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뱀을 죽였나? 나, 부엉이가 말했네. 누가, 누가 죽였는지 보았으나. 그것이 누구인지 알 도리가 없으니 묻어줍세.
누가 뱀을 죽였는지 보았는가? 나 늑대가 말했네. 보름달 뜨지 않는 날이라 보지 못하였네. 본 자는 아무도 없으니 묻어줍세. #1 >1596463088> #2 >1596484066> #3 >1596508086> #4 >1596517072> #5 >1596538088> #6 >1596585097> #7 >1596635084>
Perosa Montecarlo: situplay>1596463088>100 Michael Rosebud Winterborn: situplay>1596463088>145
AU
Villar Montecarlo: situplay>1596635084>891 Nema: situplay>1596635084>915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새하얀 마스크 속에서, 지치고 쉬어 있는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쇳소리가 섞인 그것은 이제서야 겨우 애티를 벗어났음에도, 숱한 고난과 고통을 헤쳐온 흔적이 상흔처럼 묻어 있는 목소리였다.
"이제 내게 남아있는 게 저것밖에 없어."
문득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에, 그녀의 머리를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티가 뒤로 벗겨졌다. 후드티 안에 억지로 쑤셔넣어 놓고 있던 곱슬곱슬한 금발이 와르르 쏟아지며 바람에 나부껴, 검푸른색의 하늘 위로 탁한 잿빛의 선을 그린다. 그 잿빛의 선에 보라색의 불빛이 끼인다. 그녀는 시선을 들어 저 멀리 공제선을 내다보았다─
선명한 붉은 점 아래, 황홀한 자색으로 발광하는 향락과 광기의 공제선. 광기의 도시, 바빌론 시티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빗질 삭삭) 에구 그래도 한번씩 얼굴 비춰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정말 기쁘다구... ;-; 로로주 볼 때마다 늘 피곤해보여서 걱정이었는데 잘 지낸다니 마음이 놓이기도 하고... 나는 뭐, 잘 지내고 있었어... 음... 조금 빡센 기간이긴 한데, 그래도 이 빡셈에도 당연한 이유가 있고 큰 어려움은 없으니 불만은 없는 상태...?🤔 어떻게든 짬 내는 시간도 생겼고.
슬슬 퇴사 준비하면서 모아둔 돈으로 예전에 했던 일을 더 세밀하게 배워서 도전할까...도 고민중이고..? 아무튼 그래 ㅎㅎ...
진단... 로로 바빌론 시티로 올 때냐고~ 나 울어~!!(오열) 에고 이름...이랑 우울 속성도 어어어어 (눈물이 홍수가 됨)
그것이... 현대인의 삶이니까... (기미 한가득낀 펀쿨섹좌 짤) 좀더 자주 만나고 싶은데 요즘들어 내가 자꾸 초저녁에 잠들어서 아쉬워😞 그래도 요즘들어 조금씩 생활패턴이 바뀌고 있어서...! 못돌린 일상도 썰풀이도 꼭 해보고 싶은 것들도 많으니까 차근차근 같이 해보자.
퇴사 준비해? 원래같으면 걱정도 좀 됐을 텐데, 최근...에만주에게 듣는 그 회사 업무 시간을 생각해보면 축하하는 마음밖에 들지 않는... 오메데또(대충 그짤)
예전에 배웠던 게 뭔지 물어보지는 않겠지만, 친절하고 유능한 강사님 만나서 배우는 것도 새 직장 찾는 것도 다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야.
페로사: 뭐, 전부 다 잘 안되긴 했지만, 페로사: 그래도 덕분에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었잖아, Principe. 페로사: 재회하기엔 좀 안 좋은 곳이고, 서로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여줄 상황도 못 되긴 하지만... 페로사: 그래서 오히려 그런 것들을 너와 나눌 수 있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요즘엔 까무룩 잠들게 되더라구...(마침 폰 얼굴에 쨥 떨굼) 로로주도 힘내자구..! >:3 그렇담 일단 상황 먼저 느긋하게 정해볼까 하는데 괜찮을까? 저번에 이제 막 단골이 되었을 타이밍이라고 했는데, 그럼 그 이전은 초반에 뭉뚱그려 서술하고 넘기는 걸로 하는 건 어떤가~ 싶어서...
