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잊어버렸어? 기억력 허접♥ 에이징 커브 와버렸냐구♥같은 말은 찡그린 얼굴을 보자 쑥 들어가버렸다. 인상 쓴 우마그린 처음볼지도.. 또레나네 집에서 봤던가? 그땐 빵봉투도 있었고 다른게 이것저것 팡팡 터져서 기억이 잘 안나네.. 아무튼 처음보는듯한 인상 쓴 우마그림의 모습에 살짝 당황했다. 대충 둘러대는 말이었지만 적중했던건지, 바빠서 까먹었다는 말에 살짝 어깨를 으쓱했다.
"뭐어, 느긋하게 해 느긋하게~ 그렇게 급한 건 아니니까.“
초콜릿 만들기와 트레이너의 업무 중 어떤게 급선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후자니까. 눈 앞의 상대가 쿠소닝겐이었다면 '아앙? 내 알빠임?? 그보다 미리 말했잖아 어서 내놔!'정도는 말했을지도 모르지만(그래도 기다리긴 했을 것이다 아마도). 아무튼 그냥 옆에서 좀 기다리지 뭐. 오, 사탕도 주잖아. 그럼 30분 정도는 더 기다릴 수 있다고~
"와 사탕! 잘 먹겠습니다~“
사탕 하나를 골라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옆에서 빈 의자를 하나 끌어와 옆에 앉는다. 어- 별 의미는 없고 그냥 서서 기다리면 다리 아프니까. 그 정도로 아플 다리는 아니지만 뭐. 아무튼 적당히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는 떠들어도 되려나.
잠깐 쉬고 쏟아지는 일을 위해서 쉰 것 같기도 하고. 주름이 잡힌 미간을 한 채 노트북을 노려보던 다이고는 급한 건 아니라며 사탕을 하나 골라 먹는 메이사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미간에 주던 힘을 잠깐 풀었다. 그러다가 메이사가 옆에 의자를 가져와 앉은 뒤, 뭐가 그렇게 바쁜지 물어보자 다시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이제 클래식 시즌이다 보니까, 레이스 일정도 정리해둬야 하고... 내가 담당이 따로 없는 대신 좀 이것저것 애매한 일들도 하고 있거든, 아직 담당 못 찾은 애들 트레이닝 플랜도 조금 짜고..."
집중적으로는 못 봐주지만 그래도 체력관리 정도는 도와줄 수 있으니 짬짬히 시간을 내서라도 해야 한다고 덧붙인 다이고는 조금 여유가 생긴 듯 미간에 힘을 좀 풀곤 옆에 놓인 차가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아- 맞다 이제 클래식이지. 이것저것 애매한 일이라.. 우마그린도 담당 두면 되는 거 아냐?“
담당을 두면 그 애매한 일들에서 해방되는 거 아닌가? 그럼 쏟아지는 일이 좀 줄어들겠지. 아니다, 담당 관리로 또 일이 늘어나나...? 총량은 변하지 않아.. 일의 질량보존..같은게 있을 리가. 아무튼 담당이 있어도 없어도 바쁜 법이구만. 어른이란 참으로 힘들겠어. 입 안에서 사탕을 또르륵 굴리다가 가정실 화제가 나오자 슬쩍 뒤로 기댔다.
"흐으음~ 다들 말을 안 하는 건 말이야, 소녀의 비밀이니까 그런거라구. 우마그린 의외로 섬세하지 못하네♥“
적당히 소녀의 비밀이니 뭐니 하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 그냥 말해도 되는 거 아닐까? 아, 자기 라이벌이 누구인지 대놓고 들키기 싫어서 그런걸까, 아니면 칼로리 폭탄을 멕일 라이벌의 담당이 알면 길길이 날뛸까봐 비밀로 하는 걸까.
"—뭐 그냥 대놓고 말하자면, 찰렌타인데이야 찰렌타인데이. 당장 내일이거든. 친구들하고 우정 초코를 나누는건 발렌타인데이랑 비슷한데, 라이벌에게 칼로리 폭탄 진심 도전장 초코를 주는 게 살짝 다르달까. 그리고 나도 그 준비로 가정실을 빌리러 왔단 말씀."
"음- 나보다 훨씬 더 괜찮은 트레이너들이 잔뜩이니까 말이지, 담당 해달라는 애들도 거의 없었던 것 같고."
엄밀히 따지자면 그건 아니다. 본인이 거절한 경우가 꽤 있었기 때문인데, 크게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는 모양. 어쨌든 일이 많은 건 맞는 법, 그렇다고 해서 다른 트레이너들의 일이 없다거나 그런 건 아니어서 결국은 트레이너 평균치의 일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도 볼 수 있다.
"크윽, 섬세하지 못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직접 들으니 가슴이 아픈걸-"
전혀 가슴이 아파보이는 표정은 아니다, 모니터를 쳐다보고 말하는 거긴 해도 꽤 성의있게 반응해주고 있긴 하지만.
"어라? 소녀의 비밀 이렇게 말해줘도 되는 거였어? 이건 내가 들려달라고 한 거 아니다? 섬세하지 못한 건 메이사 쪽일지도~"
작업에 여유가 생겼는지 농담까지 하면서 꽤 능숙하게 말을 넘기는 다이고. 그래도 궁금했던 게 해소됐기 때문에 기분은 썩 괜찮은지, 예의 그 미소가 살짝 올라오며 메이사에게 말을 이어간다.
"듣고 보니까 왜 나한테 말 안해 줬는지 알 거 같아, 내가 봐주는 애들이 여럿이다 보니까 정보가 새나갈지도 몰라서 그런 건 아닐까... 정보의 바다에서 고립되는 건 외롭구만~"
"에~ 정보의 바다에서 고립되어 외로이 늙어가는 허~접 우마그린을 위해 내가 특별히 말해준건데~? 이게 섬세하지 못하다고~?“
누가 누굴보고 섬세하지 못하다는 것이야! 라고 하지만 이쪽도 딱히 가슴아픈 표정은 아니다. 그나저나 정보유출 때문에 다들 말을 아끼고 있었던거구나. ...근데 뭐, 그냥 초코를 만든다는 사실까진 알려줘도 되는 거 아닌가? 아- 진짜로 섬세하지 못한 쪽은 나일지도 모르겠군. 아무튼 미안하네. 우마그린이 트레이닝 도와주는 이름모를 친구들이여. 근데... 내 알빠냐 솔직히.
"뭐 주로 학생들끼리 주고받긴 하지만 트레이너끼리 주고받는 일도 있다고 하니까. 우마그린도 준비해두는 쪽이 좋지 않겠어? 내일 빈손으로 다니면 진짜로 섬세하지 못하다던가 눈치없다던가 그런 말 들을지도 모르는데~?“
트레이너 간에도 라이벌 구도는 있고, 그런 사람들끼리 진심 도전장 초코를 주고받-기도 하나? 그것까진 관심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그냥 가볍게 우정 초코를 주고받는 일은 있을거다 아마. 이맘때면 트레이너실 내부에서도 어디는 초코가 수북한데 어디는 텅 비었다던가 하는 말이 돌아다닐걸.
"아, 그래. 준비하는김에 우마그린 것도 오늘 준비할까. 재료는 넉넉하게 들고 왔으니까 여유있을 것 같은데.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