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병으로 내었던 병가도 끝이 났다. 다시 말해 도망치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누님이 멋대로 잡은 약속을 수락하지 않는 한 나에게 몸을 뉘일 곳이란 당직실 뿐이다... 잠깐이나마 몸을 덥혀주었던 귤박스를 차곡차곡 개켜 타는 쓰레기에 집어넣으며 눈물의 작별을 할 무렵.
아, 도망을 왜 치는 거냐고? 누군가가 나를 죽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 악몽을 종종 꾼다... 술이 없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
하여튼, 그렇게 작별을 할 무렵에 [그것]이 나를 뒤에서부터 붙잡았다. 아니, 정정한다. 붙잡지는 않았다. 한 발짝 다가서자 그 단아한 목소리가 나를 속박했다. 스턴을 걸었다고 할 수 있겠지.
털썩. 엉덩방아를 찧고 덜덜 떨며 돌아보자... 햇빛을 등져 표정은 보이지 않으나 한없이 거대해보이는 그것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다! 모두들 내가 한낱 아가씨를 겁내한다고 생각하고, 나도 아령이 없었더라면 그랬을 테지만 그것은 달랐다! 무시무시하고 우마무스메를 모독하기까지 할 정도의 근력, 그것이 가느다란 인간의 팔다리에 담겨있었으니, 그야말로.
"괴, 괴물..."
내가 무엇을 말해버렸는지 깨닫고서는, 비질비질 나오는 눈물과 함께 주섬주섬 도게자 자세를 취했다.
[츠나센 학원 교칙 매뉴얼 제 ■항] [이 학원에서 우마무스메를 능가하는 파괴력을 보이는 자를 만날 시, 고통스럽지 않은 죽음이기를 기도하십시오.]
"...죽여주세요..."
*
그런 걸 쓰고 싶었기 때문에 좀 늘렸습니다. 부디 돌려주실 땐 분량을 가위질해주시길... 감사합니다 😉
>>60 다짜고짜 도게자 자세를 취하며 죽여달라는 발언까지, 니시카타 미즈호는 도무지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을 뒤에서 그동안 벌여왔길래 이 정도로 빌어오는 것일까????? 게다가 아까 그 [ 괴물 ] 이란 말은, 분명 잘못 들은 말이 아닐 터.
".......하. " "히다이 트레이너님.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데 타고나셨군요? "
그래. 사람을 화나게 만드는데 타고 났다 이 말이다. 지금까지 퍼트려진 모든 소문의 근원지가 어디인지 이걸로 아주 잘 알겠다!!!!! 이마를 짚으며 니시카타 미즈호가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을 꺼냈다.
"저는 말이지요, 딱 한가지만 히다이 트레이너님께 여쭙고자 한답니다. " "혹시 트레이너 훈련실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다른 우마무스메 학생들에게 부풀려서 설명하고 다니셨다거나 하셨나요? "
XXXX년 XX월 XX일!!! 평소와 같은 평화로운 츠나센 학원의 중앙 광장은 언제나 붐볐으나 아직 해가 뜨기 전의 시간은 두려운 고요함을 풍기고 있었다!! 어둠을 틈타 나타난 금발의 소녀는 손에 든 대자보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적당한 무게의 덤벨을 올려둔뒤 밤의 아둠을 틈타 조용히 사라졌다!!! 169kg이라는 글이 적힌 조금 오래된 덤벨을...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일부 계층에 대한 비방 중상에 대하여]
여러분은 현재 작금 일어나고 있는 비방중상에 대해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계십니까? 저는 평소 트레이닝을 하며 현재 비방중상의 대상이 된 트레이너와 친분을 쌓아온 사람입니다만 현 상황에 개탄을 금할 수 없어 이리 부족한 어휘로나마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강함이 죄입니까? 그저 남들보다 강한것이 죄라면 우마무스메인 저희들은 얼마나 큰 죄를 범하고 있단 말입니까!!
