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520066> [1:1/백합/일상] Magnetic Attraction - 1 :: 88

◆1BjhqmbJws

2022-05-24 12:52:55 - 2022-08-20 12:12:08

0 ◆1BjhqmbJws (V52QI0W9sI)

2022-05-24 (FIRE!) 12:52:55

It's this simple law, which every writer knows, of taking two opposites and putting them in a room together.

// Trey Parker

>>1 윤 빈
>>2 유여울

38 여울주 (JK4dDcXY8k)

2022-06-12 (내일 월요일) 01:01:50

아닠ㅋㅋㅋㅋㅋㅋㅋㅋ 태양광발전이냐구ㅋㅋㅋㅋ 맞다 맞어 우리 빈이가 꽃을 좀 닮긴 했어...🌸 그럼 아직은 살짝 경계하는 정도일 테니까 빈주 말대로 실수로 낮잠 중인 걸 깨워 버려서 그야말로 내적 대환장파티에 돌입하는 전개가 좋을까! 사실 현 상태에서도 빈이 정도 되는 사람이면 인싸 아싸 가리지 않고 말을 걸고 다닐 것 같지만(산책 나온 강아지라니 커엽다), 여울이와 대화가 두 마디 이상 지속될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그러고 보니 뫄뫄고 옥상은 개방되어 있는 건가? 찾아 보니 대한민국 고등학교에서는 보통 잠겨 있거나, 학생들이 은밀하게 담배 피러 드나들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하거나, 옥상정원을 조성하거나 그 옥상정원이 방치되어 황무지가 되거나.... 라고 하는데 (덜덜덜덜) 어떤 설정으로 가야 하지? 수 틀리면... 우리 모두의 마음의 고향인 '일본풍 한국'으로 설정해야 하는 건가....

오늘의 잡념: 한참 뒤에 관계가 훨씬 발전되고 나면, 자는 얼굴을 한참 구경하고 그런 시츄에이션도 나올까 싶은....?!

39 빈주 (mVsij6fKzI)

2022-06-12 (내일 월요일) 10:58:35

자연 친환경적(?). 아니 그게 그렇게 되냐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빈이보단 여울이가 꽃이 아닐까 싶은데...?! 내적 대환장 파티라니 실수로 깨워놓고 안절부절 못하는 여울이가 생각나서 너무 귀엽다 :3 그치 사실 말 거는 부분이야 문제가 안 된다지만 대화 찔끔 나누고 끝나는 것보단 나중에 조금 더 친해진 이후에 그늘 아래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 조금 더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ㅋㅋㅋㅋㅋㅋ 창작물적 허용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현실적인 한국 고등학교로 치면 빈이는 아마 생기부부터 개판 나서 대학 문턱도 못 밟아보지 싶고... 뭐 대한민국의 고등학교로 간다 쳐도 빈이라면 스리슬쩍 드나들법도 하지만 여울이가 출입이 제한된 장소를 돌아다니려나를 잘 모르겠어서. 🤔 그나마 평화로워 보이는 설정은 잠겨 있으나 몇몇 학생들이 문을 따버림 or 방치된 옥상정원이려나?

자는 얼굴 한참 구경이라니 뭐야 그거 상상만으로도 너무 좋은데!? 그러다 깨서 눈 뜨면 눈 마주쳐버리고 그런 거냐구. 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자 빈아...!

40 여울주 (9r/XXGdAIA)

2022-06-14 (FIRE!) 01:14:45

인간관계 왕초보인 여울이 사람을 피할 곳을 찾다 찾다가 도무지 화장실은 안 되겠어서 찾아간 곳이 옥상.... 일 수는 있겠네! 그런데 거기서 끝판왕을 마주치고...🤯
어느 쪽이든 현실성을 추구하자면 판도라의 상자마냥 옥상이 열리는 순간 사실상 담배를 재배하는 수준이 될 테니까, 적당히 펜스 같은 안전장치가 설치되어 있는 휴게공간으로 설정하는 게 무난하겠지만 그렇게 가면 비밀공간이라는 느낌이 퇴색될까 봐 고민이네. 빈이가 옥상에서 낮잠을 청하는 이유도 아마 사람이 안 와서가 아닐까 싶어서. 절충해서 옥상 화단을 관리하(라고 떠넘겨받)는 학생만 쌤들에게 키를 받아서 합법적으로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인데 일부 학생들에게는 뚫려 버린 (그리고 얼마 되지 않으니 정원 관리 담당도 쉬쉬하며 지나가는) 공간... 정도가 되나....? 혹시 더 괜찮은 아이디어 있어? 🤔

41 빈주 (bDHBCGkGqo)

2022-06-14 (FIRE!) 12:19:01

담배를 재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음음 여울주 아이디어 괜찮은 거 같다! 적당히 비밀기지스러운 느낌도 나면서 양아치들 소굴도 아니고. 왠지 빈이는 쌤들한테 키 넘겨 받은 학생과 알고 있을 가능성이 97%... 그 학생 살살 구슬려서 키 넘겨 받아서 올라온 적이 있을 수도 있겠네. 아무튼 그러면 대충 빈이가 점심시간에 사람 없는 옥상에 슬쩍 와서 낮잠 자던 중에 여울이가 사람 피할 곳을 찾다가 옥상으로 오고, 의도치 않게 실수로 빈이를 깨우는 상황이 되려나! 왠지 잠에서 깬 빈이가 어 너, 하면서 말 걸었다가 여울이가 동공지진 일으키는 시츄가 보이는 거 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선레는 아무래도 내가 써오는 게 자연스러우려나?

42 여울주 (ybSM2k7gCM)

2022-06-15 (水) 21:06:30

기실 100%라 봐야지 ㅋㅋㅋㅋ 빈주가 얘기한 시츄에이션 좋을 것 같아! 나중에는 눈치 안 보고 빈이 만나려고 일부러 정원 관리 담당을 자처하고, 이게 화근이 되어서 교내정치계에 입문하여 나중에는 반장으로 등극.... 굉장한 장르를 발굴한 거 같은데 우리. 사실 누가 써 와도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은데, 빈주가 써 준다면 나야 땡큐소머치지! 🤣

43 빈주 (yqBlpweRD.)

2022-06-16 (거의 끝나감) 11:20:21

정원 관리 담당을 자처하는 여울이라니 뭐야 이거 진짜 엄청나잖아...?!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어. (?) 아무튼 좋아 그럼 선레는 내가 써올게! 요새 쪼끔 정신이 없어서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긴 한데 늦어도 내일 밤까지는 써올테니 느긋하게 기다려줘!

44 빈주 (juKWj6tApM)

2022-06-17 (불탄다..!) 16:11:01

아니 날렸... 날렸어... (머리박) 조금만 더 기다려줘 미안... 😂 (바스라짐)

45 빈 - 여울 (xcs7oC13LE)

2022-06-18 (파란날) 11:08:31

빈이 다니는 학교 옥상은 여느 학교들이 그렇듯, 일반 학생들의 출입이 엄금되어있다. 출입을 허락받은 것은 옥상에 놓인 화단을 관리하는 소수의 학생들뿐.
... 이라는 것이 대외적인 규칙 되겠으나, 실상은 인맥을 통해, 혹은 사람이 보지 않는 틈을 타서, 등등, 자신만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 옥상에 드나드는 학생들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빈의 경우는 그중 전자의 경우로, 화단 관리를 떠맡게 되어 열쇠를 지닌 친구를 살살 꼬드겨서 비교적 자유롭게 옥상에 드나들고 있다.

머리카락은 교내에서 보기 힘든 샛노란 색에 귀에는 피어싱이 주렁주렁. 선생님들 눈을 피해 옥상에 담배를 피우러 간다고 해도 납득이 갈만한 인상이지만 이래 봬도 빈은 간접흡연 경험조차 극히 적은-있다고 해봐야 버스 정류장 등에서 경험한 게 전부인-건강한 폐를 자랑한다. 그런 빈이 옥상에 올라와 하는 일이라곤 k-드라마에서처럼 학교폭력의 무시무시한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옥상 한켠에 놓인 벤치에 팔자 좋게 드러누워 좋은 자리를 잡은 고양이처럼 평화롭게 잠에 빠져드는 것뿐이다.

