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이 남아있는 상태의 전 연인과 연애프로그램에 서로 합의하에 참여하였고 거기서 다시 옛 연인과 재결합을 할지, 아니면 새로운 사랑을 찾을지는 여러분들의 자유입니다. 허나 그 결과가 항상 좋을 순 없으며 당신의 캐릭터의 사랑에 대한 미래는 그 누구도 보장해줄 수 없습니다.
#전 연인 선관은 어디까지나 선관일 뿐입니다. 그것을 핑계삼아 편파를 하거나 해선 안됩니다.
#시트에 견제나 이간지들이 다 가능하다고 되어있는 캐릭터에 한해서는 그 캐릭터에 대한 견제나 이간질을 시도해도 상관없으나 불가하다고 되어있는 경우는 절대로 하시면 안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캐입이며 오너입으로 오너 견제를 하거나 해선 안됩니다.
#매주 금요일에서 토요일에 자신이 마음에 드는 캐릭터에게 '캐입'으로 비밀 메시지를 보낼 수 있으며 그 비밀 메시지는 그대로 캐릭터에게 전달됩니다. 어디까지나 비밀이기에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도록 합시다.
#간접적인 호감 전달이나 플러팅 등은 허용이 되나 직접적으로 좋아한다는 고백 등은 특정 기간이 되기 전엔 불가합니다.
#이 스레는 두 달 단기입니다. 또한 프로그램 특성상 주기적으로 계속 시트를 받을 순 없기 때문에 중간에 무통잠을 해버리면 상당히 피해가 커질 수 있습니다.
#캐릭터끼리는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만들어도 오너들끼린 사이좋게 지내도록 합시다.
#다시 말하지만 라이벌은 어디까지나 캐릭터지. 오너들끼리 견제하거나 편파를 하거나 하지 말도록 합시다.
#여러분들의 캐릭터의 사랑에 대한 미래는 그 누구도 보장할 수 없으며, 그것으로 인해 불평을 한다고 한들 아무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그 외의 문의사항이 있거나 한 분들은 얼마든지 물어봐주시고 상황극판의 기본적인 규칙을 따릅니다. 수위가 너무 높아지지 않게 조심합시다. 성행위, 혹은 그에 준하는 묘사나 시도 기타 등등은 절대 불가합니다.
진행은 아마 크게 없을 것 같고 그냥 매주마다 필수적으로 파트너와 일상으로 해야하는 미션 같은 게 있고 그 외에는 그냥 연애 예능 프로그램마냥 서로서로 플러팅을 하는 느낌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크게 배경을 잡았다기보단 그냥 가볍게 이렇게 놀아볼까 싶어서 시험적으로 해봤거든요.
단순히 하하호호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캐릭터들끼리의 사이가 마냥 좋게 돌아가진 않을지도 모르지만 오너끼리는 싸우지 않도록 주의 또 주의!
저도 그냥 한번 우연히 봤다가 저거 소재로서는 괜찮겠네. 하고 가져왔거든요 시범적일지도 모르지만 시도해서 나쁠 것도 없고.. 사실 하하호호 하는 연애스레도 좋지만 캐릭터들끼리 견제도 하고 자신이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이간질도 좀 하고 그런 아슬아슬한 것이 보고 싶었어요
아마 평생 안 세워질 것 같아서 세워보긴 했는데 반응이 좋으면 잘 될테고 아니면 어쩔 수 없죠! 실패한다고 손해보는 것도 없고
그냥 첫 미션으로는 가장 첫인상이 마음에 드는 이를 골라서 단둘이서 데이트를 시켜볼까 생각 중이에요. 자신의 전연인이 자신을 택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을 고를 수도 있는거고. 그게 또 일상 소재가 되어서 나중에 둘이서 애기를 나눌 수도 있겠고 내심 자신이 노리고 있던 이가 다른 이에게 선택되어서 나중에 미션이 끝난 후에 찾아가서 관련으로 이야기를 해서 떠볼수도 있는거구
>>21 네. 룰은 일단 저것이 전부에요. 하하호호 하는 연애 프로그램보다는 견제도 하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조금 뒷공작도 펼치고 그리고 살짝 사이를 갈라서게 하려고도 시도하고. 그런 느낌으로 조금은 아슬아슬하고 모두가 웃을 수 있는 것보다는 승자와 패자가 확실하게 갈리고 그런 행동도 모두 포함해서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그야말로 진짜 경쟁 느낌으로 기획을 했거든요
이런 것도 가끔은 좋지 않나 싶더라고요. 캐릭터들끼리 조금 아슬아슬한 느낌. 물론 오너들끼리는 사이좋게 지내야하지만요! 그렇기에 도를 넘어선 행위나 모두의 앞에서 공개적인 모욕을 주기나 그런 것을 금지한거기도 하고. 그런 시도조차 싫은 이들을 위해서 시트 스레에 가능 여부도 체크하게 해뒀고.
>>22 요즘 연애프로그램의 시류가, 그렇지. 재미있다면 재미있고, 차별화라면 차별화라고 할 수 있겠지. 강청이의 시트에 OK표시를 해둔 건 내 캐릭터도 가드 오픈했으니 님들 캐릭터 공격할 거에여 ^0^! 라는 느낌보다는 자 여기 튼튼한 샌드백이 있으니 마음껏 때려보세요 라는 느낌으로 OK를 써둔 거지만. 경쟁성 강한 기획에는 미안한 일이지만, 강청이가 이기려고 왔다는 느낌의 캐릭터가 전혀 아니네. (마른세수)
>>23 사실 저도 비슷해서. (속닥) 할 이는 하고 안 할 이는 안하겠죠! 사실 분위기를 이렇게 잡아뒀다고 해도 결국 어떻게 할지는 각자의 자유라고 생각해요. 일단 그런 것도 가능합니다 로 열어둔 것에 가까운거지. 기획의도와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은 아주 흔한걸요. 사실 적극적으로 이기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어차피 모든 선택은 다 자신의 자유인거고 나중에 저에게 아니 연애 프로그램인데 왜 내 캐는 달달한 것도 없고 썸도 없어요 어떻게 좀 해주세요 캡틴! 이런 것만 아니면 저는 터치할 생각도 없고 다 자유라고 생각하거든요
네! 괜찮아요! 아무래도 단기이기도 하고 스레 특성상 위키를 만들긴 좀 애매해서 위키를 만들진 않을 거라거 갱신을 할거면 시트 스레에서 갱신해주세요!
일단 본스레가 있으니 시트 스레에서의 답은 이쪽에서 할게요. 일단은 본스레가 있는데 저기서 계속 얘기를 하면 조금 복잡할 것 같으니까요. 우선 제 생각도 아린주의 생각과 비슷해요. 아마 아린이와는 성격 면에서 아주 살짝 트러블이 있을 것 같거든요. 아마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조금 답답한 면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은석이의 경우는 아린이가 직설적이니까 왜 속을 감춰야 할 때는 감추지 못할까라고 생각할 것 같고 반대로 아린이 쪽에서는 은석이가 속내를 숨기는 것 때문에 왜 말을 바로 하지 않는거지? 식으로 생각할 것도 같고 이런 방식은 트러블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워커홀리적 면에 있어서도 두 사람이 결국 바쁘거나 자기 일을 우선해야한다고 생각한다면 아무래도 자기 일에 몰두하게 될 것 같고 여기서는 아무래도 은석이가 아린이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줬을 가능성도 크지 않을까 싶어요. 이를테면 나보다 일이 중요해? 라는 물음이 나오게 되면 은석이의 경우는 달래주기보다는 지금 이렇게 일을 해둬야 나중에 우리가 또 같이 있을 시간을 만들 수 있지 않겠냐라는 식으로 이게 이득이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할 가능성도 크다고 생각되거든요. 그렇기에 성격 차이라던가 그런 것들이 있어서 아마 서로 헤어지는 쪽으로 가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네요. 아린주의 의견에 살짝 살을 붙여봤는데 괜찮다면 이걸로 어떨까 해요.
추가적으로 이 프로그램의 참여는 아마 은석이의 입장에선 자신의 마음을 좀 더 확실하게 하고 싶다는 것에 가까울 것 같아요. 자신은 마음 속에서 아린이와의 이별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지. 아니면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시 합쳐지고 싶은 것인지. 어쩌면 이것도 상당히 계산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은석이가 정말로 많이 미안하다는 말밖에는....;ㅁ;
음. 이대로 남자 시트 하나만 더 들어오면 될 것 같네요. 일단 천천히라도 들어오는 것 같고 본격적으로 일상이 돌아가기 시작하면 아마 관전하다가도 관심이 생겨서 오는 이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아직은 사람이 적어보여서 분위기를 살피는 중인 분들도 있을 것 같구 말이에요
>>37 좋아 무난하게 성격차이 + 일이 바쁨 콤보로 헤어진 걸로 하면 되겠다. 내 생각에는 한 일년 정도 사귀었다가 한 3개월 전 쯤에 헤어졌고(내 생각에는 아마 아린이가 헤어지자고 했을 것 같아) 그 후에 연락이 없이 지냈다가 아린이가 은석이 리모델링 하는 기간인 걸 알고 있어서 뜬금없이 연락해서 참여 신청할래? 하고 물어봤을 것 같은데 어때? 은석주가 원한다면 기간을 조정할수도 있고~ ㅋㅋㅋㅋㅋㅋ 은석주가 미안할 게 어디있어ㅋㅋㅋ 아린이는 아마 은석이 얼굴을 한번 더 보고싶다는 느낌으로 제안했을 것 같네. 다시 사귀고 싶다기보다는 그냥 미련 같은 거지.
음. 아마 은석이 쪽에서도 그 프로그램을 알게 되면 어느 정도 고민을 하고 있었을 것 같기 때문에 아린이에게서 그렇게 이야기가 나오면 받아들였을 것 같아요. 위에서도 썼다시피 자신의 마음을 확실하게 하고 싶은 그런 계산적인 마음도 있고 아린이에 대한 미련도 분명히 있을테니까요. 그렇게 아린이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함께 참가 신청을 하고 이제 그 이후는 일상이나 그런 곳에서 보면 알게 되겠죠! 그게 이 스레 메인 컨텐츠이기도 하고. 다시 합쳐질지 아니면 다른 이성에게 끌려서 그쪽으로 가게 될지. 혹은 그냥 솔로로 지낼지!
프로그램에 신청을 넣고, 수속을 밟고, 짐을 꾸리던 때에만 해도, 사실 다 꿈이 아닐까 싶었다. 제 안의 미련이 만들어 낸 너무나 생생한 꿈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당분간의 일정을 전부 밀어가며 이런 프로그램에 참가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 답지 않아서 실감이 없었다. 마치 공중에 뜬 것 같던 비현실감은 한동안 이어지다가 프로그램이 진행될 기숙사에 짐을 내리며 비로소 실체를 띄었다.
"...와, 버렸네..."
온통 새 것으로 꾸며진 방에 서서 내뱉은 첫 마디는 그랬다. 와버렸다. 가볍게 내뱉은 말 하나에 비현실감이 현실의 실감으로 바뀌어 그녀가 무얼 했는지 깨닫게 만들었다. 그리고 덜컥 내려앉는 모종의 무게가 당장 여길 나가서 집으로 돌아가라 경고한다. 견딜 수 있겠냐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한다. 무언의 속삭임을 그녀는 무시했다. 눈을 꾹 감고, 가슴팍에 느껴지는 이물감을 옷 위로 움켜쥔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되내인다. 돌이킬 수 없어. 그래서 안 돼. 얄팍한 자기암시에 속삭임은 사라지고 그녀는 다시 눈을 떴다.
첫 눈이 내린 것처럼 깨끗하고 반질한 바닥과 가지런한 침구가, 낯선 풍경이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하..."
한숨인지 날숨인지 모르게 숨을 내쉬고 옷을 정리한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지는 않았다. 당분간 지내야 할 곳이니 한시라도 익숙해지는게 좋을 거 같아, 주변을 둘러볼 겸 산책을 나가자 생각했다. 그녀는 짐을 방 한 켠에 밀어만 두고 다시 나왔다. 짙은 푸른색 원피스가 사락거리며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움직였다.
그녀는 별도의 소지품 없이 맨손인 채로 현관에 벗어둔 샌들을 발에 꿰어 신고 밖으로 나갔다. 동행을 구하지 않았으니, 혼자서 주변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하고, 정돈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느릿느릿 걸어가는 그녀의 뒤로 치마자락과 긴 머리가 같이 살랑였다.
침대 하나에 옷장. 그리고 화장실에 부엌. 그리고 기타 사용할 수 있는 가구들과 진열장. 싸 온 짐들을 하나하나 풀며 은석은 침대에 걸터앉아 숨을 내뱉었다. 솔직히 얘기해서 이 선택이 맞는 것일지, 자신에게 있어서 후회없는 행동일지는 아직 고민되었다. 카페를 운영하는 탓일까. 결국 매사를 계산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자신의 나쁜 버릇임을 알았으나 그럼에도 고칠 수 없었다. 결국 여기에 온 것도 자신의 마음을 명확하게 알고 그에 따라 대처를 하고 싶은 탓이었다. 그러면서도 미련이 남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기에 더욱 답이 나올 수 없었다.
바람이라도 쐬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은석은 에어컨을 껐다. 시원하게 불던 바람이 사라지나 방 안의 냉기는 아직 그 자리에 남아 막 나가려는 방 주인의 빈자리를 지키려고 했다. 얼마나 남아있을진 모르겠으나 가능하면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이 냉기가 남아있길 바랬다. 그 또한 카페를 운영하면서 생기던 절약정신에 의한 마인드였다.
하얀색 반팔 셔츠에 연한 푸른색 여름 조끼, 그리고 진한 회색 긴 바지를 차려입은 그는 자신의 방 밖으로 나섰다. 프린터물에 있던 근처의 지도를 참고해조면 참 다양하게도 있었는데 그 또한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위해서 만들어 진 것이 아니겠나 싶어 은석은 괜히 쓴 미소를 지었다. 틀림없이 따로 자유로운 시간대에 데이트라도 유도하는 거겠지. 그래도 갈 곳 없어서 난감한 곳은 없겠거니 생각하며 핸드폰으로 찍어둔 지도를 참조하며 그는 발을 옮겼다.
우선 건물 주변의 산책길이라도 한바퀴 돌아볼까 생각하며 걸어가는 와중 앞 쪽에 원피스를 입은 여성의 뒷모습이 보였다. 누군지 모르는 이였다. 하기사 자신이 여기에 참가하는 이 중에서 아린을 제외하고 아는 이가 있겠냐만. 그래도 여기에 있다는 것은 자신처럼 참가하는 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절로 그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지금은 남성이건 여성이건 많이 만나보는 것이 제일이었다. 어쨌건 다른 이들이 알아서 자신에게 손해가 될 것은 없었으니까. 질이 나쁜 이라면 아린에게 얘기 정도는 해두는 것이 좋을지도 모를 일이었고.
"안녕하세요. 음. 참가자 분?"
허나 그런 계산적인 속마음은 숨겨버리며 그는 카페 운영을 하며 익힌 영업용 스마일을 입에 녹이며 여성에게 인사하며 얼굴을 확인하려 했다. 참가자 얼굴은 모두 프린터물의 리스트로 확인했다. 바로 이름과 연결이 되진 않을지도 모르나 우선 확인해서 손해 볼 것은 없었다. 김에 자신이 제대로 다 기억하는지 확인하는 것도 좋았고.
그래, 내가 당신에게 요리를 대접하는 이유는 당신이 내게 요리값을 냈기 때문이다. 그뿐이다. 요리 재료와, 요리에 사용할 도구 정비료와, 요리 기술에 대한 인건비까지 모든 비용을 포함한 비용을 당신이 지불했기에 기 비용에 걸맞는 서비스를 제공할 뿐이다. 그렇지만, 기왕 대접하는 거라면 좋은 요리를 대접하고 싶다.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더 기분좋은 대접이 되었으면 좋겠다. 기왕인 거 싱싱한 제철 재료를 쓰고 싶다. 더 훌륭한 솜씨로 요리해주고 싶다. 내 요리가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더 맛있었으면 좋겠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제대로 정신이 박힌 요리사라면 누구나 그런 마음을 갖고 있어요. 여름이고 겨울이고 뜨거운 불을 끼고 날카로운 날붙이와 무거운 쇠붙이들과 씨름하는 전쟁같은 주방에서 성질머리가 아무리 더러워져도, 그럴수록 오히려 확고해지고 빛이 나게 되는 어떤 정신이 있다고요. 만족스럽게 접시를 비우는 손님의 모습을 보면, 이해타산이니 푸드코스트니 하는 것 따위는 머릿속에서 지워지게 만드는 그런 흡족한 뿌듯함이요. 어쩌면 그것을 손맛이라 일컬어도 되지 않을까요.
내 동생은 그런 정신을 잃어버렸어요.
그러니 기계가 만든 것처럼 느낄 수밖에. 그 머리와 혀와 손으로 레시피를 초 단위, 그램 단위, 밀리미터 단위까지 완전히 따라할 수 있지만, 그저 따라하는 것뿐이라고요.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그런 놈이 되어있더라는 겁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그런데 왜 걔를... 친인척 편파기용한다 같은 소리를 들어가면서 그녀석과 같이 요리의 길을 걸었냐고요? 분명히 있었단 말이에요. 그 녀석에게도, 그런 정신이.
나는 아직도 그 녀석이 해준 순두부찌개 맛을 기억해요. 어머니가 해주던 그것과 똑같던 그 맛을. 그런 요리를 할 수 있는 놈이었는데.
그녀의 걸음은 샌들을 끌지는 않지만 길에 발자국을 찍기라도 하는 것처럼 느렸다. 빈 손을 늘어뜨리고 재활이라도 하는 것처럼 걷는 모습은 인파 속이었다면 금방 묻혀서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여기는 그만한 사람이 없으니 덩그러니 혼자 걷는게 눈에 띄었겠지만.
느리게 걸어도 늘어뜨린 빈 손에 흐르는 공기가 미지근하게 느껴진다. 여름의 정점을 찍은 요즈음은 낮밤 가리지 않고 후덥지근하다. 그런 날씨인데도 그녀는 민소매 원피스 위에 얇은 가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긴 소매가 손등을 덮을 만큼 길게 내려온 하얀 가디건이다. 가디건 소매 속 손이 조금씩 움직이다가, 다가오는 발소리와 인사하는 목소리에 가벼이 쥐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소리없이 멈춰서 그녀를 부른 사람을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몇 초, 였다. 그녀의 눈이 상대를 주시하고 답하는 인사가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상대를 향한 어떤 흥미나 관심도 없는 눈은 그저 무심하게 새카맣다. 그 눈을 두어번 깜빡이고 말을 잇는다.
"화살표 참가자라면, 맞긴 한데요."
애석하게도 그녀는 다름 참가자에 대한 프린트물을 보지 않았다. 기본적인 룰에 대한 것만 훑어보고 짐과 함께 방에 던져두고 나왔다. 빈 손인 만큼 핸드폰도 없어서 그녀가 상대를 같은 참가자라고 판단할 근거가 없었다. 대신 그녀는 비슷한 대화는 해보았기 때문에 다른 말은 할 수 있었다.
"관계자신가요? 저, 잠깐 산책 나온거지, 가려는 건 아니에요."
첫 날 외출을 하면 안 된다는 룰은 없었던 걸로 기억하니까. 혹시 그녀가 떠나려는 줄 알고 확인하러 나온 스태프인가 라는게 그녀의 판단이었다. 그러니 산책을 할 뿐이라고 말하고 멈췄던 걸음을 돌려 다시 앞으로 걸어가려 했다.
참가자가 맞단다. 그럼 그녀의 이름은 무엇인가. 얼굴은 자신이 본 프린터물에 분명히 있었다. 그렇기에 스태프가 자신을 속이기 위해서 연기를 하는 몰래카메라가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물론 이 여성이 이미 섭외가 되었고 뭔가를 꾸미지 말라는 법은 없었으나 그렇게까지 매사를 의심해서 뭣하겠는가. 이름이 영 떠오르지 않는지 그는 가만히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뭔가를 암기하는 것은 카페 일을 하면서 상당히 익숙해졋다고 생각했으나 사진으로 한 번만 가볍게 본 이를 바로 매칭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렇기에 그는 표정을 아주 살짝 찌푸렸으나 이내 표정을 풀었다.
