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 : https://bbs.tunaground.net/trace.php/situplay/1596527111/recent 별다른 공지가 있기 전까지 시트는 항상 열려 있습니다. 캐릭터 사망시에 한해 부캐 허용합니다.
* 유혈, 강압에 의한 폭력, 광신, 따돌림 등의 묘사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 캐릭터가 이벤트 중 부상을 입거나 / 사망하거나 / 종족이 바뀌거나 / 혹은 원래 인간이 아니었음이 밝혀질 수 있습니다.
* 본스레는 늑대를 찾아내는 추리물이며, 생존물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중 0~n 명의 늑대가 있습니다. 초반에 캡틴이 설정한 확률을 기준으로 각 캐릭터마다 늑대인지/아닌지 다이스를 굴려 늑대인간(들)을 선정합니다. 만약 러닝 중 신캐가 들어올 경우 현재 캐릭터 중 늑대의 비율을 고려하여 확률을 수정하고, 다이스를 굴려 종족을 판정합니다.
* 캡틴 책상 위에서 6면체 주사위 10개를 굴려 늑대를 선정합니다. 6월 3일과 6월 4일 자정 선정 예정입니다. 확률의 신이 언제나 당신의 편이기를!
* 캡틴은 보통 오후 10시 - 12시 사이에 상판에 출몰할 예정이며, 그 때마다 밀린 조사 답레를 적어드립니다. 고로, 조사를 원하시면 스레에 제가 없더라도 이름칸에 '캐릭터 이름 - 조사'를 넣으신 뒤 '행동 이유/조사하는 장소 혹은 조사하는 사람/행동'의 내용이 담긴 레스를 남겨주시면 됩니다. 상기한 시간이 아니더라도 짬짬히 열심히 답레 달아드립니다.
* 제시되는 '기본 정보'들은 '캐릭터들이 마을의 일원으로서 소문으로 들은 내용'이라는 설정입니다. 따라서 그 내용에는 모순이 존재할 수도 있으며, 위증 혹은 거짓이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들려온 소문의 비개연성에 의문을 품고 파헤치는 것은 플레이어의 역할입니다.
피해자 : 엘랜(7), 피터(10). 잡화점 옆에 살고 있음. 최초 발견자 : 카일(68) - 마을 촌장 피해자 상태 : 피터 - 사망한 채 발견. 시체는 부패가 시작되지 않음. 가슴-복부를 가로지르는 긴 자상이 있으며, 왼쪽 다리를 포함한 왼쪽 하체 일부는 발견되지 않음. 엘랜 - 생존한 채 발견. 발견 당시 피터의 시체 뒤, 나무뿌리 구멍에서 웅크리고 있었음. 등에 긴 자상이 남아 있었음. 상처는 얕았으나, 이틀 뒤 열이 올라 죽음. 사건 관련 증언 : "우리들 사이에 늑대가 있어. There's the wolf among us." - 장로들 중 누군가가 했다는 말 사건 개요 : 1487년 10월 14일 오전 10시 - 피터와 엘랜이 어머니에게 자두를 따오겠다며 바구니를 꺼내달라 부탁. 어머니는 검은 숲에 들어가지 말 것을 강조함. 오전 11시 반 - 돼지치기 케인이 이 무렵 '아이들이 손을 잡고 시내를 건너 방앗간 쪽으로 갔다'고 증언. 오후 1시 - 피터와 엘랜의 부모가 점심을 먹기 위해 집으로 돌아오고, 아이들의 부재를 눈치챔. 오후 4시 - 아이들이 사라졌음을 앎. 오후 7시 - 완전한 일몰. 사냥개를 대동한 5명의 장정(촌장 카일 포함)만이 수색을 계속하기로 함. 오후 9시 - 수색대가 시냇물을 따라 흘러온 엘랜의 스카프를 발견함. 밤이라 숲에 들어가지 못한 채 수색 종결. 1487년 10월 15일 오전 7시 - 일출. 수색대가 시내를 따라 검은 숲 안쪽으로 들어감. 하지만 시내를 따라 올라가도 아이들을 찾지 못함. 오후 4시 - 수색대가 수색을 포기하고 숲에서 나옴. 오후 5시 - 수색 중 사냥개 한 마리가 사라졌음을 알게 됨. 1487년 10월 16일 오전 6시 30분 - 촌장 카일이 일과를 위해 버섯 재배장으로 향함. 오전 6시 35분 - 카일이 이상한 냄새를 맡고, 숲 안쪽으로 이동함. 오전 7시 - 피터의 시체 발견. 오전 7시 10분 - 피터의 시체 근처에 숨어 있었던 엘랜 발견. 오전 8시 - 엘랜과 카일이 마을로 복귀함. 오전 10시 - 마을 사람들이 피터의 시체를 수습해 마을로 복귀함. 오후 7시 - 엘랜이 잠깐 정신을 차림. 무엇이 그랬냐는 질문에 엘랜은 '괴물 늑대'가 그랬다 증언한 뒤, 다시 실신함. 1487년 10월 18일 오전 4시 - 엘랜 사망
피해자 : 메리(18) 최초 발견자 : 짐(19) - 메리의 남편 피해자 상태 : 나무에 '걸려' 있었음. 소문에 따르면 악마가 양 손으로 메리를 잡고 찢어발긴 듯, 몸 안의 내용물이 나무에 리본처럼 걸려 있었다고 함. 축사에서부터 검은 숲 인근의 나무까지 핏자국과 버둥거린 흔적이 남아 있음. 축사의 소들은 무사했음. 사건 관련 증언 : "비명은 듣지 못했어." - 짐과 메리의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 사건 개요 : 1487년 10월 30일 오후 7시 - 짐이 카일의 급한 요청에 촌장댁 암소의 출산을 도우러 집을 떠남. 짐이 떠나기 전까지, 메리는 벽난로 앞에서 양털을 꼬고 있었다고 함. 오후 10시 - 짐이 집에 돌아옴. 카일이 권해 포도주를 한 잔 마시느라 늦음. 집에 아내가 없음을 확인하고, 축사로 통하는 뒷문이 열렸음을 확인함. 오후 10시 10분 - 짐이 축사 앞의 핏자국을 발견함. 오후 10시 25분 - 짐이 아내의 시체를 발견함. 오후 10시 30분 - 짐의 비명에 마을 장로 존슨을 포함한 인근 마을 거주민들이 뛰쳐나옴. 경기를 일으키는 짐을 급하게 마을 사람들이 진정시킴. 1487년 10월 31일 오전 8시 - 메리의 시신이 수습됨.
그리고 추리 못하셔도 큰 상관 없으니 걱정 마세요. 뭐 살다보면 아무도 늑대인간이 누구인지 모르고, 심지어 늑대인간도 자기 정체 모르고 행복하게 손자손녀 낳은 뒤 평온 속에서 눈을 감기도 하고 그럴 수도 있겠죠. 보름달 밤마다 살인이 나기야 하겠지만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해요. 소소하고 행복한 일상이 중요하지.
달이 높게 뜨는 날 달이 크게 뜨는 날 아이야, 아이야 울지 말거라 꿈을 꿔야지 부드러운 이끼 위에서 부드러운 밤바람 안에서 춤을 추거라
달이 희게 뜨는 날 달이 밝게 뜨는 날 아이야, 아이야 이제 조용히 하거라 꿈을 꿔야지 낙엽을 밟으며 노래를 부르며 그래, 신나서 빙글빙글 춤을 추거라
달이 뜨고 늑대가 울어도 괜찮다, 괜찮아 꿈을 꿔야지 이제는 울지 말거라 악몽은 사라지고 내일 햇빛 아래 다시 놀게 될거야...
교회에서 잡일을 돕는 고아, 마리아는 메리가 죽은 그 날 밤 누군가가 이 노래를 흥얼대고 있었다고 말했어요. 분명히 들었다고요. 보름달 뜨는 날 밤에는 함부로 밖에 나가면 안되는데, 분명 누군가가 마을 광장을 서성이며 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고. 그리고 자신은 교회 다락방에 누워 있다 그 선율을 분명 들었다고요. 하지만 울며 그리 말하는 마리아에게, 신부님께서는 무서운 생각을 많이 해 착각을 하는 것 뿐이라며, 분명 올빼미가 우는 소리와 종탑 위로 부는 바람 소리였을 거라며 다독여 주었을 뿐이었죠.
다정한 신부님마저 마리아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고, 그래서 마리아는 이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기로 했어요.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못된 아이가 살고 있었다. 그 아이는 염소의 꼬리를 잡아당기고, 암탉 둥지에 조약돌을 밀어넣고, 남의 집 호박을 깨부수고 도망치고는 하는 아주 못된 장난꾸러기였다. 아이에게 너무나도 화가 난 어머니는 어느 날 아이를 크게 꾸짖었다. [너 같이 못된 아이는 아주 크게 혼쭐이 나야만 해! 숲에 들어가 딸기를 한 바구니 가득 따오기 전까지는 돌아올 생각도 말거라! 하지만 너무 깊이 들어가지는 말고, 숲에는 괴물 늑대가 있으니까!] 그래서 아이는 빵과 햄이 든 바구니를 한 팔에 들고 숲 안으로 들어갔다. 숲 안은 아주 새카맸다. 아이는 빨간 딸기가 많이 열리는 덤불로 향했지만 덤불에는 딸기가 하나도 열려있지 않았다.
[이런! 딸기를 다 누가 먹었지? 이러면 난 딸기를 따서 돌아갈 수가 없어!] [미안해, 내가 빨간 딸기를 다 먹었단다! 하지만 저기 부엉이가 있는 곳에서 더 앞으로 가면 파란 딸기가 열리는 덤불이 있어.] 아이의 불평에, 오소리처럼 까맣고 긴 발톱이 덤불 밑에서 툭 튀어나와 아이에게 대답해 주었다. 아이는 기뻐하며 말했다. [알려줘서 고마워. 내가 어떻게 답례할 수 있을까?] [네가 가진 맛있는 빵을 내게 조금만 주렴.]
아이는 빵을 내주었고 발톱은 빵을 받은 뒤 덤불 아래로 사라졌다. 아이는 졸고 있는 부엉이를 지나서 더 앞으로 나아갔다. 그곳에는 정말로 파란 딸기가 열리는 덤불이 있었다. 아이는 딸기를 열심히 땄지만, 바구니에는 반도 채울 수 없었다. 아이는 큰 소리로 불평했다. [여기에도 딸기가 충분히 없네! 이러면 난 딸기를 따서 돌아갈 수가 없어!] [미안해, 내가 파란 딸기를 다 먹었단다! 하지만 저기 뱀이 있는 곳에서 더 앞으로 가면 연못가에 까만 딸기가 열리는 덤불이 있어.] 아이의 불평에, 고양이처럼 노란 눈이 나무 위에서 불쑥 빛나며 대답해 주었다. 아이는 기뻐하며 말했다. [알려줘서 고마워. 내가 어떻게 답례할 수 있을까?] [네가 가진 맛있는 햄을 내게 조금만 주렴.]
아이는 햄을 던져주었고 눈은 햄을 받은 뒤 깜빡거리며 나뭇잎 사이로 사라졌다. 아이는 쉿쉿대는 뱀을 지나서 더 앞으로 나아갔다. 그곳에는 정말로 까만 딸기가 열리는 덤불이 있었지만, 연못 저편에 있어서 아이는 딸기를 딸 수가 없었다. 아이는 화가 나서 외쳤다. [여기에서도 딸기를 딸 수가 없네! 이러면 나는 딸기를 따서 집에 돌아갈 수가 없잖아!] [이런, 정말 안됐다.] 연못가로 털투성이 꼬리가 살랑거리며 올라왔다.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아이에게 말했다. [내가 딸기를 따도록 도와줄게, 이 안으로 뛰어들지 않으련? 내 등에 타서 딸기를 따면 될거야.]
아이는 신이 나서 연못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 안은 어두웠다. 아이가 털북숭이 꼬리 위에 올라타자 털북숭이 꼬리는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다시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어머니가 숲에 깊이 들어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니?] [했어! 하지만 어른들은 전부 겁쟁이인걸.] [어머니가 숲에는 괴물 늑대가 산다고 하지 않았니?] [했어! 하지만 어른들은 전부 거짓말쟁이인걸.] [어머니가 나쁜 아이는 괴물 늑대가 잡아간다고 하지 않았었니?] 그리고 연못 위로 달빛이 비쳐들었다. 아이는 자기가 무엇을 타고 있는지 이제야 볼 수 있었다. 오소리처럼 검은 발톱, 고양이처럼 샛노란 눈동자, 털투성이 꼬리를 가진 괴물 늑대는 삐쭉삐쭉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아이에게 웃어보였다. [너는 어른 말을 안 듣는 나쁜 아이구나! 내가 잡아먹어야겠어!]
(보통 어른들은 이 부분에서 '으르렁!' 소리를 내며 아이들을 놀래키고는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집마다 미묘하게 바리에이션이 달라서, 늑대가 아이를 잡아먹는 대신 연못에 영영 가두거나 마녀에게 데려가는 등 다양한 결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괴물 늑대가 엘랜을 잡아먹었다는 거야!"
돼지치기 케인이 으스대며 말했다. 방앗간 조수 알렉스가 비웃음을 보냈다.
"멍청아, 그딴 얘기를 진짜 믿냐?" "심지어 넌 엘랜이랑 피터가 숲으로 가는 걸 봤다며. 어른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걔들 둘은 그냥 나무에서 떨어진 거야." "...그리고 엘랜은 살아 있었잖아. 열이 나서 앓다 죽은 거라고."
주변에 모인 아이들이 한마디씩 반박을 덧붙이자, 케인의 얼굴은 시뻘게졌어요. 케인은 겨우 15살이었어요. 자기 의견에 대한 반박과 자기 자신에 대한 모욕을 아직 잘 구별하지 못할 나이였지요. 그래서 케인은 빽 소리를 질렀어요.
"그러면 메리는? 메리 누나는 누가 죽였는데! 메리도 나무에서 떨어져서 죽었다는 거야? 나무 위에 걸린 채로 나무에서 떨어져서?"
바로 어제 관에 들어간 메리, 너무너무 잘게 찢어져 마을 사람들이 사과를 따듯 그 살점을 나무에서 그러모아야 했다는 메리, 예쁜 금발에 고운 눈웃음을 가졌던 메리, 염하는 작업이 너무 오래 걸려 장례식장에서 역한 냄새를 풍겼던, 관 안의 메리.
그녀의 이름이 나오자 소년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말았어요. 죽은 자의 이름만큼 사람을 두렵게 하는 게 있을까요?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점심을 먹던 소년들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만 같았어요. 그러게, 누가 메리를 죽였지. 누가 메리를 죽였을까.