학교에 가지고 온 책가방에는 글씨는 거의 적히지 않았건만 이래저래 험하게 다뤄진 티가 나는 교과서 몇 개를 쑤셔넣는다. 기왕이면 등을 대고 자면 편하겠지만, 일반적인 벤치는 키 174cm의 여고생을 세로로 온전히 받아줄 만큼 기다랗지 않다. 햇볕도 강하기에 별수 없이 몸을 옆으로 돌려 몸을 살짝 만다. 덩치 때문인지 인상 때문인지, 몸을 둥글게 만 고양이라기보다는 호랑이 내지는 사자 등의 고양이'과 동물'에 가까워 보이는 것이 흠이다.

한두 번 있었던 일도 아니라는 듯, 빈은 자연스럽게 손수 제작(?)한 베개에 머리를 댄 지 얼마 되지 않아 고른 주기로 숨을 작게 내쉬기 시작한다. 별다른 일이 있지 않은 이상에야 아마 점심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해야 잠에서 깨어나, 겨우 잠을 쫓아낸 뒤에 수업이 시작한 뒤 15분 뒤쯤에야 교실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46 여울주 (7jyLjE0PQ2)

2022-06-18 (파란날) 20:30:05

아이고 날렸었다니.... ㅜㅜㅜ (토닥토닥) 나도 요새 정신이 없다 보니 서로 시간에 구애 안 받고 천천히 진행하면 되지! 내일까지 답레 써 올게!

47 여울 - 빈 (6rUWiCSy9U)

2022-06-19 (내일 월요일) 16:43:12

투명인간처럼 사는 것은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모두가 신경쓰지 않는 사람은 반투명한 존재로 살 수 있지만 자기가 애써 시선을 피하려고 하는 순간 눈밖에 나기 때문이다. 방치와 도망 사이의 애매한 선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어려운 법. 무려 1시간이나 되는 점심시간 내내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아무도 말을 걸지 않을 텐데, 괜스레 교실에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여울은 진정한 의미로 혼자가 될 수 있는 곳을 찾아헤맸다.

그러나 화장실은⋯⋯ 아니, 괴롭힘을 당하는 것도 아니고 들어가 있어 봤자 정말로 긴급한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일만 되겠지. 양호실에서 꾀병을 부리는 성격도 아니고. 뭔가 죄 짓는 것 같으니까. 층수가 높아질 수록 1학년 교실과는 다른 냄새가 나고 뭐랄까 사뭇 조용해지는 탓에, 더 높이 더 높이 층계참을 한 칸씩 오르다가 마침내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달했다.

옥상 문 앞의 층계참. 여기는 충분히 조용하다. 그러나 서 있기에는 대단히 뻘쭘한 공간이고, 아래서 웅성웅성 복도를 울리는 말소리나 지나다니는 사람이 드물게나마 있어서 그곳에서도 여울은 구석으로 스스로의 몸을 꾹 눌러 붙였다. 이대로 한⋯⋯ 30분 좀 넘게 버티면 될까. 뻣뻣하게 선 채로. 안도와 답답함이 섞인 한숨을 쉬면서, 가만히 팔을 떨구고 있기에도 어색해서 문고리를 잡아 보기나 하고──.

─짤깍.
"⋯⋯ 어라?"

왜, 열려 있는 거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으면서, 앨리스가 토끼굴에 빠지기 전에 냉큼 발을 뺐어야 한다고 여울은 생각한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은 유효하다. 하지만⋯⋯ 바람 때문인지, 스토퍼가 낡아서인지, 생각보다 훨씬 가볍게도 여울의 작은 체중으로도 활짝 떠밀려 버리는 문 때문에, 여울은 문고리에 딸려가듯이 옥상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토끼 대신에 화려한 금발을 한 요염한 암사자가⋯⋯ 암사자?

빈이었다. 유일하게 통성명을 한 상대니까 잊지는 않았다. 참⋯⋯ 햇빛을 쬐면서 잘도 둥글게 말려 있구나. 아무쪼록 깨지만 않았다면 좋으련만.

큼지막한 호랑이, 아니⋯⋯ 빈 덕분에 여기는 출입 제한 구역이라는 사실조차 상기하지 못하는 채로, 되는 대로 몸이 낼 수 있는 모든 소음을 죽이는 데만 모든 집중을 쏟아붓는다. 왜, 왜, 쟤, 쟤가 여기에? 책가방은 머리 괴는 용도로 들고 다니는 것인가? 갑자기 깨어나서 깨무는 건 아니겠지? 그런, '호랑이 굴에 물려가면 정신을 차릴 수 있을 리 없잖아'라는 통찰을 명백히 증명하는 듯한 의식의 흐름 끝에, 최대한 살금살금 뒤돌아 빠져나가려던 여울의 눈에 밟힌 것은 아쉽게도 빈 깡통이었다.

텅, 딸그랑, 하고 비어 있는 복숭아 음료 캔이 미처 신경쓰지 못한 발끝에 채여 큰 소리를 냈다. 문에 부딪치고 벽에 두어 번 튕긴 다음에 바닥에 통통 튀며, 상상 가능한 최악의 루트로 낼 수 있는 소리를 전부 냈다. 꼼짝없이 잡아먹히는구나 하고, 체념한 채로 문을 닫고는 쭈뼛 굳은 채로 서서 혹시나 깨지 않았는가 하고 벤치 위의 빈을 살폈다.

48 빈-여울 (eQGPLBETaQ)

2022-06-20 (모두 수고..) 16:37:59

텅 딸그랑 데구르르 통통.
평소라면 종이 울리기 전까진 조용했을 옥상에 요란한 소리가 울린다. 깊이 잠들어 있는 상태였다면 모를까, 잠든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여울에게는-불행하게도 방금의 소리는 빈의 정신을 꿈속세계로부터 끄집어 내기에는 충분했다. 빈 깡통이 이곳저곳에 부딪히며 찌그러지는 소리에 맞춰 빈의 눈썹이 움찔거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감겨 있던 눈이 반쯤 떠진다.

반은 뜨고 나머지 반은 감긴 눈은 잠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다, 몇 번인가 깜빡이더니 이내 완전히 떠진다. 여전히 졸음이 짙게 묻어나오는 눈동자는 다행인지 아직은 여울에게로 향하지 않았다.
뭐지, 잠든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종이 울렸나... 자다 깨서 희뿌연 머릿속에서 어떻게든 더듬거리며 생각을 정리하다 햇빛을 정통으로 받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뜬다. 그렇게 눈을 감았다 뜨며 햇빛에 적응하길 몇 번인가 반복하자 어느새 졸음이 조금은 달아나 부스스하게 몸을 일으킨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늘어지게 하품까지 하던 빈은 평소만큼 몸이 찌뿌둥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운동장에서 수다를 떨거나 게임을 하며 하하 호호 청춘을 즐기는, 종이 울렸다면 급하게 끊겼어야 할 학생들의 목소리도 끊기지 않고 들려온다. 그렇다면 방금 저를 깨운 소리는 학교의 종소리는 아니라는 건데... 빈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옥상의 문 쪽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친, 밝다 못해 눈부신 날씨와 대조되게 어두운 채도의 자그마한 학생. 아는 얼굴이다.

"아..."

잠든 지 오래 지나지 않아서인지 다행스럽게도 목소리가 쩍쩍 갈라져서 나오진 않는다. 그저 살짝 잠겨 본인이 피곤함을 강렬하게 어필하고 있을 뿐. 주위를 둘러보던 빈의 시선이 바닥에 나뒹구는 복숭아 음료 캔으로 향한다. 잠에서 이제 막 깨어서인지 방금의 소리와 복숭아 음료 캔의 연관성이 매끄럽게 떠오르진 않는다. 그러니까 쟤가-여울이. 유여울. 멍한 머릿속 데이터박스를 뒤져 어떻게든 상대의 이름을 떠올린 빈은 손을 들어 천천히 좌우로 두어 번 흔들며 인사를 건넨다.

