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열리고 푸르른 바다에 몸을 누인다 있을 리 없는 생명을 바라보며 서서히, 서서히 가라앉는다 찰나의 평온은 그 어떤 시간보다 달콤하니
이것은 신비하고 기이한 꿈에 떨어진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붉은 바다를 위해 http://threadiki.80port.net/wiki/wiki.php/%EB%B6%89%EC%9D%80%20%EB%B0%94%EB%8B%A4%EB%A5%BC%20%EC%9C%84%ED%95%B4 무림비사 http://threadiki.80port.net/wiki/wiki.php/%EB%AC%B4%EB%A6%BC%EB%B9%84%EC%82%AC%E6%AD%A6%E6%9E%97%E7%A7%98%E5%8F%B2
천하는 물론 천상의 악들을 멸하고 자신만이 절대 악으로 군림하여 악을 전부 제거하고 오로지 선만이 가득하여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실 진정한 신이자 구세주인 천마님을 믿는 천마신교 소속의 강건을 돌리는 강건주라고 합니다 ! 우선 천마신교는 무엇이냐 ? 위에 말한 것 처럼 진정 세상을 위해 행동하시는 천마님을 따르고 그 뜻을 천하에서도 이루기 위해 행동하는 자들로서 악을 멸하는 악이 되는 자들을 말합니다 ! 악역은 ... 익숙하니까 ... 실력이 있는 자들은 실력을 제대로 챙겨주고 약자들을 보호하고 사랑해주는 그런 올바른 곳이었으나 교주님을 잃고 내분이 일어나 그릇된 길을 걷고 있는게 현 상황입니다 ... 하지만 ! 여러분이 ! 무림의 세계도 아닌 ! 이세계 사람들인 여러분들이 천마님을 믿고 ! 천마신교에 들어오신다면 천마님께서도 다른 세계에서도 올바른 길을 위해 행동하려는 자들이 있구나하시어 기뻐하실겁니다 ! 비록 긴 시간은 아니고 여러분의 세계에 어떠한 영향력을 주기 힘들지만 , 이러한 천마님을 믿는 것으로 내가 믿는 신은 최강이며 무적이라는 압도적인 안도감에 일상 생활을 편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 모두 천마님 믿고 광명 찾고 ! 마음의 어둠을 헤쳐나가고 ! 모든 고난과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마음을 얻어봐요 ! 불가능하다고 생각해도 됩니다. 천마님을 상냥하시기에 진정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는 자신의 힘으로 얼마든지 일어설 수 있게 도와주시는 분이기도 해용 ! 누구 보다 강하고 누구 보다 냉정하지만 그렇기에 누구보다 상냥하고 누구 보다 사랑을 할 줄 아는 그런 신 ! 내 뒤에 천마님이 계신다 ! 그 마음 하나만으로 강건은 뒷배 없이 온갖 수라장을 헤쳐나왔습니다 ! 인간이란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 , 그렇기에 서로 모이고 살아가지요. 그리고 그 모이는 곳에 천마님이라는 존재를 살짝 더함으로서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겁니다 우리들의 미래를 당신들의 미래를 천마신교와 함께 !
무림비사에서는 복건성의 붉은 용왕이자 진아를 쫓는 자, 모용세가의 책사 적호검희 미사하란을 붉바위에서는 한때 미 해군의 잠수함 함장, 명예훈장 수훈자, 지금은 초법기관 네르프에서 세컨드라이프를 시작하는 후카미즈 나루미를 굴리고 있는 저입니다 대칑 나루미사라고 불러주세요@@
>>39 무림 세계 시점에서는 아마 하늘에서 포탈이 열려 뚝 떨어진 전개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붉바 세계 시점으로 보면 캐릭터들이 웬 이상한 꿈을 꾸게 된 것이라....(@@) 이미 예전에 DogDream 전개로 일상이벤트가 진행된 적이 있으니 양측 레스주분들께선 편히 일상을 시작해주셔도 괜찮으실 것 같습니다. 어차피 꿈으로 처리될테니 붉바 레스주분들은 초호기 타고 떨어졌다 이런 식으로 전개해주셔도 무리가 없을겁니다. (??????)
떨어지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면서 눈을 떴다. 자다가 이런 느낌에 깨는 일이 그렇게 드문 것은 아니다. 떨어지는 꿈을 꿀 때는 자주 이러니까. 하지만 그럴 땐 보통 놀라서 눈을 떠도 이불과 베개의 감촉이나, 익숙한 방의 풍경을 보며 '뭐야, 꿈이었네...'하고 다시 잠들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눈을 떴는데도 떨어지는 느낌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눈을 뜬 곳도 침대와 이부자리가 아닌― 에바 조종석이었다. 당황한 시야에는 본부의 녹색 벽이 아니라 푸른 하늘과 땅이 비치고 있다. 아니, 뭐야 이게???
"아..?? 뭐, 뭐야? 아니, 진짜로 떨어지고 있, 으악! 꺄아아아악!!!“
부유감과 점점 가까워지는 땅에 당황해 다급하게 착지자세를 잡아본다. 다행히 다리부터 착지하는데 성공했지만 꽤나 크게 충격을 받았는지 다리가 살짝 찌르르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으...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닌 것 같으니 다행이지만. 귀가 살짝 멍한 것은 떨어질 때 난 큰 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높은 데에서 단숨에 내려와서 그런지 잘 모르겠네. 충격 때문에 일어난 먼지가 가라앉고,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온 스크린 너머 풍경은...
"......뭐야... 이게..?“
숲...인가? 주변의 쓰러진 나무들이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더 많은 나무들이 사방에 자리잡고 있었다. 어? 뭐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훈련 시뮬레이션이었다. 그때도 교외 쪽이 나왔던 적 있었지. 하지만 그때랑은 좀 다른데.. ...애초에 VR 고글을 쓰고 훈련을 시작했던 기억도 없고, 분명 침대에서 잤던 것 같은데? 혹시나해서 눈가를 더듬어 보지만 얼굴엔 아무것도 착용한 게 없었다.
"이상하네... 언제 에바에 탔지? 자는 사이에 사도가 나왔나? 아니 그래도 깨우지도 않고 이렇게...?“
사도가 나왔다기엔 브리핑도 없고, 주변도 조용했다. 초호기가 떨어지면서 낸 굉음을 제외하면 거의 아무 소리도 없는 느낌인데. 뭐지? 이 상황? 일단 가만히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이리봐도 숲이고 저리봐도 숲이다. 아니, 산인가? 신도쿄시에 이런 산이 있었나?
/지도를 봐도 어디로 떨어져야 좋을지 잘 모르겠어서 대충 산 속(...)으로 상정하고 써왔습니다... :3
어느 날처럼 일어나서 천마님께 기도를 올리고 가볍게 수련을 한 다음 씻고 담당 구역을 순찰한다. 순찰이 빨리 끝나서 먼저 돌아갈까 아니면 산책을 해볼까 생각을 하다가 시간도 남으니 산책을 하기로 한다. 동시에 사람이 많던 거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주변의 산 속으로 이동한다. 경지가 오르면 오를 수록 한계가 더 명확하게 느껴지는 기분이다. 이런 기분이 들지 않기 위해서 산책을 나오곤 하는건데 ... ?
" ? "
순간 진법에 들어왔는지 , 혹은 환각에 당한건지 싶어 내공을 퍼뜨리며 몸을 살펴보지만 아무 문제 없었다. 천마님 맙소사. 하늘에서 떨어지는 저 거인이 현실인건가 ? 용도 보고 이무기도 봤지만 ... 저건 진짜로 현실인가 ? 그전에 ... 저런게 떨어지면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일어날 것이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거인이 착지 자세로 떨어지자 동시에 뛰어 올라 충격을 피한다. 자세를 잡고 착지를 했다는 것은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호흡을 하며 몸을 긴장시키고 한마신공의 내공을 사용해 주변을 얼리며 다가간다. 함부로 움직이면 얼려버리거나 발을 미끄러뜨려서 무력화 시킨다. 이것이 거인과 싸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떠올린 대처법이다. 거인의 앞까지 달려간 다음 그 자리에서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라 거인의 얼굴 앞에서 내공을 담아 외친다.
"너는 누구냐 !"
누구냐 !
구냐 !
냐 !
그 말을 하고 주변에서 제일 높은 나무 위로 착지한 다음 거인을 바라본다. 싸울 의사가 없다면 대화를 하겠지만 , 여차하면 바로 최강의 수를 사용해 끝장을 보겠다.
슬슬 일상이 돌아가기 시작했으니 붉은 바다 레스주분들을 위해 이쯤에서 공지를 돌려보자면...
🌊 크로스오버 진행동안 [ 붉은 바다를 위해 ] 의 레스주 캐릭터들은 일상 3회당 [ 홍해의 파편 ] 을 하나씩 획득할 수 있습니다. 🌊 해당 아이템 획득 조건은 양측 도합 15레스 이상 입니다. 🌊 크로스오버 기간은 8/11 ~ 8/17 까지이며, 이 이후로는 어떠한 일상 레스도 이어질 수 없다는 점 유의해주세요.
[ 홍해의 파편 ] [ ▶ 얼핏 보기에는 붉은 구체처럼 보이는, 코어와 비슷해 보이는 붉은 보석. 볼수록 뭔가 꺼림칙해 보이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일단은 먹을 수 있는 재질이라고 하지만… ] [ ▶ 일회성 아이템 ] [ ▶ 섭취시 랜덤하게 NPC 캐릭터의 기억 중 하나를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이때 기억의 시점을 설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본인이 친분이 있는 캐릭터에 한정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 [ ▶ 해당 아이템은 레스주 캐릭터를 상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
아니 진짜 여긴 어디야...? 아무리 교외 지역이라도, 아니지 오히려 교외 지역에는 큰 송전탑이나 그런 거 하나씩 있지 않나? 근데 여긴 송전탑은 둘째치고 전선조차 보이지 않는데? 통신도 안 들어오고, 자다 깼는데 에바에 타고 있어서 영문은 하나도 모르겠고... ...일단 움직여볼까? 어디로 가야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일어나서 움직일 결심을 하기가 무섭게 뭔가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어, 어라...?“
누구냐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고? ...보통 초호기를 보고서 그렇게 물어보나? '이게 뭐야'같은 외침이 들렸다면 모를까. 게다가 그렇게 외친 게 초호기의 시야 바로 정면이었다. 아니, 이거 초호기라고? 엄청 크다고?? 그런데 시야 정면까지 리프트나 뭐 그런 기계없이 뛰어올라서 외쳤다고?? 뭐야 이게. 진짜 뭐야.
"아, 그게.. 나츠키라고 하는데요. 저... 누구세요...?“
영문을 모르겠지만 일단 대답을 하면서도 의아했다. 일단 이 사람이 어떻게 초호기 높이 비슷하게 점프했는진 둘째치고, 복장이 신기했다. 역사책에 나오는 그런 옷 같은데? 일단 흔하게 볼 수 있는 옷은 아니지...? 그리고 네르프 관계자라면 절대 하지 않을 누구냐는 질문... 흠. 일단 저 사람이 네르프 관계자가 아니라는건 확실하게 알았다. 와,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 중에서 제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네. 좋아해야 하는 건가 이거..
"참, 혹시 여기 어딘지 아세요? 신도쿄시는 아닌 것 같은데, 구 도쿄도 아니고...“
누구냐고 외쳤던 그 사람은 가장 높은 나무 위로 착지해 있었다. 조심스럽게 한 손으로 땅 쪽을 가리키며 혹시 여기가 어딘지 아냐고 물어봤다. 혹시 여기 사시는 분이세요? 여기 어디에요...?
거대하면서도 험악한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가녀린 목소리다. 마치 어린 여자 아이 같은 ... 아니지 , 내가 너무 겉모습만 보고 판단을 해버린건가 ? 스스로를 나츠키라고 밝힌 거인을 보고 어디서 들어본 이름 방식이라고 생각하다가 동쪽의 섬나라에 저런 이름 방식을 쓰고 있었다고 치훈(건이 친구)이에게 술자리에서 들은 적이 있다. 나라 이름은 기억하지 않는다. 그런 작고 약한 나라의 이름을 내가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 그렇다면 이 거인은 동쪽 섬나라에서 나타난 요괴라도 되는것인가 ? 이 정도 크기의 요괴라면 ... 내단도 상당히 거대할 것이다. 적의를 보이지 않으면 내단을 꺼낼 생각도 없지만 여기서 천마신교의 신분과 황보세가의 신분. 둘 중 어느 것을 꺼내야하나 고민을 하다가 황보세가의 것을 꺼내기로 한다.
"나는 황보건. 별호는 없고 평범한 무림인이지"
거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내공을 담아 크게 말한다.
"도쿄 ? 그건 잘 모르겠다만 ... 여기는 청해다."
동쪽 섬나라에서 온 요괴가 그것을 알까 싶지만 , 그것 말고는 설명할 게 더 있나 싶다.
"이름을 말하는 방식을 들어보니 동쪽에 있다는 섬나라 사람인가 ?"
섬에서 대체 어떤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거지 ? 이런 거인이 갑자기 대륙의 하늘에서 떨어지다니
황보세가의 사천 지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급 분타원. 성격은 호방하고 술을 좋아하나, 중요할 때는 진지해지고 말수가 적어진다. 무엇보다도 비밀을 엄수하는 편이라 많은 이들에게 신뢰를 얻고있다. 부모님이 정마대전에 참전했었다는 강건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가, 같이 임무 수행을 하던 도중 죽을 위기에서 강건이 구출해낸다. 그 이후부터 살갑게 대하더니 어느순간부터 의형제를 맺어버린 상태. 무공은 그리 뛰어나지 않으나 재능은 있는듯 하다. 강건과는 동갑내기.
요약 : 술 좋아하고 머리 잘돌아가며 이상한 정보 잘 물어오는 베프 . 이상한 지식은 이 친구가 알려줬다고 퉁치면 됨 !
일단 이름까지는 확실히 알아들었다. 황보건... 건...이 이름인가? 아무튼 이름을 이해하는 것까진 클리어했어. 하지만 그 뒤가 문제다. ...이름 다음으로 소개하는건 대체로 직업이겠지 싶은데, 무림인이라는건 대체... 소림사 같은거? 잘은 모르겠지만... 뭐 대충 그런 건가보다 하고 넘겨도 그 다음은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동쪽에 있다는 섬나라, 아무리 봐도 일본을 가리키는 말이다. 왜 일본이 아니라 동쪽의 어쩌구저쩌구 하는 식으로 말하는진 모르겠지만. 아니 이게 중요한게 아니야. 중요한건 여기가 일본이 아닐수도 있다는 점이지.
아니 뭔데???? 왜 자다 깨보니까 외국??????? 그것도 초호기를 탄 채로?????? 무슨 생각인거야 망할 아버지!? 사도는 신도쿄시로만 찾아오는거 아니었냐고!! 조종간에서 손을 떼고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 진짜 영문을 모르겠네. ...아니다.. 일단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그으으... 혹시 네르프 지부라던가 알고 계신지.. 아니 모르시려나.... 아... 진짜... 대체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는거야. 이런 일은 처음인데.“
외국에도 네르프 지부가 있다고 들었으니까, 이 청해라는 곳이 나라인지 어디 시나 구 이름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네르프 지부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지부로 가면 뭐라도 있을테니까... 이 사태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고. 어째 질문으로 시작해서 한탄으로 끝맺은 느낌이지만, 아무튼.
아니 어느새?? 나무 위에 있던 사람이 팔을 타고 올라가 초호기의 어깨 위에 서 있었다. 아니 언제 올라온 거야? 위험하다고 말했지만 이렇게 날렵하게 움직이는 사람이니까 뭐... 괜찮나. 떨어지면 자기 책임인 걸로 하지 뭐. 내가 들어다 놓은 것도 아니고. 지부 위치를 듣기 전엔 돌아다닐 예정도 없으니까, 내가 안 움직이면 당장 위험할 일은 없겠지?
올해가 언제냐는 질문에 아예 내친 김에 오늘 날짜까지 말하려다가 말이 뚝 끊겼다. 나는 서기 2015년이라고 말했지만, 상대방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연호도 숫자도 하나같이 다르다. 이게... 어떻게 된... 뭐야 이게...
"―아니, 그, 네??“
외국에선 그렇게 쓰나보다~ 하고 납득하기엔 너무, 너무 다르다. 아니 설마, 하고 작은 의혹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 의혹을 뒷받침하듯 아까부터 이상하게 느껴지던 것들이 슬그머니 존재감을 발하기 시작했다. 사극이나 역사책에서 볼 법한 복장, 이상한 발음의 네르프, 일본을 동쪽의 섬나라라고 부른 것... 위험하다고 했을 때 돌아온 '수련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다'는 아직도 이해가 안가지만 이것도 역시 이상하긴 하니까 포함시키자. 아무튼 도달한 결론은 하나였다.
어쩌면 여기, 현대가 아닐지도 몰라. 어쩌면 진짜로, 역사책에나 나올법한 멀고 먼 과거일지도 몰라. 그것도 외국. 하필이면 외국.
"......이거 무슨 촬영이에요? 뭐 영화라던가, 아니, 사극인가?"
―라니 그럴리가! 무슨 촬영이겠지! 제작진이 '저희 영화 찍을건데 초호기 좀 빌려주세요' 해서 내가 자는 사이에 망할 아버지가 무단으로 계약서에 도장 쾅 오케이 끌고 가! 해서 팔아먹은 게 아닐까? 차라리 그쪽이 현실적일 것 같은데?
"...지금 그 반응으로 촬영도 영화도 사극도 아니라는걸 확실하게 확인했어요.. 감사합니다...“
되물어오는 그 반응 자체가 말이죠, 아까 네르프 지부 있냐고 물어봤을 때 '관청?'하는 반응에서 네르프 지부가 없다는 걸 알게 된 것처럼 지금도 그렇다고 할까. 뭐지 이거? 꿈인가? 꿈인가봐. 손을 들어서 볼을 찰싹찰싹 두드렸다. 초호기 볼이 아니라 내 볼을. ...이 정도로 깨진 않겠지만, 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사실적인 감촉이 느껴지고 있다. 그래도 꿈일거야. 꿈이어야해. 이런 게 현실일 리가 없으니까...!!
"―네? 숨겨요?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니, 설마 사도가 온다던가?“
아니 초호기를 숨기라고? 숨기고 싶어도 본부도 없고 마땅히 수납(...)할 공간도 없는 것 같은데? 여긴 그냥 산이잖아요? 근데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말은 또 뭐야. 갑자기 무서워졌는데. 사도가 나오면, 여기 무기고가 없어서 진짜 주먹만 가지고 싸워야 할지도 모르는데. 어쩌지. 그보다 그럼 나보다 이 아저씨가 더 위험한 거 아니야?
"사파? ...아, 아니 아저씨가 저를 해친다는 게 아니라, 사도가 아저씨를 해친다는 뜻이었는데...“
사도는 아저씨를 찢을걸요... 아니 뭉개나? 일단 하나같이 사이즈는 다 컸었고, 건물도 마구 부수고 그랬으니까. 일단 도저히 인간이 맨몸으로 상대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다. 맨몸이 뭐야. 헬기랑 전투기랑 미사일도 그냥 빔 한방에 쓸려나가는걸. 대사도결전병기 에반게리온이 아니면 상대할 수 없는 적이 사도니까... 만약 이쪽에 사도가 나타난다면 일단 이 아저씨를 안전한 곳까지 대피시켜야 하는 것이다.
근데 뭐, 방금 반응보니까 사도는 없고 사파라는 게 있나본데? 하지만 사파가 사도처럼 위협적인 존재인 것 같진 않다. 그냥 말하는 느낌이 '어.. 아무튼 그런 게 있어'같은 느낌인데. ...그럼 걱정할 필요는 없나.
