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건물 앞, 인적자원과 물류가 모여드는 대도시답게 복작한 대로변에서도 묘하게 인파가 몰려든 것처럼 보이는 거리 중심에 두 사람이 서 있다.
"오늘은 날씨가 좋네~. 정말 놀기 좋은 날이야! 그렇지 않아? ."
세상 물정 모르는 얼굴로 그저 이국의 수도가 신기한듯 이리저리 들뜬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흑발에 화려한 기모노 차림의 여성 한 명, 그리고 그 옆의, 메이드 복의 금발머리 소녀 한 명.
[(저해상도의 동영상 하나-핑크 메이드복에 얼굴은 흐릿하지만 묘하게 익숙한 인영이 보인다)] [소녀는 마츠시타 린이라 하고 개인적으로 얘기를 드리는건 처음이니 반갑사와요. 하유하양이라 하셨는지요.] [(동영상을 찍을 준비를 하는 금발 양갈래 소녀의 사진 하나)] [소녀가 고의는 아니고 다른 분의 부탁으로 허락을 맡아 간단히 기숙사의 생활에 대해 사진을 보내게 되어 찍던 중 얻은 사진이온데, 혹시 이 동영상은 유하양이 찍으신 건지요?]
"너무 소녀를 미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사와요. 저도 이 의뢰로 꽤나 곤란했던지라..."
메이드와 팔짱을 끼고 화려한 도시풍광에 호들갑을 떠는 철없는 아가씨를 연기하며 다른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속삭인다.
"대신 유하양이 곤혹스러운 일에 처하는 일은 없을거라 약조하겠사와요. 동시에 임무 이후 사진을 지우는 것도요."
그렇다 두 사람은 린의 gp에 대한 집착으로 맡게된 인신매매 마약유통등의 문제를 일으킨 의념범죄자 조직을 잡기 위한 의뢰 수행의 일환으로 잡입임무 중이다. 마약을 밀거래 하러온 사치스러운 어느 일본졸부의 딸역할을 맡은 소녀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여러 협박과 구슬림을 활용해 메이드역으로 꾀어낸 금발 드래고니안을 차분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렇게 꼬리가 잡혔을줄은 몰랐다. 저 동영상이 한태호에게 넘어가게 된다면 불안해서 학교를 다닐 수가 없다. 멱살이 아니라 배에 칼이 찔리거나 뿔이 잘릴지도 몰라..! 뿔이 잘리는 일은 죽어도 싫으니까 그 전에 생사결로 둘중 하나만 살아나가게 될지도 모르지.. 하여튼! 중요한건 이 영상이 태호에게 가지만 않으면 방금 한 모든 상상이 헛생각이 되는 것이니 유하는 마츠시타 아가씨에게 순순히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예 아가씨, 정말 좋은 날씨입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메이도라곤. 설정상 아가씨와 함께 유년시절을 보냈고, 신분의 차이를 몸소 깨달아 메이드 교육도 착실하게 받았다. 하지만 과거의 생각 없이 함께 어울려 놀던 날들의 추억이 떠오르면 그때는 종종 아무도 없는 곳에서 눈물을 훔치고는 하지.
프로-메이도라곤이 읊는 강남 명소를 흥미롭게 눈을 반짝이며 듣다가 점점 스몰토크 비중이 줄어들자 이에 삐진척 시무룩하게 뺨을 살짝 부풀리고 같이 말을 줄인다. 안내인의 안내에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 자리에 앉은 소녀는 지루하다는 티를 팍팍내면서 손가락을 탁자에 두드린다.
[아직 아니에요.]
모스 부호로 상태를 알리면서 유하를 힐끔 쳐다보다 다른 박자로 손을 두드린다
[유하양은 뇌전을 주력으로 하는 마도사라 들었사와요. 전원함을 찾지 않아도 교란정도는 마도로 가능할 것이어요.]
"난 바빠. 돈 줄테니까 빨리 물건을 줘." "이런, 아가씨. 중요한 물건이 조~금 멀리 있어서 가져오느라 시간이 걸립니다." "짜증나! 그냥 내가 가면 안돼?"
계속되는 실랑이에 이걸 어쩌지도 못하고 지친 밀매업자들이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여자를 질린 눈으로 바라보다 서로 눈빛을 주고 받는다.
"마츠시타양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저희가 모셔다 드리겠지만 대신 아가씨는 눈가리개를 써야 하며 혹시나 경찰의 추적이 있을지도 모르니 미리 간단한 수색에 협조해 주셔야 합니다. 메이드도 물론 데려갈 수 없습니다."
"수색? 으음- 잠시 기다려봐."
아직 다른 팀에서 이들의 전력과 건물의 구조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는데. 빠르게 눈치를 살피다 고민하는 척 소녀는 같은 의뢰를 맡아 협력중인 다른 팀의 메세지 기록을 확인한다. 그녀와 유하는 마약의 유통을 확인하고 폐기하는 것과 동시에 다른 팀이 인신매매의 흔적을 확인하고 피해자를 구출할 수 있게 서로의 손발을 맞추어야 했다.
[유하양, 티백에 초소형 위치 추적기를 넣었으니 차를 타는 척 소녀에게 건내주실 수 있으신지요?]
"으, 귀찮아. 얘, 차 좀 타줘."
입으로 위치추적기를 마셔 생체 추적기가 된다면 저들도 알아챌 수는 없겠지. 소화되기 까지는 몇 시간이 걸리니 충분해. 유감스럽게도 린은 유하가 차를 탈 줄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머뭇거리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조금씩 따가워지는 조직원들의 시선에 태연한 척 아무생각 없는 부잣집 딸의 모습으로 앉아있지만 머리는 분마다 바쁘게 몇 가지 경우의 수를 떠올리다 다시 폐기한다. 이제부터는 주사위를 던진셈이며 루비콘 강을 건넌 셈이야. 퐁당, 어설픈 손길로 티백을 뜨거운 물에 떨어뜨린 찻잔을 받으며 입에 음료를 머금는다.
'...'
유하양은 차를 탈 줄 모르는구나. 밍밍하고 묘하게 떫은 맛이 나는 뜨거운 물을 어떻게든 침착을 유지하려 하면서 호로록 마시지만 입가가 미세하게 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