"여울이 안녕."
"너도 낮잠 자러 왔어?"

설마 그랬을라고... 일반학생에게 출입금지 처분을 받은 옥상에 팔자 좋게 낮잠이나 자러 드나드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다. 빈은 베개로 사용했던 책가방을 팔로 끌어다 제 허벅지 바로 옆으로 붙이며, "앉을래?" 라는 물음과 함께 급격하게 널찍하게 남아버린 벤치의 빈자리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린다.

49 빈주 (eQGPLBETaQ)

2022-06-20 (모두 수고..) 16:39:23

으윽 분명 거의 다 썼었는데 어쩌다보니... 그래그래 서로 천천히 주고 받자! 여울주도 텀 신경쓰지 말고 아무때나 편할때 줘도 된다구 :3

50 여울 - 빈 (pwqI9oGKsU)

2022-06-21 (FIRE!) 20:38:39

눈을 떴다. 망했다.

분명 느긋하게 빈이 일어나고 하품하는 동안 도망칠 기회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치타 같아 보이는 존재가 저러고 있으면 냅다 뒤돌아 뛴대도 언젠간 붙잡혀 버릴 것 같아서, '도망치지 않는다'라는 더 나쁜 선택지를 고르고 말았는지도 모른다. 만약 튀었으면 누군지 전교를 샅샅이 뒤진 끝에 찾아내서 뼈와 살을 분리해 버렸겠지, 같은 자기합리화로 위안을 삼아 보는 여울이었으나⋯⋯.

"어? 으, 응─? 아, 빈아, 안녕⋯⋯. 엑?"

내뱉은 말들은 문장이라기보다는 마멋이 내는 울음소리에 가까웠다. 위기 상황에는 두뇌가 풀가동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이럴 때 뇌정지가 오는 걸까. 뒤늦게 반쯤 뒤돌아 문고리를 드밀어 보지만, 어째선지 잠긴 양 열리지 않았다. 들어올 때 밀어서 열린 문은 나갈 때는 도로 당겨야 열린다는 상식마저 떠올릴 수 없을 만큼 급박했던 거다.

"낮잠⋯⋯ 아니, 그게⋯⋯. 아니, 바, 바람 좀 쐬러 나왔어."

낮잠이 계획에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라면 천만에 그럴 리가 없지!!

빈의 손짓에 고개는 힘껏 도리질쳤지만 발은 어쩔 수 없이 그리로 끌려갔다. 잠을 깨 나지막한 목소리라서 화난 것과 구분하기 어려웠을까. 사람과 대화한 횟수 자체가 적으니 더욱 어려웠겠지. 삥을 뜯긴 적은 없지만 언제라도 삥 뜯길 준비는 되어 있는 아가씨 유여울. 과연 생애 첫 갈취는 얼마가 될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빈 곁에 가까이 다가가서 차마 앉지는 못한 채 뻘쭘하게 서 있기만 한다. 옥상의 고요함이 이럴 때는 주위를 둘러싼 군중 같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아니 옥상인가. 졸음 묻은 눈초리가, 접때 갑작스레 책상 앞으로 찾아와서 까르르 웃던 때하고는 사뭇 달라 보였다. 저번과는 패턴이 다르다. 즉 긴장할 수밖에 없다.

"⋯⋯ 빈이, 너는⋯⋯ 뭐 해?"

차라리 자기도 배짱 넘치는 인싸라서 여기서 미꾸라지처럼 대화를 술술 비틀고 꼬아 슬쩍 빠져나갈 수 있다면. 그러나 여울에게 그건 무리다. 비틀고 꼴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건 귀 앞으로 길게 내려온 옆머리와, 갈 곳 잃은 채 차렷 자세의 주변을 떠도는 운동화 신은 발끝뿐이다. 뻘쭘하게 선 채 머리카락을 비틀고 다리를 꼰다. '얌전히 안 있어?'라고 혼쭐나면 그만둘 생각으로.

51 빈 - 여울 (M/UQigLdiQ)

2022-06-22 (水) 17:05:05

여울의 대답은 제대로 된 말이라기보다는 웅얼거림... 내지는 무언가의 울음소리와도 닮아 있었다. 잠이 덜 깼기도 하고 그 정도야 지금으로선 아무래도 좋다 싶었지만, 여울이 뒤를 돌아 문을 미는 모습을 보았을 땐 쟤 뭐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겨야 하는 문을 밈으로써 본인이 훌륭한 한국인임을 증명하는 걸까. 그럴 일은 없겠지만서도.

"아, 오늘 확실히 날은 좋지."
"어-... 근데 내가 놀라게 한 건가?"

바람은 그닥 안 부는 것 같지만 먼지 날리는 교실에 마냥 처박혀 있기에는 아까운 날씨였다. 찌푸린 눈으로 머리 위에서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힐끔대며 바라보았다가 쨍하니 아픈 감각이 눈 안쪽을 찔러대는 탓에 고개를 내린다.
빈이 멋쩍은 웃음과 함께 제 뒷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왠지 놀랐어야 할 쪽은 이쪽인 것 같지만서도, 어째 여울의 행동이 갑작스럽게 난 큰소리에 깜짝 놀란 소동물의 것과도 닮아있다. 지난번에도 그닥 여유가 있어 보이진 않긴 했지만 오늘은 어째 지난번보다 당황한 듯 보이는데. 뭔가 괴상한 자세로 잠들어있었다거나 그랬어서 놀래키기라도 했던걸까. 아니면 단순히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던 걸까.

"나야 낮잠 자러 올라왔지. 이런 날씨에 교실에만 있긴 아깝잖아?"

빈이 기지개를 켜며 태평한 미소를 짓는다. 입시경쟁과 과열된 교육열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태평함이다.
그보다 얘는 왜 계속 서 있는 걸까. 서 있는 걸 좋아하는 타입인가? 옆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음에도 근처에 서서 머리카락을 비트는 모습에 빈은 고개를 갸울었다. 앉겠느냐고 물어본 걸 못 들었나-싶어 큼큼,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에 다시 한번, 제 옆자리를 소리가 나도록 손바닥으로 두드린다.

"다리 안 아파? 너도 앉아. 누가 보면 내가 너 괴롭히는 줄 알겠다."

지금 모양새가 왠지 성격 나쁜 양아치가 소심한 모범생 한명을 앞에 세워두고 갈구는 상황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나른하지만, 지난번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미소와 함께 다시금 동석을 권하며 "괜찮아 안 잡아먹어~" 따위의 농담을 던진다.

52 여울주 (Je26wney9A)

2022-06-22 (水) 20:49:35

맞아맞아 슬로라이프로 가자~ 아, 동석 권하는 빈이 상냥해서 설렌다 크하학🤣

일이 생겨서 답레는 금요일 쯤에 바리바리 싸들고 와야 할 것 같아.... 나무삼! 날씨가 진짜 미치게 더운데 건강 조심해 빈주!! 그리고 폭우 온다는데 폭우에도 건강 조심하구... (?)

53 빈주 (KIF.vdf1RE)

2022-06-23 (거의 끝나감) 14:26:10

그 권유 때문에 여울이는 더 긴장하는 거 아니야? 😂
답레는 금요일보다 더 늦어도 상관 없으니까 일 느긋하게 마무리 하고 천천히 줘~ 여울주도 날 더운만큼 건강 잘 챙기고 일도 잘 풀리길 바랄게!

54 여울 - 빈 (MeMSoszDYI)

2022-06-24 (불탄다..!) 20:52:17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것도 아니고, 이런 곳까지 찾아들어서 낮잠을 청할 정도면 상당히 대단한 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빈의 햇빛 머금은 금발이 결을 따라 반짝 빛나고 있어서, 여울은 가만히 긴장해 침을 삼키고 애써 그쪽을 바라보았다.

