고 있는 검도부원을 뒤로하고 아지는 혜승에게 손을 붙잡혔다.
"...아앗..."
반응도 느리다. 차마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는 모양이 팔려가는 송아지처럼 남루하기 짝이 없다.
"...저기... 그렇지만 나름대로 운동은 하고 있는데에"
기숙사에서 교실과 부실까지 왔다갔다 하는 것도 운동이라고 아지는 마음속으로 변명을 해본다. 하지만 그대로 입밖에 내면 그딴 것도 운동이냐고 꾸짖을 것 같지... 혜승이 걱정이 서린 눈을 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도 아지는 입술을 꾸욱 물고 빨리 벗어나고 싶다고만 생각하는 것이다. 예승의 웃는 얼굴에는 습관처럼 자신도 웃는 얼굴로 응했으나...
((괜... 괜찮지 않아...)) ((남는 시간엔 쉬고 싶어어...))
그런데 듣다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하다... 힘들겠지만... 정말 힘들겠지만... 참고 버티다 보면 뿌듯해지려나? 남의 말을 쉽게 긍정해버리는 아지의 귀가 팔랑인다.
"저어, 능력을 개발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까요...? 제 능력은 오버리미트. 잠재능력을 끌어내 신체 능력을 강화시키는 능력이에요... 시간 제한은 있지만..."
기묘하게 믿음직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혜승 앞에서 머뭇거리던 아지는 체험이라는 말에 조심스럽게 끄덕여 보인다.
"체험 정도라면..."
"결정된 거지? 어서 가자!"
새 부원의 입부 느낌을 감지한 검도부원이 신이 나서 먼저 멀리 뛰어가버린다. 검도부원이 "안 와?" 하고 부르며 손짓하자 아지가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띈다. 혜승이 움직였다면 상대를 따라 움직였을 것이다.
손 닿는 곳에 살얼음이 낀다. 금세 깨지고 녹아버리는 탓에 얼음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무리가 있지만 이 정도면 훌륭한 편에 속한다. 적어도 무언가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하물며 희야는 인첨공에서 15년을 살아오며 아무런 능력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순간은 마치 기적과도 같았다.
기적!
희야는 고개를 들었다. 불 하나 켜지 않은 어두운 연구실 안에서, 인공적으로 조성된 홀로그램 태양이 주홍색으로 선명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희야는 손을 모았다. 쨍한 빛이 두 눈을 죄다 태우는 것 같은데도 감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저기, 있죠- 너무 늦게 기적을 내려주셨지만 그래도 좋아요. 이것도 뜻이 있는 거겠죠……."
이전부터 겨울은 영원하다 하였고, 태양 또한 영원하다 하였지. 그렇다면 영원이란 무엇일까? 가질 수 있는 것일까? 단순한 궁금증에 희야는 손을 앞으로 뻗어보았다. 주변의 살얼음이 두꺼워져도, 그렇게 홀로그램이 점차 이지러져도, 그 빛이 점점 커질 때도.
"불이야!!"
누군가 들어와 희야의 눈을 덮어 가리며 뒤로 낚아챈 뒤, 황급히 문을 열고 나서야 희야는 깨달을 수 있었다.
"세상에, 희야야, 안 다쳤어? 소장님!! 희야 찾았어요!!"
살얼음도 계속해서 쌓이면 단단한 얼음이 되고, 장치 내부회로를 고장내 불태울 수 있다는 것을. 저 멀리서 다급하게 상황 쑥덕이는 것 듣자 하니, 자신이 홀로그램에 푹 빠진지 세 시간이 지났단다. 그 시간 동안 멍하니 능력 사용에만 열중했으니 홀로그램 구성 장치에 과부하가 걸려 사달 나는 것은 뻔했다.
혼잣말을 하며, 입을 틀어막으려다가 결국 제풀에 지쳐 무릎을 잡고 잠시 쉰다. 몇분동안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한번도 안닿게 피할 수 있지? 이게 진짜 사람이야?
"...진짜 부끄러워 죽겠으니까 그만해주세요..."
겨우 웃음이 멎은 선배에게 내가 들은 소문을 그대로 옮겨서 말한다.
"3학구 목화고에는 3가지 미친 저지먼트가 스킬아웃을 때려잡는다. 첫번째, 이 도시에 열손가락 안에드는 레벨 5, 녹색섬광 최은우. 몇년 전에는 분명히 불량학생이였지만, 저지먼트로 어느새 돌변, 스킬아웃을 때려잡고 다니는 적색투귀 강태진... 그리고 머리에 피를 쏟으면서도 스킬아웃을 처리하는 극도의 효율주의자, 백색 광귀 청윤. 그런 소문이 있다구요."
분명히 이것만 들으면 괜히 과장된것같지만...
"이것만 들으면 좀 오버같지만, 부장님이 사람을 인천 앞바다에 담궜다는게 실화라고 들어서, 나머지도 다 진짠줄알았단말이에요..."
아직도 가슴이 떨려 겨우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태진선배를 다시 바라본다. 웃는 얼굴을 보니, 생각보다 선한 얼굴인것 같기도 하다.
"...놀리지 마세요."
이제와서 차가운척 하기도 그렇지만. 겨우 포커페이스를 해본다... 안된다. 이 쪽팔림과 부들거림을 참을 수 없어!!
혜우야아~ 나 아지야~ 우리 고등학교 들어와서 한번도 제대로 못 만났었지~~ 오늘 방과 후에 티라미수 먹으러 가는 건 어때애 지난 번 부실에서 맛봤던 그 티라미수야아~
헤실헤실 무해한 웃음을 얼굴에 덕지덕지 바르고서 혜우에게 보낼 음성 메시지를 전송하는 아지였다. 바쁠지도 모르니까 통화 대신 메시지를 보냈다. 다행히 긍정의 대답이 왔고 시내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꽤 골목에 위치해 있었기에 아지는 직접 약도까지 그려서 눈으로 스캔해 보냈다. 손그림 솜씨가 별로 좋지 않아 알아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보다도 약도에 표시되어 있는 것들이 건물명이 아니고 < 강아지 집 > < 봉선화 화분 > < 가로등 > 같은 것들뿐이지 않나. 그래도 어쨌든 틀린 것은 없었기에 잘만 보고 찾아왔더라면 찾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짤랑~~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아지가 제 앞에 손도 대지 않은 카페라떼를 놓고 귀마개를 하고서 반겨줄 것이다. 허공에서 손이 강아지 꼬리처럼 붕붕 흔들린다.
"이쪽!! 이쪽~!"
다소 구석진 자리에 있지만 그래서 안정감이 느껴지는 창가 자리다. 앤티크한 인테리어와 커피향이 은은하게 혜우를 맞아준다.
오늘의 방과 후는 아무런 일정도 없었다. 저지먼트의 순찰 근무는 어제 해서 차례가 아니었고, 커리큘럼도 없었다. 정갈하게 정리된 가방을 앞에 두고 내 왼손을 보았다. 어제와 같은 긴 소매 가디건 아래 가느다란 손목을 지탱하는 보호대가 얼핏 보였다. 오른손도 보았다. 손바닥이 통으로 거즈에 감싸여 있었다. 스타밍에 가려진 다리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전치 1주, 내지는 2주. 나는 유독 손목이 약하기 때문에 무리하지 말란 진단을 들었고 그 진단을 토대로 당분간 손을 쓰는 훈련은 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오늘 하루 정도는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쉬란 통보를 들었기에, 곧장 기숙사로 돌아가 지난 강의 영상을 복기하려고 했다.
아지에게서 음성 메세지가 오지만 않았다면.
- 그래.
살갑디 살가운 벗의 목소리에 되돌려 준 건 딱딱하고 짧은 답장이었다. 그것도 문자 메세지로 보냈다. 특별할 것 없다. 늘 이랬다. 지난 연락창을 올려봐도 모두 이런 식이었다. 아지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되었다. 같은 말이라고 모두 같은 의미는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아지가 보내준 약도를 보았다. 음성 메세지 다음은 손그림 약도를 보내는게 아지다웠다. 이 어디가 어디인지 모를 것 같은 내용도 그렇다.
개집과 화분과 이건 뭐지. 가로등? 이런 걸 넣은게 과연 약도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걸 그대로 따라가니 정말 아지가 말했던 카페가 나왔다. 한 쪽에 어깨에 가방을 메고, 그나마 멀쩡한 오른손으로 폰을 들고서 카페를 보았다. 그리고 폰을 보고, 다시 카페 보고, 그렇게 반복하다 안으로 들어가자 저기 붕붕 흔들리는 손이 있었다.
카페 안을 볼 것도 없이 아지가 먼저 앉아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아지 맞은편은 내가 앉을 자리니 비워두고 그 옆 여분의 의자에 가방 먼저 내려놓았다. 자리에 앉지는 않은 채 서서 아지를 보았다. 가방은 놓았지만 폰은 들고서 말했다.
"내 거 주문하고 갈 건데. 너. 그거만 마실 거야?"
티라미수 맛집이라더니 저 카페라떼 하나만 시킨 걸까. 나 기다린다고 아직 안 시킨 거면 같이 주문해올 셈으로 물었다. 그거만 마실 거냐고. 반가운 인사도, 안부를 묻는 말도 없이.
사실 이곳 음료는 그닥 특별할 것이 없다는 것은 직원들에게 들리니까 말하지 않기로 한다. 대신에 짐을 옆에 놓아둔 채 느릿하게 머뭇거린다. 응. 바로 앞이니까 짐 지킬 사람은 없어도 되겠지이
"티라미수는 미리 주문해뒀어어~ 너 오면 바로 가져오려고 했지이" "다른 것도 시켜볼까 하는데 같이 가서 골라볼까~?"
괜찮다고 했다면 혜우와 함께 쪼르르 카운터 옆의 디저트 코너로 가서 다양한 케이크와 까눌레, 허니버터 토스트 등등을 둘러보았을 것이다. 테린느 종류도 여러가지다. 투명한 디저트 코너 덮개 위에 놓인 알림판은 티라미수 예약 방법과 가격에 대해 쓰여있다. 티라미수는 인기가 많아 날이면 날마다 먹을 수 없는 탓이다.
아지는 오늘도 한아지였다. 내 기억에 저 얼굴이 웃지 않은 날은 없었던 것 같다. 있었다면, 내가 보지 못한 날들에 있었을 것이다.
물어본 건 하나였지만 돌아온 말은 서너마디였다. 안 시킨 줄 알았더니 미리 시킨 거 였다. 다른 거 같이 고를까 하길래 그러라고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서 있던 내가 앞장 서고 뒤에 따라오는 아지가 있었다.
카운터 옆 디저트 코너에 아지가 먼저 보는 동안, 나는 내 마실 것을 골라두었다. 아메리카노 한 잔, 디저트도 추가할 것이란 말을 덧붙이고 아지가 보고 있던 디저트 코너에 눈길을 주었다. 그제야 봤다. 여기 티라미수는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는 걸. 그렇다는 건 소집날도 오늘도 다 미리 예약을 했다는 의미다. 헤실대는 옆얼굴을 보다 다시 디저트로 시선을 돌렸다.
다 풀어진 털실 같은 얼굴을 하고서 이런 건 누구보다 섬세했다. 한아지라는 사람은.
"내 거, 까눌레 두 개 하고 저기 여섯개들이 포장도 할 거야. 넌 어쩔래."
티라미수를 메인으로 주문했으니 까눌레는 맛만 보고 더 먹을 건 사갈 생각이었다. 까눌레 정도면 아침 혹은 오후에 식사 대용 정도는 된다. 아지를 향해 너는 뭐 고를 거냐 묻고, 대답하는 그대로 주문해버리곤 추가 계산도 내가 해버렸을 것이다. 돈이라면 썩어나게 들어오니 얼마를 쓰든 상관 없었다.
