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적어도 다른 이라면 더 잘 출 수 있을거야. ...솔직히 추면서 스탭을 어떻게 밟는지만 계속 생각한 것도 있고."
임무도 아닌데 이렇게 춤을 추는 것이 처음이라서 어색한 것일지도 모르고, 그냥 적성에 잘 맞지 않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나 확실한 것은 적어도 아스텔은 지금 이 순간을 어색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상대의 입장에선 굳이 그래야 하나. 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아무튼 가끔 상대해달라는 말에 아스텔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조금 힘들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의 표시였다.
"...말했다시피 어색해서 말이지. 춤을 추고 싶다면, 다른 능숙한 이와 추는 것을 생각해봐. ...일단 내 기준에선 대장이 가장 잘 춰."
정확히는 로벨리아 이외에는 잘 모르긴 하지만. 아무튼 그렇게 생각을 밝히며 그는 자신과 거리를 두고 있는 레레시아를 가만히 바라봤다. 1번째와 2번째. 그 내용을 듣지 못했던 이야기가 지금 나올 것이 분명했기에 아스텔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2번째는 워프 장치를 통해 바깥에 데려가주는 것. 그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워프 장치를 작동시키는 이가 있어야 했기에 우선적으로 로벨리아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 사안은 대장이 허락해준다면 가능할거야. 간단하게 바람을 쐬는 것 정도라면 아마 허락해줄 것 같지만... 어느 정도 제약은 있을 거야. 가디언즈가 없을법한 장소로 말이야. 역으로 탐색당하면 곤란하니까."
그렇기에 나중에 로벨리아에게 이야기를 해보라고 이야기를 한 후 첫번째 내용이 나오려고 하자 아스텔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자신이 이상해져서 위해가 될 것 같으면 조용히 처리해달라는 그 말에 아스텔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뒤이어 그는 고개를 천천히 위아래로 끄덕였다. 처음에 말한대로 그다지 당황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허나 단순히 그 정도 행동으로 끝나지 않으며 아스텔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대장이 딱히 나에게 명령을 하진 않았지만, 만약 정말로 그런 일이 있다면 그럴 생각이야. 너도, 다른 이들도 예외없이. ...에스티아는 다시 한번 설득해보자고 할테고, 대장은 경우에 따라서는 그냥 넘기자고 하겠지만, 나는 이 에델바이스. 그리고 대장에 해가 될 것 같으면 그게 누구라도 검을 들 생각이야. 비밀을 요구한다면 그에 대해서는 지켜줄 수 있어. ...아예 아무도 모르게 묻어버리는 것을 요구한다면 그것도 좋아. ...익숙하거든. 그런 건."
이내 아스텔은 자신이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정리하면서 아스텔은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말을 고민하다가 조금 더 말을 이었다.
"...어떻게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싸움을 배우고 난 이후부터 타의건, 자의건 여럿 세븐스의 목숨을 끊었어. ...피에 물들어버린 손과 칼에 조금 더 묻는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겠지. ...그러니까 그 점은 어렵지 않게 들어줄 수 있지만..."
그다지 감정을 실지 않고 무덤덤하게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다른 이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을까? 허나 어떻게 본다고 해도 별 상관없다는 듯 아스텔은 다시 말을 천천히 이었다.
"...가급적이면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 ...동료를 처리할 수는 있지만, 내키는 일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할 것은 하겠지만."
그렇게 말을 마치며 아스텔은 살며시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그녀의 부탁에 대한 허락이었다.
그녀의 빠른 보폭과 처음 만났을 때, 무엇인가를 먹고 있었다는 점 등을 보아 레시는 군것질을 좋아한다 추측했다.
"...하하..회의감? 글쎄~ 그냥..뭐랄까?..."
자신의 감정이 얼굴로 드러나보였다는 것이 창피했던 선우는 얼굴을 붉히며 답을 머뭇거렸다. 자신이 느낀 점을 그대로 말하면 레레시아가 보는 선우는 에델바이스엔 맞지 않는 인물이 될테니까. 그렇다고 해서 이곳을 나가고 싶지는 않다. 이곳에 있는 건 정말로 좋으니까. 바깥과는 달리 여긴 자유로우니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이 당연한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그러나 가디언즈를 상대로 세븐스를 해방시키겠다는 생각을 가진 선우는 이 당연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
죄책감과 자괴감, 그리고 자신이 이 일을 할 자격이 있나는 회의감이 뒤섞인 감정일 것이다. 옆의 매대에서 초콜릿 한 박스를 꺼낸다. 아마 지금 느낀 이 감정을 쉽게 잊긴 어려울 것 같다.
