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은 평이했다. 어쩌면 당연한,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싶은 반응에 너는 눈을 가늘게 떴다. 사실 어느 정도는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생김새가 아니다, 오랜 시간 함께했기 때문에 느껴지는 분위기와 사소한 부분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은 있었다. 별다른 준비 없이 그들의 과거를 들여다보게 된만큼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 어디부터 생각을 다듬어야 할지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었으나... 다르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보다 신경쓰이는 건..
"왜 살아있는 거지?"
어떻게? 같은 문제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왜? 그런 원초적인 감정에 기인한 질문을 던진 너는, 너무 생각대로 내뱉었다고 생각한 건지 눈을 감았다. 실언했습니다. 라며, 질문에 대답해줄지는 둘째 치고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기도 했고.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니 어째서인지 연민보다는 다른... 감정이 떠오르려고 하고 있었다. 불쾌한 감각, 분명 둘 다 네가 아는 모습이건만...
"대화를 좀 더 해보고 싶은데, 일단 그 자리에서 내려오면 좋겠군요. 둘 다."
어머님의 말씀은 잘 듣는 것 같으니, 그 정도는 해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그건 불가능하다, 같은.
"뻔한 말이나 하실 셈입니까? 최소한 자리는 비켜주셔야지요."
지금은 조금... 침착하자, 분명 이 뿌리, 그리고 이상현상이 저 여자로부터 기인된 것 같긴 하지만 저 둘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기 때문에 조금... 신중해야만 한다고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되새긴다.
눈앞의 존재는 사람인가? 아니면 사람조차 아닌가, 양극적인 모습을 가질 수밖에 없는 애초에 어긋난 존재인가? 인간이 인간을 그만두게 되었다면, 인간의 개념을 가질 수 없음을 스스로 깨달았으니 인간의 탈을 뒤집어 쓴 무언가인가? 가증스러운 몸짓과 말투에도 이스마엘은 흔들리지 않기 위해 속내를 한참이고 눌러내며 뇌 깊은 곳에서 성호를 그었다.
"그게 무슨."
자매가 눈을 떴으나 자신을 바라보던 평소의 눈빛이 아니었다. 이스마엘은 일순 저 자매를 자신이 알던 자매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저것은 인간인가? 아니면 잘 짜인 극의 인형인가? 주먹을 쥐던 손은 장갑을 끼고 있다 한들 깊게 패여 장갑 속에서 살갗이 까져 손톱 자국대로 피를 송골송골 맺기 시작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상냥한 물음, 그리고 대답하는 모습이…… 가장 바라지 않던 순간이라서. 웃음을 참는 얼굴을 향해 이스마엘의 고개가 돌아갔다.
"아니오. 마음을 굳힐 수 있어 기쁩니다."
이스마엘의 재머가 지직 대더니 웃는 표정을 그려낸다. 그리고 허리춤에 매달렸던 장신구를 손에 쥐었다. 당신이 날 위해 목숨까지 바치려 했던 것이 거짓이 아닐 텐데 어째서 여반장처럼 쉬이 뒤집어지는가. 비참하고도 비참하다. 이스마엘은 호소할 수 없다. 호소해도 바뀌지 않음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상향은 결국 이상향. 한쪽 뺨에 제 손 올리며 달뜬 숨 한번 뱉는다.
"정말 어머니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단검으로 목을 찌르던 기개는 어디로 갔지? 어디로 갔냔 말이야.."
점차 목소리가 낮아진다. 언니를 되돌려 받을 수 없다면.
"레레시아 나나리, 라라시아 나나리. 최후 통첩입니다. 지금부터 본인의 의사 표명이 없을 경우,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의 소속이 아닌 탈주자로 판단. 본대에서 탈주한 자에 대한 매뉴얼 대로 척살하겠습니다."
내가 잔뜩 사랑해줘야지.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습니다. 기밀을 알고 있고, 이는 본대에 해가 되는 존재.. 아무리 사랑한다 한들, 결국 탈주자는 탈주자니까요."
왜 살아있는 거지? 라는 그 말에 여성은 놀란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설마 그 부분을 생각할 거라곤 예상치 못 한 것처럼. 하얀 얼굴은 곧 웃음지었다. 아무것도 답해주지 않은 채.
