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마엘은 흔들리고자 했던 마음을 다잡으려 했다. 공격에 집중해야 한다. 살려줬잖아. 그러면 목숨값을 해야지.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굳이 떼지 않기로 했다. 다시금 공격에 대비하려 했고, 이스마엘은 괴수가 빔을 삼키는 모습에 수월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공중에 보이지 않는 벽을 세우듯 하며 겨우내 피해낸 것이다. 모골이 송연하다. 원망하는 듯한 목소리가 익숙하다. 막았어도 결과는 같았을 겁니다. 라고 말하려다 입을 여전히 떼지 않기로 했다. 여전히, 앞으로도 영영. 혀는 납덩이 되었으며 입은 석상 되어 벌어지지 않는다.
폭음 들렸을 적 그저 눈 돌아버린 사람처럼 플래나를 향해 직접 달려간 것이다. 그리고는-
"당신도 함께할 수 있어."
단 한마디, 의지 없던 말 뱉어내며 손 뻗어 붙잡으려는 척하며 보이지 않는 힘으로 들어올려 벽을 향해 강하게 처박으려 들었다.
본래라면 완벽히 막아낼 수 없는, 그만큼 강한 공격이었지만 버스트를 사용한 덕분인지 너는 비교적 멀쩡하게 빔을 막아낼 수 있었다. 빔은 네 방패를 뚫지 못했고 그대로 분산되거나. 목표물을 놓쳐 벽에 부딪히곤 사라져 버렸을 터다. 그랬어야 했는데... 사라졌어야 할 빔이 다시 모이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면에서는 플래나의 손 앞, 다시 또 한번의 빔이 발사되려고 하고 있었다.
"우리 대장이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을 모욕하다니... 가족이라는 말로 쉽게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로벨리아에게도 모욕이 될 수 있는 말인데, 그런 생각 따위는 없는 거겠지. 너는 칫, 하고 혀를 짧게 찼다. 더 이상 이야기했다간 네 말이 로벨리아에게 나쁘게 작용할 수도 있었으니까. 적어도 그런 일은 없어야만 했다. 네가 한 행동으로 네가 저평가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로 인해서 너를 포함한 이들을 믿고 기다리고 있는, 저항의 길을 밟아가는 존재가 평가받는 건 견디기 어려웠으니까.
"나중에 이야기합시다. 원할 때 언제든."
네 뒤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지막히 대답한 네 귓가에 들려오는 폭발음, 이제 곧이다. 시간이 우리 곁에 도착할 때까지, 임무의 성공에 이르기까지 두 발을 딛고 서 있어야만 한다! 모두 막아낼 수는 있을 것 같지만 방금처럼 방어력을 집중시킬 수 있는 건 하나 뿐. 결국 둘 중 하나에 대한 얕은 방어로 입을 피해를 감안하며 움직이려던 찰나, 선우의 스페셜 스킬로 위로부터 쏟아져 내려오던 빔의 위협이 사라지자. 너는 바로 시선을 돌렸다. 네 방어자산을 전부 쏟아부을 수 있는 공격은 단 하나! 빔의 궤도를 가늠해 고갤 돌리니 아직 궤도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네 손 끝, 공기를 가르는 체인이 벽에 박히자마자 있는 힘껏 잡아당기니 네 몸은 자연스레 이미 체인이 지나친 거리를 뒤쫓았다. 그렇게 공중에 떠올라 신디와 완전히 일직선상에 놓였을 때. 반대쪽으로 쏘아진 체인이 땅에 박히고 이미 널 끌어당기던 체인과는 반대 방향으로 제동을 걸어 그대로 공중에 멈춰섰다.
한명이라도 다운되었으면 그 자는 플래나가 바로 붙잡아버리고 단번에 목숨을 끊으려고 하는데 그때 아스텔과 에스티아 중 다이스로 나온 이가 달려들어서 플래나를 붙잡고 시간을 끌어요. 이내 기지가 폭발하기 시작했고 붙잡은 이 중 하나는 플래나에게 붙잡혀버리고 '재교육'을 받고 다음 시나리오의 보스로 등장했겠지만....
선우의 레비아탄은 빔 중 하나를 집어삼키는데 성공했다. 덕분에 빔은 사라져버렸지만 그래도 남은 빔은 정말 철저하게 에델바이스 멤버들을 노렸다. 아스텔과 레레시아는 빔에 휘말렸고 그 때문에 아스텔은 무장이 크게 손상을 입고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한편 쥬데카는 신디를 보호하는데 성공했다. 절대 방어로 빔을 막아서는데 성공했고 다시 한 번 반격의 기회가 찾아왔다. 레레시아는 바로 버스트를 사용했고 분신들은 플래나를 잡고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이어 이스마엘은 그런 플래나를 벽에 처박아버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아스텔은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섰고 검에 강한 에너지를 모았다.
