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중석이 준혁이에게 가진 스탠스는 '북해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폭정을 벌이지 마라.' 였어. 왜냐면 처음에 준혁이만 보더라도 '일단 돈 좀 주시죠.' 식으로 행동을 했단 말이지. 거기에 더해서 캐릭터의 설정부터가 좀 여러모로 뒤틀린(아무래도 이전 캐릭터 때문에 캡틴과의 시선 차이가 생기므로 나타난 문제)면이 있다 보니 또 삐걱거리면서 생긴 문제인거지.
그런데 재밌는 점은 이때에도 캡틴은 준혁이가 '후계자가 아니다' 라고는 하지 않았어. 다만 '보통은 첫째를 지지하고 있는 편이다' 라고 말해줬지. 하지만 이후로 갈수록 현재석은 길드에 관심이 없다는 점을 꾸준히 보여주기도 했고, 만율이라는 캐릭터가 준혁이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는 등 '현준혁'이라는 캐릭터가 단순히 배경이 있으니까 잘 했다. 같은 건 아닌 거야.
이건 배경 설정으로 공개되지 않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지만, 만율 장로를 붙여준 것도 현중석이고 준혁이가 제대로 후계자로 활동하기 전까지 길드 내부에서 후계 구도를 굳히지 않은 것도 현중석이야. 자신의 길드를 잇는 것은 당연히 자신의 아들들 중 하나가 될 거고, 그렇기 때문에 준혁이가 북해라는 이름의 무게를 알 수 있도록. 더해서 북해라는 이름에 취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채찍질한 면도 있지.
가족으로써 선의를 베푼 적이 아무것도 없다고 했는데 말야.
준혁이가 과연 아무런 베이스도 없이, 과거의 성격을 가지고 만율 장로와의 관계를 쌓을 수 있었을까? 자신이 먼저 고개를 숙였을 때 현중석이 구름과 혈십자에 연락헤 도움을 빌리고 준혁에게 줄 수 있었을까? 아무리 자신의 잘못을 수습하는 게 목적이라 한들, 준혁이 북해의 대리자라고 말하면서 북해길드의 상징을 맡겼을까? 훼룡창을, 가족이 아닌 헌터 아무개에게 그냥 내어줬을까?
생각보다 준혁이는 '가족이니까' 얻은 선의가 많아. 당장 대형 길드인 북해의 도움을 받고, 지원을 얻어낸 것도 준혁이가 가족이니까 얻을 수 있던 기회가 많아. 거기에 더해 준혁이의 결혼도, 현중석 씨는 준혁이의 의견을 물었지. 네가 싫다면 거부해도 된다는 것을 길드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간다. 라고 생각했던 것도 준혁이고 말야.
그리고 이전에, 현중석의 묘사가 나온 적이 있어. 실수할까 싶어 나설 수 없는, 지켜보는 아버지라고 말야. 그런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의 발전에 따라 천천히 마음을 열고, 거리를 열고, 아들의 깨달음과 생각에 대해 의견을 보내기도 했어. 당장 북해 길드의 장례식에도, 영월에서 훈장을 챙겨준 것도 준혁이의 행동에 대한 조용한 칭찬이었던 거야.
이 희생이 네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그걸 선택한 것은 길드장인 나라고. 단지,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말라고.
내가 준비한 서사는 그거야. 준혁이라는 캐릭터가 아버지와 단절되더라도, 주변인들과의 대화와 스스로의 생각들. 과거사 등을 회상시키며 아버지를 용서하진 못하더라도 이해하게 되는 것. 그를 통해서 왜 아버지가 길드라는 부분에 집착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 묘사하려는 게 목적이었지.
준혁이의 서사. 즉 시즌 8 즈음에 준혁이의 목표는 현중석이라는 인물이 길드의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북해 길드 내부의 정치 싸움과 결투를 통해 현중석을 쓰러트리고 길드장이 되는 게 주요 서사였어. 이걸 위해서 일부러 현중석의 뇌룡(날카롭고 폭력적인)과 대비되는 현준혁의 토롱(드넓고 고요한)이라는 서사를 맺어주고 있던 셈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