하지만 아직, 소년들은 죽음이 뭔지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들은 어렸으니까요. 어렸고, 얼굴을 아는 사람이 죽었다 해도 이건 그냥, 무료했던 일상에 일어난 조그만 이벤트로만 느껴졌고... 시체가 너무 훼손된 탓에 장례식은 어제의 관 뚜껑을 닫은 채 진행되었어요. 그냥 검은 상자로만 보이는 관을 보며, 어린 소년들이 죽음을 실감하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그 안에 메리가 찢겨진 채 들어 있다는 걸 실감하긴 어려웠겠죠. 죽음을 실감하지 못한 어린 아이들에게, 이제 메리는 그냥 이야기 속의 유령처럼만 느껴졌어요. 옛이야기에 나오는 마녀나 늑대처럼, 진짜 사람이 아니라 낯선 존재로만 느껴졌어요.
메리의 장례식 다음날. 핏자국은 여전히 나무에 걸려 있고, 아직 풀이 자라지 않은 새 무덤이 교회 뒤 공동묘지에 세 개 나란히 놓여 있네요. 아이를 잃은 집의 부모는 멍하게 테이블에 앉아 테이블 위 나뭇결을 들여다보고 있고, 아내를 잃은 젊은 남편은 꽃이 핀 언덕 위에 걸터앉아 하늘만을 올려다보고 있어요. 사람이 죽었어요, 사람이 죽었네요. 하지만 고립된 마을, 장례식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괴괴한 분위기 속에서도 일상은 흘러가고 있어요. 여전히 마을은 고요합니다.
- 인트로 이벤트입니다. 평소의 일상을 제시해주셔도 되고, 조사를 시작하셔도 됩니다. - 주요 npc 위치 마을 촌장 카일 : 돼지 축사 메리의 남편 : 꽃이 핀 언덕 떠들고 있는 아이들 : 염소우리 옆 신부 : 교회 마리아 : 교회 - 아직 사냥꾼들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자유행동 가능합니다. 뭐든지 하셔도 됩니다. 조사, 캐릭터 간 상호작용, 탐험, 교회에 방화하기, 마을을 탈출하기, 무덤을 파헤치기 전부 가능합니다. 기다리느라 고생하셨습니다 :3 스티커 메모장을 실수로 꺼버려서 결국 처음부터 다시 치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네요. 만약 시작이 어려우시다면 나레이터가 어울리는 npc나 상황을 추천해 드립니다.
마일스는 묵묵히 나무를 깎고 있다.마을은 갑작스러운 이변으로 떠들썩하지만, 마일스는 자신이 하던 작업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대단한 물건은 아니다. 그저 작고 소박한 십자가다. 메리가 좀 더 어렸을 무렵, 마일스가 목공을 시작하지 않았을 무렵, 함께 놀던 기억들이 있기에 그 기억을 담아 작업에 임하고 있다.
>>45 돌다리는 몇 년 전, 홍수 때문에 망가졌습니다. 일단 나무 판자로 대충 보수가 되어 있기는 한데 꽤 위험해서 건너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그 다리에서 낚시하다 발 아래 판자가 부서져 익사한 소년도 있을 정도라서요. 나가려면 배를 타야 해요. 마을 공용 배가 몇 척 있고, 잡화점에서 사용하는 말을 태울 정도로 큰 배가 한 척 있습니다.
에밀리는 오늘도 어김 없이 교회에서 비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싹, 싹, 시끄러운 싸리빗자루 소리라도 들어야 마음이 진정될 것 같았거든요. 계속 평화롭기만 할 것 같은 마을에 사람이 셋이나 죽어 나갔습니다. 그것도 삽시간에요. 이때까지 그런 일은 겪은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던 에밀리에게 이번 사건은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니, 사실 에밀리 뿐 아니라 마을 전체에게 그렇겠지요.
웃. 말갛게 웃는 메리의 얼굴을 떠올리려니 또 부옇게 눈물이 나려고 하는 걸 누가 볼 새라 소매로 슥슥 닦고, 다시 비질에 몰두하기 시작합니다. 괴물 늑대. 단순히 지어낸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로 있는 거였을까요? 정말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또 울상이 되었습니다.
교회 뒤에는 공동묘지가 있죠.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무덤이 나란히 셋, 메리의 무덤은 그 중 가장 오른쪽. 채 풀조차 나지 않은 새 무덤입니다. 아직 묘비조차 없습니다. 이 작은 마을에는 묘비를 조각할 석공이 없으니까요. 메리가 죽었다는 증명이 무거운 돌 조각이 되어 그녀의 무덤 위에 놓이려면 다음 주 안식일까지는 기다려야 할 거예요. 신부님과 잡화점 주인, 윌슨 씨께서 실딘 강을 건너 다른 마을까지 가 묘비를 사올 때까지요.
하지만 묘비를 대신하듯 메리의 무덤에는 꽃이 놓여 있습니다.누가 꺾어둔 것인지는 명백합니다. 애정을 담은 손길로 꺾어 모았는지 시든 꽃잎 하나 없이 고운 흰 꽃들이 서로 엮여, 신부의 베일처럼 조용히 놓여 있네요. 꺾인 줄기의 단면에서는 아직도 향긋한 냄새가 납니다. 그녀의 남편, 짐이겠죠. 그가 반쯤 실성해 매일매일 아내에게 줄 꽃을 꺾고 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마을 안에 없습니다.
짐 역시 짐이 소년이라 불리던 시절 마일스와 함께 뛰놀던 동네 형이었다. 메리의 죽음으로 그가 힘들어하고 있을 거라는 건 짐작했지만..실제로 그런 모습을 보니 그를 위로해주고 싶다. 말뿐인 위로로는 충분하지 않겠지만, 대화를 나눠보면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호밀밭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던 로라, 늘 밝게 웃어 보이던 로라의 기운은 한껏 낮아져있었다. 늘 보이던 면면들의 부재도, 불의의 사고가 일어난 후로 뒤바뀐 마을의 분위기도, 장례식장에서 슬퍼하던 짐의 모습도 계속해서 떠오르니 기분을 환기시키려야 할 수 없었다. 짐은 괜찮을까? 그날 촌장님이 짐을 불렀댔지. 그러고 보니 앨렌과 피터를 처음 본 것도 카일 촌장님이었어. 충격이 크셨을 테니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나을 거야. 아, 그렇지. 촌장님이라면 늑대에 관해 무언가 알지 않을까? 늑대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면 조금이라도 안심이 될 것 같다.
교회의 예배당을 청소하던 에밀리는 등 뒤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를 듣습니다. 에밀리가 모르는 목소리는 아닙니다. 이 마을에서 마리아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불탄 집에서 홀로 살아남은 마리아, 교회에 사는 고아, 매일매일 종탑에 올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뻐꾸기 알을 던져대는 말썽쟁이 천덕꾸러기 마리아.
하지만 말괄량이에 천덕꾸러기인 평소의 모습과는 다르게, 오늘따라 마리아는 얌전하고... 어딘가 불안해 보입니다. 평소라면 에밀리에게 신부님이 숨겨둔 꿀에 절인 사과를 훔쳐먹으러 가자, 나무에 올라 설익은 자두를 따먹자며 온갖 말썽을 제안했을 꼬마인데. 어라, 지금 마리아가 떨고 있는 걸까요? 교회의 두꺼운 벽돌 벽, 그 사이로 난 창문으로는 길게 아침햇살이 비쳐들고 있습니다. 그 빛이 그려낸 그림자 속에서 마리아는 유독 불안해 보입니다. 그녀는 주저하다가, 등 뒤의 제단을 흘깃 보고 성호를 급하게 그은 뒤에, 입을 열어 에밀리에게 속삭입니다.
염소우리 근처는 마을의 목동 아이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풀을 뜯게 할 언덕이 있으니까요. 거위를 돌보는 아이도 염소를 돌보는 아이도, 가축을 치다 보면 자연스레 언덕의 목초지로 모여들게 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가축에게는 넓은 목초지가 필요한 법이고, 넓은 목초지가 필요하다는 건 이 곳이 마을 외곽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거죠. 염소우리 근처는 마을의 변두리입니다, 어른들의 시선이 잘 닿을 수 없는. 소년들은 이 곳에서 짖궃은 장난을 꾸미거나, 싸움을 하거나, 누군가를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하스킨즈가 염소우리 옆으로 다가오자 아이들의 시선이 쏠렸어요.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죠. 짧은 인사 후, 소년들은 하스킨즈가 오기 전부터 하던 얘기로 도로 돌아갔어요. 아무래도 얼마 전에 마을을 발칵 뒤집어 놓은 메리의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았죠. 대장 노릇을 하기 좋아하는 덩치 큰 케인이 이죽대며 말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해도 괴물 늑대야. 검은 숲에서 튀어나와 사람을 잡아먹는 거라고."
심약한 아이 하나가 히익 소리를 내자, 케인은 자기 말이 불러온 효과가 만족스러운 듯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숲 근처에 사는 사람들부터 잡아먹고 있는 게 분명해! 엘랜이랑 피터 꼬맹이는 숲에 갔다 죽었고, 메리도 숲 옆에 살았었잖아!"
카일 촌장은 마을 전체에서 손꼽히는 연장자입니다. 예순하고도 여덟이라니! 그 나이가 되도록 살아있는 것도 대단한데, 심지어 그는 건강하기까지 합니다. 카일 할아버지는 여전히 가축을 돌보고, 밭을 일구고, 보리를 수확합니다. 어떻게 저렇게 건강할 수 있는 걸까요.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 나이를 헛으로 먹은 게 아닌지, 카일 촌장은 마을 전체에서 늘 친절한 조언자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음, 최소한 카일 앞에서 대놓고 그가 싫다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으음, 사실은... 뭐, 이런 설명은 필요 없겠죠. 어쨌든 로라가 에상한 것처럼, 카일 촌장은 돼지 축사에서 돼지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마을 공유 재산인 돼지는 돌아가며 돌보는 게 원칙이지만, 사실 카일이 돌보는 경우가 가장 잦았죠.
"로라?"
썩은 사과를 돼지 여물통에 붓던 카일은, 축사 문이 열리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더니, 그게 작은 소녀임을 깨닫고는 얼굴을 풀고 부드럽게 웃습니다.
>>55 어서 오세요, 릴리주! >>56 시간상 카일은 짐과 있었으니, 메리를 죽일 수는 없었겠지만 충분히 의심스럽기는 하죠. >>59 자, 여기서 다시 한 번 경고! - 얌전히 있으면 진실은 알 수 없어도 안전할 것입니다. - 하지 말라는 거 다 하면 진실을 안 뒤에 끔살당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역시 짐의 상태가 영 좋지 않다. 처음 보는 저 반지도 신경이 쓰이지만 당장은 짐이 느끼는 감정을 조금 덜어주고 싶다. 억지로 지은 미소와 그에 비해 힘이 들어가 꽃을 우그러뜨린 손. 그것이 어떤 감정이든 짐은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속에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 감정을 덜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 테다.
"괜찮지 않은거 알아. 혼자 그럴 필요는 없어." 마일스는 짐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고개를 가로 젖고 힘이 들어간 그의 손을 힘껏 마주 잡아줍니다.
하나, 둘. 밤새 없어진 염소가 있나 숫자를 세었다. 똑같이 생긴 염소들이 우리 안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녀도 하스킨즈는 수를 다시 세는 일이 없었다. 그 일을 하면서도 귀를 아이들 쪽으로 열어두고 있었다.
검은 숲에 사는 늑대. 염소 언덕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하스킨즈는 늑대는 몰라도 검은 숲과 아주 가까웠다. 항상 검은 숲과 언덕의 경계에 거닐면서, 숲으로 들어가려는 염소가 있으면 개를 보내서 다시 돌아오게 했다.
그곳을 보고 있노라면 마력이라고 하는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를 체득할 수 있었다. 어둑어둑한 나무 사이를 쳐다보면 꼭 그 안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고 바삭거리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 감각에 집중하면 점차 그곳에 정신이 몰두되고,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으며 머리가 멍해졌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하스킨즈의 영혼 줄기가 검은 숲으로 흘러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하스킨즈는 그 오싹한 감각에 몸서리치며 몰입에서 깨어나곤 했다.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 꼭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자신이 검은 숲을 볼 때, 괴물 늑대도 숲 속에 숨어서 하스킨즈를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짐의 손 안에서 하얀 꽃다발이 일그러졌습니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저은 뒤, 한숨을 내쉽니다.
"난 괜찮아."
괜찮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괜찮다는 단어 뿐이었어요. 마치 앵무새처럼 괜찮다고 말하던 짐은 마일스의 말에 감정이 북받쳤는지, 와르르 두 손에서 꽃을 떨어뜨리더니 얼굴을 움켜쥐었습니다. 울고 있는 걸까요? 얼굴이 보이지 않아 마일스는 잘 알 수 없습니다. 괴로운 숨소리가 얼굴을 가린 손 사이에서 새어 나왔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있던 짐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멋쩍다는 듯 억지로 미소지었습니다. 미소라기보다는 경련 같았지만, 그 나름대로는 미소를 지으려 했던 것 같았어요.
"그, 이상한 꼴 보였네. 미안하다."
짐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더니, 옷소매로 이마를 한 번 훔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있잖아, 마일스. 부탁이 있는데 들어줄래? 그게... 내가 그 날 이후로 우리... 아니, 내 집에 못 들어가고 형님이랑 살고 있거든... 근데 집에서 나올 때 식탁 위에 모포를 두고 나왔어. 내가 가지러 가지는 못하겠고... 혹시 괜찮으면, 집 가다가 우리 집에 들러서 가져다 줄 수 있을까?"
혼자 있고 싶어서, 우는 모습 보이기 싫어서, 그래서 마일스를 어디론가 보내버릴 핑계가 필요했던 걸까요? 아니면 정말 갑자기 부탁이 생각난 걸까요? 어쨌든 짐은 지금 엄청나게 힘들어 보입니다. 아니면 이 아슬아슬한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같이 있어주는 게 나을까요? 그건 마일스가 선택할 일입니다.
세상에나. 이름이 불린 순간 일순 어깨가 움찔 떨린 것을 마리아에게 들키지는 않았겠지요, 설마? 아이쿠. 에밀리는 얼른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라앉혀야만 했습니다. 우스꽝스러운 삑사리가 안 난 것이 다행입니다.
어라? 무언가 이상합니다. 분명히 여느 때와 같이 여기저기 쏘다니러 가자고 이야기할 줄로만 알고 '신부님께 혼 날 거야ㅡ' 따위의 대사를 내뱉으려고 했는데, 마리아가 지나치게 얌전했던 것입니다. 얘가 드디어 철이 들었나, 누군가의 기도를 주님께서 드디어 이루어 주셨나? 온갖 추측만이 머릿속에서 난무하던 가운데, 뒤늦게 마리아의 작은 떨림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불안해하는 듯 성호를 긋는 행동도요. 마리아, 무슨 일 있니? 물어보려던 순간.
"왜 그래, 마리아?"
언니는 잡화점 근처에서 살고 있잖아. 두 번째로 작은 판잣집. 본 적 있지? 어쩐지 스믈스믈 겁이 나기 시작해서, 두 손으로 빗자루를 조금 더 꽉 쥐었습니다. 마리아의 떨림이 제게로 옮겨 오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입니다.
