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5 이상향에 무의식적 반감이라. 혹시 계속되는 가디언즈의 추악한 모습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요? (갸웃) 악몽을 꾸는 편인 것은 이전에도 살짝 거론된 것이 있는 것 같은데... 역시 마음 속 상처가 너무 큰 것 같아요. 아버지라던가. 아버지라던가. 아버지라던가. (옆눈) 그리고...ㅋㅋㅋㅋㅋㅋ 아니. 그렇게 멋쩍게 웃겠다 이거지?! 어?! 어?! (빤히 바라보기)
누구에게나 과거는 있다. 레레시아와 라라시아에게 그런 과거가 있었듯. 누구에게든 지나온 시간이 있으며 그 시간이 지금의 자신을 목 조르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러니 이번 소란도 그 과거의 일환이리라. 쌍둥이 자매의 판단은 그러했다.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니까 거기서 왜 그걸 고르냐고." "마지막 하나라는데 안 고를 수가 있어?" "아 진짜 멍청해서 짜증나." "이해 못 하는 네가 더 짜증이야."
이스마엘이 탈주했다. 같이 파견된 대원들을 죽이고 제- 라는 인물까지 죽음의 문턱까지 밀어놓았다. 그로 인해 아지트 내의 분위기는 해일이 휩쓸고 지나간 것 마냥 뒤집어졌으며 관련된 인물들의 분위기는 두 말 할 것도 없...을 것 같았으나. 레레시아와 라라시아는 평상시와 다를게 없었다. 평소처럼 투닥거리며 활동하고. 외출하고. 심지어 간식거리까지 사와 휴게실로 유유히 향했다.
"어. 쥬 있었네. 안녕." "안녕. 좋은 오후야?"
노크도 없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간 휴게실에는 쥬데카가 먼저 와 있었다. 자매는 평소마냥 인사를 하고 받아주건 말건 안으로 불쑥 들어갔다. 레레시아는 좀 전에 사온 과자와 초콜릿 상자를 들고 빈 소파에 앉았고. 라라시아는 전기 포트가 있는 쪽으로 가 물을 담아 올리고 찻잔과 티백 등등을 꺼냈다. 지극히 평화롭게 일과 중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둘 중 쥬데카에게 말을 건 쪽은 라라시아였다.
"쥬-군. 너도 홍차 마실래? 티백이지만?"
마실 거면 같이 준비해 주겠다며. 언제나와 같은 라라시아의 말투와 목소리가 말을 걸어온다. 레레시아는 소파에 털석 앉아 먼저 과자를 집어먹고. 마치 둘에게는 지금의 분위기가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휴게실에 앉아서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를 한 모금 마신다. 잔을 내려놓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멍해지는 듯해 초점이 살짝 흐려진다. 우유가 담긴 잔 외에는 흐려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즈음 휴게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목소리에 너는 시선을 돌렸다. 흐트러졌던 초점이 휴게실로 들어온 두 사람에게 맞춰지고.
"아, 네... 좋은... 음, 오후입니다."
좋은 오후라... 누군가에겐 그렇겠지, 그러나 너는 아마도 좋은 오후라는 생각은 안 든다. 가장 큰 건 아무래도 이셔의 탈주 소식이겠지. 너뿐만 아니라 지금은 에델바이스 전체가 불안정했다. 배신자... 동료를 처참하게 뭉개고 도망쳤다... 다만 그런 분위기가 모두에게 있는 건 아닌 듯해서, 평화로운 휴식을 취하는 듯한 두 사람을 보는 눈이 멍하다.
"...감사합니다."
홍차 티백, 따뜻한 물에 우려서 먹는 게 맞겠지만 너는 별 생각 없이 따뜻한 우유 안에 티백을 집어넣었다. 이렇게 되면 밀크티인가? 그런 실없는 생각이 피어올라 다시 우유를 빤히 쳐다보다가는.
휴게실에 미지근한 우유향이 난다 싶더니 쥬데카가 데운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그래도 뭐. 자매가 마실 것 타는 김에 같이 해주냐고 물은 거였는데. 티백을 그대로 가져가 우유에 담가버리는 쥬데카의 행동을 보고 자매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얘 왜 이래. 뭐 그럴 만 하지 않겠어. 눈빛 만으로 의사를 주고 받은 둘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다시 각자의 행동으로 돌아갔다. 보글보글. 전기 포트에서 물 끓는 소리가 차츰 들려오는 휴게실 내에 말소리가 오간다.
"듣긴 뭘 들어? 누구? 이스마엘한테? 먼저 화요일에 시간 있냐고 메세지 보내놓고 이 사단이 났는데?"
들은 것 있냐는 쥬데카의 물음은 레레시아의 까칠한 반응이 매섭게 받아쳤다. 짜증이나 화가 났다기보단 귀찮고 성가시단 억양이 강한 말투다. 부욱. 초콜릿 상자를 뜯어 열어놓고 한 조각 집어 입으로 톡 던져넣은 레레시아가 조금 더 떠들었다.
"네가 들은게 없는데 나라고 뭘 들었겠니. 뭘 말해도 나보다 네가 먼저였겠지. 나 참. 물을 걸 물어야지. 하여간 이쪽저쪽 시끄럽고 귀찮ㄱ읍!"
넌더리가 난다는 듯이 이어지던 레레시아의 목소리는 돌연 입이 막힌 듯 끊긴다. 아니. 정말로 입이 막혀서 조용해졌다. 홍차를 타던 라라시아가 소파 뒤로 와서 레레시아의 입을 막아서였다. 뭐 하는 짓이냐고 눈으로 불만을 표하는 레레시아를 두고 라라시아가 쥬데카를 보며 말했다.
"미안. 우리도 요 근래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 많았어서 말야. 아. 이해할 필요는 없어. 그냥 그렇다는 거니까."
눈동자 색을 제외한 모든 요소가 레레시아와 판박이인 라라시아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조금 조용히 하라며 레레시아를 놔주고 포트물로 우린 홍차 두 잔을 가지고 와 레레시아 옆에 앉았다. 은은한 홍차향이 큼직한 머그잔으로부터 솔솔 피어오른다.
"음. 그래. 마침 마주쳤으니 얘기해둘까? 그 날은 고마웠어. 덕분에 돌아올 수 있었으니." "뭐야. 하필 이럴 때. 아무튼 나도 일단은 고맙다고 해둘게."
라라시아가 먼저 이전날 도움을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말을 표했다. 레레시아는 뒤를 이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짧고 간략하고 딱 용건 뿐인 감사. 그 말을 하고 자매는 각자 홍차를 마시거나 가져온 간식을 먹거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