(불 끔) 땡큐 에만주. 이래서 손에 잡히는 대로 넣으면 안되는겨 얼굴에 폰 떨구지 말구 얼른 자자.. (토닥토닥) 오늘도 푹 잠들길 빌어. 상황은 틈틈이 갱신하면서 확인하고 느긋하게 조율하자. 초반에 뭉뚱그려 서술하고 넘어가는 것도 좋아! 네마가 앤빌에 몇 번째 방문한 거였을까? (중요한 건 아니니 정확한 횟수를 말해주지 않아도 돼)
잠깐 갱신할게~ 뭉뚱그려서 전판에서 말했듯 네마가 이제 막 바에 두~세번 오기 시작하는 정도는 어떨까 싶어! 광기의 도시 내부에서, 익명 커뮤니티 회원의 추천을 받아 우연치 않게 마주한 바는 술을 즐기지 않던 네마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 요 부분처럼 네마쟝은 술 즐기지 않다가 우연치 않게 야~ 여기 그렇게 좋대 소리 들어서 갔겠지... 그렇게 아저씨에게 감겨버리고...(ㅋㅋ)
박명은 아직 멀었다. 이제서야 노을을 드리울 준비를 하며 자줏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지평선 아래로, 마지막으로 쏟아지는 금빛에 한가득 잠긴 환락의 공제선을 뒤로 하고 당신은 지하철과 연결된 지하상가로, 지금은 지하 유흥가로 변질되어 버린 곳으로 향하는 계단을 걸어내려갔다.
아직 한산했다. 그럴 만도 하다. 광기의 도시의 밤이 그 화려한 면목을 제대로 드러내기에는 아직 햇빛이 눈부시다. 벌써 몇몇 점포는 제각기 화려하게 깜빡이는 네온사인에 전원을 넣기 시작했고, 몇몇 곳에서는 벌써부터 노랫가락을 조금씩 출입구를 통해 흘리기 시작했지만, 아직 이 거대한 지하상가의 을씨년스러움을 모두 묻어버리기에는 모자라다.
오늘 하루 용무를 마치고 지나가는 몇몇 이들은 모두 굳이 자신에게 관심가질 필요 없다는 듯, 저마다 후드티며 모자 등을 눌러쓰고 현대인답게 묵묵히 당신을 스쳐지나간다. 아마 그들 중에서 몇몇은 곧 가면무도회처럼 화려한 치장을 두르고 언제 그랬냐는 듯 이 지하광장에 가득찬 환락 사이로 몸을 던지겠으나, 그렇게 되기까진 아직 30분에서 1시간 정도가 더 지나야 할 것이다. 바빌론 시티의 밤을 일찍 즐기려는 향락주의자들이 몰려들기 전에, 당신은 당신이 목적하는 곳에 도착하기로 했다.
다행히, 당신이 목적지로 한 그곳은 이 지하철에 나 있는 수많은 출입구들 중 하나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있지 않았다. 지하상가 메인 홀에 사방으로 나 있는 대로 중 한 곳은 지하철로 통하고 있는데, 당신이 향하고자 하는 곳은 그 지하철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뒷편에 마치 은둔해있기라도 하듯 도사리고 있는, 밤의 환락과 광기가 정통으로 뒤덮어버리는 영역에서 딱 한 블록 슬쩍 피해있는 그런 곳이었다.
더 앤빌.
수상쩍은 철문 옆에 큼지막한 모루 하나와, The Anvil이라는 글자 그리고 칵테일 잔을 형상화한 픽토그램이 새겨진 황동 명패가 그늘 속에 방치되어 있었다- 고 생각한 그 순간, 그 위에 매달려있던 스포트라이트가 흐릿하게 켜지더니 점점 밝아지면서 모루와 명패를 화사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금속성 광택이 은은하게 빛난다. 저 스포트라이트가 켜지는 시간이 바로 이 곳, 칵테일 바 앤빌이 영업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당신은 앤빌의 오픈 시간에 정확히 맞춰 앤빌 앞에 도착하는 데에 성공했다. 오늘의 첫 손님은 확고부동히 당신이다.