숲은 술렁거리고, 재잘대며, 속삭이고, 검은 아가리를 벌린 채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 실딘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숲에 익숙하지만, 숲을 두려워하죠. 어쩔 수 없어요. 켜켜히 쌓인 낙엽, 그 사이로 사람의 손가락처럼 피어난 버섯, 세월에 따라 비틀리고 꼬인 나무 둥치, 짙은 나무 향기 너머 희미하게 느껴지는 뭔가가 썩어들어가는 듯한 냄새, 빽빽히 얽히고 섥혀 햇빛조차 닿지 않는 숲 안에서는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그 그림자 너머에서는 바스락,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하스킨즈가 검은 숲에서 마력이라는 단어를 느낀 건 당연할지도 몰라요. 하스킨즈는 실딘의 소년이니까요. 새카만 숲을 시야 한 켠에 늘 두고 살아온- 시야 한 켠에 금기과 불안과 공포의 영역을 두고 살아온 아이니까요.
메에에, 하스킨즈가 돌보는 하얀 염소 한 마리가 울었습니다. 어서 방목장으로 내보내 달라는 신호 같았어요. 염소 우리의 문 위에는 케인이 걸터앉아 다리를 덜렁덜렁 흔들고 있었습니다. 하스킨즈가 그 문을 열어야 한다는 건 안중에도 없는 듯 싶었죠. 케인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다른 소년들에게 하던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진짜 괴물 늑대인지 알고 싶으면 어디 한번 메리의 유령을 불러서 알아보자고. 고양이 시체를 구해다가 무덤 위에 올려두면 그 사람의 유령이 나타난다잖아."
괜히 왔나 걱정하며 잠시 주춤거리던 로라는 촌장님이 웃으며 반겨주자 금세 안심하곤 총총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촌장님--! 역시 이곳에 있으셨네요! 다른 사람들은 다들 돼지를 돌보지 않나봐요, 떠넘기다니! 아. 일이랄까, 그게요, 딱히 할 일도 없구...촌장님은 괜찮으신지 걱정도 좀 되구..."
촌장님이 침울해하고 계실 것 같아 기분 풀어드리려고요? 겸사겸사 늑대가 한 짓이 정말인지 궁금해서요? 직접 말로 하긴 그렇지..? 입 밖으로 꺼낸다는 것은 다시 그 사건들을 상기시키는 짓이라는 걸 알아 부러 말을 빙빙 돌리며 마찬가지로 시선도 데굴 굴려보다 결국 조심스럽게 물음을 던진다, 동화 속 괴물들의 존재를 온전히 믿는 아이의 낯을 하며.
교회와 잡화점은 마을 광장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광장이라고 해봤자, 작은 공터에 불과하기야 하지만- 어쨌든 마리아가 사는 교회도, 에밀리의 집도 광장에 접한 건 분명합니다. 마리아의 시선이 불안한 듯 에밀리의 얼굴과, 에밀리 등 뒤, 광장으로 향하는 문과, 그리고 자기 등 뒤의 제단을 교차합니다. 작은 소녀는 겁에 질린 것 같았어요. 그리고 망설이는 것 같기도 했고요.
한참 앞치마 앞섬을 꾹 움켜쥐고 있던 마리아는, 이윽고 용기를 냈는지 고개를 들었어요. 얼마나 강하게 움켜쥐고 있었는지 마리아의 하얀 앞치마에는 구겨진 자국이 선명했지요. 문득 에밀리는 마리아의 등 뒤, 제단 앞에 떨어져 있는 하얀 꽃 한 송이를 발견합니다. 아마 어제 있었던 장례식에서 떨어졌다가 채 치우지 못한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어제는 장례식이 있었죠. 그리고 마리아가 꺼낸 것도 그 이야기였어요.
"어제, 장례식을 했잖아."
마리아는 불안한 듯 교회 문을 보며 말했어요. 그리고 또다시 짜증스러울 정도로 긴 침묵이 흘렀지요. 마리아의 동공은 불안으로 새카맣게 확장되어, 에밀리의 얼굴이 그 안에 비쳐 보였어요. 작은 소녀 마리아는 악마의 이름이라도 입에 담는 것처럼 망설이다가, 결국에는 메리의 이름을 입에 담았어요. 불운을 피하기 위해 손가락을 꼰 채로.
"메리 언니가 죽은 날에. 괴물 늑대가 언니를 물어간 날에... 혹시, 광장에서. 노랫소리 안 들렸어...?"
마리아는 이제 숫제 울먹이고 있었죠.
"나, 나 달이 너무 밝아서... 잠이 안와서... 깨어 있었는데... 광장에서. 창 아래에서... 누가 자장가를 부르면서 춤을 추듯이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가... 언니도 들었어...? 아니면 나, 메리 언니를 잡아먹은 악마 소리를 들은 거야?"
그리고 케인은 앉아있으면 안 되는 곳에 앉아있다. 케인은 망자를 불러내는 강령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신부님의 말씀에 따르면 죽은 자는 모두 하느님 앞에 서서 천국이나 지옥, 아니면 연옥의 심판을 받게 된다고 했다. 어느 곳도 가지 못하고 이승을 헤메는 유령 같은 건 없다고. 설마 하느님의 심판을 받아 세 곳 중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를 고작 죽은 고양이 따위로 빼돌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 사악한 마귀나 악마는 되어야 그만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스킨즈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기. 문을 열어야 해. 잠깐 비켜주지 않겠어?"
망토로 도롱이처럼 몸을 돌돌 감은 하스킨즈는 케인 옆으로 종종 걸어가서 말했다. 염소들이 풀을 뜯게 해 달라고 하스킨즈에게 보채고 있다.
짐과 메리가 살던 집은 그 날 그대로입니다. 앞문은 잠기지 않았고, 집 안은 어두컴컴합니다. 삐끄덕, 바람 소리와 함께 경첩이 쇳소리를 냈습니다. 왜 사람이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이 집은 이다지도 을씨년스러울까요. 그 날 당일의 소동을 증명하듯 거실 바닥에는 의자가 쓰러져 있고, 우유가 담긴 항아리가 깨진 채 식탁 위를 나뒹굴고 있습니다. 마일스는 분명 메리가 생전에 구웠을 빵 몇 덩어리가 바짝 말라 굳어가고 있는 것도 발견합니다. 바구니 안에서 조용히 굳어가는 호밀빵 덩이는 그림자 진 집 안에서 마치 생명력을 잃은 시체처럼 보였습니다.
마일스는 어렵지 않게 짐이 말했던 모포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일스가 모포를 발견한 그 순간, 바람이 불어와 뒷문을 살짝 흔듭니다. 녹슨 경첩이 삐끄덕대는 소리에 고개를 든 마일스는 뒷문 손잡이에 묻은 검은 자국을 발견합니다. 축사로 향하는 뒷문에는 검붉고 끈적해 보이는 액체가 말라붙어 있습니다. 블루베리 즙이라기엔 너무 붉고, 자두즙이라기에는 너무 끈적해 보여요. 돼지를 도축할 때 저런 색의 액체를 보았던 것도 같습니다. 저건 그 날의 흔적일까요?
카일은 빙그레 웃으며 황금률에 대해 말합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 역시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늘 기억하라. 교회 설교에서 자주 나오는 래퍼토리네요. 카일은 사람 좋게 웃으며 말을 잇습니다.
"그러니 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일이라면 내가 하는 게 낫지. 솔선수범하는 자에게 천국의 문은 열리는 법이란다, 로라."
아, 어쩌면 이렇게 재미없는 인간이 다 있을까요. 설교에 가까운 말을 하면서도 카일은 쉬지 않고 손을 움직입니다. 그가 든 마대 자루에서는 썩은 사과가 와르르 돼지 여물통 위로 쏟아집니다. 노인에게는 퍽 무거울 자루를 들고 쏟아붓는 중이건만, 비슷한 육체노동을 오랜 세월 반복해와서일까요. 그는 익숙한 동작으로 일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로라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늑대에 대해 물은 순간이었습니다. 카일이 쏟아붓던 마대 자루가 순간 휘청이더니, 썩은 사과가 와르르 바닥 위로 떨어져 내렸습니다. 코를 아리게 할 정도로 들큰한 냄새가 퍼지고, 물컹하게 썩은 사과들은 바닥 위로 떨어져 데구르르 굴러갔습니다.
"어이쿠."
카일은 다급하게 허리를 숙여 썩은 사과를 줍기 시작했습니다. 돼지에게 먹이는 것은 사과주로 담그지도 못할 정도로 완전히 상한 사과들 뿐입니다. 그리고 썩은 사과는 신선한 사과와 함께 두어서는 안되는 법입니다. 다른 사과조차 썩게 만드니까요. 창고의 관리자는 늘 썩은 사과를 골라내고, 마땅한 처리를 해야 하는 법입니다.
썩어 문드러지고 흰 곰팡이가 피어난, 검고 푸른 사과들이 바닥 위를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습니다. 카일은 바쁘게 사과를 도로 집어 돼지 여물통에 던져넣습니다. 사과를 줍느라 바빠서 그런 걸까요, 로라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세명이 긴 잠에 들었다. 깨어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긴 잠에. 그에 릴리 모친의 근심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아이가 그 희생자 중 한 명이 아님에는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불안한 상황에서는 불안한 장면을 자꾸만 상상하게 되는 것. 자신에게 남은 전부는 릴리뿐이었으니 사건 이후 아이를 과보호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는 골백번을 릴리에게 집 밖으로 혼자 나서지 말라 일렀고, 릴리는 부모의 기쁨이 되고자 그 약속을 지켰다. 그렇지만 아직 완벽히 철들지는 못한 아이. 어머니와의 약속은 집 안에 갇혀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흔들리고 있었을까. 결국 어머니가 잠시 외출을 나선 사이 릴리는 대탈주를 강행했다.
멀리 가지 않고 집 근처서 산책하다, 금방 다시 돌아가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라는게 릴리의 생각이었지만 오랜만에 외출에 들뜨고 말았으니. 집 근처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릴리는 꽃이 핀 언덕으로 걸음을 옮겼다.
케인은 하스킨즈를 빤히 바라보더니 피식 웃습니다. 그는 폴짝 문에서 뛰어내렸습니다만, 길을 비켜주지는 않았습니다. 하스킨즈와 문 사이를 가로막은 케인은 약올리듯 말합니다.
"하스, 하스, 하스킨즈! 뭐야, 너 설마 늑대가 무서워서 말 돌리는 거야?"
하스킨즈에게 그럴 의도는 없었고 그게 진실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소년 무리의 분위기는 한창 무서운 이야기를 하던 케인이 꽉 휘어잡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난폭해질 수 있는지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려 드는 건 사춘기 소년들의 흔한 습성이죠. 그리고 케인은 유독 그런 성향이 강한 편이었습니다. 케인은 히죽히죽 웃으며 도발하듯 말했습니다. 주변을 둘러싼 소년들은 킬킬 웃을 뿐, 아무도 말리거나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어요.
"아니면 도망가는 거야? 유령을 불러내자는 얘기가 무서워서?"
케인은 재수없게 실실대며 말합니다. 그 옆에서 같은 염소치기인 윌리엄-애칭 빌리가 어쩔 줄 몰라하며 케인, 하스킨즈, 그리고 염소 우리의 문을 번갈아 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소심한 친구도 염소 우리의 문을 못 열고 있는 것 같네요. 케인은 여전히 염소 우리 문 앞에 서있습니다. 아무래도 자기 허세욕이 다 채워지기 전까지는 친절히 옆으로 비켜주지 않을 것 같네요.
이 멍청한 허세 덩어리를 문 앞에서 치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이른 점심을 먹어치웠는지, 염소 치즈가 케인의 앞니에 끼어 있는 것을 하스킨즈는 문득 눈치챕니다. 우웩.
제단 곁에 미처 치우지 못 한 꽃 한 송이에 시선이 닿자마자 오소소소 소름이 돋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어제 사람들 틈에 섞여서 본, 뚜껑도 열지 않은 검은색 관이 떠올라서? 하얀 꽃송이가 드레스를 입은 결혼식 날의 메리 모습같았기 때문에? 모르겠어요, 모르겠습니다. 곧이어 마리아가 뱉은 말에 모두 묻혀 버렸거든요.
"...으응."
빠르게 어두워지는 낯빛. 유리구슬처럼 새카만 눈동자 안의 자신을 마주하기 싫어 애써 마리아의 미간이나 입 따위를 주시하면서 목을 울려 대답했습니다.
메리가 사라진 날 밤, 무얼 하고 있었더라. 노랫소리를 들었나? 아무것도 듣지 않았나? 무언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라면 들었을지도 모르는데. 착한 아이는 밤이 늦으면 잠이 드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동네입니다. 아마 에밀리도 그 때에는 한창 잠에 빠져 있었겠지요. 에밀리의 기억이 맞다면.. 말입니다. 보름달이 뜨는 날 밖으로 나가는, 실딘의 사람들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을 한 누군가와, 섬뜩하게 들려오는 자장가. 마리아의 울먹거림을 따라 자기도 눈물이 나올 것 같습니다.
"아니, 아니... 나는 자고 있었어서.. 듣지 못 한 것 같아."
그렇게 이야기 해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었어요. 당장 호기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캐묻기에, 에밀리는 너무 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고 있었는걸요.
"무서우니까 그 이야긴 이쯤 하자. 이리 와, 마리아."
에밀리는 들고 있던 빗자루를 대충 벽에 기대 세우고, 벌벌 떨고 있는 마리아에게 두 팔을 벌려 주었습니다.
꽃 피는 언덕의 이름은 없습니다. 그냥 꽃이 많이 피어나기에 꽃 피는 언덕이라 부를 뿐이죠. 마을 서쪽에 넓은 목초지가 있기에, 여간한 가뭄이 아닌 이상 사람들이 여기까지 가축들을 몰아오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이 언덕에서는 하늘을 만끽하기 위해 풀 위에 드러누웠다가, 실수로 소똥 따위를 등 전체에 칠갑할 걱정은 별로 없다는 뜻입니다.
짐은 거기에 혼자 앉아 강가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의 곁에는 하얀 화관이 몇 개나 쌓여 있었습니다. 릴리는 짐을 모르지 않습니다. 사실, 이 조그만 마을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이 있는 게 더 놀랍지 않겠어요? 우두커니 앉아 언덕 아래 강가를 내려다보는 짐은 슬프고 외로워 보였습니다.
릴리는 문득 짐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립니다. 실딘 강, 마을의 이름이 되기도 한 강은 오늘도 여전히 마을을 휘감으며 흘러가고 있습니다. 날씨가 맑은 덕에 강 위로 윤슬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은빛 비늘을 가진 물고기 한 마리가 파드득 튀어오르는 모습까지도 보입니다. 하지만 모든 실딘의 아이들은 결코 실딘 강에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압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평화로워 보이든 간에, 강은 위험합니다. 어른들이 누누이 말하지 않았던가요, 지금까지 몇 명이나 되는 무모한 아이들이 강에 휩쓸려 죽었는지는 아냐고.