"에스티아. 부탁해."
"응!"
이어 에스티아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드론을 앞으로 질주시켰고 그대로 플래나에게 처박았다. 이내 드론들은 연쇄적으로 폭발했고 아스텔은 그 상태에서 날아오른 후에 검을 있는 힘껏 앞으로 휘둘렀다.
-그 검은 모든 것을 찢어가르는 바람의 숨결 -질풍으로 뭉쳐있는 날카로운 칼날을 세우며 -만물이여. 그대로 흽쓸려라.
"에어로 슬레이어!!"
이내 아스텔의 스페셜 스킬이 발동했고 강한 풍압으로 이뤄진 에너지 덩어리가 플래나에게 정확하게 명중했다. 이내 강한 연쇄폭발이 더욱 크게 일어났고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이내 그 아래에서도 폭발이 일어났다. 허나 검은 연기가 걷혀지자 아무렇지도 않게 무장을 회복시키고 있는 플래나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왔다.
"제법이로군요. 어떻게든 버티고 또 버티는 것이 말이에요. 후훗. 하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은?"
"생판 남들보다 못한 존재라.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누님은 결국 세븐스의 자유와 권리를 선택한 모양이니까요. 굳이 이런 짓을 하지 않아도 이미 누님에게는 자유와 권리가 주어져있는데 말이죠. 정말로 누님은 다정한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냉정하게 현실을 알려주는 겁니다. 테러리스트 일을 해도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가족이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을 모욕한다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저에게 있어서는 누님을 뺏어버린 존재지요."
분명히 여러 번 공격을 맞긴 했으나 그럼에도 아직까지 멀쩡하게 서 있는 플래나는 어쩌면 아직 에델바이스 대원들의 힘으로는 상대할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야 보검의 출력부터가 확연하게 차이가 났으니까. 조금 더 강해져야만 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하는 것도 잠시였다. 이내 건물 여기저기에서 강한 폭발이 일어났고 에스티아는 다른 드론을 띄워서 플래나에게 돌진시켰고 그대로 발목을 잡아넣으려고 했다. 이내 근처까지 폭발소리가 크게 들려왔고 에스티아는 크게 외쳤다.
"됐어!! 이 정도까지 시간을 끌었으면 폭발에 휘말릴거야!! 크게 다치진 않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조금이라도 타격을 줄 수 있다면... 그리고 이 기지가 폭발하면서 생기는 폭발 에너지에 휘말리게 할 수만 있다면 조금은 저 작자가 전선에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을거야!! 모두 퇴각해!!"
버스트를 날린 뒤 그녀는 주저앉았다. 고개를 들자 흐릿한 시야에 아스텔이 스페셜 스킬을 날리는 모습이 들어오고 날아가는 플래나가 보인다. 하지만 멀쩡히 걸어나오는 것도 보여, 그저 이가 갈릴 뿐이다. 아. 이 너무 갈면 회복시키기 어렵다고 라라가 잔소리 하는데. 어찌어찌 숨을 고르며 일어서는데 에스티아의 목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폭발하면서 휘말리게 할 수만 있다면.
"...가기 전에, 인사는 해야, 겠지..?"
그녀는 자리에 버티고 서서 동료들이 가능한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발밑에 핏빛 독액을 줄줄 흘리면서. 독액은 사방으로 퍼지지 않고 그녀의 발목이 잠길 정도로 차오르더니 곧 부글거리며 크고 작은 붉은 나비의 형상이 되어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발화성과 휘발성이 강한 독액의 나비들을 한가득 띄우고, 그 가운데의 그녀가 손을 치켜들자 일제히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산개, 하라. Falling Curse-"
나비들은 가는 길마다 독액을 뿌리며 날아가고 이윽고 폭발 지점마다 군데군데 뭉쳐서 더욱 가열찬 폭발을 일으키게 만들 것이다. 그렇지 못 해도 이 공장 안 어디에서든 터진다면 쓸 만 하겠지. 모든 나비떼를 날려보내고 그녀도 자리를 벗어난다. 서둘러 동료들의 뒤를 따라잡은 그녀는 손등으로 입가의 붉은 것을 슥 밀어 닦아내고 있었다.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큰 공격이었던 만큼 빈틈도 있었던지라 동료들의 힘을 다한 공격이 플래나에게 쇄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폭발음은 성큼 다가와 있었다. 소리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분명히 흔들림과 함께 잔해가 발생하고 있었다. 빠져나가야 한다...!
"임무 완료, 퇴각하겠습니다!"