주문을 마치면 아지가 뭘 하든 먼저 가방 놓아둔 자리로 돌아가려 했다. 커피가 나오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이고,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 다리가 제법 욱신거려 얼른 앉고 싶었다.
situplay>1596968078>248 뭐가 있는 부분만 골라서 곡괭이질을 해쌌는디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 그럼 잡담하다가 자 혜우의 업보가 크다~~~ 아지 속으로 의문이 조금은 있겠지만 그대로 믿고있다구~~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지를 속인 댓가는 클?까? 그것은 다음 기회에
>>250 원래 연구원 하는 일이 다 그렇잖음 애들 머리도 뽈칵 열어 전극 꽂고 그러는디 아지 짱귀여워 위에서 동질감이랑 잡담으로 오너 내적 친밀감 풀로 채워서 그런가 답레도 엄청 잘 써짐 하지만 지금은 졸려ㅓ 어어... 보면 꼭 가장 순진한 캐 놀렸을 때 업보가 장난 아니던데... (아지주 봄)(안본척) 나는 아지주가 햇살말랑이를 굴리겠다고 한 말을 믿겠숴 제발 그래주세요
>>254 ㅋㅋㅋㅋㅋㅋㅋㅋ 장난감인데 머리가 열리는 장난감 와 이걸로 인체의 신비를 알아보아요 (아무말) 씁 혜우는 귀엽지 않고 뭔가 좀많이 부족한 고양 아니 고양이 아니라고 내머릿속 떼껄룩 저리 치웟 왜 왜 그걸 모르는거야...? 아니야 제발 그렇다고 해! 안돼 벌써부터 파국각 보인다 히익 낙동강 고영은 좀ㅋㅋㅋㅋㅋ혼자 다 술술 풀어버린거냐고 아지 ㅋㅋㅋㅋ 혜우 좀 어이없어했을듯 원래 가족 얘기 나오면 불편해하는데 ㅋㅋㅋㅋㅋㅋ 근데 그런 사람이 은근 그런 사기 잘 피하더라 아지도 왠지 그럴거같음
>>256 와 혜우 이걸로 의학공부하면 되겠다 뽈칵뽈칵 고양이 맞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슬슬 인정할 때 됐어 사실 햇살말랑캐가 무섭게 돌변하는!!!!!그런일은 없구요... 그냥 (검열) 할 뿐이에요...사실 별거아님 있어보이려고 가린 거임 단거먹으면서 얘기하다보면 자기집에 숟가락 몇개인지도 나오기 마련이지(????) 혜우가 불편해보이면 안했을것같긴 한데 메인 주제로 삼진않고 이런저런 얘기하다 조금씩 조금씩 곁들여 나왔을것같네 초밥에 찍어먹는 간장처럼
>>257 에이 혜우는 장난감 코스 이미 지났어 일댈비율 모형으로 절개랑 봉합 연습도 한다구 으으으 이렇게 냥며드는 것인가 그렇다면 조만간 부실에서 식빵을 구워야...(?) 가린 시점에서 더 무서워지는데요 우리 아지 햇살말랑이로 남아줘어어어 각 잡고 푼거 아니면 불편한 티 많이 안 냈을듯 그냥 대답 대충하는 정도였을까 ㅋㅋㅋㅋㅋㅋ 동아리 입부권유는 사기 아니니까 못피하는거임 그게 맞음(???)
새삼스럽게 약간 진지한 표정을 짓다가, 예전 무용담을 말하듯, 담담하게 과거 싸움 이력을 말하는 그를 보며 사실 약간 무서운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 생각해보면 엄청 신기해 다들. 개성이 넘쳐서 반짝이고있네, 과거력도 화려하고. 약간 부러워질 수 도 있을것같아. 평범하게 살고 평범하게 자라온... 아니지 레벨 4가 된것만으로 평범하진 않구나. 꾸준한 노력에 성과가 따라와줬다는것 만으로도 평범하진 않은 삶인가? 아무튼. 난 별로 특별한 과거같은건 없으니까.
"뭐, 과거가 얼마나 중요하겠어요. 과거로 빚어진 지금 제가 중요한거죠."
그래요 빼빼로 한대 말아드리...어라? 이사람 뭔가 큰 착각을 하는거같은데...
"저 그렇게 비행소녀 아니거든요?, 그냥 이렇게 꺼내는게 편할뿐이라구요."
친구가 알려줬는데, 생각보다 한개씩 나오는게 편해서 쓸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하지만 이미 말한게 말한것이다 보니, 쉽게 믿어지진 않겠지...
입으로 가져간 빼빼로를 오도독 씹으면서, 다른쪽 손 "엄지와 검지"로 빼빼로를 잡아, 선배의 입 가까이에 가져다 대 준다.
그런 네 발언은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담배를 피웠다는 것으로 류화에게 해석되는 것일까. 그러니 류화는 여전히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그저 그 현장을 급습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할 뿐, 지금에선 증거라곤 담배 냄새밖에 없었으니. 여기서 더 막아서며 억지를 부릴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류화는 아쉽다는 듯 혀를 찬다. 그리고 인사하는 당신에게 고개를 까딱여 보이며 류화 역시 삐딱한 인사를 건넨다.
"칫. 그래요. 이번만 믿어드리죠."
하고서 현장을 피하는 당신의 뒷모습을 눈으로만 보다간, 류화는 혹시 또 옥상으로 가 담배를 피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거리를 두고서 태진의 뒤를 쫓는다.
아아ㅡ 이것이 「갓반인」의 속도라는 것인다. 혜승은 아지의 주장ㅡ운동을 하고 있다ㅡ을 자연스럽게 무시했다. 혜승에게 운동의 기준이란 주 3회 1시간 이상 땀을 흘리는가였다. 물론 아지가 실제로 그렇게 운동을 하는지 혜승으로서는 알 방도가 없었다. 이렇게 호리호리해보이는 체격이지만 의외로 저 연약한 겉가죽에 실속있게 근육이 들어차있을지도 모르는 법. 그러나 아지의 운동 습관은 더이상 혜승의 관심사가 아니다. 어차피 검도부에 들어오면 필연적으로 좋은 운동 습관을 가지게 될텐데 지금 좋은 운동 습관을 가지고 있든, 아니든 무슨 상관인가?
"음... 그건 말이지."
조심스러운 아지의 질문에 혜승은 팔짱을 끼고 고민에 잠긴다. 그 짧은 침묵 사이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다. 혜승 특유의 진중한 말투와 이지적인 분위기 탓에 그럴듯한 대답을 해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혜승이 팔짱을 풀며 운을 뗐다.
"나도 몰라. 내 능력이 아닌데 그걸 어떻게 알지? 본인의 능력은 본인이 탐구하도록."
뻔뻔하다! 무책임하다! 다행스럽게도 혜승의 대답이 거기서 맥없이 끊긴 것은 아니었다. 방금 생겼던 대화의 간극동안 나름의 고찰을 마친 모양인지, 이어지는 말은 그래도 도움이 될만한 것들이었다.
"그렇지만 네 설명만 들었을 때 도움이 될거라는 게 내 추측이다. 예를 들어 잠재능력을 끌어낸 너의 신체가 100이라고 치자. 평소의 너의 신체 능력이 10이라면 너는 90만큼의 힘을 끌어올리기 위해 능력을 쓰게 되는거야."
아지의 이해를 끌어내기 위해 잠시 말을 멈춘다. 힐끗 아지의 표정을 살핀 혜승이 상대가 이해한 기색을 보이자 마저 대답을 마쳤다.
"그렇지만 네가 검도부에 들어 신체 능력을 50까지 향상했다고 치자. 그럼 90만큼 일하던 너의 능력은 얼마만큼 일하게 되겠지?"
침을 꿀꺽 삼키고 답변을 기다리는 아지다. 어떻게든 돈을 벌고 싶은 자신으로서는 능력을 잘 활용하게 되는 것이 중요했다. 도움이 된다면 검도부에 들어갈 마음이 조금은... 늘어날지도?!
"에엣..."
그렇게 진중하게 고민하는 듯한 모습때문에 본인이 탐구하라는 소리는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스스로 탐구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그렇지만!! 아지의 맥없이 흔들리는 눈빛이다.
"열심히 탐구하겠습니다앗..."
그래도 기가 죽은 건 아닌가보다. 지금까지는 커리큘럼에 수동적으로 따르기만 했지만 스스로 탐구하는 시간도 있어야 한다!! .. 고 아지는 허울좋게 상대의 말을 받아들였다.
혜승이 숫자를 예시로 들어주자 눈을 깜빡거리던 아지는 느릿하게 머리를 굴러 이해하기 시작한다.
"140이요~"
헤실헤실 웃으며 답하는 것이다. 와~~ 검도는 좋은 거구나~~ 으음. 중간에 다른 수식이 끼이면 변할 수도 있겠지만~ 눈이 또랑또랑해지는 것이 다시 검산에 들어가는 중인 것 같다. 갓반인보다 훨씬 못한 속도로 하고 있기에 아마도 검산을 끝내기도 전에 상대에게 끌려가 목검을 손에 쥐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항상 사람을 말이야, 의심의 눈으로 보고 말이야. 저런 의심암귀 같은 후배에게 내가 매번 이런 취급을 받아도 되는거냐고. 괜히 툴툴대면서 늘상 그렇듯 껄렁한 걸음걸이로 옥상을 향한다. 그러고 잠시 눈치채지 못한 채 걷다가 2층과 3층 사이의 계단 참에서, 자신을 뒤따르는 걸음걸이를 느꼈다.
쿠궁! 낙조의 낯이 시퍼렇게 질렸다. 십팔년 인생 가장 크나큰 쇼크⋯ 는 과장이고 여하튼 충격을 받긴 했다. 왜, 낄끼리란 말이 있잖은가? 주변엔 늘 치고받고 싸우면서 우정을 다지는 결 거센 사내들만 들끓었기에, 이런 잘 빚어 가다듬어진 것 같은 이를 가까이서 접하는 건 초번. 그리고 낙조의 세상은 좁은 편이었다. 그 말인즉슨, 새로운 유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서투르다는 것. 낙조는 엑, 하고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그 상태로 한양을 휙 돌아봤다. 거짓말! 하고 대번에 한양을 모함까지 하면서.
“이런 육체를 가졌으면서, 나랑 안 싸워준다고! 너무하다, 너무해애애⋯⋯.”
한양의 팔뚝과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늘어지는 말끝에 미련이 뚝뚝 묻어 나왔다. 부드럽지 않은 거친 음성과 어울리지 않는 칭얼거림, 저 저 뚱한 입술, 잡초를 뽑는 손길이 약간 세진 것이 불편한 심기를 훤히 드러냈다. 애도 아니고! 속내를 거리낌 없이 투명하게 표출해내던 낙조는 최초로 자신과 일치하는 발언을 한 한양을 응시하다가 한쪽 눈썹을 까딱, 들어올렸다.
“그치만 싸워야 강해지잖, 아⋯ 요? 그리고 재밌는데요, 싸움.”
이번에는 존칭어가 제법 매끄럽다. 그러다가 “에⋯.” 하고 탐탁지 않다는 듯이 눈을 흐리멍덩하게 떴다.
“불편할 거 같은데⋯⋯. 그리고 전에 엄청나게 혼났고⋯.”
당연하다. 룰 따윈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싸워 대련자와 코치는 물론이고 관전자에게까지 혼쭐이 났다. 꾸중을 들은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지 “에잇!” 하는 기합 넘치는 소리와 함께 잡초를 굉장한 속도로 뽑기 시작했다. 쏙쏙쏙쏙쏙, 진작에 이랬으면 순식간에 끝났으리란 걸 보여주는 행위. 그게 어떻게 비쳐질 지 생각도 않은 채 가뿐하게 미소를 걸치며.
“아무튼 내 대결 신청을 수락했단 뜻이죠, 선배! 좋아, 부부장 자리는 이제 내 거!”
잡초들을 손에 쥔 채 벌떡 일어난 낙조는 연거푸 내 거다, 내 거 노래를 부르며 방방 뛰었다. 아무런 근거도 없으면서 당연히 자기가 이길 거라는 자신감이 어이가 없다.