철문에 귀를 기울여보면, 누군가가 콘크리트 계단을 저벅저벅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앤빌의 주인이 앤빌 정문의 눈구멍을 열어두러 오는 모양이다. 조금 기다리면, 철문에 나 있는 눈구멍에 씌워져 있던 덮개가 덜커덩 하고 벗겨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문 밖을 확인하려는 것처럼, 이제 꽤 익숙한 푸른 눈동자가 눈구멍 사이로 빠끔히 보이더니 이내 당신과 눈을 마주쳐온다.
눈이 눈구멍 뒤로 사라지고, 곧 철문이 덜커덩 열린다.
"아, 이게 누구야." 그리고 그 넓은 철문이 아슬아슬해 보일 정도의 거구를 지닌 남자가, 수그렸던 허리를 피고 당신을 바라봐온다. "꼬마 친구 아니야.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짙은 색의 금발 아래로 얼굴에 거는 넉살좋은 미소. 바의 주인인 빌라르 몬테까를로다.
사람이 없는 시간대가 좋다. 시끄럽지 않으니까. 그래서인지 네마는 박명의 시간대나 아침의 을씨년스러운 지하상가를 좋아했다. 이때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단을 걸어 내려가는 걸음이 조심스럽지만 발자국 하나하나가 도둑고양이처럼 다급했다. 조금만 늦었다간 금방 해가 져서,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하게 이 상가를 덮을 것이다. 상가에서 흐르는 노래와 함께 사람들이 늘어난다니, 그건 끔찍한 일이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귀나 머리를 쟁쟁하게 울릴 때면 몸이 절로 부르르 떨린다. 어서 마시고, 빨리 돌아가서 잠이나 자야지. 네마는 후드를 꾹 눌러 썼다.
사람들이 스칠 때면 네마는 괜히 귀에 낀 에어팟의 볼륨을 올렸다. 그래도 꼭 한 번은 소리가 들리곤 했다. 오늘은 날씨가 후덥지근하네, 후드를 얇은 걸로 입고 올 걸 그랬나? 빨리 돌아가서 옷 갈아입고 놀러 가야지…….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쳐내듯 발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이대로면 누군가의 취향 같은 끔찍한 얘기도 들리는 법이니까.
다행이다, 오늘은 조금 일찍 온 것 같아. 네마는 주변을 슥슥 둘러봤다. 에스컬레이터 뒤편에 숨어있는 작은 바, 앤빌의 명패를 발견한 네마가 귀에서 에어팟을 빼고 케이스에 슥 넣었다. 언제 봐도 참 멋들어진 모습이다. 익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추천을 받은 이후, 실물로는 겨우 서너 번 정도 보는 거지만, 그래도! 인테리어나 건물 자체에 대한 심미안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앤빌은 유독 네마의 고리타분하고, 아무거나 잘 받아들이는 취향 중에서도 꼭 들어맞는 편에 속했다.
네마는 앞머리에 가려진 눈을 들어 명패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혹시 오늘은 영업을 하지 않는 날일까? 잘 모르겠다. 아직 앤빌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하거니와 이렇게 바깥 생활을 하는 것도 오랜만이니까. 호텔의 방은 네마의 철옹성 같은 요새였다. 거기다 스낵바에 있던 술도 아예 마시지 않던 네마가 로드 뷰로 본 외관에 반해 여기에 갈 결심을 했다고 하면, 거기다 실제로 나오기까지 했다면 믿기나 할까? 아무도 안 믿을 테지! 환하게 불이 밝혀질 적, 그런 네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헛걸음 하지는 않았구나.
그러면 곧 문이 열릴까? 살포시 철문에 귀를 기울이다가도, 네마는 발소리가 들리자 자연스럽게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누가 올라오면 피하는 게 좋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괜히 들었다는 사실을 들키거나 해서 이것저것 대화가 들어오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당황하면 없던 기운마저 빠질지도 모르니까. 이내 덮개가 벗겨지는 소리와 함께, 네마의 시야에 푸른 눈동자가 보였다. 눈을 마주쳤을 적엔 네마는 괜히 시선을 피했다. 앞머리로 덥수룩하게 가려지고 후드로 덮어버리기까지 한 눈이라 안심해도 좋은데도, 눈이 마주친다는 감각은 여전히 꺼림칙하다.
"……."
