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어장은 4개월간 진행되는 어장입니다. ◈ 참치 인터넷 어장 - 상황극판의 기본적인 규칙을 따릅니다. ◈ 만나면 인사 합시다. AT는 사과문 필수 작성부터 시작합니다. ◈ 삼진아웃제를 채택하며, 싸움, AT, 수위 문제 등 모든 문제를 통틀어서 3번 문제가 제기되면 어장을 닫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감정 상하는 일이 있다면 제때제때 침착하게 얘기해서 풀도록 합시다. ◈ 본 어장은 픽션이나, 반인륜적인 행위를 필두로 약물, 폭력 등의 비도덕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만 옹호하지 않습니다. ◈ 본 어장은 공식 수위 기준이 아닌 17금을 표방하며, 만 17세 이상의 참여를 권장하는 바입니다. ◈ 누가 불러도 들으면 반응하지 마.
위키: http://threadiki.80port.net/wiki/wiki.php/Seasons%20of%20Dimgray 웹박수: https://forms.gle/GL2PVPrsYV2f4xXZA 시트: >1596778092> 임시어장: >1596774077> 이전 어장: >1596779065> 사계의 원로 중 봄을 담당하는 '코냑'은 정원 가꾸기가 취미로, 가든 오브 헤븐의 변두리 구석이 그 본인의 온전한 소유라는 사실은 조경이 처참하게 망한 정원도 그의 손을 거치면 하나의 작품이 된다는 사실과 더불어 섹터 내부에 널리 알려져 있다.
과거, 처참하게 생긴 사람도 그의 손을 거치면 작품이 되지 않겠느냔 리큐르의 조언이 있었으나 막상 코냑에게 맡겨진 사람은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고 그의 정원만 더욱 비옥해진 작은 사건이 있었다…….
마오가 고개를 꺾으며 말했습니다. 나른하면서 간드러진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히죽 웃었고 산군의 혀 차는 소리를 들었는지 산군을 똑바로 응시했다. 아편이싫은사람이래 "아~ 시끄러워~"
그냥 환청을 들었을 뿐인 듯 그가 다시금 고개를 바르게 했어요. 마오는 약을 좋아해, 취해서 고롱고롱 소리를 내. 그가 걸으면서 손가락을 까딱이자, 장죽이 다시금 그의 입가로 날아왔다.
"이렇게나 좋은 건데.....~ 아~ 익숙한 모습이다아~"
아는 모습이 드러나자, 그가 고개를 비뚝 기울였다. 아~ 뿌연 머릿 속, 뿌연 안개. 뿌연 연기. 그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오가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화단을 가득 아편으로 채우자 "아마~ 저 쪽으로 가면 되었던 거 같은데...~" 그 방향이 아니야 바보야 저쪽이야 히죽, 미소를 지으며 말하던 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습니다. 환청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죠. 그렇지 않을 거라고? 흐음. 그는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환청에 대고 무어라 떠들 뿐이었다.
"나 바보 아니야~"킥킥킥킥 바보바보! 마음에 안 드는 환청이 들렸던 모양이다. 마오가 히죽히죽 웃으며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연기가 흐트러졌고 그는 다시금 담배의 부리를 입에 물었다.
간담이 서늘할 수도 있는 비유에 맞장구치며 따라 웃어보이는 것도 시안의 성미였다. 어차피 틀린말을 한것도 아닌데 문제라도 있는가? 인간을 자르면 피가 나오고 기계를 자르면 기름이 나오는건 당연한 이치다. 아마 자신은 그 둘 다겠지만, 분명 시안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의사'라는 존재는 경우에 따라 외골수에 퉁명스럽지만 기조는 친절하며 누구보다 생명을 중요시 여기는 이였다. 다만 여기의 의사는 그 기조가 변질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다른 분파일 뿐인지는 알수 없으나 필시 특이점에 도달하게 된 존재라면 이런 모습을 취하지 않을까 정도의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아닌게 아니라, 에레 역시 인명을 중요시하기에 그들을 살려내고 댓가를 받아내는 것 아니겠나.
"오오, 그때가 된다면 염치 불구하고 신세 좀 지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되도록이면 그럴 일이 없도록 하는게 신상에도 좋겠지만... 어떻게 세상 일이 마음대로만 되겠는가? 더욱이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도 있는 도시에서 맘 편히 살수는 없단것 정도는 시안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아무리 이 도시가 무자비하다곤 해도... 보상을 위해 에레가 상자를 열어 보여준 황금은 마치 체내에서 적출한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는듯 흥건하게 묻은 피와 함께 있었다. 아아, 과연... 이것이 바로 탐욕의 상징인 것인가. 대체 그 황금을 온몸에 넣어두었다는 자는 얼마나 기구한 인생을 살았기에 걸어다니는 황금보따리를 자처한 것일까...
"것 참, 편할대로 살아가는 사람이군요.... 뭐, 가지라며 떠나갔다면 소유하는게 딱히 위법인 것도 아니겠지요."
물론 시안에게 필요한건 그저 작은 조각품을 만들수 있을 정도의 크기일테니 손에 쥘수 있는 정도면 충분했다.
흰 눈 사이로 썰매가 아닌 슈트를 타고 달리는 기분은 시안에게 있어선 상쾌하다 못해 즐거웠다. 벌써 이곳에서 얼마나 있었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역시 썩어도 준치인 건지 즐거움만큼은 아직 녹슬지 않았단 걸까?
[삐비빅-삐비-삐비비빅!]
"감사합니다~ 여러분께 뭐든 배달해드리는 시에라 로지스틱스입니다! 배달 대행을 원하실 경우 현재 회선에서 대기하여주시고 주문요청 사항이 있으실 경우 4번을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기막히게도 키패드의 부저음과 함께 회선이 돌아가자 음소거 후 작게 실소를 터뜨린 시안은 언제 그랬냐는듯 능청스럽게 통화를 이어나갔다.
"어서옵쇼~ 인간성을 버리는 것만 빼고 뭐든지 배달해드리는 시에라 로지스틱스입니다! 선생님께선 어떤 물건을 원하시는지요?"
회선 너머의 목소리, 분명 일전의 그 사람이렷다. 시안은 차라리 음소거 없이 웃을걸 그랬나?라는 잠시 무례한 생각을 하며 그가 어떤 물건을 원하는지 조용히 듣고 있었다.
"아유 선생님~ 몇번이나 말씀드렸잖습니까~ 요즘 그런건 불법이란 말입니다! ...네? 원래 저희들은 그런거 가져오는 사람들 아니냐구요? 뭐... 틀린 말은 아닙죠. 그래도 말입니다~ 뻥뻥 터져서 여기저기 더럽게 남는 그런것보다 더 좋은게 있지 말입니다? 이를테면 하트모양 폭죽이라던가 눈꽃모양 폭죽이라던가요!"
평범한 고객에게 응대하는 멘트가 아닌 능청스럽게 혀를 굴리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도 단골고객인가보다. 통화를 하는 와중에도 장애물을 이리저리 피하던 시안은 제법 높은 지역에 다다라서야 빠르게 움직이던 몸을 옆으로 틀어 매끄럽게 멈추어섰다.
"아이 참... 법률은 매일같이 바뀌고 있습니다요~ 게다가 그 모델은 함부로 사용하면 욕먹기 십상인거 아시잖습니까~
말마따나, 아무리 서로 전쟁통인 나라라 해도 정도는 지켜가면서 부수거나 죽이지 않습니까? 원래는 서로 싸워도 이상하지 않을 이들이 합심해서 균형을 이뤄나가듯 말이지요."
돌이켜보면 우리들의 과거가 그러했구나. 하지만 어차피 이 도시엔 민간인이라 불릴 존재가 없을텐데 딱히 문제될 것도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까지 기울었다. 시안은 마이크의 음소거를 잊지 않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그 사이에도 전화 너머의 대상은 한창 열변을 토했다.
"뭐... 정 그러시다면 하는수 없지요. 저는 기껏해야 포터일 뿐인데, 하늘같은 고객분들에게 어찌 할수 없는 노릇이겠죠! 다만, 아시죠? 업무상 통용되는 물건의 쓰임새에 대해선 모두 수령인의 책임이라는거, 그게 무기라면 더더욱 말이죠. 아아아~ 당연하겠지만 이렇게 구두가 아닌 제대로된 각서를 쓰셔야 합니다~? 옙! 그럼 가까운 시일 내에 서류철과 함께 뵙도록 하겠습니다!"
통화 종료.
마치 누군가 보는 사람은 없는지 살피듯 주변을 둘러보던 시안이 아직까진 보는 눈이 없음을 확인하자 시종일관 웃는 이모티콘을 띄우던 바이저를 올려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차가운 쇳덩이의 안으로도 한기가 맴도는 겨울의 도시, 그 길을 따라 뻗어나가는 입김은 허무하리만치 바람에 쓸려나가고 있었다.
"이쪽도 더러운 일만 도맡아 한다지만... 그래도 정해둔 나름의 선이 있는 법이거늘, 당신이 무엇을 할런지는 내 알 바가 아니겠지만, 그 업보는 꽤나 무거울 겁니다. 고객님..."
여전히 변질되었지만 헬멧 밖으로 울려퍼지는 것보단 정갈한 음색, 보는 눈이 없대도 듣는 귀는 있을 도시에선 마땅한 장치였다. 차갑게 아려오는 바람을 받아들이며 시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바이저를 내려 누군가에게로 연락을 보내기 시작했다.
1. 마오의 모티브 중에는 중국 요괴인 '혼돈'(사흉 중 하나인 그거.)과 '공공'(용을 닮은 요괴)', 시랑(개를 닮은 악수=요괴)', '마복'(범을 닮은 중국 요괴. 아기 목소리를 흉내내며 식인을 한다)가 있다. 마오 짠다고 산해경을 읽었더니 머리가.... 으으..... 그 외엔 고영! 고양이!!! 이름부터가 고양이 묘 외자인걸!
2. 마오 짤 때 가장 많이 들은 곡들은 happy pills-red.ver , misty meat, bury a friend, mad hatter, X튜X [퇴폐, 피폐 플리]....
3. 마오의 시간개념은 아편을 피우지 않았을 때 금단 증상을 기점으로 센다. 이런 증상들이 나오니까 지금 몇 시간 정도 지났구나. 하고...
1-1. 입주자들은 스스로 섹터를 정하거나, 추천을 받아 섹터에 들어갔을 때 원로의 얼굴을 잠깐 보는 정도다. 1-2.제 조직에 데려가야겠다 싶은 사람들에 한해서만, 브로커를 통해 현재 면접 희망 플레이어처럼 따로 면접을 본다. 1-3. 단, 대표 조직이 되면 위임이나 역임 때문에라도 한번쯤 얼굴을 마주하고 면접 비슷한 환영회를 거치긴 한다.
1-1은 왜 하냐면... 원로들은 이곳에 온 모든 사람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시지만 누가 이 도시에서 핵무기라도 만들었는데, 미지의 존재가 "그래서 저 새끼는 누가 담당자냐?" 하면 서로 눈치 보면서 눈깔과 폭탄을 함께 돌리기 할 사람들이라 그렇게 정했다..
2. 본디 원로가 정했으나 그 갈래는 섹터마다 다르다. 쿠데타를 통해 갈아치워지는 경우도 존재하고, 정해진 조직에서 네가 해라. 하고 역임하거나 떠맡는 경우도 있고, 원로가 네가 하는게 낫겠구나 싶어서 바꾸는 경우도 존재한다.
3. 개인조직이 아닐 것. 섹터에서 추구하는 인물상과 일정 부분 이상 걸맞을 것. 그 외에는 없다.
"물론! 생각해봐. 삶을 다 저렇게 편하게 산다면 얼마나 좋겠어? 서로 싸울 일도 없을 테고, 죽일 일도 없을 테고..."
그런 세상을 생각해본다. 아무도 싸우지 않는 세상. 신체 안의 균형이 무너져서 누군가를 찾거나, 야생동물에게 습격당하거나, 무언가에 찢겨죽을 수는 잇어도 서로간의 싸움은 없는 생각. 그런 세상이라면 수술을 할 필요도 줄어들 것이다. 전쟁터가 없으니 야전병원도 없을 것이고, 야전병원이 없으니... 에레는 그런 행복한 세상을 상상하다가, 자신의 자리가 없음을 깨닫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지! 그런 사람이 많으면 안 되지! 서로 싸우고 죽여야 나 같은 의사가 건수를 많이 딴다고!"
에레는 그렇게 말하더니,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서 시안에게 건네준다. 그리고 말한다.
"혹시 죽어가는 사람 후송하는 일도 맡나? 그럼 나에게 보내줘! 병원비에서 10%만큼을 증액해서 네 몫으로 청구..."
서로 싸울 일도 없고 죽일 일도 없다라... 그렇다는건 천재지변이나 실수로 벌어진 인재나 맹수따위의 재해 말고는 사람이 다칠 일이 없는 제법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이 될 것이다.
과연, 그래도 본질은 의사라고 인류의 안위를 걱정... 하는건 딱히 아닌가? 정말 그렇게 되었다간 일감이 줄어들 것이고, 그렇다면 본인의 입지도 위험해질 거라는 생각에까지 다다랐는지 에레는 방금 전 자신이 했던 말을 전면철회하듯 정반대의 발언으로 뒤집었다.
"크하하하하하하!!!! 솔직하시니 좋네요! 아무렴, 언제 누가 총맞고 칼맞아 죽을지 모를 정도로 험악한 도시에서 그런 행복회로는 너무 과한 망상이겠지요!"
망상하는 것 정도야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순간 스쳐지나갔지만 그런 여유로운 생각을 할 정도로 호락호락한 도시가 아니었다.
"음... 간혹가다 있긴 했었지요? 중량이 꽤 나가는 것들 중에서 생존징후가 있는 것들도 날라본적이 있으니까요."
다만 죽어가는 사람은 그 예가 많지 않았겠지. 대부분은 사지와 정신이 멀쩡한, 밀항을 원하는 이들이었다. 에레가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건네오는 것이 보이자 시안 역시 반사적으로 자신의 명함을 마주 건네었을 것이다. 비지니스 제안, 협업이야 언제나 좋은 일이다. 커넥션이란 많으면 많을수록 복작복작하고 좋은 법이니까,
"이야... 10%면 꽤나 솔깃한 제안이네요...? 확실ㅎ, 어이쿠."
순간 쇠창살 너머로 튀어나왔던 손이 대화의 분위기를 채갔을까? 놀라진 않았지만 저렇게 수용소마냥 들어차있는 환자들은 참으로 기묘한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살려줘병, 죽여줘병이라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종 정신질환이라도 생긴 건지... 그럴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흐음... 대답을 고민하게 되는 질문을 하시는군요..."
시안에게 문득 들려온 것은 죽고 싶은 적이 있었냐는 질문이었다. 물론 자신도 사람인지라 장난으로라도 한번쯤은 생각해볼만 했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겠군요! 그럭저럭 살다가 재수없게 총알이 심장을 뚫어버린다던가 뇌를 뚫어버린다던가 하는게 아닌 이상 살만큼 살아보자, 정도의 주의니까 말입니다~"
무엇보다 그런 생각을 진지하게 해볼 정도로 나약한 인물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일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밀수업자라는건, 생각보다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의 말로를 먼 발치서 구경하며 술 한잔을 기울이기에 좋은 직업인데 과연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런지도 의문이지만,
눈 앞의 로봇이 수많은 사람들을 데려온다. 그러면 에레는 그들을 치료하고 엄청난 비용을 청구한다. 그리고 에레는 마침내 이 작은 세계의 모두를 처리하고야 마는 것이다! 에레는 자신의 너무나도 완벽한 사업계획을 생각하면서, 쇠창살 너머로 뻗은 수많은 팔들을 바라본다. 저 수많은 팔들은 여러 의미에서 다양했다. 어떤 팔은 손목이 날아갔거나 손가락 한두개가 사라졌다. 그리고 어떤 팔들은 원래 피부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흉터로 뒤덮였다. 피부색도 다양했고, 그 팔에 적힌 번호도 다양했다. 에레는 그 팔들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그런 것들은 그저 특징일 뿐, 에레의 의술이 나아갈 방향을 바꾸지는 못했다.
