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너랑 거리를 뒀을 때 이것저것 있었다. 다만 사실 이쪽이 주 용건은 아니고. 뭐, 같이 놀러가자는 구실이다."
나는 드물게도 멋쩍게 볼을 긁적이면서 시선을 피했다. 자세히 말하기는 아무래도 좀 그렇다. 다만 그 때 전개가 조금 달랐다면, 눈 앞의 그녀와의 관계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어쨌거나 남과의 관계를 수습하는데 일방적으로 어울린다는 오해는 하지 않도록 큼, 하고 헛기침 하곤 덧붙인다.
"이, 이것 저것은 이것 저것이야....라곤 해도. 사과라고 말할 정도니까, 결국엔 내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끝났다고 봐야겠다만."
아무리 청소년의 연애감이 없는 아저씨에 가까운 나지만 알고있다. 너와 거리를 둔 사이에 사실 다른 여자애랑 매우 밀접한 일이 있었으며, 거기서 고백이라던가 사귀기 직전까지의 이벤트가 있었음을 말하는 것은 매우 좋지 못한 결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가식을 싫어하는 나지만, 그게 생각없는 발언을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너는 나한테 매번 하고 있는거잖아. 생각해보니 내가 먼저 권유하는 경우는 드물어서 말이다. 한번쯤은 그래도 좋지 않을까 해서."
생각보다 어른스럽다고 해야될까 소녀스러운 반응에, 나도 부끄러워져선 살짝 시선을 피했다. 그녀는 정말 평소에 잘도 나를 불러낸다 싶다. 물론 그 때는 이런 기류가 되기 이전이기는 하다만. 그래도 생각해보면 맨날 툴툴 거리며 어울려줄 뿐, 내가 먼저 말을 걸거나 놀러가자는 경우는 잘 없었다. 이번이 마침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용기를 냈을 뿐이다.
"으-음. 그것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만. 뭐 이 자리에서 즉석으로 간단히 말할만한 얘기는 아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나는 완전하게 부정하지는 않았다. 확실히 어느정도 고민을 털어놓고 심정은 있었고. 친한 녀석은 그럭저럭 있지만. 이런 개인적이고 민감한 고민을 털어놓을 만한 상대라고 하면, 눈 앞의 소녀 정도다. 반대로 말해서 그런 상대니까 털어놓기 애매하다는 애매모호한 상황이기도 하다만.
"기뻐한다면 다행이로군."
밝게 웃는 모습에 나도 만족감이 부끄러움을 앞서서 따라 웃는다. 그리곤 손을 뻗어 머리를 톡톡 쓰다듬어주면서, 잠깐 고민하는 것이다.
"확실히 머리에 리본은 뿔이 있으니 가릴 것도 같지만....반대로 뿔에 리본은 어울릴지도 모르겠는데."
직접 본적은 없으니, 열심히 상상해본다. 근데 그러다보면 생각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튀는 것이다.
"악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러모로 공황에 빠져있던터라. 솔직히 이 쪽에서 실책이 좀 컸지."
한숨을 내쉬곤 조금 푸념한다. 보통은 내가 누군가에게 미안할 정도의 행동은 하지 않는다만. 당시에는 뭐, 이것저것 있었으니까. 돌이켜보면 죽고 싶어질 정도의 미숙한 행동 연발이었다. 음....역시 기회를 봐서 한번 사과를 하는편이 좋겠다. 상대도 꽤나 너무했다는게 감상이지만, 그게 내 쪽의 실수를 정당화할 이유는 되지 않으니까.
"그렇군. 지난번에 만질 때도 생각한거지만, 확실히 민감한 부위인가 보구나. 그러고보면 꼬리도 그랬던가."
하긴 떠올려보면 전에 노래방에서 뿔을 만질 때에도 굉장히 얌전하게 있었던 것 같다. 그 때에도 '생각보다 예민한 부위구나' 라고 속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럼 뿔에 장신구는 무리니까, 역시 리본이나 머리띠가 무난할까...하고 생각하다가.
"응. 보고 싶은데?"
그녀의 얼굴을 보며 어울리는 악세사시를 고민하다가, 당연한걸 물어봐오길래. 당연한걸 왜 묻냐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이며 당연한 대답을 했다. 그야 보고 싶다고 말했으니까, 보고 싶지.
농담이라고 믿고 싶지만, 상대를 잘 알고 있는 나에게는 조금도 농담이 아니라는걸 알 수 있었다. 실은 그래서 더 무섭다. 신고했다면 이종족 성희롱법으로 처벌이라도 받았을까. 여태 스스로 아저씨라고 주장하던 소년의 성추행......우욱. 끝장이다. 그녀의 넓은 아량과 어른스러운 대처에 조금 진심으로 감사하기로 했다.
