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나인 까닭. 나는 어째서 윤시윤인가. 나는 생각한다. 여태까지 있었던 그 모든 일들을.
나는 윤시윤이지만, 기억을 되찾기전의 윤시윤은 아니다. 나는 사이가 좋고 행복했던 윤시윤의 가족과 의절했다.
그들은 더 이상 날 자식으로 여기기 힘들어 했고. 그런 나도, 그들을 부모로 여기는 것이 어려웠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이 이름을 버리지 않고 있다. 과거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더라도, 새로운 이름 정도는 얼마든지 지을 수 있었을텐데.
어째서일까....?
나는 진지하게 고민한다. 엄격하고 깐깐한 면이 있어도 성실했던 아버지. 다른 사람들에게 상냥하게 대해주길 좋아했던 어머니. 그들이 나에게 물려준 이름. 나는 어째서 그것을, 버리지 않았는가.
.....
어느 순간 나는 불현듯 눈치챈다.
나는 언제나 누군가와의 연결과 정에서 스스로의 안정감을 찾았다. 스스로에겐 무언가 특별한 신념 같은게 없었다. 소위, 재미 없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면 즐거웠고. 그들과 이어져 있는 정이, 애매하게 떠다니는 나를 이 세상에 묶어주고 있는 것만 같았기에. 그 편안함이 즐겁고, 소중했기 때문에. 나는 남들을 돕기로 했던 것이다.
특별반의 인연들, 친구들, 귀여운 연인 유하, 엄하지만 자상했던 제니아 기사단장님, 유쾌한 돈 지오테씨, 가디언 손유씨, 경의하는 신 도라, 소중한 에브나
이 시대에 '내게 소중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라고 고독함을 느꼈던 나는 어느새인가 남을 돕겠다는 태도 아래에 많은 인연 관계가 얽혔다. 소중한 것들이, 많이 생겼다. 이 것만은 그 누구의 것이 아닌, 나만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찰나들이 수없이 쌓였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내가 누군지 고민하지 않는다.
특별반의 저격수, 하유하의 연인, 하이젠피우스의 수련기사, 대종사의 친구 예술가 손유의 그림을 본 사람, 그리고....도라가 자신의 딸을 맡긴 인물. 에브나의 보호자.
스스로를 윤시윤이라고 정의한 이름 아래에 쌓은 많은 것들이, 나를 윤시윤으로 만든다. 나 자신만이 홀로 내린 정의가 아닌, 정과 관계 속에서 서로가 정의한 수많은 내가 나를 이룬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무언가를 눈치채곤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쉬지 않고 흘렀다. 외면해왔던 무언가와 마주했을 때,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아. 아아. 아아아아.....
나는.....스스로가 바뀌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낳아준 이름을. '윤시윤' 으로써 그들과 가지고 있었던, 가장 밀접하고 소중한 인연을. 결국 완전히 끊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서로 틀어져 의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 어딘가 한켠에서, 그들과의 관계성을 소중히 여기고 싶었던 것이다. 나를 형성하는 관계에서, '부모님의 자식. 윤시윤.' 을 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저격수와의 앎과 지식을, '나' 를 나와 동일한 인물이 아닌 동경하는 선배로 인식하게 된 것처럼. 나는 젊고 순수한 소년이었던 '윤시윤' 이라는 소년을 나와 동일한 인물이 아니라고 인식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 의 깨달음을 참고서 삼았던 것처럼. 나 또한 '윤시윤' 이라는 소년의 순수함과 선의, 그리고....부모님을 향한 애정을 이어 받은 것이다. 그들은 내가 아니면서도, 또한 내 안에서 나를 이루는 요소가 되었다.
나는 그러니까, 부모님이 사랑하던 '윤시윤' 에서 지금의 '윤시윤' 이 되어버린 것이 미안했다. 그렇기에 스스로의 미숙함으로 단절된 관계들에 대해, 여태 직면할 수 없었다. 그들이 주었던 사랑을 상처 입힌 것이, 내 안에서 그들을 사랑하는 정에 의해 너무나도 불편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비로소 스스로를 마주 본다.
나는 윤시윤이다. 1세대의 저격수도 아니고, 그저 순수하고 철없는 15세 소년 뿐만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1세대의 저격 기술을 쓰고, 윤시윤으로써 부모를 사랑하며. 그들에게서 배운 사랑과 선의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 그것들은, 내 가슴을 채워, 누군가에게 정을 베푸는 선의를 자아내는 것에 도움을 주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전투 기술과 인간 관계에서, 나는 두가지의 나의 영향을 모두 받아, 진정한 지금의 내가 되었다.