"뭐... 지금 반응으로 대충 짐작이 가네요. 사도는 안 나타나는거군요. 으, 으에... 적이라뇨! 그럴 일 없어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초호기의 고개도 돌아갔을까? 잘 모르겠다. 아무튼 적이라니! 적대할 생각도 없고 그럴 계획도 없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친절하게 (비록 내용의 절반은 아직도 이해가 잘 안되긴 하지만)말도 걸어주고 정보도 주고 한 사람한테 그런 짓을 할 리가!
"......근데 사도가 없으면 왜 목숨이 위험하다고 하신거죠? 여긴 그냥.. 산이고, 평화로워 보이는데요."
뭐야. 이름이 사도가 아니지 사도 비스무리한게 나오긴 나오나본데? 용이나 손짓 한번으로 수백명 죽이는 초고수?라는 존재들은 사도가 아닐까? 이 아저씨가 말하는 요괴라는 것도?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근데 어지간한 요괴한테 맞고 다닐 수준이 아니라니? 이 아저씨가 강한 건가, 여기 나오는 사도 비스무리한 것들이 약한 건가... 감이 안 잡힌다. 생각해보니 이 아저씨, 초호기 어깨에 올라탈 때도 엄청 별것 아닌 것처럼 올라왔었지.
"그런가요... 여기도 사도랑 비슷한게 있긴 있나보네요.“
아예 없는 건 아니고 위험하긴 위험한 건가. 그럼 초호기에서 내려서 돌아다니는 건 조심해야겠는데. 여전히 현실이라기엔 좀 붕 떠있는 느낌이지만, 점차 애매한 현실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들도 많다는 말은 그다지 위안이 되진 못했다. 왜냐하면 난... 여기가 어디인지도 정확히 모르고, 아는 사람들도 없고... 낯선 곳인데, 여기서 좋은 사람도 있다고 해도 덜컥 믿거나 하기는 무서우니까...
"네에...“
그래도 이 아저씨는 좋은 사람일지도... 생각해보면 (아마)처음으로 초호기를 본 건데도 도망가거나 하지 않고, 뭐.. 공격?도 안했고 오히려 친절하게 대화를 해준 사람이니까. 좋은 사람이 맞는 것 같아.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다! 낯선 곳에서 낯선 상황을 마주한 지금, 조금이라도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을 만난 건 행운이라고 해도 좋을지도.
"아, 그럼 저 일단 이 주변 좀 보려고 하는데요. 혹시 길 좀 알려주실 수 있는지...“
그러니까 조금만 더 의지해보자. ...전혀 모르는 곳이니까 이 주변 길이라도 물어보자! 길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계속 여기에만 있을 수는 없고.
'이 거인이 돌아다니면 길이 엉망진창이 되지 않을까?' 내지는 '사람이 다치지 않을까?' 같은 말이 나오면 모를까, 표적이라니?? 사도를 상대로는 다소 고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외는.. 글쎄, 표적이 되니 숨어있어야겠다 같은 발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당황스럽네... 그래도 눈에 띄는 건 사실이고, 이대로 움직이다 일반인이 휘말려서 다치거나 길이 엉망이 될 수도 있으니까 돌아다닐거면 내리는 게 좋겠지. ...내려도 되나? 안전할까?
"어, 호수나 바다에 숨기는 건 가능한데요, 바다보단 호수가 좋겠어요. 붉은색은 별로 안 좋아해서요..."
...근데 여기도 바다가 붉은색일까? 진짜로 내가 있던 시대가 아니라면, 세컨드 임팩트 이전의 세계라면 붉은색 바다가 아닐수도 있잖아?
"아니, 잠시만요. ...좀 이상한 질문일수도 있겠지만 그, 바다가 무슨 색인가요?"
붉은색이 아니라고 한다면 구경가보고 싶은데! 하지만 붉은색이라고 한다면 빠르게 호수를 찾아 이동해야겠다.
푸른색이래! 붉은색이 아니라 푸른색! 진짜인가?? 진짜로?? 그럼 파란색 바다를 볼 수 있는 건가?? 아주 약간은, 진짜로 과거로 와버린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런 생각은 곧바로 '파란색 바다'라는 말에 저 멀리 날아가버렸다. 굉장해!! 보러 가고 싶어! 지금 당장!!
"쩐다... ...보러 가도 되죠? 아니 보러 갈래요! 지금 바로!! 초호기도 바다에 숨기면 되니까!! 괜찮죠? 네?“
그렇게 말하면서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초호기 어깨에 올라간 아저씨에겐 좀 미안하긴 하지만, 어, 올라오는 것도 가볍게 하셨으니까 아마 갑자기 일어서도 균형은 잘 잡으실거라 믿어요. 아니, 역시 죄송합니다. 일어난 다음에야 어깨에 아저씨가 있는 게 생각났어요. 너무 설레서 그만.
"아,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괜찮으시면 바다로 가는 길 좀 알려주세요!!“
사과와 걱정과... 뭐, 흥분이라던가 기대라던가 섞여서 사과인지 뭔지 모를 무언가가 된 느낌이긴 하지만 아무튼.
빙빙드링크 ▶ 잦은 야근 및 철야작업으로 인해 이제 기술부 직원들에게 있어 카페인은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음료로는 더이상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이들은 보다 강력한 카페인 음료를 제조하기 위해 연구와 조합을 거듭하여 마침내 새로운 음료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것이 빙빙드링크입니다. 콜라와 같은 톡 쏘면서도 달콤한 탄산음료같은 맛이 일품이지만, 지나치게 잦은 음용시 중독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만 합니다. ▶ 특수 아이템 ▶ (사용시) 현 상황에 대한 가장 빠른 해결책을 제시해 줍니다. 1회성 아이템으로 사용 즉시 소멸됩니다.
오케이!하고 바로 뛰어가...려다 역시 멈췄다. 이대로 뛰면 이 아저씨 떨어져서 죽을거야(...). 어쩌지? 엔트리 플러그 안에 태울까? 손에 쥐고 달릴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금방 이동할 방법을 마련할 수 있다는 말에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방법이 있나? ...장거리에 고속이동이라면 비행기 같은 거?
"어... 어떤 방법이요? 비행기? 아니, 비행기는 아직 없나? 언제부터 상용화였더라...“
...음... 모르겠다! 나중에 찾아봐야지. ...아니, 근데 여기 핸드폰은 터지나? 나중에 ○글에 검색해보려고 했는데 무리일지도. 아무튼 뭔가 방법을 마련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듯한 말에 뛰려던 자세를 바로 고쳐서 섰다. 어떤 방법일진 몰라도 까짓거 함 해보죠.
소리도 안 들린 것 같고, 뭔가 달라진 게 있나...? 놀라서 공격하는 건 금지라니, 다짜고짜 공격을 날릴 사람... 아니 초호기로 보였나? 하지만 난 그렇게 공격적인 사람은 아닌데.
―근데 어쩐지 좀 어두워진 것 같은데. 아니, 확실하게 어두워졌는데? 뭐지? 고개를 들어서 위쪽을 보자, 거기에는...
"힉, 사, 사도?! 언제 이렇게 접근했, 에???“
으악! 사도다! 저거 분명 사도야! 틀림없어!! 엄청나게 커다란 형태를 보고 기겁해서 거의 가슴께까지 손을 올렸다. 공격하지 말라는 말은 이미 기억도 나지 않았다. 코, 코어가... 코어는 어디? 오퍼레이터가 없으니까 역시 모르겠다고! 당황해서 어버버하고 있자니 어째선지 어깨 위 아저씨가 사도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믿을 수 없어, 사도한테 말을 걸다니. 근데 더 믿을 수 없는 건 그 말이 통했다는 것이다. ...저쪽도 이쪽을 공격할 것 같진 않으니까, 괜찮은...가...?
".....놀랍네요. 말이 통하는 거에요? 신기하다...“
...사도라는 편견(?)을 버리고 보니 뭔가, 소설같은 곳에 나오는 용?처럼 보이기도 하고. 타라는 듯이 땅에 가까이 내려와 멈춰있는 용을 멍하니 보다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이, 이거... 타도 되는 걸까...
"그러게요. 내가 탄 초호기가 용을 타다니... 아니 근데 진짜 용? 대박... 동화책이나 소설이나, 아무튼 이야기 속에서만 있는 동물인 줄 알았는데. 그, 근데 무겁지 않을라나... 진짜로 날아요,,,?"
지원주 건이주 나루미사주 포함 오신분들 모두 Good-Evening 입니다. 다들 즐거운 목요일 보내셨나요? (@@) 초호기가 용을 타는 일이 벌어지다니 진심으로 팝콘각인 일이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네요. 일단 현생이 막 끝났기도 하니 저는 팝콘을 까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영물이라니 이거 책에서 읽어본 것 같은 표현인데. 사도가 아니라 그런 쪽이구나? 아무튼 공격당할 일은 정말로 없겠지..? 조심스럽게 올라탄 표면을 손으로 슥 쓸어본다. 보기에는 일단... 뱀 같기도 하고? 내가 아는 뱀에 비해 엄청나게 크지만.
"어, 어어. 으아아....“
오, 올라가는 느낌 은근히 무서운데...? 떨어지는 것도 무섭지만 역시 올라갈 때의 오싹거리는 느낌도 싫어...! 앗 근데 이거 안전벨트도 없는데 중간에 떨어지는 거 아냐? ...어, 어깨에 있는 아저씨는?! 무사한가? 떨어지는 거 아냐???
"아, 앗 맞다. 어쩌지. 아저씨, 지금이라도 손― 흐이익... 무리...“
지금이라도 손에 올라타세요!하고 한 손을 어깨 쪽으로 가져가려고 했는데, 하필 그 순간에 급출발을 해버렸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스쳐지나가는 풍경-이라고 해도 주변 구름밖에 안 보이는 것 같은데?-이라던가 바람같은 것 때문에 급 무서워졌어... 눈을 질끈 감고, 어깨로 내밀려던 손은 다시 내려가서 용을 붙잡았다. 아, 아저씨.. 도착할때까지 부디 무사히 계세요....
"으으으... 뭐야... 엄청나게 빠르잖아. 전투기보다 빠른 거 아닌지... ...어, 우와, 뭐야 이거...“
감았던 눈을 슬그머니 떠보자 아래쪽 풍경이 시시각각 바뀌고 있었다. 산에서 뭔가 중세풍 도시로, 그리고 평야로, 다시 산으로. ....그리고... 처음으로 보는, 하늘이랑 똑같은 색으로 새파랗게 펼쳐진...
걱정을 해주는 것을 보니 착한 사람이 맞는 것 같아 다행이다. 약자여도 악한 자가 있기 마련인데 ... 아니지 이 강철 거인을 다루는 인간을 약자로 볼 수 있나 ? 바다가 점점 다가오고 구름과 함께 해변가에 천천히 다가가 내려오기 편하게 한다.
"일단 그 강철 거인은 커다라니까 바다에 잘 숨겨야 할 것 같은데"
어중강하게 숨겼다가는 어부들이 발견을 하고 기겁을 할 지도 모른다. 바다에 거인이 나타났다고 계속해서 말을 하려다가 뭔가 묘한 느낌에 그저 가만히 있는다. 그러고보니 바다와 함께 언급한게 붉은색이라고 했었지 이렇게 푸른색의 바다를 보는건 처음인가 ? 나도 처음 바다를 봤을땐 상당히 놀라웠지 지금은 감탄하게 두자
감탄하는 사이 용은 점점 아래로 내려와 해변가에 멈췄다. 멈추기가 무섭게 내려와서 바다 쪽을 향해 걸어봤다. 굉장해. 진짜로 새파란 색이다. 하늘이랑 똑같은 파란색이야! 초호기에 타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그대로 바다로 뛰어들려다가 간신히 멈춰섰다. 어, 그. 아니 바다에 숨기긴 해야겠지만 어깨에 아저씨를 얹고 바다로 들어가면 안 되니까?
"엄청나다... 꿈 같아.... 아, 그, 그럼 바다 속에 숨길테니까 아저씨, 잠깐 내려주실래요?“
지상에 세워두는 것보다 바닷속에 숨기는 쪽이 나중에 타기도 더 편하지 않을까? 눈에도 덜 띄고. 뿔은 좀 튀어나와서, 바다에서 뭔가 튀어나온 것처럼 보일라나. 모르겠다. 하지만 바닷속에 숨기고 싶다! 왜냐하면 바다에 들어가보고 싶으니까!! 파란색 바다에 들어가보고 싶어!
한 번에 뛰어내리다니 역시 이 아저씨 엄청나지 않아?라는 생각은 좀 더 엄청난 푸른색 바다 때문에 완전히 뒷전이 되어버렸다. 아저씨가 내려간 걸 확인하자마자 바로 바다쪽으로, 마음같아선 뛰어가고 싶지만 초호기로 뛰면 이 주변이 엄청난 모습이 될지도 모르니 어떻게든 참고 참아서 조금 빠른 걸음으로 바닷속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굉장해... 진짜로 파란색...“
앉은 자세의 초호기가 잠겨서 감춰질 정도의 깊이는 어느 정도지? 걸어들어가면서 천천히 적당한 자리를 찾아봤다. 다행히 그렇게 오래걸리진 않았다. 바닷물에 너무 오래 담가두면 초호기에 이상이 생긴다던가 뭐 그러진 않겠지? ...괜찮겠지! 여기 바다는 파란색이니까!(?) 엔트리 플러그에서 나와 직접 푸른색 바닷물을 헤치고 수면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크게 들이마신 공기는 기분 탓인지, 바다가 푸른 탓인지, 어쩐지 더 맑게 느껴진다. 사방을 둘러보면 온통 푸른빛 물결이 넘실대고 있다. ...굉장해. 저쪽은 진짜로 하늘이랑 구분이 안 갈 정도야! 어디부터 하늘이고 어디까지가 바다인지 모르겠어! 굉장해!!
"푸하아... 엄청나다!! 진짜로 새파래...“
하늘인지 바다인지, 수평선이 어디인지 찾기 힘들 정도로 온통 푸른빛인 바다를 둘러보다가 천천히 해변가로 헤엄쳐 나왔다. 부력으로 조금 가볍게 느껴졌던 몸은 지상에 도착하자 살짝 무겁게 느껴졌다. 아, 플러그 슈트, 세탁해야 하는 거 아닐까. 소금기를 닦아내야 할 텐데.
"아저씨! 여기 굉장해요!! 파란색 바다! 어디부터 하늘이고 바다인지 구분도 안가네요! 진짜 굉장― 으아아악!? 뭐야 이거?! 뭐야뭐야?!? 저리 가!!“
아저씨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려다가 발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시선을 아래로 내려보니 발에 뭔가... 뭔가... 초록색인지 까만색인지 뭐야 이게?! 뭔가 발에 붙어있어!! 기겁해서 발을 막 털었는데 묘하게 안 떨어진다. 으에에에 뭐야 이게? 바다에 이상한 게 있어!!! 어째서!?
/다시마 풍미 400배... 가 아니라 대충 해초같은거 다리에 붙어와서 기겁하는 중입니다 :3 붉바 세계 바다에는 해초도 물고기도 아무것도 없지만... 분명 무림 바다에는 있겠죠...
강철 거인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건 알았지만 저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는데 ... 내공으로 시력을 강화해서 강철 거인을 숨기는 것을 지켜보며 말한다. 뭔가 ... 징그러운데 ...
"음 ?"
저 옷도 강철 거인만큼 엄청나게 눈에 띌 것 같은데 옷이라도 한 벌 사줘야겠다. 그리고 돌려 보낼 방법이나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돌아갈때까지 이곳에서 지내는 것에 도움을 줘야 할 것 같은데 나도 임무가 있다보니 계속 붙어있는 건 불가능 하다. 어쩐다 ……. 생각보다 더 어린 모습에 자신 보다 어린 누이 동생이 생각나 버렸다.
"진정하고 그건 해초야 해초 , 바다에서 자라는 풀 같은거"
바다의 색만 다른게 아니고 환경까지 다른건가 ? 해초가 다리에 감긴 걸 보고 놀라다니
"일단 즐길만큼 더 즐겨봐. 옷이라도 구해올테니까"
옷이랑 황보세가의 패를 빌려주는 것과 기본 상식을 ... 음 그래도 걱정이 되는건 변함이 없다. 교국으로 데려가기에는 저 강철 거인을 놔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풀이 어떻게 바다에서 자라지... 하긴, 붉은색이 되기 전에는 물고기라는 것도 있었다고 하니까. 지식으로는 대충 알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으니까 역시 잘은 모르겠지만. 다리에 감긴 해초라는 것에 손을 뻗어 툭툭 건드려봤다. 움직이거나...하진 않겠지? 풀이니까...? 으와, 근데 내가 아는 풀보다 너무 미끌거리는데. 으에에에....
"미끌거려.. 이상한 감촉... ...후후, 굉장해! 이것도 처음봤어요! 붉은색 바다엔 이런 건 없거든요.“
몇 번의 시도 끝에 해초를 잡아 대충 근처로 툭 던졌다. 땅으로 떨어지는 해초를 따라간 시선 끝에 뭔가가 보였다. 모래 사이에... 뭔가.. 우와, 이건 뭐지???
"우와 이거... 뭐지? 예쁘다... 귀여워...“
모래에 뭔가 묻혀있던 걸 집어들어서 보니까... 색도 예쁘고 귀여운데? 뭐지? 돌은 아닌 것 같은데? 아, 여기도 있다. 저기도! 쪼그리고 앉아서 여기저기에 있는 처음보는 걸 하나씩 집어보다가 옷이라는 말에 슬쩍 고개를 들었다. 옷? 하긴 계속 슈트 차림으로 있긴 좀 그렇지.
"앗, 저기... 감사합니다. 옷까지 구해주신다니. 어어.. 뭔가 죄송해요...“
으음, 큰일이네. 여기서 눈을 떴을 때 엔트리 플러그 안이었고, 다른 소지품도 없었으니까. 지금 나에겐 플러그 슈트랑 초호기를 빼면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 빈털터리다. ...지갑이 있었어도 내가 가진 돈이 여기서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없는 것보단 나았을지도 모르는데. 초면인 사람한테 너무 폐를 끼쳐버린건 아닌지...
"...그렇게 달라질 정도로 큰일이 있었거든요. 운석이 남극에 떨어져서 말이죠― 아, 아니. 그러니까... 하늘에서 엄청나게 큰 돌이 저어어기 얼음밖에 없는 땅에 떨어졌는데, 그게 너무 크고 충격이 강해서 그렇게 됐다고 해요. 저는 그 후에 태어나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어, 여기... 남쪽이 어디지? 동서남북... 어.. 대충 이쯤이지 싶은 곳 아무데나 손으로 가리키면서 설명했다. 이렇게 설명해도 아마 직접 겪기 전엔 믿을 수 없는 일이겠지. 아니 근데... 이걸 먹어요?
"이걸 먹는다고요? 이렇게 딱딱한데요? 익히면 부드러워지나...?“
먹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데... 아까 찾아서 들고 있던 걸 두 손으로 이리저리 힘을 가하다보니 뚝 부러지긴 했는데, 단면도 날카로운 것 같고 먹으면 입안이 와장창 되겠어... 익히면 달라지나?
"으... 약하진 않은... 아니... 지금은 그렇긴한데... 앗, 그, 그럼요! 그렇게 된다면 그땐 맡겨주세요.“
근데 그 위인전 같은 얘기는 뭐지...? 이 시대의 위인이라면... 음... 정확하게 언제쯤이지 지금? 세계사는 잘 모르는데. 수업을 너무 대충 들었나...
"아무튼 그럼... 다녀오실 때까지 저 조금만 더 바다에 들어갔다 올게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바다를 향해 뛰어갔다. 초호기에 탄 상태로는 하지 못했던, 바다에 뛰어들기를 해보기 위해서.