강은 위험합니다. 릴리가 그 사실을 아는 만큼 짐도 그 사실을 알 것입니다. 그들은 둘 다 실딘의 아이니까요. 그러니, 릴리는 짐이 실딘 강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딘 강이 상징하는 건, 최소한 마을 주민들에게는 아름다움은 아닙니다.
대담하진 않으면서 장난꾸러기였던 로라가 종종 들었던 이야기다. 비슷한 이야기를 어른들께 들었을 때 뭐라 대답했더라. 아, 당신이 천국을 가길 원해서 그랬어요 였다. "네에 네에"라며 대답은 꼬박꼬박 하는 로라는 한 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했다. 촌장님이라면 천국의 문은 이미 열렸을 텐데 같은. 이번에는 단지 솔선수범이라는 말에 겸사겸사 도움을 주려고 뻗은 손이 의도치 않은 쪽으로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 휘청이는 마대자루에 움찔 놀란 로라는 당황한 몸짓으로 나동그라진 사과를 줍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상함을 느낀 것은 금방이었고, 로라는 고개를 들어 카일의 얼굴을 살피려 한다. 어쩐지 대답이 없으시네……. 물어봐서는 안됐었나? 역시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으신 걸까.
……촌장님? 로라는 안절부절하는 기색으로 카일을 부른다.
"제가 괜히 상처를 들쑤신 건지……. 괘, 괜찮을 거예요. 마을도 다시 활기 차질 거예요, 제가 있잖아요!"
일부러 밝게 웃으며 허풍을 떨어 보였다. 가끔 심각한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데에 바보 같은 짓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는 것을 안다.
이 집 역시 아버지의 손길을 거쳤었다. 새신랑과 새신부를 위해 특히 정성 들이던 아버지의 모습과 열심히 보조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당시의 상황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 같은 집안의 모습에 마일스는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후우..후우.."
몇차례 심호흡을 하며 산소를 뇌에 공급하자 조금 견딜 만해졌기에 목표로 하던 모포를 마저 찾아다녔다.
"이건가보네"
찾는다는 표현도 무색하게 쉽게 발견한 모포였지만, 다른 것 역시 너무 쉽게 발견되고 말았다.
"...저건?"
그런데..저게 마일스가 예상하는 그것이 맞는다면, 뭔가 이상하다. 마일스가 듣기론 핏자국은 축사 앞에서부터 발견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저건 핏자국이 아니거나, 짐이 뒤늦게 묻힌 것이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떠도는 이야기에 잘못된 점이 있다는 것일 터다. 아니.. 짐이 뒤늦게 묻혔을 리는 거의 없다. 경기를 일으킨 짐을 마을 사람들이 진정시켰다는건 다수의 사람이 관련된 만큼 확실하다. 그쯤이면 이미 피도 말라 묻지도 않을 뿐더라, 모포조차 챙기지 못하는 짐의 상태를 볼 때 이 집에 왔을 가능성은 낮다. 고로...
하스킨즈는 케인의 악의적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우리 문을 가로막고 히죽거리는 케인의 눈을 쳐다보는게 전부였다. 갈색 눈을 깜빡 깜빡거리면서.
"케인. 너..."
겁이 많은 개가 함부로 짖고 입질을 한다. 정말 포악해지는 동물은 사냥을 위해 웅크린 맹수가 아니고, 생명의 위협에 겁먹은 초식동물이다. 하스킨즈는 알고 있었다.
"겁먹었구나."
밤송이같은 녀석. 겉은 가시로 뒤덮였지만 발로 밟아서 까보면 맨들맨들한 알맹이가 숨어있지. 불에 구워먹으면 맛있다. 하스킨즈에게는 악의도 조롱도 찾기 어려웠다. 그냥 생글 웃으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 안에 염소가 있고, 내 옆에 루나와 호른이 있다는. 놀랄 것도 없는 명백한 사실을 읆듯이.
자장가는 어린 아이를 재우려 부르는 노래죠. 누군가가 어린 아이를 안고 광장을 헤매고 있었던 걸까요, 품에 안긴 아이가 잠들기를 기다리면서? 보름달이 뜬 날 밤은 불길하게 여겨집니다. 실딘 주민들은 모를 일입니다만, 이건 바로 옆 마을에만 가도 없는 실딘만의 이상한 풍습입니다. 교회에 부임해 온 마르코 신부님이 보름달을 두려워하는 것은 미신에 불과하다고 아무리 사람들을 개혁하려 해도, 보름달이 뜨는 날 밤 혼자 밖을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용감한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카일 촌장을 위시한 4명의 장로들은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에게 늘 보름달 뜨는 날에는 가만히 집 안에 있으라 가르쳤고, 그 아이들은 자라나 자기 아이들에게 같은 말을 가르쳤습니다. 보름달 뜨는 날 밤에는 밖에 나가서는 안되는 법이에요. 메리가 죽은 날 짐이 그랬듯, 정말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죠. 금기라는 단어에는 무거운 힘이 있어요. 정확히 '왜' 안되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건 마치, 시체에 감도는 기운과 비슷해서... '그냥' '당연히' '불길하고' '기분 나쁘며' '해서는 안되는'...
착한 아이인 에밀리는 금기의 무게를 잘 알고 있겠죠. 뭘 해야 하고 뭘 하면 안되는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 때문일 거예요. 착한 아이인 에밀리가 그 노래를 듣지 못한 건 말이에요.
밤에 잠들지 않고, 보름달이 뜨는 날임에도 덧창을 내리지 않는 말괄량이 못된 소녀나 그런 노래를 듣게 되는 거겠죠. 착한 소녀인 에밀리와는 다르게 말이에요. 그리고 그런 못된 소녀만 이렇게 벌벌 떨게 되는 거겠죠. 악마나 괴물의 소리를 들었다는 공포에 빠져서요.
마리아는 울먹이며 에밀리에게 덥석 안겼습니다. 어린 소녀의 눈물이 에밀리의 옷 앞섶을 축축히 적셔옵니다. 조그만 손으로 에밀리를 꼭 끌어안은 채, 마리아는 웅얼댑니다. 에밀리를 꼭 끌어안느라 약간 뭉그러진 목소리였지만, 알아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카일 촌장님은 웃었습니다. 로라는 썩은 사과에 카일의 울퉁불퉁하고 마디진 손가락이 깊게 파고든 것을 확인합니다. 사과가 많이 썩었었나 봐요. 저렇게... 쉽게 손아귀 안에서 뭉그러질 정도면 말이에요. 굉장히 놀라거나 화가 났을 때, 동요를 감추기 위해 사람은 주먹을 쥐고는 하죠. 아니면 손 안에 쥔 것을 꽉 잡거나요. 하지만 카일 촌장님은 로라에게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실 그는 자기가 그렇게 세게 사과를 붙잡은 줄도 모르는 것 같았어요.
화가 났는지, 아니면 뭔지는 모르겠지만 카일이 동요한 것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카일은 사과를 마저 주워 정리한 뒤 손을 털었습니다. 바로 옆에 로라가 있는데도 뭔가 생각에 빠진 듯 아득한 눈빛입니다. 아이들에게 친절한 그에게서는 자주 볼 수 없었던 모습이네요. 촌장님은 늘 아이들이 옆에 있으면 일순위로 챙겨주고는 했었는데. 어딘가 먼 곳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축사 안은 어둡고 가축의 악취가 풍기는 좁은 공간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카일의 눈동자는 이 좁은 공간 안이 아니라 다른 어디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메리에 대해 생각하는 걸까요? 그래서 표정이 저런 걸까요? 아니면 메리를 죽였다는 괴물 늑대? 그것도 아니면, 본인이 직접 시체를 발견했다는 피터와 엘랜 남매?
마일스는 뒷문으로 다가갑니다. 그리고 문손잡이에 묻은 얼룩을 확인합니다. 네, 피가 맞습니다. 인간의 것인지 짐승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문 손잡이 위에는 끈적하게 말라붙은 검붉고 선명한 얼룩이 남아 있습니다. 모양이 이상합니다. 마일스는 이윽고 알아차립니다. 이건 손자국입니다. 누군가가 피로 범벅된 손으로 손잡이를 붙잡은 것 같습니다. 피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표면을 만지면 살짝 묻어날 정도예요. 습한 요즈음 날씨를 감안하더라도, 손에 피를 묻힌 그 누군가가 이 문을 지난 지는 하루 이상은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루... 아니, 어쩌면 몇 시간 전에 손에 피를 범벅이 되도록 묻힌 누군가가 급히 여기를 지났던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오늘은 11월 2일입니다. 그리고 메리가 죽은 건 10월 30일이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그 순간 바람이 불어 뒷문이 삐끄덕 열립니다. 이 집을 지은 마일스의 아버지는 결코 일을 대충 처리하지 않았었습니다. 신혼 부부를 위해 열심히 마일스 본인도 보조하지 않았던가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뒷문이 약간, 아주 조금 문 틀에서 어긋나 있네요. 그래서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았었던 모양입니다. 마치 바깥에서부터 큰 충격이 가해져, 문이 경첩에서 살짝 비틀려버린 것 같아요. 그리고... 마일스는 목수이기에, 뭔가 위화감을 느낍니다. 이 문에는 있어야 하는 뭔가가 없는 것 같은데? 그게 뭐지?
케인은 자존심이 상한 것 같습니다. 그는 혀를 차더니 하스킨즈를 사납게 노려봅니다. 주변 소년들이 낄낄대며 웃었습니다.
"내가?" "오오, 하스! 말 잘했다!"
방앗간 조수, 알렉스가 낄낄 웃으며 분위기에 장작을 넣었습니다. 그는 케인의 화를 부추기듯 옆에서 키득댔습니다. 흥미진진하다는 듯 하스킨즈와 케인을 번갈아 보는 게, 둘이서 주먹다짐이라도 하기를 기대하는 듯했죠. 악의와 장난기가 뚝뚝 떨어지는 말투로 알렉스가 말을 이었습니다.
"하긴 케인 저놈은 항상 말뿐이잖아." "웃기지 마!"
발끈한 케인이 소리를 질렀지만, 키가 껑충하고 나이도 많은 알렉스는 콧방귀만 뀔 뿐이었죠. 씩씩대는 케인과 차분한 하스킨즈, 그 옆에서 얌전히 앉은 개 두 마리, 싸움을 재밌다는 듯 관전하는 다른 소년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던 그는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케인에게 제안합니다.
"그럼 진짜로 고양이 시체를 구해다가 메리의 무덤에 올려두러 가보라고. 잘됐다. 오늘 밤은 그믐이잖아. 어두운 그믐달 밤에 유령이 나온다는 건 다들 알지?"
알렉스는 케인과 하스킨즈를 빤히 보며 이죽댑니다.
"겁쟁이가 아니라면 오늘 밤에 무덤으로 나와보라고. 안 나오는 놈들은 남자도 아닌 줄 알겠어."
>>123 하스는 감정도 잘 안 드러나고 말도 길게 안 하는 편이라니까 어릴 때부터 마을 사람들한테 치대고 다니는데 하스 만났을 땐 속으로 '이 애 어려워 ^ㅁㅠ~~~' 할 거 같은🤔 ㅍvㅍ💦 <- 요런 표정으로 합죽이된 채 옆에 꾸겨앉아잇고(아무도뭐라안햇는데)
>>124 바로 도끼눈 뜨고 말 돌리는 거 다 알아! 왁왁 거리기...그치만 도리어 마일스가 성실할 때(아마 목수일..?)는 애들 우르르 끌고 와서 애들이 놀아달래~놀자~하면서 애들이랑 같이 방해할 것 같아요 ψ(⃔ *` ´ * )⃕ 마일스의 성실한 이야기를 들으면 로라는 대놓고 '으엥......그 얘기 언제까지야?•᷄⌓•᷅' 이럼서 쳐다볼 것 같은....(내로남불갑로라)
그럼요. 우쭐대듯 흥!하고 어깨를 편 탓에 들썩이던 땋은 양 갈래는 금세 제 자리를 찾았다. 곧이어 휘어져 접혀있던 눈이 생각에 빠진 카일의 낯으로 향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직후인데 갑자기 원상태로 돌아오기는 힘드시겠지. 아무튼 카일 촌장님이 이렇게 동요하시는 모습을 보니 더 이상 물어보면 안 될 것 같다.
"촌장님, 이제 애들하고 놀아주러 가야겠어요! 염소 우리 쪽에서 떠드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기도……."
그렇게 나가려는 듯 하더니 다시금 빼꼼 고개를 집어넣곤 덧붙인다. "그리고 솔선수범이라곤 하셨지만 그래도 너무 안에 오래 있지는 않는 게 좋겠어요, 여기 냄새 사실 좀 고약해요."
정말 가볼게요! 손을 두어 번 방방 흔든 로라는 자리를 비우려는 핑계로 댔던 염소 우리 쪽으로 정말 가볼까 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대체 이 어린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이제는 상상하기조차 무섭습니다. 게다가 슬프게도 지금 당장 에밀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딱히 힘도 무엇도 없는 왜소한 겁쟁이 여자애에 불과한걸요. 다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마리아의 등을 부드럽게 쓸거나 토닥거려주었을 뿐입니다. 지난 이틀간의 밤이 이렇게 작은 등을 가진 여자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짐이었겠구나, 하는 생각만이 문득 스칠 뿐입니다.
"괜찮아. 마리아는 착한 아이잖아? 주님께서 지켜 주실 거야."
그리고 신부님도. 엄지로 조심스럽게 마리아의 눈물을 훔쳐 주었습니다. 들어본 적 있지?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문득 떠오른 성경 구절을 가만히 읊어 봅니다. 아이의 마음에 얼마나 큰 위안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뚝 하자, 응? 나중에 신부님께 꿀 절임 사과를 하나 부탁해 볼게.
"신부님에게는 해 봤니? 이 이야기."
이 이야기가 마을 내에서 더 퍼져 봤자 좋을 것이 없으리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특히 돼지치기 케인이나 그 패거리, 혹은 몇몇 수다쟁이 아주머니들에게 흘러들어가기라도 하면 마을은 더더욱 어수선해지겠지요. 어쩌면 조금.. 주의를 주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칩니다.
자물쇠. 마일스는 목수의 직감으로 정확하게 위화감의 정체를 파악해냅니다. 자물쇠가- 정확히는 빗장이 없습니다. 빗장틀에 끼워 문 안쪽에서 고정하는 두꺼운 떡갈나무 빗장이 완전히 사라지고 없습니다. 빗장을 걸어두지 않을 때면 보통 문 옆에 둘 텐데... 없네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누가 빗장을 치운 걸까요? 하지만 누가 굳이 그랬을까요? 이런 시골집에서 사용하는 빗장은 제법 묵직하기 마련입니다. 특히 이 집은 신혼부부가 살 집이라, 아버지가 빗장을 일부러 무겁게 만들었음을 마일스는 알고 있어요. 성인 남자가 팔로 안아 옮겨야 할 정도로 묵직한 물건이라 메리가 불평을 했다는 말도 들었었다고요. 그러니까, 누가 일부러 옮기지 않는 한 발에 채여 굴러갈 물건은 아니라는 뜻이겠죠.