"관계자라면 관계자이긴 한데 스태프는 아니에요. 당신과 똑같은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이죠. 그러니까 참가자. 그리고 저도 산책 중이고요."
프린터물을 확인했지만 다 까먹었거나, 아직 확인하지 않았거나. 어차피 좋건 싫건 여기서 지내면 자연히 얼굴도 그렇고 이름도 익혀지겠지. 그렇게 생각을 하나 바로 자신의 소개를 할 지의 여부는 그는 조금 생각했다. 사실 바로 소개를 해도 상관없긴 하지만 바로 자신의 이름을 대진 않으며 그는 그녀의 옆자리보다 조금 더 떨어진 곳에서 나란히 걸었다. 가는 길목이 비슷하다면 굳이 떨어져서 가야할 일은 없었다. 자신이 뭔가 찔리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오해? 어차피 그런 프로그램이지 않던가. 지금은 이 순간을 즐기려는 듯 그는 가볍게 말을 이었다.
"분명히 얼굴을 보니까 프린터물에서 본 기억이 나네요. 이름이 바로 매칭이 안되니까 나중에 돌아가면 다시 봐야겠네요. 아무튼 반가워요. 같은 참가자끼리 사이좋게 지내요. 사이좋게."
물론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기본적인 예절은 챙기면서 그는 그녀가 어떤 이일지를 나름 분석하려는 듯 눈을 깜빡이면서 그녀를 바라봤다. 꽤 마른 것으로 보아 소식을 하거나, 혹은 그냥 체질이 그렇거나. 일단 프로그램에서 만난 사람인데 흥미와 관심이 없는 것을 보면 이 프로그램 자체에 그다지 흥미가 없다거나.
그녀가 대답하자 눈 앞의 상대는 머리를 톡톡 두드리더니 표정이 약간 찡그려졌다. 뭐 잘못되었나. 생각하던 찰나, 그의 빠른 정정으로 그가 스태프인가 했던 그녀의 착각은 금방 풀렸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태도가 달라지진 않았다. 스태프라 해도 용건 외의 대화는 하지 않을 건데, 같은 참가자라고 무슨 말을 더 할까. 그녀의 눈이 한번 더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게 하는 정도가 반응의 끝이었다.
"그렇군요."
할 말은 없지만 주절주절 떠드는 그에게 예의상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아서 꺼낸 건 지극히 형식적인 한마디였다. 관심은 없지만 그의 말을 무시한 건 아니라는 필요 최소한의 한마디. 그마저도 꺼내지 않을 때가 더 많았지만 그가 그걸 알 리가 없겠지. 그렇게 대답해놓고 그녀는 다시 걷기 시작했고, 약간 거리를 두고 그도 걷는 기척을 알 수 있었다.
다시 걸으며 그녀는 좀전처럼 손을 편하게 풀지 않고 쥔 채로 가디건 소매의 끝을 만지작거렸다. 보들한 원단의 재질은 혹시나 있었을지 모를 부정적인 감정을 가라앉히는데 효과적이다. 차라리 손을 모아 잡을까, 하고 생각을 흘려보내던 그녀에게 그의 말이 들렸다. 다시 멈추거나 돌아보진 않았지만 그녀의 눈이 힐끔, 옆을 보고 다시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돌아가면 프린트물을 다시 들여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라는 건 하겠지만, 친하게 지낼 생각은 없어요."
그녀는 앞서 했던 대답과 비슷한 어조로 그의 말에 답했다. 그러려고 나온게 아니니까. 프로그램에서 시키는 건 할 것이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의 목표를 위해서다. 새로운 인연을 만든다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이미 놓은 인연을 다시 잡는 것도-
"아뇨."
프로그램에 나오는 걸 고민했느냐. 그 물음에 그녀의 대답은 칼같다. 잘 드는 날로 단번에 잘라낸 것처럼, 정말 아무 고민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청 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고민의 일부를 누군가에게 맡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용할 가치가 있는 걸 고민할 필요는 없죠."
그러니 그런 사무적인 말을 아무렇지 않게 담담히 할 수 있었을 거다. 이용하는 것에 상대가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말이다. 그녀는 필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으며 그저 계속 걸었다.
딱 잘라서 친하게 지낼 마음이 없다. 그 말을 나름대로 또 분석하며 그는 미소를 지었다. 딱히 새롭게 인연을 만드는 것으로 친해질 필요가 있는가. 이 프로그램의 특성상 사실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조금 힘들지도 모를 일이었으나 그럼에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면 그러는 것이 이득이었다. 정말로 사적인 이유로 들어가자면 이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고 조금 이후에 공사가 끝날 제 카페의 손님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는거고. 그녀가 무슨 목적이 있듯, 그에게도 목적은 있었다.
허나 그것을 표현하는 일 없이 그는 태연하게 옆자리, 정확히는 조금 떨어진 그 자리를 지키며 근처 길을 가만히 바라보며 걸었다. 가로수는 되게 잘 되어있네. 밤에 불이라도 들어오면 되게 예쁘겠다고 생각하며 오늘 밤이 찾아오면 또 산책겸 찾아와야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김에 누군가가 있으면 좋은 것이고 없으면 없는대로 카페 인테리어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으니 손해 볼 것은 없었다.
아무튼 칼같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을 고민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그녀의 말에 그는 그것만큼은 의외라는 듯이 눈을 깜빡였다. 이용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 그렇다면 그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을 물으면 대답해줄까? 아주 개인적인 호기심이 살짝 들어왔고 그는 잠시 고민하다 태연하게 물었다.
"비밀로 해준다면 무슨 목적으로 이걸 이용하겠다는건지 답해줄래요?"
허나 이러면 불공평한가. 조건이. 태연하게 웃음짓던 그는 가만히 생각을 하다 그녀에게 말을 다시 이어나갔다.
"손해보는 것 같다고 생각된다면 저도 질문에 하나 정도는 답해줄 수 있는데. 뭐,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궁금해서."
다시 말해,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꼭 답해야 하는 물음이 아니라 그냥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물은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사실 그렇게 막 머리가 엄청 뛰어난 애는 아니기도 해서 예상이 항상 맞는 것도 아닌걸요. 그래도 완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거나 나름 계획을 머릿속으로 짜고 행동하는데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거나.. 아마 만화에서 보이는 머리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그런 연출같은 장면이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왜 사람들은 말을 곧이 곧대로 알아들질 않는 걸까. 그녀가 남들과 교류가 어려운 부분 중 하나였다. 아무런 의도도, 의미도 없는 말을, 왜 멋대로 해석하고 의미부여를 하는 걸까. 그렇게 해놓고 그 해석을 왜 강요하려 하는 걸까. 실제로 그는 두고 봐야 할 일이라고 한마디 했을 뿐이지만 그 한마디가 그녀의 과거 숱한 대화- 영양가 없는 대화들을 떠올리게 해 벌써부터 피곤해지려 했다. 그렇다고 돌아서 가자니 그와 정면으로 마주치는게 싫어, 그저 계속 앞으로 갈 수 밖에 없었지만.
길은 정돈이 잘 되어있고 가로수도 잘 다듬어져서 경관을 보기 좋았으나 그녀의 시선은 약간 아래로 기울어 나아가는 길만 보고 있었다. 시야 바깥으로 한번씩 그의 다리 혹은 신발의 끝이 보였다 말다, 하길래 일부러 반대쪽으로 눈을 조금 더 돌린다. 입을 꾹 닫고 걸어가는 그녀와 달리 그는 대화가 끊길새라 계속 말했다. 적당히 던진 대답을 꼬리 잡고, 재차 새로운 질문을 해온다. 차라리 대답하지 말 걸 그랬다. 그런 생각을 해도 이미 늦었다. 하. 그녀의 입술 사이로 희미한 한숨이 새었다. 한숨을 쉬며 고개를 옆으로 비뚜름히 기울이는 건 그녀의 오랜 버릇 중 하나였다. 심기가 좋지 않을 때 하는 일종의 신호였다.
"그런 걸 알려줘야 한다는 규정도 없었으니 말하지 않겠어요."
딱딱하게 나간 대답은 앞선 대답처럼 날카롭고, 또한 의미가 명확하다. 손익을 떠나 규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니 말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사표시. 규정. 정해진 룰. 프로그램이 제시하는 룰과 미션 외에는 같은 참가자 누구하고도 관여하지 않고 엮이지 않겠다고 그녀는 확실하게 말하고 있었다. 고개를 스윽 돌려 드러난 옆얼굴의 새카만 눈이 그를 바라보며 알겠냐고 알아듣고 몸 사리라고 덧붙이는 것 같다.
"어떤 관계든 인간관계를 추구하러 온 거라면 저는 제외하세요."
시선으론 부족하다 느꼈는지 다시 말로 또박또박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고, 그녀의 얼굴은 앞으로 향했다. 그래도 언뜻 보이는- 입을 다문 그녀의 얼굴은 그렇게 만들어진 인형처럼 차디 찬 표정이었다. 곧 흘러내린 머리카락에 의해 가려졌지만.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해서는 인간관계를 추구하러 온 것이 아니니까 마치 자신은 없는 사람처럼 대하라는 말에 은석은 일단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애초에 여기에 온 이상 그게 자기 마음대로 될까? 좋건 싫건 이 프로그램은 계속 누군가와 엮이고 묶이는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 않던가. 참여하는 것을 고민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강제로 참여한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와 엮이는 것은 싫고 교류조차 하지 않겠다고 하니 참으로 모순적인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조금 더 호기심을 가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녀에 대한 분석 또한 어느정도 마무리 짓고 있었다.
"그건 약속할 수 없네요. 프로그램이 프로그램이니까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다면 그거야 저도 그럴 생각이긴 한데, 아예 어떤 것도 하지 않겠다..라는 것을 여기서 약속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 것 같나요? 적어도 전 못할 것 같은데. 끝날 때까지 아. 여긴 이런 곳이구나. 하고 당신도 조금은 받아줘야 하지 않겠어요?"
자신도 여기에 함께 참여한 전 연인을 모른 척하고 모든 것을 다 할 순 없었고 일정한 거리를 지금 시기엔 어느 정도 유지할 생각이었다. 바로 옆이 아니라 조금 떨어져서 걷는 것도 그 표시였다. 정말로 다른 이에게 바로 접근할거라면 바로 옆을 차지했겠지. 자신과 그녀의 현재 물리적 거리 정도를 유지하며 그녀의 성향을 파악하려고 하던 은석은 일단 파악은 이 정도로 마치기로 마음 먹었다. 어차피 지금 상태에서는 더 파악하려고 해도 할 수 없었고, 다른 이들과 행동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발견할 수 있는 것도 분명히 있을테니까. 급하게 마음 먹을 것은 없었다. 어차피 이제 시작인걸.
"결론은 무슨 이유에서건 여기에 왔고 각자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목표하는 것도 다르겠지만 좋건 싫건 일정 기간 동안은 보고 지내는 사이인거고... 기왕 왔으니 그냥 즐길 건 즐기는게 좋잖아요? 솔직히 전 당신이 어떤 이인지도 궁금하고. 다른 이들도 어떤 이인지 궁금하고. 그러니까 제외는 약속 못해요."
자신도 그 부분은 양보 할 수 없다는 듯,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내칠 거면 내쳐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별 상관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면서 그는 쭈욱 기지개를 켰다.
"일단 오늘은 돌아다니다가 만났으니 인사차 말을 건 거고... 즐거운 산책 시간을 방해하고 싶진 않으니 이쯤에서 실례할게요. 즐겁게 산책 보내요."
적어도 오늘은 여기까지겠구나. 그렇게 느끼며 은석은 그렇게 인삿말을 보냈다. 일단 한 명은 만났고 다른 이들은 또 누가 있으려나. 산책 끝나고 다시 방에 돌아가서 프린터물을 보고 최대한 많은 정보를 기대하는 것이 좋겠거니 생각하며 그는 몇 걸음 빠르게 앞으로 걸어나갔다.
/답레와 함께 갱신을 할게요! 뭔가 상황적으로 지금은 더 교류가 가능할 것 같진 않으니 일단은 막레 비슷하게 쓰는 것으로.
간혹 페어를 미리 정해야 시트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는 것 같지만.. 애초에 페어는 선관 개념인거고 그냥 캐릭터를 짠 후에 아직 페어가 없는 분과 서로 조율해서 선관으로 페어를 짜도 괜찮아요. 전 연인 설정이라고 해도 어차피 미래에 이어지는게 확정인 것도 아니고 그냥 어디까지나 그런 설정으로 시작한다라는 것이니까요. 참고해주세요!
본격적인 시작이야 사실상 지금도 프로그램은 시작되었기에 막막 다른 이에게 다가가서 플러팅하고 그래도 괜찮은걸요. 물론 공식적으로 처음 만나는 것은 아마 이번주 토요일의 저녁 8시 경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때 있는 이들끼리 가볍게 서로를 알아가자는 느낌으로 진실게임 같은 것도 하고..
첫번째 미션은 어느 한 성별 쪽에서 첫인상이나 이 사람과 한번 데이트 해보고 싶다. 하는 이가 있으면 콕 찌르고 즉석에서 페어를 맞춰주고 둘이서 뭘 해도 좋으니까 그냥 시간 보내기 정도를 시킬거고.. 두번째 미션은 이제 반대 성별 쪽에서 이 사람과 데이트 해보고 싶다 하는 이를 고르는 그런 쪽으로 해볼까 싶어요
철저하게 연애프로그램이라는 것에 맞춰서, 하지만 선택받지 못할 수도 있고 반드시 좋은 미래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테마에 충실하려고 해요.
그렇구나~ 일단 진행을 따라가보면서 감을 익혀야겠네~ 두근두근거리는 걸. 아, 나도 호칭 부분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었는데 누나라는 호칭 좋지~ 처음에는 서로 존댓말 했다가 사귀고 난 이후로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호칭이 되었다거나. 아린이는 편하게 이름 부르고 말도 반말로 했을 것 같은데 은석이도 반말로 해도 괜찮고 존댓말로 해도 괜찮아~
아린주 쪽에서 크게 문제가 없다면 아마 이 스레 내에서 은석이가 아린이를 부를 땐 그냥 편하게 누나 누나 하는 느낌이 될 것 같아요. 처음에야 아마 아린주 말대로 존댓말을 쓰고 그랬을 것 같지만 사귀면서 천천히 호칭이 누나로 바뀌고... 그러다가 아마 어느 순간부터 반말투가 바뀌지 않았을까 싶네요. 물론 아린이가 은석이를 편하게 이름으로 부르고 반말을 쓰는 것은 얼마든지 오케이에요!
사실 말하면서 알고 있었다. 그녀가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그걸 곧이 곧대로 지켜줄 사람은 없으리란 걸. 그러니 그건 그녀 자신에게 하는 말에 가까웠다. 자신은 그러려고 온 거니 그걸 잊지 말라고. 그러니까 그가 뭐라고 말해도 상관없다. 그의 말이 그녀의 태도를 꼬집는 듯 해도 전혀, 찔리지 않았다.
"저는 저고, 당신은 당신이죠. 그거면 되지 않나요."
그리고 프로그램은 프로그램일 뿐. 지시에만 따르면 불이익은 없을 테니까 그녀는 그 최소한만 지킬 생각이다. 상대의 사정? 알 바 아니다. 여기가 어떤 곳이든 그녀는 그녀를 고수할 것이다. 최초의 목적, 그 하나의 달성만을 위해서.
"예."
실례하겠다는 그의 말을 짧게 대꾸하고 그녀는 걸음을 멈췄다. 그가 지나가는 걸 기다렸다가, 몸을 돌려 그와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계속 움켜쥐고 있던 손이 그제야 풀려 처음처럼 늘어진다. 돌아선 길은 다른 곳으로 향하는 길일지, 혹은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던가. 그와 반대면 어디든 상관없다. 그녀는 느릿하게 발을 움직였다. 정처없는 산책은 곧 끝날 것 같기도, 한동안 이어질 것도 같았다.
유리 궁정에 들이닥친 재앙이, 아무 말도 없이 메모 한 줄 하지 않고 그에게 차려진 저녁 정찬 코스를 완식하고 나서 남긴 감상은 그러했다.
재앙. 확실히 그는 요식업계에 있어 재앙이라 불리는 사람이다. 라파엘라 드 골. 프랑스의 뒷골목에서부터 자수성가한 세계적 스타 셰프로, 20세기의 파인 다이닝이 21세기로 넘어오는 교두보를 마련해 주었다고 평가받는, 요식업이라는 세계에 있어 가장 으뜸으로 꼽히는 위인이었다. 가장 위대한 요리사는 가장 위험한 평론가가 되었다. 요리를 그만두고 나서, 그 사람은 세계의 미식과 이름난 식당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남기는 평론 한 마디가 검이 되었다. 식당의 이름에 붙는 영광스러운 별이 그녀의 말 한 마디에 붙고 떨어졌으며, 식당이 몰락하고 흥성했다. 그런 라파엘라 드 골이 어느 날은 유리 궁정을 찾았다. 그리고 식사를 모두 마치고, 가장 먼저 꺼낸 한 마디가 그것이었다. 완벽해.
"완벽할 뿐이지만, 완벽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어. 이 접시들은 빈 채로 싱크대로 돌아갈 자격이 있어." "입맛에 맞으시다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한 명의 손님의 찬사에 답례하는 태도로, 강혁은 라파엘라 드 골에게 통역을 통해 인사를 전했다.
"이 코스는 당신이 기획한 건가요?" "네, 맞습니다." "하나라도 빠졌으면 아쉬웠겠어요. 에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아주 주도면밀하고 똑똑하게 설계했네요. 이런 작위적인 설계에 대해서 그렇게 좋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작위적인 설계라고 해도 이런 예외적인 경지까지 다다랐다고 하면 예외적으로 인정해줘야겠지요." "이번 시즌에 오셔서 다행입니다. 매 시즌마다 최대한 고민해서 가장 자신있는 코스를 마련하지만, 이번 시즌의 코스는 특히 자신작이었으니까요." "특히- 메인 디쉬가 저를 놀라게 했어요. 이 소스를 발라서 구운 양고기요. 이런 종류의 소스가 타는 온도와 양고기가 익는 속도를 감안하면, 소스를 태우지 않고도 양고기를 완벽히 익히는 것은 묘기에 가까웠을 텐데. 불의 온도와 팬의 온도를 본인의 손발처럼 다룰 수 있는 이만이 이렇게 구워낼 수 있는데 대단하군요. 강혁 셰프가 직접 요리한 건가요?" "아닙니다. 제 주방에서 가장 솜씨좋은 요리사 중 한 명입니다." "그를 만나보는 것은-"
라파엘라 드 골은 말을 잠깐 멈추고, 식당을 둘러본다.
"-아, 아쉽게도 그럴 수는 없겠네요. 지금 주방이 매우 바빠 보이니까요." "원하신다면 데려오겠습니다. 프로틴 파트에서 일하는 것이 그 혼자는 아니니까요." "그럴 수는 없지요. 그의 예술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아요."
유리 궁정에 있어 어쩌면 재앙이었을지도 모를 거물은, 자신의 앞에 바쳐진 공물에 만족했는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냅킨으로 입가를 닦았다.
"다음 시즌에도 또 찾아오고 싶군요. 아마 동아시아에 출장올 일이 있다면, 여기가 한 번 떠오를 것 같아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거물은 여느 손님과 다름없이 떠나갔다. 시녀처럼 따라와서 궤적처럼 사라져 간 외신 기자들이 유리 궁정에 내려진 라파엘라 드 골의 시험에 대한 결과를 하늘에 은하수를 수놓듯 지면에 기사로 수놓으리라. 유리 궁정의 세 개의 미슐랭 스타를 보전하는 것은 따놓은 당상이고, 그 자리에 좀더 튼튼히 고정될 것이 분명했다. 강혁은 이마를 닦았다. 오늘 클로즈하고 나면, 이번 시즌을 기합 바짝 넣고 준비한 훌륭한 직원들에게 특식을 차려줘야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괜찮아."