네마는 넉살 좋은 미소와 질문에 잠깐 입술을 꾹 다물었다. 바텐더는 그 많은 손님을 어떻게 기억하는 걸까? 호기심이 앞섰지만 일단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걸 아니까.
"안녕…… 하세요."
아직은 어색했다. 네마는 기운 없이, 괜히 후드를 쥐어 내리듯 당기며 시선을 흘긋 내렸다. 시선을 당신의 발치에 두고 느릿하게 입술을 뗀다.
"바가… 오픈하는 걸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 그러니까."
오늘 영업 하는 거 맞죠. 네마가 살짝 고개를 들어 올렸다. 크다. 더 올려다 보면 목이 아플 것 같아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다.
초봄부터 벌써 이렇게 무더운 것을 보니, 올해의 광기의 도시도 푹푹 찔 모양이다. 빌라르 역시도 조끼도 마다하고 하얀 리넨 셔츠를 팔까지 둥둥 걷어올려, 우락부락한 팔뚝에 슬리브가터를 매놓고 있다. 새하얀 셔츠와 대비되어 그의 불그스레한 피부가 더 돋보인다. 원래같으면 칼라 핀으로 채워놓았을 셔츠 목끝단도 단추를 풀어놓은 상태다.
빌라르는 당신의 대답을 듣더니 넉살좋게 웃었다. "우리 가게가 오픈런을 할 만큼 유명한 가게는 아닌데- 뭐 상관없나." 그리곤 당신에게 당연하다는 듯 손을 내밀어왔다. "아무튼 첫 손님으로 온 걸 환영해. 들어가자고." 손을 잡건 말건, 그는 열린 철문 뒤로 펼쳐져 있는 가파른 철제 계단을 턱짓해보였다. 투박하고 차갑기 짝이 없는 질감이지만, 난색의 조명이 켜져 있어 그나마 덜 차가워보인다. 손님들의 눈에 잘 띄는 높이에 가파른 계단을 주의하라는, 아크릴판에 인쇄해 붙인 표지가 붙어있다. 믿을 만한 은신처로 통하는 길의 예시와도 같은 계단이다. 그리고 계단을 다 내려가서, 또 있는 철문을 하나 더 열면- 칵테일 바, 더 앤빌의 정경이 당신의 눈에 보인다.
단단하고 무정한 콘크리트로 지어진, 처음부터 바를 위해 설계된 공간이라기보단 훨씬 무기질적이고 실용적인 용도로 지어진 공간.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그저 그 곳에 있던 채로 버림받은 공간이었던 그 곳은, 지금은 따스한 난색의 조명으로 가득차 있었다. 뼈가 그대로 드러난 것 같은 골조도 H빔도 흉물스런 배관도 그냥 그대로 둔 채로, 인테리어는커녕 그 흔한 벽지 하나 없이 어느 쪽은 콘크리트 벽이요 어느 쪽은 붉은 벽돌이 그대로 드러난 회랑을 그저 그 한쪽 벽면에 마치 반도 지형처럼 아일랜드 바를 하나 덥석 갖다놓고, 여기저기 손님들을 위해 적당히 편리하고 적당히 편안한 가구들을 배치해놓은, 참으로 투박하기 그지없는 공간이었다.
지친 방랑자의 정착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낯선 이가 다리쉬임을 하기로 결정한 곳. 앤빌은 그런 느낌의 장소였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여기에서는 우리 모두 낯선 이들이 아니던가. 모두를 받아들이는 땅, 그러나 아무도 속하지 못하는 땅. 광기의 도시.
빌라르는 당신의 손을 가볍게 놓아주고(당신이 손을 잡았다면), 아일랜드 한켠에 난 출입구로 발을 옮겼다. 그러나 아일랜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멈춰서더니, 아일랜드 출입구 바로 옆에 있는 주크박스의 버튼을 눌렀다. 언제적에 유행했는지 모를, 기타 소리 일변도의 그런지. 음악 취향이 참 초지일관이다. 그러고서야 그는 아일랜드 안으로 발걸음을 옮겨서는, 그 안에 있는 바텐더용 의자에 앉아서는 느긋하게 등받이에 등을 기대는 것이다. 그리곤 "주문할 준비가 되면 언제든 말해달라고." 하고는 기타 소리를 만끽하듯 눈을 감는다.