이런 육체를 가졌으면서 왜 싸워준다는 낙조의 말에 어이가 없는 한양이었다.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길래 단련된 육체가 곧 싸움을 좋아한다는 의미인지 이해가 안 되는 한양이었다. 서로 사는 차원이 애초에 다른다는 것만은 이해한 한양은 낙조의 대답에 그리 진지하게 대하지 않기로 했다.
"네, 그렇게 재밌으면 후배님이나 많이 하세요. 저지먼트는 탈퇴하시고."
'저 금쪽이를 계속 데리고 있다가는 시말서의 양이 엄청 늘어날 느낌.. 오은영 박사님.. 인첨공에 파견 좀 와주시죠.'
그냥 설득을 포기하고 대답하는 한양이었다.
"네, 불편하면 하지 말던가요. 그러면 저랑도 안 붙고, 나야 편하지 뭐."
꼬우면 하지 말던가를 시전하는 한양이었다. 어디까지나 아쉬운 쪽은 낙조니깐 일말의 양보의 틈 조차 주지 않고 있다. 잡초를 빠른 속도로 뽑는 낙조의 모습을 보고 속으로 한숨을 쉬기 시작한다.
'진작에 저렇게 하지..'
대결을 수락해주자, 부부장의 자리는 이제 본인의 것이라고 기뻐하는 낙조를 보며 이제는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기 시작한다.
"아, 예예. 마음대로 떠드세요. 부부장 자리 뺏으면 부장이랑도 싸워서 부장도 뺏고. 아니면 그냥 바로 부장이랑 붙던가요."
투덜대다가 불쑥 날아온 ‘탈퇴 제안’. 이쯤 되면 자기가 뭘 잘못했나 눈치 볼 법도 한데 이 놈, 상당한 바보다. 아니 그냥 남 눈치를 못 보는 게 아니라 안 보는 게 맞을 테다. 죽 찢어진 눈에 홍채와 동공 구분이 안될 만큼 새카만 눈을 하곤, 눈깜빡임이 퍽 순진했다.
“선배, 농담도 참.”
그러더니 길가에 난 강아지풀 하나를 뜯어 입에 물었다. 평소에 늘 물고 다니는 풀떼기의 시초가 지금 밝혀졌다. 각설하고, 어쩐지 많은 걸 포기한 듯이 변모한 한양의 태도에 눈알을 슬쩍 도로록. 눈치 한 번 봤다가. 찬물 맞은 고양이처럼 화들짝 놀라 한양에게로 우다다 달려갔다. 실로 능력 성향에 알맞은 스피드였다.
“아냐! 쓸게요! 나랑 붙기로 했으면서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게 어딨어어어요.”
다시 반말하면 정말로 붙어주지 않을까 봐 최선을 다해 그의 앞에선 존댓말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내내 되새겼다. 아무튼 스파링 약속을 받아내 덩실덩실 신난 낙조는 한양의 말에 응? 하고 돌아봤다. 그러더니 넋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선배⋯⋯.
(뇌물 안 받아요...) 학기 시작한지 얼마나 되었을까, 정확한 일수는 중요치 않지만 요컨데 그가 사람 얼굴을 욀 정도로 오래 되지 못하였다는게 중점이다. 눈 앞 남학생의 명찰이 있어야 할 부위로 눈이 굴러갔다가 아무것도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이 보이자 경진은 자신 앞에 놓인 얼굴이나 마주봐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입꼬리가 늘어져 무표정을 그리다가 열리면, 담배를 태우다 걸린 삼인의 눈동자는 무언가를 교환하듯 빠르게 맞물린다:
"이름이랑 학년 대주세요."
여전히 별 생각 없는 무표정은 경진이 자신의 발언에 문제점을 못 집었다는 티를 착실히 내 주었다; 본인의 입으로 상대의 신상을 모른다고 좋은 정보 던져준 꼴이라니! 그의 바로 앞에 있던 남학생은 경진이 무언가를 찾으러 주머니를 뒤적거리는 것을 보고, 의심이 확신으로 달달히 변색하니 동그랗게 떴던 눈을 접어 웃어보인다.
신발 밑창 바닥 우악스레 딛는 소리 울려 경진이 고개를 퍼뜩 들면, 그 셋은 이미 화장실 밖으로 먼지 휘날리며 뛰쳐나간 뒷꽁무니만 보인다. 당황한 기색 얼굴에 드러날 틈도 없이 자신도 자리를 박차고 뒤쫒는다. 거기 서! 같은 당연한 반발도 나오지 않는 것이, 달리면서 상황 파악 중이다.
꼬우면 하지 말라는 한양의 말에 낙조는 화들짝 놀라서 빠르게 한양에게 다가갔다. 한양은 또 어떤 귀찮은 말을 꺼내려나..하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게 잘했어야죠."
'아주 싸움에 환장했구만.. 아까까지만 해도 거의 안 쓰던 존대까지 이제는 거의 제대로 쓰면서 말이다. 이거 싸움광을 저지먼트에서 받았어..'
한양의 생각없이 뱉은 그냥 바로 부장이랑 싸우는 것이 더 빠르지 않냐는 말이 예상치 못하게 상황을 해결했다. 그야 당연히 은우가 한양이보다 훨씬 강하니깐. 강한 사람을 찾아서 싸우려는 낙조의 심리를 완전히 공략한 것이었다. 물론 부장의 강함은 압도적이기에 낙조도 감히 덤비지 못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이..?'
"자아..부장이 지금 근데 학교 안에 없거든요? 그러니깐 부장과의 대결은 나중에 하고, 어서 작업 마무리하고 가세요. 지금 이것도 제대로 안 하면 부장이 안 싸워주니깐. 저는 이만 가볼게요?"
대가를 바라지 않은 지불이었다. 내 안에서의 명목은 오히려 내가 아지에게 대가를 지불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지에게서 나중에 또, 라는 말이 나옴으로써 내 안의 명분은 다음을 기약하는 구실이 되어버렸다. 나와 아지의 관계는 그렇게 시작됐고 지금까지 이어졌다. 아마 인첨공이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꺼내준 담요를 요긴하게 사용하는 걸 보고 아지가 기쁜 얼굴로 보고 있었다. 그만 보고 주문한 거나 먹으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굳이 말 안 해도 아지의 손이 포크를 들고 있었으니까.
나도 어제의 일을 간략히 얘기하고 포크를 들었는데 동시에 난 소리로 인해 내가 포크를 떨어뜨린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손은 포크를 잘 들고 있었고, 떨어진 건 아지의 것이었다. 다행히 테이블이라 새로 가져올 필요는 없었다. 거즈 붙인 오른손에 포크를 들고 아지를 보았다. 이미 내 표정은 뭘 그렇게 호들갑 떠냐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는 말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럴 수도 있다는 거, 저번 소집 때 다 들었잖아. 익숙해져. 앞으로 계속 있을 일이야."
이젠 익숙해져야 한다고, 그렇게 말하고 티라미수를 조금 잘라 입으로 가져갔다. 가루가 비강을 자극하지 않게 조심히 입에 넣어 오물거리자 부드럽고 달콤한 크림과 씁쓸한 시트가 서로 어우러지며 뭉개졌다. 왜 예약하지 않으면 먹기 힘든지 알 것 같은 맛. 소집 때 먹었던 그 맛 그대로였다. 잠시 오물거리다 냅킨을 집어 입술에 묻었을 카카오 가루를 닦고 말을 이었다.
"대부분의 제압은 동행한 선배가 해주셨는데, 한 명이 나를 인질로 잡았어. 목을 조르길래, 그래서 그 때 들고 있던 터치펜으로 허벅지를 찔렀더니 바닥으로 내던지더라. 그 다음엔 내 다리도 밟고. 그래도 삼단봉을 실전에서 써 본 좋은 경험이었어."
어제 상황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말을 하는데 순간적으로 손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부상 당한 손에 포크가 무거워 그런 척, 자연스럽게 포크를 아래로 기울였다.
"가벼운 찰과상 정도야. 소독과 약만 잘 처치하면 금방 낫겠지."
그리고 다시 티라미수를 떠먹었다. 손이 또 떨리지 않게 힘 꾹 주어 포크 쥔 손 끝이 조금 새하얘졌다.
>>361 학기 초..라지만 신입생이든 아니든 탈선하는 학생들은 언제든지 있는 법이다. 오늘의 순찰에서도 화장실에서 담배를 태우다 걸린 학생이 3명이나 걸린,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 있었다. 원래였다면 청윤이 직접 나서서 벌점을 매겼겠지만 남자 화장실이기 때문에 일단은 경진이란 후배가 대신 들어가게 되었고, 청윤은 바깥에서 화장실과는 다른 방향인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안에서는 불량배들이 쩔쩔매고 있었고 금방 끝날 것 같아 청윤은 봄인데 벚꽃을 제대로 보긴 했나? 이런 시시콜콜한 생각으로 시간을 때우던 중, 묵직한 발걸음과 함께 몇 사람이 뒤를 휙하고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무슨.."
고개를 돌리기 무섭게 경진도 아무 말 없이 달려나갔다. 아무래도 불량배들이 벌점을 받기 싫어 도주한 것 같다. 청윤도 경진의 뒤를 쫓아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남학생 한 명이 고개를 돌리면 바람빠지듯 들리는 무력한 경고음에 경진은... 안면에 힘 꽉 줘서 겨우 웃음을 참았다. 경진은 달리기가 특출난 이는 아니였지만 담배 찌든 폐보다야, 곧 거리를 좁혀 남학생 중 한명의 뒷덜미를 잡아 자신 쪽으로 당겨버린다. 모멘텀 못 이기고 한 팔 남학생 가슴팍에 감아 안아버리고 풀썩 주저앉아 버리는 꼴이 훈련을 한 듯 하는데도 어설프다. 경진은 곧 청윤 쪽으로 고개를 젖혀 무언가 말해보려 입을 열었지만.
"선배..."
뒷말, 남은 두명은 어쩌냐는 다급한 물음은 때 아닌 웃음기로 흐려진다. 아, 지금 웃으면 안 되는데.... <백색광귀> 가 너무 인상깊어 경진은 얼굴을 찡그린다. 입가 파르르 떨리는 꼴 보니 무표정 내 파묻힌 속내가 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가 말 끝을 흐리는걸 들은 남학생은 경진의 얼굴을 양 손으로 잡아 짤짤댄다.
파일에 무언가 휘갈기는 연구원. 뭐가 또 마음에 안 드는지 눈썹을 꿈틀. 고개를 모로 꺾는 낙조를 발견한 연구원이 윽,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설마, 저거, 또⋯⋯.
“뒤에서 보호받으면서 싸우는 건 내 성미에 안 맞아.”
정답. 어떻게 피드백 시간 때마다 하루도 얌전히 수용하질 않는지.
“그래서. 평소처럼 막무가내로 달려 나가 다쳐서 짐 덩어리가 되시겠다?” “⋯에.” “그래서, 부장과 부부장이 시말서를 쓰도록 일을 늘려주겠다?” “⋯엉?” “그렇게 민폐 덩어리가 되겠다고?” “그, 그렇게까진 안 할 거거든⋯⋯.” “지금처럼 하는 게 그렇게까지 하는 거다. 어서 훈련 재개해.” “예에에⋯⋯.”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카본 섬유가 온몸을 덮어, 직선으로 달려 나갔다가 해제. 일련의 과정을 수 십, 수백 번 다시 한다.
도대체 그 말도 안되는 소문과 별명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자신은 그저 열심히 활동했을 뿐인데 왜 정신 나간 여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거지? 청윤은 그때 자신의 모습이 진짜로 무서웠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기에 분노에 인상을 쓰곤 주먹을 꽉 쥐며 더 속도를 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경진이 자신을 부르다 말고 고개를 숙이곤 잡힌 불량배가 경진의 얼굴을 잡고 뭐라고 하는 것 같기에 인상 쓴 표정 그대로 경진을 보고 말했다.
