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의 대형 피아노는 언뜻 보아도 비싼 고급품이어서, 어린 아이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 본인은 그런걸 개의치 않는듯, 혹은 눈치채지도 못한 듯. 즐겁게 건반을 띵동거릴 뿐이다. 부풀어오른 젖살과 똘망한 눈동자. 천진난만한 얼굴. 아이는 그저 평범한 아이였다. 어디에나 있을법한.
그리고 나이기도 했다.
"우리 시윤이, 피아노 정말 잘친다!"
"정말루?"
"물론이지~"
어머니는 내가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하셨다. 아이니까, 악보도 제대로 읽을 줄 몰랐고. 그저 소리가 나는 건반을 마구잡이로 두드리는 것에 가까웠지만. 다리를 흔들 거리며 신나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 것을, 어머니는 그저 마냥 행복하게 바라보셨다.
"엄마! 엄마!"
"응, 왜~?"
"나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엄마도 우리 아들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
어렸던 나도 어머니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게 좋았다. 상냥했던 어머니를 무척 좋아했으니까.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던, 그저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는 순수하게 웃었다.
*****
아이의 삶이란 사소한 것으로 가득 차있다.
여자애들과의 신경전, 오늘의 점심 메뉴, 인기 있는 만화. 간단한 시험 점수, 다니기 싫은 학원, 누가 게임을 잘하는지.
어른들이 보기엔 시시해보이는 요소도, 아이의 작은 세상에선 더 없이 중요한 법이다. 그래, 그것은 마치 둥실둥실 떠오르는 비눗방울과도 같다. 건드리면 톡 터질법한,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아름답게 반짝이는 비눗방울.
나는 어느날 부터 꿈을 꾸었다. 내가 어른이고, 군인이어서, 괴물과 싸우면서 비명을 지르는 꿈. 너무나도 생생해서, 마치 눈 앞에서 본 것 마냥. 자고 일어나도 뇌리에서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런 꿈들이었다. 그리고 그 날카로운 악몽들은 첨예한 바늘처럼, 나에게 동심이라는 비눗방울을 모두 터뜨려 버린 것이다.
처음엔 내가 이상해졌을 뿐이라고 납득하려고 애썼다. 그러다 친구였었던 꼬마 아이들과 대화하면서 깨달아 버린 것이다.
아. 아이는 그런 식으로 납득하려고 애쓰지 않는구나.
나는 내가 변했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
"어머니, 많이 놀라시겠지만 잘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으, 응? 아들, 갑자기 왜 그러니?"
"저는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군인이었습니다."
"……."
좀 더 현명한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엔 나도 절박했다. 아직 미성숙했던 자아는 일반적인 성인도 견디기 힘들 기억속에 매몰되었으니까. 나는 내가 완전히, 되살아난 대한민국의 군인이라고 여기곤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도, 마치 SF 소설에서 나오는 콜드슬립이라도 경험한 기분을 강렬히 느꼈다.
세상이 너무 많이 바뀌었고, 나는 적응하지 못했다. 아니다. 어쩌면, 너무 많이 바뀌어버린 나에게 세상이 적응하지 못했던 걸지도 모른다.
처음엔 장난이라고 여기던 부모님들도, 반복해서 진지하게 말하자 심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다. 나는 근거랍시고 저격총의 관리와 사용법, 그 때 마주쳤던 괴물들의 특징 따위를 늘어놓았으니까. 아이가 어딘가에서 주워들었다기엔 지나치게 전문적인 지식은, 적어도 내가 많이 이상해졌음을 입증하는덴 충분했다.
나는 수 많은 정신과 상담에 부모님과 따라가게 되었다. 의념의 영향을 잘못 받았던지, 아니면 무언가 게이트의 영향을 받아 정신이 이상해진게 아닌지 의심 받았다. 스스로는 정신 이상자가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믿어주지 않았다. 하긴, 나라도 믿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집은 갑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충분히 부유 했다. 그러니까 인맥과 자본을 수소문 해서 여러가지 치료와 검사를 받기 시작했다.
"아들, 괜찮을거야. 걱정하지마. 엄마가 꼭 고칠 방법을 알아볼게."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그렇게 얘기했다. 나는 그리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절박한 어머니의 표정을 보면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가슴이 조금 답답했다.