애초의 목적 중 하나는 달성했다. 시설의 파괴는 기정사실이니 이제 남은 목적은 하나 뿐. 무사히,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돌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쉽게 보내주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 너는 무심코 시선을 돌렸으나 에스티아의 드론이 플래나를 잡아놓으려 하고 있었다. 너 역시 이번에는 체인을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라 양쪽 끝의 추가 달린 체인을 발사해 그 다리를 휘감으려고 했다.
이 자리에서 직접 부딪혀 쓰러트릴 수 없다면 무사히 도망치는 것이 승리다. 분명 압도할 수 있는 적을 놓치는 것은 패배나 다름없으니 너는 그 패배를 그에게 안겨줘야만 했다.
순간 들었던 생각이 있었다. '저게' 있을 곳은 거기가 딱 어울린다. 진창 밑으로, 끝내 밑에서 모든 걸 지켜볼.. 이스마엘은 그 생각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아무래도 감정적으로 많이 상한 듯싶다. 이런 생각까지 하다니, 이러면 안돼. 숨을 고르며 아스텔과 에스티아의 공격을 지켜보며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강한 공격에도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지만, 영원한 건 없을 테다. 끝장을 보자면 보겠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것도 안다. 당신을 논파하기에 지나치게 닮았다는 점도.
"……."
이스마엘은 결국 헛웃음을 흘렸다. 뺏어버린 존재, 강하게 다가오는 폭음, 가까워지는 진동……. 달리 공격을 덧붙이진 않고 퇴각하며 천천히 손을 모았다. 그리고 염력으로 몸을 띄워 흐르듯 움직여 시야에서 사라지려 시도했다. 다른 누군가는 당신에게 도발하겠지만 이스마엘은 그러지 않았다. 마치 당신에게 경외감을 가졌지만 결국 그럴 가치가 없는 쭉정이라 판단한 듯이.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 정말 치열한 사투를 벌인 그들은 폭발음을 뒤로 하면서 시설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발이 붙잡혀있는 플래나는 그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폭발이 계속해서 들려오는 건물 안에서 멈춰선 후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눈초리는 방금 에델바이스 멤버들이 빠져나간 바로 그곳을 향해있었다.
"과연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 "허나 덕분에 잘 알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절대로 그냥 둬서는 안되는 이들이라고. 지금부터 가디언즈는 여러분들을 제 0순위로 섬멸하도록 하겠습니다." "글라키에스. 지시한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기를."
이내 폭발음은 다시 한 번 크게 울리며 그대로 플래나를 집어삼켰다. 물론 그 안에서 쓰러지거나 죽진 않았겠지만, 당장 움직임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에델바이스 멤버들을 뒤쫓는 추격자들도 없었다.
이내 본부로 돌아온 그들은 무사히 임무를 마칠 수 있었고 당분간 휴식을 취할 것을 명받았다. 물론 이것저것 궁금한 것도 있을테고 알고 싶은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휴식을 취하면서 체력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깨가 가늘게 떨리는 걸 손끝으로 느낀다. 그래, 너도 현실인지 몇 번이고 의심했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 알고 있다. 도너티, 그래, 널 잊을 리가 없지. 그 당시에 우리는 헤어져도 받아들이자고, 괜찮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는걸. 힘주어 안는 팔에 잠시 눈을 감는다. 어깨에 묻는 얼굴에 손을 들어 머리가 흐트러지지 않게 쓰다듬었다. 느껴지는 온기와 물기에 여기 있으니 울지 말라고 말할까 했으나 이내 그만둔다. 같이 울어버릴까 감정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대신 손을 등으로 내려 두어 번 토닥였다. 맞댄 이마에도, 등에도 느껴지는 선명한 온기에 웃음이 유달리 서글프다. 살아있다. 고개를 들고 너는 따라 웃었고, 두 사람의 웃음이 방을 채운다.
"응,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그래도 머리는 다시 길 테니까. 그때 네가 다시 땋아주면 되는걸."
머리카락에 닿는 손길에 눈을 휘었다. 널 만났을 땐 무릎까지 닿을까 싶을 정도로 치렁치렁했던 머리였는데. 막상 이곳에 오기 직전 싸움에서 머리채를 붙잡혔던지라 방해가 되어 잘라버리고 후련하던 것이, 내심 이렇게 되니 아쉽기 그지없다. 약물의 도움이 없다면 네 손길을 다시 느끼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 눈썹을 축 늘어뜨리듯 하며 미소를 지어 보인다. 차라리 잘 됐어. 그 많은 시간 동안 같이 있으면 되잖아.
"……어떻게 오게 된 거야?"
한결 보드라워진 눈동자로 조곤조곤, 조심스레 물어본다. 거기에 있던 건 끔찍한 일이었음을 알기에 묻지 않고, 오게 된 경위만, 너의 삶을 존중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