"힘들면 일단 걔라도 붙잡아두고 있어 봐! 남은 둘은 어떻게든 내가 해볼게!"
그렇게 말은 했지만 어떻게 잡을 수 있을지 좀 애매했다. 방법, 방법, 좋은 방법이.. 때마침 좀 앞 창틀에서 빛나는 페트병이 보였다. 초록색인 걸 보니 탄산수병이나 사이다병 같았다. 평상시였으면 왜 이런 쓰레기를 창틀에 방치해둘까였지만 지금은 저 녀석들을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청윤은 병을 노려서 공기탄을 발사했다. 탄산수병이나 사이다병은 일반 물통보단 확실히 단단했기에 저 녀석들 중 하나라도 발이 꼬이게 만들 수 있었다.
.dice 1 3. = 3 1~2. 병을 맞춤. 3. 병을 못 맞춤.
.dice 1 3. = 3 1. 병이 떨어졌지만 뛰어넘음 2. 병을 밟고 한명이 넘어짐 3. 병을 밟고 한명이 넘어진데다 다른 한명이 넘어진 한명에게 걸려 넘어짐.
교실을 나서던 무렵에 들린 목소리다. 떠날 사람은 모두 떠나 고요한 교내. 창밖에서는 아직 옅은 소란이 남아있고, 점점 멀어지는 걸음 소리가 선명하다. 나를 부른 목소리는 밤그림자에 먹혀 잘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남학생 교복을 입고 있는 것 치고는 높은 미성이 귓가를 간지르고 있었다.
나는 그의 이름을 안다.
"당신이 활시위를 당기는 걸 본 적이 있어요. 그리고 인사를 했죠. 내일 또 보자고."
그림자에 가라앉은 채 소년은 미소짓고 있었다. 그러며 손을 내밀었다. 검은 장갑에 감싸인 손 위에는 흰 종이로 접힌 나비가 하나,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얼른 가져가라는 듯 손을 움직여, 아주 조심스럽게 날개 끝을 잡아들었다.
"내일은 인사해줘요."
그 말을 끝으로 소년은 가벼운 걸음으로 떠나갔다. 그 뒷모습은 무척 하얗게 빛났기에, 어둔 밤하늘 아래서 유독 이질감이 들었다. 흰 종이나비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이름을 안다. 그야.. 중학교 때 같은 부 후배였으니까... 지금까지, 잊고 있었지만. 기억 속에서 어렴풋이 떠오르는 건, 그저 고요했다는 것. 그리고 희었다는 것. ...내일 보면 인사를 할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경이는 낮에 이 선배를 만나고 먼저 말을 걸었지만 선배가 바빠서 눈치채지 못하고 헤어진 일이 있었다. 놀래키려 했으나 그건 실패해서 솔직히 좀 아쉬워하고 있다.
이레는 앓는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에 엎드렸다. 2일에 걸쳐 20년 치 브로콜리, 아니, 평생 먹을 브로콜리를 전부 먹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더 무서운 건 자동으로 생성이라도 되는 건지 양이 줄질 않는단 거다. 조금 울고 싶다.
"쉴 여유도 있니?"
나긋나긋하지만 보채는 듯한 목소리에 이레는 다시 상체를 일으킨다. 너무해요! 그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내뱉을 용기는 없는지라 얌전히 포크를 든다. 이름도 부르기 싫은 초록색 물체를 찍어 한입 물자... 어라. 혀 위에서 잘게 조각난 브로콜리를 몇 번 굴려보던 이레는 말을 하기 위해 급히 삼켜버린다.
"사과!"
많이 축약되었지만 사과 맛이 난다는 의미다. 눈을 가늘게 뜨며 이레의 표정을 살피던 연구원이 곧 고개를 끄덕인다. 드디어 브로콜리 지옥에서 해방이다. 이레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 사이에 연구원은 여전히 산처럼 쌓인 브로콜리를 향해 눈을 돌린다.
"아직 많았는데 남았는걸. 아까워라. 집에 가져갈래?"
"네? 아니, 아니요. 괜찮아요!"
이레는 신속히 양팔을 교차해 엑스자를 만들며 고개를 젓는다. 이제 브로콜리의 비읍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 그녀치고는 꽤나 격한 의사 표현에 연구원이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흔든다. 마침내 돌아가도 된다는 뜻이다!
"오늘도 감사했어요. 안녕히 계세요."
다시 붙잡기라도 할까 봐 후다닥 의자에서 일어났지만, 인사는 잊지 않는다. 예의 바르게 허리를 숙이고는 서둘러 문으로 향하는 이레였다.
>>0 차가운 봄바람이 솔솔 불아와 마음도 한산하게 술렁거리는 첫 날이다. 역시나 한 쪽 머리를 야무지게 흰 리본으로 묶어서 올린 아영은 당당하게 훈련장에 선다. 그러나 걸음걸이와 다르게 속은 꽤 부산스러운 것이 다름이 아닌 전에 받은 통지표 때문이다.
레벨 0이라니. 물론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미루어 짐작하는 것과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언제나 달랐다. 미루어 짐작함은 혹시나 하는 희망에 조금이나마 마음이 둥둥 뜨는 구석이 있는데 직접 진상을 확인하고 느낌은 둥둥 뜬 마음을 풍선 터뜨리듯 빵-터뜨려서 침몰시킨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절망할 리는 없지만 말이야!"
하하 이 몸은 세상의 억까에 18년 간 달련된 경력자 중에서도 숙련자라는 것이다- 레벨 0이면 어떤가? 끝까지 재능없음으로 남더라도 아영은 전혀 딴 길로 샐 마음이 없었다. 제대로 절망하고 엉엉 우는 한심한 꼴을 마음것 보임은 정말로 희망이 없는지 끝까지 노력해보고 하여도 전혀 늦지 않는다. 가벼운 테니스 스커트에 귀여운 꽈베기 니트를 걸치고 부츠를 신은 차림으로 후우 숨을 쉬며 준비자세를 한다.
그럼, 준비하고 쏘세요!!
BANG하고 화려한 할리우드식 효과와 굉음이라도 났으면 좀 좋았으려나. 물론 레벨 0의 능력 조작이니 그런 현상이 생길리가 없다. 하지만 그래도 손맛이 따끔하기는 했다고? 뭔가 조짐이 보이는 것 같다고? 다시 몇 번 진지하게 자세를 잡고 목표물을 향해 레이저 포를 쏘는 연습을 한 아영은 해가 저물고 광원이 보이지 않고서야 포기했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자연스러운 자연현상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물론...건물안에 들어가면 가능하겠지만, 훌륭한 커리어우먼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할 것도 많은 걸!
첫 소집은 어디까지나 그냥 가볍게 서로 얼굴 보고 인사하기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왁자지껄 떠들면서 노는 시간 뿐. 돌아갈 이는 돌아갈테고, 남아서 놀 이들은 놀테고, 조용히 뭔가를 먹을 이는 뭘 먹을테니 굳이 그가 더 나설 일은 없었다. 자신의 자리에 앉아 당고를 하나 잡어서 먹으면서 그는 책상에 있는 서류를 바라봤다. 이런저런 내용이 담겨져 있긴 했지만 당장 급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는 그 서류를 책상 서랍 속에 쏙 집어넣었다.
일단 자리에서 앉아서 음료수라도 좀 뜰까 싶어 그는 냉장고로 천천히 다가갔다. 안에는 여러가지 음료수와 물이 있었는데, 오늘은 제로 콜라나 한 잔 마실까 싶어 그는 냉장고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러다가 그 근처에서 한 여학생을 발견했다.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로 긴 하늘색 장발의 여학생. 아마 1학년 신입이었던가. 입에 미소를 머금으며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마시고 싶은 거 있어? 후배. 나는 제로 콜라나 마실까 하는데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얘기해. 꺼내줄테니까."
이것저것 다양하게 있으니까 얼마든지 부담없이 이야기를 하라고 하며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좋은 TMI지만 이전에 이경이에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1학년을 '후배'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은우가 이름을 바로 못 외웠기 때문이랍니다. (옆눈)
어쨌든 어제 있었던 질문인 situplay>1596967074>947 situplay>1596967074>949에 대한 답 겸 TMI로 청윤이라는 캐릭터가 나오기까지 걸렸던 19시간에 걸친 수많은 수정에 대해 말해보도록 할게요!
시작은 어장이 나왔던 당일 아침부터에요. 참가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시트를 내기로 했지만 딱히 좋은 캐릭터가 없던 전 골머리를 앓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노래를 듣다가 알고리즘에 잡힌 노래를 보고 바로 머리에 팍 꽂힌 듯 캐릭터가 잡혔어요.
그때 잡힌 캐릭터 초안은 브이 포 벤데타랑 약간 비슷한 성향의 혁명가였어요. 성향이 어떤 성향이냐면 정부를 싫어하고 권위를 거부하는 강경한 성향이었는데 어쨌든 이때 캐릭터 배경을 말해보자면 바깥에서 이 사상에 경도되어 이곳에 들어와 능력을 갈고 닦으며 바깥과도 몰래 소통하며 혁명을 노리는, 그런 캐릭터였죠.
그래도 그때부터 혁명가스러운 폭탄 관련 능력보단 총알을 통한 암살이 현실적이기도 하고 "한발의 총알로 민중들의 피 한방울을 지킬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어!" 같은 대사가 제 이미지에 박혀있었기 때문에 일단은 총알쪽 능력으로 가려고 했지만요.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권위를 싫어하는 캐릭터가 왜 저지먼트에 들어가서 권위를 행사하려고 하는걸까요? 네, 제가 설정을 모카고 자체의 이야기로 잘못 판단했던거에요. 그러면서 오히려 스킬아웃 쪽에 가까운 캐릭터를 잡아버린거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곤 기운이 빠져버린 저는 그냥 참가를 포기하려고 했어요. 그렇게 무기력하게 있던 찰나, 가면라이더 제로원에서 봤던 두 캐릭터, 이카즈치랑 암살짱이란 캐릭터가 생각났어요. 마음에 들어서 상판에서 어떻게든 써먹어보고 싶었던 애들인데 결과적으로 양날검은 마음에 안 들어서 패스, 전기 능력과 암살짱의 동작 정도만 기억해두기로 했죠.(전기 능력은 시트를 보시면 알겠지만 결국 정해지지 못했지만요)
그래도 여기서 기운을 얻어 아까 말했던 대사를 조금 수정해 공리주의란 아이디어를 얻고 이를 기반으로 즉흥적으로 캐릭터를 짜기 시작했어요. 픽크루에 맞추기 위해 성별은 여성으로, 능력은 여전히 총알로, 그리고 배경은 캐릭터를 한번 갈아 엎은 것의 영향인지 자신이 꿈꾸던 장래희망을 잃고 방황하는 캐릭터가 되었어요. 요약하자면 어장 설정을 잘못 이해하고 혁명가 캐릭터로 가려다 실패, 포기하려다 다른 캐릭터에게서 약간 설정을 가져오고 다시 의욕을 얻어 만들었다! 가 스토리로 볼 수 있겠네요.
공식적인 소개 시간이 끝나고 나니 여느 파티와 다를바 없는 느낌이 되었다. 그렇다. 이레가 가장 자신없는 시간이 온 거다. 그런 주제에 돌아가지 않고 굳이 자리를 지키는 건 역설적이게도 이런 분위기를 퍽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앙은 부담스럽다. 그렇기에 사람들을 지켜볼 수 있되 눈에 확 띄지는 않는 애매한 위치를 고수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누군가 가져왔던 것 같은 당고를 먹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던 찰나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돌아본다.
"네? 아, 어, 저요?"
반사적으로 되묻고는 주변을 살핀다. 저밖에 없다. 오. 아무래도 저를 부른 게 맞는 모양이다. 이레는 큰 대답이라도 하는 마냥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저는 오렌지 주스나... 주스 같은 거면 다 좋아요."
