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전, 종료. 1년하고도 몇개월의 공백기를 깨고 드디어 데뷔 다운 데뷔를 마친 퍼펙트 원더는 아니나 다를까 여전히 즐거워보이는 듯한 표정이다. 수업중에도 답을 모르면서 풀수 있다고 나서지를 않나 영어지문조차도 완전히 다른 발음을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은... 뭔가 오히려 이상해진것이 아닐까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어이 언그레이 데이즈."
그리고 그 날 일이 터져버렸다. 몸이 순조롭게 회복되는 것 때문일까. 원더의 자신감은 이루 말할데가 없을 만큼 올라가있었다. 그 탓일까. 그녀가 생각하기에 '현 시점에서 가장 강한 우마무스메'에게 곧바로 도전장을 내미는 것은 어쩌면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을만한 것이었다.
병가를 낸 지 정확히 하루 뒤, 니시카타 미즈호는 트레이너실에 다시 출근했다. 평소와 달리 커다란 무언가가 들어있는 종이 봉투를 들고온 채.
병가를 내고 있던 지난 하루동안 니시카타 미즈호가 줄곧 생각해 오던 것이 있었다. 트레이너실에서 [ 그 이야기 ] 를 들은 이후로부터 아주 심려깊게 고민해온 사실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해온 끝에 니시카타 미즈호는 결국 그것을 가져왔고, 출근하자마자 다음과 같은 메모지를 작성해 누군가의 책상에 붙였다.
[ 출근하시자마자 바로 화단으로 와주세요 ] [ 드릴 말씀이 있답니다 ]
니시카타 미즈호가 자리를 비운 동안 어떤 소문이 나돌아 다녔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일들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정말로 상관없다는 마음이었기에 히다이 트레이너의 책상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붙인 것이다.
남들 앞에선 못할 이야기이라는건, 동의한다. 그게 학교의 트레이너들 앞에서라면, 더더욱. 하지만, 고의적으로 뜸을 들였다거나 하는건 정말로 아니여서, 고개를 가로젓고 말았다. 미스 니시카타가 걱정되는건 사실이다. 비록 그녀를 무서워하더라도. 다이고의 눈에, 어떤 우마무스메로 보이는지 궁금했던것도, 사실이다. ...귀여운 아이라는 말은 말고.
고양이 상자 속의 고양이는, 아직 살아있다. 자기 몸에 딱 맞는 상자에, 기분좋은 그릉그릉 소리를 내면서까지. 레이니・왈츠는 붉어진 얼굴을 감출 생각을 하지 못한채로, 대답 대신 다이고가 내민 주먹밥을, 덥썩하고 입에 집어넣는다. 음, 그래도, 아주 맛없진 않네... 한참을 우물우물하다가, 삼키고 나서야 겨우 꺼낸 건.
사실 가장 강한 우마무스메라는 이름에는 정말 큰 모순이 있다. 일단 1. 그 이름은 지방, 그 중 츠나지시에서만 통용되는 이야기. 2. 그리고 현 시점에서 클래식급이라는 것에 한정해야 할 이야기이다. 강하다 해도 3마신. 그것은 압도적인 승리가 아니다. 나리타 브라이언이 될 수 없는 우마무스메, 밤색머리의 우마무스메는 정말 철저한 작전으로 우위를 점한 것이였기에.
그리고 다음은 사바캔. 물론 사츠키-일본더비-국화상으로 가는 클래식 삼관보다야 뛰는 사람의 수준도, 거리도 큰 차이가 나지만, 그 룰을 적용한다면 가장 빠른것은 자신. 가장 운이 좋은 우마무스메가 사바캔. 그리고... 산마캔은 가장 강한 우마무스메. 그렇기에, 조금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없잖아 있었다. 그 기대가, 말해오는 것이.
"... 무슨 일인교, 원더씨?"
그렇기에, 그것에 열중하고, 트리플 반다나에서 출주한 사람들까지 살펴보고 있던지라. 그리고 사실 시험도 끝나버려 조금 사람들의 정신이 팔려있을 때라 당신이 무슨 말을 할지 예측을 할 수 없던 밤색머리의 우마무스메였다.