대화할 자리는 내줘야하지 않겠냐는 쥬데카의 말에 여성은 어머어머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매우 작위적으로.
"멋대로 처들어온 건 너희면서, 나한테 자리를 비켜달라니, 뻔뻔하기도 해라. 하지만 난 상냥하니까. 기회는 줄게. 자. 얘들아."
다녀오렴.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매가 무대에서 뛰어내려 바닥에 내려섰다. 이제 특수부대와 정면으로 마주하고서. 빛 없는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그리고-
"더이상 할 얘기는 없어요. 당신들과." "무슨 얘기를 해야 하죠. 우리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고, 아무것도 들어주지 않는 당신들이.""
기계음이라기엔 너무나 선명하고 사람이 목소리라기엔 너무나 딱딱 떨어지는 목소리가 서로 입을 맞춰 그렇게 말했다. 자매, 레레시아와 라라시아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다가온다. 레레시아와 라라시아가 옆으로 손을 들자 바닥의 하얀 줄기가 검의 형상을 만들어 각자의 손에 쥐어준다. 그저 지켜보는 쥬데카와 선전포고를 내놓은 이스마엘을 향해 검을 겨누며 두 목소리가 말했다.
""당신들에게 더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그러니, 우리에게도 바라지 말아요.""
차게 식은 목소리 역시 최후통첩을 날렸다.
그 말을 내뱉기 무섭게 레레시아와 라라시아가 달려든다. 날랜 몸짓으로 거리를 좁혀온 레레시아가 이스마엘을 향해 검을 휘둘러 어깨를 베어내려 하고. 가볍게 위로 점프한 라라시아가 검을 아래로 겨누고 쥬데카를 찍어버리려고 한다.
쥬데카의 말이 옳다. 어째서 살아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스마엘은 여인이 이야기 해주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을 것임을 익히 안다. 무대로 뛰어내려 바닥에 내려서는 모습에 이스마엘은 보검을 전개한다. 무장 따위 없다. 오로지 세븐스 하나만을 강화하기 위해 손에 나이프 한 자루만 쥐여져 있을 뿐이었다.
"……."
그래.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고, 들어주지 않았지. 결국 끝까지 얘기해주지 못할 테다. 쓰디쓴 웃음이 얼굴에 어린다. 상처 입힌 주제에 잘도 데려가려 들었지, 아무렴. 그렇지만, 검을 겨누는 모습에 마찬가지로 허리와 무릎을 느릿하게 굽히더니, 최후통첩을 뒤로 나이프를 쥐지 않은 손으로 성호를 그었다. 다만 악에서..
"욕망이 언제 일방통행이었지?"
내어주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이스마엘은 가만히 어깨를 대주고는, 그대로 염력을 통해 레레시아의 몸을 그대로 굳혀버리려 시도했다. 그 이후의 공격은 없었다. 그저 속박을 택했을 뿐이지.
"나는 할 말 되게 많은데. 언니는 아닌가봐? 고작 그정도였다니까 조금 섭섭한데. 아니, 많이 섭섭한데."
어쨌든 두 사람은 내려왔다. 저 여자 곁에 앉은 게 아니라 지금 너와 이셔 앞에 서 있다. 대화를 할 수 있을지는 다음의 문제였으니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야 했다. 최종 목표는 데리고 돌아가는 것, 사살해도 좋다는 말이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 위험한 도박이었으나 끝을 보는 것은 최후의 최후여야만 한다. 최대한 전력을 온존해야 하고, 균열이 있음을 인정하더라도 그 균열로 말미암아 무너져서는 안 된다.
"그러니 저는 당신들을 데리고 돌아가야만 합니다."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으며 아무것도 들어주지 않았다는 그 말에는... 미간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지만서도. 저건 진심인가? 이미 생기를 잃고 제 의지라곤 없는 것처럼 보이는 존재의 기저에 담긴 퇴적의 증거인가? 이는 우려했던 일이었고,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도 이야기를 나누었던 참이었으나 너무 늦었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 몰랐습니다.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스스로를 내보이려고 하지도 않았죠."
