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수에게 발레는 언제나 편련이다. 아무리 다가가려 애써도 결코 옆을 허락하지 않아 아득하다. 또한 잔혹해서 얼마나 열정을 쏟았는지, 어떤 걸 포기했는지에는 좀처럼 관심도 없었다. 구태여 길게 해명하는 대신 미야나기는 엷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재밌어요. 전 원래 연극도 좋아하니까요.” 무용수란 평생을 바쳐 눈길조차 주지 않는 상대에게 구애하는 존재들이다. 이 사실이 때때로 그녀를 좀먹지만 그만큼 사랑스러워 애틋했다. 그녀는 발목의 리본을 보석 다루듯 조심스러운 손길로 고쳐 맸다.
“실은, 레퍼토리가 단조롭다는 점도 좋았어요. 누군가는 그래서 재미없는 거라고 하겠지만······.”
독특하게도 발레에는 정답이 있는 이상한 예술이지만, 반대로 작품은 백지장같아 해석이 자유롭다. 그러니 뜻대로 굴어도 질타 받지 않는 유일한 영역이나 다름없다. “······이게 자극적인 거라고요? 완전 충격이다.” 스토리가 하도 유치하길래 자극을 죄악시해 부러 단순하게 만든 건 줄 알았지만 말이다. 아무튼 무심코 던져본 말이라 정말 응할 줄은 몰랐나, 미야나기는 잠시 두 눈을 크게 뜨고 깜빡거리다 이내 돌고래 소리를 내며 기뻐했다. “진짜요? 나 취미 발레 원데이 티칭해보는 게 꿈이었는데!” 그녀는 냉큼 매트를 한 장 더 꺼내 바닥에 펼쳤다.
“바 워크 전에 매트 위에서 하는 워밍 업 운동이에요. 스트레칭이랑 근력 운동 위주인데, 기본 발레 동작을 약간 응용하기도 해요. 듣기만 해도 너무 신나죠! 세라 밴드나 폼롤러 써보신 적 있어요?”
듣기만 해도 너무 괴롭다! 더군다나 지도 경력 쥐뿔도 없는 돌팔이라 못 믿음직스럽기까지 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야나기는 냉큼 스커트를 벗어던지곤 저편에 깔아둔 매트를 끌고 와 앉았다.
“이렇게 바른 자세로 앉으세요. 허리 꼿꼿이 펴고, 어깨 내리고 무릎 딱 붙이고요. 양팔은 최대한 길게 늘려서 바닥에 두는 거예요.”
열정이란 것은 통 모르겠다. 무언가에 진득하게 정성을 쏟고 영혼을 불태우기엔 그 무엇도 가슴에 길이 와닿도록 즐거웠던 적이 없어서. 하지만 저 자신이 기록 그토록 열렬한 마음을 느껴 보지는 못한다 해도, 그에게는 오랜 세월 살아가며 스쳐간 인연들에게서 그 넘칠 듯한 열망의 편린을 엿본 경험만은 있었다. 사에의 미소는 그 어렴풋한 선인들의 얼굴을 꼭 닮아 있었다. 자신이 몸 담은 업을 사랑하는 자들이 짓곤 하던 그 표정. 모르긴 몰라도 어중간한 마음은 아니리라. 실없는 소리나 더욱 하게 되는 까닭은 그러한 감정들이 제게는 막연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꽤 열심인 것 같은데 연습할 시간 뺏어도 되는가 몰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정작 그 귀한 시간 낭비하게 하는 이 상황을 퍽 즐기고 있는 듯했지만 말이다.
"멀리 안 가고 백년 전까지만 해도 남녀칠세부동석이나 사람의 귀천이 있었던 시대였다? 규범이 허락하는 안에서는 그만하면 힘낸 거지."
느긋하게 앉아서 시시덕거리던 그는 돌연 들려온 높은 탄성에 잠시 눈을 끔뻑거렸다. 뭐, 뭔데. 그렇게까지 좋아할 일인가…? 만난 이래─두 번밖에 안 되지만─ 이렇게 신이 난 사에를 보기는 처음이라 외려 그가 당황했다. 그러던 것도 잠시 후다닥 시키는 일 할 준비 끝냈다. 앞으로 할 그게 뭔지도 몰랐기에 해맑을 수 있었다.
"아니?"
듣기만 해도 신나지는 않았지만 현대식으로 제대로 체계 잡힌 트레이닝은 한 적 없고 할 필요도 없었던 몸이다. 누군가는 듣고 비명을 지를 도구들과 운동 구성이 나열되어도 그는 무엇이 끔찍한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었다. "어, 이렇게?" 바보 같은 도깨비…… 그러니까 이번에도 뭘 모르고 얌전히 시키는 대로 하고 있다. 허리 펴고, 바르게 앉아서 팔을 이렇게 해서 바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