오렌지 주스가 없으면 어떡하지? 그러면 상대가 곤란해질 수 있잖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부터 걱정하느라 말을 하다 말고 선택지의 폭을 넓혔다. 그러고는 가만히 꺼내길 기다기도 뭣했는지 더듬더듬 말을 이어간다.
"그, 부장님셨죠? 저는 이레예요. 그러니까 1학년이고... 음..."
이미 자기소개를 한 이후였다는 걸 잊어버린 건지, 아니면 그저 적당한 화제를 떠올리지 못해 시간을 끄는 것뿐이지도 모른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지. 말주변 없는 제 자신을 탓하며 이레는 애꿎은 와이셔츠 자락을 구겼다.
자기 소개는 있었지만, 문제는 만난지 얼마 되지 않다보니 아직 얼굴과 이름을 제대로 매칭하지 못했기에 그는 그녀를 후배라고 칭했다. 어쨌건 여기에는 후배가 많았으니까. 거의 대부분이 자신보다는 후배였기에 이렇게 칭하면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어쨌든, 주스를 청하는 그녀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냉장고를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제로 콜라가 담겨있는 패트병 하나, 오렌지 주스가 담겨있는 패트병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는 근처에 있는 컵 두 개를 챙겼고, 우선 오렌지 주스를 컵 하나에 가득 담은 후에 그녀에게 내밀면서 방금 들었던 말에 대답했다.
"맞아. 부장이야. 저지먼트 부장. 에어버스터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그쪽은 너무 중2병 같으니까 패스해줬으면 좋으니까 부장으로 부탁할게. 아무튼 이레? 아. 맞아. 이레였어. 이레. 맞아. 이레."
뭔가 인상 깊은 이름이었기에 눈에 들어오는 이름 중 하나였던만큼 그 이름 자체는 나름대로 입에 익었지만 그녀와 바로 매칭은 하지 못했는지 그는 미안하다는 듯 쿡쿡 소리를 내며 웃으며 사과했다.
"미안해. 아직 너희들의 이름을 다 외우진 못했거든. 최대한 빨리 외우려고 하긴 할텐데, 올해 들어온 이들의 이름과 얼굴은 아직 잘 매칭이 안되어서 말이야. 아무튼, 저지먼트 생활. 쉬운 것은 아닐텐데 열심히 하길 바랄게. 혹시나 힘든 거 있으면 바로바로 얘기하고. 얼마든지 도와줄테니까."
웃음소리를 작게 내며 그는 자신이 마실 컵에 제로 콜라를 한가득 따랐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연 후에 다시 두 패트병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건 그렇고 많이 긴장한 것 같은데... 내가 무섭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뭐, 무섭다고 해도 납득은 할 수 있지만 말이야. 퍼스트클래스니 말이지."
여로주 잘 다녀오세요! >>556 만약 그랬다면야 재미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진행 자체가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아서.. 저지먼트만 만나면 "저 권력의 개들!" 이러면서 소화기 뿌리고 기술쓰고 도망치고 이러진 않겠지만 저지먼트랑은 상종을 안할 가능성이 높죠. >>557 하하.. 청윤이랑 정하도 한번 일상 돌려봐야 할탠데 말이죠?
제 앞에 음료가 가까워지자 그제야 가여운 와이셔츠를 놓아주었다. 미세하게 남은 주름은 긴장의 증거리라. 오렌지 주스가 담긴 컵을 양손으로 쥐자 곧바로 차가운 온도가 느껴진다. 냉장고 안의 온도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럴 수 있죠. 사실 저도 부장님이랑 부부장님이랑 또, 어, 이렇게밖에 못 외웠네요."
왼 손을 컵에서 떼고는 한명씩 말할 때마다 손가락을 하나씩 접는다. 결국 최종적으론 두 개밖에 못 접었지만. 아무튼 이레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작게 주억거리며 다른 이들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꽤 많은 수다. 불참한 이들까지 더한다면 훨씬 많아질 것이다. 가뜩이나 막 고등학교 생활이 시작되어 같은 반 아이들 이름도 외워야 하는데, 거기에 저지먼트에 공예부까지. 시험공부를 할 때와 같은 압박감이 느껴지는 건 착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네? 아뇨. 그런 거 아니에요! 딱히 부장님 때문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고..."
긴장을 했다는 것 자체는 거짓이 아니나 원인은 명백히 달랐다. 평소 큰 소리 내는 편은 아니나 이상한 오해로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건 싫었다. 이레는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까. 나는 원래 모든 상황에서 긴장을 한다? 원래 성격이 이렇다? 아. 무어라 설명해도 별로인 것 같다.
"뭐랄까... 그냥 다들 처음 만나서 긴장한 것뿐이에요. 그러니까 조금 더 있으면 괜찮아질 거예요..."
>>586 ...물론 햇빛을 받아 피부가 타는 걷은 반사된 빛으로도 가능합니다. 겨울에 스키장을 다녀오면 여름날 못지않게 얼굴이 타죠. 결국 여름철에는 강한 직사광선을 받고, 겨울철 스키장에는 눈에 반사된 햇빛에 의해 얼굴이 타는 건 맞습니다.” “그래. 그러니까 달빛에도 피부가 탈 수 있지 않겠냐는 말일세!” “물론 달빛도 햇빛이 반사된 빛이라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달빛으로는 피부가 타지 않습니다. 반사된 햇빛의 양이 피부를 태울 정도로 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허 생원은 자기의 생각에 맞는 답을 내놓은 동이가 괜히 듬직하게 여겨졌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동이의 말에 집중했다.
“그리고 어르신, 스키장 눈에 들어온 햇빛은 85%나 그대로 반사되거든요. 그러니까 햇빛을 직접 받는 것처럼 피부에 영향을 많이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달에 들어온 햇빛은 약 7% 정도만 반사돼요. 달의 표면에 있는 암석이 햇빛을 많이 흡수하기 때문이죠. 그러니 달빛에 얼굴이 타기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이언스 타임즈 달빛에도 얼굴이 탈까?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B%8B%AC%EB%B9%9B%EC%97%90%EB%8F%84-%EC%96%BC%EA%B5%B4%EC%9D%B4-%ED%83%88%EA%B9%8C/ 에서 발췌
갱신이야~ 잠깐 위를 훑어봤는데, 청윤이의 모티브랑 설정이 보이네~ 응응,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을 캐릭터에게 녹여내는 거, 되게 재치있고 멋지다구 생각해~ 청윤이의 캐릭터성도 확도하니 매력을 더하는 것 같고! 이런 비하인드 정말 좋아하는데 마침 딱 그런 멋진 사람들이 가득한 어장에 있어서 행복한걸~🥰
신입들도 안녕~ :D 어장의 신비주의 초월적 존재?를 맡고 있는 희야주랍니다~ 잘 부탁해~
그리고~ 늦었지마는~ 희야의 프사는 기본프사랍니다... 한줄소개는 달리 없고 프로필뮤직 딱 하나 있음... :3 https://youtu.be/Ke_7KQ_b_rM?si=F3xITMawvH0jrvS- 지금 희야가 꽂혀서 듣는 이거......인데 프뮤는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바뀔 거야~ 맨날 듣는 노래가 바뀜~
사람을 저장하는 건 그냥 담백하게 저장한대요~ 의외지? 삼촌도 그냥 '법적 보호자' 이렇게 저장해뒀음....🤦♀️ 그냥 인간을 너무 흥미로워서 그대로 두고 관찰하는 생명체로 보는듯...
딱히 자신 때문이 아니고 그냥 처음 만나서 긴장한 것 뿐이라는 말에 은우는 가볍게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조금 걱정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저지먼트는 아무래도 여러모로 험한 곳이었다. 물론 작년에는 분위기도 그랬지만, 올해는 그러지 않을 거라고 쳐도 현장이나 실제로 근무를 하다보면 여러모로 험한 분위기를 많이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긴장하고 있는 이 여학생이 차후 잘 해나갈 수 있을지는 조금 걱정일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에 대해서 굳이 언급하진 않으며 그는 제로 콜라를 마시면서 작게 웃음소리를 냈다.
"확실히 첫만남은 긴장되고 그러지. 나도 부장 자리에 있는거, 솔직히 많이 긴장되고 그러니 말이야. 올해 나는 저지먼트 부장으로서 잘 해나갈 수 있을지라던가..."
이어 그는 컵을 내려놓고 살며시 제 심장 부위 부근을 무의식중에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그러다 인식했는지 그는 빠르게 손을 아래로 내렸다.
"어쨌든 올해 1학년들은 개성적인 애들도 많고, 밝은 애들도 많은 것 같으니 금방 서로서로 친해지지 않을까 싶긴 한데."
거기서 말을 잠시 끊고, 그는 잠시 내려놓았던 컵을 다시 들어올린 후에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도 혹시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찾아와주면 고맙고. 아! 그러고 보니 내 동생... 그러니까 세은이도 1학년이거든. 같이 잘 지내주면 고마울 것 같은데. 조금 붙임성이 없어서 툴툴거릴 때가 많긴 한데, 그래도 나쁜 애는 아니야."
달콤한 거 사주면 되게 좋아해. 쟤. 저편에서 과자를 먹고 있는 세은에게는 들리지 않게 그는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리듯이 이야기했다.
또박또박 한자씩 강조하며 류화는 불퉁스레 그렇게 말한다. 그 껄렁한 걸음걸이에 류화는 의심을 더한다. 그러하니 행실이 어떨지 잡아내고 싶은 생각일까. 몰래 미행하며 가끔은 코너에 숨어 얼굴만 내밀고서, 한동안은 들키지 않고 당신을 뒤따랐지만. 이내 눈치챈 듯 돌아서는 당신과 시선이 마주치자 류화는 깜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떠낸다. 숨기에는 이미 들켜버렸고, 당황하며 말을 고르던 류화는 헛기침을 하고선 당당히 제 손에 들린 봉투와 집개를 들어 올려 보인다.
"쓰레기 주우러 가는 거예요. 옥상이라고 쓰레기가 없을 건 아니니까요."
미행하는 게 아니라, 응. 쓰레기 주우려고 하는 거니까.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하고선 류화는 슬쩍 당신의 눈치를 살핀다.
>>0 그렇다. 꽃다운 열일곱의 나이와는 상관없이 볼일이 급해 막 벗어던진 자켓마냥 바닥에 아무렇게나 퍼질러져있는 아가씨가 있었다. 침대가 없는 것도 아니거늘 구태여 자신의 머리카락을 토퍼삼아 누워있던 것이다.
"쵹, 쵹."
이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맞으니, 마치 거미에 물린 뒤로 수상한 이능력을 얻은 어떤 소년처럼 무언가를 날리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그래봤자 손목과 손은 엄밀히 다르겠지만 내뻗은 경로를 따라 그것이 오갈때마다 벽에 걸려있던 물고기 모형은 미리 입력되어진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별안간 안광을 번쩍이며 퍼덕이기도 하는 등 열일곱 소녀의 모진 장난에 고통받고 있었으니...
"쵹... ㅊㅛ...앜!"
내지른 외마디 비명을 따라 그녀의 시야를 가린 것은 어째선지 구수한 탄냄새가 나는 물고기 모양 벽걸이 장식품, 그것은 그녀의 업보였다.
-띵딩동 링딩동 동... 동동... 이이이이잉...-
단말마 치고는 너무나도 맥아리없는 소리, 일찌기 수명을 다한 기계는 다들 그렇게 싫어한다는 조기구이마냥 주둥이를 쩍 벌린 채로 그녀의 얼굴 윤곽을 따라 활처럼 휘어져 있었다.
"......"
자신의 눈앞에 있던 그것을 한켠에 치우고나서야 사태를 파악했던 그녀는 상체를 일으키더니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것을 주섬주섬 집어들었다.
