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2위 A : 알렌이 아는 사람(유하)이 위험에 처해서 가봐야 한다고 했을 때 카티야가 따라갈 채비를 하며 어디냐고 묻는 장면. 사실 다른 두 장면들에 비해 특별히 장문이거나 그렇게 공들여서 쓰신 장면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왠지 모르겠지만 인상깊은 장면입니다. 서로 그리워하던 상대와의 재회를 잠시 뒤로 하고 자신이 모르는 사람을 구하러 가는 알렌을 붙잡는 게 아니라...그 모르는 사람을 같이 도와주러 간다는 부분에서, 카티야라는 캐릭터의 올곧음을 그만큼 잘 드러냈고...알렌이 이 카티야가 자신이 아는 카티야가 아닐 수가 없다고 확신하는 장면이기도 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 공동 2위 B : 준혁이 자신은 더 이상 북해길드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그 계승권을 스스로 포기한 후, 낙천창의 물음에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라고 답한 장면. 정확히는 한 장면은 아니고 여러 장면으로 나뉘었긴 하지만요...!
준혁이는 북해길드에서든 여명 길드에서든 인정받고자 하는 의사가 강했다고나 할까... 북해길드의 후계자가 되기를 꿈꿔왔던 캐릭터라는 걸 꽤 오랫동안 봐왔는데... 너무나도 소중하기에 붙잡고 있었지만, 이대로라면 준혁 자신이 거기에 얽매일 것이고 또 그 과정에서 다시 가족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겠죠. (영월 습격 작전에서 북해길드가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은 것처럼...) 그래서 결국 끊어내기로 선택했다는 점에서...어쩐지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생각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런 녀석이 그걸 스스로 내려놓고 전환점을 맞이하는 장면이니까 인상깊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1위 : 오늘자 진행에서, 시윤이 도라의 생각을 끝까지 듣고 그의 계획을 돕고 싶다고 선언하는 장면. 저도 고신 도라의 정체에 대한 반전에서는 깜짝 놀랐습니다. 도라의 정체와 그가 하려는 일이 밝혀지면서 저도 여운이 남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특히 시윤주의 감상대로 도라가 참 인간적인 신이다보니...이 게이트에 입장한 사람이 시윤이가 아니었거나, 시윤이었더라도 도라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고 자신들의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려 했다면 상황이 어떻게 꼬였을까...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소통의 중요성...) 이런 상황에서 도라에게 겨울을 끝내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했더라면 분명히 반감을 사서 해를 입거나 내쫓기든지 했겠죠...? 그리고 또 이 이야기를 듣고 시윤이가 내린 결정도 참 시윤이다운 결정이다...라는 생각도 드네요.
상당히 회피성이 강한 성격임. 4차원을 일부러 연기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거의 모든 진지한 화제에 회피 하려는 경향이 있음. 추측컨데 과거에 겪은 비극의 피드백(윤시윤은 군인 PTSD로 겪는 증세)과 그걸 솔직히 밝혔을 때 이지메 당했던 경험이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하유하와 궁합이 잘 맞는 이유는 내가 봤을 땐 둘 다 비슷하기 때문임. 밝고 귀여운 / 4차원적인 캐릭터를 내세우지만 실제로 속엔 상처를 깊게 가지고 있음. 또리의 경우는 특히나 4차원 행보를 연기하면서 상대의 깊은 심중에 들어가지 않고, 상대가 들어오는 것도 거부함.
다만 당연하게도 속으론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는 편임. 행적만 봐도 알 수 있는게, 정말 4차원에 세상살이에 관심이 없었다면 굳이 다 얘기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시작하자마자 교관에게 협박 당해서 다윈주의자를 도왔던 것을 '자수' 하진 않았을 것임.
아마 내심으론 상당한 죄책감 혹은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을까 싶고. 이후 교관의 권유에 따라 봉사활동에 갔던 것 등.
또리를 잘 보면 명백히 의사소통은 잘 되고 있음. 상대의 말도 대부분의 경우 제대로 이해하고 있음. 그럼에도 기행을 펼치는건 물론 그러고 노는게 좀 즐거워서도 있을거고, 그렇게 영문 모를 아이의 컨셉을 잡는게 자신에게 올 진지한 이야기들을 흘릴 구실이 되어주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음.
