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을 그냥 받아넘기기는 조금 어렵다. 저 시선에 어떤 뜻이, 어떤 시간이 담겨있는 것만 같아서였을까. 너는 자신을 향한 시선을 피할 엄두는 못 내고, 살짝 마주볼 뿐이었다.
"그렇군요, 술은 좀 깼나요? 마리."
배시시 웃으며 술을 좀 깨려고 돌아다녔다는 말을 하는 그녀에게, 너는 마찬가지로 웃어주면서 목적은 달성했는지를 물어본다. 그동안 풀잎은 떼어냈고, 뺨에 묻었던 흙먼지도 털어냈다. ...됐다. 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손을 떨어트리니, 그녀는 그제야 옷에 뭔가 묻었나, 하는 감각이었는지 스스로 옷을 털었다.
"음, 달콤한 거라도 마실까- 하고 생각해서요.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려니 좀도 좀 쑤셨거든요."
그래서 그냥 돌아다니던 중이었답니다. 라고 덧붙이면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녀와 눈을 맞추곤 살짝 미소지었다.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역시 네가 누구인지 말하는 건 상황을 나아지게 할 것 같지 않아. 너 역시 과거의 존재일 뿐이니까.
과연 취한 사람은 스스로 취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법인 모양이다. 물론 만취한 상태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취해서 기분이 업되어있는 상태이기는 했다. 물론 기분이 업되었다가 울정도로 가라앉았다가 왔다갔다한 상태였지만서도. 자세히 보면 울었던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냥 술기운에 눈가가 발그레해졌구나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구나. 응, 나도 뭔가 마실래.”
눈을 마주하며 웃는 쥬데카를 보면서 마리도 마주 웃었다. 취해서 그런가 웃음이 많아져있는 상태의 마리였다. 마리는 쥬데카가 걸으면 따라 걸음을 옮길 것이었다.
“그 때 들었던 게 그거지? 전에 말했던 톤파.”
전에 만났을 때 했던 이야기를 상기하며 임무에 나갔을 때 쥬데카가 들었던 무기를 떠올리고는 말했다.
취하지 않았다며 말을 길게 늘이는 마리를 보며, 너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취했구나. 몸을 아예 못 가눌 정도로 취한 건 아니고. 기분이 썩 괜찮을 정도로 취해있는 걸까. 너는 발그헤한 얼굴을 한 마리를 가만히 보다가, 너를 따라 뭔가 마시겠다며 대답하는 목소리에 고갤 끄덕였다.
"네, 그럼 가까운 자판기까지 가죠."
뭔가 마시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굳이 멀리 있는 자판기로 향할 필요는 없지. 가장 가까운 자판기로 발걸음을 옮기니, 마리 역시 널 따라 걷는 듯, 발소리가 들렸다.
"아, 네. 맞아요, 쥐는 법에 따라서 쓰는 법이 다양한 무기에요."
막아내는 데 쓸 수도 있고, 반대로 찌르거나 후려칠 수도 있죠. 상대가 기계덩어리였던지라 큰 효과는 없었지만요. 라고 덧붙이며 멋쩍게 웃는다.
일상을 자꾸 돌리다 보면 뭔가 찾아낼지도 모르죠? 원래 기억이라는 건 비슷한 상황에서 갑자기 떠오르는 법이니까요. 같이 왔다갔다 하는 단순한 과정에서도 과거의 비슷한 기억이 떠오를 수 있으니까! 희망을 가져봅시다? 어... 그래도 숨기던 거였으니 들켰을 때 어떨지는 조금 무섭지만요.
다행히 혼자 걸을 수 있을 정도라 더 큰 민폐를 끼치지는 않았다. 마리는 조금은 비틀비틀 걷기는 했지만 넘어지지는 않고 꿋꿋히 걸었다. 물론 마리는 자신이 제대로 걷는다고 생각할 것이었다. 단지 쥬데카가 보기에 조금 기우뚱 걷고 있는 것 같겠지만서도.
가까운 자판기 까지 걸으며 마리는 쥬데카의 머리카락을 바라봤다. 방금 들었던 생각은 뭐였을까. 진짜였을까. 그러고보면 쥬드의 머리색이 초록이었던 것 같기는 했다. 마리는 초록색을 좋아했지만 자신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색이어서 아쉬워하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진작 생각해내지 못했을까 의아하기까지 했다.
