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노을빛이 창문을 타고 넘어오는 시간. 아무도 없는 교실의 문을 열어젖히며 익숙한 풍경을 눈에 담는다. 얼마만의 복귀던가? 따지고 보면 그렇게 오랜 시간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어째선지 가슴께가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느릿한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며 근처 책상을 한손으로 옅게 훑은 나는 근처 의자에 걸터앉아 멍하게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 ...조용하네. "
혼잣말이 허공에 녹아들듯 흩어져 사라지고 다시금 고요가 그 자리를 채웠다. 시야를 가득 채운 벽면을 눈꺼풀로 덮어낸뒤 이때까지의 일들을 천천히 기억속에서 끌어낸다. 대운동회의 실패로 인한 부족함을 얼마나 절절히 통감했던가. 자신은, 그리 뛰어난 구석이 있지는 않았다. '마도도... 지금은, 다른 인원들에게 밀리겠지.' 마도C는 일반인 에겐 거들먹거릴 수 있을테지만 그게 언제까지 통할지는 이미 잘 알고있었다. 내가 그토록 외면하던 혈통에 손을 뻗는다는 선택을 한 이유는...
" 끙... "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내곤 미리내고를 나선 이후의 일들을 곱씹는다. 돈을 풀어 웨어비스트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예전의 인맥을 긁어모아 겨우 실마리를 잡기도 하였다. 천운이 따른 것인지, 아니면... 기적이 있던 것인지. 자신을 찾는 친족을 만날 수 있었지만 재회는 그렇게 아름다운 종류의 것이 아니였다.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무자비한 공격에 맞은 부위가 욱신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찌어찌 오해는 풀었다만, 이후가 문제로군...' 눈을 떠 장막을 걷어내곤 자신의 팔을 힐끔 내려다보다 손을 잠시 팬더의 그것으로 바꾸자 마자 강렬한 충동이 팔을 타고 올라와 뇌를 건드렸다. 눈 앞의 이것을 부수자. 부수면, 분명 좋을거라고. 너도 그걸 원하지 않냐고 속삭이는듯한 환청이 들리는 듯 했다. '자주 써먹긴 어렵겠는데...' 작게 혀를차며 복슬복슬한 왼쪽 손을 다른 손으로 꾹꾹 누르곤 충동을 억제하려 천천히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텅 빈 교실 안에 규칙적인 숨소리가 퍼지며 벽면을 타고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늦은 시간의 미리내고. 노을빛이 창문 너머로 비치는 것을 보아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이 건물 안에 사람이 있기엔 늦은 시간임은 틀림 없다. 토고는 이런 시간에 왜 미리내고에 있냐 하면.. 누군가의 심부름 혹은 자신의 게으름 때문에. 뭐.. 쿨쿨 잠을 잤을수도 있고 토고는 원래 남의 부탁을 잘 안 들어주지만 오늘은 타인의 부탁을 들어주느라 그럴 수도 있고. 아무튼, 토고는 특별반 교실을 들리기로 했다.
"잉? 뭐고."
원래는 먼지만 쌓여 있어야 하는 곳. 대부분 의뢰니 뭐니 해서 바쁘니까. 그런 곳에 어느 커다란 덩치가 앉아있다. 특별반에서 저런 덩치를 자랑하는 이는.. 흠.. 토고는 기억을 더듬다 최근 갑자기 사라진 한 명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가 돌아왔나 싶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니 맞네. 맞아.
"오... 형님아 아이가?"
토고는 천연덕스럽게 말하며 교실 안으로 들어와 그의 앞으로 걸어들어갔다. 크크 웃는 소리를 낸 토고는 제법 긴 시간동안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충동을 얼마나 억누르고 있었을까,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주무르던 손을 반사적으로 책상에 쾅 내려치고 말았다.의념 각성자의 근력은 일반인을 훨씬 상회한다. 그리고, 웨어비스트는...
-와작 " ...아. "
...아마, 그것보단 조금 더 강하지 않을까? 라고 뇌리를 지나가는 생각을 흩어낸다. 금이 가버린 책상이 시야에 들어오자 헛웃음이 나왔다.
" 그럼. 오랜만이지? "
아무 일 없다는듯 뻔뻔하게 나가기로 결심하곤, 복슬복슬해진 팔 한쪽을 슥 숨기며 여느때와 같은 어조로 그에게 인사한다. 밥은 잘 챙겨먹고 다니냐고 웃으며 말을 더하곤 자연스럽게 책상에 한쪽 팔을 기대는 순간, 금이 간 책상이 쩍하고 갈라지며 그대로 무게 중심을 잃고 바닥에 엎어진다.
