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것 같다. 으레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쥐고 있는 검이 무겁게 느껴진다. 차오르는 망념과, 그 저항감처럼. 들고 있는 것조차 무겁게 느껴진다. 휘두르기도 힘들 만큼. 알고는 있다. 이기기 힘들 거라고, 나는 아내처럼 검을 배우지도 않았고 평생을 총을 쓰며 살아왔으니까. 누구에게라도 따뜻했던 모닥불같은 너가 아니라, 너를 담고 태워버린 나같은 존재는 너를 따라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는 있다.
" 우윽...... "
그래서 더더욱, 검을 들어야 했다. 들어올린다. 두 팔이 후들거리고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팔로도 들어올려야 한다. 좌에서 우로, 길게 수평선을 그리며 검을 휘두른다. 그러나 검은 닿지 않는다. 아직 녀석을 베어내기에는 닿지 않는 검이다.
" ...... "
의념 각성자의 육체라 하더라도 무리를 완전히 지워주진 않는다. 실핏줄이 터져오르고 피부 위로 붉은 피가 새어나왔다. 팔이 깨질 것만 같은 고통이 이어진다.
" 한 번… "
많이는 바라지 않는다.
" 딱 한 번만. "
너라면 어떻게 했을까. 네 마음에 어울리는 푸른 불꽃을 피워냈을까? 온 몸의 혈도가 뒤틀리는 것만 같다. 어중간한 앎이란 이만큼 위험한 것이다. 그것을 재현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조금만 더하면 너에게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비루한 재능에 기대어 너를 쫓으려 하는 것이다.
꺼져가는 재가 마지막 남은 불꽃을 품는다. 아주 미미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한 불꽃을 불태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모두 있었다. 나. 바로 나 자신. 무력한 내가 불꽃을 피워내기 위해선 나 스스로 장작이자, 재가 되어야만 한다. 흐르는 피가 검을 타고 흐른다. 그것이 마치 뱀처럼, 내 피가 움직이는 혈관을 물어뜯는다. 그에 걸맞게 터져나와야 맞을 피는 불꽃이 되어 터져나온다.
" 이게… "
백귀도. 그러나 아내의 그것과는 완전히 떨어진 그것이라 하더라도.
" 됐어. "
나는 적어도 그 감정에 행복을 느꼈다. 아직 너와 내가 완전히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했다.
잘난 스승같은 건 없었다. 우연이 닿아 절세의 비전을 얻어 강력한 헌터가 되었다느니, 가디언과 비견될 정도로 대단한 헌터가 되었다느니. 업계에서는 흔한 이야기이지만 적어도 보통의 헌터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물론 나는 '보통의' 헌터와 비교하기에는 조금의 차이가 있었다. 재능이 조금 더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 정도의 차이도 중요하다면 중요한 것이 이 업계의 상식이다. 간만에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다가 입에 물어봤다. 언제부터였는지 정말. 맛이 없다. 그냥 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입맛이 고급이라거나 하는 것보단 이제 이것도 질려가는 쪽에 가까웠다. 그리고 보통 나는 대부분의 것들에 있어 금방 질리는 편에 속했다. 내가 가진 재능이랄 것은 그런 것들이었으니까. 남들보다 예민한 감각, 변화를 잘 알아차리는 눈썰미, 무언가를 되짚는 기억력. 뭐 누군가가 듣는다면 흔히 밥맛 없다고 할 만한 재능들이다. 덕분에 밥 벌어 먹고 살고도 있으니 거짓말은 아니겠다만 차라리 완전한 바닥에 있었다면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할 법 하지, 나는 어중간한 높이에서 닿을 듯 말 듯한 높이를 바라보며 살아야 했다. 가령, 지금처럼.
" 칫… "
또 머릿속을 고통스럽게 한다. 온 몸의 근육들이 하나하나, 나에게 거부감을 비춘다. 벽 너머를 억지로 들추려 한 댓가가 그 반동으로써 내 몸을 잘근잘근 밟아댔다.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검을 들어올려 크게 종베기를 휘두른다. 미묘하게 검 끝이 파르르 떨리더니 원하는 궤적보다 조금 낮게 가라앉는다. 내가 바라는 움직임이, 기술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이번 대가는 기술의 혼란인 모양이다. 입으로 여러 욕설을 뱉어내다가 인벤토리에 손을 넣는다. 가볍게 휘저어 담배를 찾으려던 손을 의식과 함께 억지로 떼어놓는다. 피어봐야 딱히 맛도, 재미도 느끼기 힘들어진 마당에 뭐하러 피겠냐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힌다. 빌어먹을. 잡생각이 늘어난 기분이다. 신경질과 함께 벽에 도전하기 위해 닫아두었던 헌팅 네트워크를 열었다. 별로 시끄럽지 않은 연락처에서 몇 개의 연락이 반짝인다. 대부분이 나와 함께 이 업계에서 밥 벌어먹고 사는 인물들이다. 들어온 연락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별반 중요치 않은 내용들이 꽤 이어진 모양새다. 개중 하나, 눈에 띄는 연락을 본다.