“효과 없지 않았는데. 같이 안테나도 부셨었잖아.”
마리는 그때가 생각난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이내 쥬데카가 대단한 공격을 했었다는 말을 하자 이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그거언…. 으응…. 확실히 상상의 동물이 더 세니까…. 그런거야. 응…. 어쩔 수 없이….”
마리는 작은 손을 분주하게 움직이며 꽤나 쩔쩔매면서 웅얼거리듯이 말했다. 드래곤 마리라는 게 꽤 본인 스스로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동물로 변하는 것은 별로 개이치 않게 생각하면서 드래곤으로 변하는 것은 왜 부끄러워하는지 모를 일이지만 쨌든 마리는 꽤나 드래곤 마리로 변하는 것에 대해 민망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입으로 불을 뿜는 것도 꽤 부끄럽다는 느낌일까.
역시 쥬데카는 먼저 말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구만~! 어쩔 수 없지. 일상을 돌리면서 마리가 알아내는 수밖에...!! 들켰을 때 어떨지는 그 때의 상황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싶고~ 그때의 즐거움을 위해 놔둘까나. 낮에 너무 잤나봐 ㅋㅋㅋㅋ큐ㅠㅠ 그래도 오늘 일정이 있으니까 다시 자는 것에 도전해봐야겠다구~ 그래도 생각보다 핑퐁 많이 했잖아...? 뿌듯
살짝 기우뚱하게 걷는 마리의 모습에, 혹시 넘어지지는 않을까 조금 걱정하면서 언제든 붙잡을 준비를 했다. 다행히 그럴 만한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 같긴 했지만. 네게 향하는 시선을 느끼기는 했지만, 바로 시선을 돌렸다가는 또 눈이 마주치겠지.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들키면 조금 쑥쓰럽거나 무안할 수도 있으니까. 일단은 내버려두자.
"조금 거들었을 뿐이죠, 뭐... 효과가 있었다니 다행이지만요."
어쨌든 안테나를 부순 건 사실이었으니까. 인정할 건 인정하자며 스스로에게 이야기한 너는, 대단한 공격이라는 네 말에 반응하듯 마리의 얼굴이 빨갛게 변하자 으응? 하고 그녀의 말을 들었다.
"음, 멋있었어요. 드래곤."
대단한 상상력이에요, 마리. 새삼 그녀의 능력이 상상력에 영향을 많이 받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담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고 역시 대단하네, 라며 속으로 읊조린다.
"아, 찾았다."
어느새 찾아낸 자판기 앞에 멈춰서서, 부끄러워하는 마리를 잠시 뒤로 하고 음료수들을 살펴보았다.
ㅋㅋㅋㅋㅋ말할 생각이 들수도 있긴 하겠지만 일단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뭔가 마리가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그런 간절함을 드러낸다면 모르겠지만 일단은 지금 서로 오해하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쥬데카는 마리에게 자신을 드러낼 만한 자신감도 없고, 오히려 죄책감이 조금 있는지라... 으음 그래도 역시 주무시려고 노력해보는 게 좋겠죠! 네 맞아요, 벌써 몇 번 주고받았고! 저도 얼마 뒤면 잠자리에 들어야 하니...
사공 한 명은 노 젓기를 거부하고 있으니 실상은 한 명만 배를 모는 꼴인데, 어째 대화가 산을 넘는듯한 것 같다. 제 3자가 들으면 눈 동그래져서 이상한 취급을 할 말을 키득이다가도 표정이 깔끔하게 갈무리되는 걸 보아하면 그저 맥락없는 농담이였던것 같다. 비딱하게 고개를 기울이는 승우를 보면, 그도 비슷한 각도로 고개를 기울인다. 미간에 힘을 푼 채로 눈을 마주치려 들으면 세상은 테두리가 없어진 듯, 경계 없이 부드러워 보인다.
“아니야? 관심이 아니면 뭘 원했는데?”
