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로시난테는 박치기를 꽤 다양한 수단으로 쓰곤 했다. 애정표현도 인사도 짜증도 머리 툭툭 들이받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누군가를 응징할 때에도 헤딩으로 한다. 그러나 아무리 짜증을 내도, 트롯으로 따각따각 다가와 들이박는 게 전부다. 그런 브루스의 도움닫기를 트롯 대신 갤롭으로 만들어버린 건, 이 이름모를 우마무스메가 브루스의 도시락에서 꺼내먹는 게 하필 브루스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인 당근 가라아게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이건 밀폐용기를 안 쓴 브루스 로시난테의 잘못도 있다. 음식 냄새 고스란히 풍기는 라탄 바구니에 도시락을 싸온다는 것은 먹어주십쇼 아닌가? -브루스의 생각이 거기에까지 닿지는 않을 듯하지만. 그러나, 굳이 거기에까지 생각이 닿을 필요도 없을 듯하다. 가라아게 한 입 맛본 대가라기엔 너무도 비참하게 쓰러진 마사바 콩코드의 몰골은, 씩씩대던 브루스 역시도 당근 가라아게 한 조각을 털린 분노를 제쳐두고 뜨악한 표정을 짓게 만들기 충분했으니까.
"어... 보이소, 아지야. 아지야. 개안응교?"
본인이 들이받고도 너무 세게 받았나 싶었는지, 브루스는 쩔쩔매는 표정을 하고는 자빠진 마사바 옆으로 다가와 마사바를 짤짤 흔들어보기도 하고, 부축해보려고도 한다.
어머니, 트레이너, 메이사... 경주 우마무스메 마사바 콩코드는 이렇게 덧 없는 마무리를 하는구나... 실 없는 생각을 하며 상대가 흔들고 부축하려는 시도에는 아무 반응 없이 또르르 눈물을 흘리다가, 가만 생각해보니 상태의 회복 속도가 빨라진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바닥을 짚고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당신, 어째서... 나 뼈 맞았어... 진짜 아프다....."
아직 흘렀던 눈물을 닦지 못 한 터요, 바닥을 뒹굴며 입었던 흙먼지를 털지 못 했기에 마사바 콩코드의 모습은 꽤죄죄하니 동정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어째서..? 나는 가라아게를 먹고 있었을 뿐인데... 이것이 견제인가? 자신 외의 경주우마무스메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깐깐한 타입의 우마무스메와 만나게 된다면 이렇게 헤딩으로 늑골골절을 각오해야 하는 것인가? 서럽다 세상아.
"아, 가라아게..."
바닥에 떨어진 가라아게를 측은하게 바라본다. 저걸 다 먹었어야 했는데, 처음 보는 우마무스메에게 당해서, 내가 약해서 너 또한 명을 달리 했구나. 아아...
https://picrew.me/share?cd=wdkQLYx7Nj #Picrew #おすすめの少女メーカー 마사바를 부축해 올리는 데까지는 보복자의 분노를 거두고 걱정과 반성의 표정을 짓고 있던 브루스였으나, 마사바가 띄엄띄엄 내려놓는 말에 브루스의 눈썹은 다시 역팔자를 그리고 말았다. 부축은 풀지 않았으나, 이 무슨 스고이 뻔뻔함?! 하는 표정으로 마사바를 쏘아보는 브루스.
"그 가라아게 내낀데?!"
그리고 브루스의 눈빛은 바닥에 떨어진 가라아게에 닿는다. 마찬가지로 측은한 눈빛이 된다. 저 가라아게가 내 가라아게였어야 했는데, 처음 보는 우마무스메에게 털려서, 내가 느려서 너 또한 명을 달리 했구나...
"암튼 좀 앉아봐라. 무신 옆구리 함 받았다고 누가 봤음 저 뒷산 언덕길에서 마을짜구까지 굴러온 줄 알겄네..."
아무튼, 이미 글러버린 가라아게를 애도해도 떠나간 가라아게는 돌아오지 않는다. 브루스는 일단 마사바를 도시락통이 있는 벤치까지 부축해주고,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려 했다.