(이런 날씨에는 방콕을 안 하는 게 안타깝다고는 생각하지만,) "날씨, 좋기는 하다⋯⋯." 이건 하늘보다도 반짝이는 머리칼을 보고 한 말이었다.

"그런데, 여기 들어와도 되는 곳이야? 열려 있길래⋯⋯ 들어오긴 했는데⋯⋯."

주변에 서 있는 사람이 또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그쪽 눈치를 보면서 서 있을 수라도 있었겠지만, 옥상에는 단 둘뿐이다. 무엇보다, 괜찮은 쉼터를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고 다리가 꽤 아픈 것도 사실이었고. 끝내 손사래를 쳐서 거절하겠다는 의지를 짓눌러 멈춰 두고, 여울은 자포자기하기로 했다.

"아냐, 아냐⋯⋯. 그냥⋯⋯ 깨워 버렸나 해서."

결국 고개를 푹 떨구며 자백 아닌 자백을 하고서는, 마지못해 빈이 방금까지 누워 있던 자리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안 잡아먹는다는데 설마 잡아먹을까. 그래도 호랑이인데⋯⋯ 아, 사람이지.

햇빛에 데워진 건지, 아니면 빈이 불어넣어 놓은 온기인지, 하여간 뜨끈뜨끈한 벤치에 앉아 잠깐을 입을 어물대며 침묵했지만, 그 침묵 사이에도 빈에게 잡아먹히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 것을 보고 '다행히 얘한테 적의는 없는 것 같다⋯⋯'라고 생각하거나 한다. 의외로 쫄아 있는 것은 자기뿐인 게 아닌가 하는 그런 가정 말이다. 물론 그걸 사실이라고 입증하기에는 아직 멀지만. 아직 멀지만!

"원래도 여기서⋯⋯ 자?"

스스로 만들어내는 고요가 너무나 부담스러워서, 말 없는 여울이지만 무언가 할 말을 애써 지어냈다. 빈 앞에만 서면, 저번에도 그렇고, 왠지 이렇다.

55 빈 - 여울 (uqXFOnP5KE)

2022-06-25 (파란날) 13:52:15

"응? 당연히 안되지. 교칙 위반인데?"

빈은 장난기가 그득 서린 미소를 씨익 지어 보인다. 설마 모르고 올라왔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하긴, 저처럼 교칙을 대놓고 어길 타입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애초에 옥상에 올라오는 게 '교칙' 위반인지 까지는 모르겠다. 평상시에 올라가지 못하게끔 잠겨있긴 한데, 무수히 많은 교칙 중 '옥상에 올라가지 마시오'가 기재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관심 없기도 했고. 교칙이고 나발이고 그런 건 빈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하게 된 지 오래였다. 교칙인지는 모르겠지만 겁이나 줘볼까 싶어 "들키면 선생님한테 엄청 혼날걸~" 하면서 뻔뻔스럽게 말을 붙인다.

"뭐, 소리 듣고 깬 건 맞는데 그 대신 점심시간 끝날 때까지 나랑 놀아주면 깨워버린 건 그걸로 퉁쳐줄게."

이제는 거의 가신 나른함이 살짝 묻어나오는 웃음을 실실 흘리며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내지는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의 눈으로 여울을 바라본다. 애초에 퉁쳐주고 말고 할 정도로 중대 사항인가 싶지만, 어차피 깨버린 김에 잘됐다 싶었을 뿐이었다. 다시 자버려도 되긴 하지만 눈앞에 재밌는 애(?)도 앉아있겠다, 그냥 점심시간 끝날 때까지 놀아달라고 하지 뭐. 말을 던져놓고 보니 디오니소스의 '흥이 깨졌으니 책임져.'라는 대사가 떠올랐다. 얘도 이거 알려나.

"음-가끔 피곤하면? 여긴 사람 잘 안 올라오니까."

어제는 게임을 하다 새벽 2시 49분쯤에야 겨우 시계를 보고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도 누워서 페이스북과 인스타를 탐방하며 시간을 흘려보낸 것은 덤이다. 그러니 피곤하지 않을 턱이 있나.

"여울이 넌 여기 처음 올라와 봐?"

들어와도 되는 곳인지조차 몰랐던 걸 보면 처음인 것 같기도 한데, 열려있는지도 모르면서 어쩌다 여길 올라올 생각을 했을까.

56 여울 - 빈 (7ePgTb8oPU)

2022-06-26 (내일 월요일) 18:42:49

"위반이지?! 역시⋯⋯!"

머릿속에 가장 먼저 '도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지만, 같이 있어 주기를 협상 조건으로 내거는 이 애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벤치에 편히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들키지만 않으면 장땡이라는 건 모르는 바가 아니다. 들키는 경우의 위험을 추호도 부담하고 싶지 않아서 이런 현장으로부터 늘 도망치는 것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르겠다. 도저히 모르겠다. 그저 빈이 여울 자신까지도 세상의 눈에게 들키지 않게끔 숨겨 주는 존재이기를 바랄 뿐.

"⋯⋯ 알았어. 점심시간 끝날 때까지야⋯⋯. 종 치고 안 들어가면 혼나는 건 똑같잖아."

한숨을 뺨에 가둬 부풀리고 입술 틈으로 천천히 불어내다가, 고개를 살짝 돌려서 커튼처럼 흔들리는 앞머리 너머로 빈의 얼굴을 살폈다. 뭐가 좋다고 이리 웃는담. 그런데 공교롭게도 한 가지 수확을 밝히자면, 방금 빈이 한 말로, 여기가 여울이 그렇게 찾아 헤매던 '사람 안 오는 장소'라는 건 분명해졌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떡하니 빈이 앉아, 아니 누워 있다면 무슨 소용이겠냐만.

"피곤하면 계속 자도 되는데⋯⋯. 어, 응? 그야 처음이지. 나도 열릴 줄은 몰랐어." 그리고 그 안에 빈이 있을 줄은 더더욱 몰랐고. "근데 어떻게 열고 들어온 거야? 원래부터 안 잠가 놓나⋯⋯?"

57 빈 - 여울 (OvpFyXtnbw)

2022-06-27 (모두 수고..) 15:55:58

기대한 것만큼의 반응을 보여주는 여울 덕에 빈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교칙 그깟 게 뭐라고 저리 호들갑일까. 원래 학교생활 하면서 담 한두 번쯤은 넘어주고 하는 것 아니던가-하는, 평범한 학생이라면 동의하지 않을만한 생각을 태연하게, 물 위로 흘려보내듯이 머릿속으로 흘려본다.

"그래그래, 오래는 안 붙잡아둘게."

학기가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진 않았지만, 같은 반이니만큼 아마 여울 역시 어렴풋하게나마 알지도 모르겠다. 종종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이 끝난 지 20여 분이나 지난 후에 유유히 교실로 들어와 선생님께 꾸중을 듣는 것으로 교실을 한번 떠들썩하게 만들어 버리는 학생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학생이 바로 눈앞의 이 불량 학생이라는 것을.
빈은 여울이 뺨을 부풀리는 모습을 보며 볼주머니에 먹을 것을 한가득 채워둔 햄스터 같다는 감상평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여기 원래 화단 관리하는 학생들한테는 선생님이 열쇠 주거든. 그래서 걔네한테 빌렸지."

빈은 교복 치마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작고 낡은 열쇠 하나를 집어 들어 여울의 눈앞에서 흔들어 보인다. 뭐 그거 말고도 머리핀으로 문을 따서 침입을 시도한다든가 하는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을 시도해보는 학생들이 종종 있긴 하지만, 열쇠를 빌릴 수 있다면야 그보다 편한 방법은 따로 없다.

"근데 너도 이제 공범이니까 비밀 지키는 거다? 또 이상한 짓거리 하다 들키면 나 이번엔 진짜 반성문 각이라."