피에 놀라 주변을 살피던 마일스는 문 옆, 벽면에 묻은 피를 발견합니다. 피 묻은 손가락이 쓸고 지나간 듯한 자국이네요. 누군가가 피에 젖은 손 끝으로 벽면에 기대어 있던 물건을 집었다면, 피 묻은 손가락이 벽에 스치며 이런 흔적을 남기지 않을까요? 그 핏자국을 따라 시선이 옮겨간 마일스는 바닥에 떨어진 마른 나무 부스러기를 찾아냅니다. 목수 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마일스였기에, 그 나무 부스러기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건 바짝 마른 호밀 줄기입니다. 실딘에서는 수확이 끝난 호밀의 두껍고 단단한 아랫단을 모아 묶어 빗자루로 쓰곤 하죠.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에는 뭔가 강한 충격에 부서진 듯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흑마술이 정말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겠지만, 방금 하스킨즈가 내뱉은 흑마술이란 단어가 마법처럼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었음은 분명합니다. 하스킨즈 옆에서 목동 지팡이를 꼭 붙들고 있던 빌리가 헉, 짧게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축사 안을 울렸습니다. 방금 전까지 싸구려 강령술에 대해 떠들어대던 알렉스마저 움찔 몸을 떨었죠. 하지만 알렉스는 자기가 움찔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은 듯, 거칠게 비웃음을 뱉었습니다.
"못된 짓은 못하시겠다 이거야? 어른들의 착한 멍멍이께서 납셨네, 아주."
알렉스는 하스킨즈 옆에 얌전히 앉은 루나를 보며 이죽댔습니다. 그게 그가 순간적으로 생각해낼 수 있었던 모욕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창의적인 단어였나 봅니다. 뭐... 그것조차도 별로 창의적이지는 못했지만요. 잠깐 불유쾌한 분위기가 흐르고, 이윽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하스킨즈를 노려보던 케인이 입을 열었습니다.
"하여간 하스킨즈, 분위기 깨는 데에는 최고셔. 알렉스, 저 겁쟁이는 버리고 가자. 고양이 시체라도 찾아오자고."
그리고 케인은 기분이 상한 듯한 표정으로 휙 축사를 나가버렸습니다. 알렉스도 함께요. 그 둘이 축사를 떠나자, 염소치기 빌리는 대놓고 안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 케인은 이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 알렉스는 이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 '남자의 자존심'이 모욕당했다 느낀 소년들은 어쨌든 메리의 무덤에서 헛짓거리를 할 계획입니다! * 빌리가 당신을 동경합니다...!
촌장님은 로라가 나가기 전, 가방을 뒤져 잘 익은 가을 자두 두 개를 쥐여 주었습니다. 분명 호의였고, 황금빛과 자줏빛으로 빛나는 자두는 싱싱하고 먹음직해 보입니다만... 방금 전까지 촌장님이 돼지를 돌보던 것을 감안하면 옷으로든 물로든 한 번 닦아서 먹는 게 좋지 않을까요?
어쨌든, 촌장님께 인사하고 축사를 떠난 로라는 바로 옆, 염소 축사 쪽으로 걸어갑니다. 마침 소년 한 무리가 우르르 염소 축사에서 나오는 것이 보이네요. 로라도 알고 있는 심술궃은 케인이나 알렉스도 그 중에 끼어 있습니다. 점심시간이 끝나서 다들 다시 일하러 가는 걸까요?
다음 순간 로라는 발목에 간질거리는 느낌을 느낍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뭔가가 그녀의 발목 사이로 우아하게 빠져나갔다가, 다시 한 번 돌아와 꿍. 그녀에게 이마를 부딪힙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마을 광장에 자주 나타나는 검은 고양이, 블래키가 로라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미-야옹."
까만 고양이는 로라를 빤히 올려다보며 재촉하듯 길게 울었습니다. 초록색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실딘에는 검은 고양이는 마녀의 현신이란 말이 있고, 그 고양이에게 치즈를 주며 부탁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미신도 있죠.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오냐오냐해주다 보니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에게 치즈를 바칠 것이라 믿고 있는 블래키입니다. 아무래도 목적은 로라에게서 간식을 뜯어내려는 게 아닐까요.
"신부님은 내가 헛간 부엉이 울음소리를 잘못 들었다고 하셨어. 아니면 바람 소리나... 사람 마음 속에는 악마의 유혹이 있으니까, 속임수에 속지 말라고 하셨어."
마리아는 잔뜩 풀이 죽은 채 그리 말합니다. 어린아이 특유의 두서 없는 말투입니다만, 신부님이 마리아의 말을 믿지 않았다는 내용만은 알 수 있겠네요.
"그리고 사실 애피 할머니께도 말해봤는데..."
애피 할머니는 이 마을의 산파이자 장로입니다. 남편과 아들을 잃은 이후, 그녀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살며 약초를 키우고 있습니다. 한쪽 다리를 절어 일은 하지 못하지만 현명한 사람이라, 마을 사람들은 그녀에게 찾아가 약초를 얻거나 건강 관련 자문을 구하는 일이 잦습니다. 항상 상냥한 그녀는 어린아이들의 방문을 늘 반기며,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많습니다. 마리아가 애피에게 자기 걱정을 털어놓았다는 게 놀랄 일은 아닐 겁니다.
"근데 애피 할머니가 엄청나게 무서운 표정으로,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큰일 날 소리 한다고..."
그 때를 떠올리는지 마리아는 다시 울먹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디 가서 말하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음에도 생각 없이 이야기를 떠들고 다니는 아이의 무심함을 혼내야 할까요, 아니면 아이들은 원래 이런 법이니 그냥 넘어가야 하는 걸까요.
응, 응.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렇지요. 사실 어린아이가 겁에 질려 하는 알 수 없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줄 어른은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 이상하네요. 그렇게나 상냥한 애피 할머니가 무서운 얼굴을요? 무언가 석연찮은 기분이 들었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마 이런 이야기가 마을에 떠돌고, 촌장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면 큰 소동이 일어날 수 있으니 경고라도 했나 보다 싶었지요. 하지만 그렇게까지? 혹여나 누군가가 듣고 있는지 주변을 둘러 봅니다.
“마리아가 다른 어른들한테 혼날까 봐 그러신 걸 거야. 실딘 사람들은 무서운 소문을 싫어하잖아, 그치?”
쪼그려 시선을 맞춘 채로 마리아의 손을 꾹 잡아 줍니다. 어떻게 되든 일단은 이 울먹거림을 멈추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 여자아이에게는 우는 얼굴보다 장난스럽게 웃는 얼굴이 더 어울리기도 했고요. 나중에 다시 애피 할머니께 가면 웃는 얼굴로 말린 자두를 잔뜩 주실 거야. 응? 나중에 같이 할머니네 댁에 가 보자. 운이 좋으면 블래키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나랑 신부님, 애피 할머니 빼고는 더 없어? 이 이야기를 아는 사람.”
이런 이야기가 떠돌면 되려 마리아도 위험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조용히 소리를 낮추어 속삭입니다. 다행인 것은 신부님도, 애피 할머니도 여기저기에 이런 이야기를 허투루 떠들고 다니실 분들은 아닐 테니까요. 여기서 한 번 더 주의를 주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우와, 저 주시는 거예요? 감사해요, 잘 먹을게요. 기쁜 표정으로 자두를 품에 안고 걸어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가는 길에 하나 먹으려고 자두 하나를 흰 앞치마에 벅벅 닦던 중에 염소 축사에서 나오는 소년 무리를 발견하곤 입을 삐죽였다. 뭐야, 벌써 다 논거야? 어차피 남자애들밖에 없어서 끼지도 못하겠어. 그냥 집에 돌아가야 하나 싶던 차에 발목을 간질이는 느낌에 깜짝 놀라며 시선을 내리자 웬 검은 고양이가…… 블래키잖아!
"그새 또 포동 포동 해졌잖아? 얼마나 먹고 다닌 거야?"
친구가 없으면 고양이와 놀면 되지! 쿡쿡 웃으며 눈높이에 맞게 쭈그려앉은 로라는 방금 닦느라 들고 있던 자두 하나를 보며 잠시 고민했다가 이내 블래키에게 내민다.
"뭐… 여기서 자두 하나 먹는다고 더 찌진 않겠지. 치즈는 없지만 이거라도 먹을래?"
앗, 치즈였으면 소원 한번 빌어보는 건데 아쉽다-. 딱히 바라는 건 없지만 금방 집에 들어가서 자는 게 조금 아쉬워. 블래키, 너도 그렇지? 좀 더 북적북적했으면 좋겠어, 여름에는 밭 보기 싫어 더워. 생각하니까 갈증 나는 것 같아. 자두를 내민 손과 다른 한 손으로 턱과 뺨을 받치며 블래키에게 걸던 말은 생각에 빠져 혼잣말로 변질되더니 점점 푸념에 가까워진다.
교회에서 막 나오던 참이었다. 바로 어젯밤 메리의 장례식이 있어서인지,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탓인지 유독 일찍 들어가는 아이들이 많았다. 동생들은 이미 제 또래들과 놀러나간 것인지 아침부터 지금까지 자취를 감췄고. 마을 어딘가에서 한 명쯤은 서성거리고 있겠지 싶어 여기저기 돌아다녀 봐도 오늘따라 일하는 어른들만 마주할 뿐이었다. 작게 마을 한 바퀴를 다 돌때 즈음, 같이 나눠먹으며 이야기라도 나누고자 가져온 빵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곤 욱신거리는 두 다리를 통통 두들기자 왼편에 버섯들이 눈에 들어왔다. 버섯 재배지까지 왔구나. 앞에는 검은 숲이고 바로 오른쪽으로 가면 존슨의 집이 나올 것이다. 뒷편에는 다시 교회. 숲을 보자 우울한 생각만 들 것 같아 의식하지 않으려 숲을 등을 진다. 이만 돌아가봐야 하나? 하늘엔 이미 주홍빛이 스멀스멀 퍼지고 있었으나 빵 바구니 손잡이를 다시 쥐고 허리를 핀 로라는 아쉬움에 입맛을 쩝 다시면서 발걸음을 머뭇거렸다. 누구라도 갑자기 나타나주지 않으려나, 집에 가게 되면 이번에는 밭이 아니라 어머니를 따라 성미에 맞지 않는 바느질을 하게 될 수도 있을 텐데!
/ 일상 구하자마자 냅다 검은 숲 쪽으로 데려가버리기… 그냥 뭘 하다 오게 됐는지만 해주셔도 알아서 치대보겠습니다😚
오늘도 에밀리는 교회의 지박령 생활에 하루를 꼬박 보냈습니다. 어제 교회가 장례식으로 어수선해졌던만큼 할 일이 꽤 되었거든요. 계속 굽어 있던 탓에 쑤시는 허리를 피려고 고개를 들자 벌써 하늘은 주홍빛. 아차차, 슬슬 집에 돌아갈 시간입니다. 평소같았다면 신부님께 인사를 드린 뒤에 바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근처에 떨어져 있던 작은 손수건 하나만 아니었다면요.
보자,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 한 흔하디 흔한 손수건입니다. 손수건 구석에 이렇게 멋드러진 이니셜도...... 이건 L? 아니면 r? 두어 번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리도 돌려보고 저리도 돌려 보았으나, 조금 헷갈립니다. 뭐, 이런 것 쯤이야 손수건의 주인을 만난다면 다 해결되겠지요. 그럼요, 그럼요.
....찾을 수 있다면 말이지만요.
일단은 마리아의 것은 아니고, 자신의 것도 아닙니다. 신부님의 것은 더더욱요. 더러워진 상태를 보니 아마 여성의 것인 것 같은데, 오늘 교회에 왔던 주민들은 누구였더라? 끄응. 한창 머리를 굴리던 중에, 번뜩! 생각났습니다! 한창 교회 마당에서 비질을 하던 중에 멀리 스쳐 지나가던 금발머리를 언뜻 본 것 같은 기억이요. 어라? 그런데 정말 있었나? 사람이었나? 순간 겁이 덜컥 나 가지 말까 싶기도 했지만, 손수건의 주인은 찾아 주어야만 합니다.
교회 뒷길로 빠져나가는 길로 갔던 것 같은데, 문제는 그 길이 검은 숲 쪽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것이지요. 점점 더 저물어가는 하늘을 보며 엄청난 고민과 갈팡질팡을 거듭한 끝에, 에밀리는 발을 내딛었습니다. 제발 자기가 본 것이 사람이기를 바라면서요!
곧 밤이 될 테니 아무래도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지. 로라는 귀가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아쉬움의 한숨을 뱉으며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저 멀리 보이는 인영에 결심은 곧장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저 익숙한 왜소한 체구, 지금의 하늘을 닮은 적금발! 에밀리가 틀림없다. 그녀의 옅은 존재감?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갈구하는 로라의 눈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심지어 말 안 통하는 꼬꼬마들이나 어르신들이 아니라 또래라니, 주님께서 제 간절한 바램을 들어주신 걸까.
한층 신앙심이 올랐지만 로라의 관심사는 곧바로 에밀리에게로 향했다. 좋은 생각이 떠올라 입꼬리가 씨익 올라간 로라는 슬쩍 까치발을 들고 주변의 나무와 사물들을 가림막 삼아 슬금슬금 에밀리의 곁으로 다가갔다. 어느덧 그녀의 뒤까지 도달했을까 수풀 속에 숨은 로라는 기어코 내뱉었다.
버섯 재배지까지 오는 동안, 하늘은 점점 더 짙어져 붉은 빛이 되고 말았습니다. 붉은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오기 전에 얼른 손수건의 주인을 찾아야 하는데, 큰일입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재배지 근처 공터에도, 그 옆에 있는 그루터기에도, 여기저기 오만 데 다 둘러 보아도 사람의 인영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지, 내가 봤던 건 역시 유령이었던 걸까!
어느새 삐질거리는 식은땀이 뒷덜미를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낯빛도 파리하게 질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내일이든, 모레든 교회로 잃어버린 손수건을 찾으러 오는 사람을 기다릴걸! 아니, 역시 신부님께 말씀드려서 맡겼어야 했어! 게다가 버섯 재배지는.. 사건이 있었던 곳 근처이기까지 했으니, 발목을 잡는 공포는 이미 배가 된 지 오래였습니다. 일단은 여기를 벗어나야, 벗어나야 하는데, 아가리를 벌린 듯 검게 물든 숲을 뒤로하려던 순간. 숲에 가면 괴물 늑대가 잡아먹는다고 하지 않았니?
