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 '나'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나는, 어쩌면 과거의 나를 밀어내고 지금의 위치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윤시윤'이라는 소년을 밀어내고 이 육체를 차지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총. 하물며 저격총이라. 다른 것을 택할 수 있었음에도, 왜 나는 저격총을 붙잡았을까요. 미련이 남아서?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솔직히 표현하자면 단순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처음 총이란느 무기를 잡았을까요? 간단한 이유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다룰 수 있는 무기. 그중에서도 위력이 보장되는 무기는 총이었으니까요. 의념 각성자가 의념을 불어넣고 미약하나마 위력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총기가 아니고선 불가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앞에 나서는 병사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뒤를 지켜줄 사람 역시 필요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전위 대신 후방에 남기로 했습니다. 당신이 무너졌다가는 다른 병들의 지휘도 제대로 가능하지 않을테니까. 전위 대신 후방에서, 가장 짧은 한 발을 쥐었습니다. 그 하 발로 하여금 길을 열고, 위협에서 자신의 전우들을 지키기 위해 저격이라는 무기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처음으로 총을 쥐었습니다.
치명적인 것을 가정하고, 단 한 번의 일격을 노리는 것은. 어쩌면 당신이 느낀 동료들에 대한 마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 그럼 묻겠습니다. 당신은 왜 윤시윤입니까? 그리고, 왜 윤시윤으로써의 다른 것들에서 눈을 돌리면서도, 윤시윤을 칭하고 있습니까?
내가....나인 까닭. 나는 어째서 윤시윤인가. 나는 생각한다. 여태까지 있었던 그 모든 일들을.
나는 윤시윤이지만, 기억을 되찾기전의 윤시윤은 아니다. 나는 사이가 좋고 행복했던 윤시윤의 가족과 의절했다.
그들은 더 이상 날 자식으로 여기기 힘들어 했고. 그런 나도, 그들을 부모로 여기는 것이 어려웠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이 이름을 버리지 않고 있다. 과거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더라도, 새로운 이름 정도는 얼마든지 지을 수 있었을텐데.
어째서일까....?
나는 진지하게 고민한다. 엄격하고 깐깐한 면이 있어도 성실했던 아버지. 다른 사람들에게 상냥하게 대해주길 좋아했던 어머니. 그들이 나에게 물려준 이름. 나는 어째서 그것을, 버리지 않았는가.
.....
어느 순간 나는 불현듯 눈치챈다.
나는 언제나 누군가와의 연결과 정에서 스스로의 안정감을 찾았다. 스스로에겐 무언가 특별한 신념 같은게 없었다. 소위, 재미 없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면 즐거웠고. 그들과 이어져 있는 정이, 애매하게 떠다니는 나를 이 세상에 묶어주고 있는 것만 같았기에. 그 편안함이 즐겁고, 소중했기 때문에. 나는 남들을 돕기로 했던 것이다.
특별반의 인연들, 친구들, 귀여운 연인 유하, 엄하지만 자상했던 제니아 기사단장님, 유쾌한 돈 지오테씨, 가디언 손유씨, 경의하는 신 도라, 소중한 에브나
이 시대에 '내게 소중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라고 고독함을 느꼈던 나는 어느새인가 남을 돕겠다는 태도 아래에 많은 인연 관계가 얽혔다. 소중한 것들이, 많이 생겼다. 이 것만은 그 누구의 것이 아닌, 나만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찰나들이 수없이 쌓였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내가 누군지 고민하지 않는다.
특별반의 저격수, 하유하의 연인, 하이젠피우스의 수련기사, 대종사의 친구 예술가 손유의 그림을 본 사람, 그리고....도라가 자신의 딸을 맡긴 인물. 에브나의 보호자.
스스로를 윤시윤이라고 정의한 이름 아래에 쌓은 많은 것들이, 나를 윤시윤으로 만든다. 나 자신만이 홀로 내린 정의가 아닌, 정과 관계 속에서 서로가 정의한 수많은 내가 나를 이룬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무언가를 눈치채곤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쉬지 않고 흘렀다. 외면해왔던 무언가와 마주했을 때,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아. 아아. 아아아아.....
나는.....스스로가 바뀌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낳아준 이름을. '윤시윤' 으로써 그들과 가지고 있었던, 가장 밀접하고 소중한 인연을. 결국 완전히 끊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서로 틀어져 의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 어딘가 한켠에서, 그들과의 관계성을 소중히 여기고 싶었던 것이다. 나를 형성하는 관계에서, '부모님의 자식. 윤시윤.' 을 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저격수와의 앎과 지식을, '나' 를 나와 동일한 인물이 아닌 동경하는 선배로 인식하게 된 것처럼. 나는 젊고 순수한 소년이었던 '윤시윤' 이라는 소년을 나와 동일한 인물이 아니라고 인식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 의 깨달음을 참고서 삼았던 것처럼. 나 또한 '윤시윤' 이라는 소년의 순수함과 선의, 그리고....부모님을 향한 애정을 이어 받은 것이다. 그들은 내가 아니면서도, 또한 내 안에서 나를 이루는 요소가 되었다.
나는 그러니까, 부모님이 사랑하던 '윤시윤' 에서 지금의 '윤시윤' 이 되어버린 것이 미안했다. 그렇기에 스스로의 미숙함으로 단절된 관계들에 대해, 여태 직면할 수 없었다. 그들이 주었던 사랑을 상처 입힌 것이, 내 안에서 그들을 사랑하는 정에 의해 너무나도 불편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비로소 스스로를 마주 본다.
나는 윤시윤이다. 1세대의 저격수도 아니고, 그저 순수하고 철없는 15세 소년 뿐만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1세대의 저격 기술을 쓰고, 윤시윤으로써 부모를 사랑하며. 그들에게서 배운 사랑과 선의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 그것들은, 내 가슴을 채워, 누군가에게 정을 베푸는 선의를 자아내는 것에 도움을 주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전투 기술과 인간 관계에서, 나는 두가지의 나의 영향을 모두 받아, 진정한 지금의 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