더운 날은 싫다. 요즘엔 패션도 내 마음대로라고, 여름에도 시원하게 입을 수 있는 후드가 있었지만 후드를 입고도 덥게끔 만드는 습기는 별개의 문제다. 호텔 방에서 시원하게, 늘 적당한 온도로 살아가기 시작한 네마에게 있어서 쥐약인 날씨기도 했고. 네마는 당신의 옷차림이 저번에 봤을 때와 조금 다르단 생각을 했다. 아, 하긴. 당신도 덥겠구나. 네마는 시선을 다시금 내렸다. 당신의 주변으로만 가면 주위의 어떤 생각도 들리지 않아서 편한데, 오히려 그게 더 불편할 때가 있다. 평소엔 생각이라도 읽어 눈치껏 행동했지만, 지금처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를 수도 있으니까.
"……네."
잡으면 되는 거겠지? 잡으라고 준 손일 거야. 네마는 당신의 손을 쥐었다. 자그마한 손이 손바닥을 쥐기엔 좀 부족했던 것인지 손가락을 감싸 쥔다. 조심조심 내려가는 철제 계단의 경사는 딱 봐도 가파르다. 취하지 않았음에도 조심조심 내려가는 판인데, 대판 취해서 한 걸음 걷고 두 걸음 물러나는 사람이면 오를 때 큰일 나겠다 싶을 정도다. 네마는 오늘만큼은 취하지 말아야겠다 다짐했다. 평소에도 그만큼 마실 체력이 못 되어 그러진 못했지만.
앤빌은 역시 신기하다. 바빌론 시티 내부로 들어오는 관광객은 늘 휘황찬란한 바 얘기를 하는데, 정작 이곳은 동떨어지고 경계에 걸친 다른 세계를 보는 느낌이었다. 투박하고,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 아지트 느낌이 든다 해야 할까. 예쁘고 고급 진 것만 가득한 것은 부담스러웠던 네마인지라 이 장소가 마음에 들었다. 거기다 그런지까지! 누군가는 고리타분하다며 왁자지껄 웃었지만 네마는 이런 쪽이 참 좋았기 때문에 입만 꾹 다물었다.
자리에 오두카니 서서 네마는 후드도 벗지 못한 채, 길게 드리운 앞머리 너머로 눈을 깜빡였다. 역시 주문은 어렵다. 여기서 처음 먹어본 것도 맛있었는데 다른 것도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렇지만 취향에 안 맞으면? 쓸데없는 모험은 싫지만 늘 먹던 걸로 달라기엔 그때의 감동이 밀려오지 못할 것 같다. 아, 그것보다 조용해. 정말 조용하다. 노래 말고는 아무것도 안 들려. 꼼지락. 후드 소매 너머로 눈금만치 나온 손가락을 꼬물대던 네마는 홀린 듯 조심조심, 들리지 않게끔 도둑고양이처럼 발걸음을 옮기더니만.
그건 확실히 잡으라고 준 손이 맞았다. 손가락 하나를 겨우 붙든 가녀린 손을, 나머지 손가락들이 자연스레 거머쥐는 것을 보면 확실했다. 딱히 당신에게만 하는 특별 대우 같은 것은 아니었다. 어디서 이미 술이 좀 된 채로 n차를 온 양반들이나, 계단을 내려오기 어려워하는 하이힐 신은 사람들이 올 때면 빌라르는 여상스레 손을 내밀곤 했다. 이 비밀스런 피난처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빌라르는 한결같이 너그럽고 관대했다.
여기가 어떤 곳이냐고? 여긴 피난처지. 즐기러 오는 곳이 아니라 쉬러 오는 곳이고, 뭔가를 찾아오는 곳이 아니라 뭔가를 피해오는 곳이지. 뭔가를 빼앗긴 사람, 도망치는 사람, 집으로 돌아갈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한, 몇 남지 않은 쉼터랄까. 그런 이야기를 빌은 했었던 것 같다. 당신이 취중에 물어봤던가, 아니면 호기심 많은 손님- 이 미친 도시에서 용감하게도 기자 노릇을 하고 있다고 했었나, 아무튼 그런 손님이 물어봤었던가. 아무튼, 분명히 그가 그런 말을 하긴 했었다.
