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마법을 보이게 될 상대가 너일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 누구에게 마법을 보이게 되는 것 자체를 상상하지 못했지. 보이는 눈이 없도록 대실한 커다란 대련실. 여러가지 조치가 가해진 덕에 상처가 나더라도 대련실 밖으로 나가면 그 정도가 완화되고... 미리내고, 특별반이 아니었다면 대실에만 전재산을 털어넣어야 할 것이었다.
"그럼 먼저 선언하도록 하지. 나는 하유하. 이경운의 유지를 이은 자. 뇌전의 세상을 심장에 벼려낸 마법사. 내 앞에 선 그대는 누구인가?"
강산은 시뮬레이션 룸을 쭉 둘러본다. 한동안 잊고 있었다가 현준혁 덕분에 떠올린, 훌륭한 대련 장소였다. 다양한 환경을 설정해서 대련할 수도 있는 장소이지만, 방 자체도 상당히 튼튼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오늘은 별다른 설정을 하지 않을 것이지만, 사적으로 대련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 이 곳을 찾았다.
그 시선은 이제 유하를 향한다. 마도사가 아니라 마법사...인가. 강산의 눈에 놀란 기색이 잠시 지나간다. 그에겐 마치 전설과도 같은 존재들이었으니. 그래도 놀라 호들갑 떠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기도 한다.
"나는 주강산. '서계가혼' 주혜인의 아들이며, 대마도사 주문형의 비공식적인 제자다."
그것이 네가 원하는 바인 듯 하니. ...사실 장단을 맞춰주는 것에 의외를 뒸기 때문에 그리 대단한 내용은 아니라고, '백두'를 꺼내들며 강산은 생각했다.
이제야 겨우 한발자국 따라잡고 길을 얻었을 뿐이다. 벌써부터 나의 마법이 천경동지할 경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저, 같은 길드원들의 뒷모습이라도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하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다. 대마도사의 제자, 마도의 수준은 저번 대련보다 더 높아졌을 것이고 비전마도를 더 익혔어도 이상하지 않다. 초반은 경계하면서 가는게 옳지.
"시작하자."
눈을 뜨며 유하는 손을 하늘로 뻗는다. 심장의 효과로 가장 큰 차이를 갖게 된 것은 속도. 떠올리는 것은 다섯갈래의 뇌전. 썬더콜링의 천둥가닥이 강산의 주변을 두른체 쏘아진다.
유하는 첫 수가 좋게 풀렸음에 웃음기있는 얼굴로 대답했지만, 이어오는 공격에 눈쌀을 찌푸렸다. 뇌전에 서원한 마법. 더이상 예전처럼 다양한 속성의 마도를 상황에 맞게 구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뇌전은 물리력이 낮고, 그에 따라 날아오는 공격을 막는 방법은 번개로 저것을 태우는 법 뿐. 그마저 먼지는 날아와 시야를 막고, 시전에 따른 딜레이에 상대의 마도가 시전될 것이니 악수다. 빠른 시간 안에 계산을 끝낸 유하는 몸을 낮추고 꼬리를 이용한 반발력으로 옆으로 뛰었으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 흙덩이에 몸이 일순 휘청였다. 제길.
하나의 마도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엄폐물 생성과 동시에 공격이 이루어졌다. 마도의 기본 역량만으로도 위협적이야.
"다음 간다?"
손을 앞으로 뻗자, 유하의 앞에서 전격들이 작은 파도와 같은 형상으로 상대에게 쏘아진다. 썬더콜링은 다시 해봐야 흙더미에 막힐 것이니 망념 상승을 감수하고서라도 범위를 때릴 기술을 이용하는 수 밖에.
높은 향상심에 웃음을 지으며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한다. 그간의 수련에서 신체 능력도 올랐나? 담벼락에 올라서서 자신의 마법을 물리적으로 뛰어넘는 모습에는 미간이 좁혀진다. 아니야, 신체능력이 좋았더라면 굳이 방금 공격을 마도와 병행해서 회피하지 않고 피할 수 있다. 발동속도도 내가 더 빨라. 그렇다면 간격을 좁히는 편이 더 좋겠네.
이윽고 칼바람이 날아온다. 바람. 거지같은 속성. 눈으로 보이는 일렁임을 한순간에 포착해야 범위와 속도를 계산하고 회피나 방어를 고려할 수 있다. 지금도 몸을 날려 피한다면 분명히 속성에 대한 제한을 눈치채겠지. 아니, 어쩌면 마법사라고 읊은 그 순간부터 알았을지도 모르고. 허나 더 좋은 다른 수는 없다. 마도역분해도 불가능하니, 무식한 교환비의 망념으로 공기를 태워 바람을 내 상쇄하거나 피하거나.
-팟
몸을 날려 주강산에게 뛰어간다. 삭- 하는 소리와 함께 흙덩이에 맞았던 부위를 칼바람이 베어 지나간다. 거지같은 바람 속성 마도의 계산을 잘못한 탓이다. 흙더미... 계속 주위만 사용하고 있었지? 유하는 다시금 손바닥을 뻗어 썬더콜링을 부른다. 120도 각도로 노린 직선적인 3갈래, 그리고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하되 아래에서 나가는 전격은 시간차를 두도록 한다.
유하가 강산의 말을 오해하려는 기미가 보여서 강산은 어색한 표정으로 답한다. 그러나 설명하기엔 여유가 많지 않다. 강산의 공격을 맞는 것도 감수하고 유하는 이 쪽으로 뛰어온다. 강산은 유하의 동작을 살피다가 마도를 시전하려는 낌새를 보이자, 흙벽 아래로 뛰어내리며 공격을 피하려 한다. 유하의 등 뒤로 넘어갈 생각으로, 의념보로 허공을 밟고 도약하려는 순간-
"큭!"