꺄아악ㅡ. 새된 비명소리가 공터를 가릅니다. 나왔다! 나왔어! 괴물 늑대가요! 힘이라도 풀렸는지 다리는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을 풀썩 주저앉히기만 할 뿐, 세상에, 난 끝났어요! 이제 꼼짝없이 괴물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일만 남은 거에요. 무언가 불쑥 튀어나오는 것을 포착한 뒤로부터 굳게 감겨 있는 눈에서 눈물이 마구 비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살아남을 수 있기는 한 걸까요? 자기도 다른 사람들처럼 마구 찢어진 채로 발견되는 걸까요?
"사, 살려 주세요, 늑대님! 저는 씹어봤자 맛도 없을 거에요!"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하게 되었겠다, 일단 에밀리는 아무렇게나 마구 빌어 보기로 했습니다. 과연 괴물 늑대가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모르니까요.
와악! ─왁… 와아…? 주저앉아 시야에서 사라진 대상에 놀래키는 자세로 잠시 벙쪘던 로라는 고개를 내려 에밀리를 찾았다. 예상보다 더 놀랬는걸! 아직 나인걸 눈치채지 못했나 봐! 달래주기는 커녕 여전히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올린 채로 뿌듯함을 느낀 로라는 아직도 칠 장난이 남았는지, 아니면 하루종일 헛걸음을 한 한을 풀려는 것인지 입을 나불대는 것이었다.
"흠. 작은 것이 먹을 고기가 적어보이기는 하는 구나. 그렇지만 지금 나는 허기진 몸, 가릴 처지가 아니다!"
하며 손을 입처럼 그러쥐고 작은 머리통을 슬쩍 잡으려고 허리를 굽힌 순간에서야 로라는 발견하고 말았다. 감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허억. 생각보다 엄청난 반응!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로라는 자신이 너무 들떠있었음을 자각하고는, 곧장 무릎을 굽혀 허둥지둥하는 몸짓으로 달래기 시작했다.
"-가 아니라, 먹을 거 가려! 아니 이게 아니지. 안 먹으니까! 애초에 늑대 아니고 로라니까! 앞에 봐봐, 나야."
(에밀리 앞 가리고) 너희- 놀리지말라구. 전부 헛소리야, 바보들 그걸 믿어? 바보바보. (에밀리 옆에 가서는) 근데 진짜일까? 사실 저번에 그랬었는데 먼가 이상한 소리가..... < 이러면서 한 술 더 뜨기...... 꾹 누르면 으아앙 이라니 너무 기엽잖아아 (⸝⸝⸝ᵒ̴̶̷̥́ ⌑ ᵒ̴̶̷̣̥̀⸝⸝⸝)
그치만 장난치는 거 미안하다구 빵 우유같은 거 가져가서 주고 같이 놀자고 애들 노는 곳에 데려갔을 것 같아용.. 가끔 교회에서 에밀리가 머 하구 있으면 그거 안해도 돼 이거 지루해... 이러면서 끝까지 기다리고 있을 거 같애요..그냥 혼 자가버리면 속상해할까봐+같이 놀려구ㅋㅋㅋ
아이구우, 세상에. 진짜로 이제는 끝났습니다. 늑대님이 허기진 상태라고 이야기하셨거든요! 괴물 늑대의 목소리가 여자아이의 것이라는 걸 눈치챌 여유같은 건 이제 에밀리에게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끝났다! 끝났어! 아프겠지, 분명 엄청 아플 거야! 엄마! 아빠! 언니오빠들! 피터! 제미니! 로이! 신부님! 촌장님! 장로님! 마리아! 머릿속에서 온갖 사람들의 얼굴이 휙휙 지나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게.. 이것이 말로만 듣던, 죽기 직전에 지나간다는 광경들? 아아! 하나님! 어린 양의 영혼을 부디 받아 주세요!
벌벌 떨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이 어ㅡ엄ㅡ청ㅡ나게 커졌을 때, 익숙한 이름이 들려옵니다. 로라? 로라라고? 예, 모를 리가 없겠지요. 어릴 때부터 부대끼면서 같이 자란, 너무나도 잘 아는 여자애의 얼굴이었으니까요. 그래도 혹시나 괴물 늑대가 그 아이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것일까 싶어서 한동안은 눈을 뜨지 못 했습니다. 어느새 저도 모르게 깍지 껴 모은 두 손만 바들바들 떨었을 뿐입니다.
"우, 우우, 로라? 로라야? 진짜로 로라야?"
눈 앞에 무언가 흔들리는 것이 얇은 눈꺼풀 너머로 느껴집니다. 정말로 로라일까? 내 눈 앞에 대고 늑대가 꼬리를 흔들고 있는 건 아닐까? 한동안 쌓여만 가던 온갖 상상들은 강제로 손에 쥐인 단단한 물체의 촉감을 느끼고서야 얼마 가지 않아 사그라드는 것 같았습니다. 차갑고 단단한 유리와 안에서 찰랑거리는 무언가. 에밀리는 그제서야 꾹 감고 있던 눈을 아주 살짝, 아아아ㅡ주 살짝 떴습니다.
"로오오오ㅡ라아아아아아ㅡㅡ"
아뿔싸, 사람은 극한의 공포에 사로잡혀있다가 위안이 되면 더 큰 눈물이 나오는 법인가 봅니다. 열 여섯살, 이제는 다 큰 소녀인 에밀리는, 그래요. 로라의 존재를 확인하자마자 속절없이 무너져 로라를 부르며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부아악, 눈물이 폭포수가 될 것만 같습니다.
아무리 앞에서 기웃거려봐도 뜰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 꽉 감긴 두 눈에 에밀리가 얼마나 겁을 집어먹었는지 감이 왔다. 어릴 적보다 나아진 줄 알았는데 최근 가라앉은 마을 분위기 때문인지 더 무서워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설마… 이대로 밤이 될 때까지 눈을 감고 있는 건 아니겠지? 불길한 생각에 빵 향기도 맡게 해보고 우유병도 줘보는 등 더더욱 달래기에 공들인 것이 먹혔는지 드디어 감겼던 눈이 살짝이지만 뜨였다. 그러나 로라에게는 더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와앙 울음이 더욱 크게 터져버린 에밀리에 로라의 정신은 그녀의 울음 파도에 휩쓸려가는 듯 했다.
으아아-! 에밀리, 쉿! 쉿! 어른들이 와서 혼내기라도 할까 주변을 둘러보며 검지를 제 입에 대다가 안되겠는지 에밀리의 머리를 끌어안아 아이 달래듯 머리와 어깨를 토닥여주려 했다. 소리도 작아지고 에밀리도 달래고, 일석이조.
"괘, 괜찮아, 여기에 늑대가 있을 리가 없잖아? 맞아, 교회도 바로 뒤에 있고 하늘에서 주님도 지켜보고 계실 거야. 그만 울고 맛있는 거 먹자."
"근데 에밀리, 너처럼 겁 많은 애가 어쩌다 검은 숲 근처까지 온 거야? 게다가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구. 이래선 빵만 먹고 가겠네……."
히끅, 히끅, 로라의 토닥임이 효과가 있었는지 에밀리의 울음소리는 빠르게 작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정도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머릿속이 정돈된 뒤에는 더더욱이요. 열 여섯 살이나 먹고 세 살 난 어린애처럼 울어제낀 걸 다른 누군가가 알게 되기라도 하면 큰일이 날 테니까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요? 이제 에밀리의 울음소리는 간간히 들려오는 훌쩍임으로밖에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잔뜩 벌게진 얼굴에 가득한 눈물자국, 늘어진 입꼬리를 하고선 손에 든 우유병은 또 단단히 붙들고 놓지 않는 모습이 참으로 장관입니다. 그나마 로라 앞이라서 천만다행이네요. 돼지치기 케인이나 다른 말썽쟁이들 앞이었다면 평생 가는 놀림감이 되고도 남았겠지요. 으. 로라의 물음에 에밀리는 차가운 우유 몇 모금으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띄엄띄엄 말을 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손수건, 을, 주웠는데, 윽, 주인, 이, 있을까, 싶어서..."
그리고는 주머니를 뒤져, 교회에서 주운 손수건을 로라에게 내밀었습니다. 어라? 그러고 보니 새겨진 이니셜이 L이라면, 설마 로라?
어화둥둥 품에 안고 얼마나 지났을까, 차츰 가라앉는 울음소리에 한시름 놓은 로라는 에밀리를 놔주고는 털썩 땅바닥에 앉았다. 운 자국이 남은 울긋불긋한 얼굴을 보며 다음번에는 약한 장난만 쳐야겠다고, 나름 반성이랍시고 그런 생각을 하던 로라는 냉큼 우유를 마시는 모습의 안도의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것이 로라의 기운이 가라앉았다는 뜻은 아니라서 "에밀리는 울보네~"라고 툭 던지며 얄밉게 굴어버린다. 차분해진 분위기가 멋쩍기도 하고 기분 풀라는 의미도 겸해서. 말썽쟁이들 수준은 아니지만 혼이 안 날 만큼만 마을을 들쑤시고 다니는 로라가 후에 그 얘기를 꺼내지 않을지는 미지수지만, 어쨌든 눈치를 살살 보며 그 아이들보다야 적게 놀릴 것이다.
주의가 바뀐 것은 에밀리가 내민 손수건으로부터였다. 어, 하고 소리 낸 로라는 내밀어진 손수건을 받아들며 "이 손수건 내 거 같은데… 아, 내 거 맞다. 아까 교회에서 나오다가 떨어트렸나 봐, 고마워." 하고 감사 인사를 끝맺던 도중 아차 하는 표정을 짓더니 볼을 긁적이며 덧붙인다.
"손수건 주워주려고 여기까지 와준 은인을 울려버렸네. 에밀리, 이걸로라도 닦을래?"
그러다 바람이 휘잉 분다. 손에 든 손수건이 작게 팔랑인다. 슬슬 서늘해지는 바람에 하늘을 보자 어둑함이 노을빛을 잡아먹고 있었다. 로라는 다시 에밀리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손을 내밀고는 활짝 함박웃음. 데려다줄게, 가자!
강 위에 빛 덩어리가 떠다니고 있다.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렇게 사람을 현혹하는 무서운 강. 다가가면 넘실 거리는 물살에 잡아먹힐 거라고. 그렇게 빠지면 그 누구도 너를 찾을 수 없을 거라고. 매끈매끈한 흰 돌을 찾고 싶었지만, 그런 어른들의 경고를 들었던 날. 물속에 가라앉는 꿈을 꾸고 나서부터는 물가에만 가면 그 꿈이 떠올라 얕은 시내라도 다가가는 걸 꺼리지 않았던가. 그런 실딘 강을 바라보고 있는 짐의 모습이 릴리는 어쩐지 불안했다. 무언가 안 좋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다고. 그런 느낌에 릴리는 곧장 짐에게 다가가 나직한 목소리로 짐의 이름을 속삭였다.
"짐?"
늘 장난꾸러기 같이 웃던 얼굴이 아니라, 심히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릴리는 짐을 살피듯 바라본다.
로라의 버섯 슬쩍하기 계획을 친절로 여겨버린 이 불쌍한 어린양을 구해주세요........ 하지만 버섯 싫어한다는 걸 들켜도 일석이조인 행동이었다구~바보지만 의외로 똑똑한 계획이었어 라며 당당하게 웃기.......
보답이라니!! 실은 릴리가 정말 상냥한 것이었고........ 눈 크게 뜨는 거 넘 기여워서 왕 입에 넣어버리고 싶은 것이에요.... :9 왠지 식사 같이 하게 될 때마다 항상 은근슬쩍 릴리 옆에 앉을 것 같은 ..... 가끔 로라가 버섯 싫어하고 릴리가 버섯 좋아한다는 걸 아는 주민이 로라 너 또! 하고 눈 부릅 뜨는 날도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맛있는 버섯을 싫어할 거라고 생각 못함 < 이 점이 정말로 귀엽다...... 순진해보여.....순진한 것 같아서 얘기 지어내고 장난치다가 진짜 믿어버리고 나중에 그 얘기 꺼내면 어...그거 믿고있었어?하는 표정으로 릴리 쳐다보다가 어어마마마맞아!◑◑💦 할게 분명한......
릴리까지 덩달아 시무룩해져? 안돼~! 그치만 귀엽다... 로라 : ^ㅁ^💦 릴리 : ( •́ ̯•̀ ) 둘이 이러고 앉아있을 것 같지 않나요 ㅋㅋㅋㅋㅋ꺄악 릴리... 시무룩해지지마~! 로라는 에헤헷 하고 넘길 수 있으니깐.......
버섯 좋아하면 버섯 원 조심해야겠어요 릴리.. 혹시 캐려다가 실수로 들어가버릴 수도....... :3c
빈둥대다 머리에 머 씌워져서 보고나면 배에 두손 모으고 얌전히 누워있겠네용🤭혹시 망가질까봐!
빌리는 하스킨즈를 졸졸 쫓아나옵니다. 빌리에게는 목양견은 없지만, 대신 긴 지팡이가 있습니다. 빌리가 염소 무리의 끝에 서고, 하스킨즈가 맨 앞에 선 채 그들은 목초지로 나왔습니다. 어둡고 짐승 냄새가 고여 있었던 축사와 달리 목초지는 밝고, 가을의 햇살은 딱 기분 좋을 정도로 따뜻합니다. 염소 한 마리가 하스킨즈의 등에 가볍게 이마를 툭 치더니 어슬렁어슬렁 풀을 뜯으러 걸어갑니다. 루나와 호른은 제 맡은 바를 다하기 위해 염소 무리 사이로 흩어지지만, 눈으로만 염소들을 좇을 뿐, 별로 열성적이지는 않아 보입니다. 이 평화로운 목초지에서는 별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는 걸까요?
하스킨즈 곁으로 빌리가 다가옵니다. 또래 중에서도 유독 유약한 그는 주늑이 든 듯 목동 지팡이를 꼭 붙잡고 있습니다.
"하스킨즈."
빌리는 주머니에서 염소젖 치즈와 빵을 꺼내 반으로 쪼갭니다. 놀랍네요, 속까지 새하얀 밀빵입니다. 호밀과 보리를 주식으로 삼는 실딘 마을에서 밀가루는 사치품인데 말이죠. 축제나 교회 축일 정도에나 몇 조각 얻어먹을 수 있는 물건입니다. 빌리가 어쩌다 밀빵을 손에 넣었는지는 알 수 없을 일입니다. 교회 식료품 저장고라도 턴 걸까요? 아니면 물레방앗간이라도? 이 유약한 소년에게 그런 용기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빌리는 반으로 가른 밀빵 위에 염소젖 치즈를 얹어 히스에게 내밉니다. 빌리와 하스킨즈가 같은 염소치기인지라, 지금까지도 자주 간식을 나눠 먹기는 했습니다만, 빌리가 밀빵을 준 것은 처음입니다. 빌리네 집이 갑자기 부자라도 된 걸까요. 그런 것 치고는 빌리의 추레한 염소가죽 망토는 어제와 다를 바 없이 꼬질꼬질합니다.
