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망을 불태우면서, 이면의 어둠과 빈센트의 불이 만난다. 그리고... 불마저 이면에 잠식되어, 우리가 불 하면 아는 흔한 그 색깔이 아닌... 우리가 알 수 없던, 이 세상의 그 어떤 단어로도 정의할 수 없는, 아니, 빈센트의 모든 것을 걸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알 수 없는 색채가 불꽃을 덧입힌다. 그리고, 이면의 빈센트는 그 불을 보면서 미친 듯이 웃었다.
<빈센트! 알잖아. 넌 불을 참 좋아했던 거. 그럼 당연하지 않나? 내가 가장 잘 쓰는 것도 말이야...>
"아, 제기랄."
이면의 빈센트가 손을 저어 이면의 불을 여선과 빈센트 쪽으로 쏘자, 빈센트는 두꺼운 얼음벽을 만든다. 하지만 그 이면의 불꽃은, 우리가 불꽃 하면 아는 그 정의를 한참 벗어나서, 빈센트가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 뇌가 불타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빈센트는 머리가 뜨거워지는 것을 애써 '느낌'일 뿐이라 무시하려고 애쓰면서, 여선에게 말한다.
"여선 씨... 약점 간파... 그걸 꼭... 쓰십쇼... 제기랄..." //11 저게 뭐 디버프.. 쪽이라면 ★최초 일상에서 제네바 선언쓰기 같은 걸 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긴 하지만?
빈센트는 여유를 잃고, 힘겹게 타박한다. 지금 빈센트는 다 죽어갈 것 같은 마당에, 여선은 죽어도 혼자 빠져나갈 방법이라도 있는 것마냥 태평하다. 여선이 메리 교관 수준의 뒷배를 가진 게 아닌 이상에야. 그리고 빈센트가 여선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 정도의 뒷배나 믿을 구석이 없다는 건 확실히 알고 있었다.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쿨럭!"
얼음은 점점 녹고, 저 기이한 불은 가까워지고,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빈센트의 말단은 점점 검게 변한다. 아무래도, 여선도 약점 간파를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아 약점 파악에 오래 걸리는 모양이었다. 남은 시간 5초, 그마저도 잘 쳐준 수준. 빈센트는 잠깐 고민하다가, 그걸 해보기로 한다. 빈센트는 코피가 강물처럼 흐르는 참담한 꼴로 여선을 바라본 채 말한다.
"미리 미안합니다."
빈센트는 해보려다가,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는 이론상 결론에 도달해 하지 않았던 짓을 해보기로 한다. 지금 당장은, 저 괴물 같은 놈한테서 거리를 벌리는 게 중요했으니까. 빈센트는 저 놈의 불에서, 화학 에너지에서 전기를 뽑아내는 느낌으로 전기 발전을 시도하고...
펑!
간결한 소리와 함께 빈센트와 여선 쪽으로 폭압이 밀려와 날아간다.
//13 대충 이 다음 답레에서, 빈센트가 사경 헤매다가 여선의 천운을 덤으로 받아서 겨우 살아남고, 그 다음은 응급치료로 갈지도요?
"폭압..?" 아니 그런 걸 지금. 같은 소리를 하기 전에 일단 그게 실수인지 감은 안오니까 괜찬ㅍ겠지 싶을지도.
폭압이 밀려와 날아갈 것 같은 여선입니다만. 빈센트를 깔아눕히며 여선은 별 피해가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남을 방패로 쓰다니. 천운 이녀석이 일한건지 안 일한 건지.. 물론 여선의 천운이 빈센트도 조금 보호한 모양인지 데미지를 받긴 해도 약간 폭압이 퍼지다 만 곳으로 처음 날려져서 덜 데미지를 받은 걸지도 모릅니다.
"음.. 저 그. 이단 숭배자는 확인사살 되었을까요." 빈센트를 툭툭 건드리려 합니다. 의식유무를테스트 하는 건가봅니다.