"...전부 내가 치료할거야."
"치료는 필요 없어! 그냥 날 죽게 내버려두라고!"
"미안하지만 그건 안 돼. 일단 좀 쉬라고."
에레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리모컨을 꺼내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그 수많은 팔들이 전부 쇠창살 안으로 들어가고, 툭, 투툭, 몸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에레는 그들을 '진정'시키고 나서... 시안을 돌아보며 말했다.
"나중에 여기에 또 배달 온다면... 이 기계에 붙일 이름도 생각해서 와주면 정말 고맙겠네."
그렇게 말한 에레는, 웃어보이면서 말했다.
"이거... 못 보던 얼굴을 너무 보니까 흥분한 모양이야. 이제 얘들을 치료해야 하니, 슬슬 돌아가줄 수 있을까?" // 여기서 막레로 하거나, 막레 주면 될거 같아...!
벌써부터 환자를 가득하게 채울 심산인 에레의 모습은 누가 봐도 열의가 가득한 모습이었다. 다만 그 열의가 이 도시의 사람답게 어딘가 뒤틀린게지, 하지만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행동한다는건 좋은 일이니 시안은 그녀가 어떤 일을 하던 감히 건드릴 입장이 아니었다. 물론 도시의 룰에 위배되는 행동을 한다면 걱정스러워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건 쓸데없는 걱정이려나?
"그나저나 환자분들이 꽤 많나보군요? 병원도 북적거릴수 있다는건 확실히 이례적입니다만..."
치료라기엔 너무 많이 수용되어있고, 일종의 감금시설이라 하자니 멀쩡히 나갔다는 사례도 있어서 감히 무어라 할수 없다는 기분이 드는 시안이었다. 뭐, 이러나 저러나 그저 에레에게 필요한 것들을 배달해주고 이따금씩 그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면 그만 아닐까? 어차피 그동안 해왔던 일들과 별반 다를바 없는 것이다.
"하하하하~ 것 참 칭얼거리는건 어른들도 마찬가지인가보군요~"
치료는 필요없다며 죽게 내버려두라는 외침에 에레가 리모컨 같은 것들을 꺼내 스위치를 누르자 마치 어딘가로 빨려들어가듯 창살 밖을 헤집던 손들이 안으로 들어갔고, 뒤이어 무언가가 툭툭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흠... 작명센스는 별로 없는 편이지만, 한번 생각해봐야겠군요?
그럼! 해야 할 일도 마쳤고, 너무 오랫동안 머물러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닐테니 가보도록 하지요!"
검지와 중지를 뻗어 관자놀이에 가져가던 시안이 손가락을 튕기듯 바깥쪽으로 내뻗으며 가벼운 인사를 건넸고, 바이저 부분에도 윙크를 하는 표정이 출력되었다.
"그럼, 조만간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때는 좀 따뜻하게 껴입으셔야 할것 같네요오오오~"
문을 열고 다시 닫아 에레에게 개인적인 시간을 줄 때까지, 시안은 재잘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236 복수대상의 정보는 많을수록 좋은법인데, 전자쪽이 아닌경우 입수가 힘든 경우도 있을수있으니까. 꽁꽁 숨어다녀서. 이게 망령여단의 복수대행은 관계 존속까지 이용해서 복수대상의 파멸을 만드는걸 좋아하니까. 원로에 대한 증오는 단기적으로는 베로니카의 설정을 활용하기엔 스케일이 크니까 나중 알았으면 좋을거같아.
(일상을 토요일쯤 해야할 거 같아서 슬퍼진 참치) 짧게 잡담하러 본인 등장. 선관이라도 구하고 싶지만 이가라시가 여름섬에서 잘 안나오는 이미지라서 선관구하기가 애매하네. 이 인간관계가 좁은 녀석 같으니라고. 뭐 위는 오너의 개인적인 아쉬움과 개인적인 불평(이가라시를 향한)이니 제쳐두고. 있는 참치들 모두 좋은 새벽.
>>281 "돈 계산은 철저히 해야 뒤탈이 없답니다." 라며 웃는 엘이 있겠군여. 음, 제 쪽에서 여담이라면, 엘과 에얼이 베로니카를 만나는 건 전산망 작업과 그 보고를 들을 때, 그리고 호텔에 안내할 때, 이렇게 두 순간 뿐이라는 점과 베로니카의 객실 등급은 로돈(적)으로 책정될 검다. 베로니카주가 더 추가할게 없다면 이걸로 됨다.
>>291 등급은 나열 순서보다 색으로 구분함다. 기준은 물론 저만 알고입죠 히히. 작업 중에 한하여, 조직원의 정보와 호텔 투숙객에 대한 정보, 단순한 장부(매입매출, 시프트표 등등) 이런 쪽을 제외하고, 시스템적인 쪽은 전부 허가를 내려줄 검다. 데이터의 파기 유무는 베로니카의 말을 믿겠다고 하고요.
이지가 없는 편이 나은 사람이 있다. 지독한 현실이 삶이라 칭하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워, 차라리 맹독이라 부르는 게 옳은 이들. 어제와 같은 오늘 따위 없고, 매일이 바닥으로 치닫는 듯한 삶을 사는 존재들. 흐릿하게 다가오는 아편의 연기를 부채를 휘들러 내쫓고서, 산군은 짜증스레 목을 울렸다. 그르릉.
정신을 연기에 적시고 호흡을 약기운에 물들이면 괜찮다. 약물이란 간혹 비쩍마른 고목에 불을 대는 것과 같아진다. 연기가 나는 것도, 이미 죽은 것에 열기를 주는 것도. 이 역시 이독제독이라 한다면 맞지만, 제 앞마당에 불을 피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허나 막을 수 없는 건 그 기분을 알기에.
배움도 부모도 없이 야생에 떨어진 현대인들의 삶이란. 과거 유행하던 유치한 맛의 이세계행 소설이 차라리 나은 것이다.
"그래, 익숙한 모습이네."
이 지독한 여름에서 익숙한 모습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렇다면 나는 어떠려나. 문득 생각한다. 이제와서 나가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혹여 여기서 나가,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다 하더라도 나를 알아볼 과거도 없고. 사람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생각이 죽이는 법인 짐승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아보인다. 저런게 익숙해진 사람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도리가 없다.
"그 쪽이 아니라 이 쪽이야. 아- 진짜. 지도라도 주면 볼 수는 있어?"
손짓에 허공에서 움직이는 장죽, 사람을 죽이는 계획, 상처를 치유하는 수룡, 기묘한 호수. 놀라지 않는다는 것에 새삼 놀란다. 오늘이 더워서그런가. 옛날 생각이 많이 나는 날이다. 벌써 십이 년이나 지난 옛날인데. 이것도 도리가 없다.
"그래그래. 바보가 아니야."
걷는 소리가 아득하다. 도착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약쟁이의 손짓에 흐트러진 연기가 다가오는 것을, 부채를 들어 막는다. 혼자 있는 것이 싫다는 약쟁이를 보았다. 딱히 무슨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그의 집으로 걸을 뿐이었다.
마오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는 키득키득 웃다가 별안간, 웃음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어딘가 짜증이 섞인 것처럼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아편을 피웠어요!
"지도~?"지도는 옛적에 태웠잖아 지도? 지도! 여전히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고개를 이리 저리 비뚝 기울이던 그가 행동을 우뚝, 멈췄어. 마오는 지도를 볼 수 있었냐고?! 아¿니¡ 절대 못 보지!마음에 들지 않았다나? 귀찮다고 태웠잖아 역시 바보야 "볼 수는 있어~ 아마~? 그래도 고등학교는 나오긴 했으니까....~ 아...~ 진짜.....~ 귀찮게 계속 시끄러워~!" 붉었지! 예뻤어! 허공에 대고 화를 내던 그가 아편을 깊게 들이마셨다. 머릿 속 안개가 짙어진다. 그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어! 그, 그게! 약이 최고야! 마약! 아편! 아편!!! 붉은 꽃! 그러니까 그 꽃을 찾아야 해요! 으으으....
"계속~ 계속~ 시끄럽네에~"
중얼거리던 그는 이내, 킥킥킥 웃었다. 자신에게만 들리는 환청일 뿐임에도 산군도 같이 듣는 거라고 생각하는 듯 싶었어. 자신의 말을 따라서 말했음이 분명할텐데도 그는 분간이 가지 않았으니까! 나는! 나는~ 나느은!!! 마오는 그렇게 생각하고 히죽 웃었어. 드디어 이해자를 만났네, 마오. 잘 놀아주는 사람이야. 츄르도 줄 수 있는 사람이야? 야옹? "역시 들리는구나~ 우리 집은 잘 보여~ 붉은 꽃을 한 가득 심어서~ 어디에서도 빨갛게~ 보이거든~ 그래서 알 수 있어~" 정말로 그럴거라 생각해? 그는 웃음기를 주체하지 못했다.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다가 다시금 바로 하며, 자신의 옆머리를 툭, 툭, 가볍게 두드렸다. 생각을 정리하려는 행동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리멍텅한 두 눈이 무언가를 똑바로 보는 일은 없을 겁니다. 바보가 아니면 멍청이! "우응...~ 그렇지만 집 가는 길은 매번~ 잊어버린단 말이지.....~"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재워달라 하잖아! 아, 저긴 아는 곳일지도 몰랐다. 마오는 히죽 웃으며 자신 쪽을 보라는 것처럼 천천히 손짓했습니다.
"확실해애~ 저 쪽이야~ 빨~간 양귀비 꽃이 있잖아~?"
높은 방, 베란다에 흐드러지게 핀 양귀비 꽃. 그는 히죽 웃으며 양귀비 꽃이 있는 장소를 가리켰습니다.
짐승내가 난다. 저걸 고양이라고 부르는 건 문제가 있어 뵌다. 그보다는 삵이지. 대가리 좀 엇나간 삵. 다쳤던 과거가 있을까. 털 안쪽 몸체에 남은 흉터가 어떤 꼴일지, 딱히 알고싶지는 않았다. 웃다 화내다 캣닢을 뻑뻑 피워대는 삵. 뿌엲고 이성을 흐리는 연기에 사내는 인상을 쓰며 살랑거리는 부채질을 멈추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저건 저것대로 잘 살아남고 있는 것이오. 빽빽한 뙤약볕의 밀림에서 야트막한 뒷산 하나 잡아 머무는 산군은 그렇게 판단했다. 허나 보기 썩 좋은 건 아니지만 이 역시 도리가 없는 일이라, 헤롱거리는 삵이 사실 자신보다 학력이 높다는 것에 충격을 받을 뿐 뭐라 말하지는 못했다. 고등학교는 무슨, 중학교 졸업식 구경도 못한 사내는 괜히 길거리의 돌을 걷어찼다. 드르르르... 하고 돌멩이 구르는 소리마저 이상하게 짜증스럽다.
뭐, 그마저도 도리가 없다.
"뭘 듣는 지 모르겠다만."
지도 볼 줄 아는 최종학교 초졸과 지도 볼 줄 모르는 고등학교 졸업생은 영원한 여름 거리를 걸었다. 별로 멀지 않은 곳에서 총성이 들린다. 길가에서 사람들이 싸우고 있, 아니 저건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는 거네. 수룡이 굽어보는 섬에서의 일상을 배경으로 삼아 두루마기 걸친 산군과 치파오를 풀어헤친 삵이 있다.
"좋은 말 좀 해달라 해봐."
시끄럽다 투덜거리고 순간순간 짜증을 토해내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약기운과 함꼐 삵의 머릿속이 두드리는 상상친구가 별로 친근한 녀석은 못되리라는 것을.
삵의 말마따나 붉은 양귀비 흐드러진 베란다는 눈에 잘 띄었다. 산군은 생각했다. 도둑들기 딱 좋군. 약에 정신나간 짐승들이 저 삵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다. 멧돼지에 원숭이에, 적지 않다. 문제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잡것들보단 삵이 더 사납다. 뵈는 게 없는 짐승은 무섭지 않더라도 피하는 게 현명한 법이다.
"그래? 그럼 잘 돌아가."
휘휘 손을 내저었다. 돌아가는 삵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사내는 몸을 돌렸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봤던, 사람 두들겨 패는 짐승의 뒷덜미를 잡고 끈다. 당황한 목소리가 들리지만 짐승의 울음소리라 별로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다. 사내는 얻어맞던...소년을 보고 눈짓했다. 따라와라. 그리고 질질 끌려다니는, 그래. 멧돼지를 적당한 뒷골목으로 끌고 들어갔다.
사내가 멧돼지를 바닥에 쳐박고 뒷목을 사뿐히 즈려밟았다. 별다른 계획도 필요없는 삼류 쓰레기. 소년에게 나이프를 쥐어주고 말 몇 마디를 속삭였다. 흔들리는 칼날을 불편하게 쳐다보던 사내는 고개를 들어 골목길 틈새, 붉은 양귀비 핀 베란다를 보았다. 이성이 없으니 요괴는 되지 못한다. 그게 별로 아쉽진 않아서- 비명성을 막기 위해 멧돼지의 입을 즈려밟았다.
이 멧돼지에겐 내일이 없을 거다. 그게 별로 달갑진 않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살인이 옳은 행동은 아니다. 딱 내가 처음 왔을 때 나잇대의 소년이 해도 좋을만한 행동이 아니다. 하지만 이곳은 약육강식의 야생이오 바른길도 방도도 없다. 그러니, 도리가 없는 것이다.
코냑은 일과가 끝난 뒤 시선이라곤 일절 느낄 수 없는 곳에서 시선을 느꼈다. 이곳엔 그 어떤 것도 없다. 오로지 자신과 무성한 꽃만 남아있을 뿐.
기민한 감으로도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다. 근래 약쟁이들이 시선이 느껴진다며 쾌락인지 고통인지 모를 것에 몸을 뒤틀던 사실을 떠올린 코냑은 자신이 먹었던 식사에 무엇이 포함되었나 곰곰이 되짚어보기로 했다. 자신의 식사는 늘 고정된 루틴으로 조달된 재료가 있었고, 그 외엔 특별하다 칭할 만한 것이 없었음을 깨닫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번째 시선은 여름 섹터로 옮겨졌다.
마오타이는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기껏 차려입은 흰 비단 옷의 밑단이 붉게 물들긴 했지만, 최근 들어 정부에서 사형수라 속이고 들어오는 첩자에게 충분한 경고가 되었을 테니 딱히 나쁜 장사는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시체 사이에서 시선이 느껴진다는 정도겠다. 그렇지만 어디에서? 카메라와는 결이 다른 이질적인 시선을 살피던 마오타이가 존재하지 않는 시선의 주인을 눈치채고 수긍하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번째 시선은 가을 섹터에서도 느껴졌다.
위스키는 눈을 떴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더라면 큰 화를 면치 못했음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눈을 뜨게 될 정도의 시선이면 같잖은 정부의 농간은 아닐 텐데. 그러고 보니 오늘이 며칠이더라. 날짜를 더듬던 위스키가 눈꺼풀을 조금 더 올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슬슬 그 시즌이긴 하겠구나. 나도 참, 고작 20년이 지났다고 까먹고 있었다니. 나머지 원로들도 지금쯤이면 눈치챘겠거니 생각하며 다시금 눈을 감았다.
4번째 시선은 겨울 섹터에서 방황했다.
리큐르는 고개를 돌렸다. 적어도 이 조그마한 원로는 시선이 어디에서 오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잊지 않고 오시었구려." "내 이번에는 잠시만 둘러보고 가리다." "어차피 늘 보는 것이니, 이리 격식 차리는 것은 겉치레에 불과하여 그렇소?" "그렇소. 다만 이번엔……."