수비드한 티본 스테이크를 시어링 토치로 지지면서, 강청이 마스크 너머로 한 대답이었다. 강혁은 이 자식 이럴 줄 알았다, 하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원래라면 이렇게 한 명을 콕 짚어서 찾아올 필요가 없었다. 주방의 전원에게 오늘 영업 종료 후에 파티를 열겠다고 전달하는 일은 간단하다. 주방에 대고 오늘은 모두 고생했으니 영업 종료하고 나서 특식 먹자고 하는 것만으로 그는 주방 전체가 예, 셰프 하고 대답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사유가 있어서 참석할 수 없는 이가 있다고 해도, 강혁에게 와서 말하는 것이 보통이지 강혁이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너 오늘 참석할 거냐, 하고 물어보는 일은 없었다.
그가 특별히 신경쓰는 한 명의 예외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의 동생, 강청.
부하 직원과 상사라는 관계에 있어서는 그는 예외 같은 것이 아니다. 예외가 될 수도 없다. 업무 능력이나 인사고과에 대해서는 다른 직원과 다름없이, 아니 어쩌면 다른 직원보다도 더 엄격히 평가한다. 수당, 성과급, 인센티브 계산에 있어서도 다른 직원에게 계산해주는 방법과 단돈 1원도 차이나지 않게 공정히 계산해 준다. 요컨대 철면무사다. 인사 문제나 수당 문제에 있어서 강혁과 강청은 보스와 부하였다. 그러나 이런 사적인 면으로 넘어가면, 결국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혈육인 강청에게 눈길 한 번이 더 가게 마련이다. 물론 강청이 사적 측면에서도 아무 이상 없이 잘 지내고 있었으면 눈길 한 번은 눈길 한 번으로 그치겠으되, 하나뿐인 동생이 몇 년 전부터인가 조금씩 사람의 색을 잃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가장 먼저 강혁의 눈에 띈 증상은 강청의 식사였다.
"왜. 속 안 좋냐? 어디 아픈 데 있거나?" "그런 건 아니야. 아무튼 내 몫은 신경쓰지 마. 나는 집에 가서 쉬어야겠으니까." "야, 그래도 오늘 MVP가 너인데, 파티에는 참석 안 하더라도 뭔가 좀 맛있는 걸 먹어야지. 이번 시즌은 오늘만 보고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포장해줄 테니까 집에서라도 먹어." "괜찮다니까." "이렇게라도 안 챙겨주면 너 또 그 시리얼이나 말아처먹을 거잖아."
강혁은 결국 성을 냈다.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혓바닥도 만족시킨 '삼색 소스를 발라 구운 양갈비 스테이크'를 완성해낸 요리사는, 어느 날부터인가 시리얼이나 칼로리바에 영양제 등의 성의없는 음식으로 식사를 일관하기 시작했다.
"내가 먹는 것에 한해서는, 뱃속에 집어넣으면 거기서 거기잖아. 시리얼이나 스테이크나."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것을 먹고자 어떤 희생도 불사하는 미식의 세계에 발을 디딘 요리사로서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말이 강청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의 형이기도 하지만 긍지높은 요리사이기도 한 강혁에게는 용납하기 힘든 말이었다. 그와 동시에, 스스로의 식사를 소홀히 하는 동생에게서 몇 차례고 들은 말이기도 했다. 강혁은 한숨을 푹 쉬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강청의 응답은 냉랭한 반항에 지나지 않았다.
"그게 요리사 입에서 나올 소리냐?" "요리사 입에서 나올 소리냐니. 왜. 내가 시리얼 말아처먹는다고 손님한테도 시리얼 내놓던?" "이게 그 문제가 아니잖아, 이 자식아..." "로즈마리 수비드 티본 하나 다 됐습니다."
로즈마리로 마리네이드해 수비드한 티본 스테이크 한 접시가 완벽히 완성되었다. 강청은 블로우토치를 끄며 딱 잘라 말했다.
"내 몫은 신경쓰지 마. 내 식사는 내가 알아서 하니까. 프로틴 파트는 별일 없을 테니까 가서 다른 파트를 케어하는 건 어때. 저번에 수프 파트에 들어온 신참이 아주 사고뭉치던데."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저쪽에 있는 수프 파트에서 무언가 와장창 엎질러지는 소리가 났다. 강혁은 이마를 팍 쳤다. 마침 오늘은 날도 날이겠다, 이 벽창호 동생을 설득해서 무언가 제대로 된 식사를 먹이려 했는데 오늘도 영 글러먹은 모양이다. 강혁은 수프 파트로 발걸음을 내뻗으면서도, 마지막 미련에 강청에게 한 마디 강요를 남겼다.
"네 몫은 마련해둘 테니 그렇게 알고, 영업종료했다고 바로 가지 말고 기다려." "필요없다니까."
강청의 대답대로다. 아무리 강요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강혁도 잘 안다. 영업종료 콜이 나오고 나면, 특식을 준비하는 사이에 강청은 또 유령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줄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다. 열병이 머리 끝까지 올라 죽어가는 환자를 상대로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없이 이마의 수건을 연신 갈아대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발은 수프 파트로 돌렸음에도, 마음은 감정적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동생이 짚여 강혁은 어쩔 줄을 몰랐다.
>>149 가급적 그런 상황이 없는 것이 최고이긴 한데 지금 와서 인원이 안 맞는다고 스레를 접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여캐 하나를 뺄 수도 없기 때문에 일단 한 주 간은 일단 전 연인이 있다는 가정하로 진행할 예정이고 후에 남캐 시트가 들어오면 그 남캐 시트를 덮어쓰기 할 생각이에요. 그럼에도 정말로 정 사람이 안 들어오면 제가 NPC 하나를 만들어서 투입할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150 아앗.. 아아앗. 일단 차후 점점 나아지는 것을 보는 것도 포인트겠네요. 동시에 청이가 다른 캐릭터들과 어떻게 엮이는지 보는 것도!
>>160 >>162 은석이의 이상형이요? 은석이는 자신과 대등하게 같은 눈높이에서 있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이상형이에요. 외모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조금 부수적인거고. 역시 가장 좋아하는 이상형은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자신과 대등하게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이상형일 것 같네요. 가까운 사람은 있을지도요?
>>161 인터뷰 후에 써주는 그런 방식이에요. 기타의 모든 내용이 다 전달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이건 인터뷰 내용으로 나올만하다 싶은 것은 프린터물에도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가족 사정이라던가 좋아하는 것이라던가 그런 것들 있잖아요?
537 자캐는_누구와_벚꽃놀이를_가는가 ->현 시점에선 카페에서 같이 일하는 직원들과 볼 것 같네요. 하루 정도 쉬고 같이 벚꽃놀이 가자! 라는 느낌으로요. ->물론 그게 아니면 가족이나 친한 친구 정도? ->아마 이전에는 아린이와 보러 갔겠지만 그건 이미 과거 이야기.
419 자캐가_소설의_등장인물이라면_첫_대사는_무엇일까 ->"당신은 무슨 커피 좋아해요? 한 잔 끓여줄테니까 입맛에 맞으면 제 카페에 와서 단골되기. 콜? 이렇게 말해주는 잠정 잘 없는 거 알죠? 후훗."
112 자캐의_이상형 ->위에서도 말했지만 자신과 대등한 관계의 연애를 할 수 있는.. 그런 주관이 뚜렷하고 자신의 의견이 확실한 그런 이가 1순위. ->거기서 추가로 조금 더 말하자면 성실한 면이 있는 사람도 이상형의 조건이에요. ->그런데 다 그렇듯이 원래 이상형대로 연애하는 사람은 잘 없는 법입죠. 최은석, 이야기해주세요!
>>191 맞아~ 강할 때를 정확히 아는, 그 완급을 잘 조절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달까?? 그런 기분이 들 때도 있구, 어떻게 보면 너무 보편적인 이상형 같지만!!! >>192 ㅋㅋㅋㅋㅋㅋㅋㅋ 마지막에 사심이 담겨있는데요!!! 근데 나도 그런 사람 좋아해 ^ㅁ^... 흐어어, 진상을 겪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점이 안타깝기도 하구,
영월네 집안 얘기를 쪼금더 풀자면, 국내외로 이름 정도는 들어볼 법한 기업이고 회장은 조부, 아버지는 부회장, 어머니는 전업으로 집안 돌보시는 역할. 영월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건 첫째이자 오빠 설시현이며 둘째인 언니 설류월도 피아니스트로 같이 소속되어있어. 기업이나 남매들이나 사회에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름은 알고 있다- 정도? 일상 때 언급용으로 쓰면 좋을 듯 하지. 반응은... (보장못함)
- 타인의 행동 중 가장 싫어하는 행동 싫어하는 거 많지만... 하나 풀어보자면 허락 없이 자기 물건에 손대는 행동. 파손하거나 훔치는 건 다른 문제니까 여기선 논외. 허락 없이 물건(펜 등)을 빌리고 돌려놓는다 - 꺼려짐 허락 없이 개인적 기록(일기장 등)를 본다 - 극혐 허락 없이 방을 대청소한다 - 개극혐 허락 없이 ????? ?? - ???
- 연애경험이 없었다면 그 이유는 뭐였을까 고백을 다 거절해서(...)
- 어린 시절의 잘못 정말 존경하는 사람한텐 절하는거라고 배워서 엄마아빠한테 정말정말 존경한다면서 절 두번한거
>>286 이거 봐! 역시 풀어줬어! 아니. 그런데 허락없이 막 건들면 누구나 싫어하는 법이죠. 아무래도. 그 와중에 고백을 다 거절이라. 구월이와의 연애는 어떻게 이뤄지고 어떻게 헤어졌을지도 막 궁금해지네요. 그건 이제 두 분이 서로 이야기할 문제지만. ...절 두 번..(남 이야기 같지 않음)(어린 시절을 떠올리기)(식은 땀)
강 청: 115 지하철을 탔을 때 캐릭터의 앉아있는 모습은? 당연하다는 듯 가지런한 정좌 유리 궁정의 영업 스케줄이 어땠는가에 따라, 이따금 졸고 있는 경우도 있다 내년까지의 예약이 티켓팅되어 있는 레스토랑에서 근무하는 요리사 업무의 강도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280 사람을 판단하는 방식 거리를 둘 필요가 있는 사람인가, 애써 거리를 둘 필요도 없는 사람인가 여러모로 게임 쇼에는 부적합한, 이제 더 이상 누군가를 안에 들여놓을 공간이 없는 사람의 판단방식이다
062 선호하는 분위기는? 예전에는 어떤 분위기를 좋아했다던가 선호했다던가 하는 느낌도 있었던 것 같지만 이제 와서는, 유리 궁정의 템플릿처럼 소름끼치리만치 정돈된 분위기가 차라리 안심이 된다 그 정돈된 템플릿 한가운데에 자신 역시도 포함되어 있으니 이런 이에게는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위안이 될 수 있으리라
일단 이번주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비밀 메시지를 받지 않아요. 아직 캐릭터를 제대로 만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캐릭터가 어떤 이인지 파악한 것도 아닐테니까요.
일단 토요일 저녁 8시에는 처음으로 단체 소집 모임이 있고 거기서 그냥 가볍게 서로를 제대로 알아가라는 느낌으로 진실게임을 할 예정이에요. 어찌되었건 모두 진실로만 대답하는 식으로. 연애 프로그램이니까 연애에 대한 질문을 마구 날려도 좋을테고... 혹은 살짝 견제를 위한 질문이 나올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만인의 앞에서 망신을 주려고 하는 그런 것은 하면 안되지만요.
일단 1번째 미션은 첫인상이 가장 좋은 이 혹은 데이트를 하고 싶은 이를 직접 지목해서 실제로 짧게나마 데이트를 하는 거예요. 다만 어느 한 특정 성별의 캐릭터들만 지목을 할 수 있어요. 이를테면 여캐들이 남캐를 고른다거나, 남캐가 여캐를 고른다거나. 그리고 2주째는 반대 성별이 지목하는 것으로. 일단은 그렇게 생각중이에요.
267 현재_자캐의_삶의_이유_중_가장_큰_부분을_차지하고_있는_것은 "...어머니께서 그러시더군요." "당신의 몫까지 대신 살아간다고 생각하라고. 그러면 당신께서는 나를 통해서 계속 살아가는 거라고." "그러니 나는 살아갑니다. 이런 인생이나마, 고개를 들고." "이것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니까요. 그것만은 잊지 않습니다."
99 자캐에게_이능력이_생긴다면_어떤_능력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는 수납함이 하나 생기면 좋겠습니다." "연식이 좀 된 장르 문학에서는 아공간 수납함이니 뭐니 하는 편리한 게 나오곤 하지요." "식자재라는 놈들은 무겁지 않은 놈이 없으니까요."
444 자캐가_어린_시절_상상했던_미래와_실제_자란_자캐의_삶은_얼마나_다른가 "적어도 당시에 제가 생각하던 것보단 희망찬 미래에 도착했다고 생각합니다." "도박에 눈이 먼 인간에게, 자식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인식되는가... 말을 아끼도록 하지요. 꽤 무거운 이야기가 되어버리니."
강청: 266 식물을 잘 기르나요? "바질 같은 허브류는 실제로 식당 내 수경재배실에서 길러서 쓰곤 합니다." "생각해보니 기계가 길러주는 것이라 내가 기른다고는 할 수 없겠네요. 이런." "음식과 관계되지 않은 식물이라면, 모르겠군요. 시간을 맞추는 것은 잘 합니다만, 레스토랑 업무와 병행하면서 때를 맞춰 물을 주거나 분갈이를 해주거나 할 수 있는지는 별개 문제니까요."
257 좋아하는 것을 포기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흐음." "저는 포기당한 쪽입니다만." "일방적으로." (뒤끝)
300 돈을 빌려야한다면 누구에게 빌릴까요? "음..." "은행이 아닐까요. 나름대로 신용등급은 괜찮다고 자부합니다." "형님께 말을 꺼내면,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 되어버리니까요. 오지랖이 워낙 넓은 사람이라." "제가 이런 말 했다고는 형님에게 말하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하는 일이 아니었으면? 글쎄... 고민되네. 감이 잘 안 잡혀. 상상가는 게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말 그대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을 것 같아. 완전 이과 쪽 전문직 같은 것만 아니면 적당히 다른 일을 찾았겠지? 아예 소설업계에 일찍 등단했을 수도 있고, 다른 언어를 배웠을 수도 있고, 도서관 사서일 수도 있겠고, 마케팅이나 디자인 쪽으로 취업했을 수도 있고, 공무원 시험 준비해서 합격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연예계...는 응 이것도 가능성 없어 보인다. 암튼 이것저것 있어. 공연연출이나 영화업? 의외로 괜찮을지도...
아. 맞아. 이거 혹시나 해서 정말로 혹시나 해서 말하는건데 이 스레의 성격상 캐리터가 특정 캐릭터에게 간접적으로 호감을 표하거나 뭐 그런거야 얼마든지 자유인데 내가 먼저 호감 표했고 스킨십 했으니까 내 꺼 아니야? 식으로 오너적으로 다른 분들 접근하지 마요. 이런 것은 좀 곤란해요.
반대로 전연인 캐릭터라고 해서 막 선점권이 있다거나 우선권이 있다거나 그런 것은 없어요.
물론 이런거야 다 지켜줄거라고 믿는데 상판에서 보면 가끔 이런 규정 없었는데 왜요? 이렇게 말하는 분이 없는 것은 또 아니어서 혹시나 모를 작은 불씨를 끈다는 느낌으로 올려놓을게요.
다른 참가자들과 같이 요리를 해서 먹을 수도 있겠고 근처에 식당이 있으니까 거기서 먹어도 되겠고 혹은 일단 프로그램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식사도 있어요. 그 부분은 자유롭게 하면 해주세요! 각자의 방의 세탁이나 청소는 개인이 하는 것으로 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방에 들어가서 멋대로 세탁을 한다거나 청소를 하면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니까요. 도난 사고라도 벌어지면...(말잇못)
>>401 먼지...구덩이... (흐릿) 그래도 청소기 정도는 돌릴 줄 알.. 알지...?
영월 : (기업가 집안 막내딸)(가정부 상시대기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적당히 할 줄 아는 걸로- 아 식사는 기본적으로 맞는게 없어. 그러니 그냥 있는대로 먹는거야. 무엇보다 자기가 신청해서 나와놓고 안먹어서 쓰러지거나 하면 주최측에 민폐잖아. 미션 중에도 파트너에게 패널티가 가면 안 되니까 먹으라면 먹긴 할거고. 그렇다고 해도 기본적으로는 에너지바나 견과류나 생식 같은 걸로 떼우겠네.
>>409 실제로도 좀 많이 어색하고 그럴거 같긴 해? ㅋㅋㅋ 음 아니지 아니지. 살기 위해 먹는 거지. 최소한의 영양과 칼로리만 섭취하는 걸로 일상 생활만 가능하면 된다- 가 주 스탠스니까. 물론 원래 생활에서는 소속사 대표(오빠)가 식단 다 짜놓고 매끼니마다 전화해서 먹으라고 시키니까 더 먹긴 해. 고기도 물론 있으면 먹고.
얘가... 누군가와 친해질 수 있을까요...? (흐으릿) 일단 참가 목적부터가... 크흠.
>>412 에어컨도 틀었구나- 하긴 나도 틀고 있지만. ㅋㅋ 오늘 보고 에어컨 없었으면 이 더위 어떻게 버텼을까 싶더라. 더위 식으면 저녁이나 간식이나 챙겨. 탈진 올라.
>>414 어색할수록 귀여운 법이지~!~! 연호주의 지론이라구~! 청소기 돌리는 영월이 창밖에서 몰래 지켜보고 싶어진다구~!~! ㅋㅋㅋㅋㅋ내가 거꾸로 썼구나... 살기 위해 먹는다고 쓰려고 했는데!! 단어 순서를 뒤바꿨더니 영월이가 푸드파이터가 됐어!!! 누군가 관리해주는 사람이 있어야만 하는 타입이구나.
응... 친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 저번 일상에서도 그렇고, 밀어내는 느낌이 있지만 그래도 두 달이나 되니까!!! 누군가와는 조금이나마 엮이게 되지 않을까?
아린의 짐은 꽤 많았다. 가장 대중적이고 인기가 많은 인형 하나와 시간이 남으면 작업할 수 있게 간단한 천과 도구들—캐리어 하나 정도 분량이다—을 챙겨왔다. 나름 이 프로그램의 참가하면서 계획도 있었기 때문에 제 옷가지들도 잔뜩 챙겨와 그것도 캐리어 하나 정도 되었고. 그 외에는 챙기지 않았는데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차라리 구매를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다행히 여기까지 오는 것부터 숙소 안에 들어오는 것 까지 스테프들이 짐을 들어주어 그렇게 고생하지는 않았지만…. 당분간 지내야 할 숙소에 짐을 푸는 것은 본인의 일이었다. 꽤나 꼼꼼하고 정리된 것을 좋아하는 편이기에 캐리어를 풀어 옷장에 옷을 가지런히 넣어두고 소품을 정리하고 가지고 온 도구들을 적절히 책상 위에 정리한 뒤에야 아린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아린이 방 밖으로 나온 것은 그 다음이었다. 방 정리가 다 되었으니 이제 주변을 산책하면서 지리를 익혀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옷은 흰색의 길게 내려온 레이스 목깃에 허리를 잡아주고 아랫단은 A라인으로 내려오는 푸른색 원피스를 입고 귀여운 느낌의 짙은 남색의 구두를 신었다. 머리에는 흰색의 리본이 보이는 머리밴드가 구불구불 내려오는 머리카락 사이에서 존재감을 나타냈다. 원피스의 푸른 천은 패턴없이 단정한 느낌이었으나 허리 아래로 잡힌 주름이 하늘거려 화려해보였다.