[ 성공했냐. ]
머릿속으로 얼굴이 그려지는 녀석. 녀석의 이름은 최중호다. 미리내고등학교를 졸업하여 여러 길드의 컨텍을 받던 녀석은 일년정도 신 한국의 백명 길드에서 활동하더니 돌연 개인 활동을 하겠다고 길드를 박차고 뛰어나왔다. 그러나 실력과 인맥, 명성의 영향을 받는 이 세계에서 갓 길드를 벗어난데다 뛰어난 교육시설을 나오신 엘리트를 좋아하는 녀석들은 드물었다. 그러니 실패와 성공의 미묘한 곡선을 타던 끝에 나와 만나게 되었다. 반골은 반골과 끌리는 모양이었다. 친구랄 것이 없는 내 성격상 과거의 녀석과 친해진 방법은 간단했다. 학교고, 실력이고, 명성이고 모르겠으니. 한 판 붙자. 나름 실력에서 자신감도 있었고 어지간한 기술이라면 베낄 자신도 있었다. 다만 빌어먹을 문제가 있었다면 그놈이 중추술을 연마한 역사力士라는 점이 문제였다. 선공을 양보한다기에 좋다구나 무기를 휘둘렀더니 첫 공격을 몸으로 막아내더니 두 번째 공격이 내 머리에 내리꽂혔다. 기술따윈 아니었다. 타고난 완력으로 그대로 내 머리통을 후려쳤다. 그때는 머리가 어떻게 되기라도 하는지 왠 시바견 대가리에 야구베트가 꽂히는 환상까지 봤다. 봉크인지 뭔지 하는 소리가 나면서 말이다.
[ 짜증나는 타이밍에 온 메세지네. ]
답장을 보냈다. 곧 녀석의 답이 도착했다.
[ 곧 넘을 수 있을 거다. ]
곧 넘을 수 있다라. 그 곧이 언제인지 궁금해졌다. 벌써 아홉 번째 도전이었다. 나보다 재능이 없어보이는 녀석도, 처음에는 나보다 한참 뒤에 있던 녀석도. 몇 놈들은 늦가을에 꽃이 피기라도 하듯 이 벽을 넘어섰다. 아직 이 벽을 넘어서지 못한 나로써는 그 말이 위로라기보단 마치 놀리는 것처럼 들렸다. 이놈도 벽을 넘어선 녀석이었으니까.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다. 오히려 검을 처음 배우던 때에 나는... 무언가에서 해방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마저 했으니까.
검을 하단세에서 상단세로 높게 치켜들고, 다시 하단세로 내려친다. 검을 중단세로 당겨 직선으로 내지른다. 납검한 검을, 검집에 걸리지 않은 채로 빠르게 내뽑는다. 검술의 기초. 뽑아내고, 휘두르고, 찌른다. 모든 검사들은 이것으로부터 검술을 시작한다. 재능이 없는 자와 있는 자를 가리기 위한 가장 첫 번째 관문이 바로 이 자세에서 시작된다. 백 번 한다 쳤을 때 두 번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나름의 재능이 있단 이야기이다. 처음 잡은 검의 무게를 비록 가검이라고 한들 익숙하기 어려운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는 사용하지 않던 근육을 사용해야 한다. 세 번째론.. 당연한 것이지만 기본적인 것이라고 설렁설렁 했다간 궤적이나 소리에서 그 다음이 선명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나? 나야 첫번째에서 조금 걸리긴 했어도 두번째와 세번째에선 딱히 걸리지 않았다. 타인의 움직임을 보고, 그 움직임을 내 몸에 맞추고, 그 근육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눈으로 쫓을 수 있었다. 재수 없는 소리겠지만 나는 이 곳에선 천재에 속했다. 실력은 빠르게 늘었고, 열네살의 나이에 교관과 같은 숙련도 D의 단계에 도달하고 나서는, 꽤 많은 길드에서 러브콜을 받은 기억이 난다. 그들은 나에게 재능이 있다고 했고 나를 제대로 키워주겠다고 말했다. 물론 신라나 일성같은 초대형 길드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은 길드를 골라 그 곳에서 후원하는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나는 거기서도 내 나름의 재능을 열심히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가르쳐주는 기술도, 가르쳐주지 않은 기술도 넙죽넙죽 받아먹으며 꽤나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그 과정에서 시기를 사는 것도 당연했다. 그 때에 나는거기에 이리 답했다.