*****
많은 검사를 해도 나는 '치료' 되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심층 의식을 끌어낼 수록 나는 좀 더 어른스러워졌다. 문제의 근원을 확인 하기 위해 무의식의 기억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렸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표정은 점차 수심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나와 나누는 말수가 눈에 띄게 줄어 들었다. 부부 사이가 좋으셨을텐데도 불구하고, 종종 서로 다투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나는 점차 한번도 쥐어본적 없는 총기의 사용법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이윽고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는 어설프지만 독자적인 저격술까지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를 직접 보여주면 마침내 정신병이라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로 인해서 불화를 바로 잡고, 나를 진지하게 마주보면서 차분한 대화를 할 수 있을거라 기대했다.
그렇게 될리가 없는데.
내가 기어코 쥐어본적도 없는 총을 능숙하게(물론 아이의 몸이라 반동을 견디기 조금 어려웠지만) 사용하고. 심지어는 헌터들이나 쓸법한 강렬한 기술까지 무리를 해가면서도 사용한 것을 본 부모의 표정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내가 발사한 한발의 흉탄은, 그들의 마음에 착탄하여, 산산조각 내버렸던 것이다.
가슴이 턱 막혔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기억속에서 나는 이럴 때 마다 담배를 폈다.
담배의 맛이 간절히 그리워서 견딜 수가 없어졌다. 이 몸으로 피워본 적 따윈, 한번도 없었을 텐데도.
*****
짜악 - !!!
아버지의 조금 야윈 손이 그대로 내 뺨을 후려쳤다. 내 고개가 조금 돌아갔다. 정확히는, 내가 돌아가게 했다. 사실은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의념각성자가 된 지금, 일반인의 손찌검이 아플리가 없었다. 마음도 어쩐지 덤덤했다. 초등학생이 부모에게 전력으로 얻어맞았는데, '맞을만 하지' 하고 마음속에서 납득하고 있었다.
그게 어쩐지 괴로웠다.
"대체 뭐하는 짓이냐!! 불량한 놈들에게 돈을 쥐어주고 담배를 구해와서 펴? 이런 미친…."
"……죄송합니다."
아버지는 내가 저지른 행위들에 대해 극도로 분노하고, 그 끝엔 아연실색 했다.
별로 특출난 반항기가 왔던 것은 아니다. 그저, 이 답답한 상황 속에서 담배 한대 태우고 싶었다. 그러니까 학교 내에서 몰래 그런걸 조달하는 놈들에게 적당히 얘기해서 넉넉히 돈을 주고 구했을 뿐이다. 불량한 짓을 했다는 자각은 없었다. 그렇지만, 13살이 불량한 상급생을 위협하고 돈을 줘서 담배를 구해 폈던 것이다.
객관적인 관점으로 봤을 땐 그야 깜짝 놀랄 만큼의 비행 행위였다.
"……."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어머니가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맞잡았다. 그것이 어쩐지 병원에 처음 데려갔던 날 필사적으로 다독였던 것을 떠올리게 하여서. 이렇게 되어서도 어머니는 괜찮다고 얘기해주시려는 걸까, 하고. 씁쓸하지만 고마운 감정이 차올랐다.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우리, 아들을, 돌려주세요."
"……."
"돈은,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제발, 부탁합니다. 아들을, 시윤이를, 돌려주세요."
"……."
"부탁합니다, 부탁합니다. 제 사랑하는 아들을, 돌려주세요. 돌려줘. 돌려줘어어어어어!!"
"……."
간절하게 애원하고, 이윽고 원통하게 호소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을 느끼며 무언가 급히 말하려고 입을 열어 우물거렸다가, 이내 아무것도 내뱉지 않고 닫았다. 절망으로 일그러진 그 얼굴을 보면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집을 나가기로 했다.
*****
"시윤, 무슨 생각해?"
"…아, 응. 별건 아닌데."
나는 눈을 뜬다. 크고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나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전신을 짓누르던 피로감과 통증은 더 이상 없었다. 방금건 꿈이었을까. 더할나위 없이 아름답지만, 순수함이 고스란히 묻어 나오는 얼굴을 마주한다.
그녀는 아이다. 성숙하면서도, 순진한 아이.
"궁금해."
내가 말을 돌리려는 기색을 눈치챈건지, 그녀는 직접적으로 물어왔다. 나는 한숨을 한번 내쉰다. 이걸 뭐라 얘기하면 좋을까.
"그냥……."
시선을 조금 피하듯 살짝 돌려 먼 곳을 바라본다. 한줄기 따스한 봄바람이 볼을 스치는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