피를 좀 보게 될지도 모르겠소.
"방랑자여, 그대도 익히 알겠으나 앞잡이가 있소." "알고 있소. 그 개에게 경고하기 위해 겉치레라도 보이는 게지." "이번엔 얼마나 죽을지, 무시무시하구만." "적어도 자네 눈여겨보는 아이들은 아닐 터이니 걱정 마시오." 2023-03-16 ~ 2023-03-25까지 일상을 돌리면 해적이 후일담으로 짤막한 독백을 헌정하겠다... 원로들이 캐릭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도시에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신문에 실리는 일이 생기든지, 칭호가 갱신되든지 할 것이다.
카지노의 화려한 조명이 내려가고, 호텔의 로비도 잠잠해지는, 한밤중과 새벽 그 중간, 어느 즈음. 밤하늘을 닮아 검고 푸른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엘이, 어느 누구에게도 언질 없이 밤마실에 나섰다. 느닷없고 예정에 없던 외출은 동행하는 이 하나 없었으나, 엘은 그 흔한 나이프 하나도 몸에 달지 않았다. 그 날 걸친 엷은 자색 원피스 위로 검은 베일 같은 천을 걸치고, 그저 잘랑잘랑 방울소리 울리며 바깥으로, 자욱한 꽃향기를 넘어 소낙비의 비릿함이 코끝에 스치는 방향으로 향했다.
시시때때로 바람 잘 날 없는 이곳이라고 하나, 밤이 되면 그래도 낮보다는 조용하고, 그만큼 주변 공기는 더 기민하게 떨린다. 엘은 '봄'에서 '여름'으로 건너오는 내내, 기묘한 분위기를 느꼈다. 보이지 않는 실이 공기에 흐르며 자신을 훑는 감각이었으나, 나온 걸음을 되돌이지는 않았다. 그런 공기를 거스르듯, 거슬러 올라가듯 걸음을 내딛어, 기어코 비릿한 빗물내 흐르며 후덥지근한 '여름'에 툭, 하니 내려섰다. 마치 처음부터 그 곳에 있었던 것처럼.
더운 날씨에도 소매가 긴 봄용 원피스에 베일까지 두른 엘의 모습은, 아무리 밤거리라 해도 주민의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엘은 그런 것쯤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천천히 '여름'의 밤거리를 활보한다. 긴 머리카락과 늘어진 베일과 레이스 달린 치마자락이 번갈아 살랑이며, 여즉 꺼지지 않은 간판 불빛에 잔상을 일으킨다. 무언가 목적이 있는지, 혹은 그저 길 잃은 방황인지, 모를 엘의 움직임은 누군가 불러세우지 않으면 '여름'에 귀찮고 성가신 일거리를 불러일으킬 것 같았다. 저 앞, 뭐가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어둑한 골목을 기웃대며, 금방이라도 들어갈 듯 한 모습을 보면 말이다.
여름의 밤에 나서게 된 이유는 거창하지 않았다. 그 아무리 서머 아일랜드에서 10년정도 살았다고 해도 쉽게 잠들 수 없는 밤정도는 있는 법이다. 이가라시에겐 오늘 밤이 그런 날이었다는 것 뿐이다. 그런 밤에 밖으로 나와 꺼지지 않은 간판 불빛들 사이에서 자신이 자주 다니는 말수가 적은 주인이 있는 술집으로 들어가서 하이볼 한잔을 앞에 두고 어스름하게 해가 뜰 것 같은 시간까지 죽이다가 들어가서 잘 생각이었다.
이가라시의 재가 덮혀 있는 것 같은 녹색 눈동자에 여름에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을 한 사람이 들지 않았다면 말이다. 씁쓰레하게 각련 특유의 맛과 흔적이 남아있는 입술께를 혀로 훔치며 이가라시는 각련을 쥐었던 손끝을 마주대고 털어낸 뒤 눈을 찌푸렸다. 여기에서는 볼 수 없는 옷차림이다. 이가라시는 제 입가를 덮고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여름에 사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취할 행동은 무엇인가.
"거기, 멈춰봐."
어쩔 수 없지. 방임되다시피 하고 있어도 비룡회에 소속되어 있는 이상 이가라시가 여름에 맞지 않는 옷차림을 한 사람을 내버려둘 수 없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거의 매일 신는 캔버스화가 바닥을 울렸고 이가라시는 금방 골목을 기웃대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그 안으로 들어가면 안돼(あかん)."
낮고 단조롭게까지 들리는 방언 섞인 이가라시의 목소리가 울렸다.
//답레가 무지막지하게 짧은데 내가 컨디션이나 삘받으면 늘어나기도 해서..흑흡 미안하다 엘주. 답레는 진짜진짜 천천히 주도록 해.
깊은 연기가 위로 올라가고 마오는 건물 옥상에서 히죽 웃으며 그 연기를 바라봤습니다. 자신의 손에 들린 아편 장죽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그는 웃으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끝내주네
"아......~ 이게 천국인가아...~" 모든 걸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좋아 그는 히죽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만 들리는 혼잣말에 대답하는 것이었죠. 그는 언제나 피아구분이 되지 않으니까요! 이 마약 중독자!! 그렇지만 아편을 참을 수 있는 양반은 아니었다. 나나나나나나느은!!! 그렇게에!! 생각해..... 언제나 더워 "그러네~ 더워...~"
허공에 대고 맞장구를 치고 그 허공을 응시하는 두 눈이 흐리멍텅했다. 그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다시 장죽의 부리를 입으로 갖다댔다. 없으면 안 돼 "맞아, 필수품이야아...~" 아래로 떨어져보자! 그러다 별안간, 그는 자신의 상체를 기울여 아래를 응시했다. 아, 아래. 아래 좋지이! 아래로 떨어지면은, 엄청 상쾌할 겁니다. 약에 취한 머리가 기이한 판단을 내리는 중이었다. 그러자! "그래버리자아...~"
"언니, 언니~. 더워서 여기 만든 녀석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싶어~ 라고 말한게 몇번째였지." "....12번하고 한번은 말하다가 네가 아 또 말해버렸다 하고 멈췄으니 12번 반정도."
리사의 깐죽거림에 티아는 그저 무덤덤하게 목적지를 향해 나설 뿐이었다. 아무리 죽었음에도 생전의 감각은 그대로이다. 망령들도 더위는 타는 법이다. 그저 끈적한 땀을 흘리지않을 뿐이지. 티아는 살아 있을 적 이곳에는 한 두번 아버지의 거래현장에 따라갔기에 이 영원한 여름은 꼭 어색하지만도 않았다.
"언니, 언니~. 대충 이 근처인가 본데. 뭐 태우는 냄새가 목을 거슬리게 하는데. 1차로 정보를 얻었던 아저씨가 말한 대로 담배랑은 다른 연기 냄새가 정말 우-웩하고 토할거같은데." "당연해. 재배지가 그쪽이라면 여긴 소비 겸 유통지니까. 꼭 이 근처가 아니더라도 현실을 부정하고 환상에 찌들어버린 환자들은 널려있겠지. 바라는 것조차 환상에서 빌고 싶은 걸까."
거리 곳곳에 지울래도 지울수없는 연기의 향은 리사의 후각에는 무척이나 거슬렸던 모양이다. 티아도 그 향을 무시할 수는 없었는지 비꼬듯 거리에 맴도는 향을 그리 불렀다. 두 사람다 약에 대해서는 돈을 버는 도구 이상의 가치를 느끼지 않았다. 금전에 대해서 크게 신경쓰지 않는 지금의 가치관으로서는 더더욱.
옥상에 비단으로 얼굴을 가린 남자가 있다면, 그쪽이 잘알거라고. 이번 정보 입수에서는 그런 과정이 필요했다. 그야 의뢰자가 목표한 대상이 이 바닥의 조그만한 거래상인 모양이니까. 그쪽의 신변관련 정보가 필요했다 발품을 팔기 좋은 가을의 영역이 아닌 곳까지 직접 행차해야한다면 꽤 정보가 부족했으니까.
"그러고보니, 의뢰자도 결국 따지고 보면 자업자득인 허~접.." "그 이야기는 지금 상관없어." "아, 그렇지. 우리 지금 해야할일은~"
옥상을 향해 계단으로 걸어간 쌍둥이 자매, 리사는 총기의 탄창을 끼워놓고는, 언제든 방아쇠를 당길 수있게 자세를 취하고, 티아는 긴소매 안쪽에 끼워둔 컴뱃나이프를 밖으로 꺼내 손위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외모에 걸맞지않게 둘은 역시 한 조직 수장의 딸들 다운 행동을 보인 셈이다.
"으응~?"누구야 방해한 건!? 한창 좋을 때였는데! 상체를 거의 다 기울여, 건물 아래로 추락할 뻔 하던 마오가 다시 팔에 힘을 줘서 옥상 바닥에 착지했다. 그리곤 히죽히죽 웃으며 비단을 살짝 걷었습니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 광경을 바라보는 시선이 기이하게 현실적이지 않았거든. 그가 장죽의 부리를 입에 물었고 연기를 흡입했어. 좋은 거! 좋으으은 거야! 이건!
"누구야~?"의상이 이쪽이 아니야 이 쪽은 아닌데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환청을 물리려는 것처럼 그는 가볍게 허공에 손짓했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시야를 바르게 하려는 사람처럼 손을 들어서 옆 머리를 살짝 툭, 툭 두드렸다. 그리고! 이내, 다시 히죽 웃었다. 미아다! "그러네~ 정말 길이라도 잃은 거야~? 으응~?"
환청에 대답하며 그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어요. 환청에 대답하는 거지만, 남들이 보면 혼잣말 하는 걸로 밖에 안 보인다고. 알고 있어. 아니야? 아니라고? 흐음, 모르는 척 또 야옹야옹. 그 때처럼? "무엇을~? 협조라고 하면 다들 귀찮게 하더라~" 저 사람들도 안 들리는 거야 흐느적흐느적, 느릿느릿 손을 들어서 장죽 속에 있는 연기를 흡입한 그가 히죽 웃었다. 그렇지, 붉은 것을 배제하던 자들도 그리 말하지 않았던가. 협조, 재현.. 아, 아, 아! 귀찮아!! 마오가 간드러진 목소리로 "협조하면 뭘 줄거야~?" 라고 물었다.
"멀~대 오빠. 우리가 누군지는 알 필요 없어. 좋게좋게 그냥 정보하나만 넘기자?" "한창 즐기실 시간에 실례하겠습니다만, 단순히 청취입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쓸데없는 정보는 늘어놓지 마시고." "아니 모르면 곤란하잖아. 언니~."
리사는 묻는 입장을 크게 고려하지 않고 반은 공갈에 가까운 이야기를 늘어놓고, 마치 그걸 정리하듯 정중하게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사족이 붙었다. 요컨데 약쟁이 헛소리는 할 필요도 없다는 의미였다.
"언니, 언니~. 꼭 옆에 공기 친구라도 둔거처럼 이야기하는데?" "...거두절미하고. 이 근처에서 아편은 조금정도만 유통하고, 펜타닐이 주력인 30대 중반의 여자를 찾습니다만." "딱 그것만 알면 그만이야. 당신이 안다는 정보로 여기까지 행차한 보람을 느끼게 해달라구."
자매는 길을 잃었냐는 말에 리사는 코웃음 치더니 마오가 무언가 혼잣말하는 반응에 그렇게 이야기했다. 어쩌면 공기 친구라는 표현은 꽤 예리한 추리였을지도 모르지만, 당사자는 약에 쩐 사람이 헛소리하고 있네라고 그저 말하는 표현이었다.
"귀하의 오늘 약값정도는 드리죠." "물론 선금을 주거나 하지는 않아~ 멀~대 오빠. 모르면 모른다고 확실하게 말하는게 좋아. 그 경우 정보가 끊겨버리지만. 우리는 횡설수설해서 시간낭비 하기싫거든."
자매에게 있어서 상대가 약에 취해있건 아니면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대화를 하고 있건 그 상황은 상관없는 일이었다. 의뢰의 완수를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않는 것이 철책이고, 시간은 금이다. 돈낭비보다도 시간낭비를 자매는 더 싫어했다. 대가를 원한다면 원하는 만큼 경비에서 뺄 정도는 이미 가져왔다.
고개를 갸우뚱 기울인 마오가 피식 웃었다. 그가 고개를 기이하게 꺾고서 히죽 웃었습니다.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한 사람처럼. 혹은 재미있는 말을 들은 사람처럼. 무언가 오해가 있나 봐 "그런 거 같아...~"
다시금 부리를 입에 물고 연기를 흡입한 그가 입을 열자, 비단 사이로 매캐한 연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너무 웃기잖아! 내가 다른 약? 약!? 아하~? 나는 다른 건 필요가 없어~ 그럼 알려줘야지 "동감이야~ 나는 붉은 꽃 외에는 관심이 없어~ 다른 사람~? 관심 없어~"
그는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키득키득 웃었다. 그리곤 고개를 비뚝 기울였습니다.
"여기엔 사람이 많아~" 아주 많지. 방해하면 죽이면 되잖아? 재미있다는 것처럼 웃던 그가 별안간 웃음을 멈추고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비단 너머로 칸다타 자매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러다, 무언가 귀찮다는 것처럼 허공에 손짓을 했을 뿐이었죠. 무슨 소리를 또 들었는가 모릅니다. 짜증이야? "집에서 만들어서 피우는 사람에게 너무 이상한 걸 묻잖아~ 어디보자~ 어디보자~"
웃음을 멈춘 채, 말하던 그는 장죽의 부리로 얼굴을 깊게 꾹 눌렀습니다. 어디 보자~ 생각이 날 만 한데~? 나랑 같이 붉은 꽃을 사랑하던 여자? 여자? 여자~? 아, 있었잖아요! 그래요! 얼마 전에 한 번 같이 밤을 보낸!
"아~ 하~ 생각났다~" 킥킥킥킥 생각났다 생각났다 히죽, 그가 웃었다. 재미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여전히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언니, 언니. 나 인내심의 한계가 올거같아. 그 벽보고 중이 수행하는걸 뭐라고하더라? 면전폭행?" "면벽수행이야. 리사." "아, 그거였지. 벽보고 이야기하는 느낌이라 면전에 폭행하고 싶었나봐?" "일을 크게 만들지마. 환상에 젖어버린 낙오자는 생각보다 위험하니까."
실실웃고 있는 마오를 보자니, 리사는 평소대로의 버르장머리없고 막가파인 성질이 주체를 하지못하는 듯 비꼬는 말을 일삼았다. 티아는 상대에 대해서 정보를 들었을 때 이정도는 당연하다고 여겼는지 여전히 평정을 유지하고 행동하려는 리사를 제지했다.
"수십년전에 와봤으니 약과 관련된 낙오자가 많다는 것은 알고있습니다. 변하지않네요. 이 지긋지긋한곳은."
사람이 많다는 말에 티아는 그렇게 대꾸했다. 리사만큼 막말은 아니였지만, 엄연히 말에 심기가 거슬리는 단어가 꽤 녹아들어있었다. 리사가 대놓고 부정적인 말을 내뱉는다면, 티아는 정중하면서도 상대나 이 지역을 까내리는 듯한 말을 한것이다.
"생각났어? 멀~대 오빠. 그냥 자주 보이는 곳만 말해주면 좋은데. 그걸로 충분하거든. 돈 필요하면 줄게. 이런 비용 지출하려고 돈은 들고 다니니까." "최근에 어디서 만났다 정도라도 문제없습니다. 그걸로 정보거래입니다." "오빠한테 피해갈 일은 없을거야~. 그 여자 머리채만 잡고 가면 그만이라서. 우리 좋게 좋게끝내자? 설마 비협조적으로 나는 허-접은 아닐거아니야? 서로 좋은게 좋은거잖아?"