" ... "
물론, 이런 상황에서 웨어팬더의 느긋한 정신은 자신을 이런 상황에서 도망치도록 허락 하지 않았다. 차라리 패닉이라도 왔으면... 가은 실없는 생각을 하며 엎어진 상태로 미동도 없이 침묵을 지켰다.
근황을 물어보며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토고의 손을 잡으며 화답하듯 입을 연다. 물론 꼴이 좀 우습긴 했다만...
" 말 하려면 내일 까진 있어야 할거 같은데. 괜찮겠어? "
큭큭하고 웃어보이며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나자 오랜만에 마주하는 헬멧이 시야에 들어온다.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방금 전 앉아있던 의자에 다시 걸터앉은 나는 축약된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물론, 웨어비스트에 관한 이야기는 가문의 일 이라는 것으로 적당히 치환해서 말했지만... 짧게 축약 한 덕분인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이야기를 모두 마칠 수 있었다.
전쟁은 참으로 폭력적이다. 이렇게 파괴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은 모두 파괴하고, 이렇게 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은 모두 그런 방식대로 죽인다. 그렇게 해서 잿더미와 자재의 가치조차 잃어버린 쓰레기 더미만을 남긴 채, 전쟁은 그것을 후세 사람들이 짊어지고 치워야 할 짐으로 남기고, 다시 돌아오리라 약조하는 것이다...
"...똑똑이 양반. 여기 바람 좀 불어주슈!"
"네."
...어쨌든 그런 이야기는 둘째치기로 했다. 빈센트는 파괴하는 전쟁이 아닌, 살아남아 다시 짓는 이들의 옆에 서서 일하고 있었으니까. 이것저것 한 일이 많았다. 성주의 시험 이래 일감 찾기가 잘 안 된 탓인지, 빈센트는 이들을 돕는 것으로 성주가 객들에게 기대한 역할을 다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정확히 통제된 풍속의 바람을 불어 안 좋은 종자를 날리고, 숲에서 나무를 베어서 옮기기 좋게 자르고, 소를 잃어버린 마을을 위해 밭을 자신의 마도로 전부 갈아서 뒤집어 엎고, 나무를 정확히 통제된 화력으로 통제된 시간 동안 가열해 숯을 만들어 주고...
"...후."
그리고 빈센트는 지금, 인간마도선풍기가 되어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이들에게 시원한 바람의 마도를 날리고 있었다. //1 선레입니다
내일까지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 치곤.. 생각보다 쉽게 축약되어 토고는 가만 그 이야기를 듣는다. 이야기를 듣던 토고는 음.. 별건 없지? 라고 말하는 그에게 "별거 천진데" 한마디를 해준다. 그렇게 나오니까 왠지 이쪽의 사정을 물어보는 질문에 이상하게 대답해주고 싶어 토고는
"1세대 빌런 전쟁 스피커를 잡으러 갈 예정이다. 금마가 지금 부활해가 자유 마카오에서 전쟁 전쟁 거리고 있는디, 내가 그걸 잡아야 한다."
라며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거짓말 같게 해준다.
"갑자기 가가지고 연락할 시간도 없고, 암튼.. 다시 와서 기쁘긴 한디."
음.. 토고는 잠시 고민하더니만 "우쨌든 지 입으로 별 거 없다고 하니께 더 파고들진 않겄지만." 하고 덧붙인다.
빈센트는 그들에게 바람을 불어주면서 인간사의 절대적인 진리를 깨닫는 중이었다. 그 어떠한 서비스도, 그 어떠한 제품도, 그 어떠한 정책도 모든 사람들을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는 없다고. 그거 다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은, 영구기관보다도 더 말이 안 되는 허상일 뿐이라고. 하지만 괜히 이런거로 심력을 낭비하기 싫어, 그저 리모컨 위버튼을 누르면 온도를 높이고 아래버튼을 누르면 온도를 낮추는 에어컨마냥 가만히 말만 들었을 뿐이다.
'찬바람으로 해주세요~'
"네. 네."
군말없이 중첩 캐스팅을 통해 아주 미세한 얼음조각을 날리던 빈센트는, 갑작스럽게 쳐들어온 익숙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그쪽을 보았다. 마도도 취소할 정도였다.
유하는 부드럽게 웃으며 묶여진 윤시윤의 머리 끝을 다듬었다. 아동의 양육과 사회화에 필요한 기능이나 지식, 물질적인 요소 등 지금 당장 현실적으로 필요한 일들이 수 없이 떠올랐지만 본인이 가장 먼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괜히 옆에서 무어라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지. 요컨데 주어도 괜찮은 것은 지지와 관심 정도라는 이야기다.
"유럽? 한동안은 나도 한국에서 바쁠 예정이니까 그때 끝나면 얼굴 볼 수 있으려나.. 아, 그동안 선물 같은거 준비하면 좋아하려나? 어떤거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