/조개 껍데기를 먹는다고 알아들은 응애쟝...(???? 암므튼 어제 넘모 늦게까지 놀았더니(?) 슬슬 한계가 와서... 마무리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3
남극은 뭐고 운석은 또 뭐지 중세 중국인은 모르는 미래 지식이 나오자 가만이 눈을 끔뻑이며 가만히 설명을 듣는다. 하늘에서 커다란 돌이 떨어졌는데 바다가 붉게 변했다는 건 ... 이 대지가 피를 흘려서 바다가 대지의 피로 가득 차버렸다는 이야기인가 ... 다른 세계 , 그것도 이 시대로부터 상당히 미래의 지식은 못들은 것으로 하자. 알아 봤자 쓸모도 없고 머리만 아파온다.
"그리고 남자는 알아서 조심하겠다만 ... 무림에서는 어린 아이와 여자와 노인을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그들이야 말로 살아 남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했고 살아남은 이 시대의 위험 중 하나다. 바다에 놀러가는 나츠키를 바라 보다가 옷이랑 간단한 휴대 식량 그리고 여차하면 연락할 수 있는 패 같은 것들을 준비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다. 계속 보호해주지는 못하더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니까
나뭇잎 사이로 은은하게 뻗어오는 햇살과 살랑살랑 부는 바람..그 기분 좋은 조화에 몸을 맡긴 채 여유를 한껏 즐기고 있었다.
다만, 그 조합은 갑작스런 사태에 깨지고 말았다. 어찌된 영문인지 아까부터 햇빛이 닿지 않는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오히려 수면에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일류 무인쯤 되면 이 같은 변화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구름이라 치부하기엔 너무 길었으니 혹여 갑작스런 폭우라도 내리는 것은 아닌지 싶어 슬며시 눈을 뜬 고불은 자신이 아직 잠을 자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고불! 이게 뭐..다?" 자신의 눈 앞에 보이는 주변이 나무들 보다 더 높게 솟아올라 태양을 가리고 있는 거대한 형상, 일류 무인인 고불조차 저 정도로 거대한 것이 다가오는 낌새를 전혀 느끼지 못 했다는 것은 저것이 무엇이든 아득히 높은 경지라는 의미다.
고불은 자신이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한번도 이 같이 생생한 꿈은 물론이오. 자각몽조차 꾼 적이 없기에 의구심만 더해졌다.
복잡한 머릿속과 별개로 미동도 하지않는 눈 앞의 거대한 것을 보고 있자니 호기심이 피어오르는 고불이었다.
손으로 직접 두들겨보니 그 느낌은..고불이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갑옷도 쇠문도 이런 느낌을 내는 것은 없다. 금속질의 무엇인거 같지만, 고불이 본래 잘 아는 분야도 아니니 알 수 있을터가 없다. 물론 잘 아는 분야라고 하더라고 이게 뭔지 알 도리는 없겠지만 고불은 아쉬울 따름이었다..
고불은 아직 모습이 보이지 않는 미지의 존재가 한 말을 따져봤다. 원래 여기있다.=원래 이 숲에 있는 존재다. 나와서 얘기한다.=어딘가 내부에 있다. 고로...원래 이 숲속에 잠들어있던 신령!? 잠들었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지만 고불의 머릿속 신령들의 모습이 그랬기에 별 수 없었다. 그렇기에 고불은 기뻐하며 반겼다.
"고불! 이제 누구신지 알겠다! 어서 나오시라 고불! 이 날을 기다려왔다!"
고불은 산채에서 숲과 산을 가꾸는 정성이 땅에 닿아 신령이 온 것이 아닐지 생각했다. 그렇다면 앞에 저 정체모를 거대한 형상은 어쩌면 영험한 비석일지도 모른다.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던 고불은 자신이 막연히 상상하던 모습보다 훨씬 괴상한 광경에 말문이 턱 막혔다.
제사상을 차리면 비석 같은 곳에서 영이 나와서 제사 음식을 먹는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던거 같긴 한데..신령급 정도가 되면 저정도 비석에서 저런식으로 튀어나오는 것일까? 게다가 저 모습. 늙은 노인이 아니다. 겉보기론 젋다 못해서 어려보인다. 물론 신령급 되는 존재가 늙은 모습으로 있을 일은 딱히 없다. 경지가 오르면 다시 어려진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그런 경지조차 그들에겐 가소롭지 않을까. 그러니 겉보기에 어떻든 오랜 세월은 살아온 존재일거다.
"고불! 신기한..차림새다! 뭘 입은거다 고불?" 사실 다른건 다 상관없었다. 옷인지 어쩌면..피부인지 잘 구분도 하기 어렵다. 이야기 속 선녀의 날개옷 같은 것이 실은 저런 것일까. 나무꾼 녀석 잘도 저런 것을..
역시 저것을 남기는 목적으로 나오신 모양이다. 저것의 용도는 잘 몰라도...악귀를 쫓거나 하는 좋은 일을 할 것이 분명하다고 고불은 생각했다.
"고불! 맞다! 나는 고불이다 고불!" 아직 스스로를 소개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이름을 알다니. 필히 애초부터 자신을 만나러 온 것이거나 상대의 이름 정도는 그저 바라만 봐도 알 수 있는 신통력이 있는 분이시리라.
"고불! 뭐라고..부르면 좋다?" 고불은 혹여 자기가 실례라도 저지를까 조심스러웠다. 남들 하는 것 따라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시늉은 낸다지만, 고불은 기도의 대상이 되는 존재들도 정확히 모른다. 그러니 대충봐도 영험해보이긴 해도 딱 어울리는 호칭을 떠올리긴 어렵다. 토지신..? 신이란 말을 함부로 해도 될지 모르겠다. 산신령..? 일단 여긴 숲인데 숲신령은 못 들어봤다. 선녀...? 아무리 고불이라도 녀가 여자를 의미함은 안다. 저 자는 겉보기엔 남자로 보인다. 저정도 존재에게 성별이 큰 의미가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조심스럽다.
그렇게 끙끙 홀로 고민하다 고불은 그냥 물어보기로 했다. 비록 고불은 무식해 아는 것은 적을지 언정 모르는 것을 묻는 일을 어려워하지는 않으며 살아왔다.
"고불! 타.카.기..? 알겠다 고불" 편하게 부르라곤 했지만 고불이 발음하기에는 전혀 편하지 않았다. 말이 통하는 듯 했지만, 사람이 발음하기에 그 이름은 몹시 어려운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신들이 사람이 발음하기 쉬운 별명이 많은 것일까?
"고불..타..카..기..타카..타탁.." 입에서 몇번 발음을 굴려본 고불은 자신에게 편한 발음을 찾았다. 편하게 부르라고 했으니 어느 정도 발음이 달라도 괜찮을거다.
"고불! 탁기, 이거 틀렸다?" 결국 고불의 입에서 편한 발음으로 멋대로 수정되서 나오는 이름은 탁기였다. 탁한 기운 같아서 뭔가 좀 찜찜하나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고 고불은 여겼다. 그렇게 부르며 어설프게 흉내내본 자신의 손동작을 이리 저리 비슷한 여러 변형으로 바꾸어가며 물어본다.
홍홍.....아니면 제가 먼저 선레 드릴테니까 나중에 시간 나실 때 이으셔도 될 것 같아요! 선캡...현생이 워낙 바쁘시니까, 서두르지마시고 그냥 콜라보 기간 내에 천천히 주고 받는걸 목표로 해도...
어, 그리고 어떤 캐릭터라...으음.....NPC 쪽은 돌리시기 조금 힘드실거 같기도 하니 MPC 두 캐릭터 중에 한명...? 그런데 둘 다 매력적이고 신비한 캐릭터라 누굴 골라야 할지는 모르겠어욧....!! 편하신 아이로 돌리셔도 되고, 아니면 다이스로 굴려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당!!
어느 날과 같이 여행길에 올라, 인적이 드문 바닷가 절벽 위의 바다에 몸을 기댄 야견. 불경의 구절을 되새기며 머릿 속을 향처럼 가득 매운 잡념을 떨쳐 버리려 한다. 최근 많은 일을 겪으며 어떻게든 내면의 무언가를 정리해보려 하는, 별 성과는 없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야견이 읊고 있는 구절은 금강경(金剛經)의 익히 알려진 구절이었다. 굳이 그 내용을 정리하자면, 모든 현상은 허망하며, 현상이 곧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다만 경을 아무리 외워도 현실적인 필부 야견에게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눈앞에 벌어지는 일이 현실이 아니라면, 지금 자신은 꿈 속에라도 있는 것이란 말인가? 눈 앞에 펼쳐진 드높은 바다와 거센 파도도, 높은 하늘과 그곳에서 떨어지는 물빛 머리의 꼬마도 전부 꿈이란 말인가? 거, 참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잠깐, 하늘에서 뭐가 떨어져?”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휙, 하고 올리니 그곳에서는 정말로 단정한 물빛 머리의 어린아이가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생소한 옷차림을 나풀거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그대로 땅에서 뛰어 아이의 넉넉한 옷자락을 잡아 떨어지는 걸 막을 수 있었다. 추혼법권 4성, 몌타로 옷깃을 잡는게 익숙해진 덕일까. 여하튼 야견은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꼬마를 땅에 나름 조심스래 앉힌다.
너무나도 예상 외의 사태에 행동 이후에 생각이 따라온다. 이게 당최 무슨 일이람. 그러고보니 이곳에 오기까지 기묘한 소문들을 조금 들었었던 것 같다. 하늘에서 커다란 강철 거인이 떨어져, 용과 함께 거닐었다느니, 바다가 갑작스래 붉은 색으로 변했다느니. 뜬 소문이라 여겼는데 하늘에서 천녀..? 가 떨어져? 정말로 자신은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몰랐다. 황당함에 머리를 벅벅 긁고 무릎을 끓어 키를 맞춘 뒤 말을 걸어보는 야견.
>>525 괜찮냐고 묻는 야견의 물음이 있자, 아이는 잠시 눈꺼풀을 부들거리더니 곧 천천히 눈을 뜨려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윽고 보이기 시작한 아이의 두 눈은... 한눈에 보아도 이 세계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 색이었습니다. 그럴만한 것이, 일반적인 경우에 사람의 눈이 이렇게 인공적인 빛깔을 띄었던가요? 저 서쪽에 서역인들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 빛깔을 찾아보기 힘들 터였습니다. 핏빛으로 물든 것 같이 새빨간 두 눈동자로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다 이내 왼쪽으로 굴리고, 가만히 오른쪽으로 굴리고 하던 아이는, 곧 야견이 무릎을 끓고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더니... 이내 서서히 몸을 일으키려 하며 말을 꺼내려 하였습니다.
"......여기는, 어디. "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 높낮이가 변하지 않는 어조로, 아이는 야견을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습니다.
>>535 좋아용~ 귀여운 나츠키랑 돌릴 수 있다니 영광인 것...😇 그렇지만 어떤 상황이 좋을지 모르겠네용..🤔
혹시 몰라서 재하의 정보를 풀자면 재하는 천마신교 세력, 교국의 감찰국장(=국정원장)의 자리에 앉아있고, 3~4m정도 하는 시꺼먼 도깨비 요괴와 함께 다녀용! 기본적으로 무림인이 건드리지만 않으면 얌전하니 유들유들해용! 생긴게 좀 과캐디라 그렇지 어린아이와 노인에게는 친절하고 친절하고 친절하다구용..👀
아니 그럼 동년배는용? 최근에 정적에게 통수맞고 첩자몰이 당한 이후 심경의 변화가 생겨서 그만 ㅎ
저잣거리는 늘 소란스럽다. 사람 사는 곳임은 고사하고 인간이 의식주를 비롯한 최소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물자를 공수하고 팔기 위한 행위와 언행이 가장 활발하게 오가는 곳이니 소란스럽지 않을 날이 없다. 이런 장소가 조용해질 날은 전쟁이 벌어져 나갈 수 없는 날이 되었을 때겠지. 재하는 소음을 그렇게 달갑게 생각하는 쪽은 아니었으나 저잣거리의 활기찬 소음만은 좋아하는 쪽에 속했다. 아니, 사랑했다고 봐도 옳겠다. 누군가가 하루만큼 살아가는 삶의 향취가 가장 깊게 묻어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장소요 소음이기 때문에 감찰어사의 자리에서 오르고 올라 국장의 자리에 앉은 이후에도 더 각별히 신경을 쓰기도 했다.
가령 오늘 또한 그러한 날이다. 아무리 교국이 아니라 한들 나가고 싶은 마음은 큰 법이다. 재하는 새하얗고 반투명한 베일이 달린 멱리를 쓰고, 범무구*를 등 뒤에 대동하며 저잣거리로 나섰다. 생각해 보면 꽤 자주 밖으로 나서는 편이었다. 국장의 자리에 오른 뒤로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이 굳이 나서지 않고 아랫사람을 써도 된다느니 하는 충언이나 핀잔을 여러 번 들었지만 누군가의 시간을 그렇게 쓰고 싶지 않을뿐더러 도통 고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을 직접 확인하는 것은 어느덧 하나의 일정이 되었다. 어사일 시절과 국장인 현재 신민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달라졌음이 아쉽긴 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참 걷다 보면 닭 파는 사람, 간식거리 파는 사람, 웃으며 비단 만져보고 구매하는 사람을 비롯해 여러 사람이 보인다. 수많은 사람 말소리에 발소리가 묻히고 흥정에 성공해 왁자지껄 터뜨리는 웃음에 희미한 미소가 감돈다. 오늘도 하루가 평온한 것 같아 이쯤 되어 돌아갈까 싶을 적, 재하는 귀를 기울였다. 아무리 사람들의 소리가 높다 한들 일류의 기감은 제법 좋은 편이었다. 앳된 목소리와 남성의 소리다. 재하는 범무구를 흘끔 쳐다보며 가자는 듯 고갯짓했다.
"그러니까, 그 옷감이 아무리 봐도 싸구려 아니야! 아가씨, 들어 봐, 그 옷 보다 훨씬 예쁜 것이 저기 가면 더 많다니까? 싸게 쳐줄 테니까-" "싸게 쳐줄 테니까-?"
하여 당도한 곳에 보였던 것은 자신과 비슷하게 기이한 머리 색을 가진 아이와 그런 아이를 부득불 데려가보고자 하는 호객꾼이다. 재하는 귀신처럼 뒤에 슬쩍 나타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호객꾼이 갑자기 나타난 재하와 그 뒤에 따라온 거구의 요괴의 자태를 보고 지레 겁먹어 말을 얼버무리고 도망치려 하고, 재하는 슬쩍 고개를 내렸다. "괜찮으신지요?"
*: 재하가 대동하고 다니는 요괴의 이름. 3~4m의 거구의 도깨비이며 피부는 검은색이다. 말은 절찬리에 배우는 중..
// 혹시라도 캐조종이 마음에 걸리시거나 하시면 그 부분은 뚝 자르셔도 좋은 거에용..!!
아까부터 말하고 있잖아 이 망할 아저씨들아!! 차마 외치진 못했지만 표정으로는 아낌없이 내보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처음 마주친 사람이 호의로 제공해준 옷인데 싸구려라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도 썩 좋지 않고. 옷을 갈아입은 김에 대충 구경이나 해보자고 사람들 다니는 길을 따라 이런 곳까지 왔는데, 아무래도 실수였나. 실수였나봐. 주변도, 지금이 정확히 과거의 어떤 시대인지도 제대로 모르는데 무작정 돌아다니니 이렇게 되어버렸다고. 초호기를 숨겨두지 말고 그냥 끌고 왔어야 했어. 그럼 이런 취급은 안 받았겠지.
"아 진짜! 사람이 말하면 좀 들으― ...으?“
갑자기 망할 아저씨들이 조용해졌다. 드디어 말이 통한건가? 아니,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위쪽으로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내 뒤에 무언가가 있다고 말하고 있었고, 말을 얼버무리며 떠나는 망할 아저씨들도 내가 아닌 뒤쪽을 보던 것 같으니까. ...이건 백퍼 뒤에 뭔가가 있다. 뭐지? 뭐길래 저 사람들이 갑자기 도망을 친 거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서 뒤쪽을 확인해봤다.
"...으에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스메라기를 닮은 사람. 탈색한 머리랑은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백발과 붉은 눈은 비슷하지만 키는 훨씬 크다. 그리고 눈도 한쪽은 검은색이니까 확실히 다른 사람이겠지. 그리고 그 옆은.. ...뭘까... 새까맣고 큰... 사람...? 아니면 사람이 아닌 사도랑 비슷한 그쪽인가? ...역시 초호기를 타고 오는 쪽이 낫지 않았을까??? 그래도 용을 직접 타보기도 했고 말이 통하는 것도 봤으니까 이제 저런 존재랑 마주쳐도 기겁하진 않을 거지만, 아니 역시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면 역시 놀라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할까. 괜찮냐는 말에 대한 대답 대신에 으에에 하는 힘빠지는 소리가 나와버린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응. 속으로 합리화(?)를 마치고 다시, 이번엔 제대로 대답했다.
"아, 아니.. 괜찮아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기, 옆에 분은.... 키가 엄청 크시네요...“
옆에 분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라고 하려다가 역시 초면에, 그것도 도와준 사람을 상대로 너무 무례한게 아닌가 싶어서 살짝 꺾었다. 키가... 많이 크시군요...
평소 같으면 이렇게 해결하지 아니하고 적당히 말로 해결하곤 하였으나 아이의 머리카락을 발견했을 때 새삼 독특한 외견에 동질감이 갔던 것인지, 재하는 제법 강경한 수를 뒀다. 동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새삼 아쉬운 소리지만 머리 색을 뺄 수 있는 기술이 미래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날이 오기나 할지. 재하는 눈만 굴려 시선을 내린다. 자신의 아래에서 슬그머니 마주하는 아이를 보더니 이내 힘 빠지는 소리에 입매의 끝을 휘어 올렸다. 놀랄 만도 하지. 중원에서 흰색은 죽음을 상징하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사람이 나타나면 어떻겠는가.
"괜찮은 것 같군요. 이 주변은 외곽이라 호객하려는 사람이 많으니 주의하여야 하여요."
이곳은 처음이신지요? 나긋나긋 문장을 쌓아 올리며 잠시 아이를 살피던 재하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놀랐는지 말도 제대로 못하더니 언제 이렇게 갈무리를 하는지. 체구 재하에 비하면 작은데 본 적이 없는 얼굴이다. 어디서 상경한 아이인가? 아이가 부담스럽지 않게끔 한 걸음 뒤로 물러나주며 손을 다소곳이 모은다.
"당연한 일이오니 괜찮사옵니다만……."
범무구가 솥뚜껑만 한 손을 뻗어 멱리에 시야가 가려지지 않도록 베일을 걷어주다 아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재하는 그 모습에 눈을 휘었다. 한 손을 들어 입가를 가리며 사붓하게 웃는 모습 역력하다. 요괴를 알아보지 못한 순수한 답변이 어찌나 오랜만인지!
"네에, 많이 크지요. 여간 곤란하지 아니할 수 없답니다." "아니다."
자신을 향한 범무구의 시선이 모난 듯하지만 굳이 맞서진 않기로 했다. 순수한 아이에게 요괴라고 드러내도 좋을 것 없을 것 같고, 곤란한 것도 사실이었기에. 재하는 시선을 맞추듯 하며 유한 인상을 유지했다. 다시 본다 한들 머리 색도 그렇고, 자신처럼 참 기이한 사람이다. 이곳이 처음이라면 안내를 해도 괜찮겠지? 찾아가야 할 곳이 있다면 그 장소로 데려가야 할 것이고. 요괴를 모르는 것도 그렇고, 내기도 느껴지지 않으니* 이대로 보내기엔 호객꾼들의 손에 노려지기 딱 좋다. 재하는 조근조근 물었다.
"한데 어쩐 연유로 이 외곽까지 오시었는지요?" *: 어지간하면 무림인은 건드리지 않는다. 그랬다가 손모가지라도 썰리면 본인 책임이니까..