아린은 주최측에서 마련해준 프로필도 틈틈히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손에 든 채였다. 늘 가지고 다니는 동그란 형태의 크로스백도 꼭 매고 있는 상태였다. 방 문을 열고 빼꼼 고개를 내민 아린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짧은 다리로 종종거리며 복도를 거닐었다.
그러던 중 보이는 자판기 끄트머리 같은 게 보여 아린은 속으로 좋아하며 그 쪽으로 발길을 향했다. 방 정리를 하느라 몰랐는데 갈증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발걸음을 향한 곳에는 먼저 선객이 있었다. 스태프인가? 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다른 느낌이었기에 아린은 손에 들고 있었던 프로필을 컨닝하듯 얼른 확인하였다.
저 인디 핑크의 머리카락을 가진 이는 참가자 중 한 명 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아린은 먼저 그 남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어차피 두 달 동안 같이 지내야 할 사람이었다. 안면을 익혀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아린을 움직이게 한 것은 호기심이었다.
방을 살펴보고, 짐에게 제자리를 찾아주고, 의자에 앉아 혼자서 가만히 이 이별이라는 (그리고 어쩌면 새로운 시작이 될지도 모르는) 새로운 상황을 받아들이기란, 결코 쉽지 않았지만 해냈다. 그렇게, 어떻게든 해냈다. 그에 비하면 낯선 공간에서 방문을 열고 나오기란 전혀 요만큼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연호는 실외파--라고 말하기엔 어폐가 있었지만 실외에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타입이었다. 그러다 마주친 것은 복도 끝의 자판기--
자판기와 눈을 맞추며 연호는 제법 오랜 시간을 어영부영 흘려보냈다. 가만히 있기는 못 견디겠어서 떠밀리듯 나오긴 했는데, 그만큼 딱 눈에 들어오는 음료도 없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이 없다란 이런 의미였던가. 음료를 고르지 않고 지나가는 선택지도 있었건만, 결국 연호가 택한 것은 갈증을 해소시켜준다는 배 음료였다.
기계가 둔탁하게 음료수를 떨어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몸을 숙이려 했을 때, 거기에 구두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드니-- 거기에는 앳된 얼굴의 여인이 있다.
"안녕하세요~"
학부모를 대하듯 자연스럽게 얼굴의 중앙부터 언저리로 퍼져나가는 서비스류의 웃음.
"음료수 마시러 왔어요?"
어느새 자판기에서 꺼낸 음료수를 따면서 연호가 말했다. 그러면서도 눈은 바쁘게 상대를 훑는다. 인형같은 옷차림, 이런 참가자가 분명 있었던 것은 기억나는데 이름이--
선율이는 음식을 가리는가?<<음식을 가리는 게 아님... 퀄리티를 좀 가리는 거임 같은 생선구이라도 대충 구워서 사방에 비린내 나고 가시투성이고 퍽퍽하고 이런 건 잘 안 먹는데... 실력있는 누군가가 좋은 재료로 맛있게 구워 주면 먹음 즉 비싸고 좋은 건 귀신같이 알아봄 (...)
>>425는 비단 음식이나 물건뿐만 아니라 예술 서비스 등등도 포함 잘 그린 그림(눈에 잘 들어오는 색감, 세밀한 디테일 묘사, 역동적인 동세 등)을 알아보거나 아름다운 음악 혹은 좋은 공연을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다...는 설정이 있어. 물론 어느 정도 이상부터는 컨텐츠의 퀄리티 문제가 아니라 취향 차이겠지만, 비단 이런 상황만이 아니라도... 중학교 댄스동아리 공연 영상을 보고 가장 잘 추는 사람을 알아본 뒤 쟤는 댄서 해도 대성하겠다 하는 얘기를 한다든가.
>>441-442 그리고 반대로 연호나 다른 이들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이죠! 아무튼 후자의 질문은 누군가는 꼭 물을 것 같기도 하고... 물론 은석이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저기서 한 단계 더 발전한 질문을 던질지도 모르지만 그건 내일 상황을 지켜보고 정하는 것으로 할래요!
>>445 혹시 모르지요! 잔잔했던 프로그램에 한 방울 파장을 살짝 섞어놓고 자신은 슬쩍 뒤로 빠진 후에 어떻게 하는가 지켜보고 있을지도요. 원래 그런 것이 MPC의 역할 같은 것이잖아요? 라고 우겨보겠어요! 라고 말은 하지만 정작 은석주가 겁이 많아서 아무 것도 안 할 수도 있는 거니까 결론은 기대를 하기에 배신을 당한다라는 뭐 그런 말이 있다는 것이에요!
아린은 얼떨결에 몸을 숙인 연호 때문에 시선이 자연히 인디 핑크의 머리카락으로 향했다. 전문가의 눈—아니다—으로 염색모인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본래의 머리색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결이 상하지 않게 물든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아린은 색을 좋아했다. 어떤 한 색을 좋아하는 것이 아닌 여러 색들을 좋아했다. 호불호 없이 여러 색감을 만지고 조합하는 것이 직업적으로도 취향적으로도 꽤 좋아하는 것이었다. 은석을 만나고서는 고풍스럽고 무게감 있는 검은색에 흠뻑 빠졌던 적도 있었다. 그의 이름을 듣고 은빛으로 빛나는 돌맹이를 생각하곤 했다는 말은 은석에게 하지는 않았지만. 헤어진 지금도 가끔 생각났다.
“…머리 색이 참 예쁘네요.”
하고 무의식 중에 말을 꺼냈다가 아린은 아차 싶은 마음에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눈을 깜빡였다. 방금 상대방이 뭐라고 물었더라.
“아, 네. 갈증이 나서요.”
아린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뻔뻔하게 음료를 고르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동그란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지폐를 넣고 자판기에 있는 음료들을 눈으로 훑다가 푸른색의 이온음료 한 캔을 뽑았다. 덜컹, 하고 나오는 음료를 꺼내고 캔을 따는 데까지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아린은 한 모금을 마신 뒤 다시금 연호를 올려다봤다.
“정연호 씨 맞으시죠?”
아린은 눈을 깜빡깜빡거리며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자신을 소개해야 한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뒤늦게 말을 이었다.
아린은 돌아오는 칭찬에 눈을 깜빡이고는 답하지는 않았다. 칭찬하는 말에 반응하는 법을 잘 모르는 것처럼. 연호의 미소가 참 예쁘다고 잠시 생각했을 뿐이었다. 본래의 색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들은 뭔가….
‘은석이 같네.’
어린이집 교사라고 했던가. 누군가에게 친절한 말을 건네는 것이 익숙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서비스업을 하는 사람들은 다 비슷한 것일까? 아린은 연호의 이름을 읊으면서 연한 호수빛을 떠올렸다. 하늘이 까맣게 물들면 그 색도 까만 색을 띄고 하늘이 푸른 빛을 띄면 푸른색을 띄고. 지금은 노을져 분홍색이 물들었지만. 은석의 은빛도 무언가를 비추는 색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두 사람이 비슷한 것도 그새 납득해버린다.
“네에. 어린이집에도 인형들이 많을 것 같은데….”
아린은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말했다. 어린이집에 있는 인형들을 상상해보면…. 동물 인형이 많지 않을까? 그 중에는 토끼나 곰인형들이 옷을 입고 있을지도 모른다. 상상속의 토끼는 붉은색 원피스를 입고 있고 곰돌이는 남색의 넥타이를 맨 정장차림이었다.
은석은 기숙사는 물론이요, 근처에 있는 시설을 하루를 꼬박 투자해서 돌아봤고 이 곳은 정말 무서울 정도로 '연애'라는 것에 특화된 장소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기숙사는 바로 방 밖으로 나가면 이성의 방이 있었기에 다른 이성과 접촉하는 것이 너무나 쉬웠으며 낮이나 저녁에 남들의 시선을 아주 살짝 피하면 방 안에서 조용히 만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어쩌면 전 연인과 지금 방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 자신은 어쩌는게 좋을까. 자신의 방 맞은 편을 쓰고 있을 아린의 방을 두들겨볼까 마음은 가졌으나 은석은 굳이 지금은 두들기지 않고 자신의 방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아있는 것을 고수했다.
가지고 온 짐 중에는 자신이 카페에서 사용하는 원두도 있었다. 오늘따라 아메리카노가 왜 이리 끌리는지. 저녁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아메리카노를 가볍게 끓여내니 카페 안보다는 그 풍미가 덜했다. 당연한 일일까. 환경이 다르고 사용하는 기기가 달랐으니까. 물론 원리는 똑같을테니 사용방법에 실수를 할 일은 없었으나 좀 더 손에 익는 기기가 있는 법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카페에서 쓰는 기기를 하나 가지고 올 걸 그랬나. 후회를 살짝 하지만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평소 자신이 끓이는 커피의 맛 그대로를 즐기고 싶다고 이제 와서 커피 기기를 가지고 오겠다고 하는 것도 되게 이상하지 않은가.
'대충 이제 이름과 얼굴도 매칭이 되었고.. 남은 것은...'
일전 영월의 모습을 보았으나 바로 이름을 매칭하지 못한 것이 조금 분했는지 은석은 이후 프린터물로 제공된 프로필을 정말로 꼼꼼하게 읽으며 얼굴과 이름을 제대로 머릿속으로 매칭했고 기억하면 좋을 것을 모조리 기억했다. 물론 100% 전부 다 말하라고 하면 그건 어려웠으나 대략적인 사실 정도는 이제 망설이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필요할 때마다 프린터물을 보거나, 혹은 사진으로 찍은 후에 한번씩 확인하는 것도 괜찮을지도 모르나 그렇게 하면 상대에게 자신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다는 인상을 주기 딱 좋지 않겠는가. 어찌 되었건 이건 연애 프로그램이었고 자신은 중간에 결정을 지어야만 했다. 제 연인인 아린과 다시 합쳐지는 것을 생각할지. 아니면 경쟁에 참여해서 자신의 마음을 잡을 새로운 이와 새로운 스타트를 시작할지. 아니면 그런 것을 다 포기하고 그냥 카페나 적당히 홍보해서 카페의 단골을 늘릴지.
'당장 정해야 할 것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괜히 고민만 되네.'
방금 낸 아메리카노를 그는 한 입 머금었다. 역시 평소보다 조금 쓰게 느껴졌다. 아직 기기가 손에 익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피곤 혹은 마음 속의 망설임 및 미련으로 인해 제조법이 살짝 흐트려졌는가. 그것을 판단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내일이나 그 다음 날. 다시 똑같이 끓여서 확인해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조금 더 쓴 느낌이 있다고는 하나 먹지 못할 커피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근처의 어설픈 카페들보다 훨씬 더 맛과 향이 좋다고 그는 자부할 수 있었다. 미소를 작게 지으며 그는 커피를 다시 입에 담았다.
'아린 누나는 어쩌려고 할까. 경우에 따라서는 아린 누나를 원하는 이도 있을테고.'
혹은 그녀가 다른 누군가를 마음 속에 품고 다가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차피 자신은 이미 전 남자친구일 뿐이고 이제 와서 그런 것을 간섭할 생각은 없었으며 간섭 받을 마음도 없었다. 현 연인도 아니고 전 연인이 그래봐야 구질구질하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아직 그는 자신의 마음에 제대로 확신을 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멋대로 감정적으로 나가봐야 손해면 손해지. 절대로 이득이 될 순 없었다. 무엇보다 어설픈 마음으로 행동하게 되면 아린에게도 큰 피해가 되지 않겠는가. 자신에게도 그녀에게도 마이너스면 마이너스지. 절대로 플러스가 될 수 없었기에 그는 그것만큼은 회피할 생각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나 역시도 어느 순간 아린 누나 대신 다른 이를 품게 될지도 모르는거고.'
쓴 웃음소리가 절로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명확하게 마음을 정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자신은 이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아니면 다시 합쳐질 수 있는 가능성을 믿고 여기로 왔는가.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아직 그는 내릴 수 없었다. 여기에 참가하게 될 이들과 접촉하고 이것저것을 보면 자연히 자신의 마음도 정해지게 될까. 그런 고민을 살짝 입에 머금으며 아메리카노를 반참 삼아 그는 그 많은 것을 꿀꺽 목구멍 속으로 삼켰다.
'일단은 어떻게 될 지 조금 지켜볼까. 결론을 내리기에는 너무 빨라.'
이제 시작이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다짐했다. 자신의 현 마음을 확실하게 규정하고 그에 따라서 행동하겠다고. 제 전 연인과 합쳐지고 싶다면 다시 스며들려고 할 것이고 마음에 드는 이가 생긴다면 그 상대의 마음을 홀리리라. 그러니까 우선 마음부터 확실하게 정하자.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후회하지 않고 미소지어 카페를 홍보하고 나갈 수 있도록.
'그저 손가락만 빨다가 이도 저도 아닌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마추어나 하는 짓이야.'
조용한 결의 속, 아메리카노 향이 유난히 쓰다고 그는 느꼈다. 역시 기기가 손에 맞지 않은 탓이야.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그 쓴 빛깔 향을 가득 들이마셨다.
아린은 음료를 마시면서 연호의 이야기를 들었다.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했다. 어린 여자아이들이 인형들을 업고 논다는 것에 눈이 조금 반짝이기도 했다. 귀엽겠다. 어린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귀엽다. 어린아이와 놀아주는 것과는 별개로. 어린아이를 놀아주는 것은 아린에게는 너무나 무리인 이야기였지만. 어린아이를 대하는 것보다는 어른을 대하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한 일이다. 아이를 위한 옷을 짓는 것도 사실 참 좋아했다.
“보통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에 비싼 옷을 입히진 않으니까요. 사실 제 고객층은 인형을 좋아하는 어른들이라서요.”
하지만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에 예쁜 옷을 입혀줄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 보람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물론 주문제작하는 고급 천과 레이스가 들어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마 저렴한 원단과 레이스로 뚝딱뚝딱 미싱질하면 외우고 있는 패턴으로 금방 옷을 만들어낼 수 있을터였다.
아린은 아이들 때문에 너덜너덜 닳아버린다는 그 말에 작게 웃었다. 인형을 가지고 놀다가 찢어지거나 벗겨지는 일은 부지기수로 일어나지 않던가. 아이들을 위한 인형이란 원래 그럴 용도로 만드는 것이기에 맘아플 일도 없고 딱 적절한 용례에 맞춰 사용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버린다.
“수집 목적도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인형에게 여러 옷을 입히고 싶은 이들도 있고요. 작품을 만들어서 전시하는 일도 하고. 인형극을 하는 곳에서 특별한 의상이 필요할 때 연락이 오기도 하고요.”
그 외에도 인형옷을 만드는 일이 더 있지만 지금 생각나는 정도로만 작은 손을 하나하나 꼽으며 이야기했다.
연호가 일에 보람을 느낀다는 말에 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린도 공감하고 있었다. 제 일에 대한 프라이드나 자부심 같은 것, 혹은 보람이나 가치를 느끼는 것은 꽤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저도 옷을 만드는 일, 좋아해요. 인형옷을 주로 만들긴 하지만 종종 사람이 입는 옷을 만들기도 하고요.”
옷을 만든다는 것은 나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자부심도 있었다. 옷을 만드는 것도 좋아하지만 옷을 선물하는 그 느낌 자체를 더 좋아했다. 그것이 판매라는 이름하곤 있지만서도 아린에게 있어서 본질적인 느낌은 선물에 가까웠다. 그런 생각을 하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503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이 특징 때문에 크게 손해보는 일은 없이 살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기에 딱히 고치려는 마음은 은석이에겐 없어요. 물론 조금은 줄여볼까..정도의 생각은 하기도 하지만요. 사실 계산적으로 산다고 해도 매사에 다 계산적인 것은 아니고 그냥 손해보지 말자.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이득은 챙기자. 정도거든요. 막 구두쇠처럼 진짜 기계적으로 자신의 이득과 손해를 다 계산하고 행동하고 그러진 않는답니다!
"작품 전시라구요... 그건 꽤 보고 싶네요~ 저, 전시 좋아하거든요. 쉬는 날에도 종종 보러 가요. 있죠. 언제 전시 열면 불러 주세요."
아린이 하나씩 꼽는 손가락에 스르르 시선을 흘렸다. 인형극은 아이들을 데리고 몇번 관람한 적이 있던가? 공장제의 조잡한 인형들이었기에 아린이 말하는 인형옷들과 퀄리티는 다르겠지만. 불러달라는 이야기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해버린 것은, 연락처를 주고받는 행위가 금지되어 있다는 걸 그만큼 자연스럽게 까먹었기 때문일 것이라.
그녀의 자부심은 연호에게도 전달된 듯하다. 아린의 입가에 떠오른 잔잔한 미소는 그리 느끼기에 충분했다. 어느새 음료는 뒷전이 되어버린 연호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럼, 역시 지금 입고계신 옷도 직접 만든 거예요?"
아랫입술을 손가락으로 살짝 가렸다가는, 말을 잇는다.
"아, 죄송해요. 처음 뵀을 때부터 너무 궁금했어서. 살아있는 인형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실제로는 어떤 걸까? 연호는 캔을 느슨히 손에 쥔 채 조용히 눈을 빛내고 있었다.
아린은 자연히 전시에 불러달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연락처 공유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기는 했으나 연호의 그 말이 매우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정말 연락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버린 탓이었다. 어차피 가까운 시일 내에 전시 일정은 없어서 더더욱 그러했고.
연호가 눈을 반짝이며 이 옷도 직접 만든 것이냐고 묻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 말에 아린은 조금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고민했다. 살아있는 인형인 것 같다는 그 말의 의미에 대해서.
“…사과를 받아야 할 말은 맞는 것 같네요. 초면에 특이하다는 말을 한 것도, 살아있는 인형같다는 말도 기분이 나빠서요.”
특이하다는 말은 본래 긍정적으로 쓰이는 말은 아니지 않나. 저 애 좀 특이해, 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뉘앙스를 생각하면 그랬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뭔가 살짝 거슬린다는 느낌이었지만 방금의 그 살아있는 인형같다는 말을 들으니 앞의 말 또한 곱씹어 같이 수면 위로 올라와버린 것이었다.
인형같다는 말도…. 사실은 칭찬으로 받을 수 있는 말일 수 있다. 인형같이 예쁘다거나 그런 뜻으로. 하지만 반대로 생기가 없다거나 인간같지 않다는 말로 쓰이기도 했다. 그런 뜻으로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아린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부정적인 말의 뉘앙스에 예민한 편이었다.
그 말에 상처받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눈을 살짝 내려깔며 두 손으로 쥐고 있는 캔을 보았다가 다시금 눈커풀을 들어 연호를 올려다보는 눈빛은 무감해보였으니까.
재차 사과하는 연호는 손바닥을 살짝 들어 미안하단 기색을 내보였다. 사실은, 특이하지 않은 사람만이 특이하다는 말을 칭찬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특별한 구석 하나 없는 연호처럼.
"내 말은, 예쁘단 의미였어요. 사실 일반적으로 입는 옷은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직접 취향에 맞게 만든 예쁜 옷 입고다니는 거, 좋아 보여요."
상처 줬나? 연호는 아린의 눈빛에서 감정을 읽어내려 애썼다. 어쨌든, 정연호, 실수했구나. 그러고보니 자신도 모르게 특별한 사람 취급을 했던 것이 당사자에게는 기분나쁠 법 하다. 연호는 아랫입술을 진지하게 어루만지며 고민했더랬다. 사람들 사이에서 튀는 사람들의 부류는 둘로 나뉜다. 튄다는 말을 들었을 때 외려 기뻐하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이쪽은 후자였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말로만 사과하긴 좀 그렇네요. 내가 둔했던 건데. 언제 한 번 커피라도 사고 싶어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남자이니 그 <친절함> 때문에 이별선언 당한 것도 그리 이상하지 않다. 연호는 악의가 없어 보이는 무해한 웃음을 띄웠다.
아린은 재빠르게 사과하는 연호를 깜빡깜빡 눈을 감았다 뜨며 살폈다. 아무래도 말실수를 했었던 것이지 일부러 마음을 상하게 하려고 한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논리적으로 생각을 해본다고 쳐도 이런 연애 프로그램에 나와서 상대방 여성 참가자에게 굳이 시비를 걸거나 나쁜 말을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은석과 비슷한 부류라면 더더욱 그럴 것 같고.