저 후배라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지. 류화는 그런 네 말에 아, 하고서 집개를 들어 올려 당신을 가리키며 폭력! 하며 외치려다 입을 다문다. 저지먼트 완장을 치는 것에 앓는 소리를 내고서, 들어 올린 팔을 내린다. 선도 활동이라니 뭐라 할 수도 없고. 앓는 소리를 내다간 소심하게 말한다.
"선도 활동. 단어 선택 조심하시죠."
투덜 거리고서 류화는 당신을 따라 옥상에 올라선다. 당신을 따라 올라서면 류화는 누가 있던, 없던, 당신의 행동에 관심이 없는 척. 바닥에 버려졌을 쓰레기를 주우며, 당신이 무슨 행동을 해올지 슬쩍 눈만 굴려가며 지켜본다.
성숙하지만, 아직 젊은 티를 벗지 못한 목소리가 정적 속의 보건실을 울렸다. 그리고 그 가운데 앉아 있는 여자애... 바로 나 한세나는 천적이라도 만난 개구리처럼 잔뜩 경직되어서는 정좌로 앉아있었다.
"그 '통곡의 왼팔'이라는 학생의 공을 받다가 팔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그 말이니?" "에에, 받은게 아니라 친 거지만... 예에, 아무튼 그렇슴다..."
긴장이 들어 기세가 팍 꺾인 목소리로 나는 말했다. 그렇지만 틀린 정보는 정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그것이 내가 지금 여기 앉아있는 이유이기도 하니 떳떳할 수가 없었다. 무얼 숨기랴, 야구로 놀고 돌아온 뒤에 왜인지 오른 팔이 뻐근해서 찾아와봤더니 자칫하면 인대가 주욱 늘어질 뻔했댄다. 나중에 현장에서 구경하고 있던 녀석에게 들어본 말로는 공의 속도는 시속 156km였다고 한다. 당시에 공을 날려버릴 때는 그렇게 빨라보이지 않았는데... 막상 숫자로 들어보니 그야말로 엄청나다는 느낌이다. 잘도 그런걸 기세로 쳤구나, 나... 왠지 뿌듯해질 무렵 다시금 힐끔 앞을 보니 보건쌤은 여전히 내 마음을 해부 해서 보는 듯한 날카로운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그 즉시 깨갱하고 시선을 깔고 말았다... 여, 역시 안 믿으시는 건가? 역시 그렇겠지...~ 아하하, 뭐 당연한 일이다. 그도 그럴게 고등학생끼리 야구하다 이렇게 되어버리다니, 아마 내가 쌤 입장이어도 그럴―
"그 애들이랑은 당분간 놀지 않도록 하렴. 걔들이랑 놀다가 내게 응급실 판정 받아간 학생들이 한 둘이 아니니까. 그러니 넌, 운 좋은 줄 알아." "엑."
...엑!? 보건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상상외의 것이라 놀란 눈을 했다. 오히려 이렇게나 진지한 말로 경고해준다고? 아, 아니. 그 전에 이 쌤도 녀석들을 알고 있다니... 그 정도로 악명 넘치는 녀석들이었다는 말인가?
"그, 그럼 위험한 거 아님까?!" "응, 위험하지." "하지만... 모르겠슴다. 그러면 이 학교는 어째서 놔두는 검까." "왜냐니, 바로 너처럼 그 애의 공을 막아내고 싶어하는 애들이 있으니까. 어째서인지 야구 좀 한다 싶은 애들 사이에서 명물 취급이 되어서는, 정말 곤란한 입장이야 나도."
그...거야 그렇다만은. 으음~ 여기서는 반박을 해야 할 거같은 기분인데 이렇게 나오시니까 할 말이 딱히 없어졌다.
"아무튼, 다행히 심한 상처는 아니지만... 우리 야구 애들이랑 놀 때는 조심하도록 하렴. 심성은 착하지만 경기만 들어가면 눈에 뵈는게 없어지는 애들이니까. 알겠니?" "네에에이-" "대답은 성실하게 한 번만. 이번 일, 너희 부장에게 일러버린다?" "넵. 죄송함다. 부디 그것만은."
큭, 사람까지 담궜다는 소문이 도는 부장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다... 전학 오자마자 문제아로 찍히는 건 아무리 그래도 사절이니깐. 그렇다고는 해도, 눈 앞의 보건 선생님은 비록 걱정되는 눈치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지만 오히려 나는 속이 후련한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인정해야겠다. 사실은 전부터 속에서는 뭐랄까, 불안과 초조...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 어두운 것들이 응어리져서 자꾸 요동치는 느낌이 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걸 해소하려면 역시 몸을 움직이는게 그만이겠다 싶어서, 그녀석들의 야구에 한 번 껴본 것이 이번 부상에 대해 연유라면 연유다. 그러니 선생님의 말대로 조금 부주의해진 것도 아마 사실일 것이다. 그렇지만 내 마음... 그건 단지 아득히 달라져버린 새 환경에 놓여진 이방인의 스트레스 같은 것일 뿐인 걸까. 혹은, 그것도 아니라면...
"―누워있다 가도 좋지만, 어차피 바로 나갈 생각이지? 최근 전학와서 신나는 것도 이해하지만, 조금은 가라앉히도록 해. 안 그러면 다음은 진짜로 응급실 행이야."
생각에 잠긴 나를 깨우듯, 보건쌤이 말을 걸어 와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아하하~ 들켜버렸나☆ 이야, 역시 쌤같은 어른에겐 못 이기겠슴다. 그럼 이만 가보겠슴다!"
확실히 그렇다. 그렇게 심각하게 아프지도 않은데 보건실을 차지하는 것도 조금 그렇겠다 싶어서 금방 떠날 생각이었으니까. 그런 것보다는 역시 인첨공을 좀 더 봐두는 편이 좋겠다. 나는 한 켠에 기대어 둔 내 우산을 챙겨서는 금방 자리에서 일어난다.
"읏샤- 봐주셔서 감사함다~ 앞으로도 오게 되면 잘 부탁드림다 쌤!"
그렇게 총총걸음으로 나가버린 세나를 보며, 보건선생은 한숨을 푹 내쉰다. 방금까지 한 소리들은 전부 까먹은 듯이 또 오겠다는듯이 말하다니... 여러모로 글러먹은 아이가 와버렸다고, 그렇게 생각한다.
이레는 무례한 일이라는 것도 잊은 채 찬찬히 은우를 살폈다. 어쩐지 생소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 부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당당한 모습만 보여주었기 때문인지 이 사람도 긴장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아마도 부장이니 퍼스트클래스니 하는 직책이 뒤따른 것도 한몫 했을 거다. 결국 같은 고등학생임에도. 하지만 진짜 그런가? 긴가민가한 생각에 스스로 되물었지만, 당연히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잘 하실 거예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럴 것 같달까. 아까 자기소개할 때도 잘 이끄셨고..."
들릴 듯 말듯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고는 컵을 들어 주스를 몇 모금 마신다. 냉장고에서 나온지 조금 되었음에도 아직 찬기가 남아있다.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 입앗에 맴돌자 한결 기분이 나아진다.
"정말요? 아무때나요? 그치만 귀찮으실 텐데... 정말 별것 아닌 일로 찾아가버릴 수도 있고..."
빤히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알면서도 한번 더 물어보는 것은 오래되었으면서도 나쁜 습관이었다. 상대의 입에서 괜찮다는 확언이 나와야 그제야 안심이 되니 어쩔 수 없다. 우물쭈물 말끝을 흐리다가 세은의 이름이 거론된 것과 동시에 저절로 시선이 옮겨간다. 이 사람, 저 사람 사이를 방황하던 눈동자가 곧 보라색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에게 고정된다. 최세은, 1학년, 단 것. 최세은, 1학년, 단 것. 최세은... 잊어버리지 않도록 머릿속으로 다섯 번 정도 반복해본다. 무려 가족이 알려주는 팁이니 정확성 만큼은 의심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러고 보니 새학기에 친해지는 법이라는 이름의 책에서 먹을 걸 나누어주라는 항목을 읽었던 것도 같다. 대충 읽고 덮어놨었는데 어쩌면 꽤 쓸만한 책일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기숙사에 돌아가면 다시 읽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꼭 기억할게요! 그런데, 그러면, 음... 부장님이 좋아하는 건 뭔가요?"
속삭이는 목소리에 이레 또한 작게 속닥거리는 모양새가 된다. 별것 아닐지라도 이야기 다 듣고 동생 것만 쏙 챙기기도 그런지라 예의상 물어보고 싶었다. 물론 몰래 알아낸다는 선택지도 있으나, 이레 사전엔 없었다.
그래도 부장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은우는 정말로 가볍게 대답했다. 생각해보면 처음 하는 것 치고는 나름 잘하지 않았나 생각을 하나 역시 자신만큼 잘한 인물, 한양 쪽으로 그는 눈길을 살짝 돌렸다. 부부장이기에 믿음직하고, 여차하면 빈자리를 맡길만한 인물. 물론 다른 동기들도 믿음직하지만 그래도 역시 부부장의 자리엔 저 애밖엔 없다고 생각하며 그는 괜히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별 것 아닌 일로 찾아와도 상관 없는데? 바다에 사람을 빠뜨렸다는 내가 무섭지만 않다면야. 오히려 나로서는.... 후배들과 잘 지내고 싶거든. 이 자리에 있으면 워낙 멀리하고 대하기 어려워하는 이들이 많아서 말이야."
이번엔 희야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은우는 괜히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그런 질문이 나올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하지만 딱히 숨길 일은 아니라고 그는 판단했다. 사실이기도 했고, 그때 한 일이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더더욱. 어쨌든 나름대로 진실되게 이야기를 하는 와중 갑자기 자신에 대한 물음이 나오자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좋아하는 거? 오호. 이렇게 물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설마 이런 질문이 되돌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그는 조금 놀랐다는 듯 두 눈을 깜빡였다. 이어 그는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싱긋 웃었다.
"탄산수. 그리고 최근에는 빵이나 쿠키. 요즘 베이킹에 푹 빠져서 말이야. 언제 한번 기회가 되면 빵이건 쿠키건 만들어서 저지먼트 애들에게 나눠줄까 싶긴 한데... 코뿔소 좋아하니? 너는?"
카메라가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카메라의 내부를 건드려서 설정값이 우연을 배제한 다른 값으로 변화한다는 것. 혹은 카메라의 구조를 연산한다거나.를 생각했을 것이니까. 하지만 떨어뜨렸기에 변수가 너무 많아졌다. 하지만 떨어뜨린 것이 나은 일이었을 것이다. 카메라를 주워들고는 간략한 사과를 건넸습니다.
"죄송합니다. 순간적으로. 던져버릴 뻔했네요." 형편없이 깨진 거울 앞으로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맞추라는 건 아닐 거고요." 깨진 거울을 장갑도 없이 맞추라는 건 손을 베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늘의 커리큘럼은 상담에 가깝게 하여 안정을 중점으로 하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 눈을 지긋이 감았다 떴다. 와장창.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일 것이다.
"손. 올려두세요." 바지자락을 꽉 붙잡아 더 새하얗게 된 손을 올려놓으면 조금 떨리는 것 같습니다.
"....사진을 찍어 다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천천히 심호흡하고." 하지만 꽤 괜찮아졌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혜승은 손가락을 들어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입을 열었다 다시 닫았는데 뻐끔거리는 붕어같다는 인상이 강했다. 무언가 말하려다 말았다는 사실이 명백했다. 실은 아지의 능력을 잘못 이해해 엉뚱한 질문을 해버렸는데,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말한 아지 덕분에 적당히 얼버부리고 넘어가려는 심산이었다.
"저, 정답이다!"
어떤 오해를 했는지 설명하자니 구질구질해져서 그만두기로 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아무튼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는건 백해무익하다!
"그렇다고 내가 네 능력에 대해 확신할 수는 없지. 굳이 능력때문만이 아니라도 신체를 단련하는 건 중요해. 능력에만 의존하는 건 안정적이지 않아. 알겠어? 네가 검도부에 들어와야하는 첫번째 이유다."
