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다... 내 반찬을 거절한 사람은. 어머니도 아버지도 모임이 있을 땐 꼭 나에게 부탁하셨고 누님은 재료비도 안 주고 부려먹고, 조카는 양껏 싸달라고 부탁했는데. 세상은 정말 넓다, 내 반찬을 거절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가족 품 바깥은 냉혈하고 싸늘하구나.
"그, 그렇다면야 강요는 못하는... 거겠지만요. 딱히 힘든 건 아니에요. 어차피 밤에는 잘 못 자니깐."
그렇게 찐따미 낭낭하게 자기의 일과를 풀어놓는다. 4시 반에 퇴근하고 5시 반에 장을 봐서 귀가. 저녁을 차리고 잔소리를 듣다보면 어느새 여덟시다. 그리고 조카와 TV를 보며 연예인 누구가 더 취향이느니 누구는 가십이 있다니 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메뉴를 정한다. 그렇게 10시쯤 누워 뒤척이다보면 무릎이 아파서 4시에 깨게 된다. 그런 루틴으로 굳어졌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깨보면 도시락 쌀 시간이 남거든요. 그래서 한 번 물어본 거고..."
...역시 좀 별로인 부분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퇴근길에 레시피북 같은 거라도 하나 사갈까 싶다. 말로는 애써 태연한 척 하지만 요리가 그나마의 특기가 되었는데 인정받지 못한 기분이라 약간 아쉬웠다...는 기분이었거든. 도시락의 마지막 칸 뚜껑을 열자 딸기가 나온다.
"그래도 야채는 좀 더 먹는 게 좋아요. 이정도 챙겨주는 건 어때? 늘상 그런 도시락만 먹을 수도 없고. 아니, 물론 내가 급식실로 도시락 들고 가면 되기야 하지만..."
"흐..흐아... 아이, 진짜 놀랬잖여... 내 일어서 있었으므는 메이사 니 진짜 다칠 뻔 했다는거는 알제...? 와 뒤에서 놀래킨기고... 최소한 옆에서 놀래키그라..."
우마무스메에게 있어서 뒤는 맹점. 그리고 뒤에서 무언가 예상 안된 행동이 나오는 순간 뒤로 발차기가 나가는 것이 우마무스메에게 본능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 본능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빨간 리본을 꼬리에 단다고 하던가. 여튼... 그렇게 다스린다 해도 그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것이였다. 다행히도 잡기는 했지만... 그 중력의 작용으로 인해 받은 손은 또 아파 오는 것이다.
"아야...... 생각에 빠져있었응게 내 탓도 쪼매는 있지마는... 글고, 그... 초코는... 응, 잘... 뭇데이..."
잘 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곤란했다. 낫토가 들어가 있을 줄은 누가 알았을까. 역시 그 후에 미각센서가 이상해져서 물로 몇번을 헹궈냈을까. 곤란한 표정이 되어간다.
"... 비장의 수라고 혀야 할지... 유일한 방법이자, 내로써는 출발선에 서기 위한 도박이제."
작은 것은, 디메리트. 그리고 병약하다는 것도 디메리트. 그렇다면, 그 둘을 동시에 지닌 자신은 좋은 승부를 보기 위해서, 남들보다 더더욱 노력을 해야지만 같은 선에서 출발할 수 있다.
... 1착은 바라지도 않아. 그저, '그런 우마무스메도 참가했었나'가 아니라 '아, 그 우마무스메, 깨 달리긴 했제' 정도까지만 한다 해도, 만족할 수 있어.
뭔가 반응이... 또 뭔가 실수했나? 느슨해져 있던 다이고의 머리가 매우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잠깐만 생각좀 해 보자 분명 맛있다고 이야기했고? 아 혹시 구체적으로 어떻게 맛있는지 이야기하지 않아서 빈말이라고 생각했나? 아닌가? 그러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줘야 하나? 그치만 그런 거 잘 못하는데 어릴 때부터 맛있다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맛있다는 말을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는 않을까? 어떻게 하면 될까 생각하던 차에 히다이의 일과를 듣게 된다. 아니아니 그런 말을 들어버리면 안 그래도 부족한 잠까지 뺏는 거 아닐까? 그러다가 무릎이 아파서 깨게 된다는 말이 들리자 빠르게 돌아가던 머리가 잠시 멈췄다.
"...그렇슴까."
잠시 생각을 가다듬는 동안 도시락의 마지막 칸 뚜껑이 열리고 딸기가 모습을 드러내자 역시 정성스럽다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게다가 챙겨주겠다고!
"알겠슴다, 그러면... 염치 불고하고 부탁드리겠슴다, 밥까진 안 해주셔도 됨다, 오니기리 정도는 만들 줄 아니까 반찬만, 반찬만! 부탁드림다, 아시겠슴까??"
재료비를 준다고 해도 이런 건 행운이다, 제대로 된 가정 도시락을 쉽게 먹을 수 있을 리 없잖은가! 조금 걸리는 부분도 있었기에, 더 사양했다간 어쩐지 더 침울해져 버릴 것 같아서 눈 딱 감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맛있는 반찬을 먹을 수 있고, 히다이의 기분이 나아진다면 이보다 좋은 게 또 어디 있을까.
앗, 솔직하게 기쁘다. 타인에게 쓸모를 인정받는 건 좋은 일이니까. 가족 바깥의 인원, 그것도 접해보지 못한 유형의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 어쩐지 내가 제대로 세상에 녹아든다는 기분을 주니까, 그건 나에게 정말 절실한 인정이었다. 서툴게나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건 그 덕분이었다.
"그... 다행이네요. 입맛에 맞으셨단 거죠? 뭐 좀 짰거나, 너무 달다 싶으면 말하시고. 아, 그리고..."
히다이는 시라기의 트레이너 파일을 열람했다. 팀을 결성하기 전이었다만. 나름 비슷한 또래의 동성 트레이너라는 흔치 않은 인간이어서 친구로 삼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찾아봤을 때 시라기 다이고는 본인보다 연하였으니까.
"우리 말 놓을까?"
"직장 동료라곤 해도 보니까 우리 그, 3살밖에 차이 안 나서. 내가 좀 더 연상이기도 하고... 늘 다나까로 말할 수도 없잖아요. 밥도 같이 먹는 거면은 좀 더 편하게 말해도 좋지 않을까... 싶어가. 형이라고 불러도 되고, 아니면 그냥 이름 불러도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