"네에... 처음이라서 잘 몰랐거든요. 그, 이런 곳도 처음이지만 저렇게 당한 것도 처음이라.“
중학생한테 호객 행위라니 제정신이냐고! 아, 물론 정확하게 어떤 시대인진 몰라도 이 시대에 중학교가 없는 건 확실하겠지만 아무튼 애한테 그런 일 하지 말라고! ...아니... 이 시대에 내 나이 정도면 어른 취급이던가? 으으음... 뭔가 복잡한 기분인데. 혼자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표정관리를 또 깜빡해버렸다. 최종적으로는 복잡한 심정을 얼굴에 그대로 내놓은 채 고개를 살짝 숙였다.
"!! 그... 그래 보이네요. 너무 크니까...“
어, 말했다. 옆에 저거 말했어! 잘못들은 건 아니겠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새까만 쪽과 정반대로 새하얀 쪽을 번갈아서 봤다. 저번에 탔던 용은 직접 말하는 걸 듣거나 보진 못했는데, 이번엔 말을 하네? ...저 새까맣고 커다란 쪽도 '영물'인건가? 나한테도 들리게 말할 수 있는 걸 보면 이쪽이 더 대단한 쪽인가? 그때 도와줬던 아저씨도 그렇고, 이 시대? 이 나라에서는 저렇게 영물 하나씩 데리고 다니는 게 당연한 건가... 어, 이거 내가 하던 게임이랑 비슷한 느낌인데. 몬스터볼 같은 것도 있을까.
"......그게... 믿으실진 모르겠는데 그, 자다가 깼더니 하늘에서 떨어지는 중이었고, 어― 어떻게든 내려와보니까 여기더라고요. 근데 어쩌다 이쪽으로 떨어졌는지, 왜 떨어지게 된 건지는 저도 잘 몰라요. 그래도 어떤 분이 도와주셔서― 어... 네...“
어쩐 일로 여기까지?라고 묻는 것 같은 말에 술술 대답하다가 맨 처음에 도와줬던 아저씨 얘기를 꺼내고 나서야 아차 싶어서 굳은 표정으로 말을 뚝 끊었다. 아저씨가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랑 어린애랑 노인을 조심하라고 했었는데. ...뭐지? 남녀노소 다 조심해야하잖아?? 결국 전부 경계를... 하지만 이 사람은 도와줬고... 뭐 괜찮겠지. 대충 결론을 내리자 자연스레 표정도 다시 풀어진다. 뭐어.. 괜찮겠지.
"...아무튼 주변 구경하려고 왔다가 이렇게 됐네요. 하하..."
/무림몬스터 블랙&화이트(?????) 앗앗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너무 늦어지지 않게 힘내는 것입니다.. :3 저는 아마 요걸 올리고 기절할 것 같으니 재하주도 너무 무리마시고 편할 때 답레 주세요~
천천히 열리며 드러나는 아이의 눈동자. 새빨갛다. 그 이상의 표현을 찾기 힘들 정도로 선명한 붉은 색. 야견은 직감적으로 이 아이가 소위 자연을 벗삼아 좌정하는 선계의 부류가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너무나도 선명한 아이의 동공은 자연의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더욱이 눈이 아닌 다른 곳을 살펴보면 혈색이 없는 피부는 새하얘 마치 전신의 혈기가 눈으로 모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더욱이 복색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옷감을 세련되게 이어 만든 것이었다.
“....제삼신도교시(第三新道敎市)? 들은 적이 없는 곳인데.”
아이의 목소리는 마치 필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아무런 감정도 고저차도 없었다. 기묘할 정도의 위화감과 이물감.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묘한 기색. 난처하고 생소한 일에 얽히는 것은 질색이건만, 야견은 왜인지 그 인간미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에 답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곳은 송(宋). 그리고 나는...일단은 스님이라 해둘까. 야견이라 부르시지.”
입적은 안 했으니 엄밀히 중은 아니었지만 풀어 설명하기도 번거로운 일이다. 말을 마치고 야견은 손을 까딱하며 아이를 가리킨다. 그대의 차례라는 뜻이겠지.
>>566 야견의 말을 잠자코 듣고있던 아유미는 불현듯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치마주머니를 뒤적거리려 하였습니다만, 그녀는 아무것도 꺼내지 못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가지고 온 것도 들고 온 것도 없이 몸만 떨어진 상태인 것을 깨달있는지, 아유미는 잠자코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려 하였습니다.
"... 위급용품 미소지, 매뉴얼 이행 불가... "
무슨 소리인지 영문을 모르겠는 말을 중얼거리던 그녀는, "명령을 기다려야 해. " 라고 중얼이더니, 잠시 후 돌연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리 말을 꺼내려 들었습니다.
"들은 적이 없는 곳일 거야... 한참 뒤의 미래에 만들어지는 곳이니까. " "여기서 멀리, 저 멀리... 바다 건너 한참 지나야 있는, 붉은 바다 사이에 있는. 만들어진 도시. "
아유미는 그리 말하며 천천히 무릎을 털고 일어나고는, 지긋이 야견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답하였습니다.
"ー나는 아유미, 타치바나 아유미. " "네르프 일본 본부 소속인, 에반게리온 백업 파일럿. 이것이 나의 신분. "
네르프고 백업 파일럿이고, 눈앞에 있는 강호의 사람이 그녀의 설명을 이해할 수 있을리가 없습니다. 그녀는 한참 뒤의 미래에 있는 사람이고, 눈앞의 스님은 전혀 다른 세계의 무인이기에. 하지만 아랑곳 않겠다는듯 타치바나 아유미는 서서히 야견과의 거리를 좁히며 다가서려 하고는, 나직이 설명을 이어가려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첫 번째 아이' 라 부르곤 했어. 학교의 아이들은 나를 대개 성씨인 타치바나로 불렀고, 파일럿 아이들은 이름인 아유미, 라 부르곤 했어. " "… 스님은, 나를 어떻게 부르고 싶어? "
야견은 어린아이가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다, 이후에 이어지는 영문 모를 소리를 잠자코 듣고 있는다.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는 이야기의 절반 이상은 머나먼 과거에 사는 야견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다. 둘 사이의 위치는 멀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 누적된 시대와 세계의 벽은 쉬이 극복할 수 없을 만큼 높디 높았으니까. 그러나 야견은 그러한 것들을 굳이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서로의 배경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이야기를 포기할 이유는 되지 못하니까.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리기 위해 인상을 쓰며, 하늘에서 떨어진 이방인의 이야기를 이해해보려 한다.
그러자 몇몇 거슬리는 단어들이 귀에 들어온다. ‘위급용품’, ‘명령을 기다려’. 살짝 심기가 불편했는지 눈썹이 꿈틀거린다. 다만 그 뒤에 이어지는 단어들에게서는 뭔가 호기심이 동했는지 눈이 빛난다. ‘한참 뒤의 미래’?, ‘붉은 바다’? 무언가 호기심이 들었는지 고개가 좌우로 돌아간다. 이후 스스로의 이름을 ‘타치바나 아유미’라 소개하는 것을 듣고 나서야 무언가 실마리를 잡았다는 듯이 입을 여는 야견.
“....너, 바다 너머 사람인가!? 소문으로 멀리 해가 뜨는 바다 너머에도 큰 섬나라가 있다 들었는데 거기서 쓰는 이름이 너와 비슷하다 들었지. 그곳의 바다가 붉은 지는 몰랐는데!”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파도나 태풍에 휩쓸려 날아온 어민은 아닌 듯 했다. 이어지는 내로부, 애반개리온, 파이로토 등의 말이 어렵기는 했으나 외국어는 항상 이렇지 않던가. 학교에 다닌다 말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상류층의 높은 분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이 무기질적인 분위기도 설명이 되는...아니, 되지 않는다. 지금도 솔직히 꽤 험악한 인상인 자신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오는 이 아이의 기묘한 분위기는 국가나 문화의 차이로 설명이 되지 않았다.
“....타인이 부르는 호칭 이전에...넌 스스로 뭐라 부르고 싶지? 그리고 하나 더. 좀 전에 말했던 ‘위급용품’이라는 건 뭐냐?
야견은 스스로를 어떻게 불렸는지의 사례를 드는 아유미의 질문에 야견은 왜인지 조금 퉁명스런 태도로 그렇게 대답하며, 또 다른 질문까지 던진다. 갑작스래 머나먼 땅에 떨어진 꼬마가, 마치 사전에 훈련이라도 받은 듯이 즉각 행동 한 것이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572 “그래. 이곳을 기준으로 하자면 저 바다 건너. “ “… 이곳의 섬나라에서 오지는 않았지만. “
야견의 말에 타치바나 아유미는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만, 마냥 야견의 말에 긍정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당연하였습니다. 그녀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세계의 바다 건너 섬나라는 푸른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었으니까요. 생명이 살고 있는 바다. 살아 숨쉬는 바다를 말입니다.
“ー비상시에 경우를 대비해서, 본부에서 준 호신용품이 있었어. 만일에 위급 상황이 있을 경우에는 스스로의 힘만으로 제 몸을 지켜야 하니까. 에바에 탑승하기 전까지 필사적으로… “
“여기까지 가져오지는 못한 모양이니 별 의미는 없지만. “ 이라 덧붙이면서 무언가를 잡듯 허공에 손질하며 잠시 얕게 숨을 고르던 그녀는, 야견의 물음에 잠시 그를 빤히 올려다보다가, 곧 천천히 답해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르겠어. 나는… [ 아유미 ] . 그 이름이면 충분하리라 생각해. 그게 지금의 내게 붙여진 이름이니까. “
이제 막 전혀 다른 세계에 던져졌음에도 아이의 눈에는 어떠한 당황스러운 기색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단 하나 보이는 게 있다면 그것은 의구심, 야견에 대한 의문일 것입니다.
“스님은, 생각보다 나를 궁금해 하는구나. 어른들은 특별히 나를 궁금해하지 않던데… “
아유미는 그렇게 말하며 말끝을 흐리곤 잠시 침묵하다, 무언가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 다시 고개를 들고 물으려 하였습니다.
“......아유미. 썩 좋은 이름인데. ‘첫 번째 아이’ 같은 영문 모를 별명보다는 말이야.”
야견은 하늘에서 떨어진 소녀가 고민하다 자신은 [아유미]면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납득했는지 어깨를 으쓱한다. 생소한 울림이지만 좋은 이름 아닌가. 타인이 부르는 호칭에 자신을 가둘 필요는 없다. 적어도 세상을 살아가며 자신이 불리고자 하는 바 정도는 스스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 야견의 쓸데없는 고집이었다.
그러나, 호신용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점차 굳어지는 야견의 표정. 이야기들이 마치 퍼즐조각이 겹치듯 서로 맞닿아 간다. 나이에 맞지 않는 기이할 정도의 침착함, 스스로의 소속을 분명히 밝히는 모습. 굳이 상상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자신이 생각한 바가 맞다면 아유미가 보여준 기이한 모습이 전부 다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설명이 될지도 몰랐다.
“하늘에서 난데없이 떨어진 꼬마에게 궁금증을 가지는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혹시 열도에서는 사람이 하늘로 날아오는 일이 흔한가? 오히려 난 네가 물어보는 것이 적은 것이 신경쓰이는데 말이지. 일단 이곳은 광동성. 해외와 교역이 흔한 곳이긴 한데.”
뭐, 도시를 해집는 거대한 존재가 있으니 무림에서보다야 사람이 날아다니는 것이 무림보다야 흔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야견이 신경쓰이는 바는 따로 있었다. 20살도 되지 않아 보이는 어린 아이가 ‘제 몸을 지킨다’느니, ‘필사적’이라느니. 야견은 지금까지 보여준 느슨한 모습과는 달리 가느다랗게 눈을 뜨고 아유미의 무기질적인 붉은 색 눈을 바라보며 묻는다.
“사실 제일 궁금한건 이거지. 아유미 꼬마, 너... 혹시 나라에서 훈련받은 병사냐?”
병장기가 없이는 스스로를 지킬 수 없을 듯한 아이를 경계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저런 꼬마를 병사로 훈련시켜 써먹는 나라가 정말로 있는지, 짜증 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이라면 당할 수밖에. 아무리 교류를 한다 해도 깊은 사정까지는 모르는 것이 많은 것이 당연한 시기였다. 아이가 사는 시대처럼 조금만 정보를 찾아봐도 사소한 것까지 알려지기까지 발전된 것은 아니었으니. 재하는 다른 곳에서 왔다는 사실까지는 알지 못하지만 깊은 사정을 모를 것이라, 그 시대의 사람과 같은 발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복잡한 심정이 담긴 얼굴을 보니 재하의 두 눈 둥글게 뜨인다. 유심히 바라보는 시선에 의문과 작은 걱정이 서린다.
자세한 사정을 알지는 못하지만 첫 상경에 이런 일을 당했다면, 하물며 아이라면 더욱이 앞으로의 여행길이나 정착에 불신이 생길수밖에 없지 않은가. 교인이라도, 교인이 아니더라도 민간인이 고통받는 삶은 바라지 않는다. 고통받는 것은 자신과 더불어 무림에 발을 들인 사람들로 족하다. 재하는 천천히 손을 들어 걷어낸 베일을 정돈했다.
"다만 심성은 보통 인간과 같이 선하니 그 점을 위안삼고 있지요."
..범무구의 시점에서는 황당한 이야기겠지만 불만이 있다면 완벽한 문장으로 구사해야 받아줄 테지. 휘둥그레 뜨인 눈에 짐작하기로는 아마 대비되는 모습이나 크기 때문인지, 아니면 요괴임을 깨달은 것인지 고민해본다. 어느 쪽이든 눈앞의 아이에게 위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듯 재하는 살갑게 범무구의 팔을 토닥였다. "영민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덧붙였을 때 재하는 잠시 고민했다. 영민하다는 말은 하지 말 걸 그랬나. 재하는 며칠 전 회화를 가르치던 중 자신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겠느냐 질문했을 때 당연하게 천마신교의 구호를 읊던 상황을 떠올렸다. ……아니다, 영민하다고 하자. 이거라도 잘 하는 게 어딘가.
"하늘에서?"
침묵. 재하는 입을 다물고 아이를 빤히 쳐다 본다. 살갑던 태도는 그대로이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의심하는 것인가 싶을 정도다. 누구도 믿지 않을 이야기이긴 하다. 자다 깼더니 하늘에서 떨어졌고, 이쪽에 왜 떨어졌는지는 모른다. 다만 믿으실진 모르겠는데- 라 증언할 적 기감을 세워 확인한 숨소리나 눈의 떨림, 시선 처리는 거짓을 고하는 것이 아니었다. 광인인가? 아니, 광인은 재하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광인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다. 재하는 침묵 뒤로 생긋 웃는 낯을 그린다. 깊은 미소다.
"믿사와요. 그나마.. 도와준 사람이 있어 다행이군요. 아니었으면 위험했을 텐데.. 참으로 천운이옵디다."
도와준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참으로 천마님 은혜 함께 하시었다. 재하는 한 걸음 내디뎌 옆에 서듯 하더니 친절한 어조로 물었다.
"그렇다면, 저잣거리 구경을 도와드릴까요? 거절하시어도 괜찮지만 적어도 방금 전과 같은 일은 겪지 않을 수 있답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타이밍 좋게 서로 말을 고른다던가 그런 게 아니라 명백하게 내가 한 말 때문에 침묵이 이어진 것이다. 그야 그렇겠지, 하늘에서 떨어졌다니. 믿기 힘든 이야기 내지는 아이가 꾸며낸 소리 취급받기 딱 좋은 것이다. 그래서 믿으실진 모르겠지만-하고 운을 띄웠던 건데, 하긴 그래도 믿기는 힘들겠지. 눈앞의 상대-검은 영물?쪽은 모르겠지만 이 새하얀 사람이 이미 믿지 않고 있다고 지레짐작 해버렸기에 믿는다는 말이 들려서 깜짝 놀랐다. 믿는다고요??
"지, 진짜요...? 아니, 그... 감사합니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믿어주지 않았다면 다른 가짜 이야기를 꾸며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어.. 대충 뭐 시골에서 올라왔다던가. 그래도 잠깐의 침묵은 긍정적인 의미였다는 걸로 생각해도... 되겠지? 저 사람도 웃고 있으니까, 분명 그럴거야.
"앗, 어...“
저잣거리 구경을 도와주겠다는 제안에 완전 혹했지만, 처음 만났던 그 아저씨의 조언이 머리를 맴돌았다. 남녀노소 모두 조심하라고 그랬는데... 그치만 이 사람은 날 도와줬고, 옆에 영물?도 있고... 잠시 눈을 굴리며 고민하다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하던 등을 떠민 것은 방금 전과 같은 일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옆에 서듯 다가온 사람에게서 살짝, 반걸음 정도 옆으로 움직여 거리를 벌리면서 말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도와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아까처럼 성가신 일 없이 구경할 수 있다니! 호객 행위 때문에 사그라들었던 호기심이나 설렘 같은 것들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신기하다 신기해!
야견의 훈련받은 병사냐는 말에, 아유미는 애매하다는 듯 잠깐 고개를 갸웃이다 이내 그렇다는 듯 끄덕여 보였습니다.
"국가는 모르겠지만, 기관이라고 물으면 맞아. 우리는 준군사조직에 소속되어 유사시 출동하는 파일럿이니, 세간의 시선으로는 우리를 어린 병사로 보겠지. ...우리가 진짜 군인이 아니라고 해도. "
국제연합 산하 기관인 특무기관 네르프, 그리고 그 안에 소속된 다섯명의 파일럿 중 하나. 이중 아유미는 체계적으로 훈련받은 쪽에 속해있는 만큼 야견의 말에 부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백업파일럿은 유사시의 경우에 대비해 투입되는 존재이니까요. 파일럿이 부상당했거나 정신적으로든 행동불능이 되어, 더 이상 에바에 타지 못하게 되었을 때 대신하여 투입되는 존재. 그것이 백업파일럿이며, 아유미와 같은 이들을 부르는 명칭이었습니다.
"지금은 송이 나라로 있는 시대, 그리고 이곳은 광동성. 필요한 정보는 모두 얻었어. 내가 있던 곳은 사람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곳, 그리고 이곳은 내 기준으로 거의 천년 가까이 과거인 곳...과거로 오는 일이 흔치만은 않지만, 지금 상황으로 보았을 땐 이렇게밖에 판단할 수가 없어. "
스읍, 하고 가볍게 숨을 고르고는 아유미는 다시 말을 꺼내었습니다.
"나는 확실히... 과거로 왔어. 그것도 전혀 다른 세계로. "
조곤조곤 말을 꺼내는 아유미의 목소리는 건조하기 이를데가 없는 것이라 생각하기 좋은 소리였습니다. 그녀는 예와 다를 바 없이 높낮이가 변하지 않는 어조로 야견에게 묻습니다.
"스님, 이 세계는 어떠한 곳이야? "
전혀 궁금하다는 듯 재촉하지 않고...그저 갑자기 떨어지게 된 이 세계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위한것일 뿐이란 듯이, 아유미는 물었습니다.
신랄한 어조와는 달리 야견은 아유미의 높낮이 없는 말에 납득한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여러 정보를 모으고 분석해 차분히 내놓은 결론은 천년전의 사람인 야견에게도 뚜렷히 전달될 정도로 명료한 이야기였으니까. 사실 그 결론은 너무나도 황당한 것이었지만, 그렇기에 역으로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미친 이야기를 말할 광인도 아니고, 이런 이야기를 해서 이득 볼 것이 있는 사기꾼도 아니라면 일단은 믿어두는 수 밖에. 그러나 미래에서 과거로 왔다라, 거 참. 도원향에 다녀오자 천년의 세월이 지난 사람의 이야기는 들어보았는데. 그 반대도 가능한 것인가. 시간이라는 것은 강물처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것이었던가. 자신의 상식과는 너무나도 다른 개념에 야견은 살짝 소름이 돋았다.