옥상에 수시로 들락거린 것은 고사하고 교칙을 어긴 게 한두 번이 아닌가 보다. 하긴 화려한 외모만 봐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가기야 하겠다만. 그럼에도 말하지 말아 달라며 여울에게 쩔쩔맨다든가 숨기려 하기보다는 도리어 뻔뻔한 표정과 당당한 말투로 여울을 공범으로 만들어버린다.

58 여울주 (.Yx7DM3sCU)

2022-06-28 (FIRE!) 19:30:54

'또'라면 상습범이라 이거군....! 이제 완전히 덫에 걸려든 느낌인걸 ㅋㅋㅋㅋ

어제 새벽부터 위장이 급히 안 좋아져서 병원엘 다녀왔는데... 컨디션이 범상치 않아... 여울주는 좀 회복하고 와야 할 것 같아...🥺(종잇장 체력)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이어 둘 테니 기다려 줘!

59 빈주 (4DT6t1VFLs)

2022-06-29 (水) 12:52:47

빈이는... 지각, 숙제 미제출, 무단 조퇴, 출입금지 장소 출입 등등의 어지간한 일에 있어서는 상습범일걸... 😂
아니 그보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면 지금 답레가 문제가 아니지! 답레 신경 쓰지 말고 건강 회복에 신경쓰자 여울주! 컨디션이 나아졌으면 좋겠다...! 푹 쉬길 바래 여울주!

60 여울주 (k8V84QXoZA)

2022-07-02 (파란날) 15:23:59

여울주 네모네모 멈뭄미같이 부활!!! 곧 답레 써올게 😝!!!!!

61 빈주 (NwKTCXpMEQ)

2022-07-03 (내일 월요일) 12:09:11

넴모넴모 빔! (?)
부활했다니 다행이다! 이제 몸은 좀 괜찮은거야? 넘 무리하지 말고 답레는 천천히!

62 여울 - 빈 (RNt94aNevY)

2022-07-03 (내일 월요일) 20:56:09

"아, 화단⋯⋯."

그러고 보니 옥상에 이리저리 널부러져 있는 플라스틱 제 화분과 명색만 내걸고 있는 화초, 그리고 여기저기 떨어진 흙에서 조금 웃자란 잡초를 보아하니 여기는⋯⋯ 옥상 정원 같은 걸 가꾸고 있는 모양이다. 꽃과 함께 학생도 기르고 있다는 게 특이한 점일까.

학생이 수업에 참석하는 것도 아니고, '난입'한다는 희귀한 광경을 몇 번씩이나 보여준 마당이니 그 위명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는데, 다만 여울이 한 가지 안심하고 있는 점은 이런 반짝반짝 윤이 나고 세상 어디에 갖다놔도 살아낼 것 같은 아이가, 자기처럼 재미없는 인간한테 10분 넘게 관심을 가질 리는 없다는 것이었다. 조만간 빈은 여울을 붙잡아두고 있다가 풀어줄 것이고, 여울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교실에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물론 여울에게는 방심하고 있는 점도 있었다. 세상 일이 생각처럼 풀리는 경우는 잘 없다는 사실.

"그게 저 열쇠⋯⋯?"

생각보다 옥상 보안이 훨씬 허술한 모양이다. 그런데 여울은 그보다도⋯⋯ 화단 관리하는 학생들에게 '빌렸다'는 게 설마 '(물리적으로) 빌렸다'는 뜻은 아니길 간절히 빌었다. 그러면서도 생각하기를, '난 절대로 화단 관리 위원은 되지 말아야지.' 했다.

"공범? 으, 그냥 방관자⋯⋯ 라고 해 주라⋯⋯?!" 그렇게 말은 했지만, "⋯⋯ 아, 그래도 공범이 아니진 않네⋯⋯. 나도 제멋대로 여기 들어온 거니까⋯⋯. 그─ 그러니까, 빈이 너도 오늘 있었던 건 잊어 줘, 꼭이다? 나도 비밀 지킬 테니까!"

세상에, 공범이라면 이 애랑 동등한 입장인 거잖아⋯⋯. 이 반짝거리는 애랑⋯⋯. 자기가 교칙을 어기고 있다는 것이나, 교칙 위반의 여제와 나란히 벤치에 앉아 있다는 것보다도 여울은 그 사실이 더 어렵게 느껴지는 듯했다. 김밥 먹으러 가는데, 고급 파인 다이닝을 먹으려는 사람이랑 같은 줄에 서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여울은 이렇게 덧붙인다. 어떻게든 '맞먹으려 든다'는 인상만큼은 피하려고.

"⋯⋯ 혹, 호, 혹시, 대가가⋯⋯ 있으면 말하고⋯⋯."

청소년기의 지갑 사정은 눈물나게 얄팍하지만 입막음비(달리 표현하자면 '삥')으로 세종대왕님 몇 명쯤 희생 못 할 건 없으니까.

63 빈주 (AvsjA0dltw)

2022-07-04 (모두 수고..) 14:57:13

대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삥은 (아마도) 안 뜯는다...! (?)
갱신하고 가며... 정신이 없어서 답레는 조금 늦을 것 같아! ㅠ 늦어도 내일밤까진 답레 올릴게!

64 빈 - 여울 (aYpX5UukJs)

2022-07-05 (FIRE!) 14:13:29

사실 말이 좋아 화단 관리 위원이지, 실제로 정성 들여 화단을 관리하는 학생은 여태껏 보기가 드물었다.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여서인지 교사들도 이러한 부실 관리에 관해서는 모른 척 넘어가 주는 게 일상이었고. 물론, 관리가 부실한 만큼 정기적으로 드나드는 인원이 적다 보니 빈으로선 오히려 잘된 일인 것이다.

여울에게 옥상 열쇠를 보여주던 빈은 "나중에 제대로 돌려만 주면 괜찮아."하는 태평한 말과 함께 열쇠를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조심성 없이 대충 아무렇게나 주머니 속으로 구겨 넣는 모습이 언제 잃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듯싶었다.

"그치? 우린 이제 한배를 탄 거나 다름없어."
"에이, 나 입 무거워 너무 걱정하지 마."

제멋대로 여울을 배에 태우며 빈은 태평한 웃음을 흘린다. 입이 무겁다며 검지와 엄지를 맞닿게 붙인 채 입술에 자크를 채우는 시늉을 해 보이지만, 도리어 그런 행동이 신뢰도를 팍팍 떨어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까.
뭐, 행실은 가벼워 보이나 어쨌거나 빈이 오늘의 일을 발설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이미 어긴 교칙의 가짓수만 다섯 손가락이 넘어가는 학생이 옥상에 드나든다는 사실을 알고도 아무 말 없이 넘어갈 교사가 있을 리 만무하다. 큰일로 번지지야 않겠으나 꾸지람 + 반성문 콤보는 기왕이면 피하고 싶었으니.

"응? 대가?"

저게 대체 무슨 말인고.
빈은 평소엔 잘 굴리지 않는 머리를 열심히 굴려 여울의 말뜻을 해석하려 노력했다. 그러니까... 비밀에 대한 대가를 말하는 걸까. 빈은 고개를 갸울였다. 애초에 오늘의 일이 새어나가서 좋을 게 없는 건 여울이나 빈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대가를 받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얘기에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그런 거 필요 없어~' 하고 넘어가면 빈이 아니다. 대신에 빈은 '잘 걸렸다 요놈' 하는 음흉(?)한 표정으로 고민에 잠긴 척, 너스레를 떨어본다.

"음 그러게~ 대가는 뭐가 좋을까~ 고민 좀 해볼까?"

65 여울주 (ro/k/ZlybQ)

2022-07-06 (水) 20:27:39

그래도 여울, 삥은 피해서 가는구나 ㅋㅋㅋㅋㅋㅋ🤣

바쁘고 더워 죽는 한 주야...! 일상 배경은 봄철이겠지만 이럴 때 빈&여울처럼 옥상에서 햇빛 쬐고 있으면 크레이지 걸즈겠지...? 여울주도 7월 들어 상판에 집중할 시간이 조금 빠듯해져서 갱신이 늘어지고 있는데.. 흐흐 고비가 멀지 않았어. 내일 저녁까지 답레 써 올게!

