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비가 내렸다. 요령없이 달리는 거인을 조롱하듯이. 작년까지 주력으로 삼던 것에 비하면 열두배의 길이인 탓에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연습코스. 썰매를 두고온 만큼 몸은 가벼워졌지만 그것을 채우고도 남을 온 몸의 무력감이 그저 기분 나쁘게만 느껴져.
무아지경으로 그저 달린다. 뒤틀리는 발걸음도, 무엇도 신경쓰지 않고. 주니어 시즌을 보낸 마지막날 들었던 말을 곱씹으면서.
[저 덩어리새끼는 여기 왜 있는거야?]
[...너는 이런 경주랑은 적성이 안맞아.]
[실망이다 퍼펙트 원더!!!]
[이런 것도 못하는건가? 반푼이는 반푼이로군.]
전부 닥쳐. 전부 닥치라고!!! 이 새끼고 저 새끼고 전부 똑같아!!! 제 멋대로 기대시켜 놓은 주제에!!!! 제 멋대로 꿈을 품게 한 주제에!!!! 너는 할 수 있다고ー 그렇게 말했던 주제에...!!! 이제와서 레이스에서 떠나라는거냐?! 이제와서 모든걸 버리고 벽앞에서 나는 여기까지라며 안주하며 살아가라고?! 그렇게 살아가는 방법따위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어!!!!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경기를 버리는게 뭐가 트레이너냐!!!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게 뭐가 우마무스메냐!!! 너희같은 버러지의 눈으로!!! 이 몸을 재단하지 말란말이다!!! 하나같이 전부 빨리 쓰러지라고 소리지르면서 내가 무너지기를 기다리는 새끼들 뿐이야!!! 증명해주마!!! 네놈들이 틀렸다고!!!
이 나를 무시한 댓가는!!! 피로서 갚아야 할거다!!!!
몇번이고 나의 뒤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이끌려 뒤를 돌아본다. 지금까지의 소음이 무색하게 적막만이 나의 뒤를 따를 뿐. 아집으로 쥐어짜낸 목소리는 결국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다.
...그럴 수 밖에 없겠지. 무능한 녀석의 뒤를 따를 녀석 따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나는 정말로... 해서는 안되었던건가? 정말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재 조건전만을 연연하다 생을 끝내는거라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어가는 편이 나았던건가...? 영원히 TV저편의 별들을 바라보며 웃고 떠들었어야 했나?
중심이 무너진다. 나를 세워두던 확신에 생긴 조그마한 틈 사이로 잊으려했던 현실이 칼을 쑤셔넣었다.
크게 한번. 스퍼트를 내듯이 발을 구르나 돌아오는 일은 없이 그대로 균형이 무너져 큰 소리를 내며 진흙탕 위를 굴렀다.
코가 부러진건지 비릿한 피내음이 추적추적내리는 비와 짜증날정도로 진한 패배의 향취와 섞여 역겹게만 느껴졌다.
저 멀리 내가 닿지 못하는 먼 곳에서 누군가를 위한 환호가 들려온다.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한 박수소리가 들려온다.
빛바랜 색지위에 그렸던 꿈은 여전히 멀어서... 아직도 닿을 것 같지는 않다.
환청처럼 떠오르는 어린시절의 기억이...
[나의 꿈!!! 퍼펙트원더!!! 저는 언젠가 반드시!!!]
"세계 최강이 된다..."
모든 우마무스메가 한 번쯤은 꾸는 유치한 꿈.
아직도 그런 유치한 꿈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면 그건 멍청한걸까.
다들 안된다고 할때, 어째서 웃어버린걸까.
왜 그러냐-하고 넘겨버린걸까.
그런 식으로 웃을거 였다면 마지막까지 웃어넘겼어야 했는데.
달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어울리지 않는 녀석이 꾸는 꿈에는 가치가 없는건가.
번개나 괴물이나 황제처럼.
꿈을 꿔도 되는 그릇조차 날 때 부터 정해져있는걸까.
자리에서 일어난다. 진흙으로 끈적해진 몸을 털어내고 다시 게이트에 선다.
어울리지 않게 좁아 터진 게이트를 지나 다시. 다시. 다시.
그렇게 주니어시즌을 지나고, 클래식에 들어섰을때에도 남은건 아집 뿐.
여전히 그저 증명한다. 날을 세우는 것에는 지쳐버렸으니.
그저 지금 이 경기에서 나를 증명할 뿐.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되뇌인 세뇌의 말이 어느새 내게 쥐어진 유일한 이정표가 되어있었다.
여전히 앞은 보이지 않는다.
숨을 쉬고 발을 내딛는 것 만으로 한계.
그래도 바보같이 꿈을 내려놓지는 못해서.
이미 버린 좌절감조차 다시 주워서 연료로 쓰려한다.
바닥에서 태어나
지방를 지나
트윙클의 정점.
누구나가 꿈꾸는 전설적인 3관 우마무스메를 넘어 세계최강. 그래. 누구나가 꿈꿀 수 있는 것. 그렇다면 나만이 꿈을 꾸어선 안된다는 건 잘못되어 있잖아.
속도를 끌어올려라. 온몸의 힘을 모조리 쏟아내!!! 승리의 잔을 들고서 도전하지 않은 머저리들을 비웃어 줘라!!!!
"으아아아아아아아아!!!!!!!!!!!"
화려하다. 이 마을의 녀석들은 모두 다. 언그레이 데이즈도. 유키무라 모모카도. 저스트 러브 미, 레이니 왈츠. 모든 얼굴이. 내가 봐온 모든 녀석들이 중앙에도 지지 않을만큼 강렬하게 욕망을 품고있어. 누구에게도 주고싶지 않은, 조금은 투박해도 아름다운 보석함이다. ...나는? 나는 어떨까. 힘겨루기에서도 밀려서 도망치듯 온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경기장. 거기에서도 꿈을 이루는 것은 아직 머나먼 이야기.