거기 멈춰보라는, 조용한 밤거리를 울리는 한 마디가 아니었다면, 엘의 실루엣은 골목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확실한 건 그 짧은 부름이 엘의 시선을 골목 아닌 소리의 근원으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두텁고 짙은 어둠에서 탁하고 요란한 밤거리로, 천천히 고개를 돌린 엘은 '여름'의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을 발견했다. 그리고 마주했다, 보다는 다가오는 걸 눈도 깜빡이지 않고 보았다.
"들어가면 안 되나요? 여기."
엘은 방금 들은 말을 따라하듯 말했다. 그 물음을 할 적, 다시 고개 슥 돌려, 먹물로 선을 그어놓은 것처럼 거리와 선명히 구분된 골목 안 쪽을 응시한다.
"별 것 없어 보이는 걸."
딱 봐도 들어가면 안 될 곳임이 분명한데, 엘의 관심은 그곳에서 떠나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예상을 배신하지 않는 것처럼, 엘이 희멀건한 손을 들어 골목 쪽으로 뻗으며, 걸음 또한 골목으로 슬그머니 내딛었다. 막을 새도 없이, 혹은 잡을 틈도 주지 않고, 손 끝부터 골목의 경계로 들어가려는 순간,
찰랑.
"우후후!"
말간 방울 소리와 함께 엘의 신형이 엘을 불러세운 그, 혹은 그녀의 뒤에서 나타났다.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돌아보면, 대리석의 단면처럼 흰 얼굴에 미소를 띄운 엘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한 쌍의 푸른 눈으로 녹색의 외눈을 바라보려 한다. 그리했든 아니든, 용건을 위한 질문이 뒤를 잇는다.
"친절하신 '여름'의 거주민 씨, 그 친절에 빌어, 제 질문 하나 답해주지 않으실래요? 가벼이 한 잔 걸치려 여까지 밤마실을 나왔건만, 홀로 다녀본 적이 드물어, 어디에 무어가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근처에, 조용히 홀로 즐기기에 좋은, 작은 주점이 있다면 알려주지 않으실래요?"
엘은 다소곳하고 정중히 질문했다. 그대로 대답을 기다릴 듯 했으나, 깜빡 잊은 듯이 말을 조금 더했다.
다가서자마자 들리는 자신의 대꾸와 엇비슷해보이는 여성의 대답에 대한 이가라시는 흐릿하게 남아있는 방언을 깨끗하게 지워낸 표준어로 잘라내듯 단호히 똑같은 대답을 되풀이한다. 재덮힌 시들어가는 풀떼기와 비슷한 색을 띈 이가라시의 하나뿐인 눈동자는 골목길 안쪽을 향한 관심을 쉽게 거두지 못하는 여성의 모습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어디에서 온지도 모를 사람이 그 안쪽으로 들어가게 둘 수는 없거든."
어느 섹터에서 온 건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아니 조금 더 면밀히 모습을 살펴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나, 이가라시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상황을 최소한으로 하는 이상 당연한 노릇이다. 그리고 그 정도까지만 하면 여기까지 흘러들어오게 된 사람들의 대부분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손쉽게 발길을 돌리기 때문에 이가라시가 선택한 것이기도 했다.
문제는 붙잡은 상대가 이가라시가 이제껏 최소한의 대화로 되돌려보냈던 여느 사람들과 똑같지 않다는 점이었지만. 대화를 나누던 상대의 모습이 사라졌다고 느꼈을 때, 이가라시는 자신의 하나뿐인 눈을 들여다보는 한쌍의 푸른색을 곁눈질하듯 응시한다.
"어디에서 온지도 모르는 너를 여름섬에 있는 술집으로 안내해달라고?"
푸른 한쌍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이가라시는 상대가 사라졌다가 어느순간 자신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는 사실에 동요하는 기색없이 그저 차분하고 조용한 텐션을 유지하곤, 물빠진 스트레이트 청바지 주머니에서 각련을 담은 케이스를 꺼내들었다. 케이스 안에서 각련을 꺼내 입에 물어내는 짧은 순간에 이가라시는 꽤 여러가지 생각에 잠겼다. 첫번째는 상대의 정체를 모른다는 점이었고 두번째는 이가라시가 평소 다니는 술집이 매우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며 세번째는 안내를 하려면 부득이하게 상대와 부득이하게 오래 대화해야한다는 점이었다.
단호한 금언에도 엘은 훌쩍 골목에 스며들 것 같았지만, 웃음소리와 방울소리를 흘리며 자신의 위치를 바꿨다. 마치 안개가, 잠시 형상을 흩뜨렸다가 다시 형상을 이룬 것처럼. 수상쩍은 엘의 행동을 다 보고도, 아무런 말도, 반응도 없는 상대를 보며, 흘린 작은 중얼거림 있었다.
"아쉬워라."
슬깃 웃는 얼굴이 금방이라도 툭 떨어져 바닥을 굴러도 이상할 것 없어뵌다.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여느 사람들과 다르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엘은 그저 흘러들어온 사람은 아니었다. 다르다면 다르고, 틀리다면 틀렸다.
홀연히 그 혹은 그녀의 뒤로 나타난 엘은, 정중하게 또박또박 자신의 용건과 요청을 전했다. 자고로 무지는 부끄러울지언정, 스스로 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드러내는 것은 당당할 일이라 했다. 고로 엘은 상대가 자신의 무지에 도움을 주길 바랐고, 결과는 아주 긍정적이었다.
"고마워요."
'봄'에선 흔치 않은 언어로, 엘의 제안을 수락하는 말에, 웃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인다. 올려 묶은 머리카락들이 우수수, 기운 방향으로 흘렀다가 되돌아간다.
"개의치 않으니, 부탁할게요."
가는 길이 얼마나 멀든, 재미가 없든,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으니, 라는 함축적인 인사를 건네고, 엘도 이름 모를 상대의 뒤를 쫓았다. 컨버스화 특유의 밑창 소리와 찰랑찰랑 맑은 방울소리 섞여, 고즈넉한 '여름'의 밤거리에 퍼져간다. 조금 전 꺼낸 담배에 치익, 불 붙는 소리 나자 흥미가 돋는 듯, 푸른 시선이 앞서가는 담배불을 따라갔다. 시선은 소리없이 굴러 눈 하나를 가린 안대 위를 지나쳐, 볼 것 없는 허공에 자리했다. 단 일 보. 그 거리를 두고 뒤를 따르며, 엘이 말했다.
"조금 전, 스스로를 재미없는 사람이라 했는데, 갓 만난 저로서는 잘 모르겠답니다. 그러니 일문일답, 어떠신가요? 서로 번갈아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지요. 질문도 대답도, 적당히, 네, 적당히 얼버무려도 좋으니까요."
끝말잇기, 같은 놀이는 아니지만, 걸어가며 할 만한, 그냥 대화도 아닌 기묘한 것을 제안한 엘. 이번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질문으로 시작했다.
안드로이드라고 생각해보면 아무리 이가라시라 하더라도 껄끄러운 기분이 들 만큼 정교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테지만, 방금 보였던 것같은 잔재주는 어떻게 보더라도 인간이었다. 이가라시 본인이 그렇듯이. 전혀 아쉬운 기색따위 없는 얼굴로 아쉽다는 단어를 중얼거려대는 목소리에 변화가 없던 이가라시의 낯에 가볍게 변화가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온전히 드러나 있는 외눈을 가벼이 찡그린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가라시는 정중하게 목적을 밝히고 더 나아가 부탁까지 하는 상대를 매정하게 내칠정도로 냉담한 사람은 못되는지라, 잠시동안 머리에 떠오른 여러가지 것들을 떠올렸지만 제법시원하게 상대의 말을 들어주기에 이르렀다. 상대의 목적이 정말 그것뿐인지, 또한 상대가 어디에서 왔는지 같은 것들을 떠올리면서 상대를 재보는 것은 이가라시가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휙 하니 몸을 돌려서 걸어가는 이가라시가 걸친, 그 하나뿐인 눈동자 색과 꽤 닮은 색의 하오리가 눅눅한 여름의 바람에 흔들렸다. 즐겨 피우는 각련 고유의 단 향이 여름 공기를 스친다. 걸음을 재촉하던 이가라시는 상대의 제안에 대답할 말을 고르려는 것처럼 물고 있는 각련을 떼어내려다가 상대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한발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상대를 훑어보거나 관찰하지 않고 곧바로 시선을 들어 바라본다.
"..동의하지도 않은 제안에 대해 내가 답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이가라시는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누구냐는 질문은 그 문장 그대로의 의미일까, 아니면 함축적인 무언가가 담긴 의미일까. 잠시동안 이가라시는 연기를 허공으로 뱉으며 생각한다.
"다들 똑같지 않나~?" 저사람들은 몇이나 죽였을까? 마오가 히죽 웃으면서 물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눈치였죠. 왜냐면 나도 그렇게 들어온 거니까! 그 때 보스의 말이 너무 와닿았었지~요!! 양귀비 꽃밭~ 마음에 들었어요. 그는 진심으로 양귀비를 어여쁘게 여기고 있었거든요. 많이 죽였을까 적게 죽였을까? 내기할래? "으응~ 나는 적다에 걸래...~"
여전히 웃으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마오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습니다. 한참동안 이리저리, 고개를 기괴하게 기울이던 그가 다시금 고개를 비뚝, 상체를 똑바로 세웠다. 돈? 돈이 필요하냐고~? 돈은 필요없는데 "그런 거 필요 없어...~ 그냥 내가 피우는 이것을 방해하지만 마~" 아까 협조라고 해서 아직까지 화난 거네 히죽 웃은 마오가 손을 휘휘 허공에 내저었다. 그러니까 생각해 봐, 마오야. 앩 소리를 내 울면서 어디에 있었어? 고롱고롱, 그르륵. 막으면 어떻게 할건데? "또~?"죽이려고? 여기에선 널 막을 사람이 없는데~ 히죽히죽 웃던 마오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아, 생각났어요. 츄르를 건넨 사람. 주던 사람. 냄새를 잘 맡거든, 마오는. 나는 마오의 머리를 쓰다듬었어. 먀옭.
"저~기 어디쯤~?"
멀리 떨어진 골목길을 장죽 끝으로 가리키며 말하던 마오가 다시금 장죽의 부리를 입에 물어서 연기를 들이마셨다. 매캐한 연기가 다시금 머리를 가득 채웠습니다.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요. 이런 상태가 너무 좋거든.
"그렇습니까. 안타깝게도 저희의 목적은 그딴 약으로는 못이루니까요." "그런데에~ 아까부터 허공에 쭈-욱 이야기하던데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는걸까? 뭐가 적다는걸까?"
티아의 그런 말이 끝나자 무섭게 리사는 여전히 비웃는 얼굴이었지만, 목소리는 내리깐 채로 쏘아대기 시작했다. 어지간히도 상대가 대화흐름에 맞지않는 문답을 지속하는 것이 거슬리는 것이었다. 그것이 약때문인지 정말로 무언가 보이지 않는 것이 있는 것인지. 망령인 본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게 있다면 그것조차도 거슬리는 것이었다.
"피우는 거 끝나면 알려줄거야? 멀~대 오빠."
리사가 그런 질문이 마치기도 전에 마오가 장죽 끝으로 골목길을 가리키자, 곧바로 리사는 옥상 계단을 튕겨나가듯 달려나갔다.
"리사. 확실한 답인지 모르잖아."
옥상아래를 향해 티아가 리사를 향해 이야기하자 큰소리로 리사는 고함치듯 이야기했다.
"나 저런 오빠는 지긋지긋하니까 허탕쳐도 먼저 가볼래!" "하..."
티아 답지않은 탄식의 소리가 튀어나온다. 이미 그쪽 골목길로 큰 발소리와 함께 리사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티아는 시선을 다시 마오에게 돌리고 물어본다.
'봄'의 영역을 아우르는 카지노의 오너는, 결코 일선은 넘지 않는다는 풍문이 있었다. 갬블을 기만하는 행위를 엄히 다스리는, 그 카지노의 오너라면 그럴 법도 하지만, 풍문이란 그것 하나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으니, 그럴 법한 말도 생긴다. 그런 얘기다.
서로 질문 하나, 대답 하나를 제안하니, 돌아보는 상대와 시선이 부딪혔다. 엘은 피하지도, 부러 더하지도 않고, '대답할 필요'를 입에 담는 상대에게 다만 말했다.
"글쎄요. 어찌할 지는, 생각하기 마련이지요?"
요컨데, 논리적인 해석으로는 동의하지 않은 제안에 대답할 필요는 없지만 제안을 받은 상대가 나름의 생각을 부여하고 그에 따른 대답을 내놓는 것은 별개다. 라는 궤변 같은 말이었지만, 동시에 그 말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이었다. 적어도 엘은, 대화의 끈을 잇기 위해 한 말이었다. 그래야 이어지는 대답에 자연스레 흐름이 생기니.
"아, 이가라시 씨군요. 물론 좋은 대답이지요. 이름은 자신의 근본이자, 전부이지 않겠나요."
습한 밤바람에 흔들리는 녹색 하오리의 뒤에서, 검지만 푸른, 긴 머리칼이 살랑인다. 누구냐는 물음에, 이름 하나 들었을 뿐이지만, 엘은 그걸로 충분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은 근본이자 전부, 그러니 그것이면 충분하다며. 이제 대답할 차례가 된 엘은, 달짝지근한 연초의 향과 함께 흘러온 질문에, 열리려는 입술을 닫았다. 나름 고심하듯, 시선을 바닥으로 향하고 걷는 모습이 진지하다. 조금 후에 답을 정했는지, 엘은 작게 끄덕이고 대답을 꺼냈다.
"저는, 누구보다도 멀고, 누구보다도 가까우며, 모두가 알고 있으나, 아무도 모르는, 모두이자, 모두가 아닌, '영원'에서 왔답니다."
평온한 목소리는 듣는 이를 놀리나 싶으면서도, 한 치의 변화도 없는 표정은 농담 같지 않다. 시시한 농담이라 치부하는게, 되려 나을 것 같다. 답을 했으니 질문을 할 차례인지라, 엘은 한 걸음 내딛으며 물었다.
눈을 찌푸린 상태로 이가라시는 여자를 잠시간 바라봤다. 곧 여자의 대답이 들려왔을 때, 이가라시의 표정은 굉장히 모호해졌다. 어이없는 것과 어처구니 없는 것, 동시에 황당하기까지 하다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스쳐지나가는 표정이다. 워낙 감정을 발산시키는 한계점이 높기 때문에 보일 수 있는 표정이기도 하다. 당연하게도 이가라시의 그런 모호한 표정이 떠올랐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양 여자와 처음 마주쳤을 때와 같은 표정을 짓고 이름을 뱉었다.
"이런 곳에서 이름을 제대로 갖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가 먼저 아닐까?"
그 말이 맞다. 이가라시는 여자의 말에 동의를 표하고 있는 생각과 다르게 대꾸한다. 근본이자, 전부. 모든 지역을 통틀어서 살고 있는 사람의 90% 가 어떤 연유로 흘러들어왔는지 정도는 말하지 않아도 대략 짐작할 수 있는 곳이 이 시즌스 킹덤이라는 곳인데, 과연 그 모든 사람들이 진짜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자문에 이가라시는 아니다라고 확언할 수 있다. 자신이 그렇듯이, 지금도 이렇게 여름의 밤을 걷고 있는 사람들또한 그럴 것이다.
"수지타산이 안맞은 대답이지, 그건. 백문답을 하자는 게 아니라인랑게임(人狼ドッチ)이라도 하자는 건가."
자신의 턴에 던진 질문에 대한 여성의 답을 듣던 이가라시의 말이었다. 대답이라기보단, 혼잣말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이가라시는 여성이 하는 행동이 꼭 자신이 어린시절에 하던 마피아 게임-혹은 라이어 게임에서 보던 것과 꼭 같은 느낌을 받았다.이가라시가 고개를 슬쩍 기울이면 짧은 울프컷과 달리 길게 길러 하나로 가늘게 땋아낸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필요하다면. 그럼 질문."
