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는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고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계속 변명하는 것 같은 모양새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서였다. 말하는 대신 사미다레는 불편하지는 않냐는 물음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다가, ……뭐, 뭐, 뭐, 뭐뭐뭐뭐뭐. 스와브?! 처진 눈매가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동그래질 정도의 경악이 그를 덮쳐 온다. 너무도 급속하게 들이닥치는 친밀한 표현에 사미다레는 머릿속이 빙글빙글 도는 듯했다. 당황해서 무어라 대답해야 한다는 생각을 까먹을 만큼이나. 쏴아아, 정적이 들어찬 가운데 파도 소리만 시원하게 귓전에 울렸다. 이 양반 선 채로 죽었나 싶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 그래. 우리는 이제 팀이니까 친하게 부를 수 있는 사이인 거야! ……아마도.
"그, 그러면 저도 힘을 내서……! 언, 어, 언그레이……………………님."
……더 경칭이 되어 버렸잖아! 용기를 내어 친근하게 부르려고 싶었건만 입이 생각처럼 움직이지가 않았다. 사미다레는 낙담한 표정으로 시무룩해졌다.
"아, 아니, 이건 실수예요! 거리는 천천히 좁히는 게…… 낫겠네요. 네에……."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흘끗 상대편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다음 화제로 얼른 넘어가는 편이 나아 보인다.
"그, 역시 그렇겠죠…… 제 친구가 그렇게 불러서요. 그러면 한 번은 여쭤 보는 걸로……."
잘못 부르면 괴롭힘이라는 부분에서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메이사의 평소 언동을 고려하면 아주 높은 확률로 놀리려 붙인 별명일 거란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사미다레는 메이사를 아주 소중한 친구로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명백한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이윽고는 눈까지 꼭 감고 머리를 숙였다. 그리 중대한 일도 아닌데 진지해 보인다. 왠지 긴장되기도 하고, 눈 뜬 상태로 머리 쓰담아지기는 기분이 묘할 듯해 그랬다. 정수리에 손이 닿으면 두 귀도 자연히 누워 자리를 내어 주었을 것이다. 고개를 들고서도 사미다레는 곧장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귀엽단 말에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쑥스러운 심정 간신히 잠재우느라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제대로 만나본 건 지금이 처음이고, 첫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잔뜩 허둥거리기만 했지만,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다. 사미다레의 얼굴에 수삽스러운 미소가 설핏 스쳤다.
"그러면 말이죠……. 혹시, 아… 내일은 같이 훈련하지 않으시겠어요? 그, 괜찮으시다면요."
아까의 실수 만회하려는 것처럼, 이번엔 간신히 제대로 된 말 꺼내었다. 아래로 몰래 깍지 낀 손가락 좀스럽게 꼼지락거린다.
은퇴시킨 우마무스메가 있다는 꼬리표가 달린 트레이너, 우마무스메들에게 의도적으로 경력을 숨기는 트레이너. 어느 쪽이 더 신뢰할 수 있냐면 적어도 나는 전자다. 불리한 일도 깔끔하게 밝힐 정도라면 적어도 정직하다는 쪽일테니까.
"그럼 반대로, 항상 말을 돌리고 제대로 말도 안해주는 사람을 쉽게 믿을 수 있어? 의도적으로 뭔가 감추고 입다물고 있는 사람을, 물어봐도 아무 답도 해주지 않는 사람을 하또는 쉽게 신뢰할 수 있나봐?" "감춘다는건 말이야, 언젠가 의심을 사기 마련이야. 의심이 생기기 시작하면 불신까지 가는 데는 얼마 걸리지도 않고." "나중에서야 사실은 그게 아니었어~라고 해봤자, 어쩌라고? 그럼 진작 말했어야지? 하게 되는 거라고. 그렇지 않아?"
에에~ 여기까지 말했는데 분위기 또 무거워졌는걸. 또 과장된 모습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뭐 아무튼, 다이애나 포그린의 트레이너가 니시카타 트레이너였다는 건 아-까 전에 다이애나 얘기를 꺼내자마자 하또의 표정으로 확인사살이 이미 끝났네.