길게 설명하자면 총 8가지 정도의 이유가 더 있다. 혜승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눈치껏 입을 다물어서가 아니라 검도부에 도착해서 일뿐으로, 혜승이 검도부에 들어서자 남아있던 학생들이 엉거주춤 일어났다.
"1학년이다!" "뭐?!"
칼보다는 총이 더 유용해진 작금의 시대에, 칼은 과거의 퇴물이 된지 오래... 그 곳에서도 낭만을 울부짖으며 검을 드는 사람들이 있다. 곧 폐지될 '해삼 관찰 동아리', '감귤 포장 연구회', '창의 미래 설계 동아리ㅡ일명 제태크 동아리'에 비해 상황이 좋다지만 신입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
"자, 편하게 구경해."
대충 손을 흔들어 인사를 받은 혜승이 아지를 의자에 앉혔다. 아지가 의자에 앉자 자연스럽게 누군가는 차를 내오고, 또 누군가는 과자를 꺼내왔다. 검도부원들은 검 한 번 휘두르고, 아지를 한 번 보고, 검을 한 번 휘두르고, 아지를 한 번... 이른바 자린고비 기법이라고도 한다. 구경만 하러온 아지가 자연스럽게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
...하긴 앞으로 여자랑 단 둘이 있다가 번호 따여서 그 여자가 헬프를 칠 일이 얼마나 되겠냐만....진짜 얼마나 되려나. 천재일우아냐? 진짜 안나오는 상황이긴 하네.
"보통 빵집은 다 이런분위기 아니에요? 빠X바X트나, 뚜X쥬르같은거 아닌이상?"
어느새 도착한 빵집. 약간 앤틱하고 아늑한 분위기는, 우리를 반겨준다. 통 유리문을 열어 들어서자 주인 할머님이 우리를 반겨준다. 자연스레 인사를 받고, 앞치마와 쟁반을 가져와 쟁반 위에, 케이크와 에그타르트 하나를 올린다. 으음...너무 행복해서 고민인데...
턱에 집개 손잡이를 받치고 고민하고 있자, 어느새 동행이 있다는게 새삼 생각나, 같이 온 동행자에게 뭘 먹을지 묻는다.
"으음... 태진선배는 뭐 좋아하는 빵이나 과자 있으세요?"
저번엔 단팥종류 좋아헀으니까, 몽블랑도 좋아하려나?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미지 참고용 이미지는 논실커피 로스터스,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ohory&logNo=223131270577&redirect=Dlog&widgetTypeCall=true 에서 가져왓슴다.
초봄에도 서리가 내려앉는 법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4월에도 눈이 오곤 했으니, 날이 쌀쌀한 것은 당연했다. 일교차가 크고 여전히 겨울같은 변덕스러운 바람이 부는 늦저녁이 되니 희야는 어딘가 나갈 때마다 연구원들의 각종 성화에 꽁꽁 싸매 봄날의 펭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그랬다. 잠깐 과자가 먹고 싶다고 편의점에 다녀오려 하니 희야를 발견한 연구원이 어디선가 가져온 목도리와 코트로 몸을 꽁꽁 둘러매지 뭔가! 희야는 뒤뚱뒤뚱 불만스럽게 연구소를 나서다,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으응-?" "무슨 일이니?"
입구의 보안요원은 정장 차림이지만 쌀쌀한 저녁 날씨 탓에 저도 모르게 코를 훌쩍였다. 오늘도 봄 펭귄이 된 희야를 보며 말했을 때, 희야는 연신 고개를 기울이며 자신에게 생긴 변화를 탐구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상-하-다- 한 글자씩 또박또박 뱉으며 골몰하던 끝에, 찬바람이 휭 불어닥칠 적에 희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춥지가 않아요-" "응?" "이거- 레벨이 올라서 그런가봐- 이거 봐요. 연습 많이 해서 이제 이건 잘 하거든."
희야는 양손을 펼쳤다. "짜잔." 그러자 손바닥에 살얼음이 오르더니, 그 차가운 것을 자신의 볼에 연신 비벼대기 시작했다. 보안요원은 그 모습에 혹시라도 저도 모르게, 몸을 파르르 떨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데- 하나도 안 차가워요. 뭐, 애초에 못 느꼈지만 이건 조금 달라." "그러니?" "응. 그러니까 과자 말고 아이스크림 사러 가야지." "……이 날씨에, 말이구나." "그쪽 몫도 사올까요?" "아니, 괜찮아. 어서 다녀오렴, 저기 소장님께서 목도리 하나 더 들고 오시는 것 같은데." "아, 여기서 더 끼면 무거운데. 어서 다녀올래요- 이따 봐."
뒤뚱뒤뚱 걷는 걸음 너머로 새로운 상식을 깨달은 희야였다. 이게 레벨 1의 세계라면 엘리트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그러니까 내일은 아메리카노 마셔야지. 아이스로, 컵홀더 없이.
아지주는 어떤 오해를 했는지 궁금하다!! 어쨌든 아지는 모르는 사실이니 넘어가고 만다. 지금 이 소년에게는 자신이 맞혔다는 사실만이 기쁘게 다가올 뿐이다.
"....네에~"
사실 능력에도 의존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건 넘어가도록 하자......... 그러나 사람이 말하다가 마는 것은 사람을 궁금하게 하는 것으로 두번째 이유를 무척 궁금해하면서 아지는 검도부에 도착한 것이다.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하며 밝게 인사한다. 처음 입부를 권유했던 검도부원은 어깨에 뽕이 찬 채로 아지를 소개한다. 저지먼트 소속의 입부 예정자라며...
"아직 예정은 아닌데에"
하는 아지의 말은 조용히 묻혀버린다. 의자에 인형처럼 앉혀져 감사의 말을 하고 다과를 맛보며 사람들의 움직임을 구경한다. 멋지다~~ (하지만 굳이 내가 하고 싶진 않은데 어떡한다~~)
"...... .. ... ..."
그러나 그것도 잠시!! 검을 휘두르고 고인물들이 뉴비를 핥듯 자신을 번갈아보고 있다는 걸 느낀 아지는 무척 곤란해진다!! 아지는 혜승에게 소곤소곤 목소리를 줄여 얘기한다.
"저어기.... 선배님? 혹시 시범 같은 걸 자연스럽게 보여 주시면...."
중요한 건 자연스럽게!! 였다. 여기까지 끌고 온 건 역시 혜승이나 다름없었으니 조용히 부탁해본다.
자신들이 주먹을 쓰게 되는 경우에는 상대가 반항하는 경우 외엔 거의 없었으니. 남이 들으면 크게 오해할 말일까. 정말 교화나, 선도, 아니면 사랑을 담은 맴매라고 하던가. 그런 말 때문에서라도 류화는 더더욱 의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문을 발로 차는 것엔 불만스럽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제 생각과 다르게 아무도 없음에, 당신의 불량스러운 모습을 볼 수 없음에 아쉬워하던 때. 류화는 쉬겠다는 당신의 말을 듣고선 입술을 비죽 내밀고선 말한다.
커리큘럼을 따르는 일에는 자신이 있다. 모범생 특성상 하라는 것을 묵묵히 하는 것에 재능이 있었다.
"혜승 학생, 오늘은 여기 앞에 있는 금속들을 차례대로 액체로 변형시켜볼래요?"
플라스크 위에 놓인 금속들. 질량은 같아도 제각각 색깔과 광택이 다르다. 금속을 깎아 정교한 문양을 만드는 것보다는 차라리 속성을 변화시키는 게 훨씬 쉬웠다. 액체의 모양을 바꾸는 건 또 다른 일이지만ㅡ유체 형태는 응집력이 없어 컨트롤이 까다로운 편이었다.ㅡ 이번 커리큘럼은 그저 고체에서 액체로 바꾸면 되는 간단한 실험. 혜승은 제 앞에 놓은 고체를 하나 둘 액체로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혜승은 금속마다의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다.
"금속 종류는 상관 없나 보네요?" "금속의 종류보다는 금속의 비율이 더 중요한가보군."
그 이후로도 실험과 관련한 질문이 이어졌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점은 없었는지, 합금 물질을 다루는 건 얼마나 힘들지 등등... 어떤 것을 염두에 두고 묻는 질문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레벨업을 하면 도움이 많이 될 능력이니 꾸준히 노력하길 바란다는 이야기로 일정이 끝이 났다.
이레는 눈을 크게 떴다. 바다에 사람을 빠트렸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는 사실 잊어버리고 있었다. 오. 방금 약간 마음속의 거리가 한 1m 정도 멀어진듯한 기분이 든다. 물론 굳이 그 이유에 대해 캐내고 싶은 호기심 따위도 가지고 있지 않다. 얌전히 컵을 내려보며 그가 하는 말을 경청했다.
"저는요. 뭐랄까. 보통 처음 본 사람은 좀 어려워하는 편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저랑도 잘 이야기하고 있으시니까, 음, 그러니까, 분명 다른 분들과도 잘 하실 수 있지 않을까요? 그냥 그렇다구요..."
사실 잘 대화가 이어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확신과 불확신 사이에서 말끝이 늘어진다. 그러고는 탄산수라는 말에 그가 들고 있는 컵을 힐끔 보았다. 콜라도 탄산이지. 탄산음료 전반을 좋아하는 걸까? 생각하며 주스를 한모금 더 마셨다. 당연하게도 오렌지주스에는 탄산이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베이킹이요? 어떤 걸 만들어요? 몽블랑 같은 것도 만들 수 있나요?"
취미 이야기로 넘어가니 드물게 이레의 목소리 톤이 올라간다. 베이킹은 그녀의 주 종목은 아니었으나, 어느정도 관심을 지닌 분야이긴 했으니. 그걸 할 줄 안다는 이가 눈 앞에 있으니 흥미가 이는 것은 당연했다.
"코뿔소요. 코뿔소... 음... 앞으로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 지금은 고양이를 좋아해요."
미묘하다. 싫어하냐고 묻는다면 딱히 그렇진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다른 동물이 먼저 떠오르게 된다. 애초에 16년+n개월이란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며 좋아하는 동물로 코뿔소를 고르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 작거나 복실복실한 동물을 골랐고, 그건 이레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저지먼트 부원들을 제외하면 앞으로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애매한 선택지라 여겨졌다.
처음 본 사람은 좀 어려워한다는 그 말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향적인 면이 있는 아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탓이었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고 그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마다 다 다른 법이니까. 나중에 세은에게 이 아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네가 잘 좀 친하게 지내달라는 부탁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판단하며 입을 열었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건 네가 그만큼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걸? 일단 내 생각은 그래."
그녀가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처럼, 그는 자신 역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라는 듯, 그렇게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이어 제로 콜라를 한 모금 천천히 마시는 와중, 그녀의 목소리 톤이 올라가는 것에 그는 두 눈을 깜빡였다. 뭐지. 베이킹 좋아하나. 이 애도?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일단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
"몽블랑도 만들어보려고 시도는 하는데 아직 맛나게는 안 나오네. 제일 잘 만들 수 있는 것은 쿠키와 간단한 롤케이크 정도야. 아. 식빵도 만들 수 있어. 사실 최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라서 아직 레시피를 보고 배우는 편이야. 하하.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거든. 그러다보니까 최근에 관심이 생겨서."
아직은 많은 종류를 못 만들지만, 언젠가는 많이 만들겠다는 듯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그는 그녀의 이어진 답에 귀를 기울였다. 고양이를 좋아한다라. 확실히 귀여운 동물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렇다면 다음에 저지먼트 부실에 쿠키를 가지고 온다면 고양이 쿠키로 해야겠네. 원래 이런 것은 타이밍이라고 하잖아? 하하. 그리고 나? 좋아해. 2년간 이 완장을 차고 다녀서 그런가. 묘하게 코뿔소에도 정감이 가더라고. 물론 제일 좋아하는 동물은... 양이지만 말이야."