“...그렇지만 제 아무리 멀리 있어도, 셀 수 없이 시간이 흘러도 나라라는건 변함없군.”
굳이 결론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볼 만큼 불쾌한 표정을 숨길 수 없는 야견이었다. 인간이 모이면 언제나 그렇다. 높으신 분들은 뒤에 앉아 있고, 가난하고 약한 놈들이 앞에 나서 창칼을 맞는다. 스스로를 아유미라 말한 아이의 나라가 무엇에 맞서 싸우는지는 모르겠다만, 저런 어린아이들을 긁어모아 싸워아 하는 곳이라면 오히려 망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글쎄. 너희보다는 단순하겠지. 부, 명성, 그리고 뭣보다 힘.”
야견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기대던 절벽에 주먹을 살짝 대고, 내공을 발한다. 마치 얼음처럼 금이 가기 시작해, 바다로 부숴져가는 절벽. 어느 정도 수련한 무공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겠지만 천년 뒤의 사람에게는 좀 생소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이 살아가기 힘든 곳이긴 하지만, 썩 나쁘지 않은 동네야. 그 뭐냐, 미래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면 눌러 앉아도 된다만. 보아하니 너 원래 살던 곳에서도 연고는 적을 것 같고. ...아니, 그 전에 아유미 꼬마, 너. 친구는 있냐...?”
조금 염려된다는 표정으로 장난스래 시대를 넘은 귀화를 권하는 야견. 현대사회 기준으로 무례하기 짝이 없는 질문까지 던지는 것은 덤이었다. 미래의 사람들이 들었다면 뒤통수를 한 대 때려줘도 무죄겠지.
시노하라 카에데는 종교를 그닥 신용하지 않는 사람이였다. 신이라는 존재가 존재한다고 하면, 그 신이 인간 하나하나를 굽어살피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종교라는 것은 옛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들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또한 카에데였다. 그것은 카에데가 살아오며 결론을 낸, 어찌보면 지극히 카에데다운 이치였다. 신이 자신을 끄집어서 다른 세계에 내던진다거나 하는것은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전개라고 생각하기에...
고로 지금 일어나는 이 상황 또한 꿈속의 꿈이였다라고 밖에 결론을 낼 수 없었다.
"[오오, 선녀님이 눈을 뜨셨다!]"
"[부디, 저희들에게 축복을 내려주소서...!]"
분명, 시작은 이러했다. 비몽사몽하는 와중에 조금 쉬라는 소리를 듣고는 까무러치듯 책상에 엎어졌건만, 떨어지고 나서 느껴져야 할 책상의 딱딱한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졸린 카에데는 별로 신경쓰지 않은채 바로 꿈나라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꿈나라에서 자신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는데, 중력이 얕게 적용되어서일까, 분명 한참을 떨어져 200km의 시속을 기록하고 있어안 할 자신의 몸은 10분지 1인 20km정도의 시속을 내며 천천히 낙하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상황이 꿈이라고 결론을 내었다.
그리고 일에 너무나도 지친 카에데는, 그 당시에는 별로 생각하지 않고 뇌의 작동을 정지시켰다. 정신적으로 지쳐 있었기에, 꿈이 없는 깊은 잠을 자고 싶었으므로.
"오오, 못 들었는가? 3일 전에 근처에 선녀님이 내려오셨다네! 촌장님과 마을 사람 전부가 목격했어, 틀림 없다네! 3일간 줄곧 누워계셨지만, 그 상황은 마치 하느님께서 구원을... 이럴때가 아님세. 함께 가보지 않겠는가?"
오지랖 넓은 아저씨로 보이는 화전민이 고블에게 이야기를 나누는 새에, 카에데는 촌장과 대면을 하고 있었다.
"오오, 선녀님... 갑작스러우나 저희에게 오신것은 필시 뜻이 있으실 터, 하늘이 도와주시옵소서, 저희 화전민은 1994년 LA에서 부터 왔으며 그런 저희들은 이거 어차피 상관없는거니까 아무말이나 해도 되겠지 저희 성원을 필시 받아주시옵고 제 딸아이가 수능 만점을 받길 도와주시옵소서..."
...그렇지만 카에데에게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 네...?]"
그러하다. 중국에 가본 적이 없고, 중국어를 배웠을리 만무한 카에데, 이 말을 알아들을리 없다.
평범하게 사람 좋아보이는 이 아저씨, 보통은 아니다. 일반적인 사람이야 고불이 사람으로 보이든 짐승으로 보이든 경계를 하기 마련이다. 겁을 먹어 오히려 공격적으로 나오는 경우는 있어도 이토록 태연하게 고불을 지나가던 여행객 정도로 취급하는 저 여유라니, 이 마을 보통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팍 들었다. 무림과 관련이 있기에 스스로 자신이 있는 것이던가 아니면..마을에 선녀가 내려왔기에, 선녀가 자신들을 지켜주리라 확신을 가지는 것일까? 귀찮은 일만 있을 줄 알았는데, 상당히 흥미가 간다.
"고불..선녀가 진짜 있다?" 고불은 본래의 목적이야 가볍게 한 켠으로 밀어두기로 했다. 그야 이런 마을에는 걷이갈 몇 푼보다 선녀와 관계된 일이 훨씬 더 가치 있음은 너무나 지당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 . 그렇게 함께 마을 안으로 들어서니 그곳에는 생전 처음보는 요상한 양식으로 된 제단 같은 것 위에 웬 어린 여자 아이가 신비로운 옷을 걸친 채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이었다. 가히 하늘에서나 입고 내려올 법한 새하얀 옷, 선녀의 옷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만 정작 그 주인공인 소녀는, 마을 주민들과 대조적으로 여유라곤 전혀 없는 표정인 것이 뭔가 잘못된거 같다. 직접 내려온 것이라면 좀 더 여유와 기품있는 태도로 마을 사람을 대하지 않았을까 혹은 그저 선녀 중에도 낯가람이 심한 분이 있을 수 있음을 고려하지 못하는 고불의 편견일 뿐일까.
침묵이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건지 재하 이어지는 반응에 잠시 긴 속눈썹 팔랑이듯 눈 한 번 깜빡인다. 음, 이 아이는 서로 기감을 읽느라 침묵하는 걸 아는 무림인이 아니니까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너무 그쪽 세상에 찌들었던 건지. 때문에 재하는 잠시 고민했다. 진짜로 믿느냐는 질문에 답할 이유로, 과연 이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에게 자신과 같은 경지에 오른 사람이 거짓말까지 간파할 수 있음을 알려줘도 괜찮은 것인지. 결론은 꽤 쉽게 났다.
"거짓이었다 해도 믿을 겝니다."
알려주지 않는 것이 좋겠다. 짧은 식견이지만 무림인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 같은데, 알려줘봤자 무림인이 아닌 사람도 경계할 것 같았다. 좋지 않은 인식을 심어봤자 무엇 하겠는가. 무엇보다 재하는 사람을 좋아했다. 진실로 판명 난 지 오래이나 아이라면 거짓말이라 한들 한 번은 믿어주고, 친절을 베풀고자 하는 것이 고질적인 심성이었다. 어른이라면? 본인 책임을 다할 나이인데 감당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처리할 일이다. 죽든지.. 제법 불경한 생각을 뒤로 하며 재하는 서글 웃는 낯 유지한다.
"이대로면 보는 눈이 많아져 방해가 될 터이니 다시금 부르기 전까지는 물러나시어도 좋사옵디다." "천유.. 양월."
땅을 울리는 소리를 뒤로 재하는 고개를 돌린다. 진정 다른 곳에서 왔다면 궁금함이 불쑥 치솟는 것이 당연했다. 재하 다소곳이 손 모으며 웃는다. 한 걸음 내디디며 보폭을 맞춰준다. 작은 배려다.
"저잣거리는 물건을 파는 상인도 있고, 가장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습지요. 이곳은 그러한 곳입니다. 저잣거리를 둘러본 뒤엔 별다른 것은 없사와요. 저잣거리, 집, 울창한 숲.. 그나마 다른 곳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신을 모시기 위한 장소가 존재합디다. 어찌 보면 지루한 곳이지요."
그렇기에 강호에 뛰쳐드는 사람이 많은 걸까. 재하는 쓸데없는 고민을 뒤로 나지막이 물었다.
"아씨 또한 바다를 처음 보시었는지요?"
선계에선 바다가 보이지 않을까? 아니, 설마 선계 사람도 아닌 걸까? 궁금해졌는지 눈이 동글 뜨인다.
...뭐지? 분명 허공에서 소리가? 전음은 아니다. 분명 실제로 소리가 나왔다. 다만, 소리가 나올 만한 곳은 보이지 않는다. 대체 어떻게 된거지? 정말 선녀라 가능한 기이한 작용일까? 고불은 도저히 스스로의 머리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 머리가 복잡해져가는 것을 느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꾸 언제가 이런 상황을 겪은 것 같은 기시감도 들었다.
물론 착각일 것이다. 이런 놀라운 상황을 고불이 이미 겪은 적이 있다면 잊을 수 있을리 없다.
결국 고불은 직접 나서보기로 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 무림에서 조심해야 할 상대로 손에 뽑힐 느낌이나 이 기이한 경험을 이대로 허무하게 날리는 일도 있어서야 되겠는가.
"고불! 너, 선녀 맞다? 선녀가 뭐다 고불?"
고불은 사람들 틈에서 불쑥 앞으로 튀어올라 정체불명의 소녀 앞에 탁 내려앉으며 물었다. 마을 주민들이 최소한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상 제지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다들 불만스러운 눈초리로 고불을 바라봤지만, 당장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은 선녀님의 처분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역으로 선녀님의 뜻이라면 그들은 무인에게도 덤벼들 마음가짐일지 모른다.
거짓이어도 믿을 거라는 건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어쨌든 믿어주긴 한다는 거니까 나쁘진 않은 거겠지? 설마 거짓말이라고 비꼬는 건... 뭐, 비꼬는 말이었다한들 크게 반감은 없는 게, 지금 상황은 내가 봐도 거짓말 같은 상황이긴 하니까. 에바에 탄 채로 떨어진 곳이 과거의 외국이라니, 초호기랑 플러그 슈트를 제외하면 소지품도 아무것도 없다니 진짜 에바야... 차라리 거짓말인 쪽이 좋겠어...
"...방금 그건 무슨 말이에요? 헤어질 때 하는 인사? 어- 뭔가 비슷하네요. 사람 사는 곳은 대체로 다 비슷하구나...“
천유양월? 사자성어 같은 느낌이네. 근데 돌려보내는구나... 저번의 그 용처럼 확 나타났다 확 사라지는 건 아니네. 좀 아쉽다. 용에 탔던 것처럼 어깨에 한번 타보고 싶었는데(?). 약간의 아쉬움을 담아 사라지는, 아마도 영물로 보이는 쪽을 바라보다 시선을 다시 돌렸다. 그러는 김에 약간의 질문도 같이 꺼냈다. 여기에 언제까지 있을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인사말 같은 것은 외워두는 쪽이 좋을거고. 물건은 파는 사람이 있고,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고, 집과 시장이 있고 신을 모시는 장소가 있다... ...뭐야 평범한 곳이잖아. 신도쿄시에도 신사가 있고, 집도 있고 상점가도 있다.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는 얘기겠지. 시대가 바뀌어도 시간이 흘러도 말이다.
"음- 바다 자체를 처음 보는 건 아닌데, 파란색 바다는 처음 봤어요. 원래 있던 곳은 바다가 붉은색이고, 살아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 여긴 굉장해요! 하늘처럼 새파란 색에, 안에서 풀도 자라고 엄청 신기해요! ...근데 또한, 이라는 건, 어... 바다를 못 보셨던 건가요? 아니면 저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뜻인가요...?“
'아씨 또한 바다를 처음 보시었는지요?'라니, 그럼 이 사람도 바다를 못 봤던 건가? 아니면 나랑 같은 사람, 붉은색 바다밖에 못 봤다고 한 사람이 또 있다는 뜻인가? 후자라면 이건 나만 과거로 온 게 아니라 나랑 같은 곳에서 나처럼 과거로 떨어진 사람이 있다는 뜻이겠지. 이건... 엄청 신경쓰이는데.
여러분들께서 크오 기간을 연장하시길 원하신다면 아직 일상을 못 돌리신 레스주분들을 위해 김캡께 크오 기간을 금요일까지 연장하는 건 어떠신지 의논을 제의해볼 것을 고려해보고 있습니다. 이 레스는 아직도 현생이 끝나지 않아 답레를 쓰기 시작하지 못한 상황에서 작성되었습니다.....(XX)💦
벌레들도 울지 않는 심야. 야견은 나뭇가지에 걸어놓은 횃불 아래에서, 언덕 아래로 보이는 환하게 빛나는 마을을 바라보며, 귀를 기울인다. ‘살려주세요’, ‘전부 쓸어담아’, ‘서둘러’, ‘엄마, 엄마,’. 싸움이 있는 곳이라면 흔히들 들려오는 소리. 아마도 인근의 화적 때들이 민심이 흉흉한 틈을 타 주변의 민가를 습격한 것이겠지. 평소라면 굳이 끼어들 일은 아니었으나, 문제는 저곳이 파계회*의 영역 안에 있다는 것. 이렇게 된 이상 보고도 못 본채 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보자, 머릿수는 대략 2백 정도 되나.”
일개 화적때 치고는 많은 수지만, 시간을 들이면 제압할 수 없는건 아니다. 더 편하게 파계회로 돌아가 아우들을 부를까도 생각을 해보았으나, 저 기세라면 그동안 마을은 불타고도 남을 것이다. 즉 여기서는 나 혼자라도 나설 수 밖에 없다. 생각이 정리되자 당장 언덕을 달려간다. 매캐한 불꽃의 연기에 섞여 피비린내와 쇠붙이 냄새가 진동을 한다. 익숙해졌다 생각해도 적응이 되지를 않는군.
“뭘 멍하니 보고 있어! 타죽고 싶냐? 당장 마을 밖으로 나가 이 잡것들아!!”
마을에 들어간 야견은 겁에 질려 옴싹달싹 못하고 있는 상인들을 향해 마구 소리지른다. 마을에 사람이 많은 걸 보니 장날을 노려 습격했나보다. 그러던 와중, 겁먹은 민중 사이로 기묘한 행색을 한 꼬마, 마치 범의 털가죽을 닮은 머리칼의 아이를 본다. 저 기묘한 옷가지. 분명 최근에 비슷한 것을 입은 꼬마를 본 기억이 있는데.
이곳의 심야는 조용했다. 물론 신도쿄시의 심야도 조용하긴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조용하다고 할까. 약간의 풀벌레 소리를 제외하면 가로등도, 밤늦게까지 여는 가게도 없어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을 이 시대의 심야는 적막함 그 자체였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조금 전까지는.
"...뭐야...?“
적막함을 찢고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제법 소란스러운 것이 예삿일이 아닌 것 같은데. 이 시대의 옷에서 플러그 슈트로 갈아입고 엔트리 플러그 안에서 취침(...)하려다가 슬그머니 다시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한눈에 봐도 밝아 보이는 곳이 있다. ...뭐지? 축제 같은 거라도 하나?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서 밝은 곳으로 향했다. 슬쩍 보고서 돌아올 생각이었기에 플러그 슈트 차림인채로.
하지만 축제인 줄 알았던 그 밝고 소란스러운 곳은, 전혀 예상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불타는 가옥과 정신없이 도망치는 사람들. 그리고....
―구 도쿄*의 그 날을 떠오르게 만드는...
"―싫어, 왜... 왜 이런....“
싸아-하고 온 몸의 핏기가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한 발짝, 또 한 발짝 물러서다가 어디선가 들려온 외침에 정신이 들었다. 빠르게 뒤돌아서 초호기가 있던 곳으로 향했다. 또 사람이 죽는다. 빨리, 빨리 막아야... 그때도 에바로 막았으니까 이번에도 막을 수 있을 거야, 그럴 거야. 틀림없어...
매캐한 연기와 피비린내가 섞여 진동하는 약탈의 현장에 기묘한 땅울림이 퍼진다. 처음에는 미미했던 그 울림은 점차 커지고 있었다. 아니,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처럼. 도망치던 상인과 마을 사람들 위로, 마을에서 돈이 될만한 것들을 쓸어 담던 화적들 위로 그림자가 드리운다. 달을 등지고 마을 위로 그림자를 드리운 그것, 마을을 태우고 있는 불이 비춘 그것은 기이하게 빛을 반사하는 보랏빛과 초록색이 섞인 거인― 초호기였다.
".....“
가만히 마을을 내려다보던 초호기는 그대로 손을 들어, 가능한 사람이 없는 곳을 골라 주먹으로 내리쳤다. 초호기가 걸어올 때보다도 더 크게 땅이 울리고, 흙이 공중으로 날아 사방으로 튄다. 마치 지금 화적들이 하고있는 행위에 대한 경고라도 되는 듯이.
/*구 도쿄 에피소드에서 [제트 얼론]이라는 로봇이 폭주해 건물을 밟아 7명의 사망자를 낸 사건. 나츠키는 조금 전까지 옆에서 얘기하던 사람들이 무너진 천장에 깔려 사람(이었던 것)이 된 걸 보고 붉은색이나 피를 보면 쬬금 과민반응 하게 되었다
야견은 화적 때를 던지고, 패고, 꺾으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4분의 1 정도는 처리했을까. 그러나 역시나 이 정도의 숫자가 되면 혼자서는 버겁다. 정신을 차린 마을 사람들이 인근의 샘을 퍼와 화재를 진압하고 있으니 사정은 좀 나은 편이지만, 대가리를 치지 않는 이상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야견. 그러나 왜일까, 아까 전에 보았던 기묘한 꼬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 신경쓰인다.
“.....! .....!! .......!!!”
그러던 와중, 발 밑에서 거대한 땅울림이 울려퍼진다. 점차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눈앞에 널린 화적때들도 심상찮음을 느끼고 하나 둘 고개를 돌린다. 땅울림이 울릴 때마다, 처음에는 모래가, 다음에는 조약돌이, 마지막에는 집들마저 크게 흔들린다. 그림자가 마을 전체를 감싸고, 달빛을 받아 자색과 청색의 금속이 기이하게 빛을 튕귄다. 만월의 달 한가운데서 새하얀 눈빛이 번뜩인다. 거인이다. 외뿔을 단 거인이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건...대체...?”
야견은 눈앞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갑옷을 입은 거인의 존재는 마치 꿈에서 현실로 떨어진 듯한 이물이었으니까. 더욱이 야견은 저 거인에게 물리적인 거체 이상의 위협과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저것은 요괴인가? 석상인가? 그것도 아니면...? 그렇게 생각을 이어나가고 있을 무렵, 거인이 팔을 뻗어 빈 공간을 내리친다. 마을 전체가 북으로 친 듯이 크게 울린다.
화적들도 마을 사람들도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무기를 내려놓는다. 그러나 그 눈빛에서는 감사나 안도의 기미는 없다. 그저 눈앞에 나타난 거인에 대한 공포만이 있을 뿐. 야견도 마찬가지였다. 이 다음 거인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최악의 경우마저 상정해본다.
아무도 다치지 않게 비어있는 쪽을 내리치는 건 성공했는데... 이제 어쩌지? 땅을 내리친 자세 그대로 멈추고 손가락으로 조종간을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아니, 상대가 사람이니까 말이지... 사도였다면 주먹으로 팼지만 이 경우는 절대 주먹으로 때릴 수도 없다고. 할 수는 있지만 절대 안 할거라고! 주먹뿐인가, 가볍게 초호기의 손가락으로 튕기기만 해도 사람이 크게 다치는 선을 넘어 죽을 것이 분명하다. 해본 적은 없지만 아무튼 분명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건 일단 땅을 친다 → 저기서 불지르고 난리친 녀석들이 겁먹고 내뺀다 → 나도 후딱 돌아간다 정도의 흐름인데, 분명 그렇게 될 것 같아서 했는데...