왜 그랬을까요, 동료였음에도 언제든 떠나버릴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약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그러나 너는 너를 있는 그대로 내보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들이 알아채지 못했으니 언제 내보였단 말이냐 하면 당장 할 말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미 당신들은 우리가 떠나는 걸 바라잖습니까. 안타깝습니다만..."
검을 들고 네게 뛰어들어 내려찍으려는 라라시아를 보자마자 바로 두어 발자국 뒤로 가볍게 뛰듯 물러선다.
이스마엘이 피하지 않았기에 줄기로 된 검이 그대로 궤적을 그린다. 무장이 없으니 한쪽 어깨가 그대로 베였을 것이다. 이스마엘의 피가 튀었음에도 레레시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재차 검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그대로 염력에 갇혀, 검을 든 채 내리치려는 모습으로 부들부들 떨었다. 염력에 붙잡힌 채로 레레시아의 차가운 목소리가 흘렀다.
"제게 할 말이 많았나요? 그러면 어째서 하지 않았나요." "말할 수 있는 기회를 흘려버린 건 당신 아닌가요?" "제가 들을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건 당신 아닌가요?" "그 억울함이 저만의 잘못인가요? 이스마엘."
처음 이후로 단 한 번도 이렇게 딱딱히 부른 적이 없었는데. 눈 앞의 레레시아는 거리낌 없이 말하고 이스마엘의 바닥을 눈짓했다. 그러자 바로 아래에서 줄기가 위로 솟구치며 이스마엘의 다리를 뚫을 듯 올라온다.
한편 쥬데카는 라라시아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냈다. 일직선으로 내리찍은 공격이었으니 뒤로 뛴 것 만으로 피할 수 있었다. 목표를 놓친 라라시아는 바닥에 찍힌 검을 포기하고 뒤로 뛰어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새로운 검을 줄기로부터 받아 쥐며, 역시 쥬데카를 향해 말했다.
"우리는 서로를 몰랐던 것만이 아니죠. 쥬데카." "당신만이 과거를 털어놓고 편해진 주제에." "사실 우리는 어찌되었든 상관 없지 않았나요." "그러니 고작 미안하다는 말로, 당신의 과거를 받아주기만을 바랐잖아요?"
라라시아의 감정 없는 목소리가 대사를 읊듯 말을 하더니, 다시금 검을 들고 달려든다. 이번엔 정면으로 달려들어 쥬데카의 배를 찌를 듯이 검을 내지른다.
"이야~ 동료라면서 정말 개차반이었구나 너희~ 듣고 있는 내가 다 안쓰럽다~ 아하하!"
서로 교전이 오가는 와중, 저멀리 무대에서 여성이 빈정대며 비웃음을 날려온다. 여성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서 턱을 괴고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변명하지 않으려 했지만, 대화가 부족해 이렇게 된 마당에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군요."
변명이든 뭐든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오히려 변명해야 했을지도. 가능하다면 네가 그들의 분노를 받아 마땅한 존재가 되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좀 달랐을까? 너는 배를 노려 찌르는 공격을 감지하자마자 이번에도 가볍게 땅을 딛고 가볍게, 궤도의 바깥으로 벗어나기 위해 옆으로 움직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무슨 말을 하는 게 좋을까, 그 때 들려온 비웃음에 땅에 발을 디딘 직후, 쯧, 하고 혀를 찼다. 저런 게 어머니라고.
"먼저, 당신들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면 보자마자 숨을 끊으려고 했을 겁니다."
애초에 이 곳에 오지도 않았겠죠, 애초에 큰 의미가 없는 질답이었지만 그냥 넘기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았다. 어떻게든 대화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설령 그게 제대로 된 주고받음이 아니라고 해도. 당신들이 원하는 게 어떤 식으로든 나누어야 할 대화였다면 그 대화에 이르기까지 너는 응할 생각이었다. 잠시 이셔와 레시 쪽을 슬쩍 살피던 너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예전에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게 하나 있는 모양입니다. 전 당신들이 제 과거를 받아들이는 걸 강요한 적도 없고 당신들에겐 그럴 의무도 없습니다."
