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단어 하나를 내뱉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문이 덜컹거리는가 싶더니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손에 쥐어진 문고리와 문짝을 보던 그는 일단 안으로 들어오더니 적당히 문을 끼워 맞춰본다. 당연하지만 경첩 부분이 통째로 뜯겼으니 맞춰지더라도 예전처럼 열리고 닫히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쨌든 문짝만한 인간이 깡통같은 투구를 뒤집어 쓴 채 씨름하고 있는 걸 보면 정상은 아니다. 게다가 움직임에 따라 허리춤에 걸려 있는 플레일이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바닥을 긁어대니... 비싼 건물에 혼갖 흠집은 다 내고 있다.
"뭔 놈의 문짝이 이래!"
조용하다가도 이런 소란을 들으면 짜증이 나서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인데, 누가 보러 올거라는 생각은 없는지 계속 소란을 피워댄다.
크게 터지는 폭발음의 주변에 있던 행인들이 우왕좌왕 흩어졌다. 주변을 가득 메우는 비명에 심기가 불편해졌다. 게다가 폭탄이 터지며 생긴 흙먼지가 바닥에 떨어졌던 케이크는 물론이고 샐비아의 원피스에까지 내려앉았다. 그 모습을 보고 깊게 한숨을 쉬며 두 손으로 원피스 자락을 들다가 툭 떨어트린다.
"...이건 다시 입을 수도 없겠어요"
중얼거리더니 도망가던 행인 한 명의 어깨를 잡아서 자신의 앞으로 끌어와서 휴스턴의 총알을 막았다. 그대로 쓰러진 행인은 신경 쓰지 않고 휴스턴을 보며 까칠하게 쏟아붙였다.
시끄러운 소리에, 나타난것은 유토였다. 그녀는 뭔데 이렇게 시끄러워- 하고 나와본듯 했는데. 그 주범으로 추정되는 이반이 문짝을 포함해 바닥도 긁어대고 있는걸 보자 기분이 살짝 나빠졌는지 볼을 부풀렸다. 그 이후에 이어진 행동은 매우 섬광과도 같아서. 뒤에서 냅다 이반을 발로 차버린것이다. 꽤나 제대로 된 타격이겠지만, 상대가 재생 능력자이기도 하니 거리낌이 없어보인다.
격전 이후, 발달한 의료 덕에 살로메는 말끔한 얼굴로 아지트를 누볐다. 다만 오늘은 시야를 한가득 메운 박스들에 의해 걸음이 제한된 점이 달랐다. 두 팔로 양껏 안아듦에도 허리는 꼿꼿이 핀 채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는데 자꾸만 발치에서 무언가 툭, 툭, 걸렸다.
정면은 거의 보이지 않아 천장을 겨우 보고 가느라 아지트의 어느 지점인지도 모르겠다. 나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니. 속으로 스스로를 한탄하는데 위태롭던 형체는 결국 일을 치렀다. 발목에 무언가 닿았고 놀란 나머지 무거운 박스들도 놓친 채 바닥을 나뒹굴게 됐다.
쿠당탕-! 엄청나게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찧은 엉덩이를 살살 매만지던 살로메는 눈쌀을 찌푸리며 박스 더미 사이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상자 안에 담겨있던 총기며 칼이며 각종 둔기들은 이미 쏟아졌고 그 주위에는 상자 안에 있던 게 아닌 웬 고철 같은 것들도 흩뿌려져있었다.
"아야… 이게 무슨 품위 없는 꼴이람. 이게 뭐야, 고철?"
로봇의 한 부위로 추정되는 것을 검지와 엄지로 들어 들여다보며 고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은 방의 주인이 분노하리란 건 생각도 못하고 있다는 듯이 한가롭게….
전혀 아니다. 경첩이 있던 자리가 파여서 조금 더 안정적으로 걸쳐지게 됐을 뿐인데 그걸 알아채거나 했으면 진즉에 멈췄을 거다. 아무튼 계속 씨름을 하던 이반은 소음 사이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갤 돌리려고 했다. 왜 '돌리려고 했다'냐면,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문짝과 함께 바깥으로 튀어나갔기 때문이다.
"크아악 젠장! 허리가 부러졌잖냐!"