아린은 숨을 내쉬며 순간 날카로워진 마음도 같이 흘려보냈다. 인형은 좋아하지만 자신이 인형 취급 당하는 것은 싫어하고, 그러면서도 인형에 입히는 옷을 만들어 입는 자신이 모순적이기도 했다. 연호의 잘못은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잘못은 인형과 같은 차림새를 하는 자신에게 있는 것일지도.
이렇게 자기 탓을 해버리는 것 또한 아린의 나쁜 버릇 중 하나였다.
“…저도 말 실수를 많이 하는 편이라서 이해해요. 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요.”
아린은 깜빡깜빡 눈을 감았다 뜨면서 그러자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애매한 답변을 한 뒤에 음료를 입에 머금었다. 어느새 마지막 한 모금이었다. 아린은 캔을 구겨 쓰레기통에 넣은 뒤—캔은 구겨버려야 더 많이 들어간다는 지극히 생활적이고 재활용에 입각한 행동이었다— 아린은 연호에게 목례했다.
“그럼, 이만.”
아린은 할 이야기는 끝난 듯 미련없이 발길을 돌렸다.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나 도망치듯 자리를 피한 건 커피 이야기에 다시금 은석이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무엇이든 선물 한 가지를 받을 수 있다면 뭘 부탁하고 싶어?" 최은석: 저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사람의 24시간이요. 최은석: 그것만큼 저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선물은 없을 것 같은데. 그런 거 있잖아요? 당신의 하루. 오늘은 내 꺼예요. 같은 거. 최은석: 그래서 줄 거예요? 후훗.
"내게 복종해라." 최은석: 시급은 어떻게 되나요? 복지는요? 워라벨은 확실하게 보장되나요? 일주에 얼마나 잔업이 있죠? 최은석: 어라. 깐깐하다고요? 이런 것은 따져야죠. 왜 이러실까. 복종받는 사람의 입장도 요즘은 얼마나 중요한데. 최은석: 노동법이라던가 근로자보호법의 무서움을 모르는 자. 사람을 막 부리는 거 아니에요.
"근처의 어르신에게 혼이 난다면?" 최은석: 그냥 적당히 대답하고 사과해야죠. 최은석: 애초에 혼이 날 정도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거고, 설사 억울해도 그 자리에서 바로 따져봐야 말을 들어주지도 않을테니 나중에 진정되었을 때 다시 말해야죠. 아. 가벼운 꾸중 같으면 바로 말해야죠. 그건 당연히 그래야지.
모호한 답변에, 연호는 태연하게 대답한다. 아린의 목례에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연호도 같은 방식으로 인사한다.
"또 봬요."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는 건, 이곳이 지극히도 폐쇄적인 공간이라는 데에 있을 것이다. 한동안 서 있던 연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데에 있어 서로를 알지 못한다는 요소는 즐거움과 설렘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나 또한 긴장감의 원천이 될 수 있으리라.
그나저나 그의 캔은 쓰레기통에 원 상태 그대로 들어갔으니, 어쩌면 그는 생활적이지 않은 타입인지도 모르겠다.
>>524 은석이에게는 아무래도 바리스타를 그냥 단순히 커피 끓이는 사람 정도로 치부하는 그런 약간 무시하는 말이 진짜 극지뢰가 될 것 같아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상당히 자기 일이나 그런 것에 엄청난 자부심이 있거든요. 아마 원두와 잔을 딱 내려놓고 그럼 당신이 그 커피를 끓여보던지요. 라고 응수할지도 모르겠네요.
>>541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카페라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편안한 연두색 벽지를 시작으로 해서 여기저기에 화분을 전시하는 등의 약간 자연 카페 같은 느낌이에요. 지금은 조금 더 다양한 화분이나 장식물을 전시하려고 공간을 넓히거나 배치를 바꾸는 등으로 공사를 하는 중이고요!
그러니까 아마 아린이가 준 인형도 전시되어있지 않을까 싶어요. 헤어진 이후에 그것을 치워야할까 말아야할까 고민하다가 아마 치우진 못하고 일단 손님들이 좋아하니까 전시해둔다라는 명목으로 놓아두지 않을까 싶네요.
>>542 그렇구나~ 아린이 헤어지고 나서 한 번도 안 갔을 것 같아서, 그 이후에 그 인형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 할 것 같지 ㅋㅋㅋㅋㅋ..... 아마 예쁜 원피스를 입은 아가씨 인형과 풋풋한 시골 소년같은 느낌의 남자애 인형일 것 같구. 헤어지기 전에는 수공예 바구니 들고 와서 카페 한 자리 차지하고 소품 만들면서 은석이 일하는 것도 구경하고 그랬을 것 같은데 괜찮으려나?
이미 기숙사 주변은 대체적으로 다 둘러보긴 했지만 그렇다고 돌아다니지 못하란 법은 없었다. 전 날처럼 참가자 중 누군가와 마주할 수도 있는 법이었고 그러지 않더라도 자신의 카페의 인테리어와 관련된 아이디어, 혹은 운영에 대한 아이디어 등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기에 은석은 방의 에어컨을 끈 후에 붉은색 여름 반팔 셔츠와 연한 회색빛 긴 바지를 입고 방 밖으로 나섰다. 방의 주인이 나가고 텅 빈 공간을 아직 방에 남아있던 차가운 냉기가 마치 자신의 주인인양 조용히 차지했다.
문 밖으로 나오자마자 보이는 아린의 방 문을 잠시 바라보던 은석은 살며시 몸을 옆으로 틀어 복도를 걸었고 출입문 밖으로 나섰다. 그러고 보니 이 기숙사 바로 근처에 설치되어있는 공원에 분수대가 하나 있었던가. 어쩌면 지금 가면 정말로 시원하게 경치를 구경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바로 공원으로 향했다.
약 오 분 정도 걸었을까. 조용하고 한적한 공원 안에 있는 커다란 중앙 분수대에 그는 도착했다. 그곳까지 가는 동안 애석하게도 은석은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스태프들이야 만나긴 했지만 자신이 프린터물로 확인한 프로그램 참가자의 얼굴은 보지 못했기에 그 점이 조금 아쉽다고 느끼며 그는 하늘 높게 솟아오르는 분수를 눈에 담았다. 일곱빛깔 무지개빛 조명을 위로 켜서 하늘 높게 솟아오르는 분수를 예쁘게 비추니 그 모습이 보통 예쁜 것이 아니었다.
카페 인테리어 공사 측에 작은 분수도 하나 만들어달라고 하면 만들 수 있을까. 그럼 예산이 얼마나 들어가려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물이 다시 위로 솟구치자 그는 미소를 짓고 그 분수를 조용히 눈에 담았다. 그러다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그는 살며시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의 얼굴이 바로 보였다면 아마 그는 말 없이 가만히 손을 약하게 흔들면서 무언의 인사를 보냈을 것이다.
아린이는 술 약한 편이라서 금방 얼굴도 빨개지고 헤실헤실 할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큐ㅠㅠ 이렇게 일찍 술자리가 생길 줄은 몰랐다구? 아린이는 술을 마시면 잠드는 편이라. 다른 사람들 놀고 있을때 잠시 잠들었다가 깨면 조금 술 깨서 집에 돌아가고 그럴 것 같아. 평소에 잘 안먹을 것도 같고. 아..... 사람들하고 술자리 자체를 잘 안 가는 구나.....(아싸임)
정식으로 입소하고 며칠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알게 모르게 인사한 이들도 있을테고 아직 다른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이도 있을테고 그냥 지나다 얼굴만 스쳐서 본 이들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하루가 저물고 또 다시 하늘에는 달이 떴습니다. 평범한 밤으로 끝날지도 모를 일이었으나 모두에게 제공된 핸드폰으로 문자가 들어오네요.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신 여러분. 좋은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까? -슬슬 1번째 미션이 주어질 예정이나 그 전에 가벼운 분위기를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기숙사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가면 있는 강당 홀에 들어가면 여러분들이 가볍게 먹고 마실 수 있는 작은 자리가 마련되어있습니다. 술은 물론이요. 안주도 있으며 술을 못 드시는 분들을 위해 여러 음료도 있습니다. -참가하는 분들은 정말로 참가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반드시 참여해주셔야 합니다. -술과 함께 진실게임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가볍게 모두가 모여서 술을 마시던 음식을 먹던 음료를 먹던 그렇게 모여서 진실게임을 한다는 이야기인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모두에 대해서 알아가자는 느낌으로 주최자가 준비한 모양입니다.
일단 강당으로 들어오면 네모난 테이블이 있습니다. 그 위에는 여러 음식과 술, 그리고 음료.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디저트도 있네요. 일단 왼쪽 자리에는 남성이, 오른쪽 자리엔 여성이 앉는 모양입니다. 테이블의 의자 앞에는 자리의 이름도 쓰여있네요. 허나 자신의 연인과 마주보는 구도입니다. 여기에 와서 아직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이들도 지금 이 순간엔 마주하게 되겠지요.
은석은 가장 먼저 자신의 자리에 와서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습니다. 입구로 들어오는 이를 바라보며 무언의 인사를 보내는 것은 절대 착각이 아닐것입니다.
/지금 이 이벤트에 출석을 하지 않은 분들도 모두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설정이에요. 참고해주세요. 8시 30분까지 반응 써주세요! 그냥 가볍게 쓰시고..바로 진실게임 들어갈게요!
핸드폰으로 온 문자에 아린은 잠시 휴대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술자리이기도 하고 첫인상이기도 하니 여러 옷들 중에서 흰색의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전체적으로 레이스로 이루어져 있지만 안감이 있어 비치는 것 없이 단정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을 자아냈다. 머리에는 자잘한 작은 꽃들이 나무가지에 걸려있는 듯한 작은 흰색의 머리장식을 달았다. 짙은 색을 입는 것보다는 밝은 색을 입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래도 너무 희기만 한 느낌에 목에 단순한 형태의 까만 초커를 달고 다른 악세사리는 하지 않은 채 걸음을 옮겼다.
사뿐사뿐한 걸음거리로 강당에 도착하자 먼저 도착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아린은 살짝 입술을 꼭 다물었다. 모르는 채 시선을 피하며 제 자리로 향했으나 어쩔 수 없이 마주보는 자리였기 때문에 괜한 시도였지만서도.
"......"
아린은 딱히 아무런 인사 없이 자리에 앉았다. 은석은 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한 걸까. 묻지 않았으니 알 수도 없는 것이었다. 아린은 여러가지 술 중에서 사과맛이 나는 맥주를 한 캔 골라 마시며 입술을 축였다. 왠지 목이 타는 탓이었다.
그녀는 제공된 방에서 바이올린을 손질하고 있던 중이었다. 두 달간 공식 석상에 나가는 일은 없어도 손에서 놓지는 말아야 했으니 당연히 챙겨왔었다. 활에 송진을 문지르며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는데. 여간해선 울릴 일 없어보이는 핸드폰이 울렸다. 무시할까 하다가 주최측 전달일 것 같아 들어서 확인한다. 아니나다를까. 슬슬 프로그램의 서막을 올릴 모양이었다.
첫 매칭이 있기 전의 통성명 시간이라는 건지. 술과 음식을 동반한 간단한 자리를 만들었다기에 그녀는 벌써부터 나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로 나갈 수 없는 사유라는게 이 안에서 있을 수나 있을까. 입술 안쪽을 살며시 깨물며 핸드폰을 내려놓고 바이올린을 정리한다. 올려묶었던 머리는 풀어 빗질을 하고, 가벼운 복장은 적당히 남들 앞에 설 수 있을만한 차림으로 바꿔입는다. 나가기 전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옷 밖으로 나온 목걸이를 옷 속으로 넣는다. 준비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느릿느릿한 걸음 덕에 아마도 그녀가 제일 마지막에 강당에 들어서지 않았을까. 오는 내내 아래로 깔린 시선은 강당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다. 누가 인사를 하든, 무슨 말을 하든, 반응 없이 들어와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제서야 딱 한 번, 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맞은편의... 그를, 눈으로만 슥 훑었다. 그리고 테이블에 손을 뻗어 술이 담긴 잔부터 쥐고 조금씩 홀짝였다.
프로그램에 입소한 이후, 참가자들과 스태프들 사이에서는 묘한 도시괴담 같은 것이 돌기 시작했다. "참가자의 객실 중 누구도 그 문이 열리는 것을 못 본 객실이 있다". 일부 참가자들은 본격적인 진행이 시작되기 전에 밖으로 나다니며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시설을 한번 둘러보거나 같은 참가자 혹은 스태프를 상대로 이야기를 해보는 둥 각자 나름대로의 적응과 탐색전을 시작하기도 했으나, 문 하나는 그런 기류에 아랑곳하지도 않고 철옹성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그 방의 주인이 밖으로 나온 모습을 한 번쯤 목격한 이도 있었고, 우유며 시리얼 같은 게 든 봉투를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는 이도 있었으며 가볍게 인사를 나누어본 이도 있었으나 가벼운 인사 이상의 대화를 나누어본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물론, 신비주의라거나 하는 거창한 이유나 컨셉질 같은 것이 아니라 강청 본인의 대단히 폐쇄적으로 변해버린 생활패턴에 기인한 기행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오늘이 그 기분나쁜 은둔자가 정식으로 문을 열어젖히고 나와 모두에게 인사를 건네는 날이다.
가지런히 차려입은 여름 셔츠와 검푸른 면바지, 슬립온 차림을 하고, 까만 곱슬머리를 늘어뜨린 불길한 인상의 남자는 가장 늦게 들어와 누구랄 것도 없이 아무에게도 눈을 맞추지 않고 모두에게 가볍게 목례를 건네 보였다.
가장 먼저 질문을 하는 이가 누군가에게 질문을 하면 그 답하는 사람이 다음 턴 질문을 하게 되는 거예요! 다만 이미 답을 한 이는 모두가 한 번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다시 질문을 받을 수 없어요.
이를테면 A,B,C가 있는데 A가 B에게 질문을 했고 B가 그에 대해서 답을 했으면 다음 질문을 하는 이는 B에요. 그리고 B가 C에게 질문을 하고 C가 대답을 하면 이제 다음 질문 차례는 C지만 B에게 질문을 할 순 없어요. 모두가 한 번씩 '답'을 해야만 다시 질문을 받을 수 있는 식이에요. 맨 처음에 질문을 한 이는 답을 하지 않았기에 답을 하기 전까지는 리스트에서 사라자지 않는다는 점. 꼭 유의해주세요.
술을 마시는 건 꽤 오랜만이었다. 언제였지. 아직 추위가 한창일 적, 내리는 눈을 보며 한 잔 하다가 잠들어서 독하게 몸살 걸린 이후 금주령 때문에 한동안 근처도 못 갔었는데. 지금은 감시할 사람도 없으니 마음 놓고 마실 수 있다. 이 자리에서 할게 술 마시는 것 말고 뭐가 있을까만은.
"...?"
했는데, 아, 그러고보니 진실게임인가 한다고 했었다. 그녀는 느닷없이 걸린 첫 타자에 흠칫 고개를 들었다. 질문? 이럴 때 무슨 질문을 해야 하는 건데. 생전 누군가와 이런 걸 해본 적 없는 그녀가 쉽게 말을 꺼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시간을 죽이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첫날 입소하여 들었던 그 질문을 꺼내었다.
맥주를 한 모금 머금고 있던 은석은 아린의 말에 그렇게 대답했다. 잘 지내고 있는지 한 번 보고 싶다는 말에 뭔가 말을 할까 했었지만 자리가 자리였기에 그는 일단 그 정도로만 하기로 했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둘이서 이야기를 할 기회도 있겠거니 생각하며. 지금은 이 정도로만 하기로 하면서 그는 조용한 미소만 내비쳤다.
아무튼 자신에게 그녀에게서 질문이 들어오자 은석은 조용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진실게임. 그 모든 것을 진실로만 대답해야만 했다. 그 질문에 대해서는 정말 이런저런 말을 할 수 있긴 하지만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한 후에 이야기했다.
"솔직히 나쁜 생각은 안 들었는데. 적어도 누나의 마음 속에 아직은 내가 있다는 거잖아? 아예 내가 마음에 없었다면 이 프로그램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을테니까. 그래서 나도 그렇지만 누나도 누나 마음을 스스로 잘 확인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누나 현 마음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나와 보낸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니었구나. 시간 낭비처럼 느껴진 건 아니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웃으면서 대답을 마친 후,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럼 누구에게 질문을 한다. 이내 남성진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그는 싱긋 미소를 비췄다. 이렇게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생각하며. 물론 큰 의미는 없었지만 오히려 이런 자리기에 각자의 성향을 확인하기엔 딱 좋은 느낌이었다.
"이를테면... 그래요. 만약에 제가 당신의 전 여자친구에게 관심이 생겨서 작업을 한다면 방해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줄 수 있나요? 전 마음에 들면 그냥 조용히 가지는 않을건데."
은석이 던진 질문의 뜻을 잘 모르겠다는 건지, 선율은 고개를 갸웃한다. 그리고 슬쩍 미소하며 입을 연다.
"그러니까... 은석 씨나 다른 남자가 구월이에게 작업을 걸 때 제가 아무 방해도 안 할 거냐, 그런 뜻인가요?"
왼팔을 테이블 위에 올려 턱을 괴고, 눈을 두어 번 깜박이더니 은석을 쳐다보며 말한다.
"가만히 있는단 게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안 하는 태도일까. 정말로 호감이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떠보는 건지는 알아봐야죠. 여기 온 거 보면 저 아직 걔한테 마음 남은 거 아시잖아요. 서로 좋아서 다가가는 거 누가 억지로 막는대요. 애가 괜히 상처만 받을 거 같으면 전애인으로서 지켜 줄 수도 있는 거 아녜요?"
그런 질문이라면 이 정도 대답은 해 주는 게 맞으려나. 팔을 다시 원위치로 가져다 둔다. 소금 크래커 하나를 집어 우물거리고,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영월을 본다.
"설영월 씨였죠? 질문 드릴게요."
흐음.
"바이올린 하시잖아요. 공연에서 연주하거나 연주 마쳤을 때 무슨 느낌 들어요? 제가 예체능이랑 연이 많이는 없다 보니, 이왕 바이올리니스트를 만난 김에 알고 싶기도 해서요."
선관을 얼른 짜야 선율이도 정체성이 잡힐 텐데 내가 여행을 가버려서 미안해 ㅠㅠㅠㅠ 내일부턴 한가해서 자주 올 수 있을 거 같아!!! 오늘은 힘들 거 같고 ㅜㅜ 다들 넘 잼써보야서 이벤트 응원할겸... 선율주가 혹시 생각해둔 둘의 관계성이 있다면 여기다.. 앵커 걸어서 이야기 해줘!!! 동접 아니더라도 천천히라도 잇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만약 없으면 내가 생각해둔 몇 가지 풀어둘게...! 근데 애매해서 생각해둔 상황이 있다면 자유롭게 얘기해줘!!!
방금 비운 술잔으로 떨어뜨리던 시선이, 뜬금없이 자신을 불러오는 소리에 파르스름한 눈동자만 반사적으로, 마치 검객이 휘두르는 검처럼 날카롭고 서늘하게 영월에게로 튀어올라온다. 당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남자의, 알고 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눈빛이 차갑기 그지없다. 그는 이내 얼굴까지 들어 영월에게로 돌렸다.
분열 이후, 최초의 직면이다. 그나마 결국 딸깍 떨어져 버리고 마는 영월의 시선.
아아, 그러면 그렇지.
"Lo-Fi 음악이라면 좋아합니다."
질문을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딱 자르는 듯한 대답. 그 정도로밖에 말을 꺼내지 못하는 이에게는 이 정도로밖에 대답할 수 없다. 직면할 각오가 안 된 거면, 대체 왜 이런 데까지 불러세운 것인지.
강청은 채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뭔가 묘하게, 진실게임 행사장에 도착한 순서와 비슷하게 질문이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금색의 눈을 보는 것만으로 채린의 프로필은 대강 떠올릴 수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술이 무엇인지 여쭈어 봐도 괜찮을까요? 술을 못 드신다면 음료도 괜찮습니다."