"하아, 하또랑 싸우려고 온 건 아닌데 말이지- 아무튼 뭐, 하또가 하고 싶은 말은 대충 이해했어. 그래도 난 역시 정직한 쪽이 좋다고 할까."
"네거티브. 동생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라면 새걸로 하나 구입하죠. 어차피 용돈은 널널합니다."
어차피 구입을 위해 비행기까지 타는 상황인데, 한개더 구입한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이러면 데려갈 이유도 하나더 생긴다. 언그레이의 동생이 어떤 취향의 모델을 좋아하는지 모르니 그걸 아는 사람이 같이 가서 골라주는 편이 편했다. 여행의 목적이 늘어나는 것은 나로서는 조금 돈을 더 쓰더라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본 항공기는 세스나사의 인기모델인 172 입니다. 파파가 마마에게 백어택을 맞을 정도로 비싼 모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럴 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격에 대해서 따로 언급은 하지않을 무렵에 선착장앞으로 비행기가 멈추어섰다.
"Papa, how are you? I haven't seen you in a long time .I think it's been about a month and 15 days."
선착장에 내린 제임스 본드를 닮은 댄디한 남자, 내 아버지가 내 인사를 받자 끌어안아 들어올려 반겼다.
"I'm embarrassed in front of my friend Please let me get off."
이내 나를 내린 아버지는 쓰고있던 캡모자를 내려 언그레이 데이즈를 반겼다. 집안이 집안이다보니 간단한 영어회화로 대화하고는 했다. 딱딱한 일본어보다는 영어로 대화할때 조금 부드럽게 대화하기도하고.
"리퀘스트. 친구도 동행할겁니다. 괜찮죠? 아, 콜사인은 언그레이 데이즈라고 합니다."
너무 나와 아버지 사이의 이야기가 될거같으니 이내 일본어로 돌아와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환영한다며 아버지는 비행기의 뒷문을 열어준다.
[ 메이사 양 ]. [ 드릴 말씀이 있으니 잠시 와주시겠어요? ] [ 트레이너 실, 점심시간. 길게 시간을 잡지 않을 거랍니다 ]
어젯 밤, 메이사에게로 보내진 문자입니다. 니시카타 미즈호로부터 보내진 개인 톡입니다. 평소에는 거의 팀 채팅방을 이용하고 있던 니시카타 트레이너이기에, 이번 일은 굉장히 당황스럽게도 보일 수 있는 일입니다. 니시카타 트레이너는 도대체 왜 이시점에 메이사를 부른 것일까요?
어쩌면 이미 메이사는. 그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ー드르륵,
문을 열고 트레이너실 안으로 들어선다면, 텅 빈 트레이너실 안에 지나칠 정도로 똑바른 자세로 앉아있는 니시카타 미즈호를 메이사는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메이사가 온 것을 확인하자마자, 그녀는 부드러운 얼굴로 이렇게 말합니다.
밤색 우마무스메는 사미다레가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동안 계속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지 모를 복잡해 보이는 눈으로 생각하는 것은...
... 뭘까 이 생명체는. 어째서 이렇게 귀여운 걸까. 표정의 변화에, 움찔움찔거리는 저 행동들. 거기다 이름으로 한번 불렀다고 눈이 저래 땡그래지고... 뭐야 저 아이. 귀여워. 더 지켜주고 싶어졌어. 뭐야. 쓰다듬어주고 싶어, 안아주고 싶어, 챙겨주고 싶어. 동생들과 거의 동격으로 귀여운 아이라니 이건 사기가 아닐까. 세에상, 이 아이가 나랑 같은 팀이라니. 야나기하라 코우 당신은 대체 나를 심장마비로 죽이려는 것인가.
... 그렇다, 자신의 가족에게만 보이던 주접들이였다.
"뭐어, 이름으로 부르는 데에는 성공혔구마. 인자 그 뒤에 붙은 걸 떼뿌므는 되겄구마. 천천히 하제이 그려. 스와브가 편해하는 페이스로 천천히 하므는 되는기제."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아이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지어지는 미소를 지우려 노력하지 않은 채 더더욱 쓰다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