문 위에 엎어져서 바닥에 딱 붙어버린 이반이 통증에 겨운 목소리를 냈다. 쇼크로 기절하거나 잘못하면 불구가 될 만한 부상...일지는 잘 모르겠다, 진짜 허리가 부러졌다기보단 단순히 꺾인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엄살일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타격이 가벼운 건 아니었기에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일어서니 우두둑, 하는 소리가 들린다. 뼈가 다시 맞춰지는, 혹은 근육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일어선 이반은 자신을 걷어찬 유토를 돌아본다. 헬름이 목의 움직임을 따라 돌아가고 마찬가지로 붉은 안광도 따라 움직인다.
"그럴 줄 알고 내가 수리하고 있었다만! 하하, 돈도 아끼고 좋은 일 아닌가?"
문이 사정없이 찌그러졌지만 자신이 수리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자랑스러운지 그렇게 말하며 손을 탁탁 털었다. 한 것도 없으면서...
엄청난 소리와 함께 살로메가 넘어지고, 엉망진창이 된 풍경에서 한가롭게 로봇의 부위를 만지고 있는 그 광경은 얼마 안 있어서 라프람에게 보여지고 말았다. 다만 어디 나갔다 왔는지 입구쪽에서부터 말이다.
이게 또 무슨 꼴이냐는듯한 표정이었지만. 다행이도 화가 난거 같지는 않다.
"뭐하고 있어, 일어나."
그것은 살로메에게 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살로메가 보고있던 부위 ㅡ 정확히는 손가락 부분 ㅡ 부터. 치잉- 하는 효과음과 함께 기계만이 할 수 있는 각도로 꿈틀거리더니 그대로 상자 더미에서 일어난것이다. 그것은 라프람이 자주 데리고 다니는 두대의 메이드 로봇 중 한대였다.
문득 뒤편에서 들려오는 사람 목소리에 로봇을 집은 채 고개만 뒤로 올려보자 시야에 담기는 녹색 포니테일의 여성. 자신이 방을 이 꼴로 만들어놨음에도 평온해보여 다행히라고 여기며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
때마침 제 검지와 엄지 사이에서 느껴지는 미동에 화들짝 놀라고, 그 원형을 직접 목격하지만 않았더라면. 어버버한 낯으로 벙찐 채 주저앉아있었다. 삼 초정도 지났을까 살로메는 그제서야 일어섰다.
"이런, 라프람이라 했었나요. 당신의 방을 엉망으로 만들어 미안해요, 책임지고 치울게요."
다리를 덮은 스커트를 툭툭 털어내며, 고철이라 지껄인 것이 언제인지 드물게 정중히 사과한 살로메는 박스 안에 쏟아진 무기들을 야무지게 던져 골인 시키고 있었다. 다뤄본 적이 없는지 매우 무신경한 손짓이었다. 무기들은 대부분 중장거리 공격 위주의 무기로 총은 물론이며 기다란 밧줄이나 끝에 날이 달린 채찍같은 류 등 다양했다. 그렇게 물건을 도로 집어넣다가 문득 메이드로봇을 쳐다보고는 물었다.
"이 메이드로봇, 총을 쐈었죠?"
위험천만한 이곳에서 무기란 제 옷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중 단연코 단골인 무기는 총기, 멀리서도 쏠 수 있고 빠르고 확실한. 아발란치 조직원들도 총기를 쓰는 걸 많이 목격했었다. 고요히 응시하는 눈에 여러 생각들이 지나갔다. 총기를 다룰 수 있다면, 총기를 가진 자들을 상대할 수 있다면. 그런 것들.
무너진 건물을 보며 손수건으로 먼지를 털어내고 등을 돌렸다. 이정도로 터트렸으면 움직이지 못하거나, 목숨이 끊어졌을 것이다. 옷을 갈아입고 다시 가게로 가서 케이크를 포장하려면 얼마나 걸릴지 계획을 짜고 있던 중, 들리는 목소리와 함께 총알이 복부를 스쳐가자 몸을 돌렸다.
"보통 이정도면 다시 결투를 청할 생각을 하지 않던데. 신기하네요?"
총알에 스쳐서 피가 툭툭 떨어지며 원피스를 적혔다. 상처에서부터 퍼지는 고통에 옅게 인상을 쓰면서도 호기심 서린 눈으로 휴스턴을 쳐다보았다.
"평소라면 더 같이 시간을 보냈드렸겠지만, 오늘은 좀 바빠서요. ...피도 튀겨서 기분이 안 좋으니까 빨리 끝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