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이 맘때엔 역시나 학교에 가기 싫은 법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학생도 있겠지만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대다수의 학생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강민 또한 그들과 같은 대답을 할 것이고 그것을 반증하듯 아침 등교를 나서는 그의 얼굴은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 졸려. "
작은 목소리로 나지막히 중얼거린 그가 항상 하는 생각이 있다. 어째서 학교는 오전에 등교해서 오후에 끝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다. 그냥 오후에 시작해서 늦은 오후에 끝나면 안되는 것일까.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그에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그렇기에 얼른 졸업해서 대학교를 가는 것이 그의 작은 바램이기도 했고 ...
" ... 치나츠 안녕. "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일월정에서 학교로 가는 길을 걸어가고 있던 그의 시선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어릴적부터 보아왔기 때문에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뒷모습. 그는 기척을 죽이고 천천히 걸어가 그녀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435 꼭두새벽에 일어나 새벽같이 등교를 하는 것은 이제는 익숙해진 일이다. 남들이 버스를 찾을 때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를 못탈 땐 그냥 걸어서 간다. 히노하라는 오늘도 터벅터벅 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거의 잠들지 못했지만 졸리지 않아보이도록 애쓰며, 꾸벅꾸벅 감겨오는 눈꺼풀을 부릎뜨려 노력하며. 만일 지나가는 동급생 아이가 그녀를 발견한다면 뭐라 말할까. '히노하라양, 잘 잤어?' 라고 물을까? 그렇다면 나는 '아니, 아니야. 한 숨도 잠들지 못했단다' 하고 답할테야ㅡ하고 생각하며 히노하라는 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조금은 기운 없어보이는 걸음이었다. ...그 아이가 어깨를 두드려오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을 테지.
"헤헤... 강민군, 좋은 아침? "
살짝 속삭여오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베시시 웃으며 히노하라는 살짝 고개를 뒤로 돌렸을 테다. 그리고 강민에게 살짝 손을 흔들어 보였을테지. "어제는 잘 잤어~? " 따위의 말을 덧붙여 건네며. 한국이름 유강민. 어릴적부터 이 섬에서 보아온 얼굴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히노하라에게 있어서는 해맑게 인사해올수밖에 없는 소년이였다.
어릴적부터 알고 지낸 치나츠는 강민의 소꿉친구라고 부를만 했다. 한테이의 경우에도 강민과 어릴적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지만 한테이는 치나츠보단 볼 기회가 적은 편이었다. 이름이 특이해서 조금 소외감 느끼던 강민에게 다른 이들과 차이를 두지 않고 친하게 지내준 치나츠는 강민에게는 고마운 친구이기도 했다.
" 나야 항상 비슷하지만, 치나츠는 어째 피곤해보이네. "
해맑게 인사해오지만 옛날부터 봐온 강민의 시선을 피할 수는 없었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와 컨디션에 강민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살짝 가까이했다. 눈에 졸음기가 맴돌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강민은 흐으음, 하는 소리를 내더니 자신의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꺼내서 건네주었다.
" 목캔디. 아침에 잠을 잠깐이나마 깨는데 도움이 될꺼야. "
레몬맛 목캔디는 아침에 약한 그가 항상 들고다니는 사탕이었다. 한번 먹으면 목과 코가 화한 느낌이 들면서 몰려오는 졸음을 일시적이나마 내쫓을수 있으니까 말이다. 매점에선 이 맛을 팔지 않아 항상 그가 시내에 가면 사오곤 하는 것이었다.
>>446 원체 피곤해보이는 티를 내지 않으려 열심이었던 히노하라였지만, 이런식으로 친구에게서 괜찮지 않아보이는 걸 들키니 저절로 긴장이 풀어지는 것이다. 표정 역시 조금은 바보같게 풀어졌을지도 모른다...꼭 이렇게 헤실헤실 웃으면서 말이다.
"헤헤...? 들켰나~? "
"사실 나 말이지~ 어제 새벽 늦게서야 자버렸어...잠을 좀 많이 설쳐버려서... " 같은 말로 시덥잖은 이야기를 시작하려던 히노하라는, 강민이 건네오는 목캔디를 보고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척 봐도 '강민군이 이걸..? 나한테...?' 같은 생각이나 하고있을 법한 낯빛이다. 생각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는 것 같은 표정. 그리고 손에 건네지자마자 곧바로 이어지는 환호성.
"와아~ 레몬맛! 나 레몬맛 정말정말 좋아해~! " "고마워, 강민군! 이걸로 아침을 상쾌하게 시작할수 있을 것 같아!"
새벽 늦게나 잠들었다는 말에 강민은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며 말했다. 오늘이 쉬는 날이었다면 새벽 늦게까지 놀아도 문제는 없었겠지만 학교에 가는 날이니 학교 일정은 물론이고 내일도 아마 여파가 미칠 것이다. 자신의 친구가 힘들어하는 것을 강민은 별로 보고싶지 않았기에 작은 한숨을 내쉰 그는 치나츠의 팔을 살짝 잡으려 하며 말했다.
" 어차피 그 목캔디는 금방 졸음이 다시 몰려오니까 임시방편일 뿐이야. "
고작 목캔디일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좋아하는건지, 강민은 어릴적부터 보아온 자신의 소꿉친구에 대해서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선 학교 가는 길에 있는 작은 샛길을 가리켰다.
" 아침 수업 땡땡이 칠까? "
평소 바른 생활 사나이이긴 해도 그가 수업을 빠지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가끔 있는 일이었다. 가령 유파의 본부에 다녀오는 날이면 그 다음 날은 거의 움직이지 못할 정도니까 말이니 쉬는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