은석의 대답과 질문 이후 아린은 조금 마음이 싱숭생숭한 느낌이었기에 말 없이 술만 홀짝홀짝 마셨다. 은석은 아무래도 자신과 헤어진 후에도 잘 지냈던 모양이고 또 이미 미련없이 다 끊어낸 것 같은 여유로운 태도였기에 조금 분하기도 하고 밉기도 했다. 너는 이미 다 정리가 된 모양이구나, 싶다.
앞에 있는 핑거푸드를 가끔 집어먹기도 했으나 많이 가지는 않았다. 도수가 낮은 술로 마시고 있었음에도 금방 취기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다른 이의 질문과 답에 그렇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다가 아린은 자신을 부르는 말에 고개를 들어 눈을 맞췄다. 다시금 깜빡깜빡 눈을 감다가 시선을 테이블 쪽을 향하며 대답했을 것이었다.
"어..... 취향은 서로 맞춰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맞춰주는 것보다는 서로 이야기를 통해서요. 하지만 가치관은 변화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서로가 이해할 수 없는 가치관이라면 아마 잘 안되겠죠."
나름의 생각을 말한다고 했는데 너무 단호하게 말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린은 이번에는 누구를 지목해서 질문해야할지 고민했다. 은석에게는 이미 질문을 했고 선율에게는 이미 질문을 받았기 때문에 남은 남성 참가자인 강청에게 말했다.
"강청 씨, 이름은 무슨 한자인가요?"
퍽 뜬금 없는 질문이었으나, 궁금한 것들 중 하나였다. 음, 진실게임에서 묻기에는 너무 사소해 보인다는 게 문제였지만.
이런 자리는 일반적으로 내가 끼어들 틈 없는 밝고 명랑한 자리가 되기 마련인데- 하고 강청은 생각했다. 입 안에 뭘 집어넣어 봐야 뱃속에 들어가면 거기서 거기라는 본인의 지론 다음으로 그가 직장에서 (주로 그의 형이 온갖 핑계를 대서 거의 한 주에 한 번꼴로 개최하는)파티를 기피하는 두 번째 이유이기도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눈치보이는 타이밍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도, 여기는 왠지 계속 앉아있을 만도 한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강청에게 질문이 날아오자, 두번째 병을 따서 열던 강청은 병을 내려놓고 아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명백히, 바라보는 시선의 예리도가 다르다. 색이 없는 것처럼 보이리만치 희푸른 눈동자가 무정히 깜빡였다.
하고는, 그는 이제 질문 받을 이가 누구일까- 하고 이번 순배에 질문을 받지 않은 이가 누구인지 꼽아보았다. ─문득 그 이야기를 꺼낼까도 했으나, 강청 역시도 분위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에게도 그런 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여 이해할 수 있는 시기가 있었고, 그 시기를 놓치기 전에 그런 사회적 교양이라는 것을 충분히 배웠다.
자신은, 설영월처럼 삼 년간 쌓인 앙심과 울화통을 꾹 눌러참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평범한 질문을 던질 배짱이 없다. 지금 이 순간 설영월에게 말을 걸었다가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성질머리대로 말의 칼을 뽑아버릴 것 같았고, 이 잔치 자리에 찬물을 양동이로 들입다 부어버리는 격이 될 것 같기에, 그는 차가운 무표정의 가면을 굳게 눌러쓰고 시선을 돌렸다.
"같은 사람에게 두 번 연속으로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만. 이채린 씨. 와인을 즐긴다고 하셨지요."
맥주를 천천히 마시며, 그 앞에 있는 고기로 쌈을 만들어 먹기도 하며 은석은 아린의 모습을 한번씩 살폈다. 별 말 없이 술만 마시는데 괜찮은가 싶은 걱정 때문이었다. 아니. 술 그렇게 강하지도 않으면서. 여러모로 신경이 계속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을까. 하지만 일단 다 같이 모인 자리니 티는 덜 내려고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시선이 향하다가 그는 막 들려오는 자신의 이름. 그리고 질문에 고개를 다시 돌렸다.
"외간 깻잎이라고 하면... 그거죠? 저와 동성친구가 깻잎을 못 떼고 있을 때 제 연인이 대신 떼주는 것이 괜찮냐는 그거."
인터넷에서도 한참 말이 많았던가. 생각해보니 연애를 하면서도 그런 적은 없었던가. 그렇기에 그는 가만히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일단 아린이 대입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쨌건 전 연인이었으니까. 자신의 친한 친구가 깻잎을 떼지 못하는데 제 연인이었던 아린이 그것을 떼준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는 고개를 저었다.
"고작 깻잎 한 장 떼주는 것 따위로 흔들릴 정도라면 저와 제 연인의 사이가 정말로 건강한지부터 조금 생각을 해보게 될 것 같아요. 물론 그 깻잎을 떼서 먹여주거나 밥 위에 올려주거나 한다면 그건 싫지만, 고작 곤란한 사람의 깻잎을 떼어주는 거잖아요? 아. 물론 제 연인이 떼어주기 전에 제 친구가 곤란하면 제가 먼저 떼어줄 것 같지만요."
결론은 별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설사 그렇다고 해도 고작 그 정도로 흔들리거나 하진 않는다라는 말이었다. 어디까지나 그건 자신의 생각일 뿐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이야기하며 그는 가만히 시선을 돌렸다. 지금 아직도 질문을 받지 못한 이는 영월이였던가. 잠시 생각을 하던 은석은 가만히 어깨를 으쓱했다.
"이 근처에서 가장 괜찮다고 생각하는 장소 하나만 추천해주실래요? 여기에 있는 이들 모두에게 참고가 되게."
/일단 영월주의 답을 마지막으로 잠시 중단하고 1차 미션 지목으로 가도록 할게요! 너무 늦어지면 또 피곤할 수 있으니까요!
딩동. 그렇게 문답이 오가는 와중, 모두의 폰에 문자가 들어왔다. 아무래도 진행측에서 보낸 문자인 듯 했다. 만약 확인해본다면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을 것이다.
-좋은 술자리를 하고 있으신가요? 좋은 질문들이 오가고 있나요? 그런 문답을 들으며, 그리고 첫모습을 보며, 스타일, 말투 등등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이쯤에서 1차 미션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1차 미션은 '첫인상이 좋거나 혹은 기타 이유에서라도 이중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보고 싶은 사람'을 지목해서 그 사람과 시간을 공유하는 겁니다. 간단하게 데이트라고 봐도 좋겠군요.
-허나 이 지목을 하는 이는 여성쪽입니다. 지목받은 이는 상대가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필수적으로 시간을 보내야만 합니다.
-하지만 사랑이란 언제나 공평하지 않은 법이죠. 그렇기에 지목 순서는 오로지 순수하게 랜덤으로 정해지게 됩니다. 여성 분들은 이 메시지 아래에 있는 숫자 표시 단추를 눌러주세요.
-가장 높은 숫자가 나온 이부터 차례대로 직접적으로 지목하게 됩니다. 당신의 옛 연인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이가 될 수도 있으며 다른 누군가가 먼저 데려갈지도 모르지만 이의는 받지 않겠습니다.
-여긴 그런 프로그램입니다.
여성들의 폰에는 남성들의 폰과는 다르게 따로 버튼이 있었다. 누르면 랜덤으로 숫자가 산출될 것이고 아무래도 높은 숫자가 나온 이부터 먼저 차례대로 지목을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고로 여캐 오너분들은 다이스를 1 100 범위로 돌려주세요. 가장 높은 숫자가 나온 이부터 우선권이 주어집니다. 지금 이 자리에 없는 구월주의 경우는... 아무래도 가장 마지막으로 처리가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하지만 다음주에는 반대로 남성 쪽에서 지목하게 되니까 조건은 똑같아요!
참고로 다음주에 남성이 뽑을 때는 제가 마지막으로 지목하겠습니다. 그래야 불공평한 사례라는 말은 없을테니까요.
진행측에서 보낸 문자가 핸드폰에 도착하자 채린의 핸드폰이 진동을 울린다. 그 진동이 느껴지자 무심결에 문자를 읽어내려가던 채린의 눈이 조금 커지더니 알듯모를듯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메시지 아래에 있는 버튼을 누른 채린은 가장 높은 숫자가 뜬 자신의 핸드폰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이 프로그램까지 나온마당에 데이트라고 부를법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야 확실히 있긴했지만.. 주춤거리는것이야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잠시 고민을 하던 채린이 결심을 내린듯 답장을 보내기위해 손을 움직인다.
'저는 정연호씨를 선택하겠습니다.'
어찌보면 뻔한 선택이라고 생각될수도 있지만 연호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봐야지 자신의 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을것만 같았다. 지금 내가 갖고있는 이 마음이 그저 미련인것인지 아닌지.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건가..... 도수 적은 술을 조금씩 마신 것에 불과한데도 조금 어지럽고 졸린 기분이 들었다. 이미 얼굴은 발간 상태였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정신을 차리고 있을 수 있었다. 제 숫자는 꽤나 낮아서 누군가를 지목하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왠지 기분은 은석과 데이트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찬물을 마시면서 술과 잠을 쫓아내려고 하는데 어느덧 제 차례가 왔다. 아린은 남아있는 두 사람을 번갈아보다가 이내 한 사람을 지목했다.
이번에 구월주가 선택을 못했던만큼 공평하게 2차 미션 때는 제가 가장 낮은 숫자인 것으로 공평성은 확실히 맞추도록 할게요!
일단 시간도 시간이고 주무실 분들은 주무시면 될 것 같아요! 좀 더 해볼까 했지만 아무래도 시간도 조금 애매한 느낌이고.. 그냥 다음에 한 번 제대로 진검승부 하는 시간으로 맞춰볼게요.
그리고 이건 여러분들에게 질문하는건데 비밀메시지를 이번주에도 보내고 싶으실까요? 원래 이번주는 만난 이도 없고 하니까 보낼 것도 없지 않을까 싶지만 그래도 혹시나 보내고 싶은 분이 있으실까 싶어서. 물론 있다는 이가 많다면 일요일 하루를 개봉하고 월요일에 제가 각자의 폰으로 메시지를 전송하는 식으로 할 거예요.
그리고 메시지함은 조금 고민을 했는데 여러분들의 의견도 있고.. 그냥 개봉하는 것으로 할게요! 반드시 '캐입'으로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을 명심해주세요. 자신이 누구인지 은연중에 드러나도 상관없고 아예 감춰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보내는 사람의 이름은 반드시 쓰지 마시고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분명하게 써야 혹시나 제가 메시지가 들어오면 월요일에 배달할 수 있어요. 일단 이번만 월요일에 배달하고...
다음주부터는 얄짤없이 금요일에서 토요일에만 메시지를 받아서 일요일에 배달하는 식이 될 거예요.
>>825 (생활리듬을 해치게 되는군) 내일 만나는 대로 하자구 다만 이제 벌칙게임이 끝나고 난 직후에 "오늘따라 왜 말술이야, 답잖게." 하고 훅 들어오는가 다음날 아침에 숙취로 머리싸쥐고 있는 영월이 방을 강청이가 스페인식 마늘수프 만들어서 들고 -益- 이런 표정 돼서 똑똑똑 노크하는가 정도는 지금 정해주셔야겠으
아 강청주 얘네 연애사 짧게 압축정리 좀 하고 싶어서 생각해본게 있는데. 연애 당시의 강청이는 여러 이유 때문에 돈 벌고 생활 하느라 바빴었잖아? 그래서 아마 제대로 된 데이트는 거의 못 하고 연락으로만 주고 받는 연애사가 되지 않았을까 싶더라. 그러는 와중에 영월이가 이별통보 때려버린거고 응... 본의 아니게 플라토닉? 한 연애를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강청주 생각은 어때?
Picrewの「人間(男)メーカー(仮)」でつくったよ! https://picrew.me/share?cd=U8VWKgoaTi #Picrew #人間男メーカー仮 시트에 첨부한 강청이 픽크루가 강청이 마주했을 때 인상을 잘 전달해주지 못하기에 필터툴 찾아서 내가 생각한 인상에 맞게 만져와봤-으
>>845 조아이 :3~! 그러면 서로 데이트 준비 다 끝내고 현관에서 만나서 나가는 장면부터 시작할까? 참 이미 질문 들어왔을 수도 있지만 계절은 언제야? ;3 그리구 선레 가볍게 짧게도 괜찮으니까 부탁해도 될까? 다른 사람들의 선관이라던지 내가 놓친 게 너무 많아서 정독을 좀 해야할거 같아....서...ㅜㅜ
참 세상사 앞일을 알 수 없었다. 진실게임에서 한 번 다른 남성 참가자는 어떤 성향일지, 그리고 그에 대한 반응을 어떨지 확인해보고 싶었고 그 이상의 의미는 전혀 없는 질문을 던졌건만 1번째 미션의 페어로 지정된 이가 자신이 그 질문을 던진 이의 전 연인이었다. 이거 대체 뭐가 어떻게 된건지. 물론 다들 공평하게 자기가 직접 선택한거니 그저 우연이겠지만. 허나 그 와중에 아린이 다른 이를 택했다는 것에 대해서 은석은 조금 숨을 약하게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연인이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전 여자친구일 뿐이었으니 자신이 간섭할 것은 되지 못했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특별히 무슨 말을 하진 않았다. 그녀가 직접 택했으니 그 선택을 존중한다는 마음에서 아마 진실게임이 끝나고, 술자리가 끝났을 때 아린에게 '누나에게 있어 즐거운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네.' 정도의 말을 한 것이 고작이었다.
어쨌든 자신도 첫번째 미션을 수행해야만 했다. 파트너가 된 이와 함께 시간 보내기. 즉 데이트였던가. 헤어지고 난 이후로 데이트는 처음이라고 생각하며 은석은 괜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적당히 같이 시간을 보내고 놀다가 돌아오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도 어느 정도 머릿속으로 계획을 짜는 것을 그는 잊지 않았다. 너무 즉흥적으로 가기보단 어느 정도의 계획 정도는 생각해두는 것이 어느 정도는 좋을테니까.
일단 약속 시간보다 십 분 정도 이르게 그는 현관 앞에서 구월을 기다렸다. 어찌되었건 데이트이기에 지금 입고 있는 연한 회색빛 브이넥 셔츠에 검은색 긴바지. 그리고 그 위에 하얀 여름 조끼를 다시 한 번 제대로 정리했다. 아직 약속 시간까진 어느 정도 시간이 있었기에 그는 여유롭게 그녀를 기다리며 괜히 하늘을 바라봤다. 적어도 오늘 하루는 상당히 맑을 것 같았다.
만약 그녀의 목소리나 발소리가 들렸으면 그는 고개를 슬며시 옆으로 돌려 그녀를 마주봤을 것이고 미소와 함께 가볍게 손을 흔들었을 것이다. 소리없이 뒤에서 몰래몰래 조용히 다가온다면 아마 그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을테고 뒤에서 깜짝 놀래키기 딱 좋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룰 상 파트너 선택은 반드시 해야만 해요. 만약 그렇게 한다면 우선권이라고 하더라도 아마 기회가 맨 마지막으로 돌아가게 될 것 같네요. 그야말로 우선권을 포기한 것이 되니까요! 어찌되었건 파트너는 반드시 맺어지게 되기 때문에 '맺어지지 않는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좋아요.
푸하하. 그렇게 크게 소리내어 웃고 싶은 심정이었다. 허나 구월은 그저 흰색의 크롭티를 배꼽 위까지 끌어 내리고, 남자들의 로망일지도 모르는 연청색 스키니진의 허리춤을 끌어 올린다. 얇은 허리라던가 넓은 골반이라던가 그런 몸매부각 어쩌구. 모든 옷과 코디는 협찬과 홍보용일 뿐이다.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다지는데, 어제의 장면이 자꾸만 스물스물 피어올라 입꼬리가 간지럽다. 그는 변하지 않았고 그의 대답은 너무 너 다워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 지 모르겠던데. 그럴 땐 바닥의 개미를 세는 거랬다. 눈은 감으면 안 돼. 눈꺼풀을 아래로 내리깔고 투명한 개미를 하나, 둘 얌전히 세는 거야. 그래서 어제도 그랬거든. 그랬는데. 선택지는 예상못했다.
바보같은 입꼬리를 감출 수 없어서 거울 앞에서 벗어나 토끼 그림이 담긴, 아끼는 머그컵을 집어 들고 미지근한 얼그레이 차를 우물거렸다. 얼굴의 반이 가려진다. 네가 그런 대답을 했기 때문에, 그가 그런 질문을 했기 때문에. 그게 전부. 딱히 너를 골려 주려던 건 아니다. 오히려 제 연인이었던 이에게 당돌한 질문을 뱉는 당신에게 일말의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에. 말은 입에서 태어나 귀에서 죽는댔던가. 그럼 책임감 있게 키워야지. 그래서 그의 이름을 적어 냈을 뿐이다. 책임이 있든 없든 이미 뱉어내지고만 말인데, 그 사이 짠 개입해버린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떨떠름? 불편함? 그게 궁금해.
구월은 아직 멀었고, 먼저 도착한 것은 은석이다.
구월은 피팅 사진에서나, SNS에서나 시니컬한 이미지기 때문에 최대한 차분히 굴어야 했다. 재수없는 검은 고양이 마냥. 회사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구월은 일을 좋아했기 때문에 직장을 잃고 싶진 않았다. 대외적인(옷 핏이 살아나는)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현관의 실루엣과 가까워진다.
"안녕, 저 마음에 들어요?"
몸을 돌린 은석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실없는 웃음을 작게 터뜨리며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서 조곤하게, 능청스럽게 물었다. 어젯밤의 일을 당사자에게 상기시키기 정말 좋은 질문이었다. 구월은 재수없는 검은 고양이가 아니었기에 저의 존재감을 감출 수가 없다. 분량 뽑아내기 정말 좋을 걸. 웃지 않을 때는 금방 차가운 표정이 되고 마는 구월은 자연스럽게 은석의 옆으로 나란히 섰다. 평균 취향을 생각해서 나름 차분히(평소와는 다르게) 얌전하게 입었는데-.
"아니면 조용히?"
조용히 넘어가? 쉿하는 제스처를 취해주며 순진하게 뜬 눈으로 그를 놀리듯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현재까지 출연자 중 최연소인 주제에 반말과 존댓말 그 사이를 어중간하게 떠다니는 게 보통의 여유로움이 아니었고, 촬영이 나가면 회사 언니들에게 한소리 듣겠지. 맑은 날씨, 쏟아지는 햇살에 한 손으로 그늘을 만들어두고 그와 눈이 마주치면 살짝 웃어 줄 뿐이다. 속으론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이 부자연스러운 우연과 인연에.
분명 편안하기 그지없는 자리에 앉아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던 자리는, 어느새 살얼음 위에서 발끝 만으로 춤을 추어야 하는 자리가 되어있었다. 한발짝. 딱 한발짝만 미끄러져도 평온이라는 이름의 살얼음이 깨져 그 아래 차가운 물 속으로 빠져버릴 것 같았다. 그러지 않기 위해 그녀가 한 선택은 술이었다. 주변에서 무슨 얘기가 오가던, 귀를 닫고 술만 마셨다. 테이블엔 여러 음식이 있었지만 그만큼 술도 충분했기 때문에- 자리가 끝날 때까지 그녀의 술잔이 비는 일은 없었다. 그만큼 여러 술을 참 많이도 마셨더란다.
뒷일 따윈 일말의 생각도 않고.
진실게임이라는 이름의 탐색전은 그녀의 대답을 마지막으로 끝나고, 핸드폰으로 온 지령을 수행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해산하는 분위기로 이어진다. 정말 우연찮게도 그녀의 잔이 딱 비었기에 그녀도 방으로 돌아가야겠다 생각했다. 마지막 입가심이랍시고 얼음 다 녹은 물 한 잔을 천천히 마시며 주변이 조용해지길 기다렸다.