" 거짓말... "
녀석은 바닥에 내팽겨진 자신의 검을 보며 말했다. 꽤나 분한 듯, 얼굴이 불콰했다.
" 세 번째 받아칠 때. 검을 위로 든 부분이 문제였어.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공격을 받아내는 것은 같은 힘에서는 쳐내는 쪽이 더 무리가 오기 마련이니까. " " 누가 그딴 게 궁금한 줄 알아? "
꽤 강한 힘으로 내 어깨를 밀쳐내면서 분을 토해냈다. 별로 아프지도, 기분 나쁘지도 않았다. 진 녀석들의 흔히 나오는 분노라고 생각했으니 무심하게 대할 뿐이었다. 어차피 아카데미를 졸업해 길드에 소속되고 나면 싫어도 같은 길드에 소속될 수도 있고, 어쩌면 길드 간 협력에서 만날 수도 있는 마당이었으니 말이다. 가볍게 밀쳐진 것을 털어내고 손을 뻗었다. 딱히 어릴 때부터 말을 잘 한다거나, 예쁘게 하는 편은 아니었으니 화를 더 사기보단 행동을 하는 게 낫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뻗어진 손은 가뿐히 무시당했고, 대신 분노에 찬 눈을 받아내었다.
" 그거. 내 기술이잖아!!! "
아. 그 부분이 화가 났던 걸까. 가끔 이런 부류가 있었다. 자신의 비장의 수를 빼앗기고 나면, 분노에 차 나에게 짜증을 부리는 부류가 말이다. 이런 부류는 피곤하고 또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
" 별로 대단한 거는 아니잖아? 어깨에 강한 힘을 준 상태에서 손목을 기울이고, 검 손잡이를 짧게 쥐어 어깨의 힘으로 무기를 짓누른다. 그 과정에서 검날 부분을 밀어쳐 상대의 손목에 반동을 줘서 무기를 떨어트리게 한다. 손목 힘을 기르면 너도 대응할… " " 닥쳐!!! 내 기술, 내 기술을!!! "
화를 내는 녀석, 수근거리는 목소리까지. 귀찮은 부분이 늘었다. 이러면 나는 보통 '천하의 개자식'이 된다. 남의 비장의 기술을 빼앗아간.. 뭐 그런 것 말이다. 그리고 나는 뒤에서 그런 식으로 나를 씹어대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 네가 어중간한 게 문제잖아. 그런 것을 비장한 수인 마냥 숨겨둔 게 말야. "
그 시절의 나는, 나를 천재라고 생각했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다.
"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진짜나 가짜냐를 떠나서 제대로 된 검이었다면 내가 베낄 수도 없었겠고 너희들이 쉽게 간파당하지도 않았겠지. "
주위를 둘러보며 무관심하게, 그렇게 말을 꺼냈다. 수근거리는 소리들에 침묵이 깃들건 말건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름 화가 났단 소식이었다. 그것도 꽤 많이.
" 너희들의 부족함을 내 비열함으로 포장하지 마. "
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검을 검집에 납검한 뒤 자리를 떴다. 뒤에서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더 커지고, 진 녀석의 짜증나는 울음소리가 들려대지만 상관 없었다. 나는 재능이 있었다. 그러니, 더 높게 올라가 녀석을 만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그래.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진짜 재능을 가진 놈들의 능력이 어떤지는 생각도 못 하고 말이다.
뭔가 여러가지를 느끼게 돼. 처음엔 재능이 있다고 생각되며 열심히 했지만 점점 하다보면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은 주변에 널렸으며 나와 같다는 사람도 어느 순간 나보다 앞에 서 있어서 어? 하고 놀라게 되지. 하지만 그 사람은 나랑 여전히 가까운 사이고, 나도 그 사람을 가깝게 생각하지만 점점 실력면에서 그와 멀어지면서 배신감이나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 그런 면이 좀 느껴졌어.
그리고 오현이는 이런 부분에서 포기하기 보다는 스스로를 안주하는 그런 것을 선택한 것 같아. 물론 연성에 나온 과거의 오현이지만! 개인적으로 이기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상대방의 기술을 따라하든 말든 이기면 장땡이라는 그 생각이 마음에 들어. 내가... 정확하게 판단한 건 아니지만 ㅎㅎㅎㅎ 그래도 이건 마음에 든다
"너희들의 부족함을 내 비열함으로 포장하지 마."
맞아!!!!! 실전에서 이기면 살고 지면 죽는데 상대방이 비열한 행동 했다고 "큭! 이런 비열한!" 하고 욕한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아??? 필요하다면 바닥의 오물도 상대방의 눈에 던져서 시야를 가리고 설사 내가 죽는다 하더라도 그녀석의 시력을 빼앗으면 결과적으로 내 승리야!!!! 발목을 잘라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