춤에 대해 계속 어색해하는 아스텔의 모습은 어떤 의미론 귀했다. 특수부대가 창설될 때까지 2년여간 본 모습이라곤 임무 수행의 전후나 어쩌다 스쳐가는 것이 전부였으니. 분위기가 그리 흘러가지 않았다면 그 부분을 콕 집어 놀렸을 텐데. 조금은 아쉬울지도.
"실력이 필요한게 아니니까아 상관없는데에. 음- 어쨌거나 로벨리아한테 한 번 가야 하려나아."
워프 장치의 사용은 허가를 받으면 조건부에 가능하다길래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조만간이든 나중이든 찾아가야겠다. 결국 안 갈 지도 모르지만.
대화가 평온했던 건 거기까지였다. 그녀가 첫번째의 내용을 밝히며 조금은 공기가 무거워진 것 같기도 싶다. 잠시 시선을 피하고 있던 레레시아는 아스텔이 끄덕임에 다시 돌아보았다. 놀람도 뭣도 없는 정적인 표정으로 아스텔을 응시한다. 예상하지 않은 대답이 돌아오자 거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가 잠시 하늘을 보는 사이에도 그녀는 시선을 움직이지 않았다. 달빛이 희게 물들인 얼굴을 하고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흐-음..."
아스텔의 말이 끝나고 잠깐의 텀이 있었다. 그제야 조금 아래 허공으로 시선을 돌린 레레시아가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약하게 다물린 입술 사이로 작은 목울림이 흐른다. 조금 뒤, 그 입술이 열렸다. 소리없이 아스텔을 향한 금빛 눈동자와 함께.
"나는, 네 과거를 캐물을 생각은 없지만. 내 예상이 맞는다는 전제 하에 네가 여기 있다는 건 그런 걸 더이상 하고 싶지 않아서 일까 했는데. 어. 일단 말하자면 나는 첫번째였던 내용을 말해준 것 뿐이지. 너한테 부탁을 한 건 아니야. 들어줄 필요 없어. 아니 오히려 들어주는게 더 불쾌하네."
갈 때는 두어걸음이었던게 보폭을 늘리자 한걸음에 아스텔의 앞까지 성큼 가까워진다. 또렷하게 뜬 눈과 시선이 아스텔의 연한 자색 눈동자를 똑바로 주시한다. 가늘게 벌어진 입술은 금방이라도 으르렁거릴 것 같다.
"한 팀원과 최근 비슷한 얘기를 했지. 그는 언제 죽어도 괜찮으니 그럴 상황이 오면 그를 버리고 가라 그러면서. 팀원들이 그의 죽음으로 인해 동요하더라도 익숙해지면 무뎌질 거라고 그랬어. 그래. 겪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무뎌질거야. 그런데 그게 멀쩡한 거라고 할 수 있어? 죽음에 익숙해지고, 죽이는 것에 익숙해지는게?"
순간 비틀리는 입술 사이로 악 문 잇새가 스쳐지나간다. 그러나 언성은 높아지는 일 없이 놀라울 만큼 일정한 톤을 유지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 네가 첫번째를 골랐어도 나는 그걸 무르게 하던가 다른 걸로 바꾸려 했어. 아무리 허울 좋게 꾸며도, 팀을 위하니 조직을 위하니 해도, 내 이기심으로 네 손에 피를 묻게 만드는 일이니까. 네 과거가 어쨌든 네가 뭘 해왔든 네가 여기 있는 이상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된다고 결국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거 반대로 생각해볼까? 로벨리아가, 에스티아가, 네가 몰래 그런 걸 했다는 걸 알았을 때 어떤 기분일지는 생각 해봤어? 조직을 위해서, 로벨리아를 위해서, 그런 명목의 네 독단으로 저지른 일에 가장 힘들어 할 사람이 누구일지는 생각하지 않았어? 아 그래. 나는 너도 그들도 어떤 사람들인지 몰라. 뭘 알면서 이런 말을 하냐는 소리를 들어도 마땅한데.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넌 대체 여기 왜 있는거지? 그저 할 줄 아는게 싸움 뿐이고 죽이는 것 뿐이니까? 아니지. 다른 건 하지 않아도 되니까 여기 있는 거 아냐? 맹목적으로 명령만을 따르면 편하니까. 다른 건 못 한다며 피해도 되고 눈을 돌려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으니까."
속사포 같던 말이 끝나자 아무리 그녀라도 숨이 차는지 작게 숨을 몰아쉰다. 그 와중에 시선은 어디 할 말 있으면 해보라고 뾰족히 치켜뜨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