-유하가 시간차를 두고 아래에서 쏜 전격이 그와, 그가 서 있던 흙벽을 맞춘다. 사이에 붉은 것이 끼어들었지만, 강산은 유하의 근처로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아이템 좀 썼다고 뭐라하지 말어."
유하를 뛰어넘지 못하고 착지한 강산의 옷깃 아래에서, 적룡공훈장에 박힌 붉은 보석이 반짝인다. 화염 보호막은 유하의 공격과 무너지는 흙의 파편을 대신 맞고 흩어졌지만, 그마저도 없었으면 낙법이고 뭐고 없이 그대로 땅에 엎어졌겠지. 자. 이제 어떻게 한다?
//8번째. ▶ 적룡의 눈 - 전투 중 한 번, 망념을 50 증가시켜 발동할 수 있다. A랭크 상당의 화염 보호막이 발동된다. 보호막은 파괴되기 전까지 유지된다.
하지만 아이템을 구비하는 것도 실력이니 뭐라고 하지 않는다. 아서 아저씨만 살아계셨으면 나도 아이템 하나 정도 더 뽑는건데 아. 이번의 마도는 예상대로 먹혀들어갔다. 저 붉은 보호막만 아니었다면 확실한 데미지가 있었겠지만 어쩔수 없지. 옷깃 아래에 반짝이는 붉은 보석. 아무래도 저게 그 원흉인것 같은데... 우선 보석은 깨지지 않았다. 단발성이 아니라는 이야기. 그렇다면 횟수의 제한이 있나? 아니라면 마도진처럼 망념을 코스트로? 알 수 없지만 저 방어막을 뚫고 공격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
거리는 좁혀졌다. 다시 한 번 썬더콜링을 해야 하나, 아니면 다른 수법을 적용해야 하나. 같은 기술을 계속 사용하기에는 너무 밑천이 없어 보이지. 유하는 손가락을 튕겨 뇌전의 사슬을 일으킨다. 가까운 거리의 상대를 옭아멜 수 있도록 빠르게 날려보자.
//9 방어도 힘든 뇌전속성 마법사 살려 더블캐스팅도 모르고 있으니 이제 정말 질 일만 남아서 나는 두려우....
뇌전의 사슬이 상대를 옭아메고 백두는 상대방에게서 멀어진다. 염동 마도에 맞아 날아가면서도 관찰해낸 사실이었다. 유하는 공중에 붕 떠서 켁 하고 앓는 소리를 내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한 두 바퀴 굴러가 정신을 잡기 힘들었지만, 분명 동시에 시전된 마도.
"너, 쿨럭, 아우.,. 더블 캐스팅 익혔구나?"
대단한걸, 하고 소매로 눈가를 가리는 흙더미를 닦아낸다. 흙벽이 올라와 강산은 노리기 힘들다. 공중이나 후방에서 나올 마도에 유의할테니 당연히 맞질 않겠지. 하지만 주무기를 손에서 놓은 이 순간만큼 적절한 순간이 없다. 상대는 반드시 백두를 다시 찾으려 할 것이니까. 실용적 이유에서든, 심리적 이유에서든. 단발적인 공격을 하기에는 어떤 방법으로 백두와 접촉할지 미지수다. 흙벽을 세워 걸어갈수도 있고, 아니면 바닥을 쳐서 백두를 옮길수도 있고, 백두에 마도를 걸어 이동시킬수도 있는데 이 모든 것이 더블캐스터인 상대라면 공격과 병행할수 있는 행동이다.
"....좋아, 나도 무언가 하나 보여주지."
머리가 핑하고 돌며 눈 앞이 깜깜해지는 감각, 망념이 급하게 사용될 때의 느낌이다. 심장 박동에 따라 나오던 뇌전이 몸을 타고, 나아가 필드를 집어삼킨다. 영역새진 - 뇌전. 속성 친화력에 더불어 마법사적 감각이 훨씬 날카로워졌지만, 이거... 기술 두어개가 한계이겠다.
늦은 시간까지 괜찮으신가 강산주? 더블 캐스팅을 눈치 못 챈건 마도역량이 늘어서 그런거 아닐까 하고 착각했기 때문 //
"긴가 민가 해서."
살짝 웃었으나 투둑 하고 떨어지는 코피에 표정을 바꿨다. 이번이? 아니면 다음이? 한계가 너무 빨리 온다.
"아-."
백두를 챙겨 거리를 벌리는 주강산. 좋은 선택이다. 가까이 싸운다면 캐스팅 속도가 빠른 내가 어떤 마법을 구사할지 모르니까. 하지만 지속적인 공격이나 엘 데모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신경쓰이는-, 아니야 이런걸 신경 쓸 시간이 아니다. 유하는 눈쌀을 찌푸리며 침을 힘을 줘서 삼켰다. 아, 숨쉬기도 힘드네. 도망가는 상대의 도주로를 예상해본다. 바보도 아닌 이상 직선으로만 도주할리 없다. 길을 걸어가며 마도도 사용하여 변칙적인 이동을 하겠지. 그렇다면 시간이 얼마 없는 내 입장에서는....
전과는 달리 공기를 찢는 소리가 나며 썬더콜링이 날아간다. 주강산에게 둘 백두에 둘. 시간차를 두어 백두에, 강산에, 그리고 동시에 두 발. 이걸 버티면 나의 승리는 물건너 간것으로 봐야지
//썬더 콜링(A) 의념을 통해 적을 지정한 직후 좌표에 아주 빠른 속도의 뇌전을 내려꽂는다. 뇌전심장(D) 마법의 발동 속도가 크게 증가 영역 개진 - 뇌전(E) 시전자의 마법 대미지를 크게 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