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고는 무덤덤하게 이야기 한다. 그러다 사서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말에 흠.. 그걸 미처 생각 못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그라믄 볼펜 한 자루 줄 수 있나?" 하고 묻는다. 교차검증이란 말에 볼펜을 잡기 위한 손을 거둘 뻔 했지만, 오히려? 보이는대로 기록 할 수 있는? 종이가 더 편해보이기에 손은 거두지 않는다.
"여는 지도 없음 어디가 어딘지 구분을 못하것네.."
그를 따라 걷는 토고는 헬멧을 통해 주변을 둘러본다. 책장 책장 책장 책상 책장... 이걸 일일히 말했다간 혀 씹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책 한 권만 바깥으로 분실되더라도 엄청난 사건이 터질 것 같았다.
"변변찮은 지식에 이용자가 해당 지식에 영향을 안 받는다면.. 해줄지도 모르겠다. 뭐, 안 해줄 것 같지마는..."
토고는 여기서 얻어갈.. 무언가가 있을지 고민해본다. 당장에 생각나는 건 얼마 없지만.. 앞으로 더욱 거세질 시련에 도움이 될만한 무언가를 알고 싶다. 인문학적인 지식도 알고 싶지만... 의념에 대한 것도. 루시우스 퀸튼의 논문이라거나. 하지만 그러한 지식은 접해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니 영..
아무튼간에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던 토고는 특별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끽해봐야 다행이게도 책은 펼쳐지지 않은 채 바닥에 떨어진 책이나 도서관의 이용객이 앉아 있었던 흔적 따위니까. 그러나 걷던 도중 무언가 불안한 느낌이 들어 토고는 그의 팔꿈치를 잡고 멈춰세운다.
책상에 가지런히 놓여진 닫힌 책과 앉기 좋게 뒤로 빼진, 그러나 책상과 조금 떨어진 의자. 그리고 검붉은 핏자국. 하나 하나만 보면 그다지 의문을 일으킬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것들이 합쳐지니 누가 일냈다 라는 걸 알 수 있는 흔적이 되었다.
토고는 확신 없이 말한다. 하지 말란 거 하는 놈들은 일단 튀기 마련이니까... 무엇보다 추측할 수 있는 단서가 적었다. 가지런히 놓여진 책, 뒤로 빼진 의자, 핏자국. 책은 그저 읽으려고 했지만 포기하곤 이곳에 놔둔 건지 읽고 나서 놔둔 건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의자 또한 급하게 일어서다 뒤로 빼진 것 같았지만... 그저 책상에 넣는 걸 깜빡한 것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핏자국이 의심스럽다. 상처를 입었다기엔 핏자국은 방울 방울 떨어진 것처럼 책상 위에 작게 떨어져 있을 뿐이다. 조금 오래 된 것인지 변색이 진행되어 색이 변했다. 흡사 코피를 흘린 듯한 핏자국이다.
"추측은 여러가지 할 수 있는디..."
첫째, 책을 읽으려다 말고 도망쳤다. 둘째, 책을 읽고 도망쳤다. 셋째, 책을 읽으려고 했으나 사서에게 줘터지고 도망갔다.
"니는 어케 생각하는데? 내는 읽고 도망친 것 같은디.."
분석을 가지고 있는 강산에게 토고는 물어본다. 소중한 것을 대하듯 가지런히 놓인 책, 책상을 더럽혔지만 책엔 한 방울도 튀지 않은 코피로 보이는 핏자국, 급하게 자리를 벗어난 듯 뒤로 빼진 의자.
"만약에 이 핏자국이 사서님들과 열람객의 충돌로 인해 생긴 것이고 그 방문객이 아직 이 안을 헤매고 있다면...아마 방금 그 사서님이 다른 열람객이 이 근처에 있다고 진작 말씀해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려다 말고 도망친 것이라기엔...핏자국이 조금 오래됐고요."
핏자국을 살펴서 알아낸 사실까지 추가로 기록하며 말한다.
"결론적으로 제 생각 역시 토고 형님과 비슷합니다. 그 사람이 아직 주변에 있을진 모르겠지만요."
일단 책을 읽었고 감당하기 어려운 지식이 뇌에 때려박아져 코피가 나왔을수도 있고.. 그러면서도 책이 지닌 가치가 너무 커 책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틀었을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추측이니까. 그리고 뭐든간에 일단 이런 일이 있는 것 같다 하는 걸 우린 전달만 하면 된다. 괜히 쫓아가자! 해봐야 좋을 것도 없어 보이고. 토고는 지도에 장소만 표시해둔다.
토고는 애매하다는 듯이 말한다. 도서관은 그저 지식을 모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할 뿐. 수 많은 책장엔 수 많은 지식이 담겨져 있다. 그것들은 그저 '읽지 마시오.' 라는 경고에 의존한 채 보관되어 있고, 그것을 읽으려고 한다면 사서에 의해 경고 당할 뿐. 억지로 제지당하거나 하진 않는다. 이것만 보면.. 도서관은 양심적이라 할 수 있다. 경고는 하니까.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경고만 할 뿐이다. 차암 양심적이게도.
지식을 원하는 사람이 이곳에서 지식을 탐하지 않을 가능성은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방법을 갈구하고 지식을 원하니까. 당장에 편하게 돈 버는 방법이 이곳에 있다고 한다면 그걸 찾지 않을 사람은? 그게 아니더라도 뭐... 강해지는 방법을 원한다면?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다는 말 들어 본 적 있제? 그기랑 같은 기라 생각한다. 여는 그저 생선가게고, 고양이가 오든 말든 상관없는기라. 그리고 우린 고양이제. 그래도 생선을 탐하는 아가 왔으니 니 묵으면 안된다~ 하고 말은 해두는거제."
토고는 고개를 젓는다. '누군가에게 읽히길 원하는 걸지도 모른다.' 라는 말에 토고는 부정 한 것이다. 그가 어떤 이유에서 그런 생각을 하는 지 대충은 예상 간다. 지혜가 망각 속에 파묻혀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가르침을 내리는 곳. 그곳을 경험했기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과 이건 다르다. 상대방을 배려하듯 알기 쉽게 지식을 가공하여 접하는 곳도 아니며 상대가 원하는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다. 이 도서관은.
"도서관의 목적..에 대해 니는 알고 있나?"
토고는 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수집, 정리, 보존."
지식의 수집, 지식의 정리, 지식의 보존.
"도서관은 지식을 수집한 곳이고 책에 기록하여 책장에 꽂아 정리하고 책은 지식을 담고 있는 보존체다. 우리가 도서관이 책 읽는 곳이라 생각하지마는 그건 부가적인 요소고... 여긴 그저 지식을 담고 있을 뿐이다."
"읽히길 원하는 책? 있을 수야 있겠지만.. 적어도, 여긴 없다. 오히려 그런 책이 있다면 읽는 자를 감당할 수 없는 정보로 망가뜨리길 원하는 녀석들 뿐이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