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알기나 할까?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걱정하는지 말야. 어릴적 의념 시대 이전의 신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 적 있어. 이카루스는 왜 저 날개를 가지고 저렇게 높은 곳까지 날아가려 한 걸까 하고 말야. 그런데 정작 내가 그 하늘을 날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추락하기 시작했을 때 꽤 충격적이더라고. 생각보다 하늘은 위험하지만 우리들이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다면 땅에서는 아무리 도망치고 싶어도 이 곳의 위라는 부담을 가지고 살아가야만 해.
그래. 난 추락했고, 바닥에서 살아가고 있어. 그러니 제발 나보고 이보다 더 지하가 있다고 하지 말아줘. 지금 씹고 있는 더러운 흙의 맛이 끝일 거라고 말야.
그럼...대운동회 전에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은 공부를 해볼까. 너무 어려운 것 말고, 기초부터. 현재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철퇴 수단이다. 저격수란 포지션을 잡고 사격해야 하는 것. 로프 컨넥트를 이용한 이동은 그렇다쳐도, 현재 상대가 접근전을 걸어오면 대응법이 없다. 어설프게 근접전을 배우기엔 아직 그럴 요량이 아니다. 아군에게 언제까지나 나를 지켜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유효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해 공부해보도록 하자.
# 거리를 벌리기 위한 스킬 습득을 시도하기 위해 망념 200 을 쌓아 전투학을 복습해볼게요!
성장에 대한 마음가짐. 그것은 토고가 원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 수업 내용은 미묘하게 달랐다. 향상심. 더 나은 이가 되길 원하는 토고는 실망하였지만, 그 수업의 내용을 읽다보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토고가 그동안 살아온 방법은 무엇인가? 자신이 얻을수 있는 건 얻는다. 버릴 건 버린다. 인성학 교관인 엘터 더글리온 선생님의 '길' 이란 단어가 묘하게 신경쓰였다.
할수있다고 판단하고 뛰어들게 될 가능성의 길과, 불가능하다 생각하며 뒤쳐질지 몰를 포기의 길. 두가지 길은 서로 달랐지만... 토고가 살아온 길과 묘하게 비슷하다고... 토고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달리는 것에는 느리건 빠르건 속도는 존재한다. 하지만 도착점을 제대로 정하지 않는다면 그 걸음걸음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토고는 한숨을 팍 내쉬었다. 걷는다.... 토고는 걷고 있었을까? 스스로는 걷고 있었는가? 포기와 가능성 둘 사이를 오가며... 안주해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토고는 생각했다.
의념 발화 - 검.. 번역기가 그렇군요. 그리고는 엘터 교관님께 휘두르는 걸 보고 살짝 굳은 듯한 느낌이었지만 흘려내는 것은 대단해보입니다. 아니 지한이는 의념 발화도 없으니까(?) 의념 발화 - 검을 흘려내는 건 대단해보이는 게 아닐까...라곤 해도 교관님인걸(?) 그리고 뤼네라는 이름을 들어서 알 수 있었네요. 베니온 아카데미의 교감이라면. 대운동회 관련 업무로 온 것일 확률이.. 높을지도 같은 생각이 듭니다.
"안녕하세요 엘터 교관님." "교실 근처에서 뤼네 교감님을 만났는데. 보시다시피 번역기가 꺼지거나 그런 것 같아서 교관실로 모시고 왔습니다. 아시는 분이라서 다행인 것 같네요..." 라는 상황설명을 하려 합니다..
의념이라는 힘이 발견된 것은 아직 100년이 채 넘지 않았습니다. 인류가 멸망의 끝으로 몰렸던 순간 인류 곳곳에서 갑작스럽게 각성했던 수많은 의념 각성자들에 의해 모습을 드러냈던 이 힘을 우리들은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요?
과거 의념이라는 힘을 규정했던 것은 '성장성/무효성/증강'이었습니다. 단순히 인간의 육체라는 한계를 넘어서 더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성장성'. 적의 육체를 보호하고 있는 알 수 없는 역장을 뚫어내고 적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가할 수 있는 '무효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렇게 성장한 힘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증강'의 개념이었죠. 여기까지 들었을 때 무언가 알 것 같은 게 있진 않습니까?
(로카는 칠판에 몇 가지 글자를 새겨낸다.)
'1세대의 의념 방식'
그렇습니다. 1세대 의념 각성자들은 단순히 의념이라는 힘을 육체적인 능력의 강화와 특별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초능력의 대분류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이런 힘의 대가가 없다고 생각하여 망념의 방향성을 생각하지 않아 망념화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하더군요. 이런 의념의 성질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개인의 방향성, 즉 의념 속성을 정립시킨 한 천재에 의해 시작됩니다. 현재는 고인이 되신 유럽의 가디언 루시우스 퀸튼은 의념 속성이라는 힘에 대해 정립하면서 의념 각성자의 전투법은 또다시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됩니다. 마도와 무기술로 대표되는 '정적 표현'에서 의념 속성으로 대표되는 '동적 표현'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변화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2세대의 의념 방식'
의념은 시대를 겪어감에 따라 끝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방식이 과거에는 혁신적인 방법이었다면 미래에는 돌도끼와 다름없는 구시대적 방법이 될지도 모르죠. 혹시 모르지 않겠습니까? 여기 있는 누군가가 새로운 방식을 창안하여, 새로운 의념 방식의 개척자가 될 거라고 말이에요. - 의념학, 로카 바니에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