왜냐고 물어보고 싶습니까?
"그야 제 과거니까요, 왜 제 과거를 당신들이 받아들여야 합니까? 아니, 왜 내가 당신들에게 내 과거를 인정받아야만 하죠? 인정받으면, 그 과거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어집니까?"
너는 가볍게 몸을 풀었다. 공격이 더 거세진다면 제대로 피할 수 있을까.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공감은 할 수 없을 것 같군요, 전 말했으니까요. 내 과거를 내 입으로 말하면서 돌이킬 수 없음을 확실하게 하려고 했으니까 말입니다."
"받아들여주길 바란게 아니라면 왜 말했지요?" "그로 인해 우리가 고통받을 것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라라시아는 무덤덤한 말을 이어가며 재차 쥬데카를 쫓았다. 찌르기가 또다시 빗나가자 바로 몸을 틀어 검을 치켜들고 내리찍으려 한다. 연이은 공격들은 평소의 둘을 생각하면 단조롭기 그지없었다. 일부러일까. 아니면.
"아~ 뭐 네 생각은 그렇겠지만~ 걔들이 들어주지 않는데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여성은 무대에 걸터앉은 채로 쥬데카의 말에 연신 빈정거렸다. 그러나 이어진 이스마엘의 행동에 표정이 순간 굳었다.
또다시 피하지 않았기에 솟구친 줄기가 이스마엘의 한쪽 다리를 뚫었다. 희디 흰 줄기에 이스마엘의 붉은 피가 흐른다. 이번에도 레레시아는 어떤 동요도 없었고, 그저 앞을 보고 있을 뿐이다.
"당신의 잘못임을 알면서 어째서 놓아주지 않는 거죠?" "저는 이제 당신이 필요 없다는데도."
쌀쌀맞은 목소리는 변함없이 감정 없는 말들을 내뱉고 있었다. 그 목에 백신이 꽂히는 순간까지.
푹.
앰플 꽂힌 백신이 레레시아의 목에 박혀 그 약을 주입하자 굳어있던 레레시아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지더니 곧 흐느적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백신이 가장 먼저 흐른 머리부터 그 아래로 천천히, 형체가 무너지며 바닥으로 뚝뚝 떨어진다. 동시에 라라시아도 쥬데카를 쫓던 자세 그대로 뚝 멈추더니 신체의 말단부부터 무너져 내렸다. 사람의 몸이 눈 앞에서 녹아 떨어지는 광경은 보기에 좋지 않았겠으나.
무너진 자매의 몸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단지 겉만 절묘하게 꾸며낸 것인가 싶더니, 그 외관마저도 거짓이었던 듯 하얗게 부서진 재만이 쌓여있었다.
"아, 벌써 들켜버렸네."
영문 모를 상황에 여성의 목소리가 느릿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에 무대로 시선을 돌리면 무대에 여성은 온데간데 없고, 아니, 있긴 있었다. 하반신이 뱀으로 변해 거대한 괴수처럼 바뀐, 이미 인간의 길을 벗어난 형상을 한 여성이.
"뭐, 시간도 시간이니. 장난은 이쯤 하도록 할까? 귀여운 아가들아."
여성은 어떤 사족도 없이 그대로 이스마엘과 쥬데카를 향해 달려들었다. 덩치에 비해 좁은 공간일텐데도 능숙하게 벽과 바닥을 타고 움직여, 거대한 뱀의 꼬리로 바닥과 함께 쓸어버리려 한다.
더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했다. 시작부터 제대로 된 대화였는지는 둘째치고, 라라시아가, 아니 라라시아로 보이게끔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이 그대로 재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어진 목소리까지 더하면 가짜인 건 확실한 듯싶었다. 눈 앞에서 그렇게 재가 된 데다가, 여성의 빈정거림과 조롱, 그리고 장난은 이쯤에서 끝내겠다는 듯이 움직이는 모습에 너는 시선을 들었다. 다행이다. 지금까지 애써 숨겨왔던 걸 보여주겠다는 듯 움직이는 여성의 모습에, 너는 체인을 천장, 혹은 벽의 높은 곳을 노려 쏘아보냈다. 단순히 제자리에서 뛰어로는 것만으로는 꽤 거대한 꼬리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으니까. 벽에 앵커를 박아넣을 수만 있다면 그대로 잡아당기며 뛰어올라 공격을 피하려고 했을 터다.