그 무엇도 이루어내지 못한 그저 커다랄 뿐인 바위. 원석과는 거리가 멀다. 보석함에 들어가기엔, 어울리지 않다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한다.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며 살아온 탓에 일어서는 법 밖에 모르는 머저리는 그들과 나란히 달릴 수 없다고ー
뭐냐. 그런거였나. 내가 약한 탓에. 남들에게 휘둘리는 탓인가. 그래서 그들은 나에게 쓰러지기를 바라며 그저 바람처럼 지나가는건가. 그렇다면 아쉽게 됐어. 나를 믿어주는 녀석이, 저기에 있다. 돌덩어리라도 빛날 수 있다고. 그리 믿게 만들어준 녀석이. 말은 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이 있다. 그러면 일어나야지. 비겁하더라도.
스스로를 부숴라. 보석처럼 빛나지 않아도.
돌덩이라도 불이 붙는 순간은 빛날 수 있으니까.
"나도..."
영혼에 불을 붙여라!!!!! 욕망을 부어!!!!! 영원토록 꺼지지 않게!!!! 그 무엇도 어울리지 않는 몸이라고 하더라도 잠깐만 지금 한순간만은 내가 별이 되도록!!!!
"나도 너희처럼...!!!!"
너희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너희들이 얼마나 강하더라도.
이 시대의 이름은 나다!!!
무아지경으로 달리고 달린다. 짧은 직선조차 초 장거리처럼 느껴지는걸 보면 아무래도 한계다.
달린다.
이대로 넘기더라도 다음번 기회에 도전하면 된다.
달린다.
다음에 실패하더라도 그 다음은...
"운요...!!!!"
동경은 포기의 한 종류다. 유명한 트레이너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저렇게 되고싶다'는 마음만으로는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는걸.
그러니, 나답게 싸워주마. 앞뒤를 가리지않는 야만적인 방식으로.
"체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스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달린다. 달린다. 소리도 빛도 모두 떨쳐내고. 그저 달리는 것만을 생각한다. 절대로 그냥 보내주지 않겠다!!! 리미터는 이미 풀린지 오래. 무리하면 안된다며 질러대는 육체의 비명조차 무시한다. 무능한 내가 빛나는 너희와 달리기 위해선 나를 부술 수밖에 없으니 무아지경으로 달리고 또 달린다. 내몸의 비명을 무시한채로.
시간이 흐르면서부터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나보다 한발 먼저, 때로는 한참 먼저온 그들의 곁엔 누군가가 있었다. 늦게 들어온 내 곁엔 아무도 없었고. 너희는 무엇을 보았어? 골 너머에서. 누구에게 물어도, 제대로 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알아보고 싶어. 달리는 이유를, 찾고 싶어.
숨이 차오른다. 가쁘고 빠르게 숨을 내뱉으며, 나는 천천히 눈을 깜빡인다. 속눈썹을 타고 흐르는 새벽의 이슬같은 땀방울 속에 비친 건.
'달리는 이유는 뭘까.'
'내 길은 이게 맞을까?'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 수는 없는걸까.'
'어른이 된다는 건, 해야만 하는 일이 늘어난다는건.'
'삶의 의미란.'
'슬픔과 행복,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레이스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현재라는건.'
알고싶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그 이유를.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 나의 인생 속,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 삶의 의미를. 바람이 살을 가르는게 느껴진다. 나는 다리에 박차를 가한다. 뛰고, 또 뛰어서... 나는.
꿈과 현실의 괴리감 속에서 발버둥치는 와따시에게는 이렇게... 꿈을 위해 전력으로 노력하고 맞부딪히는 이 모먼트가 너무 존귀한ww 와따시는 진짜 노력하고 있을까?(아니긴함) 등등 오딱구 heart가 자극되어서 눈물이 앞을 가리는wwwwww 원더쨩... 간바레인......
중계 ─ 골까지 400미터! 탕야오 도라하치, 나가떨어졌습니다! 해설 ─ 좋은 패를 뽑지 못한 모양이군요. 탕야오, 아쉽게도 1천 점입니다.
탕야오 도라하치 「론냐아아아아!!」
중계 ─ 만나카 펭귄은 차분하게 페이스를 유지하며 마군 선두를 유지하는 중, 네코라멘이 그 뒤로 추격해 왔습니다! 중계 ─ 더 락 링고는? 더 락 링고는... 놓쳤다! 흐름을 놓쳤습니다! 동일하게 속도를 냈지만 더 락 링고, 앞서나가지 못했다! 해설 ─ 최후미로 선두주자의 땅먼지를 받아내며 달리느라 체력을 많이 소모했습니다. 중계 ─ 그리고 그 한 끗이 네코라멘과 더 락 링고의 승부를 갈랐다!
중계 ─ 유키무라 모모카, 양호하게 컨디션을 유지하며 달려왔습니다만 아직까지 1등과의 거리는 멀다! 해설 ─ 중요한 것은 퍼펙트 원더의 스태미나가 얼마나 남아 있느냐입니다. 해설 ─ 퍼펙트 원더가 저력을 얼마나 보여줄 수 있느냐에 따라, 유키무라 모모카의 운명이 갈리겠지요.
중계 ─ 골까지 200미터! 최대로 가속! 퍼펙트 원더, 유키무라 모모카! 아직 체력이 우위인 것은 유키무라 모모카다! 중계 ─ 하지만 퍼펙트 원더, 얼마나 체력이 남아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중계 ─ 터뜨릴 것인가? 원더 파워팩은 얼마만큼의 에너지가 남아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