...왜 다들... 멈춰있어...? 왜 안 도망가요...? 눈치게임 중인가? 누가 먼저 도망가야 다같이 도망가는 그런 건가?
"......흠흠. 아- 저기-“
이대로 있으면 이렇게 멈춘 상태 그대로 대치하다가 아침이 될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지. 외부로 연결된 마이크를 켜고 이쪽에서 먼저 말을 걸기로 하자.
"어, 일단 멈춰주셔서 감사하고요. 그, 방화랑 절도랑 살인은 나쁜 일이니까 하면 안 돼요. 그러니까 다들 그만하고 들어가서 주무세요. 밤이니까.“
아셨죠? 라고 어찌 마무리하긴 했는데, 정말 이걸로 멈춰주면 좋겠다. 일전에 이오리* 씨가 하셨던 말씀이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에반게리온이 대사도전이 아닌 곳에 투입된다면, 핵폭탄 이래 최악의 살상병기라는 악명이 붙게 될 거라는 그 말이. 제대로 된 무기가 없는 지금 상황에서도, 이 눈앞의 사람들을 향해 손만 휘둘러도 어떤 일이 생길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그런 상황은 오지 않았으면 하는데. 진심으로.
/ *유즈키 이오리, 네르프 기술부 부장. 최근 맑고 고운 소리 영창에 들어갔다가 복귀함.
재하는 작게 웃었다. 알고 있으니 괜찮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마저 걷는다. 보폭은 크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느린 걸음도 아니다. 적당히 걸을 만큼 걷는다. 길이 험악할 수도 있으니 되도록 험하지 않은 길 위주로.
"필부가 속한 곳의 구호입디다. 지금은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헤어질 때 하는 인사로도 쓰옵지요."
헤어질 때 하는 인사라면 인사겠다. 다만 무언가 생각하던 재하는 한 마디를 덧붙인다.
"……다만 이 지역은 신강이옵기에 천유양월이라 하여도 괜찮으나, 이 지역을 나서서 이 단어를 뱉으면 목숨을 보장할 수는 없사옵니다. 중원에서 교국을 간악한 마교도라며 배척하옵기에.."
살벌한 말을 친절하게 포장해 답하고는 묻는다. "혹 아씨가 속한 곳에서도 이런 인사가 있는지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발언이었다. 잠시 무례했는지 고민하다 그때 가서 사과해야겠거니 떠올린다. 다 같다라, 아무렴. 교국에 있는 재하는 중원에 당도한 이후 다를 것은 없노라 생각했다.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삶을 살아가는데 서로 배척하려는 모습도 이해할 수 없었으나 함부로 뱉으면 불경한 발언이었기에 입을 다물고 살았을 뿐.
"붉은 바다?"
재하는 잠시 운을 떼고 이야기를 마저 들었다. 원래 있던 곳의 바다는 붉었고, 살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려운 이야기다. 떠올리려 해도 쉬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붉은색의 바다, 살아있지 못한 곳……. 피웅덩이와 같은 광경이었다 생각하면 될까? 재하가 생각하며 봐온 바다는 아름답고 광활하며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자연스레 피와 바다를 비교하고 대입하니 아이가 있던 곳은 끔찍하였겠거니, 그리 지레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생명이 없는 바다를 보고 사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재하는 아이를 보며 표정을 갈무리했다.
"아쉽게도 전자입니다. 필부는 바다와 먼 내륙에 살아 열일곱 되기 이전에는 바다를 보며 살아오지 못하였사옵기에."
아직 아씨와 같은 사람은 만나지 못했노라 솔직하게 고하고는 잠시 고민한다. 돌아가고 싶을지도 모르는데, 아픈 곳을 찌른 것은 아닐까 하고. 그리고 어색한 침묵이 없도록 입을 열었다.
구호인데 인사로도 쓰인다...? 경례 같은 느낌인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그럼 외워두는 쪽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전에 들었던 발음을 입 안에서 굴리며 연습하려다가 이어지는 말에 잠시 멈칫했다. ....머..머라고요...?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고요...?
"에... 어... 무섭네요... 음- 경례라던가 그런 건 있어요. 이렇게. 그치만 저는 그냥 평범한 인사말을 자주 써요. 좋은 아침, 안녕, 잘자, 내일 보자, 또 보자 뭐 이런 거요.“
역시 외워두지 말자. 여기는 신강이라는 지역이고, 이 안에서 쓰는 건 괜찮다고 하지만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신강인지는 모르니까. 현대처럼 도로가 있고 표지판이 곳곳에 있어 [여기부터 무슨무슨 시] 라고 알려주는게 없을테니까... 실수로 밖에서 쓰면 죽는다니, 그런 위험한 말은 그냥 잊어버리는 쪽이 좋겠어. 입에서 굴리던 말을 꿀꺽 삼키고 대신 비슷한 인사가 있냐는 물음에 경례 동작을 하거나 손을 흔들거나 하며 대답했다. 근데 뭐랄까, 이 시대 엄청나게 무섭네. 마교도라고 배척한다는 건 종교탄압? 있었지 그런 거- 카쿠레키리시탄이라던가, 좀 더 과거로 가보면 도교와 불교의 충돌이라던가 뭐 이래저래 배웠던 것 같은데. 힘든 시대구나, 여기도.
"아... 그런가요. 에, 진짜요? 와...“
17살이 되기 전에는 바다를 못 봤다니. 내 나이보다 긴 기간이다. 엄청난데... 이 사람도 바다를 처음 봤을 땐 나처럼 들떴을까? 아니지, 나는 붉은색이긴 하지만 바다 자체는 지겹도록 봐왔으니까. 아마 나보다도 더 들뜨지 않았을까.
하지만 후자를 조금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라, 살짝 풀이 죽었다. 슬며시 내려간 고개는 단 음식을 좋아하냐는 말에 다시 위로 후다닥 올라왔다. 풀이요? 방금 다시 살아났어요!
"앗, 좋아해요! 단 음식! 참, 여긴 단 거는 뭐가 있어요? 이 시대에 단 거는 구하기 어렵지 않나요? 옛날엔 설탕이 귀했다고 알고 있는데요."
지독히 어색한 침묵. 화적때들도, 마을 사람들도, 야견도, 심지어는 눈앞에 나타난 외뿔의 거인 마저도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모르는 듯 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겠지. 여기에 있는 누가 지금과도 같은 상황을 예상했을까. 그러던 와중 거인에게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분명 입을 벌려 말하는 것은 아니건만 마치 동굴에서 목소리가 메아리치듯 소녀의 이야기가 울려 퍼진다. 솔직히 말하면 거인의 모습과는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는 공손한 제안이었다.
“....안들리냐 이것들아! 당장 꺼지지 못해! 밟혀 죽고 싶은 거냐!”
그 이후에도 이어지는 어쩔 줄 모르는 분위기. 이에 야견은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화적 한명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던져 버린다. 그와 동시에 황급하게 꽁무늬를 빼기 시작하는 화적 때들. 이제야 비현실적인 지금의 상황에 적응하고, 분위기를 파악한 모양이다. 물론 야견은 놈들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눈앞에서 파 보아야할 문제가 있다.
쿵쿵-
야견은 아직도 거인에게서 눈을 때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을 뒤로 하고, 땅을 내리친 거인의 손에게로 다가가 손등으로 두드려 소리를 낸다. 그리고 거인을 향해 자신을 가리킨 뒤, 엄지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손짓을 한다. 다른 곳으로 갈 것이라면 자신도 데려가라는 것이겠지.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고는 있었으나. 솔직히 지금도 겁이 나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만난 다른 꼬마를 생각한다면, 어쩌면 이 외뿔의 거인을 다루고 있는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오, 한 사람이 소리지르면서 한 사람을 집어 던졌다. ...사람이 사람을 집어 던지다니 처음 봤어. 뭐야 무섭게 쎈 사람이 있었잖아. 내가 없었어도 정리됐을 상황인가? 괜히 나와서 사람들한테 겁주고 그런 건 아니겠지? 아무튼 한 사람이 내던져지자 아까까지 마을에서 범죄 행위를 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우르르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 첫 스타트를 끊어준 건가? 일단 말만 해서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를 해결해줬으니 감사해야겠네.
"...응?“
그럼 나도 이제 돌아갈까- 아니면 뭐, 바닷물이라도 퍼와서 저기 불 끄는 걸 도와줘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손등에 뭔가 하는 사람이 보여 고개를 숙였다. 사람을 집어던졌던 사람이다. 뭐지? 자기를 가리키더니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 ...어디로 옮겨달라는 뜻인가? 어디로? 잘 모르겠지만 일단 손을 조심히 돌리고 펴서 그 사람이 올라탈 수 있도록 했다.
올라탄 걸 확인하면 천천히 손을 들어올린다. 대충 가슴께 정도 높이로 손을 올리고, 조용히 물어본다. 물론 조용히 말하기는 했지만 아마 초호기 기준으로 조용히라서 그닥 작진 않았을 것 같지만.
"어, 어디로 가시게요? 아, 뭔가 택시기사가 된 느낌.“
초호기 택시라니 엄청난 느낌인데. 그래도 진짜 택시가 아니니까 야간할증은 붙이지 않는 걸로. 아무튼 이 사람이 어디 멀리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면 좀 곤란한데. 가능하면 초호기를 숨겨두는 바다에서 너무 멀어지는건 피하고 싶다. 걸어서 갈 수 있는 범위 내라고는 해도, 밤이고... 초호기로 걸으면 생각보다 소리도 크고 다들 잠을 못자게 될지도 모르니까.
호기롭게 외뿔 거인의 손바닥에 올라탄 야견이었으나, 스윽하고 올라가는 과정에서는 이리저리 허둥댄다. 살면서 이렇게 높은 곳에 올라간 것은 처음이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젠장 높구만. 만약 거인을 다루는 꼬마가 변심이라도 해서 자신을 던져버린다면? 그렇게 상상하자 갑자기 안색이 새파래진다.
“이곳만 아니면 어디든 괜찮아. 바다 쪽이면 그쪽으로 가지.” “그저 묻고 싶었던 것이 있었던 것뿐이니까.”
가슴께에 다다른 야견은 어떻게든 균형을 잡고 크게 울려퍼지는 어린아이의 목소리에, 나름 크게, 그러나 아래의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말한다. 중원의 사람들은 강인하다. 굳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상황을 정리하겠지. 오히려 정체 모를 거인이 나타난 상황에 더 불안함을 느끼리라.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너 말이다. 열도의 사람이지? 눈은 홍옥처럼 새빨갛고, 머리는 새파란데, 정작 인간미라곤 안 느껴지는 꼬마를 만나 본 적이 있는데 이 거인의 이야기를 하더군.”
"아, 그게... 이렇게 사람을 옮겨주는 일을 하는 사람인데요. 이렇게라고는 해도 초호기가 아니라 택시로- 아니 수레.. 마차...? 뭐 그런 걸로 태워다주는 직업이요. 아, 네. 그럼 바다 쪽으로 갈게요?“
천천히 올린다고 했는데 너무 빨랐나? 살짝 미안해지는데. 아무튼 어디든 괜찮고 바다 쪽이면 그쪽으로 가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걷기 시작했다. 걷는 속도도 천천히 걸어야겠지, 너무 빠르면 이 사람이 힘들거야. 그나저나 묻고 싶은 말이라니, 대체 뭘...
"어...? 어떻게 그걸, 네? 아유미? 아유미를 만난 거에요? 아유미도 여기에 있어요?“
전혀 상상도 못하던 말에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쳤다. 아유미가 여기에 있다고?? 이 사람이 아유미를 만났었다고? 여기로 떨어진 거, 나 혼자가 아니었다고? 붉은 눈에 푸른 머리, 거인의 이야기를 했다...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좀 너무한 평가가 아닌가 싶지만 뭐, 아유미 조용조용한 편이니까 그렇게 보일 수도 있고, 확실히 초반엔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 있고... 아무튼 아유미 얘기가 틀림없어!!
"지금 어디에 있어요? 설마 그쪽 분하고 같이 있는거에요? 아,.이, 일단 움직일게요. 저기, 아유미는 무사한 거죠?“
너무 놀라서 걸음도 멈춰버렸다가, 엄지로 마을 밖을 가리키는 동작을 보고 아차 싶어서 다시 발을 옮겼다. 여기 떨어지고나서 처음으로 들은 동향사람(?) 소식에 너무 기쁘고 설레서, 아까보다도 걷는 속도가 조금 올라갔다.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시선이 휜다. 친절하다 못해 상냥할 정도다. 재하는 겉보기에 그런 사람이었다. 평범한 자에게는 지극히 평범히 대해주고, 먼저 공격적으로 나온다 해도 한 수는 물러주는 사람. 그 이후가 된다면 아낌없이 발톱을 드러냈으나, 내력 없는 민간인에게 발톱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하물며 아이라면 더욱이. 멈칫하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다. 방금 들은 말이 거짓은 아니라는 듯.
"평범한 인사라.. 참으로 좋군요."
다행이다. 당신이 사는 곳은 같은 사람끼리 혐오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 사실 자체가 큰 안도로 다가온다. 작고 어린아이가 그런 삶을 살게 된다면, 마음이 편치 못할 테니까. 재하는 혐오가 무엇을 불러오는지 뼈저리게 알고 있다. 당장 교국 내부에서도 재하는 힘을 얻기 전까지는* 편치 못했다. 이 아이에게도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해달라며 속으로 짧게 천마에게 기도한다. 다른 곳에서 왔다 하였으나 긍휼함은 같지 않겠사옵니까. 경례 동작을 바라본 재하는 따라 하듯 하며 "이렇게 말입니까?" 하고 묻는다. 아직 어색하지만 처음 따라한 것 치곤 제법 괜찮다.
"예에, 무공을 배우기 전까지는 몸이 여즉 좋지 못했사옵기에 마차를 타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답니다."
지금도 그리 좋다고 할 수는 없으나 바다를 보러 갈 수는 있다. 처음 봤던 바다는 어찌나 광활하던지. 재하는 작게 웃었다. "기실 지금도 마차 멀미가 심하거든요." 고개를 돌려 보니 어느덧 저잣거리 초입이다. 초목부터 비단 파는 사람도 있거니와 연인에게 주기 위한 장신구를 사기 위해 흥정하는 사람도 있다. 재하는 그 모습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돌린다. 아이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더 중하다. 살짝 풀이 죽은 듯싶어 꺼낸 말이 효과가 있었음을 알았을 때, 재하의 눈매도 제법 부드러운 호선을 그었다.
"그쪽의 단 음식이 무엇인지 감히 헤아릴 수는 없으나, 제법 단 음식은 많지요. 꽃으로 향을 내어 꿀을 굳힌 사탕이나, 산사나무 열매를 꼬치에 꽂아 설탕 옷을 입힌 것이나……. 꿀이나 설탕이 귀한들 한입 정도 되는 간식거리는 박하지 아니하고 제법 괜찮은 편이옵니다."
그것보다 시대라. 종합하면 아예 시간까지 초월한 것인가? 기이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점차 걸을수록 이곳이 저잣거리요 시장바닥임을 알 수 있었으니 사람에 치이지 않게끔 조심스레 인도했다. 어디선가 단내가 풍긴다. 근처에 보이는 것이 새빨갛고 동그란 과실에 설탕옷 입히는 상인의 모습이다. 재하가 생글 웃었다. "좋아하신다 하셨으니, 이곳의 단 음식도 한 번 드셔보시겠사와요?"
// 일이 생겨 잠시 늦고 말았습니다.. 부디 푹 주무시길 바라고 답레는 천천히 주세용..! ;-;
오, 처음 보고 따라하는 것 치고는 제법 멋있게 잘한 것 같은데. 잘한 것도 잘한 거지만 이 사람 자체도 굉장히 미형이라, 잘 어울린다고 할까. 어쩐지 사진으로 남겨야 하지 않을까 싶은 기분도 든다. 하지만 지금 나한텐 소지품이 하나도 없고, 핸드폰도 없어서 사진으로 남기는 건 역시 무리겠지. 있다고 해도 사진을 찍었다가 '영혼을 뺏긴다!!'하고 화내면 큰일나니까 결국 있어도 찍진 못했겠네. 그, 옛날 사람들은 카메라가 영혼을 가져간다고 생각했다고들 하니까... 무작정 했다가는 신변이 위험해질지도 모르지. 아무튼 약간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대신 마차라는 말에 관심이 쏠렸다. 마차? 마차라고?? 굉장하다!
"우와, 마차요?? 굉장해. 소설 같다... 마차를 타도 멀미를 하는군요. 헤에...“
차나 배나 비행기 멀미는 들어봤는데 마차 멀미는 처음 들어본다. 애초에 마차라고 할까, 말 자체를 그렇게 가까이에서 접한 적도 없고 대충 책이나 TV를 비롯한 매체에서만 간접적으로 접했으니까. 근데 몸이 안 좋으면 타기 힘들고, 지금도 이 사람이 멀미가 힘들어서 타기 힘들 정도라면... 나는 타면 죽어버리는 게 아닐까. 마차라는 건 대체 어떤 탈 것일까....
"사탕은 이 때도 있었구나... 산사나무..?“
잘 모르겠지만 사과사탕이랑 비슷한 쪽일까. 점점 걸어가면서 사람도 많아지고 소란스러움도 짙어진다.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다 못해 휩쓸려갈 것 같다. 여기서 안내해주는 사람과 떨어지면 엄청 곤란할 것 같으니, 안내해주는 길대로 열심히 따라갔다. 그렇게 따라가다 보인 것은 새빨갛고 동그란... 사과가 아닌 뭔지 모를 열매에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을 뿌리고 있는 상인의 모습이었다. 사과사탕은 아니구나. 좀 더 작은데... ...딸기도 아니고, 저게 산사나무 열매인가 뭔가하는 그건가?
"앗, 어, 저... 근데...“
먹어보겠냐고 권하는 말에 단번에 승낙할 뻔했지만 마지막 이성을 쥐어짜서 간신히 멈췄다. 그게, 저, 진짜로 (초호기를 빼면) 몸만 뚝 떨어져서 말이죠. 우물쭈물하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마저 말을 이어갔다.
"저어... 돈이 없거든요. 진짜로 몸만 뚝 떨어져서, 이 옷도 처음에 도와주신 분이 주신거고.. 그래서, 저기... 괜찮아요.“
“...하늘에서 갑작스레 떨어지길래 천녀님인줄 알았지. 낯선 곳에 떨어졌는데도 놀라는 기색은커녕 표정이 바뀌는 것도 없는 것이 더 놀라웠지만. 미래에서 온 꼬마들은 다 그런가 했는데 널 보니 아닌 것 같다.”
야견은 외뿔거인의 손바닥에 아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어라, 적응되니까 은근히 탑승감이 편안한걸? 대화 와중에 자신이 열도인들이 미래에서 왔다는 정보를 알고 있다 말한 것은 덤이었다. 믿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이렇게 된 이상 서로 공유하는 편이 대화하기 편할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 꼬마, 워낙 조용해서 친구는 있는지 궁금했는데 널 보니 적어도 한명은 있는 것 같군. 다행이야 다행.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한 뒤에는 떠나갔는데. 어라..어떻게 헤어졌더라...?”
야견은 외뿔거인의 몸에서 울려퍼지는 큰 소리에 양 귀를 막는다. 음, 소리가 꽤 큰 탓인지 강풍을 맞은 것 마냥 머리가 뻗친 것은 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분명 아유미 꼬마를 만나고 헤어진 것은 기억이 나는데 그 이상의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꿈 속에서 보았던 것들이 낯이 되면 흐릿한 기억으로 남는 것처럼. 그러나 왜인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직감이 들기도 한다. 기묘한 감각이다.
“그런데 이게 아유미 꼬마가 말했던 에바-라는 건가. 어린 꼬마들이 병사 노릇을 하고 있다는걸 듣고 의아했는데, 이걸 보니 납득이 되는군.”