물고 있던 각련을 바닥에 뱉어내고 이가라시는 캔버스화로 눌러서 밟아끄며 여성을 향해 예고도 없이 돌아섰다.
가벼운 대꾸, 듣기로는 소소한 시비로도 들릴 듯한 상대, 이가라시의 말에, 엘은 잔웃음을 흘렸다.
"후후."
짤막하게, 깔끔히 지나간 웃음은, 상황을 즐기는 듯 하다. 혹은 이가라시의 속 생각 쯤은 다 안다는 것처럼.
"이런 곳이기 때문에, 다른 무엇과도 구분되며, 누구와도 구분되는 이름을, 갖고 있기 마련이지요. 네, 이곳이 이런 곳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요? 라는 반문을 붙일 듯이 말해놓고, 정작 말하지 않은 엘은 다시 웃었다. 작은 웃음소리에 방울소리 조그맣게 울렸다.
이가라시의 심플한 질문, 어디에서 왔느냐, 에 대해 엘이 답을 했다. 그러자 돌아온 건 혼잣말에 가까운 중얼거림. 백물어가 아니라, 인랑 가려내기라도 하자는 거냐는, 에두른 말에 엘의 반응은 없었다. 그저, 자신이 낸 질문에 대한 답에만 반응할 것 같았으나, 보이지 않는 한 걸음 뒤에서, 엘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러다 걸음을 멈추고 우뚝 서는데, 그 바로 다음 순간, 이가라시가 담배를 던져 끄고 엘을 향해 돌아섰다. 분명 어떤 예고도 없었을 터인데. 따라오던 일 보, 만큼의 거리를 두고 먼저 서있던 엘이, 다소곳하며 곧은 자세로 이가라시를 마주했다. 대답을 들었고, 질문을 받았으니, 다시 대답할 차례였지만. 잠깐 사담을 먼저.
"필요하다면, 이란 건, 안 쓰실 때도 있다는 의미일까요. 저는 가끔 그런 기분이 들어요. 이 '여름'에 내리는 비를 보노라면, 문득 그런 기분이 들어, 비가 그칠 때까지, 하염없이 서 있곤 하지요."
어딘가 아련하게, 즐겁게, 묻지도 않은 얘기를 늘어놓는다. 그리고 그런 얘기는 아무래도 좋은 듯이, 태연하게 질문의 대답으로 잇는다.
"저는, 하루의 고단함을 술 한 잔에 달래보고자, 훌쩍 예까지 마실 나온 이요. 보잘 것 없는 도박장의 주인이며, '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누군가랍니다."
너는 누구인가, 질문에 답했으니, 다시 순번은 엘에게 돌아왔다. 일점의 흔들림도 없이, 곧게 선 엘은 질문한다.
>>603 공중누각은 여름 열기의 아지랑이 같은 곳이지만요, 어느 정도 규모가 되고 알법한 서머 아일랜드의 조직이라면 아는 녀석들이기도 해요. ..근데 바질은 가든에 있네? 어? 저기.. 바질 규모가 어느 정도야? 덩치 좀 있다면 엮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해. 위키에 나오는 조직 설명으론 규모가 작지 않아보이는데.
마젠타가 산군 기준으로 약자로 판명될 수준이라면 직접 접근했을 수도 있겠다. 음... 근데 이럴거면 마젠타가 바질을 물려받기 전에 만나서 자문해줬다는, 바질 과거사에 좀 깊이 연관될 것 같은 게 좀 그렇네요. 아무리 그래도 조직 대빵이 약자 판정은 아니니까. 가든에 할 일이 있어서 들렀다가 사건에 휘말려서 평범한 사람처럼 '으악!'하고 기겁한 산군을 마젠타가 도와줬다는 것도 가능할 거 같아요. 이 경우 자문 쪽은 어려울까요?
참고로 공중누각 소문은 [밤이 깊은 축시. 어느 거리에서 발톱 자국이 난 벽이 있는 골목 안쪽으로 홀로 깊이 들어가면 짐승의 가면이 있다. 그 가면을 쓰고 <짐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읊으면 요괴가 나타나 그 자를 공중누각으로 끌고간다. 만일 공중누각에서 대가를 바친다면 소원을 들어주고 그렇지 않다면 아지랑이가 될 것이다]
여름의 아지랑이 속에서, 정체를 숨긴 채, 가물거리듯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들에 대한 떠도는 소문은 확실한 것이 하나 없었지만. 마젠타는 어딘가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여기는 킹덤이 아니던가. 헛소문 같다가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것이 진실로 밝혀지고는 했었으니. 그렇기에 자신은 본 적 없는 이국을 닮은 골목을 돌아다니며 그 소문의 흔적을 찾아다녔을까. 그렇지만 낮이 아닌 밤에도 체온보다 더 뜨거운 이곳의 공기는 너무나 끔찍한 것이라. 숨이 막혀 도저히 더 걷기 힘드니 조금만 더 찾아보고 돌아가자 생각하게 될 때. 마젠타는 짐승이 자신의 영역이라고 표시한 것 마냥 있는 발톱자국 난 벽을 찾는다. 하. 정말 그 소문이 사실인지. 지금의 고생이 헛수고가 아니라는 것에 웃으며 마젠타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고, 그 놓인 가면을 주워 들었을까.
"짐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 가면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쓰며 말하니. 끌려갈 때 너무 거칠게 끌고 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뒷산>에 닿는 소문은 다양하다. 손님 없는 인형가게. 폐건물의 엘리베이터. 기묘한 전화. <뒷산>에 자리한 여우가 어떤 녀석인가에 따라 달라지는 소문, 괴담은 여우들의 개성이 담겨있다. 개 중 몇 가지는 주변을 지나가는 창귀 중 가장 가까운 사람이 담당하는 일도 있는데, 발톱자국 남은 골목길이 그런 쪽이었다. 첫 번째 여우가 만든 가장 정석적이고 공중누각에 걸맞는 괴담. 그것에 홀려 들어온 것은 성별 미상의 꼬맹이였다. 모든 뒷산을 아우르시는 붉은 눈의 산군께선 토끼 가면을 쓴 자를 살펴보다 톡톡, 그 어깨를 건들였다.
큼지막한 키. 새까만 호랑이 가면을 쓴 산군이었으나, 아마 토끼 가면은 보지 못할 것이다. 여우가 흘린 소문에 홀려 뒷산에 홀랑 뛰어든 이들을 위해 준비한 가면은, 그 눈구멍이 막혀있다. 산군이 익숙하게 귀까지 막고 그를 끌고가니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채, 호랑이에게 물려가듯 뒷산에 끌려가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치는 것은 그대의 보폭에 맞춰준다는 것. 생각보다 강압적이지 않다. 은근히 배려해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상한 곳에서 평범한 산군께서는 마구잡이로 끌고가는 것이 좀 그런 것이다.
공중누각의 요괴들 사이에서 뒷산이라 불리는 곳은 사실 실내이다. 산이 그려진 두터운 장막으로 사방을 막은 동양풍, 그 중에서도 반도의 양식에 맞춘 적당한 크기의 방. 그 가운데 검은 여우 가면을 쓴 자가 있다. 산군을 보고 눈짓을 한 여우 가면에게 대충 손짓을 하고, 가면을 벗겼다.
"무엇을 찾으시오?"
여우 가면이 물러서고, 자리에 앉은 산군이 묻는다. 여기선 쉽지만 물러서면 좀 귀찮아지는 것을 보아하니 어느 조직에 속한 것이 분명한, 홀려버린 '미아'에게 섬에 자리한 모든 뒷산의 주인이 묻는다.
글쎄다. 답하지 않았으나 자신이 던진 말에 대해 여성의 대답이 돌아왔을 때 머리에 스친 생각이었다. 10년동안 이런 곳에서 구르고 구르다보면 여성이 말하는 근본이라던가, 근원이라던가는 참 발치에 채이기 쉽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래서 이가라시는 각련 연기와 같이 가벼운 실소를 터트렸다. 냉소적인 성격이 아닌 사람도 어느순간 냉소적으로 바뀌는 도시지 않나. 이곳은. 반문을 들었지만 이가라시는 굳이 대답하지 않는다.
"여름에 살다보면 내리는 비를 신경쓰지 않게 되기도 하니까."
자신의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었지만 여성이 다른 사담을 늘어놓는 것에 대해 이가라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문득 그런 기분이 들어서 하염없이 맞고 있다니, 가볍게도 느껴지는 문장이다. 무게도 없고 중요치도 않다고 판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성을 응시하고 있던 재섞인 녹색의 눈동자가 각련의 흔적이 남아있는 손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뒤이은 여성의 말에 문득 공허하게 느껴지는 낯빛을 띄던 이가린시의 시선이 제법 빠르게 여성에게 향한다.
"여름에 주인이 있는 도박장은 보질 못했는데-..."
도박장의 주인. 처음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내놨던 영원이라는 단어. 이가라시는 무미하게 여성을 응시하던 시선을 옮겨서 하늘을 바라보다가 비스듬히 몸을 돌렸다.
"여기서 5분 정도 곧장 직진하면 낡은 목조 건물이 있어. 입간판이 있으니 찾기는 쉬울거야. 낡았지만 주인장은 말이 없는 사랑이다. 혀가 없거든."
본 목적은 술집까지 안내해주는 것이었다. 이가라시는 이것으로 자신의 역할은 끝났다는 듯이 스트레이트 청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넣었다.
가면에는 바늘구멍 하나 뚫려있지 않았기에, 어둠만이 시야를 덮고 있다. 언제 저를 데리고 갈 것인지. 조금은 긴장한 상태로 서 있으면, 톡톡 어깨를 두드리는 것에 마젠타는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려 했을까. 하지만 돌아보기도 전에 귀까지 막히고 끌려가니, 바라던 대로 거칠지는 않아 다행이었지만. 이대로 행방불명 되는 게 아닌지 조금은 걱정이 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걱정은 얼마나 걸었는지도 모르게 되며 점점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을 때. 끌고가던 누군가 자신을 놓아주고 가면을 벗기면, 마젠타는 명순응 되지 않은 두 눈을 깜빡이다 주변을 살핀다. 산이 그려진 동양풍의 방. 눈앞의 호랑이 가면 쓴 이. 짐승의 굴로 끌려온 것인지.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빛에 적응하는 제 눈을 비비다가는, 물음에 답한다.
산군은 책상에 턱을 괴고 그대를 본다. 연령, 나이. 모든 것이 애매하다. 허나 확실한 건 보통은 아니라는 것. 이유는 간단했다. 저 자는 섬의 주민이 아니면서 여기까지 왔으니. 가을이든, 겨울이든, 봄이든. 일년 내내 뜨겁고 눅눅한 열기로 사람의 정신머리를 지져대는 곳에 와서, 진위판별도 되지 않는 도시괴담을 따라오는 녀석이 보통일 리가 없었다.
"정확히, 무엇?"
죽이는 법을 하나, 둘, 셋. 천천히 떠올리며 뒷산의 주인이 물었다. 여우 가면을 쓴 사내는 옆에서 가만히 서있고 방 내부는 여름이 아닌 것처럼 서늘하다. 기계 움직이는 소리도 들리지 않음에도. 아일랜드가 어드벤쳐와 친한 것을 생각하면, 뭐라도 있는 것일지. 혹은 유령이 들어차 그런 것인지.
이곳이 요괴의 땅이라 그런지.
뭐 아무렴 어떤가. 아무렴, 아무렴.
"이곳이 도시괴담 취급을 받는 곳이긴 하나 결국에는 평범한 조직이오. 특기로 삼는 것이 따로 있지. 직접 쳐들어 가 사람 모가지 따는 걸 못 하는 건 아니나 그런건 저기 용의 칼들이 훨씬 낫지. 뭐 그치들이 의뢰를 받아줄 거 같지는 않소만."
원로 휘하의 비룡회는 가장 많은 이들이 죽는 곳이오 가장 방임주의적인 곳이다. 대외적으로 암살과 용병업을 하나 과연 잘 들어줄지. 같은 섬의 조직끼리 뭐 통하는 것이라도 있나, 조직원들이 자신이 누구다 말하는 경우가 없어 찾는 것 부터가 일이다.
"우리는 자문가지. 목적을 말하시오. 어떻게 하면 될지 알려주지. 뭐.. 사람 죽이는 법 말고는 여기, 여우의 일이오만."
자신이 머리가 좋은 것은 아니라 다른 계획은 잘 못 세운다며 산군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에 맞춰 여우 가면을 쓴 자가 한 발 내딛었다. 귀신같이 다니는 자들을 바랐으니 감시나 침입이 아닐까. 정말 인원이 필요한 일이라면 창귀 몇 명을 차출해야겠다.
찰나의 틈을 지나 밤공기에 흐르는 실소 있었다. 눈에 뵈기에 느닷없는 헛웃음은, 엘의 것이 아니었다. 실없이 흘린 소리에 어떠한 생각 있었겠으나, 이가라시는 말로써 입에 올리지 않았다. 엘도 의미를 되묻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는 것처럼.
그 소리와 같이, 흘려들어도 되었을 사담에 뜻밖의 한 마디가 더해지니, 엘의 눈썹 의외란 듯 꿈틀한다. 뜻밖이니 무언가 말을 얹을까 하다가, 관두고,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한다. 네, 머물러 살다보면, 그럴 수 있지요. 말은 하지 않았으나, 작은 끄덕임에 의도는 충분했다.
곧이은 엘의 대답에 시선 굴러오자, 슬며시 웃는 눈동자가 진한 푸른빛을 머금는다.
"뵌 적이 없을 수도, 있지요. '여름'인들, 아닌들."
질문은 아닌 듯 했으나, 짤막하게 대답을 한 엘은, 이가라시가 몸을 돌리자 그 너머를 보았다. 여기서부터 곧장 5분, 낡은 건물에 혀가 없는 주인이 하는 가게가 있단다. 어둑한 길목을 보던 시선이, 조용히 움직여 이가라시를 바라본다. 어둠 속에서조차 빛이 없는 푸른 눈은, 잘라낸 손톱 같은 호선을 그렸다.
굳이 비켜서서 바지 주머니에 손까지 넣은 이가라시에게, 용건은 더 없는 듯, 엘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천천히, 여즉 그랬듯 소리없는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가 이가라시를 지나치려 한다. 바로 앞을 지나칠 적, 말끔히 올린 머리에서 푸르스름한 꽃장식들이 차라랑, 맑게 울린다. 다 지나쳐 그저 가게 내버려둔다면, 이젠 뒷모습이 된 엘이 말한다.
"오늘의 친절을, 그저 흘려버리기에는 아쉬우니. 언젠가 찾아주시지요. 방문을, 기다리고 있겠어요. 이가라시 씨."
그러는 어느샌가, 갓 따온 듯 싱싱한 연분홍 수련 한 송이가 이가라시의 어깨에 걸쳤다. 촉촉히 물 맺힌 수련은, 잡으려는 순간, 엷은 연잎의 향만 남기고 사라진다.
