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정중하게 정리하는 부분은 너무 정중해서 역으로 비꼬는 것처럼 들렸다. 물론 자업자득이니까 그걸로 불쾌감을 주장할 생각은 없다만서도. 나는 조금 머쓱함을 느끼며 마츠시타가 손에서 없던 해바라기씨를 만들어내는 것을 본다. 그러고 보면 처음에도 은신한 상태에서 나왔던가. 아아. 과연.
나는 상대의 지나칠 정도의 저자세라고도 볼 수 있는 솔직한 인정과, 이쪽을 띄워주는 의도에 대략 눈치를 챘다. 그리곤 스스로가 실책을 범했을 깨닫곤 대충 두 손을 들어보이며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다.
"방금건 아저씨가 너무 우쭐 거린 것 같은데. 아무래도 사과를 해두는 편이 좋겠군. 별로 한방 먹였다던가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말이야. 그래도 안심하거라. 아저씨는 마츠시타 말 대로 지휘관이기도 했지만, 저격수기도 했으니까. 이렇게 말하면 서로 친근감이 들지도 모르겠는데. 근거리와 원거리란 차이점은 있다만, 본질적으론 암습에 관련된 보직이니까."
순수하게 씨앗을 먹는 햄스터를 바라보며 나는 말을 잇는다.
"기습은 놀라움. 놀라움은 찰나. 예상치 못한 순간에서 예상치 못한 기습을 가하는 것이야 말로 암습. 미지와 두려움은 필연적으로 경계를 만들고, 앎과 안심함은 필연적으로 편안함을 만들지. 나는 상대방이 공격 직후에, 저격하는 것을 선호한다. 대부분의 존재는 스스로의 자신감을 드러낸 직후에 그 만큼의 빈틈을 드러내기 마련이니까. 마츠시타도 아마 그렇겠지?"
나는 웃으면서도 상대를 바라본다. 언뜻 들으면 서로의 전투 스타일에 대한 얘기로만 들리겠지만, 여태까지의 문답을 보건데 마츠시타는 열심히 뒷면의 의도를 읽어줄 것이다. '걱정하지 마. 너를 얕보거나 멋대로 착각하는 일은 없을테니까.' 조금 우쭐 거린 것을 곧바로 수긍하면서 자세를 낮추며 시원스럽게 역공의 태도를 취하다니. 좀 하는데, 마츠시타. 꽤 괜찮은 방법이었어. 내가 단순히 사람 좋은 인간이었으면 훈계가 잘먹혀 대화가 좋게 풀림에 기분이 좋아 고개를 끄덕였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저격수다. 상대방의 빈틈을 관찰하여, 찰나의 순간 기습해서 죽이는 원거리 암살자란 말이다. 똑같은 사고 방식을 가진 동류에게 훤히 낚여줄만큼 어리숙해질 생각은 없다.
꽤 재밌는데. 특별반 아이 중에 이렇게 서로의 심리와 행동거지를 읽고 파악하려 애쓰는 관계는 드물다. 우리는 지금 일종의 게임을 하는 중인 것이다. 서로의 인간성과 본성을 타겟으로, 나는 스코프를 겨눠 추적하고 관찰한다. 린은 함정과 환영을 섞어 거기에서 날 벗어나, 푹 하고 급소를 찌를 거리까지 몰래 접근한다. 서로 적대할 생각도 없고, 신경전이라고 말하기엔 평화롭다만, 그럼에도 관계속에 속셈과 기대가 얽혀 발생하는 암습전인 것이다. 그녀의 말투가 바뀜은 내가 아까전 허를 찌르는 선제공격으로 선취점을 땄다는 증거이리라.
정말 죽이려고 드는게 아닌 이상, 이 정도는 서로 재밌는 문답과 심리전의 영역에 들테니 괜찮겠지. 그러나 마츠시타야. 아저씨는 생각보다 승부욕이 있는 타입이라서, 한다면 제대로 한다고. 가면을 쓰며 태도를 감추는 모양인데, 어디 그 가면이 몇장까지 변화할 수 있는지. 아저씨의 탄환이 먼저 떨어질지, 네 가면이 먼저 떨어질지. 한번 겨뤄보자고. 이렇게 된 이상, 아저씨도 마냥 호구처럼 약점을 드러내줄 순 없......
얄밉게 놀리는 유하에게 결국 쿨타임이 넉넉히 돌아온 머리 누르기를 시전한다. 그렇게 말하면 당할거 알면서도 꾸준히 하다니. 당하길 바라는 걸지도 모르겠다.
"......뭐, 그러냐."
나는 잠깐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생각하는게 있어야지 걱정도 하는거지. 생각 안 하면 걱정도 없어.' 인가. 유하야, 그것은 돌려 말하자면 네게 고민이 있고, 그것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생각을 외면하고 있다.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는걸 알고 있니. 네가 평소에 일부러 깊은 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쓰는건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저런 해석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다면. 그걸 묻는것 조차 그 생각이란걸 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따라서 나는 추궁하길 관뒀다. 대신 별로 넌 혼자가 아니라는 의미가 전해지길 바라면서, 꾹 누르던 머리를 몇번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유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미 특성이 골라졌기 때문이다. 결코 이해할수 없는 고충을 향해 액션빔.
" 매워어... "
머리를 누르다가 쓰다듬는 것으로 노선을 바꾼 그 팔을 힐끗 올려다보다, 혀를 빼물고 매움을 처리하는것으로 정신을 돌렸다. 당신의 추리는 얼추 맞았고, 잘 이어나가 보면 위대한 종족의 비밀을 캘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유하는 그런 생각 추호도 하고있지 않지만! 얼음 동동 띄운 보리차를 마시다가 얼음을 입 안에 넣고 혀를 식힐 뿐이지만!!
"다 먹을 수 있다면 별 문제는 없겠지요" "적당히 포만감이 느껴지면 좋으니까요" 먹고 키가 큰다는 말을 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지한이는.. 키. 진짜 제발 2센치만이라도 더! 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오현이가 회귀할 때 키가 얼마였는지는 모르지만.
"으음.. 흘려듣듯 기억에 어렴풋하게는 남아있네요" 구석기 시대와 유전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였나? 유전자 바꾸는 건 거의 만년 넘는 그런 시간이 필요한 만큼. 후성유전적인 면도 있고. 잠든 것을 깨우는 식도 가능하다. 어쩌구...는 지한주가 쓸데없이 주워들은 것이니.. 넘어가자. 지금은 지한이가 어렴풋하게는 안다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