적응. 그건 내게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아예 모르는 일도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순찰 중 폭력을 동반한 사건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어제처럼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이미 경험했다. 경험은 한 번이면 충분하다.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첫 제압처럼 어설픈 동작을 취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액땜은,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려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더이상 매사에 운이나 요령 따위를 바라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간절히 바라면 언젠가 이루어진다는 헛된 말도.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내 마음이니까, 아지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마침 까눌레를 먹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까작까작. 겉면이 절묘하게 구워진 까눌레를 씹으며 아지도 한양을 만나봤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마 소집 이후 부실에서 마주친 것 같았다. 방해하고, 음료수 쏟고, 부실 문에 머리 박고. 아지는 그 행동들이 부끄러운 듯 했지만 나는 그 생각만 났다.
"한아지가 한아지 했네."
맹하니 돌아다니다가 허둥지둥 거렸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저러고 한양 앞에서도 웃었을 것이다. 그게 아지니까. 반의 반 정도 남은 까눌레를 마저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목이 막히기 전에 한김 식은 커피와 함께 삼키고 포크를, 아지가 가져온 플라스틱 포크를 들었다.
"네가 단 것 중에 싫어하는게 있긴 하니."
바나나 케이크를 밀어주는 아지를 보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역시나 아무 말 없이 바나나 케이크 귀퉁이를 작게 잘랐다. 포크가 가벼우니 확실히 손 움직이기 쉽긴 했다. 자른 케이크 조각을 입으로 가져가 먹었다. 티라미수도 까눌레도 맛있더니 이것도 나름 수준급이었다. 맛있었지만 표정은 별로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삼킨 후에 짤막하게 말했다.
"맛있네."
그리고 다시 커피 한 모금 마셨다. 커피는 그다지 퀄리티가 높진 않았지만, 달달한 디저트에 겸하기에는 적당했다.
벽에 기대있던 혜승이 자세를 바로 잡았다. 벌써 검도에 관심을 보이다니, 이대로라면 무조건 검도부원 확정이다. 그 짧은 찰나에 아지와 함께 운동장을 10바퀴 뛰고 허공 가르기 100회를 하고 폭포수 아래서 기도 모으고 폐관 수련 30일도 하고... 이정도면 이번년도 검도 대회 1등상은 따놓은 당상이다. 안 그래도 팔八자로 모인 미간에 힘이 들어간다. 우리 검도부가 우승을 한다...? 유망한 검도부로서 인기를 끈다...? 내년에 내가 초절정 인기 유망 동아리의 부장이... 된다?! (내년에 본인이 부장이 될거라는 보장 없음)
아지는 딱히 신입도 아니고 제대로 된 검도를 보고 싶은 것도 아니었으나 혜승은 제멋대로 해석했다. 신입의 열정ㅡ사실상 혜승의 열정이 아닌가 싶다ㅡ에 불 붙은 부원들이 하나 둘 각이 잡힌 자세로 검을 휘두르지 무엇인가. 혜승 역시 옷을 갈무리 하고 죽도 하나를 든 상태였다. 그대로 가로 베기! 세로 베기! 공간 치기! 찌르기!
... 난 왜이렇게 미묘한곳에서 능력을 잘쓰는걸까. 뭔가...뭔가 좀 그래. 생각해봐, 다들 고능력자면 막 하늘도 날고, 막 1대 100으로 싸우고 막 손에서 빔도 나가고...뭐 그런건 나도 할수 있지만. 필살기같은것도 쓰고 그래야하는거 아냐? 물론 나도 비스무리한건 할 순 있지만... 비살상용으로도 힘들고, 멋도 잘 안나서 엄청 덤빈단말이지...
체육시간 친구들의 프로틴 쉐이크를 타면서 생각한다.
생각해보니까, 미묘하게 막 레벨 낮을땐, 레벨 높아지면 막 엄청 눈길받고, 대단한 사람일것같고 그랬는데... 이래서야 그냥 가전제품 모음 아냐? 내가 할 수 있는게... 교반기, 믹서기, 스팀오븐, 전자레인지(원리는 다르지만), 세탁기, 건조기, 가습기, 식기세척기, 마사지기, 음쓰건조기, 우산, 정수기, 냉풍기... 가끔, 진짜 양심에 손을얹고 가아아아아아아아끔이지만, 샤워하기 귀찮을때 능력으로 씻기도 하고...
뭐야. 나 이명이 스팀베이퍼가 아니라 하X마트 아냐? 이러려고 하루에 8시간씩 피부 다 불어터져가면서 수영장안에서 커리큘럼 받은게 아니긴 한데... 아 옛날생각나네, 몇년 전만 해도 눈 앞에서 물 방울 하나 멈추는것만 해도 힘들어했는데, 이젠 집에서 가전제품이 필요 없을정도라니, 가슴이 웅장해ㅈ...이게 아니고. 뭐 아무튼, 친구들사이에서 인기는 좋으니까 상관 없나...?
방과 후 유달리 몸상태가 안 좋았다. 정확히는 점심 무렵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무력함에 휩싸여 오후 내내 수업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다. 다만 정신을 차리니 모두 나간 교실에 혼자 앉아있었기에, 뒤늦게 가방을 챙겨 나갔다.
긴 복도를 걸으며 생각했다.
오늘은, 저지먼트 부실에 갈 일은 없다. 커리큘럼은 있다. 거기에 가야 한다.
나도 모르게 보호대를 찬 왼손으로 가방을 들고 있었지만 아프지도 무겁지도 않았다. 그대로 걸어 나를 담당하는 시설로 갔다. 오늘 담당이 된 연구원은 나를 흘깃 보더니 심리 진단을 받을지 실습을 할 건지 물었다. 당연히 실습이었다.
보이는 상태와 달리 주저없는 대답에 연구원은 알았다며 따라오라 했다. 그 뒤를 따라갔다. 익숙한 시설과 익숙한 복도가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만 같았다.
늘 가는 실습용 방이 아닌 새로운 방에 안내되었다. 거기엔 수술대가 있고 그 위에 사람이. ...아니다. 사람의 상체와 매우 흡사한 모형이다.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제작해 벌어진 살이 진짜 같고 그 사이로 흐르는 붉은 액체도 진짜 피 같다. 금방이라도 피비린내가 내 코를 짓누를 것 같았지만, 반대로 플라스틱 냄새만 지독해서 그게 더 역했다. 빨리 끝내고 나가고 싶었다.
밖에서 방송으로 지시하는 연구원의 말을 따라 교복 블라우스 위에 백의를 걸치고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쓰고 수술대 앞에 섰다.
이미 피, 아닌 붉은 액체 흥건한 수술대가 자꾸 진짜 같다. 내가 저기 있는 거 같아.
그러나, 실습 시작을 알리는 지시가 떨어지자 기계적으로 준비된 도구에 손을 뻗었다. 집게, 메스, 겸자, 순서가 어떻게 되더라. 일단 혈관을 잡아 출혈을 막고 아니 부서진 뼛조각부터 제거하고 그 다음 살을 벌려 환부를 확장하고 조직 손상을 확인하여 다음 대처를 이행하고.
오늘은 유달리 상태가 안 좋았다. 묵직한 무력함에 짓눌려 견딜 수 없는 날이었다.
챙그랑
힘이 맞지 않는 양 손의 교차로 인해 메스를 떨어뜨렸다. 진짜 같은 인체모형과 달리 도구는 모두 진짜였다. 메스. 스치기만 해도 살이 베이는 날카로운 수술도구.
바닥에 떨어진 메스 위로 붉은 액체가 떨어졌다. 수술대의 것과 다르다. 붉지만 검고 따뜻하지만 금방 식는 그것은 내 피였다. 오른손 장갑의 손바닥이 찢어져 그 사이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지독한 플라스틱 냄새에 비릿한 철향이 휘감겼다. 아슬아슬하게 정도를 유지하던 역함이 기어코 선을 넘었다. 마스크를 끌어내리자마자 구토했다. 희멀건 위액이 다시금 바닥을 어지럽히고 주변 공기에 역함을 더했다.
수없이 구역질을 하며, 저멀리 연구원이 달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무의식중에 느꼈다. 제법 깊이 베였을 손바닥에서 어느새 피가 흐르지 않는 것을. 이미 가지고 있던 상처에서도 위화감이 덜해졌다는 것을.
능력 활용을 위해 조금 더 많은 물질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 뭐 지금도 딱히 능력에 불만이 있는건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1대 다수라던가, 비살상 제압을 위해 필요한 요소같은게 필요해. 여러가지 방법을 연구했지만, 전부 다 의지력으로 풀 수 있거나, 완전한 무력화까지 시간이 걸리거나, 아니면 영구적인 장애, 후유증이 남는다.
당장 내가 총에 조준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트리거를 가진 손을 강제로 멈춘다 이외의 방법은....여럿 생각나지만 너무 비인간적이다. 당장 생각나는건 화학물질을 내 근처에 쭉 뿌리는건데...
혜승의 머릿속에서 한 편의 파노라마같은 미래(아직 확정되지 않음)가 그려지고 있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 대충 혜승이 보여주는 것만 간단하게 보고 가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하겠다~ 고 생각하는 순진한 소년이 여기에 있었다.
"앗... 앗... 앗..."
그게 아닌데!! 절대 아닌데!! 이대로면 진짜 신입이 되어버려!! 진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이걸 어떻게 해 보려고 살짝 들었던 손이 절망감에 떨어져버린다.
"괘... 괜히 말한 것 같아아아"
아주 작은 개미소리로 절규에 가까운 투정을 부려보지만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난 일이다. 뭔가 잘못돼서 부원들의 더 부자연스러워진 (멋있긴 하지만!! 그렇긴 하지만!!) 자세를 보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박수를 친다. 혜승의 죽도 다루는 모습을 볼 때 즈음엔 완전히 까먹고 와아~ 하며 헤실헤실 박수를 치고 있었던가...
맞다... 나 검도부 입부 권유 받아서 이렇게 있었지....
"확실히 멋있었는데요.... 그게.... 저...."
어떡하지!! 한아지는 여기까지 봐 놓고 거절할 배짱이 없다!!!!!! 두 눈을 질끈!! 감고서 허리를 90도로 숙인다. 에라~ 모르겠다아아
"으아아잘 부탁드립니다아아아~~~"
이 소리 또한 절규와 같았더라. 그리고 고개를 살짝 들어서 상대를 보고는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선배애"
1학년 때 저지먼트를 병행했다고 했으니까 2학년? 3학년? 아지는 명단에 있던 이름들을 떠올리려고 해본다.
>>949 어…… 애린 씨, 지능 너무 높지 않아?! 애린은… 천재구나. 인간성도 높다 세상에. 인격적으로 굉장하다…! 고 말하려했는데 정의로움 그래프는 무슨 일?!!!! 🤭🤭 그래프만으로도 보이는 그녀의 높은 사회성 부럽다 부러워. 그보다 지식 다 높은데 어째서 어휘력만 ㅋㅋㅋㅋㅋㅋㅋ
>>956 이쪽도 지인 수 높은 것 봐. 목화고는 인싸들만 입학하나요🧐? 아지 굉장히 인격적이야… 굉장히 착해…… 근데 아지도… 제법 바보 속성을 가졌나 싶은 지식 그래프 🤭 근데 신체스탯, 전투스탯 무슨 일이죳…… 아 아냐, 그래도 능력이 있으니까! 🥺
>>958 바로 눈에 들어오는 꼬불꼬불한 귀여운 그래프..... 신체스탯은 보통~약한 편이지만 아무래도 레벨 4여서 그런지 전투스탯 엄청나네요 🥺💕 진실성과 융통성이 가장 높은 것도 특이하네요. 두가지 중 하나를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무래도 많으니까... 호~ 과학과 예술을 제일 잘한다? 이거 완전 주인 따라 능력 개화한 거 아닌가요?? 결이 뭔가 비슷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