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꼬는 듯한 말투. 아무리 도마뱀이라고는 하나 소녀의 마음이 충족되지 못 한다면 이렇게 모진 반응이 나와버리는 것이다. 만약에 정말로 ' 난 네가 정말 좋아 ' 따위의 말을 듣는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 것과 그 고백을 어디서 어떻게 하느냐도 크게 달라지니까. 방금 전에 화해하고 눈물 콧물 흘린 마라탕 집에서 받는 고백은 아무래도 성에 차지 않는다.
" ........ "
갑작스레 옆으로 와서,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웃는 낯으로 저런 말을 하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우선은 부끄러웠고, 부끄러운 마음보다 몇배나 되는 충족감이 뒤따랐다. 치맛단을 양 손을 붙잡고 꼼지락 거리며 아주 조용히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들었다. 조곤 조곤 말이 나올때 마다 고개가 조금씩 숙여지는 것은 붉어지는 표정을 감추고 싶어서였다. 아마 그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회복할 시간을 가졌을 거다. 마지막에 그런 말만 안 했으면..
" 뭐?! 너! 읏, 윽....! "
저번에 대지분쇄자가 날린 기술보다도 더 거대한 파괴력에 초점을 잃고 빙글빙글 흔들리는 동공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았다가, 부끄러워서 시선을 돌렸다가, 양 손으로 상대방의 멱살을 잡고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 .......좋아. 엄청 좋아. 그런 말 해줘서 기쁘네. 하지만 지금 얼굴 볼 용기가 없으니까 아무말 하지 말고 한 오분만 기다려... "
내 얘기를 전부 들은 그녀의 눈동자가 마구마구 떨리고 순간 고개를 돌리기에, 순간 뭔가 잘못되었나 싶었다. 아니, 도중까지만 해도 수줍게 얼굴을 붉히고 손을 꼼지락 거리는 좋은 반응이었으니, 분명 화가 났다거나 하는건 아닐 것이다. 공주님이라는 호칭이 뭔가 잘못되었나? 귀여워 하면서도 너무 애 취급하는 것도 아닌 느낌이라, 나는 꽤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우왓."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그대로 멱살이 붙잡힌다. 아니, 멱살이 잡힐 정도 였단말인가!? 진정하라고 말하기 직전에 그녀의 얼굴이 내 품에 잠긴다. 딱 달라붙어서 웅얼거리듯 말하는 그녀의 대답에 진실을 깨닫는다.
아. 그냥 부끄러운거구나.
아.
나도 좀 부끄럽다.
"................"
그녀가 내 품에 얼굴을 묻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말해놓고 완전히 얼굴이 새빨개진 모습 같은건 보여주기 민망하니까.
다행히도 그녀의 반응은 매우 좋았던 것 같아서, 밀려오는 부끄러움과 기쁨이 뒤섞인다. 스스로의 감정이 마치 잔뜩 흔든 콜라병 같은 상태가 되는 것 같다. 부글부글 기포가 터져 나오고, 시원하지만 진득한 달콤함이 마른 목을 축여주는 것처럼.
...어쨌거나, 5분만 아무말 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으니. 여기선 기다려주는 것이 맞다. 괜히 말을 걸거나 놀려서 소녀의 감성을 자극했다간 무슨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대신 나는 눈치 없는 녀석이 아니다. 아무말도 하지 말랬지, 멀대처럼 서있으라곤 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품에 안긴 그녀의 허리 너머로 팔을 둘러, 등을 두 손으로 부드럽게 쓸어주며, 품에 더 안기기 쉽도록 당겨주기로 했다.
하유하는 자신이 방금 만든 암막 안에서 천천히 감정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하려고 했었다. 갑작스럽게 누군가가 자신의 허리를 끌어안지만 않았더라면 예상대로 했을 일을, 조금 더 돌아갔어야 했다. 꼬리로 상대의 팔을 찰싹 찰싹 하고 치는 것 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었지만.
공교롭게도 지금 이 자세가 상대방의 심장 소리도 듣기에 참 좋다는 점, 그리고 쓸데없는 잡지식을 많이 보유한 도마뱀이 그 위치에 있다는 점까지 더해지니 잡념이 많이 스쳐간 것은 사실이었고 이는 놀랍게도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는데 역할을 하였다.
" 후, 후우..... "
한참이나 얼굴을 파묻은 자세로 있던 하유하는 태연한 척, 붉은 얼굴에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윤시윤과 떨어졌고 이제 슬슬 마라탕 집에서 나가야 했음을 깨달았다. 사장님과 마주치는 눈빛이 심상치가 않았다.
" 덥네.... "
유하는 먼저 일어났고, 시선을 반쯤 창 밖으로 던지며 손을 내밀었다. 이 작은 행동의 의도는 윤시윤이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