전전야 체육제는 츠나센 학생들의 대부분이 참가하는 나름의 중대 이벤트다. 하지만 이벤트라고 해도 순전히 흥미와 재미 위주일 뿐 레이스에 도움 되는 것 하나 없지 않냐 따진다면 반박할 수는 없다. 레이스를 앞두고 이런저런 경기에 참여하다 부상이라도 입으면 큰일이고, 음식을 먹어봤자 살만 찔 뿐이다. 그래서 참여는 하되 설렁설렁 시늉만 하고 끝내는 학생들도 종종 있는 편이다. 실질적인 효율과 즐거움 중 어느 것을 택해야 할지 사미다레 역시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역시 레이스도 포기할 수 없고, 지역 행사의 즐거움도 놓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지 뭔가. 그래서 사미다레는…… 비장의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적어도 두 번째 종목의 문제만은 근성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런 연유로, 사미다레는 현재 트레이닝실의 문 앞에서 메이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뜬금없이 메이사는 왜 끼웠느냐고? 그야 메이사도 도넛 먹기 대회에 참가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말이다. 혼자 트레이닝 하기엔 조금 심심하기도 하고, 메이사는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다. 라이벌을 살찌게 둘 수는 없지. 뺀다면 함께 빼야 하는 거다! 그런데 포동포동한 메이사라니, 생각해보니까 좀 귀여울 것 같기도……. 아니, 이게 아니지.
여하간 잡아둔 약속에 맞춰 트레이닝실 근처를 서성거리고 있으려니 저 멀리에 보이는 노란 멘코가 눈에 들어온다. 사미다레는 한손을 낮게 들고 살살 흔들어 보였다.
"메이, 왔어? 컨디션은 괜찮지? 혹시라도 피곤하거나, 몸이 안 좋다면…… 무리해서 같이 안 해도 돼."
수상할정도로 높은 내적 친밀감. 아마도 그 한순간의 고통때문인지 원더에게 있어 언그레이 데이즈는 제법 가까이 느껴지는 상대중의 하나였다. 대놓고 친구부터라고 시작한 이상 학원 안에 몇 없는 친한 우마무스메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아마도 자신의 이상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친구 사이에 이유가 있어야만 말을 거는건 아니잖냐."
주인이 나간건지 비어있는 의자를 끌어와 앉으며 즐거운 듯이 웃어보였다. 평소의 배는 즐거워보이는 것 같은 얼굴로.
"이번에 조건전을 이겼거든. 가능하면 내가 아는 녀석이랑 기쁨을 나누고 싶어서 말이다!!!!"
화단으로 나온 히다이의 눈앞에는 커다란 종이 봉투를 들고 있는 채 벽에 기대 서 있는 니시카타 미즈호가 있을 것이다. 히다이가 무슨 용건이냐며 말을 걸어온다면, 미즈호는 부드러이 웃으며 종이 봉투를 두 손에 꼬옥 들고 히다이의 앞에 서 보인다. 안색은 여전히 창백하고..... 말을 꺼내기 시작하는 목소리는 떨려 오고 있다.
"본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소문을 퍼트리시는 것에 '어울려 드리겠다' 라는 답변을 드리려고 왔어요. " "이제서야 이런 답변을 드리는 것은, 너무 늦은 답변인가요? "
미즈호는 그렇게 말하며 히다이를 조심스레 빤히 올려다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려 하였다. 지금부터 꺼낼 이야기는, 보통 심정으로 꺼낼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그냥 어울려 드리는 건 아니랍니다. 조건이 있어요. " "저의 가장 소중한 것 을 맡길테니. 그 조건으로 어울려 주시는 건 어떠신가요? "
그런 언질을 들은 적 있다. 동업자들끼리 강경하게 비판할 수도 없으니 적당히 맞장구 치고 넘어갔었던 것들. 유키무라 모모카가 팀을 나왔다는 선언을 해온 것, 그리고 메이사 프로키온의 속내를 의도치 않게 들었던 것. 나는 불길한 예감에 봉투에 손을 뻗지 않고 말을 이었다.
"늦었지, 한참 늦었어."
...그래도, 일단은 필요해. 그렇게 자신을 달래며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그리고 미간을 꾹 누를 수밖에 없었다. 골이 땡겨와서. 별 골때리는 여자가 다 있어...
"소중한 건 필요 없어. 자기 소중한 거 아무데나 맡기고 다니지 말라고..."
하지만 맡아두는 것 정도라면야. 신발장 위에다 놓고 잊어버려도 될 일이고. 아니라면 옷장 안에 넣어두면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