또한 내 생각에 얼마나 의식적으로 하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스스로의 외모가 조금 귀엽기 때문에 신비주의나 애기 컨셉으로 연기하면 잘먹힐거란걸 알고 하고 있다고 생각함. 여우교단 종교 믿는 캐릭터인 만큼 역시 요망하네. 괜히 귀여워서 괴롭히는게 아님.
윤시윤이랑 또리가 궁합이 안맞는 이유는 첫번째로 윤시윤이 진지충이라서 또리의 4차원 넘기기 컨셉에 잘 안넘어가주는거랑, 두번째로는 그런 주제에 관찰력이 비교적 높고 오지랖도 넓어서 '너 혹시 이렇게 생각하는거 아니야?' 라고 정곡을 찌르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그걸 회피하거나 방어하고 싶은 또리 입장에선 매우 불편한 인물상이 아닐까 생각. 오히려 암 생각 없이 하하하호호 응애가 귀엽구나 하고 놀아줄 수 있는 가벼운 인물이 또리 입장에선 대하기 편할듯.
타시기에게 비교적 본심을 열어준 이유가 그게 아닐까 싶음. 타시기는 인간관계가 매우 서투른(캐릭터 중 TOP3로 서투름. 빈센트랑 막상막하임) 캐릭터인데, 애아빠라 그런가 또리의 애기 컨셉에는 자기 성격도 적당히 엉뚱하고 적당히 진지해서 잘 놀아줬음. 그런 과정에서 '이 사람이 나한테 해를 가하진 않겠구나' 하는 식으로 가드가 풀리고, 애들이랑 잘 못 어울리는 타시기의 서투른 고민에 그럼에도 자기에게 서투르지만 진심으로 대해준 것을 보아 자신도 어느정도 솔직하게 대해준게 아닐까? 같은.
1. 준혁이의 선자리.. 선자리 이전은 잘 모르지만.. 선자리라는 약간 고전적?인 그런 느낌이 있는데. 실제로 벌어지는 걸 보니까 오히려 높은 자리일수록 더 게산하기도 하는데. 그렇지만 준혁이나 시니타가 같이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등의 일을 하는 것이나. 준혁이가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하고 문답을 하면서 스스로만의 답을 찾고 그 과정에서 인간관계를 돌아보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2. 알렌과 카티야의 관계성 알렌이 카티야를 구하겠다고 다짐하고 외치는 장면...이 인상깊었죠. 그 과정에서 알렌이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는 거나.. 그것에 힘입어서 결론을 내린 것 같은 느낌이라서 좋았어요! 권왕이나 성녀나 메리쌤의 힘을 기반으로 일어선 느낌? 알렌이 앞으로도 어떤 선택을 할지.가 기대되어서 두근거리는 기분이었어요
3. 시윤이의 선택.
시윤주의 레스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밀도가 높은 터라 시윤의 진행은 좀 더 긴 호흡으로 읽게되는? 그리고 그만큼 여러 상황이 맞물리는 인상도 받아요. 지금까지 게이트...를 들어간 캐릭터 중에서는 재현형..(아마 재현형이라고 들은것같은데)을 가장 길게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안에서 어떻게 할 것이냐. 라는 질문을 속에 품은 말들을 주고받았고 그에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무엇을 할 것인지. 답하는 것이 찰나라는 것과 스스로의 인식과 전생의 일과 이어지는 것이 인상을 깊게 남겼습니다..!