" 그럼 지금의 모습이 제일 귀엽다고 생각하는거야? 보여주고 싶다는 모습이란 의미니까 말이다. "
등을 얻어맞으면서도 문득 의아해져선 묻는다. 요컨데 지금의 모습이 상대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란 소리니까. 유하는 양갈래 머리인 자신이 제일 귀엽다고 여기는 것인가? 꽤나 흥미로운 주제다.
"어차피 고급 아이템을 구매할 자본은 없으니까. 예쁘고 귀여운 것 위주로 고르면 되겠지. 그럼 그 쪽으로 가자."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내밀다가. 아. 하고는 짧게 뒤늦게 떠오른듯. 웃으며 덧붙이는 것이다.
"....너는 영리하니 아까의 얘기로 뭔가를 눈치채서 내심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건 전혀 신경쓰지 마라. 여자애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남자는 멋이 없으니까. 뭔가 실수를 했다면, 그건 내 잘못일 뿐이야."
좋아한다고 말해둔 여자애한테 자신의 일로 죄책감을 지게 하는 것은, 어른으로써도, 남자로써도 굉장히 꼴사나운 일이다. 그럴 바엔 스스로의 잘못이라고 솔직하게 시인하는 편이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팡팡 두드려지는 등에 나는 매우 솔직하게 대답했다. 절교 당한걸 용서도 해줘, 매우 진솔한 감상도 말해줘, 놀러가자고 권유도 해. 이 이상 잘할 수가 있는 것인가? 나는 내가 두렵다.
.....실은 농담이다. 애초에 뭘 해야 더 잘할 수 있는지 솔직히 흥미는 좀 많다.
"편견이라고 말하기엔, 실제로 효과가 있는 처세술이지. 외견은 중요한 판단 요소니까. 그렇게 말하니까 더 다른 모습도 보고 싶어지네."
생각보다 계산속이 있어 조금은 놀랐지만, 사실 어느정도 예상하기도 했다. 양갈래 머리는 '귀엽다' '아이같다' 라는 인상을 부각하기에 꽤나 좋은 스타일임이 분명하니까. 아마 그녀와 어울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밝고 쾌활하고 귀여운 아이 정도로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쩐지 나만이 아는 비밀 같아져서 왠지 기분이 좋아졌지만, 그건 부끄러우니 입다물고 있자.
청소년의 이성관계라는 것은 항상 남자애가 여자애의 복잡한 심경을 읽어내는 퀴즈쇼 같은 것이란 말인가? 남자아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길래 그런 몸과 마음이 떨리는 퀴즈쇼에 순수한 감정을 이유로 참가해야 된단 말인가. 정말이지 불합리한 사회적 관계다. 물론 싫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 관계가 끝나버리니까 이렇게 말해도 할 수 밖에 없다.
"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긴. 기쁘다고 얼굴에 써있는데. "
나는 빨라진 그녀의 보폭에 맞춰 발걸음을 좀 더 성큼 따라가면서, 시원스럽게 단언한다. 지금의 유하가 표정부터 말투부터 들떠있는것은 바보가 아니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화해했던 날에 그런 표정과 반응을 해놓곤 이제와서 숨기려고 들어봤자 말이다.
"...................."
일단 그녀 답지 않게 이 쪽의 사정을 염려하거나 깊게 관려하려는건 기쁘긴 했다만. 내가 한 짓.....내가 한 짓.....내가 한 짓......?
즐겁게 키득거리다가 이내 폭소하는 그녀를 보고, 나는 어깨를 한번 늘어트렸다가 이내 으쓱하며 웃고 대꾸한다. 뭐, 편견이라면 편견일지도 모르겠다만. 남자애를 위해 여자애가 노력하는 것보다, 여자애를 위하 남자애가 노력하는게 어울리긴 해. 그런 의미에서 나는 문득 자연스럽게 연애의 기미가 보이던 재수없는 남자애 한명을 떠올리는 것이다. 너도 힘내길 바란다.
"부끄러우니까 과장스럽게 말하는게 무척 귀엽구나. 그렇게 말해주니 나도 기쁘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하유하 이해도가 너무 높아졌다는 감각은 있다. 그녀는 비꼬거나 태평한척 굴기 위해 과장된 말투를 쓰는 경우가 많지만, 지금과는 명백히 느낌이 다르다. 애초에 이전엔 이런 흐름에선 푸하하 웃곤 좀 더 바보취급하는 말투로 자신의 진심을 표현하지도 않았으니까. 따라서 나는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애쓰면서도 진심은 전해오는 그녀에게, 솔직한 감상으로 돌려주기로 했다.
"...............다, 다음 기회에. 지금은 놀러 나왔으니, 그 목적에 충실하자고."
그녀가 저렇게 경악하는건 처음보다. 사실, 내가 이렇게 떨떠름하게 대답을 꺼려하는 것도 처음일 것이다. 어쨌거나 마냥 숨기기만 할 생각은 없음을 전해서 안심시키로 했다. 당연히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은 아니다. 기왕 놀러 나와서 갑자기 심각한 분위기로 빠지는 것이, 꼭 좋다고만은 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