66 빈주 (ycm0SqtaNs)

2022-07-07 (거의 끝나감) 14:32:31

삥까지 뜯으면 그건 (유사)양아치가 아니라 찐양아치가 되어버리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크레이즈 걸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날씨면... 그렇지 않을까...? 🤔 일단 당장 나만해도 실내에 한번 발 들이면 다신 안 나가려고 악을 쓰는걸. (흐릿) 상판보단 당연히 현생이 우선이니까 시간이 빠듯해졌다면 천천히, 느긋하게 오기야!

67 여울주 (hfcTIOeeAs)

2022-07-07 (거의 끝나감) 20:49:47

그, , , 그럼 리얼리 미안 , , 오늘 더위 먹어서 주말에.... 오는 걸로.....😭

68 빈주 (2DEQLILi/E)

2022-07-08 (불탄다..!) 14:05:03

아고 확실히 날이 덥긴 했지!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컨디션 회복에 집중하라구!

69 여울 - 빈 (yA6ldjwLzY)

2022-07-09 (파란날) 20:39:06

"아⋯⋯." 여울은 눈 앞에서 흔들리는 열쇠를 마치 핵폭탄 발사 버튼이라도 보는 것처럼 안절부절 못하며 바라보았다.

한 배라 이거지⋯⋯. 한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퍽 재밌는 일이기는 한데 말이다. 깃털보다 가벼워 보이는 이 애가 실수로라도 이런 일을 발설하지 않으리라는 장담은 여울 본인도 전혀 안 했지만, 어찌됐든 옥상에서 시간을 보냈다는 걸 숨겨야 한다는 데 두 사람의 이해관계는 일치했다. 여울은 자기보신을 위해서라도 이 일을 불문에 부칠 것이고, 빈은⋯⋯ 아마⋯⋯ 아마도⋯⋯ 친구들에게 떠벌리고 다니다 선생님한테 딱 걸리는 게 아닌 이상⋯⋯ 아니 잠깐⋯⋯. 그런데 어쩌다가 우리는 '서로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 거지.

고개를 힘껏 도리도리!

아지랑이가 몰고 온 몽롱함을 떨쳐냈다. '정신 차려야지. 여기는 호랑이 굴.' 여울은 일단 쉬는 시간에 멍하니 앉아 있기보다는 윤빈을 감시할 이유가 하나 생겼다는 걸로 해 두기로 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정말 중요한 건, 이제부터 진행할 입막음비에 관한 협상.

"그, 너, 너무 비싼 건 안 될 수도 있지만⋯⋯ 응?"

생각해 보면 오늘 옥상에 올라온 걸 비밀로 하려면 이런 은밀한 거래가 오고 갔다는 사실도 모두 그림자 속에 묻혀야만 할 테고, 그럼, 아차, 협상의 절대적 우위는 빈에게 가 있는 것 아닌가? 제네시스를 뽑아 달라면 뽑아 줘야 하는 거야? 몇 개월치 용돈이 지금 이 자리에서 하늘로 흩뿌려질까? 여울은 애써 웃고 있었지만 어느 모로 보나 울상이었다.

"⋯⋯ 아, 아니다⋯⋯ 그, 그냥, 너, 하고 싶은, 거 해⋯⋯."

70 빈주 (lq6D7plzvU)

2022-07-10 (내일 월요일) 15:39:58

답레는 내일까지...! ㅠ

71 빈 - 여울 (qm94Z5oSjg)

2022-07-11 (모두 수고..) 13:28:38

눈앞의 상대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며 킬킬거리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켰다면 성격 나쁜 양아치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빈으로서는 이 정도 일로 안절부절못한다는 게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본인의 기준과 일반적인 학생들의 기준이 판이함으로 이 부분은 덮고 넘어가기로 했다. 애초에 상대가 어찌할 줄 몰라 하고 있기에 본인이 이 상황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있을 수 있는 것이기도 했고.

빈은 팔짱을 낀 채 고민에 잠긴 시늉(?)을 해 보인다. 말이야 기세등등하게 엄청난 것을 요구할 것처럼 해놨지만, 막상 여울이 저자세로 나오니 딱히 요구할만한 것도 없어 난감하기 짝이 없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었다. 애초에 실제로 대가를 원한 것은 아니었고, 원래라면 여울이 '잠깐, 근데 이게 새어나가면 너라고 좋은 거 없잖아!' 식으로 나온다면 금세 꼬리 내리는 시늉을 할 생각이었다. 그랬는데 상황이 이리되니 갑자기 됐다고 하기에도 뭔가 심심하고... 하는 마음으로 고민하다 보니 울상이 된 여울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이건 어느 각도에서 보나 질 나쁜 양아치 하나가 평범한 학생 한 명 붙잡아두고 괴롭히는 꼴이다.

"어어, 아니 울진 말고?"

목소리에서 약간의 당혹감-내지는 황당함이 묻어나온다. 제아무리 마이페이스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빈이라지만 저 때문에 동갑내기 학생 한 명이 울어버리면 그건 좀 난감하다. 설마 저렇게까지 진지하게 받아들일 줄은 몰랐는데. 조금의 당혹감 너머로 '얘 좀 신기하네' 하는 감상평이 자리를 잡는다.

"뭐-다음에 매점에서 먹을 거 사는걸로?"
"아, 마실 건 내가 살게."

사실상 들어오면 안 되는 곳에 들어온 건 빈이 먼저였고, 여울은 초범에 빈은 상습범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날의 일이 새어나갔을 때 불리한 것은 여울이 아닌 빈이었다. 거기다 일반적으로는 음료보다 먹거리가 가격이 더 나가기 때문에 이 제안은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여울에게 손해인 거래였지만, 이 양아치는 대놓고 삥을 뜯진 않을지언정 그런 세세한 부분을 배려해줄 만큼 심성이 곱진 않았던 모양이다.

72 여울 - 빈 (Cxz6smZtWs)

2022-07-13 (水) 20:59:46

공교롭게도 여울의 심정은 정반대였다. 다행히 제네시스가 아니라 먹을 것 정도라니! 그 정도라면 얼마든지 뜯길 의향이 있었다. 물론, 이 무시무시한 호랑이굴에서 살아 나가서 평화롭고 고요하며 고고한 학교 생활을 계속 영위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조건이 붙는다면 말이다⋯⋯.

여울은 대답 대신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한편으로 막상 이러한 상황을 당하자, 여울의 머릿속 의회에서는 새로운 의견이 고개를 들었다. 아니─ 머릿속 여론을 따져보면 비례대표 의석조차 얻지 못한 신생 군소정당이지만, 분명히 그들은 생겨나서 머릿속 의사당의 문을 똑똑 두드리고 있었다. 사실은 윤빈이 좋은 녀석인 것 아니냐 하는 것. 친해지고싶당 당원들의 시위는 머릿속 뉴스에도 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쟁의였지만 머릿속 의원들 사이에는 처음으로 이상한 기류가 흘렀다.

'물론 수업시간에 맨날 늦고, 늦는데다 자기까지 하며, 수시로 옥상에 출입하는 이런 학생이 착할 리가 없습니다.' 주위눈치많이본당의 의원 유여울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관측한 결과로 보건대, 잘만 하면 친해져서 원만한 관계를──.'
'친해지다니요! 윤빈과 친해진다는 건 학생으로서 타락 아니면 착취당하는 삶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당인 절대절대모범생당 의원 유여울의 발언이었다. '주위에 대한 경계를 더욱 강화해 오늘과 같은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다들 진정하세요!' 머릿속 국회의장이 법봉을 두드리며 외쳤다.