한사람씩 강당을 나가는 소리는 공연이 끝난 뒤 객석을 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겹쳐 들린다. 그녀의 실력에 감탄하면서도 감성이 없다느니, 기교가 없다느니, 떠들어대는 이들의 발소리다. 절로 일그러지려는 미간을 손으로 짚어 막는다. 두 달, 여기서 딱 두 달만 버티고 나가면 다신 그런 소리는 듣지 않게 될 것이다. 불확실한 희망 만이 지금 그녀의 동앗줄- 이었을까.
빠각.
어느 잔인가 남아있던 얼음 깨지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이미 강당 안엔 그녀 혼자였다. 더이상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 기척이 멀어지는게 이제는 희미하게 느껴져온다. 이러면 가는 길에 누군가 마주칠 일은 없을 것이다. 바라던 대로 됐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아있을 땐 몰랐는데, 일어나니 취기가 훅 올라와 다시 주저앉을 뻔 했다. 잠시 테이블을 짚고 서 있으니 취기가 가라앉아 그녀도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행여나 서두르다 넘어져 손을 다치면 안 되니, 한걸음 한걸음 신중하게 그녀는 나아갔다. 어수선한 강당을 나와 기숙사로 돌아가는 방향으로.
인삿말과 함께 들려오는 물음은 참으로 얄궂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평소라면 그냥 어쨌건 하루 데이트를 하게 되었으니 괜찮냐라는 물음 정도로 끝나겠으나 바로 이전, 진실게임에서 자신이 참가한 이들의 성향을 한 번 보겠다고 툭 던진 그 질문 때문에 참으로 묘한 상황이 된 것 아니겠는가. 마음에 들면 조용히 가진 않겠다는 그 말을 한 자신이 떠올라 그는 그저 소리없이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조용히 넘어갈 거냐는 그 물음은 그야말로 확인 사살에 가깝지 않던가. 만나자마자 이런 말들이 오가니 그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지 잠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떠보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장난으로 이러는 것인지. 잠시 머리를 굴리다 그는 태연하게 이야기했다.
"구월 씨의 기억 속에 저를 한 조각 정도는 남기고 싶을 정도로는. 그게 더 초월하게 될지, 아니면 딱 그 정도로 끝날지는 두고 봐야죠. 구월씨나 저나."
어차피 이런 프로그램이었다. 이별을 모두 다 깔끔하게 받아들였는지, 아니면 이 자리를 빌려 제 옛 연인인 아린과 다시 합쳐지고 싶은지. 그에 대한 것을 확실하게 하고 싶었기에 어쩌면 지금 이 데이트는 정답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실 애초에 자신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제 연인이 자신이 아니라 다른 남성과 데이트 하겠다고 선택했으니 그쪽은 그쪽대로 이미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고. 아주 약간의 질투심이 흘렀으나 그것을 굳이 그는 표현하지 않았다. 이미 헤어진 존재에에게 질투심을 품는 것은 물론이요. 데이트를 할 상대 앞에서 다른 이의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것도 실례였다. 자세한 생각은 다 끝나고 방에 돌아가서 하면 되겠거니 생각하며 그는 표정을 관리해 미소를 지었다.
"그러는 구월 씨는 어떤가요? 옛 남자친구가 아니라 이름과 나이, 그리고 프린터물에 있는 기타 정보를 제외하면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이와 데이트 하는 건데."
반격하듯 그렇게 물어보며 그는 앞으로 걸어가자는 듯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일단 첫번째 데이트이기도 하고 너무 깊게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가볍게 알아가며, 그러다가 친해지면 더 깊게 들어갈 수도 있고 그런거지. 생각을 정리하며 그는 고개를 그녀 쪽으로 돌려 이야기했다.
"우리 아직 서로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잖아요? 오늘 이것저것 알아가고 싶은데. 구월 씨는 어떠시려나."
영월이 느릿느릿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뗄 때, 누군가 부축해주는 이가 있었다. 취기가 오른 이를 부축해준다는 따뜻하기 그지없는 행동에 비해 받치고 들어온 무언가는 사람의 몸뚱아리라기에는 마치 겨울숲의 나뭇등걸이 턱 받치고 들어오는 것처럼, 냉랭하고 무기질적인 면이 있었다. 그러니 최악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 그 날 그 때 짧은 순간에나마 의지했던 그 사람의 어깨는, 어느 초가을날 아직 여름의 기색이 남은 햇살 아래 기댄 나뭇등걸마냥 청명한 데가 있었으니까. 그러니 이건 아마도, 불운하게도 에어컨 바람을 직통으로 맞는 자리에 있었던 스태프의 어깨려니 하고 부축해주는 이가 누구인지 보면─
자신이 여기에 부른 사람이, 그러나 지금 여기 이 순간 있어서는 안 될 얼굴이, 생전 그런 표정을 지으리라곤 생각해본 적 없는 표정을 하고 영월을 바라봐오고 있었다. 물건을 보는 눈빛. 그것도 아주 걸리적거리는 물건을 보는 것만 같은 눈빛. 신발 밑창에 달라붙은 껌이나, 한가득 쌓인 분리수거되지 않은 쓰레기더미, 혹은 출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반짝이는 차의 모퉁이에 생긴 커다란 흠집을 바라보는 그런 눈빛... 당장 죽이고 싶을 정도로 혐오스럽다 하는 극단적인 색채의 증오도 아니고, 짜증과 그 궤를 같이하면서 짜증보다 훨씬 유독하기 그지없는 회색의 매캐한 증오를 두르고 한 쌍의 눈동자가 어둑어둑해진 사위 가운데서 선명히 영월을 바라봐오고 있었다.
마지못해 툭 던져지는 매정하다 못해 야멸찬 한 마디.
"되지도 않는 술을 왜 그리도 퍼마셨어."
그는 스스로 이미 정답을 정해둔 질문을 던져왔다. 그야 당연히 영문도 모르고 버려진 채로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삼 년 동안 얼굴도 마주치지 못하고 이별을 경험한 서슬퍼렇게 날이 선 인간을 눈앞에 마주했으니, 불러놓고도 외면하고 싶어서 맞은편이 아니라 술병과 술잔에 시선을 두었겠지. 네가 불러놓고도 이건 아니다 싶었던 거겠지. 네가 나를 이런 꼴로 만들었는데, 이런 꼴이 되어버린 나를 네가 새삼 마주보고 싶어할 리 없다. 그것이 강청이 정해둔 정답이었다. 영월이 혹여나 발걸음을 멈췄으면, 조금이라도 멈칫했다면, 그 즉시 "걸어." 하는 싸늘하고 딱딱한 명령조의 말투가- 살아생전 언감생심 그에게서 들어볼 거라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날선 어조가 한 마디 더 와서 꽂혔을 것이다.
가는 길에 누군가 마주칠 일은 없을 것이다, 하고 자신하려면 그 반대로 남들보다 일찌감치 자리를 떴어야 했다. 그도 아니면 적어도 가장 마주치기 싫은 한 사람의 행방 정도는 확인하고 자리를 떴어야만 했다.
진실게임 속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느라 조금 신이 난 기분과 문자에 답을 하고 나서의 심란한 마음이 섞인탓에 자신의 주량보다 술을 더 해버렸다. 슬슬 세상이 빙글,하고 돌아버리는것만같은 느낌에 분위기를 한번 살핀 채린이 조용히 몸을 일으켜 자리를 벗어났다. 술을 깨기위해 근처 카페에서 커피라도 한 잔 해야겠다고 생각한 채린은 후덥지근한 공기속에서도 반짝거리며 제 빛을 뿜어내는 밤하늘 속 별을 바라보며 휘청휘청 걸음을 옮긴다.
"아으, 어지러워라."
위태롭게 휘청이며 걷던 발이 꼬이려던 찰나에 잠시 자리에 멈춰서서 중심을 잡은 채린이 고개를 두어번 흔들고는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바로하던 시선끝에 불이켜진 카페의 간판이 들어온다. 찾았다. 마침 잘 발견했다는듯 배시시 웃으며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안녕하세요. 음.. 아이스바닐라라떼 한 잔 주시겠어요?"
술이 오른와중에도 몸에 배어버린 친절함이 자연스레 풍겨나왔다. 양손으로 예의바르게 카드를 건네주고 건네받은 채린은 카드와 함께 건네받은 진동벨을 들고 잠시 앉아있을 자리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분위기에 맞추려 억지로 마신 맥주 한 잔은 연호에게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술자리의 공기는 음료수만 홀짝인 사람이라도 취하게 만들 듯한 마력이 있었으므로, 연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커졌고 톤은 높아졌다. 어쩌면 그것은 애꿎은 공기 탓을 할 게 아니라 불안감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전 연인인 채린이 누구를 선택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으므로. 그러나 자신을 선택해주었다는 사실에 연호는 다른 이와 채린이 함께한다는 걱정이 조금이나마 떨어져나가는 것을 느꼈지만, 과연 이런 식으로 안일하게 마음을 놓아도 되는지 전연 알 수가 없었다--
「둘이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얼마나 기대하고 또 혼자서 얼마나 희망을 가져도 되는가? 마음속으로 떠오르는 질문에 연호는 아직 대답할 말을 찾아내지 못했다. 술자리에서 슬쩍 빠져나가는 채린== 연호의 시선은 술자리의 분위기에 흩뜨려진 것 같으면서도 절대로 그 뒷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간 뒤에, 연호도 조용히 일어섰다. 바람이라도 쐬고 금방 올 것처럼, 술자리의 미덕에 상응하는 존재감 없음이었다.
그대로 그녀를 따라 걷는다. 둘의 간격을 좁히고 싶으면서도 좁힐 수가 없다. 발걸음의 속도 문제는 아니다. 발걸음에 비례하는 마음의 간격과의 문제가 아닐까. 카페에 들어가는 채린의 뒷모습을 따라 잠시 머뭇거리다 따라 들어간다. 연호로서는 그 외의 선택지를 찾을 수 없었던 탓이다. 어느 카페 종업원이라도 환영할만한 손님의 태도로 커피를 주문하는 채린이었다. 바뀐 게 없구나. 둘의 사이는 바뀌어버렸는데. 연호는 채린이 카운터에서 멀어져있는 동안 눈을 곱게 접으며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새로 받은 진동벨을 들고 채린의 뒷모습을 본다.
언제까지나 술래잡기가 이어질 수는 없다==
연호는 채린의 시야에 드는 테이블 하나를 택한다. 한 손으로는 채린이 앉기를 바라는 의자를 앉기 편하게 빼놓으며 다른 쪽 손으로는 어느 부잣집 집사처럼 의자를 곱게 향해 가리키고는.
한창 좋았던 때와 판이한 어투를 듣고서 씁쓸함이 미소 뒤에 드리워진다. 연호는 제 음료와 함께 냅킨을 몇 장 가져와 습관처럼 테이블 중간에 올려놓는는다.
"........"
일단 앉기는 했는데 말이 쉽사리 꺼내어지지 않는다. 연애 초기와는 또 다른 말문 막힘에 연호는 사뭇 당황한다. 잔의 손잡이를 그저 매만지다가 양손을 깍지껴 턱 아래 받치고 슬그머니 묻는다.
"속은 괜찮아요? 아까 조금 무리하는 것 같던데...."
술자리때부터 쭉 보고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빤히 그녀만 보고 있으면 곤란하니 슬쩍슬쩍 시선을 분산했다 할지라도 전 연인이 뻔히 알고 있는 주량을 넘긴다거나, 조금 취한 것 같다거나 하는 건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목소리도 어느새 어색한 사무조가 되어 있었으려나.
의자 끌리는 소리== 연호는 상체를 앞으로 해 채린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러면서 다정한 목소리로,
"저런, 천천히 마셔요."
누구 때문인지도 모르고 이렇게 구는 것인지. 채린의 기침 소리가 잦아들자 연호는 몸을 제자리로 돌려놓은 뒤 채린의 안색을 살핀다.
"괜찮다니 다행인데 그래도 갈 때 같이 편의점 들렀다 가요."
숙취 해소제라도 챙겨줄 작정이다. 연호는 이전과는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나 연인이라는 이름표가 떼어졌다는 것만으로 한 사람의 다정한 행동이 바로 바뀌지는 않는 모양이다. 게다가 연호는 이 상황에 챙겨줄 수 있는 것을 모른척하고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잠시 침묵==
"...저기, 아까 날 선택했더라구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연호는 입도 대지 않은 커피잔만 만지작대며, 그러나 채린과 눈을 마주치지는 못한 채 입을 달싹거려 물었다.
끝까지 존댓말을 하는 채린에게 연호는 슬픈 눈길을 보낸다. 헤어지겠다는 마음은 처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보다는 그녀에게서 더욱 깔끔하게 묶여있던 모양이었다.
"그래....?"
상대는 궁금해서, 라고 답한다== 좋을대로 일이 풀리는 결말은 역시 무리였던 모양이다. 연호는 입술을 잘근 물었다. 그러고 나서 마음을 추스리고 고개를 들었던가.
"거기에 대한 답을 해주자면 나는....."
연호는 이쯤에서 말을 잠시 멈추었다.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을까? 네가 차버린 전 연인은 아직도 미련이 지독하게 남아 당신과의 재회를 희망하고 있다고? 구질구질하다고 느껴지는 건 아닐까. 그럼 역효과가 나는 건 아닐까.
솔직하게 말하면 이별이 처음은 아니었다. 각기 다른 상대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그들은 같은 이유로 이별을 선언했다. 몇 번의 사랑과 이별을 거쳐오면서도 연호는 바뀌지 않았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인 듯 싶었으나, 채린에게 남은 미련이란 이번에는 영원한 이별이 아닌 새로운 결말을 원했다.
"....다시 잘해보고 싶어서, 가능하다면. ... 그리고 정말 그게 안 된다면, 자기에게 새로운 사람이라도 찾아주고 싶었어."
그 말을 하는 동안 무언가가 가슴을 찔러왔다. 새로운 사람을 찾아주다니, 이 얼마나 어이없는 배려인가? 당장 시간을 보낼 상대도 자신이 아니었다면 속을 찢는 듯 고통스러웠을 것을. 자신을 헤집어가면서 타인을 위하는 배려, 이런 남자가 정연호였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은 내가 답해줄 수 있는 게 아닌걸. 나도 듣고싶어. 자기는 무슨 생각으로 나오기로 결정했어?"
채린이 계속해서 남 대하듯 하더라도 자신의 어색한 존댓말 같은 것은 치우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그것은 미련이 남아있다는 연호의 입장을 공고히 했다.
다시 잘해보고 싶다는 말에 마음이 울렁이던것도 잠시. 뒤이어 자신에게 새로운 사람이라도 찾아주고싶었다는 말이 들려오자 자신이 방금 들은게 맞는건가 싶은 마음에 어이가 없어지는것이 느껴졌다. 이 얼마나 어이없는 배려인것인가. 기억속 스위치가 켜진것처럼 새삼스레 둘의 이별의 원인이었던 어이없는 배려들이 떠올라 채린의 눈빛이 싸늘하게 내려앉으며 그와 반대로 얼굴에 한층 더 상냥해진 미소가 떠올랐다.
"... 제 연애는 제가 알아서해요 정연호씨. 그러니까 정연호씨가 저에게 새로운 사람을 찾아줄 필요는 없어요"
말은 새로운 사람을 찾아줄것이라는둥 했더라도 속앓이를 하고있을게 뻔한 이 남자가 너무 미련하고 안쓰러워서 기분이 가라앉는다. 배려심넘치는 사람이 좋긴하지만 배려랍시고 자신을 갉아먹으면서까지 남을 위하는 이 남자가 정말이지 너무 미련하다. 예전보다 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나아지지는 않아보이는 연호의 모습이 조금 답답하게도 느껴진다.
"..글쎄요. 어쩌면 정연호씨가 조금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었나봐요. 그런데 여전하시네요."
상냥해진 미소에 대조적으로 눈빛은 온도가 낮다. 연호는 경험적으로 채린의 그런 표정이 어떤 감정을 의미하는지를 잘 알았다. 자책하듯 한 마디를 뱉은 연호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래도 오랜시간 자기가 힘들어 할 거라고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었어.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거라고들 하니까.... 그건 사실이잖아."
여전하다는 채린의 말이 날카롭게 들려왔다. 사실이었다. 연호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재회를 원하는 주제에 변함이 없는 걸 일부러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바뀌어야 한다면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막막하기만 했다. 아이들의 하원을 도우러 오는 부모들의 무리한 요구를 딱 잘라 거절해야 하나? 가게의 종업원들에게 그렇게 웃지 말았어야 하나? 정연호라는 사람의 <친절>이란 정체성의 하나가 되어버린지 오래였다. 대공사였다. 채린은 부분공사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연호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모르겠어. 친절한 사람이 좋다고 했을 때는 이런 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거라 생각...."
그제서야 잔을 붙잡은 연호의 손이 떨렸다. 말을 더이상 잇지 못하고 한 눈에도 떨리는 손으로 쓴 커피를 머금었다. 커피가 잔 안에서 넘치지 않은 것이 용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큼큼, 목을 가다듬은 연호는
"하나만 물을게. 내가 남처럼 대해주길 바래?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다른 참가자들과 마찬가지로?"
끝까지 이어지는 채린의 존댓말이 겁나고 낯설었나 보다. 연애하기 전과 비슷한 말씨이지만 그때로 이렇게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연호의 목소리가 본래의 톤에서 조금씩 어긋났다.
>>933 귀여워~ 귀여워~!~!~!!ㅋㅋㅋㅋㅋ 연호 속으로 쬐끔 상처받고(아저씨라니!) "호야 여깄어요~ 집에 가자 옳지 옳지" 하고 아이 어르는 말투로 채린이 업어주거나 걸음 부축해서 차에 태웠을 것 같아~ 예정에 없던 술자리는 채린이 친구들한테 연락받았을 때도 많았겠다. 그 친구들한테도 채린이 챙겨줘서 고맙다고 뭔가 박스째로 사와서 나눠줬겠지? 이런 게 문제야, 문제(절레절레)
싸늘한 분노로 부글거리던 속이 자책하는 연호를 보며 약간 사그라들었다. 예전부터 이랬다. 참다못해 한마디를 하면 자책하고 지레 겁을 먹던 사람이었다. 잔을 붙잡은 손이 눈에띄게 떨리는것이 꼭 유약한 연호의 성격을 보여주는것같아 한숨이 새어나온다. 본래의 톤에서 조금씩 어긋하는 목소리가 조금만 더 하면 눈물이라도 터트릴 모양새였다. 본래 좋지못한 성격탓에 울려볼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지만..
"...됐어. 그냥 편한대로해요."
겁을 잔뜩먹은 이 남자에게 이 이상 화를 내는게 무슨 소용일까싶어서 맥이 탁, 풀린다. 우리의 관계는 항상 이랬다. 항상 그랬던것처럼 자신은 겁먹은 연호에게 져줄 수 밖에 없었다.
"남처럼 대해달란다고 그렇게 해줄것도 아니잖아."
맥이 풀렸다고해도 어쩔 수 없는듯 채린의 목소리에 약간의 싸늘함이 서려있다. 커피잔을 든 채린이 연호의 시선을 외면하며 커피를 한 모금 넘긴다.
연호는 그냥 편한대로 하면 그대로 이별이지 않느냐는 바보같은 질문을 꾹 물어 삼켰다. 그렇게 해줄 것도 아니지 않냐는 물음에 연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자기가 원한다면 난 그렇게 할 거야.... 아주 완전히는 안 되겠지만 그래도."
사귈 때에도 원하는 대로 모두 해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안 되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면 뿌리 속부터 자신의 변화였을까. 안 되는 거였는지, 어려운 거였는지, 안 하는 거였는지, 연호는 이제 와서는 조금 알 수 없어졌다. 변화는 두려웠다. 그에서 오는 타인들의 반응이 두려웠고, 변화하면서 이래저래 부딫치며 깨져갈 것이 두려웠다. 그러나 정말 그 두려움은 연인을 잃게 된다는 공포보다 컸는가?
연호는 소리없이 심호흡을 하며 울음을 흘릴 것 같은 마음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려 무진 애를 썼다. 시선을 외면하는 채린== 어긋난 둘의 관계를 형상화한 것만 같다.
"다른 사람들과는.... 얘길 좀 해 봤어? 어때 보여?"
