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는 얌전히 손등을 내밀고 싱글싱글 웃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쉽게 보여주지 않는 표정이었다.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던 리오의 디폴트 표정은 차갑고 냉랭했으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렵고 일순 무서워보이기도 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속내가 그렇지 않더라도 겉으로 보이는 표정은 그런 것이었다. 손등에 스티커가 하나하나 붙을 때마다 리오는 '하나, 둘,' 하고 숫자를 세었다. 총 일곱 장. 리오는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서 자신의 가방으로 향했다. 가방 안 쪽에서 다이어리 한 권을 꺼내고는 받은 스티커 하나 하나를 정성스레 붙였다.
" 이거봐 하레하네, 엄청 많이 모았어! "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부터 모아왔던 것이다. 한 장 두 장 모으기 시작한 것이 이렇게 되었다. 무엇이던 그 안에 담긴 의미가 중요한 것이였다. 리오는 이제 조금 해져버린 스티커들을 눈에 담고 한 차례 손으로 얌전히 쓸어보고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눈을 또 빛냈다. 스티커를 더 받고싶다면 칭찬 받을 일을 말하면 되는거잖아.
" 그리고 오늘은 자.. "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는 말을 삼켰다. 그러니까, 오늘은 한 번도 스스로를 상처입히지 않았다는 말을 하려고 했다.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도 여력도 되었지만 단 한 번도 손에 날카로운 것을 쥐고 제 몸을 상처입히는 자기파괴적인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했다간 하네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고 변해가겠다고 스스로와 약속했으니까.
" 자,잠자리! 잠자리도 내가.. 이렇게 다 만들었어! "
어버버 하면서 말을 바꾼 리오는 깔아놓은 이부자리를 가리키며 조금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식은땀이 날 뻔 했다. 리오는 다이어리를 들고 또 한번 에헤헤- 하고 헤실헤실 웃으며 하네에게 다가갔다. 예전에는 조금 더 이렇게, 해주는 느낌이었는데 또 해주진 않으려나. 리오는 그렇게 생각하며 어릴 적을 생각했다. 그 때는 몇 번인가 머리도 쓰다듬어줬던 것 같았는데.
어쩌다가 이 자리에 앉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싶었다. 물 흐르듯이 흘러와서 한 자리를 잡고 앉았고 리오는 모든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친구라고 부를 만한 이는 치아키 한 명 뿐이었기에 조금은 차갑고 어찌보면 무서운 눈으로 가만히 상황을 관망하던 리오는 자신에게 질문이 오자 짐짓 당황한듯 눈이 동그랗게 되었다.
" 아, 응. 나도 대답,하는거구나. 응... 어, 음, 그러니까... "
잊고 싶지 않은 기쁜 기억이라. 리오는 마스크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끈이 끊어졌고 '아..' 하는 작은 탄식과 함께 맨얼굴을 드러낸 리오는 조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음... 잘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나는건.. 냉장고에서, 친구가 꺼내줬을때. 응. 그 때 나, 정말 엄청 무서웠거든. 그래서 지금도 좁은 곳은 못 들어가. 아무튼.. 정말 무서웠던 곳에서 나왔을 때는 정말 기뻤던 것 같아. 이제 살 수 있다- 고 생각해서. "
리오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그럼 내가 질문하는거야? 하고 말하곤 '잠깐만' 이라는 말과 함께 스마트폰을 빠르게 뒤적이기 시작했다.
" 첫..키스..를 해본 적이 있나요? 있다면.. 어디서 어떻게 했는지.. 없다면 당신의 판타지?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
이런건 인터넷 뒤져봐도 안 나오는데. 리오는 또 다시 잔뜩 당황했다. 진실게임이라는 것은 진실만 말해야 하는 게임. 그럼 자신의 이상형은 누구일까. 사실 제대로 생각해본 적 조차 없다. 조금만 잘 대해주면 금방 마음을 내어주고 거기서 조금 더 잘해주면 몸도 마음도 전부 내어주는 타입이었으니까. 그에 따른 집착이라던가 과시욕 같은 것은 상대가 알아서 해야할 일이고. 리오는 일단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말하려 했다.
" 음.. 으음... 우선은 무엇보다, 날 외롭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응. 갑자기 연락이 끊긴다거나 자꾸 나한테 숨기는게 있다거나.. 자꾸 외롭게 하면 나 진짜 죽어버릴거니까. 응. 그리고- 잔뜩 귀여워해주는게 좋아. 안심되게 해주면서 계속 좋다고 표현해주는 게 좋아. 나도 그렇게 할테니까 똑같이 해줬으면 좋겠어. "
조금 신나서 말해버렸나. 리오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뭔가 좋은 게 생각났다는 듯 아! 하고 짧은 탄식을 뱉었다.
" 내가 사랑한 만큼 사랑해주면 좋겠어. 응. 그렇지 않으면 - 글쎄, 죽어버리려나.. "
등가교환이 되지 않아 죽었답니다- 하고 말하면서 말이지. 리오는 이제야 분위기가 조금 편해졌는지 어깨를 으쓱하곤 다음 질문을 찾아 다시 핸드폰을 뒤적거렸다.
" 음.. 적당한 게 없네.. 좋아. 내가 직접 생각하겠어. 으으.. 으으으... 자신의 가장 '매력적인' 신체부위는 어디라고 생각해..? 자신있는 말고, 매력적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