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만으로 벤치를 두드려주며 장난을 치니, 고양이는 특유의 몸짓으로 손을 잡으려 했다. 가능한 닿지 않게 움직였지만 한 번씩 고양이의 앞발이 스칠 때마다 레레시아의 표정이 움직였다. 기쁜 듯 아닌 듯 미묘한 표정. 그렇게 놀아주다가 고양이가 멈추자 손도 멈췄다. 노는게 질린 걸까. 말없이 바라보고 있으니 고양이는 사람이 되었...다...?
"..어...?"
고양이, 아니, 마리가 마주한 얼굴은 과연 어땠을까. 세상에서 가장 놀란 사람의 얼굴이라도 해도 좋을 정도로 깜짝 놀란 레레시아의 얼굴이 거기 있었다. 크게 뜬 금빛 눈, 힘이 풀린 듯 벌어진 입, 그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맥 빠진 소리. 놀란 사람의 행동 삼박자를 갖춘 레레시아가 몇 초간 마리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짧은 사이였지만 레레시아의 머릿속엔 어마어마한 생각들이 지나갔다. 왜 고양이가 사람이 됐지? 아 사실 고양이가 아니었던 거야? 어? 아니 그런데 어떡하지? 어떡해, 들켰나? 들킨게 확실해? 아직 모르지 않아? 모르면 괜찮지 않아? 아직 괜찮아? 어, 어, 괜찮을거야? 그러니까 침착하게, 평소대로-
"....어, 어- 으응, 맞아- 잠이 안 와서어. 잠깐 산책하구- 쉬는 중- 이야아?"
천천히- 천천히 자신을 진정시킨 레레시아는 자연스럽게 평소와 같은 말투로 대답했다. 고양이가 사람이 되서 깜짝 놀랐어어. 과연 씨알이나 먹힐까 싶은 말도 주워넘기며, 느릿느릿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아직 심장이 쿵쾅대고 있었지만 애써 태연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의 옆자리를 손짓했다.
"바닥- 딱딱하니까아. 여기 앉아-"
그대로 마주보고 있는 것보단 옆에 앉혀두는게 대응하기는 나을 것이니까. 겉으로는 단지 바닥은 차고 딱딱하니 벤치에 앉으라고 말하곤 여기저기 산발이 된 머리카락을 주섬주섬 추슬렀다. 보이지 않게 힐끔- 눈치도 보면서.
수잔나가 경련하는 장면을 뒤로 비명소리와 함께 화면 조정 중 표시가 뜬다. 앞으로 시간 정도면 뉴스에서는 수잔나 박사의 죽음이 담긴 장면을 몇 번이고 송출하며 세븐스의 문제점을 피력할 것이다. 그릇에서 조그마한 동물 모양 통밀 쿠키만 골라 집어먹던 손이 멈춘다. 조막 만 한 손가락은 아직 충분히 길게 뻗지 못해 통통한 감이 남아있고 소파의 한 칸도 아닌 반 칸을 차지하는 몸집은 작다. 멍하니 벌린 입 틈새로 앞니가 빠진 것이 보였다. 그릇이 아무렇게나 굴러떨어졌다.
아이는 비명을 지르다 겨우 손으로 입을 꽉 틀어막았다. 목이 턱 막혔다. 비명을 지르면 안 된다. 그러면 들킬 것이다. 달달 떨리는 손으로 소파 구석에 놓인 담요를 겨우 끌어와 덮어 자신만의 요새를 만들자 새하얀 머리카락도 가려진다. 아이가 웅크리더니, 이내 작은 짐승처럼 끙끙대며 울었다. 너무 끔찍하다!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날이다. 오늘은 아빠가 일 때문에 늦게 오는 날이라, 아빠가 돌아오기 전까진 어디에 털어놓을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