그래서일까 빌은 뭘로 주문하시겠어요? 하는 질문을 섣불리 던지지 않았다. 손님이 들어와도 붙임성좋게 인사만 건네고 손님이 옷차림을 가다듬건 짐을 놔둘 적당한 자리를 찾아보건 메뉴판을 주야장천 보고 있건 느긋한 미소를 띈 채로 자기 할 일을 하다가 바텐더,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그제서야 느긋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유럽 가게들이 다 그런 식이듯이 말이다. 그래도 메뉴를 정하지 못해 고민하는 손님이 보이면 무언가 추천해주는 건 좋아했다. 여기서 마신 첫 번째 잔이 라모스 진 피즈였던가. 그것 역시 빌라르가 먼저 당신에게 추천한 메뉴였었다. 12분 동안 셰이킹을 해야 하는 칵테일로 악명높지만 빌은 요령이 없을 때나 12분씩 흔들지, 하고 웃더니 거진 3~4분만에 당신의 눈 앞에 그것을 내놓아주었었다. 그러면, 오늘은 무엇을 마실까-
그렇지만 당신이 선택한 메뉴는 특이한 것이었다.
광기의 도시 평균으로 따지자면 평균이라고 할 만은 했다. 바를 찾아오는 빌라르의 친구들-손님을 친구라고 즐겨 부르는 빌라르의 붙임성 좋은 성격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빌라르의 바에 찾아오는 이들은 실제로 거의 대부분 빌라르와 꽤 잘 알고 지내는 듯했다- 중에서는 종종 빌라르에게 장난으로 플러팅(종종 스킨쉽까지 동반한)을 걸어오는 이도 있었는데, 빌라르는 한결같이 아주 능청스럽게 그것을 받아넘기곤 했다.
그래도 몇 년을, 혹은 십몇 년을 알고 지내며 같이 고락을 나눈 악우가 장난스레 던져오는 농담과, 아직 신비로운 인상을 가진 조그만 새 친구가 살며시 건네어오는- 살며시라기엔 너무도 큼지막한 한 발짝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망할 친구놈들'이 몰려오기 전의 작은 평화를 만끽하려 하듯 눈을 감고 있던 빌라르는 당신이 무릎 위로 덜컥 올라앉자 눈을 떴다. 당신을 밀쳐내거나 불쾌해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신의 깜찍한 액션을 예상치 못한 것인지 갑자기 좁아진 거리감에 빌라르의 눈이 깜빡인다. "친구?"
호텔과는 사뭇 다른 아늑한 피난처. 네마는 눈을 부산스럽게 굴렸다. 무기질하고 투박하지만, 그만큼 정겨운 곳이다. 사람들이 가득 차면 시끌시끌하단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시끄러운 속내까지 들리지는 않는다. 참 신기한 장소. 그래서인지 네마는 이 장소가 좋았다. 여기 바텐더가 이 장소를 피난처라 했을 때 누가 물어봤더라? 잘 기억이 안 난다. 평소에는 일이나 중요한 사실은 잘만 기억했는데 유달리 사람에 관한 건 빨리 잊어버리니, 참 아쉬운 일이다. 아니면 취했나? 그 정도로 마셨나? 더듬더듬 기억을 되짚어볼 때, 네마는 취할 적의 자신을 떠올리면 어쩌나 싶어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대신 느긋하게 앉은 당신에게 살금살금 다가갔다. 오늘은 멋들어진 맛과 대단한 힘이 필요한 라모스 진 피즈도 아니고, 메뉴 추천도 바라지 않았다.
광기의 도시의 평균은 보통이 아니라더라, 네마가 그런 평균치를 행해본 적은 없지만 어쨌든 나도는 말은 있지 않던가. 특히 환락의 거리와 맞닿은 쪽은 심했다. 눈 맞으면 게임 끝. 손가락만 스쳐도 게임 끝. 일부러 손 뻗는 것도 다반수다. 물론 당신의 무리 내부 사람들은 친밀감을 가지고 능청스럽게 서로 간의 선을 지키겠지만, 이 조그마한 녀석은 도통 생각을 읽을 수가 없다. 그저 당신의 무릎 위에 폭 앉아선 인간과 자신이 무엇이 다른지 구경하고 고민하는 새끼 고양이처럼 고개만 갸우뚱 기울이고 있었으니까.