맞아요. 메리는 실을 뽑다가 변을 당했죠. 집 안을 둘러본 마일스는 사건 당일, 메리가 앉아 있었을 벽난로 쪽을 샅샅이 살펴봅니다. 이제 밤이 춥기 때문에 이른 집에서는 벽난로를 피우기 시작했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벽난로 안에는 재가 수북하고, 그 옆에는 장작이 수북히 쌓여 있습니다. 메리가 앉아 있었을 의자는 급하게 일어난 것처럼 뒤로 넘어가 있고... 어?
벽난로 앞에 유독 재가 잔뜩 쌓여 있습니다. 이상할 일은 아니죠. 벽난로에 불을 피우면 재와 그을음은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문제니까요. 하지만... 누가 재를 헤집었던 것 같아요. 부지깽이가 벽난로에 반쯤 묻혀 있고, 벽난로 안에 쌓여 있었어야 할 재와 탄화된 장작이 밖으로 넘쳐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로는 누군가의 발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도 이상할 일은 아니죠. 그 난리가 났으니 짐이든 아니면 비명을 듣고 달려들어온 이웃이든 누가 재를 밟았어도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발자국이... 이 발자국의 주인은 제법 오래 벽난로 앞에 쪼그려 앉았던 것 같은데요. 발자국이 제법 깊고, 선명해요. 집 문이 열려 있었으니 바람이 오가며 발자국이 사라졌어도 이상하지 않을 터인데...
양모의 흔적은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마일스는 다른 흰 물건을 발견했습니다. 발자국 모양으로 짓눌린 재 사이, 살짝 고개를 내민 종이 끝자락입니다. 그 이름모를 사람은 자기가 밟은 재에 이게 섞여있는 지 모른 채 벽난로 앞에 쪼그려 부지깽이로 재를 긁어냈던가 봅니다.
마일스는 의문의 물건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실딘에서 종이는 흔한 물건이 아닙니다. 애초에 마을 사람들 태반이 문맹인걸요. 그러니 이건 불쏘시개로 자주 쓰는 자작나무 껍질인 걸까요? 진짜 종이인지, 아니면 자작나무 껍질인지 구별할 방법은 마일스에게 없습니다. 하지만 이게 종이의 보편적인 쓰임새로 쓰였던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글자가 적혀 있습니다. 대부분이 타들어가 읽을 수 없었습니다만, 인위적인 뭔가가 사람의 손으로 적혔던 흔적만은 분명 남아 있습니다.
이건 편지나 메모의 흔적일까요? 하지만 너무 작은데다 그을음으로 범벅이 되어 알아보기 힘듭니다. 이걸 복원할 방법이 있을까요? 그런데 아니, 애초에 이 집에 왜 이런 게 있죠? 메리도 짐도 문맹으로 알려져 있지 않았던가요...?
마리아는 에밀리의 치마를 꼭 붙잡고는 쉬지 않고 훌쩍댑니다. 이렇게 울다가는 눈이 녹아내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마리아는 평소에 교회의 다락방에서 혼자 잠을 잡니다. 다락방 위에는 종탑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붙은 쪽문이 있고, 마을 광장 쪽과 숲 방향 양쪽으로 창문이 뚫려 있습니다. 교회 다락방은 이따금 어른들이 교회에서 한담을 나눌 때 아이들의 놀이방으로 쓰이기도 했으니, 에밀리도 그 곳의 구조는 알고 있을 겁니다.
에밀리가 주변을 두리번대자 마리아도 지레 겁을 먹어 주변을 두리번댑니다. 텅 빈 예배당 안은 두 소녀 외에는 사람 없이 고요하고, 돌로 쌓인 벽 위 길게 뚫린 창문 사이로는 햇빛이 비껴들고 있습니다. 나무로 짜인 바닥 위, 먼지가 금빛으로 고요히 춤추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마리아는 안심했는지, 저와 비슷한 눈높이가 된 에밀리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귀에 대고 물기 어린 목소리로 소근거렸습니다.
"사실 그날 밤에 나 방에 없었어. 종탑에 있었어."
마리아는 까마귀마냥 자신의 장난감이나 간식을 이곳저곳 숨겨두고는 했었는데, 메리가 죽었던 그 날에도 아침에 간식으로 받았던 사과를 자기만의 비밀 공간에 숨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날 마리아의 맘이 동했던 비밀 공간은 종탑이었고... 달이 너무 밝아서 잠이 오지를 않아, 심심해서 사과를 꺼내 먹으려고 종탑에 올라갔는데...
"보름달이 뜨면 나가면 안되는 건 알아. 근데 여긴 교회잖아. 신부님이 교회는 늘 주님의 눈동자처럼 안전하다고 하셨단 말야. 그래서 나갔던 거였는데... 나 봤어, 언니."
블래키는 자두를 앞발로 톡 쳤다가, 흥미를 잃었는지 로라를 빤히 올려다봅니다. 숲의 녹음처럼 진한 초록색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습니다. 블래키는 쪼그린 로라를 탐문하듯 빙빙 돌며 킁킁 냄새를 맡다가, 치즈가 없는 걸 알았는지 불만스레 꼬리를 휙 내저었습니다. 그건 동물에 대해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명확히 알아챌 정도로 노골적인 불만 표시였습니다. 하여간 건방진 고양이입니다.
"왜옹."
어쩐지 의문형-인간은 날 예뻐하고 치즈를 바쳐야 하는 존재다. 그런데 왜 인간한테 치즈가 없지-으로 느껴지는 울음소리를 뱉은 뒤, 블래키는 예의상 두어 번 로라의 발목에 몸을 부비고는 몸을 일으킵니다. 다른 치즈 조공인... 아니, 사람을 찾아 예쁨을 받을 생각인 모양입니다. 그런 그들의 등 뒤로 염소 축사에서 나온 소년 한 무리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목청 큰 한 소년(돼지치기 케인입니다)의 목소리는 유독 선명히 들려왔습니다.
"-검은 고양이 시체여야 효과가 더 좋지 않겠냐? 그러니까, 그 마녀 애피 할멈네에 까만 고양이를 잡아서-"
그 뒷말은 다른 소년들의 폭소와 야유에 묻혀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저 애들은 블래키로 뭔가를 저지를 생각일 것 같네요. 그리고 그 '뭔가'가 치즈를 주고 예뻐해주는 건 아닐 것 같습니다. 블래키는 멀뚱히 소년들을 바라보다가, 꼬리를 도도히 세우고 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치즈를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죠.
>>187 짐은 대답이 없습니다. 언덕에 핀 하얀 꽃을 모조리 꺾어오기라도 했는지 그의 곁에는 수없이 많은 화관이 쌓여 있습니다. 어른들이 애가 미쳐간다며 혀를 차는 것도 이해가 가네요.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짐은 확실히 위태로워 보입니다.
릴리가 가까이 다가오고 나서야 짐은 간신히 고개를 들어 릴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초점을 잡지 못하는 눈동자가 한참을 헤매다가 간신히 릴리의 얼굴에서 멎습니다. 짐은 미소지으려 시도하는 것 같았습니다만, 그 시도는 처절한 실패로 막을 내렸습니다. 지금 짐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미소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마을을 떠돌아다니는 살찐 검은 고양이는 흑표범이고, 신부님이 어떻게든 보수하려고 하지만 계절이 지날수록 건물보다는 누더기에 가까운 몰골이 되어가는 마을 교회는 영주님의 성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여간 짐의 얼굴은 처참했습니다.
"어, 안녕. 릴리구나."
짐은 그렇게 인사를 한 뒤에도 한참 갈피를 못 잡는 듯 머뭇거렸습니다. 사람과 사람 간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잊어버린 사람 같았죠. 이윽고 짐은 억지로 웃으며(아까보다는 나았습니다, 그래도) 옆에 놓인 무수한 화관 중 하나를 릴리의 머리 위에 툭 올려놓습니다. 늦게 피어난 들꽃 꽃잎이 일순 흩어지며 향기를 뿌립니다.
"무슨 일이야, 릴리. 말괄량이께서 여기까지 다 올라오시고. 오늘도 장난칠 거리를 찾고 계신가?"
짐은 애써 장난스럽게 말합니다. 메리가 살아있었을 때를 흉내내는 것 같습니다. 그의 왼손 넷째 손가락에서는 금색 실타래 비슷한 것이 반짝입니다.
솔직히 상판 정말정말정말 오랜만이라 제가 멀쩡하게 굴리고 있는지 가늠이 잘 안갑니다. 그러니 피드백은 늘 달게 받겠습니다 :3 모두가 행복한 유혈 가득 다크판타지 상황극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진심입니다. 그건 그렇고 본 스레 Wolf among us는 실딘의 초가을-한겨울 시점을 다룰 예정이며 스토리도 그 즈음 완결이 날 것 같습니다. 지금같은 속도로는 엔딩까지 꽤나 시간이 걸리겠네요. 예정된 스토리는 있었지만, 지금 다들 제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많이 조사를 진행해주셔서 어떤 엔딩이 나게 될까 굉장히 기대가 큽니다. 애초에 늑대 선정부터 꽤 변수가 컸고요! 그리고 사건 현장에 대한 더욱 상세한 정보나 특정 부분에 대한 세심한 관찰 결과를 원하신다면 레스 말미에
!
을 붙여 말씀해주시면 진행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가령
! 문을 조사한다
라고 특별히 지정하신 경우, 문의 경첩부터 연식, 상태, 재질, 문이 바닥에 남긴 흔적, 기타 등등 etc까지 그 캐릭터가 파악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선에서 모조리 정보를 털어 드립니다. 단순 문만이 아니라 사람의 표정이나, 특정 인물의 증언에 대해 설명이 더 필요할때 !을 붙여 레스 말미에 붙여주시면 더욱 자세한 설명 혹은 약간의 힌트를 드립니다.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었다. 시선을 내리면 짐의 곁에 놓인 수많은 화관이 보였다. 짐이 누구를 위해 저 화관들을 만들었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져 온다. 이러다 언덕에서 흰 꽃이란 흰 꽃은 다 사라지는 건 아닌지. 그렇게 화관을 만들 모든 꽃이 사라지면 어른들 말처럼 어떻게 되어버리지 않을까. 릴리는 그런 걱정을 하다, 멍하니 있던 짐의 얼굴에 채 미소가 되지 못한 표정이 어리는 것을 본다. 그 표정은 마치 아빠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엄마가 짓던 표정과 어딘가 비슷했다. 그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표정이 릴리는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 선득하게 묻어나는 슬픔 때문일까. 애써 이전처럼 장난스럽게 말한 짐의 말에도 릴리는 웃지 못했다.
"나 이제 옛날의 그 꼬마가 아닌 걸."
머리 위 놓인 화관의 무게를 느끼며 우물쭈물, 릴리 자신도 애써 웃으려 하나 그러지 못한 채. 작은 목소리로 말하며 짐의 옆에 앉는다.
추리 어려워.. 대체 메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저는 요일은 크게 상관없어요 시간대도 주로 오시는 10pm-12pm이면 크게 무리 없습니다! - "..." 탄식과 함께 이마를 짚는다.
"이야..파도 파도 의문이 나온다니.. 정말 내가 16년간 살아온 마을 맞아?" 투덜대며 상황을 정리해 본다.
뭐가 적힌 종이인지 몰라도 이 종이가 꽤나 중요한 모양이다. 이 발자국의 주인은...
1. 종이를 태워 없애고자 벽난로에 넣었다. 2. 벽난로에서 불타는 종이를 구해내고자 했다.
둘 다 가능성이 있다. 굳이 재를 수고를 들여 긁어낸 점은.. 종이 양이 꽤 많았다면 서둘러 태우기 위해 부지깽이로 바스러지는 종이를 다지고 재를 뒤덮어 인멸을 시도한 것 일 수도 있고, 종이를 찾고자 뒤지며 그랬을 수도 있으니 양쪽 다 가능한 설명이다.
결국 이 사람이 누군지와.. 이 종이의 내용을 파악해야 얼추 가닥이 잡힐 것이다. 아니 한 가지 더 있다. 언제 일어난 일인가. 의문의 혈흔은 길어야 어제 묻은 것 같다. 그럼 이 소각 사건은 메리의 사건이 발생할 때 일어난 건지 어제 일어난 건지 혹은 그 외인지 알아봐야 한다. 소각을 위해 불을 지폈다면, 굴뚝으로 연기가 나갈 수밖에 없고 가까운 이웃이라면 분명 목격할 수 있을 거다. 주변 이웃들에게 사건 이후로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걸 본 적이 있냐고 물어봐야겠다.
"후.. 내가 나서는 게 맞는 일일까.. 그냥 촌장님께 지금이라도 말씀드려야 하나.. 아냐 결국 말씀드리더라도 당장 알아볼 수 있는 부분까지 알아보고 말씀드려야지. 이것들이 언제까지 남아있을진 아무도 모르는 일이야."
안 먹어? 블래키의 녹안을 마주 보며 눈을 깜빡인다. 흥미 없어 보이는 눈 맞춤에 그 앞에서 자두를 두어 번 흔들다가 이내 포기하고는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한 입 베어 물며 꼬리를 내젓는 모습에 다음에는 치즈를 반드시 준비해 주겠다며 쓰다듬으려 하는 순간 제 곁을 떠나는 블래키에 덩달아 몸을 일으킨다. 자두를 우물거리며 블래키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가려던 로라는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생각에 빠질 틈도 없이 그들에게로 향하는 몸짓에 다급한 발걸음으로 종종 걸어가 블래키를 살포시 안아 들으려 했다. 고양이 시체라니, 설마 블래키를 죽이려는 것은 아니겠지? 일단은 블래키를 저들 손에 들어가게 해선 안될 것 같다.
짐의 표정은... 굉장히 복잡합니다. 충격과 분노와 아주 깊은 슬픔 위에 상실감을 양념삼아 버무린 얼굴이랄까요. 메리의 죽음이란 이야기 안에서 짐이 어떤 역할을 맡고 있었든 간에, 그가 메리를 잃고 크게 고통스러워함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네에, 그건 분명합니다. 짐은 확실히 메리의 상실을 슬퍼하고 있습니다. 청명한 가을 하늘이 성인보다는 소년에 더 가까운 짐의 얼굴 위로 극적인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눈부신 가을 하늘과 하얀 꽃이 핀 벌판, 그 위에 앉은 채 슬픔에 잠긴 젊은 신랑의 모습은 너무 어울리지 않아서 되려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괜찮지. 괜찮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겠어."
짐은 무의식적으로 제 발 근처에 난 꽃을 또 한 송이 꺾다가, 이미 자기 주변에 수많은 흰 화관이 널려 있음을 깨닫고는 손길을 멈춥니다. 반쯤 정신이 나간 게 틀림없습니다. 짐의 이성은 메리와 함께 그 머릿속에서 반쯤 뜯겨나갔고, 아마 피범벅이 된 금빛 머리카락, 조각나 인간인지 알아보기도 힘들었던 살점 한 무더기, 너무 찢어발겨져 도무지 수습할 수 없었던 메리의 옷 대신 관 안에 묻힌 신부 드레스와 함께 땅에 묻혀버린 게 아닐까요. 아마 그 안에서 같이 썩어가고 있겠죠.