>>449 비참함이어라. 우리는 이름이라는 것에 많은 것을 담습니다. 단순히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고, 애정의 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여러 감정들을 담아 부를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줄여 '이름'으로 부릅니다. 당신, 이주윤은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둥지라 부르는 곳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로 수많은 새들과 함께 둥지 밖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 윤시윤이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어린 윤시윤은 어리기 때문에 윤시윤이라는 이름을 택하고, 그 의미에 이주윤이라는 뜻을 더했습니다. 그것이 자신을 표현하기에도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기에도 편리했기 때문입니다. 단지 몇 사람만 넘기게 된다면 자신은 윤시윤이란 이름을 가진 이주윤으로 더욱 편리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몇 가지를 버리기 위해선 필요한 것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가장 먼저 윤시윤이란 존재를 만든 이름들을 버려야 했고, 윤시윤이란 이름을 부를 가족들을 버려야 했습니다. 열셋의 어린 아이가 무기를 쥐고 사회에 나감에도 시윤은 스스로를 윤시윤이 아니라, 이주윤에 가깝다 생각했습니다.
' 나는 아저씨니까. '
그 말로 자신의 생각을 속였습니다. 가족을 버린 게 아니라, 단지 거친 지금의 상황만을 신경 쓰면 되도록. 잊혀진 전우들을 떠올려야 한다는. 그 이름을 위해 다른 이름들을 버리면서.
타인에게 가족의 소중함을 설파했으면서도. 타인에게 친구의 필요성을 설파했으면서도. 타인에게 동료의 우정따윌 설파했으면서도. 그리 많은 것들을 말하고 답했으면서도.
스스로는 그 많은 이름들을 뒤로 돌렸다는 것이 어쩌면.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싶지 않은 이유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볼을 두드리던 온기를 잊고, 떠올린 것은 분노에 찬 손이 휘둘려 뜨거워진 뺨의 고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에 대한 미소 대신에 떠올린 것은 아들을 돌려달라는 고통스런 호소였습니다. 단지 싫은 꿈으로 표현하여 잊었더라면. 아니. 적어도 모르는 척 했더라면 그 '이름'을 잊지 않을 수 있었을텐데도.
잊으려 했습니다. 그게 맞을 것입니다. 윤시윤이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를 지우고, 그곳에 다른 부름에 따른 이름을 채우려 했습니다.
특별반에 듦에 따라 애늙은이 윤시윤의 이름이 채워지고. 다른 상처를 지닌 채 서로를 보듬는 하유하의 연인이란 이름이 채워지고. 한 기사단의 수련기사로써, 윤시윤이란 이름이 채워지고. 신의 마지막과, 새로운 시작을 본 윤시윤이란 이름이 채워지고. 채워짐에도 느껴졌던.
빈 듯한 감정.
나의 근원을 잊어서는 나는 내가 될 수 없습니다. 나란 과거를 잊어서는 수많은 이름이 있다 한들, 그것은 결국 '나'가 될 뿐, '윤시윤'이 되진 않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누구의 아들이었고, 누구의 친구였으며, 누구에게 이 이름을 불렸었는지에 대해서.
나는, 윤시윤입니다.
그 답답한 호소를 한 후에야 시윤은, 드디어 복받쳐오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에 반응하듯, 온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감각이 느껴집니다.
사격의 숙련도가 A에 도달합니다.
사격(A) 육체와 기술을 체화하여, 충분한 경지에 도달한 자만이 이를 수 있는 경지. 의념과 총, 사용자의 구분이 흐릿해지기 시작하는 진정한 경지의 경계라고 할 수 있다. 총과 관련된 기술들의 숙련도 상승치가 증가한다. 총에 한정하여 '게이트 클리어' 등의 조건이 붙은 아이템 효과를 무시한다.
뜨겁게 달아오른 감각은 본능적으로 시윤에게 새로운 사실을 사사합니다. 조금 더 위협적으로 의념을 휘두를 수 있을 겁니다.
기술 의념 발화(F)를 획득합니다.
의념 발화(F) 의념이란 폭력적이지 않은 힘이다. 인간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힘을 부여하고, 육신을 두드리며 지혜의 지평선을 열어낼 수 있는 힘이 있지만 의념은 그 자체로 폭력적인 힘을 띄지는 않는다. 그런 의념을 사용자의 숙련도로 승화하여, 자신의 의념 자체를 채찍질하여 폭력적인 성향을 발현시킨다. 공격력과 파괴력이 증가하며 물리적인 공격이 불가능한 적에게도 일부 대미지를 가할 수 있다. 사용 시 망념 증가량이 60% 증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