대체 왜 조용하지?
당신의 반응과 달리 네마는 여전히 자기만의 세계에 푹 빠져있다. 이상하다. 왜 조용하지? 일부러 읽어볼까 시도를 해도 안 읽힌다. 그러고 보니 당신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들리지 않았다. 다 마시고 돌아가기 위해 가게 밖으로 나간 뒤 우연치 않게 마주하고 나서야 들을 수 있었던 것이 불현듯 떠올랐다. 여기 장소 자체에 뭔가 있나? 아니면 당신이 문제인가? 네마가 다시금 고개를 갸우뚱 기울일 때였다.
"응……?"
깜빡. 눈을 크게 감았다 뜨자 길게 드리운 앞머리 너머 가려진 커다란 눈망울의 언더래쉬만 얼핏 드러난다. 이 조그마한 녀석은 지금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다분하고 노골적인 의도도 없이, 말 그대로 지금 왜 이런 반응이지? 싶은 순수한 느낌이다. 이 도시에서라면 멍청하거나, 자란 환경이 영 좋지 못한 곳이었거나, 아니면 속내 단단히 숨긴 대단한 연기자 거나 셋 중 하나일 텐데. 아무래도 연기자는 아닌 듯싶다. "친구……?"라며 그저 사람 호칭하는 단어에 집중하는 것부터가 연기자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그의 품 위에 덥석 걸터앉았을 때 당신이 느낄 수 있는 것- 다시 말해 당신이 찾아볼 수 있는 단서는 얼마 되지 않았다. 베르셰바의 짧고 혹독한 겨울날 온수를 채운 욕조에 몸을 담궜을 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따뜻한 온도와, 허벅지에서부터 배, 가슴까지 셔츠 너머로 느껴지는 단단한 근육, 그리고 즐겨쓰는 향수인가 곱게 그을린 나무에서 나는 듯한 은은한 나무향. 귀에 걸리는 소리라고는 그의 숨소리(아마 곧 잠깐 멈칫할), 그리고 주크박스가 흘려내는 간드러지는 기타 소리뿐이다. 그 외에는 느껴지지 않는다.
당신이 그의 속을 읽을 수 없는 것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한 일이지만, 그가 당신의 속을 읽을 수 없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인생의 굴곡을 넘나들며 쌓인 빅데이터로 상대의 행동을 유추하는 능력이라면 남부럽잖게 있었지만, 초면에 가슴팍에 칼을 꼽으러 다가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경심 혹은 욕심으로 과감하게 플러팅을 날리는 것도 아니라, 흡사 무슨 모든 세상이 신기한 작은 동물처럼 호기심으로 이렇게 덜컥 다가오는 모습은 그의 데이터베이스에는 없었다.
"그래, 꼬마 친구. 그것도 아주 맹랑한 꼬마 친구." 빌라르는 손 닿는 데 있는 스툴을 드륵 하고 끌어오더니, 당신을 품에서 가볍게 들어올려 그 스툴 위에 앉혀주었다. 그리고는 당신이 뭐라고 할 틈도 없이, 당신의 입에 딸기 하나를 툭 물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을 위해 놓이는 안주 접시- 야채 칩과 말린 과일, 생과일 등이 놓여 있는 플레이트가 놓인다. 기본 안주에 걸맞은 양이다만, 당신의 안쓰러운 식사량으로는 이걸로 두세 끼 정도는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이 스툴을 끌어와 그 위에 앉히기 전까지, 네마는 남들은 절대 할 수 없는 심오한 상념에 빠졌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삶이 부럽다. 남들은 이렇게 조용한 삶을 사는구나. 여기에 계속 있으면 이렇게 조용하게 살 수 있을까. 따뜻하고, 단단하니 그 면모가 안락하고, 거기다 속이 편안해지는 듯한 그을린 나무에서 나는 냄새까지 난다. 생각이 들리지 않으니 노래에도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이 도시에서 이렇게나 평온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니. 앉은 몸에 옅게 힘이 들어갔다. 부러움을 느끼는 스스로가 한심하기도 했다. 어차피 감정을 소모할 일이 없으니 들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손바닥 뒤집듯이 금방 부럽다고 여기기는.