빌리는 머뭇대며 말합니다. 잰 할머니는 마을의 네 장로 중 가장 연장자로, 방앗간의 여주인이기도 합니다. 마을에서 제일 괴팍하고 성격이 사나워 그 어떤 아이도 감히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 늑대처럼 사나운 노인네가 빌리에게 하얀 빵을 줬을까요? 잰 할머니가 빌리를 예뻐했다면 모를까, 그녀는 영 허여멀겋고 남자답지 못하다며 평소에도 영 빌리를 마뜩찮게 생각해왔었습니다. 그녀가 마을에 나타나면 빌리가 늘 염소 우리 방향으로 줄행랑을 놓는 게 일상이었다면 말 다했죠.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빌리는 말을 덧붙입니다.
"내가 방앗간에 가서 심부름을 했거든, 촌장님이 시켜서 사과를 가져다 드리려고. 근데 문이 잠겨 있길래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걸 주시더라고."
아마 중간에 조금 더 사정이 생략된 말 같습니다. 심부름 왔으니 장하다고 값비싼 밀빵을 줄 잰 할머니가 아닙니다. 하지만 빌리는 제 딴에는 이거면 설명이 됐다고 생각했는지, 자기도 빵을 와압 베어뭅니다. 목초지에는 평화로운 바람이 불고, 하스킨즈 옆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던 루나가 길게 하품했습니다.
신부님이나 카일 촌장님이라면 글을 읽을 수 있겠죠. 아, 방앗간의 잰 할머니나 잡화점 주인 윌슨 씨도 장부를 정리해야 하니 간단하게 읽고 쓸 수 있다고 들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 분들에게 가져가면 이 쪽지의 정체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발자국은 성인 남자의 발 크기와 비슷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자주 신고 다니는 가죽신으로 보이네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발이 꽤 큽니다. 여자나 아이일 가능성은 낮아 보이네요. 물론 그 사람이 일부러 큰 신발을 신었다면야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겠지만요. 아, 그리고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발자국을 유심히 살펴보던 마일스는 발자국 모양이 그대로 남은 재 위에서 말라붙은, 아주 조그만 하얀 물건을 하나 더 찾아냅니다. 처음에는 종이 조각이 하나 더 있나 싶었는데... 아니군요.
이건 꽃잎입니다. 말라 비틀어지고 시든 하얀 꽃잎. 아마 누군지 모를 발자국 주인이 아무 생각 없이 이 꽃잎을 밟았다가, 그게 밑창에 붙은 것도 모르고 여기까지 왔던 거겠죠. 그리고 여기서 재를 뒤적이던 사이에 그 꽃잎이 떨어진 게 분명합니다. 마일스는 이 꽃을 압니다. 마을 강가에서 자생하는 가을 야생화입니다. 요즘들어 반쯤 실성한 짐이 이 꽃으로 화관을 짜 메리의 무덤에 산을 쌓고 있죠.
사람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블래키는 눈만 깜빡거립니다. 까만 꼬리가 허공을 홱홱 휘젓습니다. 하지만 사람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마을 소년들은 로라의 말에 놀라 로라를 바라봅니다. 처음에는 마냥 놀란 것 같았지만, 이윽고 외친 사람이 로라인 것을 깨닫고는 소년들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뭐야, 로라잖아!" "왜. 어른들한테 일러바치기라도 하게?"
돼지치기 케인이 이죽대며 로라에게로 다가옵니다. 블래키는 이게 무슨 일인지 몰라 길가에 앉아 눈만 떼룩떼룩 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모여들든 말든 도망치지는 않는다는 게 이 고양이의 무한한 무사안일주의를 잘 보여줍니다. 케인은 겁을 주듯 로라에게 바짝 다가와 비릿하게 웃습니다.
"아니면 그 마녀 애피 할멈한테 말하게? 마녀님, 당신의 심부름꾼이 죽었어요~ 다 쟤네 때문이래요~ 라면서?"
애피 할머니가 혼자 살고, 유독 약초 지식에 해박하며, 검은 고양이를 돌본다는 이유로 그녀를 마녀라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그녀의 이름을 언급하며 마녀라고 부르는 건 좀 무례하네요. 아무리 사석에서는 국왕 폐하라도 뒷담화하기 마련이라지만, 애피 할머니가 저 애들에게 뭘 잘못한 것은 딱히 없을 텐데요. 뭐 세상만사가 원래 다 이런 이유 없는 악의 때문에 돌아가기 마련이겠지만 말이에요.
>>217 고마워요 릴리주! >>219 주말이 좋을까요? >>220 어렵다뇨, 지금 굉장히 잘 하고 계십니다! 이제 조력자만 잘 픽하시면 됩니다. 마일스의 안위를 위해서... >>221 반드시 실시간으로 참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늘 그렇듯 이 정도 페이스로 굴러갑니다 :D
이익—! 저 녀석들 뭐가 당당하다고 웃는 거야! 비웃는 소리에 잔뜩 열이 난 로라의 얼굴빛이 붉어졌다. 평범한 장난이었다면 약하게 만류해보고 말았겠지만 이번에는 평범하지가 않아서 문제였다. 그래서 케인이 다가왔을 때 주춤하며 뒷걸음질은 했어도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말할 수 있었다.
"……윽, 애피 할머님을 마녀라고 부르지 마!"
늘 발랄하게 굴던 로라도 이런 분쟁의 조짐이 보이는 순간에는 긴장이 되는지 양손으로 치맛자락을 붙들었다. 그 탓에 한 손에 쥐고 있던 자두 즙이 손과 앞치마를 물들이는 감촉에 따라 시선을 내리자 여전히 이곳에 자리한 블래키를 발견한다. 저 느긋한 검은 고양이를 어떡하지……. 검은……. 잠깐, 시체라면 설마 유령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그 미신을 실행하려고 하는 거야?
"그런데 너희! 마녀라면서 잘도 블래키에게 손댈 생각을 하네. 심지어 블래키는 검은 고양이라고. ……만약 유령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미신을 믿는 거라면 차라리 블래키에게 치즈를 주고 소원을 들어달라고 하는 게 낫겠어."
후환이 두렵지도 않나봐, 얘넨! 이쯤 해서 그만둬준다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물러설 수 없다는 듯이 턱을 치켜든다.
소중한 것을 상실한 그 표정은 슬픔에, 아니 고통에 가까워 보였다. 구름 한 점 없어 햇살로 가득한 꽃 들판 위에서 온 세상 절망을 다 가진 듯. 어둡게 그림자 진 짐의 얼굴을 더 바라보기 힘들어 릴리는 고개를 숙인다. 괜찮다고 얼머무리지만 또다시 꽃을 꺾는 모습을 보면 그도 결국 말뿐이다. 메리 언니를 떠나보내며 마음 절반이 텅 비어버린 게 분명했다. 그러니 얼마 안 가 무너질 것 같아 보일까.
"거짓말. 멀리서 볼 때. 당장이라도 강에 뛰어들 사람처럼 보였는걸."
조금은 울먹이는듯한 목소리로 릴리는 말한다. 강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그 처연한 모습이 릴리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던 것이었다.
죄송합니다!이틀간 예고도 없이 사라졌었네요... 제가 (또) 식중독에 걸려서 앓아눕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내일부터는 다시 예정대로 스토리가 진행됩니다! 앞으로는 반드시 예고하고 상한 음식을 주워먹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름에는 맛이 시큼하다 싶으면 아무리 아까워도 드시지 마세요 이상 상한 보쌈 먹고 한밤중에 24시 병원까지 다녀온 사람 올림
뒷문 너머로 나간 마일스가 마주하게 된 것은 검은 숲입니다. 메리와 짐의 집은 실딘 마을에서도 유독 외각이었죠, 그러고 보니.
문을 열자마자 숲은 새카만 그림자처럼 술렁이며 마일스의 시야를 메웁니다. 항상 보아왔던 것이지만 문을 열자마자 먹먹하게 시야를 메우는 검은 숲의 모습에서는 이유 모를 서늘함이 느껴집니다. 뒷문 왼쪽에서는 가축의 분변 냄새와 고기가 썩는 듯한 냄새가 풍깁니다. 축사 방향입니다... 하지만 가축에 익숙한 마일스로서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역한 냄새입니다. 이게 뭘까요?
정답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축사의 여물통 위로 고개를 쭉 뺀 채, 소가 죽어 썩어가고 있습니다. 메리와 짐이 결혼 선물로 받았던 어린 암소입니다. 이따금 메리가 소의 머리에 화관을 엮어 목초지에 끌고 나왔던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 어린 암소는 머리를 쭉 뺀 채 죽어 있습니다. 곰팡이 슨 빵처럼 허옇게 뜬 눈동자 위로 파리 한 마리가 마치 정신이상의 경고등처럼 윙윙댑니다. 악취가 안개처럼 술렁이고, 죽은 소의 혀 위에 말라붙은 거품 위로 이름도 모를 역겨운 벌레가 끓어오르듯 몸을 꿈틀대고 있습니다. 왜 처음에는 이 악취를 몰랐던 걸까요. 넘실대는 썩은내가 코를 찌릅니다. 적어도 죽고 사흘은 지난 것 같습니다.
겉보기에는 암소에게는 외상은 없어 보입니다. 이 소는 왜 죽었을까요? 그리고 미쳐버린 짐이라면 모를까, 이웃에 사는 존슨 아저씨는 왜 이 참극을 모른 채하고 있었을까요.
주변을 둘러보던 마일스는 드디어 양털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검붉은 덩어리로 한데 뭉쳐진, 희고 누런 실타래 비슷한 것이 여물통 아래 한구석에 나뒹굴고 있습니다. 아니, 자세히 보니 이건 양털이 아닙니다. 이건 긴 금발 타래입니다. 썩고 굳은 피에 엉겨붙은. 그러고 보니 메리의 머리카락이 참 길고, 탐스럽고, 가을 밀밭을 닮은 금빛이었죠...?
케인이 성큼, 험악하게 앞으로 다가옵니다. 그는 위압적으로 로라를 내려다보다 히죽 웃었습니다.
"정말로? 저게 마녀라면-"
케인은 블래키를 턱짓하며 말합니다.
"그럼 죽여서 꼬챙이에 꿰고 불태워야지, 안 그래?"
아, 그러고 보니 케인은 이 마을을 떠난 적이 있는 몇 안되는 아이들 중 한 명입니다. 아버지를 따라 옆 마을의 시내에 갔다가, 화형식을 구경했던 적이 있다고 하던가요. 그는 화형식을 구경하고 돌아온 뒤 며칠이고 신나서 그 무용담을 자랑했었지요. 마녀가 어떻게 비명을 지르고 어떻게 애걸했고 어떻게 죽어갔는지에 대해서. 그는 기념으로 마녀를 태운 기둥의 일부를 떼어왔고, 숯이 된 그 나무쪼가리로 바닥에 신에 반하는 불경한 표식을 그려대며 소년들과 낄낄대고는 했었습니다. 타죽어가는 마녀를 비웃었던 주제에 말이죠.
그러한 잔혹성이 그만의 특별한 특징은 아닐 것입니다. 마녀는 죽어 마땅했던 시대였으니까요. 그리고 미신과 신과 죽어 마땅한 마녀 사이의 선을 그 누구도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던 시대였으니까요. 그러니 케인이 강령술을 하려는 것도, 그게 금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도, 마녀를 죽이자면서 동시에 마녀를 두려워하는 것도, 그의 관점에서는 전부 그리 모순된 행동은 아닐지 모릅니다.
"아니면 너도 마녀를 섬기는 거야? 그러니까 저 징그럽게 살찐 마녀의 사역마에게 치즈를 바치고 무릎을 꿇는 건가? 매일 밤 숲 속으로 들어가 늑대와 춤이라도 추시나?"
케인은 그렇게 말하며 또 위협적으로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옵니다. 그런데 로라는... 분명 예전에 블래키에게 치즈를 먹이던 케인을 마을 광장에서 목격했었던 것도 같은데요? 내로남불도 정도가 있지 이 친구는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아니야. 난 정말 괜찮아. 짐은 그런 식으로 공허한 말을 반복합니다. 하지만 그 말에 속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습니다. 어린애도 속이지 못할 허접한 연기네요. 릴리가 강에 뛰어들 사람같다고 말했음에도 짐의 시선은 실딘 강에서 떨어지지를 않고, 왼손에 끼운 금빛 반지 비슷한 것만 계속 만지작대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가까이에서 짐을 살피던 릴리는 그 물건의 정체를 이윽고 깨닫습니다. 저건 인모네요. 사람의 머리카락이에요. 잘게 땋은 긴 머리카락 타래를 짐은 자기 손가락에 반지처럼 두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밝고 선명한 저 금빛이라면 짐작가는 곳이 있습니다. 짐의 죽은 아내, 메리입니다. 유독 화려한 색이었던 그녀의 샛노란 머리카락은 그녀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인 짐도 그녀의 머리카락을 무척 좋아했었죠. 밭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머리카락을 땋아 틀어올리는 대부분의 마을 처녀들과 달리, 메리는 머리를 길게 길러 한 줄로 땋고 다니기를 좋아했었습니다. 그랬던 그녀가 사랑의 증표로서 머리카락 한 줌을 남편에게 잘라 주었대도 영 이상한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설마 짐이 죽은 아내의 시체에서 머리카락을 잘라내지는 않았을 것 아니겠어요. 심지어 메리의 시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갈가리 찢어져 있었고 인간인지 아닌지 구별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들었는데, 그런 시체에서 머리카락을 잘라내지는 않았었겠죠. 그런 소름끼치는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 짐은 저 머리카락 타래를 생전에 받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별다른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메리의 장례식 이후 열흘 정도나 되는 시간이 흐르고, 점차 마을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 싶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검은 군마 한 마리가 실딘 강 기슭에 발굽을 디뎠습니다. 그 등 위에는 긴 장검을 찬 체구 큰 남성이 앉아 있었습니다.]
이벤트 그냥 진행하는 편이 나을까요, 아니면 아직 제대로 끝나지 않은 조사가 있는 만큼 며칠 미룰까요? 의견 부탁드립니다 :3
거짓말. 그런 얼굴로 하는 말을 누가 믿겠냐고. 릴리는 따지며 묻고 싶었지만, 채 입술을 열지 못한다. 따져 물어도 그 뻔한 대답만 계속 중얼거릴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어떤 외침도, 위로의 말도 짐에게는 들리지 않겠지. 그러니 의미가 없으니 그저 꾹 입을 다물고서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짐을 바라볼 뿐이다. 그러다 왼손에 끼우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늦게야 깨닫는다. 손가락에 감은 황금색 밀밭을 연상케 하는 머리카락. 저 색은 분명 메리 언니의 것일 텐데. 가늘게 뜬 눈으로 머리카락 타래를 살피다 고개를 들어 짐을 본다.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