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게 내려앉는 햇살과 생기 넘치는 주위의 기운과는 반대로 자신의 몸은 물에 적신 솜처럼 무거움을 호소했다. '막 도착했을때는 쇳덩이라도 달고 다니던 기분이였는데 말이야' 작게 한숨을 내쉬며 몸속의 의념을 가볍게 순환하던 나는 방금 전 나눈 린과의 대화를 떠올린다. 바티칸에 도착했으니 만나서 가볍게 대화를 하자고 했었던가.
" 그러니까 위치가... "
나노머신을 이용하여 다시 한번 지도를 시야 한구석에 띄운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옷깃을 매만졌다.
그렇게 잠시 고개를 두리번 거릴 즈음,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표정이 밝아진다. 상당히 오랜만에 보는 모습에 약간이나마 무거워진 몸의 짐이 줄어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오랜만입니다. 이거... 워프 비용 내다가 허리 휘겠습니다. "
장난스럽게 웃어보이며 고맙다고 말을 덧붙인다. 카페의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은은하게 느껴지던 원두의 향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딱 맞는 가게의 온도와 커피의 향. 그리고 정오의 나른한 햇살까지. '자고싶군...' 종족 특유의 수면욕구를 떨쳐내며 느릿하게 자리에 앉는다.
"일을 잘 마무리하면 몇 배로 보상 받을 수 있을것으로 보이니 너무 걱정마시어요." 사실 사건의 규모를 보고 보상을 생각하면 GP는 문제도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은 뒤로 무르고 자신의 말을 듣고 먼 길을 와주었으니 최대한 유한 방향으로 말을 한다.
"보시는대로 괜찮게 지내고 있사와요." 미리 시켜놓은 커피 두 잔을 가져오고서 자리에 앉는다. 씁쓸하면서도 부드러운 커피향이 은은하게 퍼지고 린은 '많이 피곤하실듯 하여'라 뒤에 덧붙인다.
"먼저 본격적으로 설명을 드리기 전에 하고 싶으신 말씀이나 현재 의뢰에 대한 질문이 있으신지요." 막 온 사람한테 악신이 전 세계적으로 글로벌하게 인형놀이를 하며 난동을 피우고 있다는 말을 쏟아낼 수 는 없으니 가볍게 어디까지 강철이 아는지 묻기위해 질문부터 한다. //4
자신이 바티칸에 있다고 했을때 몇몇은 의문을 몇몇은 걱정의 기색을 비췄었다. 그리고 겉으로 나타난 종류가 다를 뿐 그녀가 종교인임을 밝혔을 때의 그 의문과 걱정은 사실 비슷한 맥락에서 나왔음을 린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설명이 급하기에 자잘한 부가사항은 저절로 설명하다보면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서 당장 급하게 전달해야할 사항부터 정리해 본다.
"소녀의 나노머신과 같은 것이 아닌..." 처음 보는 기능에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말을 하다 멈춘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기능을 강철이 보안상의 이유로 사용한 것이 명백했기에 빠르게 침묵하고 메신저를 두드린다.
[지금 이곳에 온 이상 강철씨는 이미 의뢰에 참가하는 인원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 지금부터 감추지 않고 얘기해드리겠사와요.] [침착하고 들어주셨으면 하여요. UGN의 의뢰로 저희가 상대하는 적은 이미 한 번 죽었던 자들이어요.] [강철씨가 말하신 대로 토고씨, 알렌군, 준혁군이 마카오에 도착하여 현지에서 군중을 선동하여 혼란을 야기하던 전쟁스피커를 상대했사와요. 역사에 기록된 전쟁스피커의 모방범이나 후계가 아닌 키르카 보디악, 전쟁스피커 본인이 맞사와요. 토고씨의 말씀으로는 망념화까지 했다하니 확실하여요.] [고로 저희가 맡은 임무는 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것이라 소녀는 추측하고 있사와요. 그리고 이는 시체와 칼날의 노래 교단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전달받았사와요.] [그런 연유로 이단을 상대한 역사가 깊은 바티칸의 협력을 구하기 위해 여기까지 오게된 것이어요.] //6
강철의 의도를 눈치채고 천연덕스럽게 지인끼리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 받는 것처럼 꾸민다. 그나저나 강철의 안색이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데, 여행으로 피로가 쌓여서 그런건가. 단순히 피로로 그렇다고 하기에는 지쳤다기 보다 현재 무거운 짐을 들어 몸이 무거운 사람의 모습처럼 보였다. 린은 바로 질문을 하는 대신 더 상태를 지켜보기로 하고 계속 대화를 하는 척 손으로는 바쁘게 문자판을 두드렸다.
[네. 유감스럽게도 그렇사와요.] 무겁다라. 제 추측과 들어맞는 말이 나왔다. "소녀가 보기에는 그렇게 무거워 보이진 않사와요. 솜씨가 별로인 워퍼를 만나셨는지.]
[애매하여요] [소녀가 확인을 하기 위해 바티칸 중앙 도서관의 관련자 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심문이 꽤 까다로운지라. 하지만 거의 해결되었사와요.] [하지만 제 신분의 문제로 중심부에 발이 묶여 있는 만큼 바티칸 전체의 상황은 확인하기 힘들어서 강철씨의 도움을 요청했사와요. 그리고 이후의 전투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도.]
큭큭하고 웃어보이다 옅게 숨을 내뱉는다. 확실히, 이건 일반적인 문제가 아니다. '도대체 땅에 뭔 짓을 해뒀길래 의념을...' 그녀의 반응으로 미뤄보아, 아마 이런 느낌을 받는건 자신뿐이지 않을까. 문득 자신의 혈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게이트에서 비롯된 혈통이 반응 하고 있는것일까? 당장 알 수 있는 문제는 아니였으니, 잡념을 흩어내곤 타이핑을 이어나간다.
[그럼 저는 전반적인 바티칸의 상황 주시와, 혹시 모를 전투를 대비하면 되는군요.]
그러고는, 이어지는 채팅에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내뱉는다. 지금 자신의 상태가 만전의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챈거겠지.
" 16만 gp나 냈는데 영 씁쓸하네요. "
[아마 금방 적응 할겁니다. 이 공간의 의념이 저를 짓누르는 느낌이라고 해야할지...] [당장 짚히는 원인은 혈통의 문제입니다만, 확실하진 않습니다.]
확실하게 단순한 피로로 인한 컨디션 저하는 아니다. 알지 못하는 원인으로 압박감을 느끼는 듯 보이는 강철의 모습에 이래서는 곤란하다 여기며 대화를 이어간다.
"너무 힘드시면 의사나 사제님께 진료를 받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되어요." [혈통의 문제라...더 설명하기 곤란한 이유로 상태가 좋지 않으시다면 소녀가 바티칸 측에다 진단을 요청해보도록 하겠사와요. 강철씨가 제 도움을 바라신다면요.] [무리하지 않는 한에서 바티칸에 나오는 의뢰를 해주셨으면 하여요. 천천히 우호를 다지면서 자금도 마련하고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테니까요.] [정보는 상시로 교환하도록 하겠사와요.]
"그래도 또 저희가 아는 다른 분도 이곳으로 여행오신다 하니 재밌을 것이어요." [워리어로 태호군의 협조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사와요.]
한 모금 커피를 들이키니 각성상태에 돌아선 뇌가 더 빠르게 돌아간다. 반대로 향과 온기로 긴장은 풀어지고 마음이 가라앉아 침착해진다. [갑작스런 부탁에 협조해주셔서 감사드리어요.] [그리고 사실 이 사태의 진상에 대해 더 할 말이 있사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