애들은 가라 라는 촌스럽지만 유구한 전통의 국제 룰이 어디까지 통할까 싶지만, 치외법권이라고 해도 사람 사는 곳이지 않나 엄밀하게 말해서 그것은 아이도, 하물며 사람 조차도 아니었다만, 순백의 드레스를 한 장 걸치고 돌아다니는 존재는 적어도 가을에서는 흔치 않았다는 것이 맹점이었던 모양이다 하물며 이곳은 죄다 시꺼먼 양복쟁이들이 돌아다니는, 고리타분한 와인 냄새나는 거리 달리 말하자면 한 도시를 터트리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 된 병기 관제 시스템이 무기에 이끌리는게 그렇게나 이상한 일인가 싶으면서도, 그런 것을 알리가 없는 바운서는 행여 일을 그르치게 될까 발걸음을 물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베로니카는 치켜올린 두 눈을 깜빡거리만을 반복하며 대답을 바꾸지 않았다
"우문에 대한 적절한 현답을 제공 : 저는 천사입니다." "또한 고막에 대한 상해를 염려, 이번 시간 낭비가 5회차라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한 쪽은 융통성이 없고 한 쪽은 물러날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이래서야 무한루프. 아무래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실랑이를 벌이다 못해 미묘하게 신경을 긁는 소리에 머리가 홀랑 벗겨진 넙대대한 덩치 큰 바운서가 실랑이를 벌인 끝에 홀스터에 거침없이 손을 가져갔다 그곳에는 검고 묵직한 45구경짜리 권총이 꽂혀있었다 그러자 외려 베로니카의 눈에는 일순 광채가 일렁이는데
"눈 앞의 지방덩어리에게 임시 명칭을 지정합니다. 이하, '대머리'. '대머리'의 상태 변화, 급격한 심박과 혈압 상승을 감지. 적대를 식별했습니다. 본 의체의 대미지를 최소화 하기 위해 자가 방어 시스템을 준비 중... '대머리'에게 경고, 목숨이 아깝다면 무기를 버리고 물러날 것을 권고합니다."
아직은 광륜도 날개도 나와있지 않았지만 바운서가 여기서 총부리를 겨누거나 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면, 이 성격 나쁜 로봇이 그 '자가 방어'라는 걸로 바운서와 이 무기 시장 입구를 통째로 밀어버리는 결과가 나오게 될 것이라는 건 베로니카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을 터였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여기서는 제 3자의 개입이 유효할 것 같았다...
소년인 것 같으나, 그 이목구비의 선이 전체적으로 가는 것이 소녀 같기도 할까. 특정할 만한 것이 없으니 성별도 나이도 구별하기 힘든 것이다. 마젠타는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이 마치 심사대 위에 올라선 느낌이라 불만스럽게 입술을 휘어낸다. 이내 소문에서 그들이 바랄 대가가 무엇이 될지 조금은 걱정이 드는 것일까. 돈이라면, 제 넘쳐나지만. 다른 것을 바란다면. 조금 곤란한데. 생각하며 주변을 살피면 방의 온도가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어떻게 이는 냄새도, 온도도, 촉감도 없을 유령과 마주하고 있어서인지. 그런 생각도 잠깐, 당신 하는 말을 가만 들으며 있다가 마젠타는 혀를 차며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당신들 같은 귀신들 찾는 것도 고생인 것인데. 제 정체를 숨기는 이들은 무슨 수로 찾을지. 떠들고 다니는 놈들은 비룡회의 이름을 사칭하는 어중이떠중이들 뿐일 테고. 누가 비룡회라더라 소문조차 흘리지 않을 것이니. 한숨 내쉬며, 마젠타는 자문가라고 하는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여우에게 시선을 두고.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말을 꺼낸다.
"감시에, 모가지 따는 것 둘 다. 최근에 화원 관리자 중 한 놈이 약 만드는 애들 몇 데리고 튀었는데, 보니깐 다른 조직으로 간 모양이라. 애들 꼬드긴 관리자 놈 혼내주고, 약 만드는 애들도 다시 데려오고 싶은데. 그 조직이랑 전쟁을 할 수도 없고. 그러니 어디 숨었는지 뭐 찾을 방법이 없어서."
시즌스 킹덤은 국제적인 쓰레기통이다. 사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그 이후의 처분을 기다리는 동안 도미닉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렇다! '생각했었다.' 시즌스 킹덤도 결국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10개월을 이 놀이공원에서 지내게 된 일리야는 생각을 고쳤지만... 지금처럼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하아..."
(다른 섹터라고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어텀 카니발의 한 곳에는 별난 무기 시장이 있다. 놀이공원을 베이스로 한 도시 답게 시장의 모습도 알록달록한 놀이공원의 소품샵을 떠올리게 하는 외양인데, 다루는 내용물이 내용물이다 보니 그 안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다만 사람이 모이면 룰이라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라, 시장에서의 룰만 잘 지켜준다면 문제는 없었지만...
"저기. 잠시만요. 이 사람, 윈터 어드벤쳐의 사람이거든요. 사장님은 시즌스 킹덤에 오래 계셨으니 아시잖아요? 겨울에는 특히 유별난 사람이 많은거."
눈 앞의 자칭 '천사'는 그 시장의 룰을 위반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애새끼지." "...확실히 키가 좀 작긴 하지만 성인이에요. 그건 제가 보증할게요. 그러면 손님인거잖아요?"
세상에, 이런 일에 끼이긴 정말 싫은데! 라고 일리야는 힘껏 외치고 싶었지만 지금은 이 시장의 평화가 매우 중요했다. 마음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일리야는 '지방덩어리 대머리 사장님'이 권총에서 손을 떼도록 유도하기 시작했다.
"흠." "무례는 이 쪽에서 사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쪽은 저의 소중한 비즈니스 파트너인지라. 그쵸, 베로니카씨?"
여전히 심기가 불편한지 턱을 긁적이는 사장님을 보면서 일리야는 간절한 표정으로 베로니카를 바라보았다.
"어머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 보스의 비즈니스 파트너'... 이죠."
일리야는 혹시 모를 '아니다'라는 대답을 회피하기 위해, '내 비즈니스 파트너' 에서 '칸다타 자매의 비즈니스 파트너'라고 은근슬쩍 말을 고친다. 칸다타 자매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이정도는 눈 앞의 천사가 쉽게 알아들을 수 있으리라 기도하며 말이다.
어째 꽃향기에 코가 간지럽더니. 담이 크다고 해야하나? 봄과 여름 사이가 얼마나 먼지 알면서 고작 소문 하나 쫓아온 것을 보니 저게 참 여간내기는 아니라는 확신이 산군에게 들었다. 턱을 괸 채 톡톡 책상 위를 건들던 산군은 대충 값을 메겼다. 이쪽이야 직접 발품팔아 온 손님 맞이한 것인데다 마오타이가 이런 것에 신경 쓸 위인은 아니니 문제 없다지만, 정원사 대가리는 어떨련지. 알 도리가 없다. 그나마 일이 어려운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공중누각에서 가장 쉬운 일은 살인 계획 수립이다. 그것만큼은 대가리 굴릴 필요가 없으니, 산군의 눈이 서늘하게 빛나면 죽을 자는 대체로 그리 된다. 손해가 아닌 이상에야. 또 저기 원로들 같은 괴물딱지가 아닌 이상에야, 말이다.
"복수니 할인."
산군이 말했다.
"감시.. 보다는 추적이군요. 값이 좀 나갑니다."
여우가면이 말했다.
"뭐하는 자식인지는 몰라도, 살인 쪽은 할인해도 이득. 별 시덥잖은 놈 같은데?" "견적이 벌써 나옵니까? 이쪽은 정보가 모자르군요. 창귀 몇 보내서 뒤 좀 파야겠습니다." "나 한동안 여기 있을건데, 짐조까지 보내지." "빨리 끝내실 생각입니까?" "질질 끌게 있어?" "아뇨."
실로 폭풍같은 대화였다. 눈 앞에 있는 의뢰인을 무시한 채 말투 꾸미던 것도 내팽겨치고, 서로 시선을 교환하지도 않은 채 말을 나누던 그들은, 곧 결론을 내렸다.
"미리 말 하는 것이오만, 죽이는 건 '당신'이오. 뭐, 시키는대로만 하면 깔끔하게 사고사까지 가겠지. 그래도 당장은 정보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시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오. 저짝 겨울 놈들 수준은 못되나 우리도 나름 이런 짓거리엔 이골이 나있는지라. 대중에게 정체를 숨기며 알음알음 소문으로만 남는 게 힘든 일이라는 건 아실거라 믿소."
카지노 The Dream은 사기 금지입니다. 그러나 하지 말라고 할수록 하고 싶어지고, 결국 해버리는게, 사람이죠? 그래서인지 선대 시절엔 종종, '붉은 대가'를 치르는 사람이 있었답니다. 치우는게 제법 귀찮았다고, 당시의 조직원들은 말하지요. 하지만 지금은, '엘'의 치세가 시작된 이후로는, 없다고 해요. 단 한 명도.
상당히 까칠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 관련해서 앓은 것이 많은 것인지. 눈 가늘게 뜬 채로 당신을 바라보며 마젠타는 제 팔짱을 낀다. 이념이 충돌하는 것이 이런 부분에까지 영향을 준다면. 뭐, 다른 때도 그랬듯. 어쩔 수 없으니 돌아서는 거지만. 이어지는 당신의 말을 들으니 받아들이기로 한 것인지. 제 눈앞에 있음에도 무시한 채 이야기를 나누는 둘을 피곤한 표정으로 본다. 이야기가 끝나면 방을 나서는 여우에게 시선을 던지다가는, 당신을 보며 고갤 끄덕인다.
"시나리오만 잘 짜준다면. 멍청하게 굴지 않고 그대로 따를 테니까. 그리고 응. 알지요. 당연히."
이해한다는 말투로 말한다. 진짜일지 가짜일지 모를 소문으로만 도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까. 가끔은 만들어 내야하고, 또 크게 돌지 않게 조절하기도 해야 할 테니. 생각하던 마젠타는 아, 하며 말을 잇는다.
서머 아일랜드는 중앙 섹터를 기준으로 남쪽에 위치해있다. 시즌스 킹덤 내부는 섹터 간의 날씨 변화가 뚜렷한 편이라지만, 서머 아일랜드는 유달리 날씨가 극단적이었다. 비가 쏟아지거나, 해가 내리쬐다 못해 숨이 막힐 정도로 덥거나. 그 때문인지 총기만큼 우산이나 우비도 많이 팔리는 편이었다. 오늘의 날씨는 아주 더운 편이다. 해는 창백한 원반처럼 하늘에 떠 있고, 미세한 공기의 흐름도 없이 축축한 습기만 가득하다. 더위에 익숙하지 않은 몇 사람들이 날씨를 불평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은 뇌우가 쏟아질 것이다. 그것도 아주 고약한 뇌우가. 마오타이는 고개를 들었다. 며칠 전부터 비도 오지 않았고, 대기에 느껴지고 비늘에 닿는 느낌이 딱 비가 내릴 징조다. 강렬한 햇살이 눈을 찌르려 들었지만, 오늘은 코안경 대신 선글라스를 쓴 덕분에 새하얀 원반의 형태만 그대로 눈에 담길 뿐이었다.
언제 비가 내릴지 모르는 불안정한 새하얀 원반 밑을 걸었다. 발걸음은 느렸지만 걷는 동안 땀이라곤 일체 나지 않았다. 오히려 걸을수록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아마 자신의 체질 때문이리라. 서늘한 몸을 타고났고, 더위도 잘 타지 않기 때문에 더운 섹터에서는 최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마오타이는 남들보다 열에 강하다는 것이 축복인지, 저주일지 이따금 생각해 보곤 했다. 특히 이 도시 사람들이 고문에서 보여주는 깊은 인심 때문에 더욱이.
……그래도 알게 뭔가, 같이 안 다니면, 그리고 더 강하면 그만이다. 그게 서머 아일랜드의 특징 아닌가. 확고한 약육강식. 코냑은 가끔 마오타이에게 너무 야만적이지 않냐며 걱정을 내비쳤지만 마오타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번에 들일 호랑이가 알아서 할 일이니까. 호랑이가 정한 것이 규칙이라면 그게 규칙이고, 마오타이는 지금처럼 여유로운 생활만 즐기면 됐다.
실없는 생각을 하며 인파를 스치고, 구룡성채를 지나고, 잘 벼려진 보도 블록을 밟으며 지나다 보면 어느덧 아쿠아 드래곤 주변에 조성된 호수인 용의 눈물에 이르게 된다. 주변에 심어둔 묘목이 어느덧 무럭무럭 자라 나무 그늘이 무성하게 드리웠지만 그 밑도 영 서늘하지 못했고, 사위는 고요했다.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 홀로 놓인, 뼈대만 남은 롤러코스터는 신성하단 느낌이 들 정도였다. 부자연스러울 만큼의 침묵에서 마오타이가 뒷짐을 졌다.
"있느냐." "예, 따거."
침묵을 깨고 누군가 등 뒤로 선다. 마오타이의 뒤를 따르는 수족은 늘 존재했지만, 언제 나타났는지, 어디서 나타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물며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다. 멱리로 머리 전체를 가리고 있었고,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 수 없는 품이 큰 복식을 입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무엇을 물어왔더냐." "쥐는 서른 마리 정도 들어왔습니다. 봄, 여름, 가을은 모두 일곱 마리씩 균등하나, 겨울에 아홉 마리가 존재합니다." "중한 것은 겨울이 아니지." "네 마리를 가둬두었습니다." "세 마리는?"
침묵. 마오타이는 더 묻지 않아도 죽였겠거니 생각했다. 이 도시에 숨어든 첩자가 스스로 어금니의 캡슐을 깨물어 자결한 것이 아니라면 잘한 일이겠고, 아니라면 등 뒤의 사람이 그 정도밖에 되지 못하는 일이다. 자신이 직접 뽑은 사람이다 못해 귀히 여기며 키웠으니 그럴 녀석은 아니겠지만. 아무리 총애하는 사람일지언정 마오타이는 뒤를 돌지 않고, 호수에만 시선을 꽂았다.
그림자가 소리 없이 마오타이의 앞에 선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마오타이는 직접 요구하지 않는 이상 어떤 것도 행하려 들지 않았다. 마오타이는 호수에서 시선을 떼고 자신 앞의 엇비슷한 키를 가진 존재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고할 것이 남았더냐." "단순히 의문점일 뿐이라 허락을 구하고자 합니다." "비연아." "예." "네 말이라면 내 무엇이라도 일단 들어주고 있지 않더냐, 무엇이 두려운 게냐, 고하거라."
앞에 선 존재가 멱리를 벗고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비룡회의 수장이 총애하는 자라 해도, 비룡회에서도 가장 몸값이 비싸고 정예 병력을 이끄는 측근이라 할지라도 차마 눈을 마주치고 말할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다른 섹터와.. 공중누각에는 전하지 않을 것입니까?" "녀석, 너도 오늘은 영 답지 않구나." "송구합니다." "아니지, 네 고개를 빳빳히 들어야 하지 않겠더냐. 너는 내 그림자다, 비연아. 내 언제 고개를 숙인 적이 있더냐?" "아니오." "그래, 아니지. 그런고로 내 친히 답해주마. 네 분란을 부르는 법을 아느냐?" "어떤 분란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지금 우리는 자격지심을 가져 낙원을 견제하는 바깥의 쭉정이를 주시하고 있다. 이런 일은 겨울의 원로가 모를 리가 없는 일이지. 그리하지?" "예." "한데, 어찌 내가 네게 알아오라 시켰으리라 생각하느냐? 어차피 겨울의 원로가 알려줄 일이었을 터인데?" "그것은……."
비연은 고개를 저었다. 알 수 없다는 듯. 혹은 알고 있어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다는 듯.
"겨울의 원로는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알리지 않았다. 그 아이가 돌아버렸어도 괜히 원로가 아니지. 이를 빌미로 섹터 간의 골을 깊게 하고 싸움을 붙이려는 게다. 그리하면 자연스레 겨울에게는 이득일 터이니. 애당초 녀석들은 정보를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각 섹터에서 오해를 쌓고, 의도하지 않은 일로 그 틈새를 노려 세력을 깎아내려 할 터이지. 각 섹터 원로들의 위신을 천천히 떨어트리고, 고립시키며, 기어이 전쟁을 일으켜 자멸하게 둘 터다." "겨울 또한, 싸움을 붙이려 든다 하시지 아니하셨는지요."
마오타이는 흡족히 웃었다. 이런 점을 잘 질문하는구나.
