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뇨 그것도 그것대로 나쁘지 않네요! 여선이 쪽을 보면 국내에도 시체칼날 쪽 세력 쪽 움직임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근데 접근할 방도가 없다고 생각했었음)(웨냐...여선이가 암만 수다쟁이라도 아직 그런 목격담까지 해줄 정도로 강산이랑 친하진 않은 거 같다고 봤거든요...)
1. 저명한 대학 교수인 오토나시 슈지音無 修二와 그의 아내이자 여류작가인 오토나시 아츠코音無 敦子(참고로, 아츠코의 결혼 전 성씨는 와타누키四月一日었다.)의 딸은 14세가 되는 날 갑작스럽게 의념을 각성하였다.
비각성자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 의념 각성자가 되는 것 자체는 요즘 세상에서 결코 이상하다거나 특이한 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불행하게도 딸아이는 각성 이후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부모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고한 것이다.
“ 나,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 ”
한 가정에 닥친 불행의 시발점이었다.
2. 불교의 영향이 강했던 마도 일본에서 전생転生이라는 사상은 낯선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종교적인 관점에서 한 이야기일 뿐, 사회 통념적인 관점에서는 경우가 다르다. 삶의 시곗바늘을 움직인다는 것은 시간계 의념 각성자조차도 불가능하다고 정의된 영역. 그 영역을 침범했다고 주장하는 하나뿐인 딸을 위해서 오토나시 슈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신축 맨션의 고층에서 구축 맨션으로, 그리고 또 아파트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지면서 환경 또한 열악해졌다. 밤늦은 시간에 일하기 위해 집을 나서고 해가 뜬 다음에야 비척비척 돌아오는 이웃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말을 걸어보지 않아도 유추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부부는 괜찮다 생각했다. 딸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원래의 삶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무의미한 심리 상담과 종교 단체의 방문이 반복되는 나날. 머지않아 오토나시 토리는 멋대로 활주로에서 이륙해 고도 35,000피트 상공을 비행하기 시작했다. 등굣길에 나서는 척 밖으로 나와 근처의 게임 센터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낸다. 그러고선 이름 모를 싸구려 담배 따위를 꼬나물고 다시 아파트로 돌아와 옆집 문을 두드린다. 인기척조차 없자 토리는 현관을 발로 몇 번 찼다. 이웃은 그제야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아 부스스한 모습으로 문을 열어주었다.
3. 옆집 청년의 이름은 쿠로가와 카오루黒河 薫었다. 그 또한 다른 이웃과 다를 바 없이 새벽 늦게 일터에서 돌아와 해가 중천에 떠서야 일어나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는데, 재수가 없게도 카오루가 기르는 고양이가 토리의 마음에 쏙 드는 미묘이기 때문에 오전 10시쯤에는 늘 이런 수난을 겪어야 했다.
“ 또 담배 폈구나. 폐에 안 좋아. ” “ 의념 각성자라 상관없어. ” “ 간접흡연도 몸에 안 좋대. 일반인이어서 가련한 날 생각해주라. 응? ” “ 리리는 내가 담배 펴도 좋아해 줘. 리리야, 그치? ”
그러거나 말거나. 오토나시 토리는 35,000피트에서 쉽게 하강할 생각은 없었다.
4. 쿠로가와 카오루는 고리타분한 슈지의 통념과는 다르게 꽤 순박하고 성실한 청년이었다. 시모노세키의 명문가 도련님이었다고 했나. 도쿄에 있는 대학을 나오고 좋은 회사에 들어갔다고도 했다.
“ 그런데 지금은 왜 이 모양 이 꼴로 사신담? ” “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뛰쳐나왔거든. ” “ 왜? ” “ 음악... 을 하고 싶어서. ”
헤. 토리는 마음에도 없는 추임새를 예의상 넣어주면서 캔맥주를 땄다.
학생 시절부터 가문 사람들의 기대가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심성이 그것을 견디지 못하였기 때문에,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살아간다면 누구보다 편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있는 힘껏 달아난 겁쟁이라고.
“ 아니아니. 안 믿기겠지만, 대회에서 우승도 해 봤는걸. 나름 잘 나가는 밴드 소속이었다니까? ” “ 지금은 아니잖아. 호객행위 하는데 그 잘난 목소리와 얼굴을 활용하고 계시면서. ” “ 너무한데... 그래도 후회는 안 해. 포기도 하지 않았고. ” “ 음악을? ” “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
나 같은 낙오자도 편히 있을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어서. 카오루는 뜬금없이 그런 말을 내뱉었다.