회기가 한 차례 지나고 ─ 현실에서는 10초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데 ─ 머릿속 의회는 폐정했다. 그와 동시에 여울은 자기가 어색하게 침묵하고 있었단 걸 의식했다.

"아─ 알았어! 언제가 좋니?"

내뱉듯 말하자마자 벤치 주변에 앉아 있던 새 몇 마리가 놀라 날아갔다. 얼떨떨하게 바라보다가, 날갯짓 소리가 자기 말소리를 덮어 버리기라도 했을까봐 누차 말했다.

"언제가 좋니? 아⋯⋯ 그⋯⋯ 편할 때 불러내도 되기는 하는데⋯⋯ 그냥⋯⋯. 혹시 시간대가 언제인가⋯⋯ 를."

73 빈 - 여울 (ra6mb6u9vs)

2022-07-15 (불탄다..!) 13:19:08

빈의 제안에 여울은 수초 가량을 침묵으로 일관했다. 음... 마음에 안 들었나, 싶던 찰나, 푸드덕거리는 새의 날갯짓 소리와 함께 대답이 돌아온다. 빈은 무의식중에 날아가는 새 무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 시선 안에 정통으로 들어온 햇빛에 눈 안쪽에 쨍한 통증을 느끼며 급히 눈을 질끈 감는다. 어휴 눈 아파.

"언제? 음 아무 때나 상관없는데."

언제, 라는 약속이 빈에게는 꽤 생소하게 느껴졌다. 심심하면 아무 때나, 누구에게나 가서 수다를 떨고, 집에 있다가도 심심하면 대충 당장 시간 맞는 아무나 불러냈고, 구태여 언제, 어디서, 누구와 등을 약속으로 잡아두는 타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빈의 이런 성향을 알기 때문인지 빈의 친구들도 그녀와 사전에 약속을 잡아두기보다 '우리 지금 어디서 놀고 있는데 너도 나올래?' 식의 제안을 더 많이 받았었고.

"그냥 나 심심할 때?"

그 말인즉슨, 그게 당장 내일 점심이 될 수도 있고, 일주일 뒤 방과 후일 수도 있다. 계획을 차근히 세워두기보다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편인 빈은,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 다소-심각하게-부족할 때가 더러 있었다.

"아, 수업 참여에는 지장 안 가게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봐줬다.' 하는 어투로 아주 당연한 소리를 씨불인다. 다만 본인은 수업에 늦거나 심지어 쨀 때도 종종 있으니 저게 본인 나름대로 상대의 성향을 배려해준답시고 배려해서 나온 말이라는 게 어처구니없는 부분이다.

// 머릿속 의사당 귀여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74 여울주 (R6a0AqyZIU)

2022-07-18 (모두 수고..) 20:36:55

기분파 빈이에게 끌려나가는 미래가 너무 눈에 선하다 ㅋㅋㅋㅋㅋ
답레는 이번주 중으로 들고 올게! 에어컨을 틀었으면 이불을 잘 덮고 자야 한다는 귀중한 교훈을 얻어서 콜록콜록...😷 코로나도 음성인데 기온보다 체온이 더 높은 기분이네!?

75 빈주 (BH5CdLqznU)

2022-07-19 (FIRE!) 16:08:31

헉 감기 걸렸나 보구나 ;3 몸이 좋지 않다면 푹 쉬어야지! 답레 신경쓰지 말고 약 잘 챙겨먹고 푹 쉬어 여울주! 한시라도 빨리 열도 내리고 나아졌으면 좋겠다!

76 여울주 (6nNBv2jG7Q)

2022-07-26 (FIRE!) 11:25:06

🤯 며칠을 잔 거지?!?!?! 답레 써 올게!!!

77 빈주 (pPbduaFjBw)

2022-07-27 (水) 16:44:48

헉 이제 몸은 좀 괜찮아? 답레는 천천히 줘도 돼

78 여울 - 빈 (xDVvJoQpJ2)

2022-07-29 (불탄다..!) 20:42:56

생각해 보면, 옥상 문 잘못 연 죄로 소중한 '혼자만의 조용하게 구겨져 있는 시간'을 채여 가게 생겼으니 무척이나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지만, 거기까지 머리가 돌아가기에는 날씨가 너무 나른하고 긴장이 많은 성격인 것이 화근이라⋯⋯ 적어도 아직까지 유지 중인 모범생 타이틀을 유지할 수는 있도록 협조해 준다는 배려 아닌 배려에, '그거 참 고마운걸요' 이렇게 여기고 말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큰일인 건지 다행인 건지.

⋯⋯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 혹은 아무리 생각을 건너뛰어도 ─ 이건 좀 억울하다. 그러나 뾰루퉁한 걸 얼굴에 드러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무척 억울한 걸 숨기기 위해서라도 다른 얘기를 꺼내야 했다.

"그런데⋯⋯. 너⋯⋯." 여울은 입을 우물우물대다가 애써 말했다. "⋯⋯ 친구들 많지 않아? 반에도 그렇고, 어, 다른 반에도 그렇고⋯⋯. 그런데 심심할 때가 있어⋯⋯?"

솔직히 인정하자, 이 질문은⋯⋯ 일말이나마 진심과 호기심이 담긴 그런 물음이다. 자기처럼 음침하고 재미없는 녀석이 그대의 심심풀이가 되어 줄 수는 있겠냐는 물음. 어쩌면 이 상황이 평생을 통틀어서 없었던 종류의 사건이라 지나치게 쫄아 있을 뿐이고, 어쩌면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이 치자마자 빈은 자신에게 흥미를 잃고 다시 교실의 중심에서 빛나는 미러볼 위치로 돌아가 졸업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빈의 의중이 궁금한 이유는 무얼까? 여울도 여울의 마음을 모른다. 정답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그나마, 가장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만 머릿속 한가운데에 조용히 떠오른다. '설마 외로워서?'

'외로워서? 그럴 리가. 절대 그럴 리가! 「호랑이 나으리, 저는 맛 없어요. 제발 잡아먹지 마세요」 하고 비는 거지⋯⋯.'

"내 말은⋯⋯." 머릿속의 목소리와 싸우느라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말 몇 마디를 덧붙일 뻔했지만, 여울은 여기서는 침묵하는 편이 현명하겠다고 생각했다. "으음, 그냥⋯⋯ 그게 궁금해서."

79 여울주 (xDVvJoQpJ2)

2022-07-29 (불탄다..!) 20:43:42

대박 펑크 났어... 미안!!!! 가뜩이나 에어컨도 고장인데 열이 나서 거의 갓난아기처럼 잤네 😭

80 빈주 (G8np.BOloM)

2022-07-30 (파란날) 13:48:57

헉 아니야 아팠으면 당연히 어쩔 수 없는 거지! 몸 먼저 챙겨야 하는 건 당연한 거니까 신경쓰지 마!
뭣보다 나도 살짝 바빠서 답레가 좀 늦어질 예정이라... ㅠ 늦어도 내일까진 답레 올릴게!
여튼 이제 몸은 괜찮았으면 좋겠다!

81 빈주 (GZ8rYVYMMg)

2022-07-31 (내일 월요일) 13:54:56

으악 답레는 조금 더 느긋하게 기다려줘...! 요새 답레를 쓰려고 각을 잡으면 뭔가 일이 자꾸 생겨버려서...! ㅠㅠ

82 빈 - 여울 (rk8/tnWRhY)

2022-08-02 (FIRE!) 14:02:56

뻔뻔한 빈의 제안에 여울은 우물쭈물하다가 조심스럽게 호기심을 표출한다. 충분히 가질법한 의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빈은 틈만 나면 제 반이건 남의 반이건, 심지어는 다른 학년 층에까지 뻔질나게 돌아다닌다. 심심하다는 명목하에 선생님들을 찾아 교무실에 얼굴을 비추는 경우도 있었다. 심심하기는커녕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것으로 보이지만, 사람은 계속해서 색다른 걸 찾게 되기 마련 아니던가. 여러 사람과 모여 왁자지껄하게 노는 것도 즐겁지만, 가끔은 조용하게 보내고 싶은 날도 있는 법이다.
무엇보다, 바람 따라 구름 따라 흘러가듯 쏘다니는 편이어서인지 어느 친구 무리에도 완연한 소속감을 느끼기란 쉽지 않았다. 이제껏 그러한 기분에 불만을 가진 적은 없지만, 간혹 이리저리 떠돌다 보면 따분하다던가 심심하다는 기분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순리였다.