저는 최근 어느 교직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실 변장한 우마무스메니 하는 소문이 일부에서 돌고 있던 것으로 압니다. 허나 한치의 빠짐없이 말합니다. 그는 인간입니다.
그저 세상의 연약함을 아는 훌륭한 교직원입니다.
이곳에 그가 들었던 슬픔의 무게를 두고 갑니다. 이 슬픔을 들 수 있다면 그대 더이상 거짓된 정보에 놀아나지 마시고 진실을 위해 힘께 괴로워해주십시오. 그리고 소리높여 진실을 알려주십시오.
"마-사바." "몸은 어때? 아랴아~ 기운은 넘치는 것 같네에. 그래도 너무 날뛰면 회복이 더디다구. 정말." ".....이렇게 있으니까 옛날 생각난다. 마-사바가 몸이 약했을 때. 병문안 와서 이렇게, 마사바는 누워있고 나는 옆에서 손을 잡아주고..." "...아, 손 잡는 건 이제 싫구나? 귀여워❤️ 부끄럼타는 마-사바 귀-여워❤️"
".....그렇게 쳐다봐도 안-돼. 가만히 있어야 뼈가 잘 붙잖아." "아아, 잘 붙어도 어차피 곧 다시 부러지겠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붙어버리면 안 되잖아." "아니지? 아예 이상하게 붙어서 걷기 힘들어지는 편이 좋을까아...." "—왜냐고? 왜냐니..." "그치만 마-사바. 이렇게 하지 않으면.... 혼자 중앙에 가버렸을거잖아."
"이렇게 하면 이제 우리 둘이서만 쭉 함께 있을 수 있으니까...❤️" "....응, 쭉 함께야.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사랑스러운 마-사바❤️" 메이사미
"사-미. 이제 우리 둘뿐이네." "괜찮아. 마사바는 중앙에서도 분명, 잘 해낼거야." ".....아, 아아. 그렇네. 한 명이 사라진 자리는 크게 느껴지니까." "그래도 사미가 중앙에 가지 않아서 다행이야. 마-사바는 어렸을 때부터 중앙을 꿈꿔왔지만, 사미는 아니었잖아." "사미는 계속, 계속 옆에 있어줄거지??" "....그치?"
"멋대로 떠나가면 안 돼, 손가락 걸고 약속하자." "아하하, 어릴 때 생각난다. 그치이~" "응, 거짓말 하면 바늘 천 개 삼키기. ...진짜야?" 메이라미
"사실은 분했어." "넌 중앙에서 왔잖아. 이런 지방이 아니라, 진짜배기 중앙출신." "레이스에서도 1착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지도 못하고. 네가 내 직접적인 라이벌이 아니었던게 그나마 다행이었어." "...그래. 분했어. 분명 분했단 말이야." "그치만 어째선지 눈을 뗄 수 없게 됐어. ...전부 네 탓이야." "네 이름이 날 이렇게 만든게 분명하니까. 그러니까...." "....오직 너만을 사랑할테니까, 너도 나만을 사랑해줘." 메이스트
"네네~ 어서오세요." "오우. 오랜만. 그래. 이번 비행은 어땠어?" "헤에~ 그건 또 큰일이네. 느긋하게 쉬었다가 가. 아, 늘 먹던 걸로 줄까? 알았어~ 금방 내올게." ".....아, 그거. 음... 역시 고민해봤는데. 난 여기 남아있을게." "아, 근데 잠깐! 거절이 아니고! 저기! 그, 그거야!" "네가 성층권에 도달했다가, 땅으로 돌아오면 머물면서 쉬는 거점이 되고 싶다던가 그런 의미라고!!" "계속 날아갈 순 없어. 어딘가 쉬어갈 곳도 있어야하잖아." "너에게 나는 그런 장소였으면 한다던...ㄱ...." ".......어라, 나 방금 엄청 부끄러운 소리 한 것 같은데... 히에에에... 잊, 잊어..아니, 잊진말고... 흐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