“ 그런 곳이 있다면 분명 낙원이라고 부르지 않을까. ”
5. “ 여름인데 우리 토리 아가씨는 어디 다른 곳에 놀러 갈 생각 없으실까? ”
오토나시가가 아파트로 이사 온 지 2년하고도 3개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동안 멋대로 집으로 쳐들어오는 오토나시 토리를 향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쿠로가와 카오루는 그렇게 가벼운 불만을 풀어놓았다.
“ 없어. ” “ 왜. 바다라던가... 기분 전환도 할 겸 좋잖아? ” “ 여기서 에어컨 바람 쐬면서 리리를 쓰다듬는 게 내 기분 전환이야. ” “ 그것보단 축제라던가. ” “ 같이 갈 사람도 없는걸. ” “ 축제는 혼자서도 괜찮아. ” “ 조만간 애인이라도 집에 부를 예정인가 봐? ”
완강한 토리의 방어에 카오루는 머지않아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
“ 실은 예전 밴드원이 새 밴드를 만들려고 한다고 연락을 해와서... ” “ 응. ” “ 합류할 생각이 있냐고 물어봤거든. ” “ 그래서 이 집에 밴드원을 불러 화끈하게 연주라도 하시겠다? ” “ 아니. 집에서도 연습을 하고 싶은데. 네가 있으면 부끄러워서... ” “ 뭐가 부끄러워? 예전에 대회도 나갔었다면서. ” “ 아니아니아니. 이왕 노래하고 연주하는걸 볼 거라면 무대 위에서가 멋지잖아. ” “ 이해 안 돼. ”
퉁명스럽게 답변을 하며 토리는 들고 있던 고양이 장난감을 내려놓고선 현관으로 걸어나갔다.
6. 오토나시 부부는 전혀 눈치챌 수 없었지만, 전생前生의 기억 따윈 토리에게도 불행이었다.
전생의 가 마지막으로 빈 소원 따윈 토리에게는 저주나 다름없다고. 이미 일어난 일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느냐고. 나 혼자서는 결코 바꿀 수 없는 일이라고. 토리는 그렇게 외치고 싶었고 어쩌면 외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할 순 없었다. 오토나시 토리도 낙오자로 살고 싶었다. 전생의 자신이 멋대로 현생의 자신에게 해버린, 부담스러운 기대 따위는 저리 치워버리고 훨훨 날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카오루는 겁쟁이라고 말한 것치고는 필사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는구나. 그런 망연한 생각이 들 때마다 숨을 쉴 수 없었기에
7. “ 토요일의 스미다가와는 싫어. 폭죽 축제가 열리잖아. ”
오토나시 토리는 그로부터 한 달 뒤에야 쿠로가와 카오루의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 그래서 내일로 공연 날짜를 잡은 거야. 사람들도 많을 테고. ” “ 난 안 가. ”
올 거 다 알아. 카오루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런 말까지 꺼낸다면 정말로 토리가 오지 않을까 봐 그저 미소만 지어 보였다.
“ 그럼 오늘은 쉬겠네? ” “ 응? 아니. 출근해야지. ” “ 그럼 선심 써서 일찍 나가줄게. 내일 봐. ” “ 거 봐. 꼭 올 거면서. ”
베에. 메롱을 하며 토리는 고개를 휙 돌리고 집을 나섰다. 현관문을 재빨리 닫았는데도 카오루의 웃음 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8. 스미다가와 강변의 폭죽과도 같은 소리와 섬광이 신주쿠에서 튀어올랐고
9.
10. 오토나시 토리는 금요일 밤의 뉴스 속보를 보지 못했다. ... ......보지 않았다.
11. “ 리리... ”
오토나시 토리는 리리라 이름붙여진 고양이를 마지막으로 꽉 끌어안았다. 쿠로가와 카오루의 혈연은 아직도 시모노세키에 존재하나 그들 중 누구도 장례를 치루어 줄 생각이 없는 자였기에 리리 또한 거두어 주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부드러운 흰색 털에 눈물이 흘러내리는 뺨을 비비면서 작게 흐느끼던 소녀는 생각한다.
평생 인간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온 자그마한 고양이가 어느 날 길거리로 내쫓기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