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방의 부려지산(鳧麗之山)에도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농질(蠪蛭)이라는 짐승이 있었는데, 사람을 잡아먹는 여우와 유사한 짐승이었다. 단, 이 짐승은 청구지산의 여우보다 훨씬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꼬리뿐 아니라 머리도 아홉 개에다가 호랑이의 발톱을 갖고 있다. 이 짐승 역시 아기 울음소리를 낸다고 한다.
"그래도 우리가 주는 사랑을 다 피해버리기만 하면 못 써. 특히 내가 주는 사랑은... 알잖아? 내가 얼마나 언니한테 진심인지."
언니가 떠나고 나서 얼마나 마음 한 켠이 허했는지 몰라. 가현은 타이르듯 말하면서도 쉽사리 부적을 내려둘 생각은 하지 않았다. 분명 계속 공격하고 있는데, 어째서 그 무엇도 변하지 않는걸까.
".... 응?"
이윽고 가현은 농질의 말에 호기심을 느꼈다. 그 누구도 걱정하지 않는 것은 둘째치고, 인간인 척 하는 것이라니. 그건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임씨 가문 특유의 호기심이 다시 스멀스멀 피어오르려는 찰나. 그 짧은 순간에 흐트러진 집중은 제게 오는 부적을 피하지 못 하게 만들었다.
"..으긋, 큭... 하하... 언니가 주는 사랑은. 이런 느낌이야? 나. 정말 기뻐..."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끝내 입꼬리를 올려 미소짓는다. 그래ㅡ 이것 또한 사랑이라면 자신은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으니.
묵은 부채를 단단히 잡아 더욱 얼굴을 묻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쪽 심기가 영 불편함을 내색할 것 같았다. 나만큼 사랑을 잘 아는 이가 어딨다고. 속으로 오만하게 뇌까린 묵은 농질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공격을 피하지 않는 이유도 부지했고, 더욱이 영향 일절 끼치지 못한 듯한 점도 의문이다. 뭐야 대체, 아무렇지도 않아 보여. 분신이라도 되는 거야? 그리고 저 썩어문드러진 사과는 대체 왜 들고 있는 거고.
이해 안 가는 낯으로 골몰하던 묵은 농질의 말에 덩달아 힐긋 사감들을 향해 시선을 굴렸다. 인간이 아니라고? 아니, 이건 나중에 생각해야 할 일이다. 단지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장치일 수도 있고. 단지 본분을 다해야 할 뿐이다.
묵은 공격을 받은 가현의 근처로 다가가 앞을 막아서며 만지작거리던 부적을 다시금 찢었다. 농질을 칼로 베는 듯한 상상을 하며.
어찌어찌 잘 넘어갔다고 볼 수 있었다. 거기서 구태여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은 어떻게 봐도 옳은 선택이었다. 오히려 상대방이 '거기까지는 내가 말한 사이는 아닌데' 라고 말한 것에서 조금 의외였다면 의외였다고 말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입가에 화색이 돌려고 하던 차에 자신이 말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고 돌았던 화색은 금세 굳어져버렸다.
영화나 드라마에는 그런 모습이 자주 나온다. 주인공에게 차가 다가오는데 주인공을 그 차를 피하지 못하고 가만히 바라만 본다. 너무 무섭고 긴장하고 놀라버리면 몸이 굳어버리는 것이다. 포식자 앞에 놓인 피식자도 마찬가지다. 포식자의 바라보는 눈빛과 그 저주파로 그르렁대는 소리를 들으면 오금이 저려 몸이 굳어버리는 것이다. 지금의 니오의 모습이 딱 그러했다. 고개를 숙이지도 발을 떼거나 팔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눈물이 눈가에 맺힐 뿐이었다.
" 어,언니야. 니,니오는 절대 벗어나려고 새,새,생각한 적 어,없어. 지,진짜야..! "
사랑스럽다는 뜻을 한껏 담은 눈동자를 보면 미소가 지어진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심연처럼 시커멓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 두려움을 자아냈다. 거기까지 참았을 때 니오는 이전에 그랬던 것 처럼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미소를 짓고 눈물을 흘린다. 이 모순된 표정을 지어내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세상에 몇 명 없을것이다. 허용할 수 있는 선에서 답을 들려달라는 말에 니오는 느리게 숨을 가다듬었다.
" 아, 에, 그게, 그러니까. 니,니오는 어,어,언니야한테서.. 가,감히 떨어지겠다는 생각을 해,해본 적도 없어.. "
이 말은 진짜다. 이전에 기숙사에서 한 번 난장판이 일어났을 때 그 때 니오는 깨달았다.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는 만큼 나는 감히 이 사람에게서 벗어날 수 없겠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하나 더 깨달은 것이 있다면 잘못해서, 만에 하나라도 이 사람의 눈에 어긋난다면, 내가 거리를 두려고 한다거나 '이제 이런건 그만하자. 아는 척 하지 말아줘' 하고 말한다면 그 때는, 죽을지도 모른다. 아니, 죽는다.
" 언니야. 나 니,니오야. 언니가 예,예뻐해주던 니오야. 응? 언니야. "
제대로된 변명을 한다거나 말을 주워담기전도 전에 제대로된 생각에 미치지 못해 정에 호소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조금은 어색한 차렷자세로 어색한 미소와 어색한 눈물. 그런 이상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며 '아하하' 하고 웃을 뿐이었다. 허용할 수 있는 선에서 답을 들려주어라. 어떻게든 이야기하는 수 밖에는 없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더 무서워졌을 뿐이다.
" 그,그러니까. 괜히 어,언니야까지 나서면.. 그,그러면... 언니야가, 니오가 다치는걸 보,볼테니까. 그리고 언니야도 다,다,다칠 수 도 있잖아. 그러니까 니오가, 알아서 하려고 했,했어. 언니야는 소중하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