사람 좋아할 이유가 더 있었었나, 이런 추상적인 개념은 정상인만 이해 할수 있을 거다. 자신도 평범해지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계속 질문만 하던게 이제서야 인지된다. 무의식적으로 입을 우물거린다, 씹는 것은 볼 안쪽의 살. 마음이 갈대같더라도 뿌리는 땅에 박혀있다는 걸까, 어째 이런 것은 옛날 버릇이 그대로 나와버린다. “그따위로 앉으면 늙어서 고생한다?” 자세에 뭐라 한 마디 하더니, 크게 신경 쓰는 것은 아닌 듯 하다. 능청스러운 답에 아무런 말 없이 허공만 응시하다 시선을 당신에게 돌린다.
“성격 **난건 인정하나봐?”
대답을 들어보니 어떤 심리학자가 매우 좋아할 말인것 같아, 실웃음이 나온다. 조금 난잡한 생각을 하듯 표정이 조금 굳었다가도, 이내 원상복귀 된다. 지나간 일은 과거에만 머무르지, 현재까지 존재할 수는 없다. 그러니 괜찮다.
“누나가 잘 대해줬어?”
승우의 답은 이해하기 모호했다. 근친의 오해는 하지도 않았다만, 성격을 꼽아 욕 한걸 보면 애증 섞인 농담인지, 진짜 욕인지 구분이 잘 안 간다. 그런 질문을 하면서 흘러가듯, 미움 받는 세븐스를 동생이란 이유만으로 챙겨주는 것도 희귀한 인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승우의 말에 애증이 담겼음을 전제로 두고 하는 생각이다, 그 때문에 조금은 멍해진 표정. 아싸라고 놀리는 승우를 그저 무시하는 척 하려다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얼마나 착한데. 못난놈 방도 치워주고, 심심할까봐 말도 걸어주지. 완전 예수지?”
필라테스 학원 아줌마들이 나보고 사위 삼고 싶다고 하는건 이래서야. 그런 시덥잖은 말로 흐지부지 논점을 흐린다. 승우가 요란스럽게 비키면, 주체 없이 침대로 쏙 들어가서 편하게 자세를 고쳐 눕는다. 본인도 이게 무례하단 건 잘 알고 있지만, 지금은 도덕성에 귀 기울이고 싶지 않은 기분이다. 한쪽 자리라도 사수하려는 승우를 보면 다리는 치워 주지만, 다리’만’치워 준다.
“니 같은 호구*끼들한테 신천지 전도하고 왔다, 왜.”
돌고 돌아 다시 승우를 까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면서 비웃는듯한 미소가 참 밉상이다. 실상은 운동하다 크로와상 한입 퉤 하고 온 거지만.
"원래 용사도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걸? 그래서 용사도 파티 맺어서 마왕을 무찌르러 가잖아. 으응.... 그러니까 보통 용사하고 마법사 2인팟은 기본이고 거기에 근딜러나 탱커 하나가 더 끼거나 힐러가 더 붙기도 하구."
마리가 한 손을 꼽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이내 뭔가 상상하듯 웃었다.
"그럼 리오 용사하고 힐러 아리아하고 내가 탱커로 들어가면.... 원딜은 누가 좋으려나. 레시나 멜피?"
자신이 아는 동료 범위 내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이내 눈을 깜빡깜빡하더니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버린다.
"그러고보니 멜피 표정이 안 좋았지.... 그 때 레인인가, 그 사람 공격하는 거 막았을 때 말이야."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기 직전 있었던 소동에서 마리와 쥬데카는 동료들이 레인을 공격하려고 했었던 것을 막았었다. 물론 막지 못하고 그녀가 피한 것이었지만서도. 어쨌든 그런 행동을 보인 것 만으로 멜피 표정 안좋았다는 게 느껴졌었다.
그 때 유루와 엔도 있었지만.... 뭐, 기지로 돌아와서 유루랑 대화했을 때는 그런 기미를 못 챘었고ㅡ유루는 불편한 기색을 조금 드러내긴 했으나 마리가 눈치를 못챘었다ㅡ, 엔의 경우는 아직 친하지 않아서 그리고 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서 예외였지만서도. 어쨌든 멜피에게는 도움을 받기도 했고 꽤나 친밀한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조금 미안해지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