에피소드 3에서 제일 인상깊었던 장면 3가지 1. 일단은 알렌과 카티야. 카티야는 죽었습니다. 종교인들의 말이 옳고, 알렌과 카티야 둘 다 천국이건 지옥이건 같은 곳에 간다는 전제 하에서나 만날 수 있는 신세였죠. 죽은 이를 되살리는 기적과도 같은 일은, 기적과도 같은 힘이 없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고, 알렌은 다른 많은 이들이 그렇듯, 사실상 무의미나 다름없는 기적을 바랄 시간에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카티야가 살아 돌아왔습니다. 알렌이 죽어서 천국에 간 것이 아니라, 죽었던 카티야가 이 세상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하지만, 전술했듯 사람이 살아나는 기적 같은 일에는 기적 같은 힘이 필요하고... 그 힘은, 선하고 고귀할 수도 있지만 사악하고 끔찍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행히도, 카티야는 존재해서는 안 되지만 존재하고 있는, 꼬물거리는 사악한 심장의 힘으로 부활하는 기적을 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카티야는 걸어다니는 재해라는 형태로 부활했고, 알렌에게 자신을 죽여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알렌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카티야는 괴물도, 흉악범도, 하다못해 성격이 더러운 쓰레기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이 세상이 나아가야 할 길을 지키는 가디언이었습니다. 아니, 그건 전부 상관없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카티야는 알렌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알렌은 자신을 죽여달라는, 사랑하는 이의 간절한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비록 부정한 힘이 준 기회일지언정,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나섰습니다. 설령 그 앞에 동료들의 비난이, 메리의 경멸이, 그리고... 차라리 죽음을 구걸할 정도의 파멸이 기다릴지라도, "카티야를 구한다"는 목적에 비하면... 그 어떤 위험이라도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알렌과 카티야의 관계에서 나오는 서사는 참 감동적이면서도, 처절한 면이 있었습니다. 동료들은 알렌의 행동을 비난하고, 교관 메리는 그 행동을 경멸합니다.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같은 신카이 마코토 영화에서 사랑의 힘으로 어떻게든 서로를 구원하는 데 성공하고, 그 과정은 감동적인 음악과 연출을 통해 좀 스무스하게 넘어가지만... 여기서는 카티야에 대한 사랑과, 사랑만으로 극복하기 힘든 벽 앞에서의 좌절이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현실적인 맛은 있었는데 음... 보다보면 고통이 계속되는 거 같아서 무탈히 해결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시나리오의 결과가 어찌되건 알렌과 카티야가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만약 빈센트가 알렌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생명권에 대해 진지하게 각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요.
2. 준혁이 PTSD 치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권력이라는 것은 사람의 성품에 따라 누가 시달리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누군가는 다치고 병드는 재해의 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다른 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선한 사람이 권력을 잡는다면, 그 권력에 영향을 받는 아랫사람들이야 좋더라도, 권력을 잡은 사람에게는 고통 가득한 나날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악한 사람이 잡는다면 그 사람이야 좋겠지만, 아랫사람들은 진지하게 삶과 죽음 중 무엇이 나은지를 구분하지 못하겠죠. 왜냐? 권력이 생긴다는 건 크든 작든 누군가의 삶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 권력이 커지면... 어떤 사람의 생사까지도 가를 수 있으니까요. 의도하지 않더라도 내 처신이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는 건,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준혁의 PTSD는 개인적으로 공감이 가는 면이 있었습니다. 준혁은 많은 것을 잃었고, 다른 이들의 목숨도 '더 큰 목표'를 위해 죽게 내버려둬야 할 사례가 있었을 것입니다. 더 큰 목표를 위해, 과연 그럴 가치가 있었나는 의문을 안고 나아간 결과, 준혁의 정신은 피폐를 넘어 정신이란 게 존재한다고 볼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겠죠. 그건 준혁주가 돌아온 이후 초기 일상에서 많이 보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스템 외적으로도 언제까지고 그 상태로 있긴 어렵기도 했지만) 준혁이 심리치료를 통해 다시 얼굴을 알아보게 되는 묘사가 정말 좋았던 것 같습니다.
3. 유하 스승님 장례식 중학교 때 악명 높았던 국어 선생님이 내줬던 숙제가 생각납니다: "나는 누구인가?" 그 때는 뭐 이런 숙제를 다 내주느냐고 불평만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유익했다고 생각합니다. 내 혈통을 빼고, 내가 받는 월급을 빼고, 내가 일하는 직업을 빼고, 그 모든 것을 빼고 뺀다면 나는 무엇이 될까요? 나는 나 자신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요? 유하주가 깨달음 과정에서 하나만 나와도 미치고 팔짝 뛸 벽을 7개나 만난 것은 유하에게나 유하주에게나 정말로 뜨악한 일이었겠지만... 어떻게든 그 일을 해결한 다음에, 깨달음의 과정에서 드래곤이라는 혈통의 그늘에 가려져있던 유하가 그 그늘에서 벗어난 것 같아서 정말로 보기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