야견은 그렇게 말하며 외뿔 거인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본다. 인왕상(仁王像)도 저리가라할 정도로 흉악하기 짝이 없는 모습, 이것이 병기라는 것을 바로 이해할 수 있을 법한 용모였다. 그래서 의문이 든 것이다.
“...그럼 거리도 좀 멀어졌으니 묻고 싶었던 걸 물어볼까. 왜 화적 떼를 살려보냈지?”
야견은 지금까지 보여왔던 헐렁한 태도에서 일변해, 냉정한 눈으로 말했다. 이 거인의 힘이라면 놈들을 도륙하는 것은 일도 아닐터인데.
날 보니 아닌 것 같다니 뭐야 그게? 어느새 손 위에서 자세를 잡고 앉은 사람을 보니 꽤나 적응이 빠른 것 같았다. 어- 물론 나도 '그게 모에요!'하면서 장난스레 따지는 걸 보면 적당히 긴장이 풀어지긴 했지만. 그나저나 아유미가 말한 모양이네. 미래에서 왔다는 거. 하긴, 나도 은연중에 말이나 행동에서 티가 났을테니 결과적으로는 같은 걸까.
"...그럼요. 엄청 소중한 친구에요. 그래서 아유미는 지금 어디 있는... 에에, 그냥 보냈어요?“
내가 보호하고 있다!가 아니라 어디로 떠나갔다는 말이 들려 살짝 아쉽다는 기분이 들었다. 엇갈렸다고 할까, 그래도 새하얀 사람하고 대화했을 때보단 더 명확한 단서라던가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어쩌면 차츰 가까워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다음번엔 아유미, 혹은 다른 파일럿을 만날지도 모르는 일이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그래도 힘은 다소 빠지지만.
"그래요. 대사도결전병기 에반게리온. 이건 초호기에요. 굉장하죠?“
우리 엄마가 만든 거. 밖에선 보이지 않겠지만, 엔트리 플러그 안에서 어깨를 치켜올리며 초호기라는 이름을 말했다. 이렇게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어느새 우리는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 그러면... 모래사장 쪽에 이 사람을 내려주고 다시 초호기를 바다 속으로 숨겨야겠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이기 전에, 들려온 말에 무심코 숨을 들이켰다. 화면 너머로 비치는 손바닥 위의 사람은 냉정하고... 날카로워 보이는 눈으로 초호기를, 나를 보고 있었다.
"......사람을 죽이지 않은 걸로... 화내고 계신 건가요.... 어째서?“
왜 살려보냈냐는 물음은, 저 날카로운 눈은, 왜 그들을 죽이지 않았냐고 따지며 혼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째서? 사람이 죽어서 화내는 거라면, 혼내는 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아니, 남이 혼내기 이전에 내가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 절대로. 하지만 이 사람은 그게 아니잖아? 정 반대잖아? 어째서 사람을 살렸는데도 화내고 있는 거지?
"제, 제가 누군가를 다치게 했다면, 그래서 화를 내신다면 이해는 하지만...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왜...."
“그냥 이상할 정도로 어른 같은 꼬마가 있으면, 그냥 꼬마 같은 꼬마도 있을 뿐이구나 했...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응.”
야견은 장난스레 따지는 나츠키의 태도에 마찬가지로 뻔뻔한 태도로 장난을 던졌으나, 새삼 자신이 200척은 가뿐히 넘을 거인의 손바닥 위에 있다는걸 깨닫고 진땀을 흘리며 말을 주워 담았다. 그냥 꼬마와 거인을 다루는 꼬마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부처님 손바닥 위에 올라간 것을 깨달은 제천대성 손오공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결전병기...초호기라...”
야견은 거인 안에서 어깨를 으쓱하고 있을 법한 소녀의 이야기를 듣고, 지금까지 얻은 이야기들을 나름 정리하며 진지하게 생각한다. 자세한 바는 알 수 없으니 이 꼬마들이 적대하는 것은 사도라는 것인가 보다. 천년의 세월이 지나도 인간이 맞서 싸울 것은 남아있는 것인가보다. 그러나 더욱 질리는 것은 그에 맞서 결국 이런 괴물을 만들어낸 인간의 집념이었다.
“희안한 이야기를 하네. 이건 네말대로 병기잖나. 뭔가를 죽이기 위해 있는 물건 아닌가?””
야견은 거인 안에서 울려퍼지는 격앙된 목소리에 알기 어렵다는 듯이 대꾸했다. 다른 이라면 아이에게 필요 이상의 질문을 던지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었을지도 모르지만, 야견은 그럴만한 위인은 못되었다. 만약에 자신에게 이 거인과 같은 힘이 있었다면, 아니, 아니, 아니다. 적어도 지금의 자신에게는 분에 넘치는 힘이다. 야견은 번뇌를 흩어내듯이 인상을 쓰고는 다시 말을 이어간다.
“화적 놈들 역시 누군가를 죽이려 했으니 역으로 죽임 당해도 할 말이라곤 없겠지. 다시 돌아와 마을을 태울수도 있을테니, 죽일 이유야 치고 넘치고. ..아니면 너. 아직 사람을 죽여 본 적은 없냐?”
사람을 죽여보는 게 당연하다는 듯한 그런 말은 대체 뭐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도 분명, 누군가를 향해 죽어버리라고 저주를 했던 적이 있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을 보고 죽어 마땅한 놈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고.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죽이겠다고 마음먹고 행동한 적은... ...없다. 아마도.
"그래요. 이건 병기에요. 하지만 사람을 죽이기 위한 병기가 아니라고요! 사도한테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만든 거라고요! 그런 걸로 사람을 죽이라니, 그런...“
아- 그렇구나. 이 사람도 어른이다. 바티칸 조약*이라는 걸 만든 어른들과 같은 것이다. 순수하게 사도를 상대하기 위한 병기로만 생각하는게 아니라, 사도전이 아닌 다른 곳에 에바가 투입되어 사람과 국가를 상대하게 될 것을 상정하는 어른들.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 그중 한 사람인 것이다. 진짜로 이해할 수 없어. 하고 싶지도 않아.
"......그런 적 없어요. 앞으로도 없을 거에요. 제가 직접... 그러는 일 따윈, 절대로...“
절대로, 없어야 하는 일이다.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구 도쿄의 그 기억을 애써 억누른다. 그때처럼 무심코 초호기의 손을 쥐지 않도록 애쓰면서, 천천히 손을 내려서 손에 탄 사람이 해변가로 내려갈 수 있도록 했다.
"......죽일 이유가 차고 넘친다고 하면, 결국 어떤 이유든 찾아내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고 드는 세상이 될 것 같잖아요. ...그런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연습해 볼까, 그러면 새로운 인사를 배웠다는 의미는 있을 것이다. 괜찮은 인사 같기도 했다. 그리 생각하고는 재하 작은 미소를 얼굴에 그린다. 순한 미소지만 알기 어려운 수심 담겨있다. 아마 우수에 찬 눈빛 때문일 것이다. 한 걸음, 두 걸음 걷다 소설 같다는 말에 작은 웃음소리 낸다. 호탕하기보다는 조신한 축에 드는 사람이었던지라, 이렇게 웃음 내보이기 쉽지 않았건만 아이의 순수함이 퍽 깊었다. 웃은 뒤에 든 것은 호기심이다. 마차를 타도 멀미를 하느냐는 질문도 그렇고, 소설 같다는 이전의 말도 그렇고. 마차가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세게인 건가?
"지금도 간혹 앓아눕는 몸을 타고난지라, 마차나 크게 흔들리는 것은 제법 고역이옵디다. 아씨의 세상에는 마차가 없사온지요?"
차근차근 단어 쌓아올리듯 묻는다. 마차가 없다면 어떤 것을 타고 다닐까? 걸어 다닐까? 아니면 자신이 쓰는 무공*처럼 이동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것? 어느 쪽이든 흥미롭다.
"산사자나 아가위라 하여 작은 석류 모양을 하고 있사옵디다. 새콤하지만 은은하니 단맛이 나지요."
좋아하는 것입니다. 제법 수줍게 눈 휘어 보인다. 아이들 좋아하는 것을 어른이 좋아하니, 하물며 국장급 되는 거물이 그런다면 이 시대에서 부끄러운 일이라 말이 나돌지도 몰라 생긴 버릇이었다. 안내해 주는 길에서 사람에 치일까 싶으면 손 뻗어 팔로 조심스레 막아세우고, 걷는 길에 장애물 있노라면 피할 길 만들어 선다. 과실에 설탕 옷 입히던 상인이 인기척에 고개를 든다. 어서 옵쇼! 호쾌한 인사를 뒤로 재하 시선 내린다. 아이와 키 차이 제법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말이 다 끝나기를 기다리듯 인자하게 손 모은 채로 기다린다.
"괜찮습니다."
대답은 간결했다. 재하는 고개를 푹 숙이는 모습에 잠시 고민하다 양해를 구하듯 손을 조심스럽게 뻗고는, 이내 부드럽게 쓰다듬으려 했다. 머리가 길고 치장하는 사람이기에 아이의 향후 머리를 고려하듯 머리가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로 세심한 손길이었다. 고개를 돌린다. "두 개 주시오." 다른 손으로는 값 치르듯 동으로 만들어진 화폐 상인에게 건넨다.
"여행객에게는 마실 물 한 잔과 하룻밤 묵을 곳 내어주고, 굶는 자에게는 먹을 것을 주되 그 먹을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법이지요. 하물며 아이라면 베풀지 않는 어른은 없사옵니다."
친절히 미소 짓는다. 저는 그 사실을 겪지 못했으니 다른 아이라도 행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가 이 자리에 올랐을지도. 혀 위에 구르던 바늘은 꾹 삼켜내며 손을 떼었다. 그리고 탕후루 하나를 건네었다.
"어- 아예 없진 않은데 흔하진 않아요. 말처럼 동물을 쓰는 게 아니라 엔진이라는 기계로 움직이는 차랑 전차가 있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나 헬기도 있고 그래요.“
...어? 이거 말해도 되나? 이미 말해버린 뒤지만. 이 정도로 타임 패러독스라던가 일어나지는 않겠지? 그나저나 마차라는 거는 많이 흔들리는 모양이다. 어느 정도로 흔들릴까. 훈련용 시뮬레이션 그 의자처럼 흔들린다면 아마 내가 타도 멀미하는 건 확정이겠네. 그래도 한번 정도 타보고 싶지만...
"그렇구나, 달달한 건 좋지요.“
저도 좋아해요! 그렇게 말하면서 슬쩍 올려다본 상대는 어쩐지 수줍은 듯한 표정이다. 음- 왜 수줍어하면서 말하는진 모르겠다. 어른들도 달달한 걸 좋아하지 않나? 물론 달지 않은 걸 좋아하는 어른도, 술을 더 좋아하는 어른도 있지만 단 것을 좋아하는 어른도 그만큼 많은데. 이것도 시대의 차이인가. 옛날 사람들은 힘들었겠구나~
"아.... 죄송해요, 머리는 좀...“
돈이 없어서 괜찮다고 말하면서 푹 숙였던 머리에 무언가가 닿았다. 고개를 올려서 확인할 것도 없었다. 머리가 엉키지 않게 조심스럽게 쓰다듬는 것은 보지 않아도 눈 앞의, 아까부터 세심하게 길 안내를 해주고 지금도 돈을 대신 치르고 있는 사람의 손길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친절해도,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가까이 다가오는 건.... ....싫어.
빠르게 고개를 들고 살짝 뒤로 물러섰다. 대놓고 손을 쳐내지는 않았지만, 표정은 조금 굳어버렸다. 어쩔 수 없어. 이렇게 가까이 오는 건 싫으니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지 않는 것은 아까부터 자신을 계속 도와준 이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받아든 과일사탕이 어쩐지 무겁게 느껴졌다. 뭔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초를 쳐버린 건 아닌지, 조금 마음도 무겁고.
/낯선 땅에서 잘해준 사람한테도 너무 가까이 다가왔다고 갑분싸 만들어버리는 나츠키쟝...양심어디...
“.....그러냐, 사람을 죽이는게 아니라 지키기 위해 만든 병기라. 억지스러운 이야기구만.”
천천히 손을 타고 해변으로 내려온 야견은 다시 한번 월광을 받아 번쩍이는 거인을 올려다본다. 이렇게나 거대하고 강한 힘을 다룸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다루는 이는 사람을 죽이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죽이고 해하는 것이 곧 자신의 생존으로 이어지는 시대를 살아가는 무인 혹은 어른으로서는 천년 후의 미래를 살아가는 소녀의 윤리를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억지라도 그것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 그게 답이겠지.”
다만, 이해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것이 상대를 부정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상반된 두가지의 의견이 있다 한들, 어느 한쪽만이 답이라는 보장은 없다. 둘 다 틀리지도, 혹은 둘 다 옳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을 끝까지 지킨다면 정답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 생각에 야견은 굳이 하나를 더 물어보기 위해 입을 연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자 꼬마야.” “그 약속은 네가 남을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 있을 때도 지켜지는 거냐?”
짐짓 비꼬는 것으로 들릴 수 있는 질문이었으나, 야견의 어투는 지극히 차분하고 진지했다. 대답을 기다리는 사이, 밤바다의 파도 소리만이 정적을 매우고 있었다.
억지스러운 이야기라는 말에도, 억지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 그게 답이라는 말에도, 마지막이라며 물어본 어른의 질문에도 답하지 않고 침묵을 고수했다. 밤바다의 파도 사이로 천천히 발을 뻗고 초호기가 나아간다. 먹빛 바탕에 은빛이 일렁이다 부서지기를 몇 번, 어깨즈음까지 담긴 초호기의 엔트리 플러그에서 나와 바깥 공기를 쐬었다.
"......아마도요.“
파도 소리에 먹혀버릴 것처럼 작지만, 그래도 닿았을 정도의 목소리로 그렇게 답했다. 애매모호한 대답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 상황을 겪어본 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었으니까.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와 해변가로 향했다. 첨벙거리며 발로 헤치고 나온 바닷물은 낮과는 다르게 새까맣지만, 여전히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바다인지는 구분되지 않았다. ...밤의 바다는 여기나 원래 있던 곳이나 다르지 않구나. 둘 다 새까맣고... 무섭다.
"애초에 그런 상황 자체가 상상이 잘 안되긴 하는데요... ...그래도 아마, 그럴거에요.“
해변가에 도착해, 진지한 질문을 던진 상대를 보며 다시 대답했다. 초호기에 타서 봤을 때와 다르게 나보다 훨씬 큰 키, 훨씬 커다란 어른이다. ...아, 파일럿 슈트인 채로 나왔는데, 뭐, 괜찮겠지. 어차피 아유미를 먼저 만났다고 했으니까... ...근데 아유미도 파일럿 슈트 입고 있나?
"아무튼... 처음 뵙겠습니다? 카시와자키 나츠키라고 해요. 어... 그냥 나츠키라고 부르셔도 돼요.“
돌격용 마차가 기계로 움직인다고? 그러니까.. 제법 어려운 말이지만 흥미가 간다. 비행기나 헬기라고 불리는 것은 하늘을 난다니, 경공을 쓰지 않고도 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 재하는 제법 큰 흥미를 가졌다. 그런 것이 있는 세상이라, 신기하다. 아마 이 중원에서 살면 볼 기회는 없겠지. 언젠가 비슷한 것을 보면 미래에는 그런 것이 있었노라 떠올릴 흥미로운 이야기로는 남겠거니 생각한다. 좋은 추억이 쌓였다.
달달한 것이 좋지 않을 리가! 세상이 박한 것이다. 홀로 혀에 남겨둘 이야기를 꾹 삼킨다. 지금은 다른 것이 우선이다. 가령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닫는 것도 있겠다. 재하는 아이의 반응을 잘 안다. 머리는 좀, 하고 말꼬리를 흐리며 고개를 올리자 더 닿지 않게끔 손을 뗀다. 급히 떼어 머리를 망치거나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떼는 모양새다. 아무렴 잘 안다. 이렇게 반응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음을 어찌 모를까. 이번엔 본인의 실책이었다.
"필부야말로 무례를 범했군요."
다만 이 실책을 과하게 사과하지는 않기로 했다.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낫다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가시를 세우는 이유는 여러 가지고 그중 하나일 거라 어림짐작할 수는 없으나 불편한 것은 공통적인 것이 아닌가. 더 불편하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자신의 탓이라고 실책 하지도 않기로 마음먹기로 했다. 이 앞의 아이는 자신이 첩자로 보였기에, 혹은 부적절한 관계를 갖고 있기에, 그것도 아니라면 색을 달리 타고났다는 이유와 같이 자신을 싫어하는 명약관화한 이유가 있어 벽을 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함을 안다.
"누구나 선은 있는 법이지요. 필부는 그 선을 잘 구분할 줄 모르기에 되레 감사하게 여기고 있사옵니다."
대신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 어느 것도 잘못이 아니니 안심하라는 듯. 물 흐르듯 흘러가는 하나의 일이었다는 양, 제법 가벼울지도 모르는 모습 보이며 재하는 빙탕후루 내어주고 조심스레 돌아선다. 아직 보여줄 곳이 많다.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지거나 불편해지는 일은 없었다. 아마 이 사람의 배려 덕분이겠지. 그래도 마음이 좀 무거운 것은 사실이라, 아까보다 조금 사그라든 기세로 대답했다. 대답이라고 할까, 말꼬리만 늘였을 뿐이지만. 어쩌면 좋을지 우물쭈물하는 것이 얼굴에 다 드러나 있겠지. 나도 표정관리를 좀 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일단 받은 꼬치를 한 입 먹어본다.
파삭, 하고 입안에 얼음이 깨지는 것 같았다. 아마 이게 좀 더 차가웠다면 얼음이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깨진 조각에서 느껴지는 건 엄청난 단맛! 이거... 시럽? 설탕인가? 엄청 달다. 그리고 이 처음보는 과일은 설탕에 밀려서 단맛은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새콤한 맛이 좋다. 적당히 밸런스가 잡혀있다고 할까, 뭐야 이거, 맛있어!
"―!! 맛있다! 새콤달콤해!“
약간 위축됐던 모습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제3자의 시선에서 보면 좀 웃길 것 같기도 하다. 풀이 죽었다가 단 것에 바로 회복해버리다니. 그치만 어쩔 수 없어. 이거 생각보다 너무 맛있다고! 내심 과거의 단맛이래봤자 꿀 정도겠지~하고 얕보던 마음이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반성하겠습니다... 죄송해요, 얕봐서 죄송해요. 너무 맛있어요.
"어, 아, 네! 이제 어디로 가요?“
좀 더 입안에 오래 간직하고 싶은 맛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맛있다고 느낀 만큼 목 뒤로 넘어가는 속도도 빨랐다. 고작 한 입으로 이렇게 사르르 녹아버리는 기분인데 이걸 다 먹고나면 진짜로 뺨도 마음도 다 녹아 흘러버릴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다가 가실까요?라는 말에 정신을 차렸다. 어, 이번엔 어디로 가나요??
/답레와 함께 갱신합니다 :3 좋은 오전.. 다들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835 음음.. 텀이 좀 길 것 같고 중간에 일이 몰아치면 파스스 사라지겠지만(...)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제가 있습니다
...싸늘하다. 카에데는 조용한 분위기에 더 당황하며 생각했다. 내가 뭔가 잘못 이야기한걸까...? 무슨 역린을 건드려버린건가...?
'[... 가슴에 비수가 날아오지는 않지만, 조용하네... 아니, 설마... 그럴리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분들, 글을 모르신다던가...?]'
메이플의 중얼거림에 카에데는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 사건이 일어난 후였어도 글을 가르치는 정도는 필수였던 시대에 살던 카에데였으므로, 그런 이유는 상상조차 하지도 못했으므로.
글을 못 읽으면 생존하기 힘든 시대가 카에데의 어린 시절이였으므로.
