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끈적하게 들러붙은 피로가 몸을 짓누르는 듯 했지만, 대운동회를 앞두고 계속해서 엎어져 있을수는 없었다. 침대에서 튀어오르듯 일어나며 옆에 대충 걸쳐져있던 외투를 집어들곤 자연스럽게 몸에 걸쳤다. 부드러운 천의 감촉이 무거운 몸을 조금이나마 지탱해 주는 듯 해서 자연스럽게 약간의 미소가 띄워졌다.
" 조금이라도 몸을 풀어두는게 좋겠지. "
작게 혼잣말하며 그대로 발걸음을 수련장으로 돌렸다. 아마 지금 시간이라면 사람이 별로 없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 .
- 쾅!
물론 그런 기대는, 문을 열자마자 들리는 화려한 소리와 데굴데굴 구르는 한 소년의 존재로 철저히 부정당했지만 말이다. 나는 한박자 늦게 정신을 가다듬으며 아직도 데굴데굴 굴러가는 의문의 소년쪽으로 빠르게 몸을 던졌다. 나름대로의 푹신한 몸과 건강을 믿은, 인간(팬더) 쿠션의 역할을 자처한 나는 밀려오는 충격을 가볍게 떨쳐내며 입을 열었다.
더듬거리며 안경을 쓰는 소년을 잠시 바라보다, 뒤늦게 '아저씨' 라는 말에 약간의 의문을 품는다. '아저씨...?' 겉보기와는 다르게 나이가 많은건가? 라고 생각하며 이어지는 호명과 대련 연습이라는 말에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자신의 이름을 알고있고, 일반반처럼 피하지 않는거라면 아마도...
" 최근에 들어온 편입생이십니까? "
연습을 하러 온건 맞습니다. 라고 덧붙이며 씨익 웃어보였다. 대련에 그렇게 자신이 있지는 않았지만, 퀴즈는.. 백지로 내야할거 같다는 묘한 직감이 들었기에, 얌전히 대련을 신청했었지. 퀴즈대회의 문제들을 떠올리며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다 다시금 시선을 그에게로 옮겼다.
윤시윤 이라는 이름을 머리에 새겨놓으며, 그의 이곳저곳을 잠시 훑어보던 나는 이어지는 그의 말에 그제서야 아-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 잠깐 봐서 기억이 희미했던거 같습니다. "
머쓱함을 담아 뒷머리를 두어번 긁적이며 웃어보이곤 그때는 잘 됐냐고 넌지시 말을 덧붙였다. 유하씨는... 내 기억으론 마도를 주기술로 쓰고 있었는데 말이지. '드래고니안의 마도는 어떨지 궁금하긴 한걸...' 그런 생각을 하다 마도사의 고질병인 호기심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 방금전엔... 큰 소리가 들렸는데, 어떤걸 쓰시는겁니까? "
상당히 큰 파열음이 들린것을 기억해냄과 동시에, 데굴데굴 구르는 이미지가 같이 겹쳐졌다. 휴대용 대포 같은거라도 들고 다니는건가?
무승부에 가까운 승리였다는 말에, 몇번 가볍게 박수친 나는 어떤 과정이 있었을지 유추해보다 잡념을 머리속에서 지워냈다. 저격수와 마도사의 대련이라. 서로 스치면 치명타가 아니던가. '이쪽도 비슷하기야 했지만...' 운좋게 노린 전략들이 먹혀서 그렇지, 간파당했다면 먼저 쓰러지는건 분명 자신이였을터.
" 상당히... 거대한데, 대물저격총입니까. "
실전에서도 아주 가끔 보이던, 저격수 타입의 의념 각성자라. 어느정도의 호기심이 동하는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영웅급에 닿는다면 저격 거리가 대륙이 기준이 된다고 했던가? 여러모로 대련에서 만나고 싶은 상대는 아니였다.
" 그래서 반동이 강했던거군요. "
자신의 지식으론... 저정도까진 아닌걸로 기억하지만, 기술탓일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강철이는 그냥 유순하게 생긴 인간 1이야. 상태창이나 프로필은 좋게 말하면 누군가의 정보인데 나쁘게는 유출되면 약점이나 위협으로도 쓰일 수 있잖아? 이걸 생각하면 왜 교관 급에게만 허가됐는지 알 수 있지. 여기서 교관은 미리내고가 아니라 특별반 교관. 즉 UHN기준 간부급만을 말한다.
저격수는 원래 1:1로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포지션이 아니고, 대물저격총 같이 크고 과한 화력을 가진 무기는 더욱 더 그렇다. 솔직히 말해서 총사 중에서는 진류와 같은 권총과 체술의 혼합, 혹은 조금 더 극단적으로 가면 샷건 같은 무기들이 '정면승부' 라는 의미에선 어울릴 것이다. 저격의 장점은 거리인데, 1:1 승부라면 상대는 필사적으로 거리를 좁히려 들테니까 말이다.
"뭐 데굴데굴 구를 정도의 이유는 따로 있지만...."
강철을 흘끔 보곤, 씩 웃는다. 사실 알려줘도 큰 지장은 없다고 할까, 이미 몇몇한텐 자랑스럽게 말해준 기술이다만.
대인전에 능한 무기가 아니라는 말에, 턱수염을 매만지며 다른 총사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진류씨랑... 토고. 이 둘이 반사적으로 뇌리에 둥둥 떠오르며 전투 스타일들이 잔상처럼 남는다. '확실히 이 둘이랑은 결이 다른 무기긴 하지만...' 의념이 더해진 저격수라면 충분히 1:1도 나쁘지는 않을듯 싶었다.
" 저도 대인전에 능한 타입은 아닙니다. "
마도진. 어찌보면 사파에 가까운 기술을 익히고 있던 나는 저번 대련에서도 마도진을 아예 쓰지 못했었다. 마도진이 발동하는 시간과, 역분해에 극도로 취약하다는 점. 그리고 범위가 정해져 있다는 것은 대인전에서의 장점이 결코 아니였다. 그럼에도 알맞은 전략이 있다면 대인전에서의 상성은 그저 변명거리로 전락한다는것도 알고는 있지만... 뭐. 실전은 언제나 예측하기 어려운 법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