피어오르는 먼지 사이를 뚫고 공중에 떠오를 수 있었다면 잠시 얼굴을 가렸던 바이저가 사라지며 표정이 드러났을 터다.
"다행이지 뭡니까, 처음이네요. 이런 임무에서 웃게 되는 건."
전부 끝난 건 아니었으나 이런 사소한 상황의 반전만으로도 때때론 안정감을 느끼는 법이다. 그런 감정으로부터 나오는 웃음, 안도가 담긴 미소를 잠시, 좋은 판단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듯 짧게, "이셔." 라는 부름 뒤에 가볍게 비춰준 뒤 다시 바이저가 그 표정을 가렸다. 자,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해 볼까.
"진짜는 어디 있습니까? 설마 이미 여기서 떠났다거나 그런 거면... 뭐 그건 그거 나름대로 괜찮겠군요."
뚫린 다리, 베인 어깨, 그리고 여전히 회색 세상. 다리 근육이 벌벌대며 경련하지만 아직 죽을 정도는 아니다. 허벅지였다면 모를까, 종아리를 꿰뚫렸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싸울만 하다. 그렇게 판단하며 이스마엘은 레레시아를 가만히 응시했다. 내가 놓아줄 것 같아서 이런 말을 하는 건가 싶어서. 백신이 꽂혔을 적, 고통스럽게 일그러지는 얼굴을 마주하며 숨을 가늘게 떨었다. 그리고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더니만 눈앞에서 녹아내린다. 아니, 녹아내린 것이 아니다.
"……."
고개를 돌린다. 인간이 인간이 아니게 된다면 괴물이라 불리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란 본질이 없다면 인간은 발전했노라 볼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잔재를 남겨야 하거늘 그것이 아니라면.. 이스마엘의 눈이 가늘어진다. 달려들 적, 꼬리로 쓸어버리려 하는 모습에 보검을 온전히 전개하며 염력으로 거센 장을 펼쳐내 막아내려 시도했다.
인간이 모습을 벗은 여성, 아니, 마수의 공격은 겉보기에는 상당한 위력이 있을 것 같았지만, 그저 바닥의 줄기를 쓸어내는 정도의 힘 밖에 없었다. 궤도를 급히 바꿀 수도 없는지 이미 내지른 꼬리를 거두는 것 만으로도 상당한 허점이 드러난다. 그러니 쥬데카는 무사히 피할 수 있었고, 이스마엘은 염력 만으로 자리에서 조금 밀려나는 정도가 끝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웃다니. 어지간히도 정신 비뚤어진 아이로구나."
공격이 통하지 않았음에도 마수는 징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특수부대를 향해 빈정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재차 공격할 듯이 긴 꼬리를 뒤로 거두다가, 진짜 자매의 행방을 묻는 쥬데카의 물음에 마수는 더욱 끔찍한 미소를 띄웠다.
"설마! 아깝게 놓쳤던 내 인형들이 돌아왔는데, 그걸 순순히 보내줄 리가 있을까?"
아하하하! 마수는 고막을 찢을 듯 갈라진 목소리로 소리 높여 웃고, 비늘이 뒤덮인 손으로 하반신과 연결된 배를 쓸어내렸다. 연결되어서 라기엔 불룩한 배를.
"한 때 흥미로 위험에 빠뜨리긴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아까워서 말이야. 이제 다시는 위험해지지 않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돌려주었단다. 어미의 품에 말이지. 어디, 꺼내갈 테면 해보렴?"
온전히 남아있을 지는 모르겠다만?
다시 한번 마수의 찢어지는 웃음소리가 실내를 쩌렁쩌렁 울린다. 마수는 뱀처럼 변해버린 눈의 동공을 가늘게 좁히며 특수부대를 향해 꼬리를 사정없이 내려쳐댔다. 공간을 쿵쿵 울려가며 위협적인 공격이 난잡하게 들이닥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