"아븝."
나쁜 상념도 오래가진 못했다. 맹랑하다는 말과 함께 자신을 슥 들어 올리니, 네마는 그대로 홀랑 들려 스툴 위에 덜컥 앉게 됐으니까. 스툴이 아무리 안락한 공간에 있다지만 당신만큼 따뜻하진 못했기 때문일까, 괜히 몸서리를 치다 딸기까지 입에 물게 되어 불만도 뱉을 수 없었다. 조그마한 입과 턱이 느릿느릿 움직였다. 딸기를 베어물듯 야금야금 잇새로 물더니 이내 딸기가 입안으로 스르륵 기어가 한쪽 볼을 빵빵하게 채웠다. 씹는 속도가 느렸다. 안주 접시를 보기만 해도 배가 차는 느낌이 들었던 탓이다. 딸기를 겨우 씹어 삼키고 나서야 네마는 입을 벌릴 수 있었다.
"……아까 그게, 맹랑한 건가요...?"
몰랐나? 음, 아무리 봐도 이런 지하까지 알 정도면 이 도시 사람이 아닐 리가 없는데. 네마는 느릿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네마의 위장에게는 지나치게 호화로운 안주 접시에서 시선을 떼고, 따끈따끈하던 친구인 당신을 향해 시선이 옮겨졌으나 가려진 눈을 확인하긴 여전히 어렵다.
"……."
맹랑한 건가, 다시금 고민하다 조심히 입 벌렸다.
"칵테일은, 따뜻한 걸로도 마실 수 있어요…?"
따뜻한 것이 당겼다. 달면 더 좋았다. 여기는 왜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왜 나를 떼어낸 걸까, 이게 맹랑한 건가? 여러 생각으로 머리를 썼으니까 단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새로운 데탑을 들였습니다 (따란) 문제는 기존 작업물이며 중요한 파일들이며 바빌론 시티 상세설정이 뻗은 컴퓨터의 스스디랑 하드에 들어있다는 건데... 월요일에 컴퓨터샵에 문의해서 필요한 데이터를 빼갈 수 있는지(혹은 뻗은 컴퓨터의 스스디랑 하드를 새 컴에 연결할 수 있는지) 문의해봐야겠네 음음
광기의 도시는 그 이름답게, 온갖 인간군상들로 가득찬 도시다. 미치광이 가면 쓴 사람, 종잡을 수 없는 미치광이, 신념 있는 미치광이, 가면 쓴 미치광이... 빌라르는 그런 온갖 이들과 충분히 만나봤다고 자신했다. 그리고 당신도 그런 온갖 이들 중 하나라고 여상스레 생각했으나, 빌라르는 결국 마침내 당신을 지금까지 만난 이들과는 조금 다른, 예외적인 타입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허점을 내어보이면 물어뜯기기 십상인 광기의 도시에서,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드러내는지는 신중한 선택을 필요로 하는 문제다. 그러나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자신은 예외라는 것처럼, 그럴 필요가 없다는 듯이 마냥 천진했다. 둥지를 너무 늦게 벗어난 아기 새, 혹은 아기 새처럼 보이는 무언가.
빌라르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길 잃은 아기새거나 혹은 그렇게 굴고 싶다면, 자신은 적당히 어줍잖은 삼촌 노릇 정도 해주면 되지 않겠나.
"아무렴 맹랑한 거지, 꼬마 친구. 누가 자기 배에 칼침을 놓을지 모르는 이 미친 동네에서는 더더욱." 하고 넉살좋게 운을 뗀 빌라르는, 바의 위에 걸린 나무패를 힐끔 윗눈질하며 덧붙였다. "적어도 이 안에서는 그런 거 금지지만-" 나무패에는 대강 싸움질 금지, 총질 금지, 사람을 해치려는 칼질 금지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걸 감안하고라도, 사람간의 거리는 그렇게 다급하게 좁히는 게 아니야, 친구." 왜인지 어린 왕자를 대하는 사막여우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따뜻한 칵테일?" 빌라르는 바의 위쪽 찬장에 주르르 걸린 병들 중 하나를 눈짓했다. "핫 토디를 마시기에는 너무 더운 날이고, 나이트캡을 마시기에는 아직 밤이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원한다면 한 잔 따라줄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