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리가 까치발을 들자 렌은 자연히 몸을 조금 숙여주었다. 코로리가 까치발을 들 때면 매번 귓속말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이제는 좀 더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행동이 나오곤 했다.
그리고 간질간질 속삭이는 말은 그 또한 간지러운 말이라서 렌은 조금 부끄러워지고 말았다. 게다가 까치발 내리고서 다급히 이어지는 말 또한 그랬다. 평생이라는 말이 막막할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신에게 평생이란 얼마나 긴 시간일까. 기쁘기도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깊고 끝을 모를 바다처럼 두렵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렌은 그 다정한 말이 너무 좋아서, 막막하더라도 두렵더라도 더 그 안으로 빠져들고만 싶어졌다.
"저도 코로리 씨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되버린 것 같아요."
마치 마법에 걸린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한숨같이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얽힌 손가락 만큼이나 서로의 마음이 얽혀 있는 것 같아서 그 손을 더 단단히 꼭 쥐게 된다.
"저도 코로리 씨한테 엄청 받고 있으니까.... 오늘 목도리도 받았고."
렌이 장난스럽게 목도리 끝을 팔랑거리며 말했다. 코로리의 존재 자체가 위안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좋아하기 때문일까. 좋아한다는 감정이란 참으로 큰 감정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어버린다.
"겨울잠이라서요?"
렌이 작게 웃었다.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나 다람쥐나 곰 같은 것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들 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을 자는 코로리를 떠올리니 귀여웠다. 처음 만났을 때도 양호실에서 자고 있었던 것이 생각나기도 했다.
렌은 코로리의 머리카락만 넘겨주려다가 머리를 손에 더 가져다대는 듯한 몸짓에 코로리의 머리카락을 몇 번 더 쓰다듬었다. 조심스러우면서도 주저되는 것이었다. 마치 아름다운 비단에 몰래 손을 대어보는 어린아이가 된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혼날 것 같다는 의미였다. 원하면 안 되는 것을 원하고 탐하면 안 되는 것을 탐하는 느낌이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 지는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코로리가 욕심이 나면서도 한 번 둑이 무너지면 제어할 수 없을까봐 꾹 참고 조심하고 있는 것이었다. 코로리에게 꿈에 찾아오지 말라고 하는 것도 못나게도 그런 의미였다.
"저야 피곤할 건 없죠. 훈련하고 잘 쉬고 잘 먹고 잘 자고..... 뭐어, 제 생각에는 초조하거나 불안하거나 같은 정신적인 영향을 안 받는 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싶고. 그렇게 되면 패턴이 망가지게 되니까...."
렌이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대답했다. 남일 같은 말인 느낌인 것을 보니 별로 그런 일은 없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바쁜건 가끔이니까~ 안 하면 생활이 안 되기도 하고~ 그래도 역시 코세이주의 기도가 잘 들었으면 좋겠네 :3 앗 자고있는데 찾아오는거야 코세이? ㅋㅅㅋ 마히루한테 얘기하면 한번은 들여보내줄걸~ 일단 요조라 이상한 자세로 자고있는건 아닌지 먼저 확인하고~ 보고 깨워도 상관없다고 하겠지만~ 코세이가 깨울려나? 안 깨우고 나중에 왔다간거 들으면 부끄러워서 못 만난대~ ㅋㅋ 이상한 라인은 뭐 그런거지~ 잠꼬대 같은거~ 오타도 막 들어있고~ 이게 무슨 내요인지 싶은거~ 안데오 그거 머그묜 내가 머글꼰데 이런거~
그래도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게 모든 직장인의 바램일테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 마히루도 들여보내주다니 의외네요. 요조라 그래도 쥐죽은듯이 자는 편이니까 막 자세가 이상하진 않을 것 같은데 ... 요조라 옆에 앉아서 볼도 찔러보고 머리도 쓰다듬고하면서 한참 장난치다가 살짝 깨울 것 같은걸요~ 보고싶어서 왔다고 하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잠꼬대 왤케 귀여운데욬ㅋㅋㅋㅋㅋㅋ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어ー. 좋아하는데 왜 아픈 건지 이제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한다는 마음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부담으로 가닿을까봐 전하지 못 하고 꾹꾹 누른다. 더 이상 누를 수 없게 차올라도 꾹 누르고 욕심을 삼킨다. 코로리는 빨간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입술만 달싹거렸다. 사랑이란 말을 너무나 예쁘고 소중한 뜻을 담고 있어서, 나에게 네가 그렇게 에쁘고 소중한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 기쁘겠지만 그만큼 부담스러울 지도 모르는 말이다. 렌이 꼭 쥐는 손으로 시선을 내렸다. 혼인 의식을 치루면 서로에게만 보이는 문양이 손등에 새겨진다는 이야기를 알면, 지금 코로리가 하는 행동이 얼마나 욕심에 점칠되어 있는지, 욕심을 눌러두고 있는지 알 수 있겠다.
"고마워ー"
고맙다는 인사의 끝점은 손등에 남긴 입맞춤이었다! 코로리는 얽혀서 깍지끼고 있는 손을 들어올렸다. 그렇게 들려올려진 렌의 손등 위에 입 맞추고, 배시시 웃어버린다. 욕심은 뒤로 숨기고 수줍은 웃음을 보인다.
"렌 씨가 갖고 싶으면, 원하면 다 줄 수 있어! 요술 램프는 아니지마안."
팔랑거리는 목도리 끝에서 렌에게로 눈을 맞춘다. 갖고 싶으면 뭐든지 말해도 된다고, 뭐든지 주겠다는 투지가 엿보인다. 코로리가 갖고 있는 것, 해줄 수 있는 것으로 제한되기는 하겠지만, 갖고 있지 않고 해줄 수 없는 것이라도 줄 수 있도록 노력할 거니까. 꿈 속에서는 나두 지니만큼, 지니보다 더 대단한데!
"응, 겨울잠. 밤도 추위도 굴도 깊어ー"
쓰다듬어주는 것도 그렇고, 자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게 했다. 물론 잠이 오지 않게 되는 건 렌이 쓰다듬어주는게 좋아서, 좋은 만큼 부끄러워서 두근거리니 자고 싶다고 생각해도 잠이 오지는 않았다. 잠에게 잠이 오지 않는 건 또 무슨 아이러니인지 모르겠다. 부끄러움에 우물거리듯 입술을 꼭 물었다. 의식치도 못하고 먼저 고개를 갸웃이며 기울였단 것까지 알게 되면 펑펑 내리는 하늘의 눈이 무색해진다.
"그럼 다행이다아. 그래도 렌 씨, 피곤하면 꼭 말해야 해? 그 쪽 마법은 내가 제일이니까!"
쉬는 시간 10분, 아니 그 10분을 다 안 써도 괜찮다! 잠깐 자더라도 푹 자고 일어나 개운하게 피로가 풀린 느낌, 몇 분, 몇 초여도 가능하다! 코로리는 한껏 뿌듯해했다. 좋아하는 사람한테 어느 방법으로든 어느 모습으로든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건 그런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