"녀석에게는 그것이 놀이고, 바깥의 쭉정이는 사력을 다한다는 것이 다르지. 놀이 판에서 계산된 싸움과 진정한 분쟁은 그 결을 달리한다. 그래, 쉬이 설명하자꾸나. 겨울의 뜻대로 놀아난다면 너와 이가라시, 마오 중 하나가 봄 섹터로 가서 대충 두어 명 목을 땄다가 평화 협정이니 뭐니 하는 걸 제정해 감봉되는 일로 그칠 것이고, 쭉정이의 뜻에 놀아난다면 내가 봄 섹터로 직접 행차하여 묘지를 엎는다는 뜻이다." "묘지, 라면.." "거기까진 네가 알 필요가 없다. 너는 그저 강하면 된다. 알겠느냐?"
마오타이는 비연이라 불린 자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더니 아무렇게나 휘저었고, 비연은 악, 하고 짧은 비명을 지르며 기껏 단장했던 머리를 감싸 쥐며 뒤로 물러섰다. "따거!" 불만 가득한 외침에도 마오타이는 끌끌 웃으며 고개를 들어 올릴 뿐이었다.
"비가 내리겠어. 아주 거센 비가."
물론 우리는 젖지 않을 게다. 마오타이의 말을 뒤로 요란한 번개가 치고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더니, 이내 쏟아져 내렸다. 어둑어둑한 하늘 아래, 잠든 용은 여전히 아무 것도 듣지 않은 척 눈을 뜨지 않았다.
천성 상냥한 일리야가 배불뚝이 사장님을 알아듣게 타일렀다 허리에 꽂힌 권총에서 손이 떨어지는 것을 본 베로니카의 눈이 다시 잿빛으로 돌아갔고, 눈 앞의 '대머리'에 내뻗고 있던 손과 팔을 천천히 내렸다
"...인물 식별, 신원 확인. 우호, 칸다타의 빗자루 '일리야'를 확인했습니다."
그러면서 공격적으로 웅웅거리며 코어가 공회전하면서 에너지를 집중하던 소리도 어느새인가 멎게 되었다 다시금 평화가 찾아오는 순간이었다 마피아들의 도시에서 이런 표현은 다소 웃기지만서도, 분쟁과 평화를 적절히 충돌시키고, 다시 순환시키며 그 사이의 밸런스를 적절히 이어가는 것도 이 왕국이 돌아가는 방식이었다
"반갑습니다, 일리야."
이번 것은 다소 과격한 감이 있던 것 같지만... 어쨌든 이 '천사'의 소동 아래에 일리야가 선호하는 무기 시장 하나가 괜히 날아가거나 하지는 않게 된 것이었다
……… …… …
"건방진 인간이었어요. 저의 어디가 애새끼로 판단되나요, 일리야."
조금 뒤, 일리야의 개입으로 무기 시장 안을 거닐 수 있게 된 베로니카가 하는 소리였다 본래 풍선이나 테마 굿즈따위가 들어있었을, 컬러풀한 소품 가판대 사이를 걸으면서 하는 말 치고는 퍽 아이러닉했다 아이러닉, 이 왕국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했다 아이로 쉽게 오인받을 만한 모습을 하고 무기 사이를 거니는 천사를 가장한 로봇도... 그랬다
"이곳의 환경과 문화를 고려해서는 조금 더 '성체'의 모습을 한 의체가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베로니카가 일리야를 비롯한 주변의 행인들을 자신의 렌즈에 담고서는 괜스레 몸을 툭툭 짚어보면서 말했다
>>739 이가라시 성별은 이가라시임. 암튼 그럼ㅎㅎ.. 하루 루틴? 마땅히 마오타이가 직접 뭔가를 지시하거나 하지 않으면 해가 질때까지는 집밖으로 안나옴. 해가 질 때쯤 나와서 정찰 명분으로 서머 아일랜드를 싸돌아다님. 이 과정에서 마작판에 잠깐 끼거나 안면을 튼 사람들이랑 잡담함. 새벽쯤 귀가. 끝.
딱히 없음. 다만 봄 섹터를 보는 시선은 여름섬에 사는 사람의 시선을 가짐. 티는 안냄(마오가 약쟁이라서 떨떠름하게 생각은 하지만 그건 마오 잘못이라고 생각함)
아주 솔직히, 산군은 봄과의 이념 싸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이 곳이나 그 곳이나 약자에게 설 자리 드문 야생인 건 다르지 않으며 산군은 그냥 약 자체를 싫어하는 쪽이었다. 여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인 용은 나태에 찌들어 호랑이에게 다 떠넘기고 농땡이 칠 생각으로 가득차있었으니, 산군은 그냥 괜한 것으로 일감이 더 늘어나는 게 싫을 뿐이었다.
"길어도 이틀 쯤 걸릴 듯 하오. 제대로 된 정보도 없는데 견적이 이렇게 뽑히는 걸 봐서, 시답잖은 놈일 것 같으니."
차라리 눈 앞의 저것을 죽이는 데에 드는 품이 더 컸다. 정확히는, 제 보금자리로 돌아간 저 자를 죽인다고 가정하였을 때 소모되는 비용이 썩 귀찮은 정도였다. 왠만해서 받지 않겠군. 그런 생각을 아주 태평하게 한 산군은 크게 하품까지 했다. 가면을 두드리는 소리가 사람이 줄어든 방 안에 정갈하게 울려퍼진다. 그대가 값을 묻기 전까지. 가면 안쪽에서 시뻘겋게 빛나는 눈이 잠시 의뢰인을 향한다. 산군은 고개를 기울이다 대답했다.
"그야 뭐, 돈이오. 현찰이면 좋고."
조직 운영은 땅 파서 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직접 고른 약자가 아니라면 값을 받는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싼 값이 아니다. 목숨값은 싯가. 허나 그저 싸기만한 목숨은 많지 않다.
"돌아가서 두 발 뻗고 자면 되오. 그러다 계획이 정해지면 어련히 우리쪽에서 찾아갈 테니."
의뢰인에 대해서도 캐내겠다는 것을 아주 당당하게 말한 셈이었다. 중간 보고는 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고. 아-
"본진에서 만나는 게 꺼려지면 여우에게 적당한 접선 장소와 시간을 정하시오. 그러면 찾아가지."
목소리를 높히지 않고 서로에게 건네던 다정한 단어들로 만들어낸 상냥한 문장들. 간지러운 듯, 부끄러운 듯 들려오는 작은 웃음소리. 미약하게 떨려오는 누군가의 손을 감싸쥐는 누군가의 손.
------------------------------------- 미사키하라시( 三咲原市) 에서 한 여성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의 이름은 나츠메 유우키 (夏目 ゆうき , 21세, 여성) 으로 경찰은 피해자의 몸에 저항흔이 적다는 점, 그리고 강제로 자택에 침입한 흔적이 없다는 점을 미루어, 범인이 피해자와 안면이 있는 면식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음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 긴급 속보 미사키하라시(三咲原市) 여성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체포되었다. 용의자는 ■■■ ■■■ (宮城 楓 , 19세) 로 사건이 발생한지 36시간만에 현장에서 약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폐공장에서 체포되었으며- 용의자는 체포 당시, 반복적으로 ' 그녀석이 나쁜거다. ' 라는 말을 지속적으로 중얼거리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733 [……그래도 알게 뭔가, 같이 안 다니면, 그리고 더 강하면 그만이다. 그게 서머 아일랜드의 특징 아닌가. 확고한 약육강식. 코냑은 가끔 마오타이에게 너무 야만적이지 않냐며 걱정을 내비쳤지만 마오타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번에 들일 호랑이가 알아서 할 일이니까. 호랑이가 정한 것이 규칙이라면 그게 규칙이고, 마오타이는 지금처럼 여유로운 생활만 즐기면 됐다.]
사장의 손이 내려가고, 위협적인 기계의 웅웅 소리조차 멈추자 일리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이 아까와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길게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사건은 분쟁으로 번지기 전에 아주 시시하고 평화로운 방향으로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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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어... 이곳의 신사 숙녀분들은 연령대가 높고 고지식한 분들이 많은지라..."
베로니카의 투덜거림에 일리야는 그리 대답했다. 당장 일리야의 눈 앞에 있는 베로니카의 경우만 봐도 그렇지만, 이 시즌스 킹덤에서 단순히 사람의 외양만을 보고서 판단하고자 하는것은 꽤 위험한 행위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어지는 질문에 대한 일리야의 대답은 no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일리야는 즉답을 하지 않고, 상인들 사이의 암묵의 룰이라던가 각 섹터가 가진 특징 따위의 사사로운 생각에 빠져들었다.
"사람의 겉모습은 그렇게 중요한게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진 않지만, 굳이 덧붙이자면 말이죠..."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보면, 시즌스 킹덤 뿐만이 아니라 밖 또한 외양만을 보고서 판단하는 것은 위험한 행위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일리야는 미소 지으면서 말을 이어간다.
"베로니카씨는 시장의 분위기를 메뉴얼로 만들어서 익히는게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시즌스 킹덤에서 외양만을 보고 사람을 판단한다는건 어리석은 짓이지만,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난장판을 만들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시장의 룰이라는 것은 의외로 간단해서 정리를 하는데 큰 시간이 들지 않는다. 각 섹터와 시장마다 아주 사소하고 세세한 것들은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기계인 베로니카는 메뉴얼만 잘 만들어진다면 그걸 다 입력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일것이다.
"섹터만 해도 5곳이니, 각각의 환경과 문화를 고려해서 하나하나 생각하는 것은 에너지 낭비다. 쉽게 말하자면 이런 이야기랍니다?"
결국 사람도 기계도 에너지를 불태우며 사고하고 움직이는 것은 똑같으니까. 일리야는 그렇게 생각하며 참견을 끝낸다.
모든 서머 아일랜드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니. 그래. 당신의 말처럼 괜한 걱정이다. 마젠타는 입꼬리를 당겨 올리며 미소 짓는다. 그리고 이틀이라는 말을 듣자 마젠타는 제 품에서 펜 끼워진 수첩을 하나 꺼내 기록하려 했을까. 시답잖은 놈인 것 같다는 당신의 말을 듣고서 이내 참지 못한 웃음을 터트린다.
"아랫놈들 관리도 제대로 못해서 쪼이니깐 도망치는, 그런 시답잖은 놈이죠. 응."
목숨 값도 얼마 하지 않는다니. 이 얼마나 한심한 생인지. 지금까지 그 녀석 몫으로 돌아갔을 돈들이 아까워질 정도일까. 가면 두들기는 소리에 마젠타 끌어올린 입꼬리를 평평하게 하고서, 돌아온 답에 고개를 끄덕인다. 다행이지. 돈이 아니라 다른 걸 받는다면 어떻게 할지 고민이었는데 말야. 그러다 찾아온다는 말에 한쪽 눈을 찡그렸다, 금방 풀어낸다.
"아니. 괜찮아요. 준비 되면 찾아올 거라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꺼림직 하지 정말. 가면 뒤의 그 낯이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하다는 생각을 하며 물끄러미 당신을 바라보다간 묻는다.
제가 여태까지 줄곧 살아온 곳이라 그런지 몰라도, 산군은 차라리 섬이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명확한 약육강식을 누군가는 장점이라 할 테지만 그에겐 아니었다. 밑바닥 피식자에서 결국 섬의 상위 포식자까지 올라온 산군은 이 빌어먹을 여름이, 좀 더 사람답게 변하기를 바랐다. 용은 결국 모든 것을 산군에게 맡기고 여유작작한 꼴로 시간을 보낼테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장에는 요원한 일이긴 하였으니. 뭐, 언제나 돈은 쌓일수록 좋은 것이다.
성별을 모르겠는 웃음소리에 잡념이 흩어진 산군은 찾아간다는 말에 찡그렸던 눈을 눈치챘다. 그럼에도 턱을 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약자라면 다소 배려하겠지만, 저자는 그런 게 아니니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알겠소."
상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노크도 없이 들어오는 여우에게 눈짓했다. 이 안쪽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따로 듣고 있던 여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견적서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자문 비용에 대해 적혀 있었다. 결코 싸지 않은 가격. 허나 사람의 목숨값이라기에는 또 저렴한, 그런 숫자가 적혀있었다. 심지어, 살인보다 추적에 드는 값이 더 비쌌다.
"딱히. 아, 상황에 따라 값이 더 오를 수도 있소. 그것 역시 이틀 뒤 찾아가면 알 수 있을 것이오. 거기 적힌 값은 예상이라 생각하면 되겠소."
이것은 또 자신감이기도 했다, 어차피 네가 돈을 떼먹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그런.
"그리고-"
하고 말을 덧붙이기 시작한 산군의 눈이 빛났다. 가면 너머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붉고 진하고, 살벌하게. 그것은 핏물로 만든 안광같은 느낌까지 드는 것이라, 정말로 요괴라도 되는 듯도 했다.
"우리에 대해 말하지 마시오. 우리가 우리의 비밀을 어찌 유지하는 지, 그대는 몰랐으면 하는구려."
어텀 카니발의 작은 살롱에 마련된 플레이룸은 원로들이 언제라도 자유롭게 드나들며 각자 만남을 가지거나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오늘도 원로들은 제각기 모여 제 할 일을 하고 있었지만, 대뜸 걸쭉한 욕설 소리에 시선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욕설을 뱉는 경우는 원로 사이에서도 허다했지만, 누군가를 지칭하며 대놓고 욕설을 뱉는 경우는 드물었다. 특히 마오타이가 그럴 사람은 아니었음을 알기 때문인지 시선은 첨예했다.
"뭐가 불만이길래 안 하던 욕을 하신대요?" "내가 사흘간 외출이라 했지." "그래서요?" "네 섹터 사람 관리 똑바로 안 해?"
코냑은 자신을 향한 욕설에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고, 마오타이는 눈을 부라리며 한 걸음 성큼 걸었다. 방금 전까지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던 것도 멈추고 주변의 눈치를 보던 리큐르를 보던 위스키가 이리 오라는 듯 제 옆자리를 두들겼고, 리큐르는 소리 없이 후다닥 달려 위스키의 품 속으로 숨었다.
"아, 그거."
무슨 일인가 했더니. 소파에 아무렇게나 늘어지듯 앉아있던 코냑은 자신 앞에 선 마오타이를 대충 흘겨보고 한쪽 입꼬리를 비웃듯 뒤틀어 올렸다.
"주인이 가는 길을 내가 어떻게 말리겠어요?" "네 주인이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갔다가 자칫하다 휘말리기라도 했으면 내게 먼저 관리를 했어야 한다며 염병을 떨었을 것이 방임을 주장하시겠다?" "내 주인이 다닐 곳의 치안을 개판으로 만든 당신이랑 당신 주인 탓이 아닐까 싶은데." "내 호랑이를 주인으로 받들 생각이 없음은 알 텐데, 머리가 어찌 된 것이더냐?" "아, 몰랐어요? 비꼬는 건데."
당신 호랑이한테 설설 기는 것 같아서 난 뭐, 주인이 바뀌었나 싶었지. 코냑의 조롱에 마오타이의 손등에 돋아난 비늘이 교차하며 기묘한 소리를 냈다. 이미 목에서는 으르렁, 하고 짐승이 위협하듯 낮은 울음 소리가 울렸고, 조금이라도 더 건드렸다간 뿔이 돋을 것만 같았다. 코냑은 그런 모습에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대체 뭐 때문에 예민한 거예요, 내 주인이 알아서 할 일이잖아요. 나의 주인이 개척하는 것이면 그것이 길이고, 외면하는 것이면 그것이 위법인 거예요. 서로의 대표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방침 아니었나? 거기다 내 주인께서 싸움이라도 붙였나요?" "그래, 붙였다. 지금 너와 내 사이에 싸움을 붙이려 했지." "당신, 칼 때문에 그렇게 예민한 거예요? 뭐, 날이 무뎌질까 두렵나?"