가급적 울지 않을 것 같은 주제로 슬쩍 말머리를 돌려보는 연호였다. 그러나 정말 궁금한 것은, 채린에게 첫눈에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느냐는 것이었겠지==
스르르 고개를 떨구는 연호를 보며 심장이 묵직하게 느껴졌지만 그 느낌을 애써 외면한다. 이게 맞는거니까. 연호가 원하는것처럼 다시 만나게되던 아니면 영영 이별을 맞게되던 이미 지나간게 되어버린 관계는 끝맺음을 하는것이 나중에 어떤 선택을 하든지 좀 더 매끄러운 출발을 만들어낼 수 있을터였다.
"...응, 그게 좋겠네."
삭막한 침묵이 둘을 감싸고 조용히 커피를 넘기던 채린은 문득 침묵이 너무 길다는것을 느끼며 커피잔을 내려놓는다. 고개를 숙여 드러난 분홍빛으로 동그란 머리통을 가만히 바라보다 어떠한 예감이 떠올라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연호의 앞에서 걸음이 멈추고 사부작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숙인 연호의 앞에 무릎을 굽혀 쪼그려앉는다.
그냥 이것저것 여러가지 불안한 가능성이 너무 떠올랐거든요. 쓸데없는 걱정일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지금도 아슬아슬한 분위기는 잘 나타나고 있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경쟁이나 심리전, 그리고 복잡한 감정, 그 속에서 얽히는 이야기. 이런 것도 때로는 재밌을 것 같더라고요. 일단 캐릭터들이 선택받을 수 있을지 말지는 별개로 치고요. 개인적으로는 선택되는 것보다는 뭔가 조금 아슬아슬하고 마냥 밝지만은 않은 연애 스레를 해보고 싶었기에!
관캐가 생겨서 잘 되면 좋은 거기도 하고 아니어도 복잡한 심리 속에서 꼬이는 인간관계를 보는 것이 또 재밌잖아요? 일단 전 그래요!
술기운이 오르긴 올랐는지. 부축하는 이의 기척을 닿고서야 눈치챘다. 실제로는 판단에 시간이 좀 걸렸다만. 사람이라기엔 딱딱하고 어디 기둥이라기엔 희미한 온기가 있어서 그랬다. 그녀가 부딪힌게 아니라 누군가 옆에 있는 것이고, 그의 행동이 부축이란 걸 알자 그녀는 거절하고 혼자 가려고 했다. 그대로 거절의 말을 내뱉었으면 좋았을 것을. 왜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보고 말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았을 때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던 두 시선이 피할 곳 없이 마주했다. 술기운에 반쯤 풀린 그녀의 눈이 싸늘하다 못해 무기질적인 그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의도했을까. 그럴 리가 없다. 마주 앉아 질문을 했을 때조차 제대로 못 보았던 눈을 이제사 어떻게 보겠는가. 그저 주최측 스태프겠거니 하고 경계 없이 고개를 든게 화근이었다. 단단히 얼어붙어 새파란 눈을 보자 전신의 피가 싹 식는다. 마치 메두사를 본 것처럼 굳은 그녀를 때리는 두 마디 말에 정신이 돌아온 것도 아니러니하다.
"그, 저,"
반박이든 변명이든. 무슨 말이든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가 서둘러 고개부터 내렸다. 시선을 피하자 돌아오는 체감은 목이 바싹 말라들어가듯이 뜨겁다. 조금만 더 지체했다간 아무 말도 못 하고 이대로 끌려갈 것 같아서, 그녀는 더 고집스레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그의 부축에서 벗어나려 어깨를 비틀고 팔을 밀어내며 대꾸를 쥐어짜냈다.
"저 혼자, 서도 걸을 수 있어요. 갈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필요없다- 고는 말하지 못 한다. 그저 부축에서만 벗어나 그와 거리를 두려 뒷걸음질을 치고, 시선을 바닥에 꽂고서 기숙사 방향으로 돌아선다. 너무 당황해서인가. 순간적으로 눈앞이 핑 돈다. 평소라면 주저앉았을 것을 어찌어찌 버틴 건 그의 앞에서 그런 꼴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모종의 일념 하나 때문이었다. 입술을 꾹 깨물고. 팔로 자신을 감싸고. 금방이라도 과호흡이 올 것처럼 숨을 몰아쉬다가 굳은 다리를 끌어 다시 느릿하게 걷기 시작한다. 직- 지익- 신발 밑창 끌리는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시끄러웠다.
이럴 줄 알았다. 아니나다를까 눈물을 흘리고있는 연호의 모습에 한숨이 새어나온다. 이 여린 남자를 어쩌면 좋을까. 헤어졌다는 사실을 명시해주기만했는데도 이리도 서럽게 울면서 새로운 사람과 이어주고싶다는 말은 또 어떻게 한것인지.
"..일단 고개들자. 그렇게 울면 나중에 또 힘들잖아. 응? 호야."
헤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않는다면서 눈물을 보이는 연호를 밑에서 올려다보며 할말이 많은 표정을 짓던 채린은 일단 연호를 달래는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다다른다. 잠시 망설이던 손길이 얼굴을 가린 연호의 손을 떼어내려한다. 서럽게 우는 남자를 달래기위해 연애를 할때나 불렀던 애칭을 다시 입에 올린다.
그런 건 시시한데. 욕심 없는 사람. 오늘 그의 첫인상이었다. 고작 한 조각 가지고 기억에 남겠어요, 하는 물음은 삼키고 고개를 돌려 경치를 감상했다. 그도 그럴게 은석의 x와 구월은 다른 점이 너무도 많아 보였다. 적어도 구월이 그의 춰향이 아닌 것 같다는 건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다. 저도 마찬가지지만.
"별 거 없어요."
어떠냐고? 구월은 해맑은 눈웃음으로 귀엽게 웃으며 귀엽지 않은 말을 한다. 타인과의 데이트? 지긋지긋하지. 너와 헤어진 후 주변의 강요와 그동안 구월을 눈여겨 보고 있었던 이들의 수많은 연락을 받았고 질질 끌려 다녔다. 지겨울 따름이다. 낯선 사람과 데이트 한번으로 가슴이 뛰거나 설렌다는 것은 동화 속에나 있을 법한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구월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전 연인이 같은 공간에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운 이성과 바로 히히덕 거리는 것 부터가 얼간이 같다고 생각한다. 말도 안되는 수상한 프로그램인 것을 알고 나왔지만 은석의 질문은 더 고개를 기울이게 만든다. 미련이 있다 한들 이미 헤어진 사이고, 따라서 너와 데이트를 해야할 이유도 적당하지 않다. 결국 은석 외에도 이곳의 누구와 데이트를 함께 한다고 해서 특별할 것 없다. 뭐 별 거 라고. 현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마지막 날엔 펑펑 울며 후회할지 방긋 웃는 얼굴로 떠날지 지금의 나는 모르는 거니까. 이무튼 결론은 구월은 이곳에서 그다지 의미부여를 하고 싶지 않다는 거 였다. 사실 별 생각 자체를 안하는 걸 지도. 자신이 먼저 아슬아슬한 농담을 던져놓고도 말이다.
"그럼 3개."
오늘의 구월은 딱 3개만 알려 줄 거에요. 손가락 3개를 보여들고선 은석의 리드에 따라 느긋하게 걸었다. 첫 날부터 모든 걸 오픈하기 보다는 뒷면을 만들어 어느정도의 신비주의를 유지하는 게 더 매력 있다. 당연하게도. 구월은 은석을 의식하지 않고 주변 풍경을 둘러보며 작게 흥얼거린다.
"이상형이었어요?"
전 애인 분. 그렇게 평화롭게 잘 걷는 듯 하다가도 툭. 상대방의 x관한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뾰족하게 깊숙이 찔러 넣는 게 정말 뜬금없는데, 또 악의 전혀 없이 단순히 호기심에 의한 순수한 얼굴이라 웃는 얼굴에 침 뱉기도 어렵겠다. 구월은 뒤로 손깍지를 끼고 햇살을 내리쬐며 나른하게 걸었다. 너는 뭐하고 있으려나.
>>977 헉 나두 좋다~~ 그때쯤이면 얜 22-23세 정도였겠네! 사귀기 시작한 건 아마 이녀석 군대갔다와서가 아닐까 싶어. 첫사랑이라니 영광입니다 (real) 완전 좋아햇지만 어케 헤어진 건지도 설정해야 하니까 뭔가 심각한 이유가 있었나...? 0ㅁ0 구월주는 어디까지 생각해놨는지 궁금!
구월이가 휘둘리기보단 휘두르는 성격이고 선율이는 자존심없고 자아감이 흐릿한(ㅋㅋ) 느낌이라 둘이 성격 몬가 신기하게 잘 맞았을 것 같아 ㅋㅋㅋㅋㅋ 선율이는... 진짜 완전 잘해주려고 햇을듯... 잘해주고... 애껴주려고햇을듯... 그 이후는 헤어진 이유가 뭐가 되냐에 따라 다르겟지만...
연호를 달래려던 의도와는 다르게 아이처럼 서럽게 우는 연호를 보며 마음이 약해진 채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습관처럼 연호를 안아주려다 멈칫한다. 헤어진 사이에 포옹을 한다는것이 주저되는것같았다. 대신 조심스럽게 연호의 어깨를 토닥인다.
"..이럴꺼면..."
눈물을 닦는 연호에게서 나온 말을 들은 채린이 무언가 말을 하려다 참아낸다. 이럴꺼면 헤어지기전에 행동을 고쳤여지. 이럴꺼면 이 프로그램에 나오기전에 나를 잡는 내용의 연락이라도 먼저 했었어야지. 이럴꺼면서 다른 사람에게 보낸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왜 해. 여러가지 말이 쏟아져나오려했지만 그런 말들은 꾹 참아내고 대신 한숨을 토해냈다.
"대체 아까부터 그 분 이야기는 왜 꺼내는건데 연호씨."
연호가 어느정도 진정이 된것같아 보이자 테이블 위, 그가 가져다놓았던 냅킨을 들어 연호에게 건넨다. 어느새 연호를 부르는 이름은 애칭에서 좀 더 거리감있는것으로 다시 변해있었다. 한시름 놓게되자 뒤늦게 눈물을 흘려 눈가가 붉게 변한 연호의 얼굴에 자신이 약했던것이 떠올라 시선을 돌린 채린이 다시 자신의 자리로 걸음을 옮기려한다.
구월이가 시러하는 건 설교 잔소리 집착... 오선율 자기 생각은 있는데 에고가 쎈 타입이 아니어서 남한테 그걸 강요하질 않음 마찰을 일으키면서까지 리드하고 싶진 않다는 것이 옳을까 잔소리도 마찬가지임 오히려 본인이 잔소리 들을 짓을 많이 하는 편 집착... 어 이거는... 어라... (고뇌)
>>982 앗 군필이었다면 둘이 멀어질 새도 없이 항상 알콩달콩 붙어 있었겠다 ㅋㅋㅋㅋ 너무 좋아 스물 초중반에 찐사랑 연애.. 최고다
나도 헤어진 이유 쪽에서 조금 고민이 되더라고 ;3 조금 생각해 둔 건
1. 한 쪽이 갑자기 일방적으로 차버리고서(이유는 찬 사람만 알고 있음 사정이 있든없든) '너 아직도 나 좋아해?' ㅋㅋ 하고 놀려 먹고.. 차인 쪽은 부들부들..어떠케 나한테.. 이럴 수 있어..(근데 아직 미련 개쩜 들켜서 명치맞음)
2. 아니면 둘이 진짜 결혼까지 생각하며 엄청 러부러부 했는데 진짜 어쩔 수 없는 이유로. 꼭 헤어져야 되고 결국에는 계속 만날 수 없는 이유로 할 수 없이 겨우겨우 정리했다가 한쪽이 결국 얼굴이라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프로그램 신청해서 남은 한쪽도 한숨 쉬면서 따라나온..
3. 그것도 아니면 선율이가 집착이 있어서 구월이가 그게 지긋지긋 해져서 헤어진? 구월이는 선율이가 좋지만 한편으로는 밉고 싫은 약혐관 관계도 재밌을 거 같고
4. 아니면 선율이가 구월이를 일방적으로 질려버려서 차버렸다! 서로 재회 생각 없이 프로그램 나와서 다시 만났더니 구월이는 이미 마음 정리 거의 해버렸고(상처가 커서) 선율이는 얼굴 다시 봤더니 두근거렸다
이 정도루...^^ 여행 중에 생각해봤는ㄷㅔ 혹시 끌리는 거 있을까?(허억..허억.. 나도 선율이 시트 보고 앗.. 이건 진짜 구월이 이상형이다.. 구월이가 좋아했을 거 같다.. 너무 잘 맞을 거 같다.. 해서 후다닥 찔렀었자너... 장난스러운데 연인한테는 엄청 잘해준다는 점이 진짜 치여 구월이는 그냥 선율이랑 있으면 숨만 쉬어도 즐거워서 뭘 해도 다 받아주고 같이 있어줘서 넘 좋아햇을거같애..
겨우 한조각이라는 말에 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어쩌겠는가. 지금 여기서 여러 조각을 심어놓고 싶다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아니겠는가. 적어도 지금 시점에선 자신은 그 이상 뭔가를 할 생각은 없었고, 그 이상의 것을 받을 생각도 없었다. 물론 이미 전 연인에 대해서 마음을 정리하고 새로운 사람을 바로 보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나 적어도 자신은 아니었다. 허나 그런 속내까지 내비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그렇기에 그는 그런 속내는 비추지 않았고 그에 대해 특별히 무슨 말을 하지도 않았다.
별 거 없다라는 말에 대해서 은석은 아무런 말 없이 구월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다지 신경 쓰이거나 하진 않는걸까. 이를테면 지금 자신의 옆이 아니라 전 연인의 옆을 걷고 싶다던가. 물론 자신의 물음이 그다지 전달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싶었는지 그의 입이 살짝 움찔했다. 말을 할까. 말까. 물을까 말까하는 고민에서 나온 행위였다. 그렇게 입을 열려는 찰나 3개라는 말이 나오자 그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 정도로 족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충 할 생각도 없었다. 어쨌건 자신에게 주어진 미션이고, 자신은 그녀와 데이트를 해야만 했으니 최소한의 구색은 맞출 생각이었고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이 시시하다라는 생각을 두고 싶진 않았다. 물론 그것이 자기 마음대로 되는 일이겠냐만.
"현관에서도 느낀 거지만, 그야말로 훅 들어오시네요.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고, 생각도 못한 물음이라서."
천천히 걸어 자신이 알고 있는 루트를 따라 그는 공원 쪽으로 향하려고 했다. 그 근방에는 조용히 앉아서 시간을 보낼 곳도 있으며 근처엔 카페도 있었다. 그리고 분수대도 있었지. 적당히 더위를 식히면서 가볍게 시간을 보내기엔 그럴 곳이 없었다. 아주 살짝 앞장서듯 걸으며 그는 일단 물음에 대답했다.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으로 맞춰주고,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대등하게 같이 앞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기에 이상형에 가까웠죠. 일단 이 정도로만 대답할게요. 어쨌건 데이트인데 다른 여성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매너는 아니잖아요?"
물음에는 답하지만 그 이상 뭔가를 말할 생각은 없다는 듯, 그는 그 부분에 대해선 약하게 선을 그었다. 이내 자신의 앞머리카락을 정돈하며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넌지시 물었다.
"그럼 첫번째. 무슨 음료를 좋아해요? 지금은 인테리어 공사중이라서 휴업중이지만 어쨌든 카페 점장이거든요. 기회가 되면 좋아하는 음료를 만들 수 있으면 대접해볼까 해서. 맛 평가를 해줘도 좋고, 그러다가 마음에 들면 제 카페에 찾아와서 단골 해줘도 좋고."
그 물음은 정말로 단순하기 그지 없는 물음이었다. 그것으로 끝일지, 아니면 그냥 시작만 가볍게 한 것인진 그만 알 일이었다.
토닥임에 잦아든 울음소리== 무언가 말하려 한다는 걸 연호도 모르진 않았었으리라. 그러나 어떤 얘기가 나올 건지 무서운 건지 어떤 건지 뒷말을 굳이 캐내진 않는다. 어느새 다시 호칭이 바뀌었다. 연호는 이에 적응해야 했다. 어쩌면 앞으로도 한참 더 오랜 시간을 적응해야만 할지도 몰랐으니. 연호는 채린의 손에 들린 냅킨을 괜찮다며 거절한다.
"자꾸만 질문 던지는 게 채린 씨에게 관심 있어 보였으니까.... 채린 씨도 그렇게 느끼지 않았어?"
자신이 이런 사소한 접점에 질투심이라는 게 일어나는 사람이란 걸 헤어지고 나서야 알았다. 너무나 늦지 않은가. 그 전에는 채린이 다른 이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더라도 별다른 질투를 하지 않던 연호였다. 연호의 친절은 채린에게 죄였으나 채린의 친절은 연호에게 죄가 아니었다. 자신이 대해지고 싶은 만큼 채린을 대한 탓이다.
"채린 씨같은 사람, 다른 사람도 알아보겠지...."
그래서 싫어, 라는 뒷말은 애꿎은 공기에 희석해버렸다. 부정어를 피하는 어린이집 교사란 사람이 언제부터 이렇게 부정어만 쓰게 된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채린에게 더이상 구차하게 매달려야 옳은지, 미련을 떼어주는 게 좋은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아직은 포기하기에 너무나 이르지 않은가.
구월이도 선율이도 서로를 진짜진짜... 좋아했지만... 진지하게 미래를 고민할 시점까지 올까말까 했었긴 했지만... 행복해하는 여자칭구를 보면서 그때서야 오선율은 깨닫고 만 것이다 지는 관계가 깊어질수록 상대를 굉장히아주많이 소중히 여기게 돼서 자꾸만 귀찮게 군다는 걸. 평소에 구월이가 난 집착하는 사람은 별로 안 좋아한다거나 그런 걸 종종 말했어서 선율이는 이대로 관계를 지속한다면 난 분명 구월이에게 이 이상의 행복을 줄 수 없을 거다, 그렇게 혼자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 외에도 자긴 종종 불안정한 모습도 보이고 미래도 아주 확실하진 않고 평생 이 관계를 책임질 수 있을까를 확신할 수 없으니까. 지금이 행복의 정점이라면 이후로는 어떻게 될까, 지금까지는 내가 그저 애정으로 집착을 덮어 온 걸까, 이대로 헤어지자고 말하면 구월이는 분명 납득하질 못하겠지. 그냥... 지가 본인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는거임...
그래서 오선율... 나 대학도 졸업하고 일도 하고 그런데 너랑은 헤어져야겠어. 이쥐랄 선언함 내가 사정이 있어서~ 하면서 일방적으로 내가 나쁜놈 돼서 네 탓 안 하고 네가 상처 최대한 안 받게 해서 사라져줄게 응응 잘가... 했지만 어찌됐건 여친 납득은 못 시키고 헤어짐
근데 막상 헤어져 보니 너무... 그리움... 곁에 있던 여친 없으니까 자기 생활도 나아지는 게 없고 마음속에 공허감이 개쩌는거임 ㅋ ㅋ ㅋ 내가 실수한건가? 내가 내 성질머리 고칠 수 있는데 성급하게 판단한 건가? 와... 그냥 외로움이 극에 달해서 미쳐버린 건가? 본인도 확신은 못함 이게 구월이가 없어서 그런 건지 아님 그냥 곁에 애인삼을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건지. 전자라고 확신했으면 이왕 존심도 없겠다 그냥 졸라 용서빌고 매달리면 되겠고 후자인게 확실하면 다른사람 만나러 가면 되는데 얘도 갈팡질팡하니까 구월이한테 다시 연락해서 너... 너 잘지내...? 한거임(ㅋㅋㅋㅋㅋ) 그래서... 둘이 프로그램 나갓다네요...
우리집 아들램을 좋아해줘서 고마워... ㅠㅠㅠㅠ 진짜 잘해줬을 거 같아서 그냥 맴이 찢어지고 눈물이 남 ...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