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에 본, 낡은 TV속에서 그 누구보다 찬란하게 빛나던 그 우마무스메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 우마무스메가 달리는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나, 최고의 우마무스메가 될거야. 목표는 일본 제일!"
"정말? 모모쨩, 대단해~"
그런 말을 들으면 난 씩 웃으면서 하염없이 달렸다. 작은 다리와 작은 발로, 어디까지나 뛰어갈 수 있는것처럼 달렸다. 달린다는건 즐거운 일이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매일같이 산 속으로, 골목길 사이사이로 뛰어다니며 나만의 모험을 즐겼다. 친구들과 이리저리 쏘다니며 실컷 장난을 치고, 흙투성이가 되어 집에 돌아오면 날 따듯하게 맞아주는 엄마와 아빠. 아빠나 엄마와 목욕을 마치고 나오면 시원한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켰고, 맛있는 밥을 먹었다. 여름날 툇마루에 앉아 수박을 먹고 얼마나 멀리 씨를 뱉을 수 있을지 장난치며 맡던 모기향의 냄새. 겨울날 눈을 굴리며, 손 끝이 빨개질때까지 만들던 작은 눈사람.
"모모쨩은 정말 빠르네~ 분명 일본 제일의 우마무스메가 될 수 있을거야!"
"정말?"
"그럼~ 당연하지. 모모쨩은 특별한 사람이란다. 내가 아주 사랑하는, 나의 소중한 딸이니까."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달리는게 참을 수 없을만큼 즐거웠다.
"1착이 되는것은 누구인가, 프리스트 더 콜 이냐, 투스데이 플라워냐!"
"지금 1착으로 골인! 프리스트 더 콜, 1착을 달성합니다!"
"2착은 코차이로 투스데이 플라워, 그리고 3착은...."
내 이름이 불리는건, 아주 나중의 일이었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있는 나에게 엄마가 다가와서 조용히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아, 분명 다음번엔 이길 수 있을거야. 너무 울지 말고, 내려가서 같이 밥 먹자. 엄마가 같이 달려줄게. 날 위로하는 상냥한 목소리를 들으며, 다음번엔 반드시 이길거라고 다짐했다.
"1착은 투스데이 플라워! 훌륭하게 리벤지를 달성해냅니다!"
"2착은 프리스트 더 콜, 3착은..."
또 다시 나의 이름은 없었다.
나는 더 노력하기 시작했다. 더 많이 달렸고, 더 많이 먹었고, 더 많이 운동했다.
"1착은 체리 파르페! 체리 파르페, 훌륭하게 골-인!"
"2착은..."
노력이 부족한거야.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뛰었고, 더 많이 운동했다.
"1착은... 2착은..."
더 많이 뛰고, 더 많이 뛰었다. 예뻤던 나의 발은 어느새 흉터투성이가 되어있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면 토하고 다시 뛰길 반복했다. 그러다 몇번 쓰러지고 나서야 집에 돌아왔다. 매일같이 코스를 뛰고, 흙투성이가 되어 돌아오면 조용히 욕실로 가 땀과 흙, 발의 물집이 터져 흘러나오는 피와 진물을 씻어냈다. 프로틴을 마셨고 철저하게 제한한 식사를 먹었다. 식었지만 괜찮았다. 혼자였지만 괜찮았다. 여름날, 벤치에 앉아 운동을 하고 축축하게 젖어버린 가죽 시트의 악취를 맡았다. 겨울날, 새하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발 끝이 붉게 물들때까지 만들던 눈 녹은 물웅덩이.
노력했다. 연애도, 사랑도, 친구도, 우정도 전부 필요없어. 일본 제일이 되고 말거야.
그렇게 나간 첫번째 데뷔전에서- 나는...
참패했다.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소리치며 울었다. 땅을 몇번이고 때리며, 손이 다 까져 제지당할때까지 멈추지 않으며, 목이 찢어져라 울었다.
나, 혹시 특별한 사람이 아닌거야? 나는 저 TV속 우마무스메처럼 반짝거릴수 없는거야? 이렇게 노력해도 안된다면, 나는 꿈을 포기해야 하는거야? 닿을것 같은데 닿지 않아. 이대로 놓아주지 않는다는게 어리광이라는건 잘 알고 있어.
하지만.... 나의 소중한 꿈이잖아. 그것을 잃어버리면 내겐 무엇이 남는거야?
누군가 알려줘.
"난, 나는..."
추한 얼굴이었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입을 어찌나 세게 깨물었는지 상처가 터져 피도 흘러내렸다. 네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