"...히끅."
그렇게 침묵이 길어지고, 덩달아 카에데의 회상도 깊어지던 도중 들려오는 그 총책임자씨의 큰 외침에 놀라 딸꾹질을 시작하는 카에데. 하지만 그 단순한 단어의 나열은 오히려 그 오래된 번역기와 유능한 AI 메이플에게 더 쉽게 통했다. 그리고 여행용 번역기이므로, 아프다, 도와줘 같은 단어를 오역할 리 없다.
총책임자분이 방금까지 이야기하던 분을 손가락으로 가르킨다.
'[갑, 아내, 아픔. 도움. 갑.]'
물론 조금의 오작동은 있지만. 아무튼. 저 총책임자분이 카에데를 이용하길 원했다면... 좋은 접근이였다.
카에데나 메이플이나,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지나칠 정도로 매정한 사람이 아니였기에.
"[... 메이플, 직접 가서 증상을 보면 치료법 알아낼수 있겠지?]"
'[... 대부분은. 만성이라던가, 전문 의약품이 필요하면 완치는 어렵겠지만...]'
"[조금이라도 덜 아픈 정도라도, 좋아.]"
'[...응, 노력해볼게, 카에데.]'
카에데는 그 답을 듣고 일어서려 하지만, 역시나 과로의 휴유증에다 영양 부족때문일까, 휘청거린다.
'[알겠습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기초 여행용 회화를 이용해 둘의 뜻을 전한 후, 걱정의 눈으로 카에데를 확인하고 있는 메이플이였다.
거인의 어깨가 마치 복잡한 공예품처럼 열리더니, 그 안에서 아까 마을에서 마주쳤던 아이가 기묘한 소재의 옷을 입고 해변으로 걸어 나온다. 작다. 자신도 온갖 괴물이 가득한 이 중원에서 그리 큰 체구는 아니었지만, 눈앞에 있는 아이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저런 아이에게 마음만 먹으면 도시 하나는 쉽게 뒤엎을 거인을 맡기다니, 대체 미래인들은 어떤 상황을 마주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고요한 파도 소리 사이, 작지만 확실한 결론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아마도’라. 애매한 대답일지도 모르겠으나, 있을지도 모를 자신의 행동을 무책임하게 확언하는 것 보다는 훨씬 사리에 맞는 대답일지도 모른다.
“....야견. 어울리지는 않겠지만 일단은 스님.”
야견은 이어지는 나츠키의 공손한 자기소개에 적당한 자기 소개로 답한다. 뭐, 엄밀히 말하면 스님 자격은 미달이었지만 굳이 길게 자기소개를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뭣보다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까. 두 손을 겹쳐 감사의 예를 표하는 야견.
“이해가 가지 않던 바도 풀렸으니, 할 일을 해야겠지. 그쪽이 거인을 부려준 덕에 마을은 멀쩡했어. 고마웠다 나츠키 꼬마. ...뭔가 어떤 방식으로든 갚을 방법이 있으면 좋겠는데. 혹여 필요한 것은 없나?”
일의 경과를 알았으니 이제 결론을 내릴 차례다. 이유야 어쨌건, 머나먼 곳에서 온 미래의 사람에게 신세를 졌으니 그걸 갚는 것은 이 일에 나선 간부인 자신의 책무였다. 딱히 선행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며, 빛을 남기면 뒷맛이 좋지 않기에 한 행동이다. 문제는 먼 곳에서 떨어진 미래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은 감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겠지.
카에데는 안타깝게도 의사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가족의 극성으로 인해 설치해두었던 메이플의 건강관리 시스템은 빛을 발할 수 있을 터. 목걸이를 벗어 잠시 누워있는 여성 쪽에 씌워준다.
'[... 발열 확인, 온도 38.9도. 긴급상황, 상황확인중...]'
목걸이에서 기초적인 스캐닝을 할 수 있게 만들어둔 것은 카논과 아버지의 요청 때문이였지. 인터넷 없이도 작동 가능한 최신 기술의 집약체, 라고는 해도 마기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메이플은 카에데가 자랑스레 소개할수 있는 ai이자, 친구이다.
'[pneumonia 증상과 99%일치. 처치 시도중...]'
완치는 올바른 의약품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비상 상비약으로도 어느정도 완화는 가능한 폐렴 증상이라고 하니, 해열제와 진해거담제를 꺼내본다.
메이플의 저 기능때문에 한 달간 잠을 자지 않고도 버틸 수 있었다. 메이플은 그런 일을 애초에 하지 말라고 하지만, 일이 많은걸 어찌하겠는가.
'하루 3번, 식후 30분. 물 충분히 섭취할것.'
그래도, 안도하는 카에데였다. 아예 불치병은 아닌듯 싶으니. 가지고 있던 상비약의 반을 쓴 셈이지만, 그런것은 생각에 들어오지 않은채 메이플이 있는 목걸이를 다시 자신의 목에 걸려 하는 카에데였다. 메이플이 할 이야기를 예상할수 있는 카에데가 할수 있는 정도가 이 뿐이지만, 메이플이 다 한것이지만, 그래도 증상의 완화가 된다면 빠르게 나을 수 있을 터이다.
스님치고 머리가 굉장히 풍성한데요? 뭐... 그런 종파도 있던가? 자세히는 모르지만 하나 정도는 두발자유인 곳이 있을만도 하지. 대충 그렇게 생각하고 그냥 짤막하게 감상만 말했다. 저 사람이 스스로 '어울리지는 않겠지만'이라고 말한 것처럼 정말로 스님이라기엔 뭔가... 어울리지 않았다. 어느 쪽인가 하면 스님보다는 뭔가 거친 일을 도맡을 것 같은 느낌이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다가 들려온 감사인사에 살짝 놀랐다.
"엣, 아뇨 그... 뭔가 바라고 한 건 아니니까 괜찮아요.“
마을이 멀쩡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할까, 애초에 도운 것도 그냥 구 도쿄 때처럼 사람이 죽는 건 보고싶지 않다는 생각에서 했던 거고. ...그러니까 결국 그거다. 혼자서 놀라 과민반응 한 것이 사람을 돕는 일이 되어버렸다던가 뭐 그런? 아무튼 정말로 뭔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고개를 저으면서 괜찮다고 전한다. 정말로 괜찮아요.
아이에게 화내지 않는다. 웃어른을 공경하며 광인일지언정 경청한다, 정적이라 한들 한 번은 믿는다. 당연한 미덕이고 삶이다. 재하 사그라든 기세와 표정에도 어찌 그러느냐 묻지 않고, 그저 평온한 모습 유지한다. 누군가를 궁지에 몰지 아니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기에 숨쉬듯 자연스럽게 배어있다. 빙탕후루는 두 개, 하나는 여전히 손에 들려있다. 긴 소맷단이 허벅지를 덮다가 조금 위로 올라간다. 중요한 물건 되는 양 꼬치 조심스레 쥐었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시는 것 같군요."
아이가 살던 곳에서 먹던 음식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른다. 그래도 지금 시대와는 다르다 했고, 사는 곳도 다를 것은 자명한 일. 입맛에 맞을지 맞지 않을지 몰라 가장 접근하기 쉬운 간식으로 다가가길 잘한 것 같다. 적어도 마음에 들어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재하 눈이 곱게 휜다. 친절한 낯짝으로 다시금 기운을 차린 모습 본다. 아이의 순수함이 여기까지 밀려드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하나 더 있으니 원껏 드시지요."
짤막하게 덧붙이고 천천히 발걸음 옮긴다. 어디로 가느냐 물었을 적 재하의 고개 느릿하게 기운다. 어디로 가야 아이의 마음에 들까. 기루로 가고 싶지 않다. 객잔에서 허기를 채우기엔 배가 고픈지 고프지 않은지도 모른다. 재하가 아이였다면 어디로 가고 싶었을까. 바깥에 처음 가보는 아이에겐 무엇이 필요할까. 어렸을 적의 재하처럼 아이와 뛰놀라 하기엔 제법 자란 모양새고, 그렇다고 서점에 가도 아이의 흥미를 끌지는 못할 것이다. 재하는 잠시 고민한다.
"머리를 그리 하였으나 장신구 없으니 하나 장만하도록 할까요."
그토록 이타적이건만 이번에는 제법 자기만족에 가까운 답이다. 멱리 쓰인 재하 머리, 그 베일 너머로 화려한 비녀 하나 보인다. 사치라도 부렸는지 만개한 벚꽃 형상화한 조각에 붉은 보석 하나 달려있는 꼴 우습다.
"비녀나 다른 장신구를 꽂으면 쉬이 다가오는 사람도 없을 겝니다."
// 퇴근하면서 갱신해용... 요 며칠 갑자기 현생이 들이닥친 나머지.. 너무 늦어버려서 죄송할 따름이에용... ㅠㅠㅠㅠ... 더 이으셔도 좋고 더 못 잇겠다 싶으시면 여기서 적당히 막레 하셔도 괜찮고 진짜 너무 죄송한 것....😭😭😭😭😭
카에데는 메이플이 고불의 말을 번역해주자 마자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 남자가 기뻐해주는것에 안도하지만, 폐렴이라는건 계속 약을 먹어줘야하기에 약을 여자의 머리맡에 놔둔다.
'[그래도 몸 상태가 말이 아니라고...? 저 분이 도와준다고 하는데 받는게 낫지 않을까...?]'
"[요즘들어 너무 바빴으니, 그럴만도 하죠... 노조일이나, 사도 퇴치나... 그리고 돕지 않아도 되는걸요... 어차피 이거 꿈이잖아요?]"
'[...]'
비현실적인 느낌이 아직 가시질 않는 카에데였다. 아직 꿈 속이라 여기는 것은, 이 마을이, 이 세상이 너무나도 꿈만 같이 아름다워서일까. 지하의 사무실에서 계속 일하고 있던 카에데에게 숲속의 공기나 바깥 태양이 나무에 살짝 가려 은은하게 비추는 그런 광경은 아직까지 이 상황이 꿈만 같다고 생각하게 돕는것이다.
'괜찮습니다.'
메이플은 그저, 첫 문장만 번역해 고불에게 들려준 후, 나머지는 알리지 않았다. 자신이 듣고 있으니, 현실이 아닌가 생각하면서도... 메이플 또한 처음에 떨어진 이유를 가늠하지 못하겠으므로. 그리고 최근 쓰러졌던 카에데에게는 휴식이 정말로 필요했기에.
메이플 혼자서 해결할수 있는 일이라면, 혼자서 해결한것도 그 때문이였으니.
'... 식사와 휴식을 잠시만 부탁.'
건강 체크 프로그램은 유효했기에, 메이플의 독단으로 먹을것과 시 쉴 시간을 달라고 했다. 먹고 있을때 누군가가 도와주면 카에데도 쉬고, 일도 해결 가능할 테니.
야견은 나츠키의 타당한 지적에 머리 한가닥을 꼬며 투덜거린다. 여기 눈앞에 있는 미래인 뿐만 아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불가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하면 처음에는 야견의 껄렁한 행색을, 두 번째로는 풍성한 머리를 바라보곤 했다. 스님이란 대체 무엇일까나. 아니, 그래도 스스로 머리를 깎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절대로.
“그러냐. 그럼 우리 구역을 구해준 신세를 갚는 일은 그만두지 뭐.”
야견은 그렇게 말하며 허리춤에 두른 천 속에서 붓과 두루마기를 꺼내들더니 뭐라 휘갈겨 쓰고, 나츠키에게로 척척 걸어가 종이 두 장을 떠넘기듯 건넨다. 하나는 나츠키도 쉽게 알아보기 쉬울 약도, 인근에 위치한 관리들의 숙소인 귀빈관의 위치를 나타낸 그림이었다. 또 하나는 옛 중국어로 쓰여 알아볼 수는 없겠지만, 파계회가 이 꼬마의 신분을 보장하니 몇날 밤 정도는 불편함 없이 지내게 해주라는 보증서였다.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여기서 자겠지만, 날이 밝으면 되면 이곳으로 가봐. 얼마간은 편히 쉴 수 있을거다. 여러모로 뭐같은 곳이긴 하지만, 손님은 배부르게 먹이고, 따듯하게 재우는 것이 이 나라 관습이라.”
야견은 그렇게 말하고는 바다의 반대쪽으로 몸을 돌려 걸어간다. 사람이 죽는 것은 싫다는 이상론을 읊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얼마나 강한 힘이 있더라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용기에 대해 자그만 보상 정도는 있어도 되지 않을까, 사파 간부의 보은이 아닌, 그저 한 필부로서 내린 결론이었다.
사람이란, 생각보다 이기적인 존재이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것이 둘리인- 아니, 권리인줄 아는 사람이 꽤 된다. 한 두번 도움을 주는 것은 감사의 인사를 받지만, 주기적으로 남을 도와주는 곳을 보면 고맙다라는 말도 없이 받기만 받고 사라지는 사람도 있고, 그 용량이 부족할때에는 오히려 질타를 하는것이 사람이다. 카에데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사람에게 데여 온 것도 꽤 되기 때문에. 그럼에도 카에데가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은, 진작에 버리지 않은 것은. 그래도 고마워하는, 눈앞의 그 남자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머리숱은... 해결 불가능이지...]'
유독 빛나는 한 사람을 보며 씁쓸히 이야기하는 메이플에 쓴웃음을 지으며, 최대한 많이 도와주려 노력하는 카에데였다.
정신적으로 피로하긴 하지만, 3일을 내리자고 일어났으니...
자신을 몰아붙이는것은, 이미 대학 시절부터 익숙하게 해온 일이기에.
그리고 누군가가 메이플을 훔쳐가려 한다면 조금 짜릿할 것이다. 메이플에게도 자기방어기재정도는 쥐어주었으니. 대학교때 프로토타입이 누군가의 장난으로 실종된 이후로 달아둔 옵션이였다.
"謝謝(고마워요)."
그나마 아는 단어로 고불에게 이야기 한 후, 다시금 인간의 소원이라는 심연의 굴레로 걸어들어가는 카에데에게는 초탈한 표정이 걸려있다.
아유미는 야견의 말을 듣고 되뇌이더니,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딱 잘라 말하려 하였습니다. 다만 이어지는 말은 꽤 영문을 모르겠단 생각이 드는 말이었지요.
"스님도 '어른들' 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구나. "
아마도 아유미가 있던 세계에서의 어른들이나 이곳 세계에서의 무림인들이 추구하는 것이나 특별히 다른 부분은 없는 모양입니다. 다만 딱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어른들처럼, 스님도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것이 있을까. " 스님도, 무언가를 간절히 되찾고 싶기를 바래? 영문을 모를 소리를 하며 야견을 빤히 쳐다보던 아유미는 잠시 숨을 깊게 고르려 하더니, 곧 대답을 이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이어지는 말을 하면서도 그녀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이 없었습니다. 지나치게 부담스럽다 여겨도 할말이 없을 만큼. 그러나 이어지는 말의 내용은, 그녀의 세계에서는 그녀가 절대로 꺼내지 않을 이야기였습니다.
"친구는 없어. 없어도 괜찮아... 어차피 통제받고 있는 나인걸. 사소한 사람과의 접촉조차도, 행동조차도 하나하나조차도 모두 계획되지 않은 것이 없으니, 무엇을 진실된 관계라고 하겠어. 하지만 이런 꾸며진 세계라 할지라도 나는, [ 우리 ] 는 돌아가야해. 돌아가야 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
다소 무례하게 들릴수도 있을 질문에도 불구하고, 아유미는 덤덤하게 대답하며 웃어보였습니다. 평소 잘 웃는 아이들이 짓는 천진한 웃음이 아닌, 억눌려 있다가 간신히 허락받은 듯한 것처럼, 간신히 입꼬리만을 희미하게 올리며. 그녀는 말했습니다.
"...이 무너져가는 세계를 지켜야만 하니까. "
그리고 그녀는 단언하였습니다.
"나와, 나를 비롯한. 우리들 파일럿들이. "
마치 이 일을 해결할 사람은 저들밖에 없다는 것인 양 장담하던 그녀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이렇게 중얼이었습니다.
"......시간이 되었네. "
우리들이 돌아가야 할 시간이.
"짐작하는 거지만, 나는 이곳에 오래 있지 않을 것 같아. 잠시만, 아주 잠시만 있다가 둘러보다 가게 될 것 같으니까... 스님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있을 곳에 대해... 뭐든간에."
마치 자신이 곧 이곳에 있지 않게 될거라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아유미는 여전히 알듯말듯 의문투성이인 말을 내뱉으며 야견에게 말하였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스님과 대화할 수 있어서 좋았어. "
처음 본 사람도 다소 표현을 하지 않는 성향인 것을 알 정도인 무뚝뚝한 그녀의 특성상, 이것은 그녀의 진심인 것이 확실할 것입니다. 그러니 입모양으로만 내뱉고 있는 저 말도, 진심이 맞겠지요.
크오 막판에 갑작스런 확진으로 인해 어장에 자주 오지 못하게 된 점이 정말 한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레스주분들께서 모쪼록 재밌게 즐기셨다면 다행입니다만...(ㅠㅠ) 아무튼간에 겨우겨우 정상체온으로 내려 상태가 괜찮아져 돌아와 답레를 남겨보았습니다. 기저질환때문에 사실 지금도 상태가 좋지만은 않은 상황이라 어떻게 기를 쓰고 가져온 답레입니다. 시간이 시간이라 막레같은 답레로 가져와 보았으니 시간상 잇기 어려우시다면 이 레스를 막레로 해주셔도 괜찮습니다. 크오기간 동안 일상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한치의 흔들림 없이 야견을 바라보는 한쌍의 붉은 눈. 아유미가 말했던 머나먼 미래, 붉은색을 띤다는 바다가 저런 빛깔일까. 평소의 그라면 이 시선을 부담스럽게 여겨 실없는 농담이라도 걸며 멈추었을 것이다. 그러나 왜일까. 지금의 그는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다. 눈 앞에 있는 아이가 건네는 뜻 모를 이야기를 가볍게 흘려버릴 수 없었다.
어느새부터였을까. 부와 명성, 그리고 힘과 같은 알기 쉬운 가치, 다시 말해 출세를 추구하게 된 것은. 간부의 자리에 오르고부터? 파계회의 문을 두드리면서부터? 그것도 아니면 우연히 무공을 접하고 배우면서부터? 아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야견에게 있어 그것들은 수단이었음이 분명하건만 어느새 목표가 되어있었다.
안개처럼 자욱했던 야견의 잡념이 점차 사라진다. 어쩌면 답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답은— 자신의 안에서 간절히 되찾아야 하는 것일지도
“....이봐. 아유미 꼬마. 무슨 소리야. 통제라니? 계획이라고? 왜 그런 것들에 얽매여있는건데. 넌 애라고. 그런 골치 아픈건 어른들에게 떠맡겨버리면 되잖아.”
화광반조였을까. 아주 잠깐 밝아진 의식은 아유미의 많은 것을 단념한 듯한 이야기에 다시금 흐려진다. 아니, 흐려진다기 보다는 끊어지려 하고 있었다. 마치 생생한 꿈에서 깨버리는 그 순간과 같이 과거와 현재가,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이 엮이고 섞인다. 그러나 야견은 확실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은 썩을 세계에 대한, 불합리에 대한 짜증이였다.
“왜 너희들이 그 망할 세상을 지켜야 하는건데”
그리고 야견은 잠에서 일어났다. 처음 불경을 외우던 절벽에서. 아마 경을 외우다 지쳐 짧은 잠이라도 잔 것이겠지. 무언가 아주 생생한, 현실과 같은 꿈을 꾼 것만 같은데 구체적인 것은 아무것도 생각나질 않았다. 금강경을 외다보니 정신이라도 나간 것일까. ...그러나 하나는 기억이 난다. 누군가가 떠나가며 말했던 그 한마디가. 그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채, 허무한 얼굴로 푸른 색의 바다를 보며 대답을 돌려주는 야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