"뭐 친구 자체는 많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딱히 엄청나게 친한 친구가 있는 건 아니어서? 가끔은 심심해."

딱히 부정할 것도 아니고,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한다.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만 한 트럭이니 여울의 입장에선 굳이 여울와 놀기 위해 치대는 게 이해는 안 될지도 모르겠다. 다만 솔직히 말하자면 엄청난 반전이 깃든 서스펜스 영화 마냥 남에게 말 못할 숨겨진 이유가 숨겨져 있다던가 하는 것은 아니었다. 원래부터가 생각보단 몸이 먼저 움직이는 타입인지라 굳이 이유를 붙이자면 '그냥', '그러고 싶어서' 등등이 끝일 정도로 허무하다. 그런데도 굳이 이유를 추가로 찾아내서 붙여보자면...

"근데 그보다는 너 반응이 재밌어."

... 명백하게 찐친이 없어서 가끔은 심심하든지 하는 것보다는 이쪽의 이유가 더 진심인 것 같다...

83 여울 - 빈 (Rhow08P1ac)

2022-08-05 (불탄다..!) 20:16:03

빈의 의미심장한 친구론에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여울이었지만 고개는 끄덕이고 있었다. 애초에 친구가 있어 본 적 없었으니까. 글쎄, 저 정도로 무지막지한 사람이라면 심심함의 역치가 굉장히 낮아질 수도 있을 테니. 애써 이해해 보려 했는데, 그보다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타입의 사람이다'라고 납득하는 것이 더 빨랐다.

"심심하기도 하구나⋯⋯. 아니, 심심해서 친구들을 그만큼 늘린 걸까⋯⋯?"

아무렴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가장 정반대에 해당하는 두 종류의 사람이 이렇게 점심시간에 같은 벤치에 앉아 환담을 나누는 사건도 일어날 수 있지.

어찌됐든 여울이, 빈의 행동 동기가 '그냥'이라는 걸 알아차릴 때까지는 조금 걸릴 것 같았다. 다만 언젠가는 분명 알아차릴 것었이다. '빈 선'에 몇 분 동안이나, 그것도 두 차례나 피폭당한 여울이라면 도대체 저 아이의 관심사는 어떻게 작동하는 건지 관심이 생기고 말 테니까. 어떻게 하면 관심을 끌 수 있는지──아니, 아니지! 관심을 있는지 진지하게 궁리해 보기도 할 것이고⋯⋯.

"응?" 그런데 그 비결이 예상외의 것이라 나름대로 난처해진다. "나⋯⋯ 나 재밌어? 내가?! 내, 내가!!?"

여울에게는 살면서 처음 들어 본 말이다. 그러나 그건 애초에 무슨 말이든지 마찬가지다. 대화 자체를 안 하고 사니까, 살면서 아직 들어 보지 못한 말이 태산이기 마련. 무엇보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보이는 반응이 빈이 보기에는⋯⋯ 재미있는 것도 아마 사실일 테니까.

"난⋯⋯ 모, 몰라. 재미없다고 다들 그럴 텐데. 아니, 직접 그렇게 들었다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 재미있는 걸로 따지면 친구 많고 말 잘하는 네가 훨씬⋯⋯? 아, 아닌가? ⋯⋯⋯⋯⋯⋯ 반응이 재밌다는 게 뭐지⋯⋯!?"

얼굴을 싸매고 고뇌하는 동안 시간은 흐른다.

84 여울주 (Rhow08P1ac)

2022-08-05 (불탄다..!) 20:18:05

말끔히 나았어!!! 역시 타이레놀은 만병통치약이 맞는 게 아닌가 아무튼 그런 기분.

그것과는 별개로 평일에는 더위 때문에 푹~푹 늘어지다 보니 괜찮은 답레 쓰기가 점점 더뎌지네... 😅 보양식 먹고 힘내서 더 열심히 쓰기로 했어. 보양식이래봤자 비빔국수지만... 빈주도 답레 천천히 줘도 괜찮아~!!

85 빈주 (.OwpNUjD/I)

2022-08-08 (모두 수고..) 14:16:39

앗 다 나았다니 다행이다! 날도 더운데 고생했겠네 ㅠㅠ
그리고 더울땐 푹푹 늘어지는 거 인정... ㅠㅠ 응응 답레는 서로 몸 챙겨가면서 천천히 주고 받자! 나도 답레 다 쓰기까지 조금 더 걸릴 것 같아서...!

86 빈 - 여울 (0aLqoNzC6g)

2022-08-10 (水) 11:31:12

"으음... 그럴 수도...?"
"사실 그런 걸 생각해 본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심심해서 친구들을 그만큼 늘린 걸까? 하는 여울의 물음에 빈은 애매한 제스쳐와 말투로 대답했다. 심심해서 이리저리 말을 걸고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구들이 늘었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심심하니 쟤랑 친구가 되어야겠다, 는 뉘앙스의 생각은 이제껏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그러니까, 목적이 친구를 만들려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달까. 음, 이것도 결국엔 심심해서 친구를 늘린 게 맞다 봐야 할까. 목적이 좀 다르긴 하지만 결국 시작점과 목적지가 같기에 같은 거라 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는 고민에 잠겨있던 빈은 여울이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싸매고 고뇌하는 모습을 보곤 대뜸 웃음을 터트린다. 소심하거나 낯을 많이 가리는 친구들이야 주변에 차고 넘치도록 많다. 특히나 한창 예민한, 사춘기를 거쳐 가는 시기의 아이 중에는 그런 경우가 더욱 쉽게 보이고. 그렇지만 여울의 반응은 단순히 낯을 가린다던가 소심한 이들이 보이는 반응과는 조금 결이 다르달까.

"응, 지금 같은 반응이 딱 재밌어."

혼란스러운 여울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생글생글 웃으며 단호하게 못을 박았다. 저렇게까지 당황하지 않아도 잡아먹진 않는데... 라고 여울에게 사자와 비슷한 위험 요소로 판단 된 빈이 생각했다.

그렇게 여울의 반응을 보며 실실 웃고 있자니 익숙한 종소리가 들려온다. 예비종이다. 운동장에서 시끌시끌하게 모여 놀던 학생들이 하나둘 아쉬워하면서도 교내로 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들린다. 물론 개중에는 개의치 않고 계속하던 놀이를 하는 듯한 학생들의 소리도 가끔 들리고. 빈은 엇차-하는 의성어와 함께 벤치에서 일어서선 교복 치마를 손으로 탁탁! 털어낸다.

"오늘은 제시간에 들어가겠네~ 가자."

앞의 말은 혼잣말에 가까웠다. 예비종이 울린다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성격은 아니지만, 오늘은 약속한 게 있으니 지키긴 해야겠지. 더 곤란하게 했다간 울음을 터트릴지도 모른다. 빈은 턱으로 옥상 문 쪽을 가리킨 뒤 설렁설렁, 느긋한 걸음을 옮긴다.

// 슬슬 막레각 잡으면 될 것 같아! 이 답레를 막레로 받아도 좋고!

87 여울주 (BbF2bMW2tQ)

2022-08-17 (水) 20:46:19

수고했어~~~😆 광복절 연휴를 힘겹게 보냈네.... 완전 방전이야.... 시간 되면 내 쪽에서 막레 써 올게!

88 빈주 (XmXTbW46sI)

2022-08-20 (파란날) 12:12:08

응응 수고했어 여울주! 아이고 연휴 동안 많이 힘들었구나 충전 잘 하고 막레는 시간 될 때 천천히 들고 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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