스읍. 마오타이는 한숨을 깊게 뱉었다. 그래, 리큐르 다음으로 어린 놈이니 내가 교육이라도 단단히 시켜야지.
"내 아끼는 칼에게 그것들이 친분을 쌓든 말든 난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알아서 날을 갈고, 겨누고, 무뎌질 방향을 아는 녀석이니. 다만 네 주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그분의 심기를 거스르기라도 했더라면, 아니면 이 시기에 루시드 드림이라도 갔더라면 어찌 되었을 것 같느냐?"
놀라울 정도로 사근사근한 목소리를 뒤로 코냑이 눈을 홉떴다.
"아- 젠장, 이건 내가 사과해야 하는 일 맞죠?" "알았으면 대가리라도 박지?" "그런데 어쩌나. 당신에겐 죽어도 싫은데."
두 사람의 실랑이를 보던 위스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리큐르를 토닥이던 손이 멈췄다.
"박아." "네?" "이번엔 당신 잘못이니까 대가리 박으라고." "……."
잠시 뒤, 만족스러운 마오타이의 시선과 위스키의 한숨이 교차했으나 그 과정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되었다.
메뉴얼.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즉답을 그만두고 미소지으며 차근차근 자신의 생각을 전해주는 일리야를, 베로니카는 바라봤다 그도 그럴게 이런 바닥에서 겉모습은 중요한게 아니라느니같은 말을 해주면서 진지하게 조언을 받아주는 사람이 몇 명 있겠는가 그런데...
"하아――........."
돌연 베로니카에게서 원로들도 뺨 때릴만큼 깊은 한숨이 나왔다??
"나왔습니다 나왔어요. 인간들이 곧잘하는 기계에 대한 오해 No.5. '프로그래밍이 전부 해결해준다'가 나왔네요. 네네, 압니다. 왜냐하면 일리야는 유기물로 움직이는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그게 그렇게 쉬울리가 없습니다."
베로니카는 잘 됐다는 듯, 이 기회에 잘 들어보라는 듯이 손가락을 세워서 일리야에게 설명해 내려간다
"저는 확실히 인류의 역사에 기록해도 좋을만큼 고성능이긴한데요. 그런만큼 정교해서 어중간하게 손대면 밸런스가 흐트러져 버려요. 아마 이건 저보다 훨씬 저열한 기계들도 같을 거예요." "게다가 문화나 분위기같은 유동적인 것을 메뉴얼이나 행동 알고리즘으로 만들어 상태 변화를 시도했다가는 이상한 버그가 생겨서 루프 안에 갇혀버릴지도 모르고요." "세상만사, 어른들이랑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돌아가지 않죠? 실전에서 플랜 A는 플랜 B의 초석이고요. 그런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돼요." "조사 : 그래서 제가 이 왕국을 일부러 돌아다니면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구요."
요컨대, 지금 베로니카의 말을 정리하면 '그렇게 쉽게 해결 될 일이 아니다'라는 것 같다 과거에 말해주어서 일리야도 알고 있듯 베로니카가 이 왕국에서 기동을 시작한 것은 고작 몇 달 뿐일테니 말하자면 사람처럼 유동적인 변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행동하는 것이 낫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저를 점검할 수 있는 프로그래머가 죽어버렸으니까요."
프로그래머. 말하길, 베로니카를 만들고 기동시키도록 계획한 개발자는 이미 베로니카가 눈을 뜬 시점에서는 사망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자체점검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람이 자신의 몸을 돌보는 것은 한계가 있듯 그것은 '천사'인 그녀에게도 한계가 있는 것 같았다 신이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한 바탕 쏟아진 베로니카의 설교이자 잔소리(?)는 이렇게 끝이 났다
"어쩌다보니 불평하는 형태가 되었습니다만,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차피 제게 선택권은 없었지만요. 저의 의체는 본래 목적상, 이미 설계 단계에서 수납이 간편하고 피탄 면적을 최소화 하도록 되었다는 것 같아서요."
말하자면 지금 베로니카의 의체는, 나름의 전술적 디자인...으로 의도 된 것 같다 확실히 방금은 애취급을 당했으나 인간, 본디 그런 모습에 약한 사람들도 분명 적진 않을테니 그것이 일리야도 말하는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의 본 의미일 터였다
"그래도 일단 일리야에게는 감사를 표하는게 좋아보이네요."
그렇게 말하면서 베로니카는 몸을 돌려 일리야를 마주봤다
"하마터면 그 인간, 자기 둥지가 날아가버릴 뻔했으니까요."
네 이야기가 아니고 사장님 이야기였냐?
"의문 : 그런데 일리야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물어도 됩니까?"
이미 물어놓고 허락받는 것은 무슨 조화인지 애초에 그다지 예절을 지켜줄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베로니카는 일리야를 향해 동그란 눈을 깜빡거리며 답을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젠타는 여우가 건넨 견적서를 받아 살핀다. 돈과 관련된 부분을 체크하니, 금세 진지해진 얼굴이 된다. 싼 가격은 아니었지만, 예상하던 금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니 괜찮았을까. 오히려 예상하던 금액 보다 낮은 것이었다. 정말 살인 보다 추적에 드는 값이 더 비싼 것은 여전히 우습고, 마지막까지 이렇게 돈을 쓰게 만든 것에는 화가 나는 것이다.
"지금 내 지갑에 얼마가 있는지 알아요? 이 정도야 뭐. 더 올라도 충분히 낼 수 있으니까. 걱정 말아요."
다시 입매 당겨 올리며 얄밉게도 웃다가, 번득이는 당신의 눈빛을 느낀 듯. 빠르게 입을 다물고서 그 미소를 지운다. 사람을 바짝 긴장하게 만드는 저 눈빛 하고는. 참. 당신들이 비밀을 유지하는 방법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것일까. 어색하게 다시 웃으며 마젠타는 입가로 손을 들어 올려, 지퍼를 채우는 제스처를 취한다.
그건 장난치는 듯 가벼운 목소리였다. 기실 여태껏 하오체를 쓰며 무게잡는 듯 굴었지만 산군의 목소리는 여태껏 변하는 거 없이 평탄하고 일상적인 어조였다. 목소리를 내리깔지도 않았고 진중한 분위기를 잡지도 않았다. 그냥, 이곳이 요괴의 터전 같은 분위기를 가졌고, 다른 계절에서 보기에 참 이국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을 뿐.
"복수이니 할인이 들어가고, 어려운 일이 아니니 애초부터 값이 높지도 않았지. 뭐 할인이 없더라도 싸긴 쌌을 것이오."
계획수립의 난이도는 대상의 무력도 물론 들어가지만, 이 일을 하다보면 꼭 무력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다. 조직의 규모, 충성심, 사기, 대상자의 대비, 안전에 대한 경각심 등. 직접적인 무력이 아닌 개인의 철처함과 속한 집단의 굳건함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예외는 있는지라, 산군은 여름 꼭대기의 용이 혼자라도 계획을 수립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산군은 약간 놀라운 것이다. 지금 의뢰인이 사살 대상에게 통수를 맞았다는 것이. 운이 나빴나? 입을 막는 시늉을 하는 모습을 보며 산군이 흐음, 소리를 냈다.
"그럼 됐군. 돌아가도 좋소."
소리도 없이 열린 문에서 다가온, 깃털 달린 가면을 쓴 자가 토끼 가면을 가져왔다. 그대가 이곳으로 오며 착용했던, 시야를 가리는 가면이었다.
정교한 기계는 어중간하게 손대면 밸런스가 흐트러진다. 이것은 기계를 세공품 따위의 다른 단어로 바꾸면 이해하기 쉽기에 일리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동적인 것을 섣불리 매커니즘으로 사용한다면 이상한 버그가 생길 수도 있다. 잘 모르겠지만 일리야는 당사자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럴것이라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전에서 플랜 A는 플랜 B의 초석이다. 여기서부터 일리야는 베로니카의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했다.
"오해해서 미안해요? 확실히 기계에 대해선 배운 적이 없어서. 분해하는 법은 알곤 있지만..."
일리야가 지금 말하는 분해하는 법이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분해법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줄톱을 들고 기계를 무식하게 가르는 것에 가깝다는 것이 함정이긴 하지만. 하지만 일리야가 베로니카를 분해하는 일이 생길 확률은 매우 낮을 것이니 별 상관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아."
이번 한숨의 의미는 간단했다. 과연 둥지만 날아갔을까.
가을과 겨울은 사이가 좋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겨울의 주민이 가을의 둥지 하나를 날려버렸다. 이 시장과 관련된 모든 마피아들은 이를 갈면서 원흉이 된 겨울의 주민을 담궈버릴 계획을 짤 것이다. 고작 애들은 가라. 라는 말 하나에 얼마나 큰 나비효과가 일어나게 될련지!
"아이쇼핑, 신제품 소식 수집하기, 그리고 수다 떨기."
시즌스 킹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을 늘여놓으며 일리야는 어깨를 으쓱였다.
"시장에 왔으니 시장에서 할 법한 행동을 한다. 그게 다랍니다?"
그리고 베로니카가 윈터 어드벤쳐로 돌아간다면, 어텀 카니발 내의 모든 무기 시장을 돌아다니며 '천사의 모습을 한 소녀는 사람이 아니라 걸어다니는 병기니 다투지 말것'이라는 경고를 하기... 가 일리야의 시장에서 할 법한 행동에 슬쩍 추가될지도 모른다.
복수가 할인인 이유는 무엇일까. 막연히 궁금해지나, 호기심에 자신이 위험해질까 캐묻진 않는다. 그저 일상적인 당신의 목소리를 기억하려 노력하며, 가면 뒤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을지 상상해 볼 뿐이다. 이어 당신이 하는 말에 마젠타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일이 어려운지 아닌지는, 당신들이 전문가이니 더 잘 알겠지. 아무튼, 없더라도 싼데 할인까지 붙었으니. 조금이나마 돈을 굳어서 기쁠까. 선수금은 받지 않는지, 돌아가도 된다는 말과 함께 들어온 자가 내미는 가면을 보며 마젠타는 흔쾌히 받아서 쓰려 한다. 한 번 경험해 보았으니, 두 번째야 아무것도 아니니. 정말 이곳이 어딘지 감추려고 꽤나 노력한다 싶다.
엘은 코냑은 보고있으면 편안함을 느낍니다. 화단 가꾸는 모습이 보기 좋다네요. 마오타이는 좀 불편합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자꾸 혼날 것 같대요. 위스키는 섬찟하게 느낍니다. 눈 뜬 걸 절대 보고 싶지 않다랄까. 리큐르는 엣 저기 거리 좀,은 농담이고 귀여워오 간식 많이 많이 먹여드리고 싶어오.
에얼은 코냑이 가꾼 화단은 좋아하지만 대면하는 건 서먹합니다. 불편하진 않대요. 마오타이는 가급적 마주치고 싶지 않습니다. 억지를 당하는 건 누구든 싫죠. 위스키는 존경스러우나 어딘가 경외심도 듭니다. 멀리 두고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으로. 리큐르는 으아아 잠시만요 잠깐만! 을 외치고 겨우 도망만 안 갑니다. 거리감 무서워오.
1. 「인간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있다고 믿는지?」 : "아, 글쎄요. 반반이랍니다." "선인이라도 환경 때문에 악인이 될 수도 있고, 선인으로 태어난 그 자체로도 살 수 있을 테니까요." "물론 이 도시에서는 어떻게 해도 악인이 될 수밖에 없으니, 인간의 악한 본성이다..라고 단면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요."
2. 「계란 프라이는 완숙? 반숙?」 : "반숙으로, 무조건 써니 사이드 업이에요. 잘 만든답니다. 예전엔 제가 늘 아침을 차렸거든요." "아침 먹을 시간이 없다면서도 늘 남기지 않고 먹어줘서 기뻤지요."
3. 「자신의 실수로 약속에 늦어버리게 된다면?」 : "이건 제 실수니 사과해야죠." "아, 마오타이요. 어쩌라는 건지.. 내가 늦는 건 고려했어야죠." 마오타이에게 드리는 오늘의 캐해질문!
1. 「제일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의 이름을 하나 말한다면?」 : "그, 굳이 하나만 얘기해야 하나? 너무 많아서 말입세." "싹 꺼졌으면 좋겠군."
2. 「타인의 소원과 자신의 소원,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 "굳이 따지자면 나의 소원이지." "이기적인가? 이타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더라면 맞는 곳에서 살아야지. 다만 그대는 이곳에 온 존재이지 않나."
3. 「어떤 문화매체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은 이후의 행동은?」 : "보통의 사람이라면 깊은 감동을 받고 한 번 더 보거나, 주변인에게 권유하네만.. 내 자기 전에 좋았지, 하고 생각하는 것이 끝입세. 귀찮게 뭘 더 하나.. 그 시간에 잠이라도 더 자는 것이 좋지 않겠나.." 위스키에게 드리는 오늘의 캐해질문!
1. 「인간을 믿는 편인가, 믿지 않는 편인가?」 : "이 도시에서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목숨을 맡기겠다는 신뢰의 표시나 다름이 없단다." "그래서 나는 믿는 사람이 아주 적지. 굳이 답한다면 믿지 않는 편이 옳겠구나."
2. 「외출 전 예상했던 것보다 날씨가 더 춥거나 덥다면?」 : "늘 있는 일이지. 여벌의 옷은 챙기는 편이란다." "추울 때면 그이가 와서 옷을 덮어주곤 했지. 신사적인 사람이니 말이야."
3. 「자신이 정말로 바라던 것을 정말로 손에 넣는다면?」 : "기쁘겠구나. ……그래, 기쁘겠지." "희망은 늘 어긋나기 마련이니 이런 질문으로 상상하여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리큐르에게 드리는 오늘의 캐해질문!
1. 「약속에 자주 늦는 상대방이 자신의 지각에는 화를 낸다면?」 : "그럴 때면 마오타이가 해준 말이 있어! 음- 그러니까, 드디어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구나? 내 친히 도와주도록 하마! 라고 하면 된댔어요!"
2. 「인간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있다고 믿는지?」 : "정해져있지." "다 악인이야."
3. 「길을 가다 "야!"하고 얻어맞았는데 모르는 사람이라면?」 : "이거 새로운 놀이야?" "나도 할래!! 나도!!!" "마오타이!!!!!!!!!!!!!!!!!!!!!!!!!!"
아 코냑 3번 질문 답 진짜 ㅋㅋㅋㅋ 마오타이랑 티격태격하는 너무 웃겨 정말... 마오타이는 까칠한 것이, 매력이고. 2번 질문은 정말 현실적인 답이네. 위스키님은, 뭐랄까. 정말. 대모님이라 불러야겠다. 그런 생각이야. 리큐르는 귀여운데, 그 귀여움 뒤에 뭐가 있을지 모르겠어서 조금 무섭고. 응.
1. 「큰맘먹고 결심한 일이 도로아미타불이 되었을 때 반응은?」 : "소속된 곳이 없는 사람에겐 흔한 일이지. 그 이전에도 내 결심한 대로 된 일 하나 없지만.." "결국 모든 것은 이 도시의 뜻일 테니."
2.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믿는지?」 : "……이루어지지 않지. 적어도 이 도시에서는 그리 생각하고 있소. 사랑을 느껴본 적은 없으나 주변을 보면 그런 사례가 원체 많아야지." "그 사실 알고있소? 과거, 영웅도 구스타보를 마음에 두었다오. 구스타보가 기혼자임을 알고 일찍이 마음을 접었지만."
3. 「길을 걷다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볼썽사납게 넘어진다면?」 :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군. 눈만 안 마주쳤으면 좋겠구려." "어차피 얼굴도 안 보이네만." < 마오타이 "바퀴벌레도 눈이 어딨는진 몰라도 마주치는 느낌은 드오." "이젠 하다못해 스스로를 바퀴벌레로 비유하다니. 황당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