빈센트는 멀리 날아갔고, 여선은 빈센트를 밟은 덕분에 좀 나았지만 멀리 날아간 건 매한가지였다. 빈센트는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온몸이 망가진 느낌에, 그리고,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제대로 느꼈다. 아니, 죽음의 공포라기보다는, 그보다도 더한 운명에 대한 공포일까? 빈센트는,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모든 것을(빈센트의 동료를 포함하여) 밀치고 오는 이면의 빈센트를 보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최소한 여선에게는 '당장은' 관심이 없어서, 도망칠 틈은 있다는 것일까. 이대로 여기서 저 놈처럼 될 순 없다고 생각하며, 빈센트는 남은 망념을 그러모아 자살을 할 수 있는 마도를 시동하려 했다. 하지만...
<이런. 이 세상에서 자네를 제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뒤로 하고 도망치려 하면 쓰나,>
'마도 역분해'
빈센트가 피워내려던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불꽃은 허무하게 꺼지고, 빈센트는 위를 올려다본다. 이야, 저렇게 못생긴 걸 보니 진짜 이면이 무섭긴 한가보다.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든 끔찍한 공포를 회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면의 빈센트는, 그에게 그럴 틈도 주지 않고, 빈센트의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자아, 알아서 제 명을 재촉한 이 멍청한 빈센트는 지금 어느 순간에서 왔을까? 다윈주의자? 시체칼날? 프리 핸드? 아니면 아예 다른 세계선인가? 잠깐 실례하지. 자네에게 가장 끔찍한 운명을 선물하려면, 자네가 누군지를 제일 잘 알아야 해서.>
...라고 말하며, 이면의 빈센트는 빈센트의 지갑을 뺏었다. 헌터 네트워크로 어지간한 건 다 되지만 혹시 몰라 신분증, 카드, 베로니카의 사진 같은 것을 넣어둔 지갑이었는데... 지갑을 뒤지던 이면의 빈센트는, 베로니카의 사진을 보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눈알 대신 괴물이 들어가 있고, 흔히 눈물 하면 생각하는 투명한 물이 아닌 검고 짙푸르고 걸쭉한 액체였지만, 그걸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온 몸이 꿀럭대기 시작하더니, 이내 형체를 잃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젠장. 이 놈을 사냥하려면 이거 말고 다른 몸을 가져와야 했어.>
...라고 말하며, 빈센트의 형태를 취했던 이면의 숭배자가 액화되어 바닥에 눌어붙었다. 겨우겨우 몸을 일으킨 빈센트는 자기가 이겼나 고민했지만, 자신의 몸 상태를 다시금 깨닫고는, 코피를 흘리면서 뒤로 뻗어누워 한 마디를 겨우 말했다.
빈센트는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폭압을 거의 다 받아내면서 몸이 망가진 상태였는데, 폭압으로 내출혈이 일어난 폐에 부서진 갈비뼈까지 가세하면서 빈센트의 상태는, 그나마 말이라도 하던 상태에서 말조차 못하고, 죽어가는 이의 단말마만 내뱉는 수준이 되었다. 그야 당연했다. 빈센트는 죽어가고 있었으니까! 빈센트는 자신을 진단하려는 여선의 팔소매를 붙잡은 채, 그녀를 똑바로 바라본다.
"윽... 커윽..."
...말은 못 했지만, 어쨌든 빈센트는 자신이 전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좀 있으면 난 진짜 죽는다'를 전하려고 했다. //17
>>251 네 딱 그 느낌입니다. 평행세계에서 베로니카를 구하자고 책을 펼친다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가 자신의 기억과 습관만 조금 남긴 채 이면의 노예가 되어버린 느낌... 이건 다키스트 던전에서 기이한 색채에 침식된 방앗간지기 몬스터가 아내의 유품을 보고 울면서 전투를 포기하고 자기 턴을 넘기는 장면을 보고 생각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