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망자는 다시 가방을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비 처럼 쏟아지는 물이 불을 어느정도 막아주긴 했지만 저 가방이 터진다면... 소화전의 물로는 막기 힘들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좋은 말씀 듣고 가라는 외침과 함께 원반 처럼 회전하는 뚜껑이 열망자의 등에 적중하고... 마치 내던져진 인형마냥 튕겨져 나간 열망자는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가..철퍽 하고 쓰러졌다.
"....해치웠나?"
아..실수
" .... "
바닥에 쓰러진 열망자는..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태호와 나를 노려보았다 먼지로 엉망이 된 정장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며..점점 그의 몸이 붉게 물들었다.
시윤은 말없이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손바닥을 앞으로 쭉 뻗은 것은 무언가를 붙잡고 싶다는 마음이 저도 모르게 행동으로 드러난 것이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기보다는 가만히 손을 잡아주는 배려가 소녀의 작은 염통을 뛰게 만들었지요. 친구가 옆에 있을 때에야, 비로소 세상에 떳떳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모든 일에서 그렇습니다. 라임은 손가락을 쫙 편 채로 꼼지락거리는 것을 받아주다가, 손가락을 움직여 그의 손을 밀어낸 다음에, 소맷자락을 쥐는 것처럼 그의 손가락을 가볍게 붙들고서 자연스럽게 손을 내렸습니다.
'입맛도 없고 사람 많은 곳은 별로인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래에서 올려보는, 망설이는 녹빛 눈망울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 그럴까?"
라임은 그의 손가락을 붙들고서, 몸을 돌려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려 했습니다.
//3 앞에는 상황 설정이 너무 과했던 것 같아서, 그냥 '안 좋은 일이 있었다' 정도로 하고 넘어가 주면 될 것 같아! 약간 토끼 피해망상 도진 느낌
나는 눈 앞의 소녀가 가볍게 손을 밀어내곤, 그 뒤에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붙드는 것을 지켜본다. 꼭 쥐고 있는 것은 답답해서 원치 않지만, 반대로 멀어지는 것도 두려워 한다는 느낌의 움직임. 그녀의 그런 태도는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나에게는 슬슬 익숙해져서, 어디 안간다는 듯 얌전히 받아줬다.
생각에 잠긴 나의 눈동자과 그녀의 망설이는 눈망울이 마주친다. 아무래도 꽤나 상심한 상태니까 피로할만한 곳은 피해달라는 의미 같다. 그렇다면 가끔은 말로 해도 좋을텐데, 눈치껏 알아주기를 바라는 건가. 여자아이들은 종종, 아니 상당히 그렇게 응석을 부리는 경우가 많구나.
나는 대충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다만, 구태여 뭔가를 입으로 설명하진 않았다.
"아는 가게가 있어."
대신 몸을 돌려 되돌아가려는 그녀에게, 반대편 방향을 가리키며 적당히 말하는 것이다. 시끌벅적한 대운동회의 열기를 피해 어울리지도 않게 이런 외진 골목으로 왔다면, 아마 돌아가고 싶진 않겠지.
좀 많이 화나신 것 같은데.. 그게 곧 내가 잘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아님 말고. 아무튼.. 대치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저분이 좀 화끈화끈 하시니까 거리를 벌려두는게 좋겠지.
손에 들고있는 폴라칵스티에 의념을 불어넣어 길이를 늘려 장검으로 만든 뒤, 손잡이를 양 손으로 잡고 서서 불속성 아저씨를 겨누고 천천히 앞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공격 각도 좁힐 겸, 일단 기본적으로 가디언들이 도착할때까지 대치하는걸 주 목적으로 두겠지만 이미 훼까닥 한 놈이니까 주변 민간인들 공격한답시고 날뛸수도 있으니 상황에 따라 직접적인 제압까지 염두에 두고
기숙사에서 공부하기 보단 이 쪽이 나을 것 같아서 자리하고 있는 나는 작게 하품한다. 요 근래 수련과 공부에 열중했더니 피로가 누적된걸까. 아무래도 집중이 잘 안되는군. 침침한 눈을 비비며, 어느샌가 대련 대회에 대한 내용이 난잡하게 적힌 노트를 내려다본다.
이 상태면 앉아있어봤자 진전이 없겠군. 아무래도, 잠깐만 선잠을 자둘까.
...
지옥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끔찍한 괴물이 있고, 주변에서 쉴 새 없이 비명이 울리고, 자신의 무력함에 절망하는 곳? 그렇다면 아마도, 여기가 지옥이다. 지옥이란 것은 죽지 않아도 갈 수 있었군. 몰랐다.
지켜야 할 것들은 모두 간식거리가 되고 있다. 내가 해왔던 것들은 모두 장난거리로 여겨지고 있다. 수 많은 시선이 이쪽을 향한다. 구원을 바라고, 무능을 원망하고, 상실에 절규하고. 결국엔 모두 잡아먹힌다. 그 끝엔 오로지, 식욕에 가득찬 눈동자를 정면에서 마주해버린다. 뚝, 침 한 방울이 바닥에 떨어진다.
전신의 털이 거꾸로 솟는 기분과 함께, 새하얗게 물든 머릿속에서 짧은 한마디만이 울리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지.
....
"아아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갈 것 처럼 벌떡 일어선다. 그 충격에 덜컹하며 책상과 의자가 엎어지고, 뒤로 엉덩방아를 찧는다. 숨을 제대로 쉬기 힘들다. 전신이 푹 젖어, 피로감이 욱신욱신 찔러오는 것만 같다. 다급하게 근처에 거치해둔 총기를 붙잡곤 견착 자세를 취한다. 스코프를 통해 사방을 신경질적으로 둘러본다. 헉, 헉, 하고 거칠게 숨을 몇번 내쉬고서야, 이 곳이 지옥이 아니라 평화로운 교실 내부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거기에 추가로, 익숙한 얼굴의 소녀가 날 보고 있다는 것도.
"하아.........."
나는 창백해진 얼굴을, 땀범벅이 된 손으로 꾹 누르듯 쓸어내린다. 좋지 못한걸 보여버려서 일이 귀찮게 되었다. 그녀는 무슨 반응을 보일까. 나는 뭐라고 얘기하는 편이 좋을까.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지는걸 느끼면서. 일단, 인사를 건네기로 했다.
나른한 오후. 교실에는 선객이 있었다. 노트에 무엇인가 적어두고, 그 위에 엎드려서 자고 있는 모습의 익히 아는 사람의 모습. 공부하느라 피곤했던걸까. 깨우지 않도록 조심 조심 가까이 가서, 앞자리의 의자를 돌려서 상대방을 관찰한다. 얼굴이 살짝 살짝 일그러지는 모습. 악몽인가?
얼마 안 있어 생겨난 일련의 사건들. 싱겁게 인사를 건네는 상대. 일이 있던 직후에는 눈을 크게 뜨고 상대방의 행동을 바라볼 뿐이었지만, 이렇게, 간단한 인사를 듣게 되니 기분이 참 묘했다. 덕분에 얼굴에 인상이 팍 쓰여지는것도 어쩔수 없었지.
"안녕."
하지만 그게 상대의 잘못은 아니기에, 마른 세수를 하고는 얼굴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상대를 올려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