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는 한쪽 눈을 감고 있는 쥰이 불편해보여 주머니에서 한쪽 눈을 가릴 수 있는 안대를 꺼내어 건넸다. 어디서 나왔냐 하며는 신력으로 꺼내온 것이긴 했지만. 한쪽 눈을 계속 감고 있는 것보다는 안대를 하고 있는 것이 편하지 않을까? 물론 아파보인다는 단점이 있긴 하다.
어쨌든 케이는 쥰이 건네는 케이스를 받았다. 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케이스를 열어 모노클을 내려다봤다. 모노클은 처음 보는 것이라 신기했다. 보통 시력이 한쪽만 안 좋다고 하더라도 편의성 때문에 일반 안경을 쓰는 사람이 많은데 소중한 모노클이라는 말을 들으니 이 외알 안경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는 듯 했다.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 받은 물건인 건가요?”
물론 스스로 좋아해서 소중히하는 물건일지도 모르지만 보통 이런 경우는 소중한 누군가에게 선물받았다, 라는 것이 정석이 아니겠는가. 선물이라는 것은 그 물건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선물하는 사람 또한 의미가 있는 것이곤 했으니.
봄에서 여름을 지나 가을, 그리고 가을. 늦가을은 곧 겨울을 부를 것인데. 이렇게 흘러가버리면, 이다음 가을 찾아올 때에는 자신은 어디에 있을 것인지. 자리 잡고 지켜볼 것이 여전히 없음을 생각하며 가을 햇빛 속을 거닐 때. 스쳐 지나가며 네 모습을 보면,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거리를 두고서 멈춰 서게 된다. 저와 같은 기운을 가진, 내 마니또님. 이제는 멀리 숨어서 지켜볼 필요가 없는 것인데. 그럼에도 먼저 말 걸지 못함에 망설이고 있으면 네가 자신을 발견하고 인사를 걸어오는 것일까. 그에 미유키는 작은 미소와 함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 안녕하세요."
하고서 제 건네었던 봄 팔찌를 여전히 차고 있을지. 살피며 벤치로 다가가던 미유키는, 너와 눈을 마주하고는 설핏 웃는다.
미움 받을 걱정이라면 하지 않아도 좋은데. 그리 생각하면서도 말 곧장 내뱉기보다는 잠시 지난날의 대화를 돌이켜 보았다. 일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가 봄이었던가? 설혹 못되게 군다 하더라도 너는 내 눈에 언제까지고 어여쁠 테니 널 미워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 그때에도 요 꼬맹이는 왜인지 달갑게만 듣지는 않는 눈치였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늘 그래왔듯 너라면 전부 괜찮다는 식으로 말하는 대신, 감상에 보다 솔직해지기로 했다.
"나도 그런데, 이심전심이로구나! 당초에 미움이 없었으니 걱정할 나위도 없는 것이었어."
약속한 바도 없으면서 똑같이 생각해 버렸다는 게 무엇이라고 이렇게나 우습다. 머리칼 거칠게 휘적거리던 손길은 끝으로 갈수록 조금씩 약해지더니, 손을 뗀 그가 슬그머니 하네의 표정을 살폈다. 아슬아슬하다가도 끝으로는 웃는 듯하기에 그제서야 마음 놓았다. 아니 마음 놓다 못해, 몰래 잡아 둔 긴장이 탁 풀려서 하네의 볼따구니 잡고 양쪽으로 쭉쭉 당겼다. 허락도 받았는데 주저할 까닭 있겠나! "으이구, 요놈 가시나야. 꼴랑 이거 갖꼬 씽퉁하면 우야노." 시무룩한 얼굴 보고 있자면 왜인지 마음이 싱숭생숭해 가만히 못 있겠어서 이런다. 말만은 핀잔처럼 들릴지도 모르는 탓에 알아듣기 힘들도록 일부러 한국말로 잽싸게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잘할 거라는 말을 듣고 어리둥절했다. 뭘 잘한다는 거야, 볼 꼬집기? 무슨 말인가 싶어 이제까지의 대화를 천천히 맞춰 보고서야 그는 마침내 말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러브레터 받은 게 누구였더라? 힘은 나 말고 네가 내야지, 요 깜찍하고 맹랑한 꼬맹이야!" 에잇, 그러고 보니 선물 얘기하다 이렇게 흘렀었지. 갑자기 괘씸해져서 볼 늘리다 말고 복어처럼 꾸욱 눌러주었다!
이런 엉뚱한 장난질도 조금 뒤에는 소강에 들었을 테다. 괜찮다는 확답 듣고 나서야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먼저 벌떡 일어났다. 신도 오래 쭈그려 앉으면 다리 저리더라. 아직 앉아 있을 하네에게 잡고 일어나라는 듯 손을 내민 그는, 이어서 능청스레 묻는다.
"머리 정리해줄까?"
오늘은 너무 주책맞게 굴기도 했고…… 내내 장난질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름대로 보이는 반성의 표시다. 하네를 바라보는 두 눈이 쾌활하게 반짝인다. 재미없을 걱정은 말라는 듯이. 계절을 닮은 쾌청하고 푸르른 호언이었다.
// 이걸로 막레!!! 중간에 엉뚱한 소리 하는 바람에 하네를 많이 부끄럽게 만든 것 같아서 나까지 미안해 이 할배가 잘못했어...!!! 이러고 나서 열심히 과자 만든 걸로 하자( •̀∀•́ )✧ 아무튼 수고했구~ 일상 정말 즐거웠어😊
더 일찍 만나지 못해 아쉬움이 쌓였던 만큼, 지금의 상황은 너무나도 기쁜 것인데. 그 팔찌 여전히 차고 있다는 것에 미유키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느낀다. 네 권유에 미유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벤치로 다가와 앉는다. 멀리서 볼 때 보다, 가까이에서 볼 때가 더욱 아름다운 것이라. 미유키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다니면서 보면, 같은 기운은 많이 느껴지는 것인데. 이렇게 마주 보는 건 힘든 일이네요."
조곤조곤 말하던 미유키, 네 봄 팔찌에 시선을 둔다. 은근슬쩍 물어보며 팔찌에 대한 네 마음을 알아보려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