헛소리 하지 마 임마를 외치는 수달인가 해달인가 하는 캐릭터의 표정으로 브루스를 바라보는 마사바. 한 입 먹고 싶었던 거라면 얘기해주지, 안에 가라아게 하나 밖에 없었지만 누군가 원한다면 식단조절이라는 이름 하에 절제하고 한 입 정도는 줄 수 있었을 텐데. 하여튼 억울하고 원통함에 가득 찬 표정으로 브루스의 부축을 받아 벤치에 조심스레 앉았다.
"내가 허접한 몸이라... 그래서 당신 어째서 나를 공격한거야? 다음 레이스의 견제인가??"
아직까지 상황 파악을 하지 못 한 체로 얌전히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는 손길을 받아내는 마사바 콩코드. 꼬리가 살랑 살랑 흔들린다.
뜬금없는 소리에 브루스는 잠깐 감정의 방향성을 잃고 눈을 깜빡였으나, 그녀는 곧 지금 눈앞의 이 우마무스메가 방금 자신이 가라아게를 빼먹은 도시락 통과 브루스 사이의 상관관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정확한 결론에 도달하는 데에 성공했다. 시트에서 말했듯 브루스 로시난테는 바보다만, 일단 트레잇에 지능떡상이 달려있긴 하다. 좌우지간 졸가리를 파악한 브루스는, 마사바의 먼지를 털어주다 말고 마사바가 가라아게를 빼먹은 도시락통을 마사바의 코앞으로 치켜들어보였다.
"니가 가라아게 빼먹은 도시락 이거 내가 직접 싸온 내 도시락이라꼬! 여 안 비나 네임택!!"
몹시... 작습니다. 그 네임택이라는 놈이, 몹시 작다. 도시락통 한구석에 우표만한 사이즈로 붙어있다. 눈 찌푸리고 자세히 들여다봐야 ブルース·ロシナンテ라는 이름이 겨우 보일 정도다. 그러니까, 자세히 들여다보는 거 아니면 안 보인다. 아무튼 이 도시락통이 임자 있는 물건이라는 소리인 모양이다...만 이건 그 임자 쪽에도 과실이 없다곤 못하겠다.
네임텍? 내 도시락? 충격적인 발언에 마사바 콩코드는 도시락통에 얼굴을 들이밀며 매우 작게 쓰여진 브루스 로시난테라는 이름을 읽어내고야 만다. 브루스 로시난테... 하지만 로시난테는 저 멀리 다른 나라 소설에 나오는 우마무스메고 눈 앞의 우마무스메는 건장한 경주 우마무스메처럼 보이는데? 거짓인가 진실인가 그 사실을 파악하기에는 아직 마사바 콩코드의 몸 상태가 완전하지 못하다. 아직도 옆구리가 지끈거려...
"브루스 로시난테가 내다! 브루스 로시난테 도시락을 빼묵었는데 내가 썽을 내고 있으면 내가 브루스 로시난테겠제!?!?!"
세상에 이런 스고이 엉망진창 통성명이 있단 말인가! '네가 내 도시락을 훔쳐먹었다'라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이 이리도 지난한 일이었던가! 실로 말법적인 의사소통, 붓다!
"근데 아니 그... 진짜 안 비나?"
브루스 로시난테는 갸우뚱하면서 도시락통 구석의 네임택을 본다. 내인테는 잘 비는데, 같은 말을 뇌까리면서. 이녀석 시력 좋은 모양이다. 이름을 더 크게 써붙여놔야 될랑가- 하고 생각하다가 브루스는 마사바의 먼지를 마저 털어주는 것을 선택했다. 후딱 털어주고 밥이나 묵어야지 안되겠다.. 도시락통을 열고 그 안에 있는 냅킨을 꺼내서 마사바의 눈가에 눈물과 먼지가 뭉친 것을 닦아주고 나서야, 브루스는 마침내 아침식사를 시작할 기분이 됐다.
아니, 안 됐다. 아직 옆에서 고통을 채 다 사그라뜨리지 못한 얼굴을 하고 있는 마사바를 보고, 로시난테는 새 당근 가라아게 하나를 나무젓가락으로 집어서 마사바의 입가에 디밀어준다.
"아나. 우메보시얼굴 고만하고 하나 무라. 내 하나 주께."
인과관계가 어쨌건 아직 통성명 못한 이 우마무스메를 이꼴로 만든 게 자신이라는 책임감도 느끼고 있었고, 아프고 힘들 때에는 맛있는 거 묵는 게 약인기라- 라는 것이 브루스의 신념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